우리 안에 사랑의 용광로가 있다! (엡 6:21-24)
무학교회 김창근목사님께서는 학창시절 너무나 가난하여 고생을 많이 하였다고 했는데, 가장 마음에 상처가 되었던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집에 가서 돈을 가지고 오라고 집으로 내쫓았던 일이었답니다. 집에 가 보아야 돈이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친구들 앞에 불러내어 집에 가라고 윽박지르는 선생님이 너무 야속하였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어느 교회 집회에 설교를 하러 갔더니 그 선생님이 그 교회 장로로 계심을 알았답니다, 학교 다닐 때는 너무 야속했지만 반가운 마음도 있어 만나고 싶었지만 집회 중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답니다.
우리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마지막에 ‘사랑이 없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판정을 받는 것입니다. 정말 후회없이 살아야 하겠습니다.
에베소서를 끝맺으면서 사도 바울이 하신 말씀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 지어다
이 축복 기도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사도 바울의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를 전해 준 두기고를 소개하기를 사랑을 받은 형제 라고 하였고, 편지를 받는 에베소 교인들에게도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하였습니다. 성도들의 별명이 사랑인 것입니다.
그 모든 사랑은 예수님을 사랑하는데서 나옵니다.
여러분은 진정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까?
많은 교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심각한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된 것입니다.
계 3:15-16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성도들도 잘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정말 사랑하는 감정입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숨길 수 없는 감정이 있습니다. 항상 보고 싶고 한 순간도 아쉽고, 어떤 헌신도 아깝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7-9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이것은 구구절절 예수님에 대한 사랑 고백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얼핏 보면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리는 것이 두려운 일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세상 근심 걱정에서 구원받은 자의 고백입니다. 진정 자유한 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배설물에서 얼마나 자유합니까? 화장실의 물을 내릴 때, 연연하고 갈등하고 집착하고 스트레스 받습니까?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의 평가와 소유와 성공을 위한 욕심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 받으며 사는지 모릅니다. 끊임없는 좌절과 염려 속에서 몸부림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배설물과 같이 여겨진다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겠습니까?
입시생들, 시험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스트레스가 가장 큰 적입니다. 만약 입시에 대하여 자유하다면 오히려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버릴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 것만 아닙니다. 사랑하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을 위한 수련회가 있었는데, 한국말을 잘하는 중국 학생이 통역을 하였습니다. 너무나 통역을 잘하여 설교하신 목사님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다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하였는데, 통역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문장도 아닌데 왜 통역을 못하나 하며 목사님께서 다시 말했습니다.“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그래도 통역이 가만히 있기에 약간 짜증이 나신 목소리로 크게“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하고 통역하는 학생을 쳐다보니 그 학생이 울먹이고 있는 것입니다. 속죄의 복음에 대한 감격에 벅차 통역도 못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알고 나면 누구나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제가 지옥에 갈 죄인인 것을 깨닫고서야 비로서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사람마다“착하다, 모범적이다.”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의 죄를 짓고 있음을 알고 고꾸라졌습니다. 바리새인은 품위도 있고, 열심도 있는데, 죄인을 벌레 보듯이 하는 사람들입니다. 얼굴을 찌푸리고 어울리려고 하지 않고 마음으로 정죄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는 의로운데, 세리는 더러운 죄인이라고 정죄한 이유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습니다. 제가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십자가 앞에서 고꾸라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제게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주셨고 저를 깨끗케 하셨습니다. 그것을 깨달으니 미칠 것 같았습니다. 주님의 종이 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다 드려도 상관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는 감정이 없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너무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설교 준비를 하면서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선한목자 교회를 담임한 지난 7년간 제 믿음은 엄청나게 커졌음을 느낍니다. 예배당을 건축하고 많은 부채를 상환해가면서 제 믿음은 정말 커졌습니다. 어지간한 일, 어지간한 어려움은 걱정이 안될 정도입니다. 그러나 사랑도 그처럼 커졌는가? 점검해 보니 하나님께 너무나 죄송했습니다. 믿음과 사랑의 불균형이 심각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사명을 감당하기에 전심을 다하는 자가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사랑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단들과 싸우느라 수고한 에베소 교회에 편지하시기를 그 열심과 충성스러움을 칭찬도 하셨지만 무서운 책망을 하셨습니다.
계 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이 함정에 저도 빠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무 마음이 괴로워 기도하는데, ‘내 마음을 품으라.’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말씀에 깨달아지는 것이 내 안은 얼음장 같을 지라도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심을 알았습니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계속하여 주님의 마음만 품으려 할 때 주님은 용광로 같은 사랑이심을 느꼈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용광로 같구나.” 모든 것이 다 들어가서는 녹아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품는 불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용광로가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것을 깨닫고 놀랄 것입니다.
여러분, 형제교회 선교사로 섬겨보십시오.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지난 주간 형제 교회 선교사로 섬기는 한 교우의 글이 게시판에 올랐습니다.
이 분이 그 교회에서 교회학교 교사로 섬기다가 자폐 성향이 있고 지적 장애가 있는 5학년인 지민이라는 아이를 만난 이야기입니다. 이 아이가 너무 외로워하고 슬픔이 가득한 아이였는데, 이 아이도 예수님에 대해서 십자가의 복음에 대해서 알아들을까 조심스럽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민이가 심각하게 물었습니다.“선생님 회개를 했는데도 개운하지가 않아요.. 아무래도 하나님이 화가 안풀리신 것 같아요.”아이의 걱정하는 눈빛이 오히려 너무 예뻐 다시 한번 예수님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지민이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으면 예수님께서 지민이 죄를 모두 다 사해주셨다는 것을 믿으면 되는 거야.”몇주 후에 그 아이가 놀라운 말을 하였습니다.“선생님~ 어제는 하나님께 자기 전에 회개를 했는데 하나님이 용서해 주셨어요. 그래서 자기 전에 누워서 사랑의 하트를 마구 날렸어요!”그리고 하나님과 처음 대화를 했어요.”하기에“그래? 하나님이 뭐라고 하셨는데~”했더니 하나님께 회개를 하고 자기 전에 무서운 꿈을 꾸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이‘입을 벌려라!’라고 말하더랍니다.“왜 하나님이 입을 벌리라고 하셨니?" "하나님이 빛을 넣어주시겠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것을 삼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입을 벌려서 꿀꺽 삼켰죠. 그리고 하나님이 '이제 편히 자라.' 하셨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마지막으로 부탁을 했죠. 제가 좋아하는 맛있는 것 먹는 꿈, 놀이동산 가는 꿈을 꾸게 해달라구요. 그래서 진짜 그 꿈을 꾸었어요." 지민이의 이야기를 듣고 너무 기쁘고 지민이를 꼭 껴안아 주었답니다.
지민이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것이 너무 신기하여 성경 만화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1주일 후에 아이가 흥분을 하며 귀찮도록 따라다니며 계속 성경 얘기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부터 혈루병에 걸린 여인이 옷자락만 만져서 나은 것들. 모든 것들을 다 얘기하며 어쩜 그렇게 신기하고 재미있을 수 있냐며 예수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 같다며 너무 놀랍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머지 책도 선물하였는데, 그 책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내용이 있었는데, 그것을 읽고 1주일을 내내 밤마다 울었다고 합니다. 너무 가슴이 아프고 죄 없는 예수님이 왜 돌아가셔야 하냐며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며 1주일을 눈물로 지냈다고 합니다..
그 후로 지민이가 예배드리는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율동이 없는 찬양도 가슴 깊이 느끼며 눈을 감고 마음 주시는 대로 율동을 하며 손을 높이 들고 찬양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그저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말 밖에는 뱉을 수가 없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원수도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말씀 앞에서 당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우리 안에 오신 예수님을 정말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나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흘려 보내는 것입니다.
모든 사랑은 예수님과의 사랑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웃 사랑이 첫째 계명이 아니고 둘째 계명인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분이 계십니까?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함께 지내지 않는데 사랑을 느끼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군목 훈련 중 가족 면회가 있었을 때, 지영이가 3살이었는데 훈련생 아빠을 보는 순간 머리는 짧고, 시커먼 얼굴을 보고 설렌 마음은 사라지고 너무나 낯선 모습에 얼굴이 굳어지기에 안아 주었습니다. 제 얼굴을 보지 않고 어깨에 머리를 파묻었습니다. 목소리로만 대화하였습니다.“지영아 아빠야.”“응.”“아빠 만나니 좋아?”“응.”목소리를 들으니 아빠같은 모양이었습니다.“그래 지영이 얼굴 좀 보자.”다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습니다.
들어서 아는 사람과는 뜨거운 사랑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교제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느낌이 들 수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1장 8절에서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라고 썼습니다. 베드로가 쓴 편지를 받아 본 성도들은 예수님을 만나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보지 못하지만 함께 하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심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렇게 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저와 함께 사신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배드리고 집으로 돌아갈 때 저와 함께 가는 것입니다. 머리가 좀 복잡해지시지요? 차는 무슨 차를 타며, 방은 어느 방을 주실 것입니까? 꼭 이 기분으로 예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입니다.
인도 조동욱선교사님의 메일이 생각났습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 좀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모든 사람을 더욱 깊이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직도 철이 덜 든 것 같습니다.
제가 사역하는 이곳에는 어려운 일, 힘겨운 상황이 많이 생깁니다. 그런 일들 뒤에는 덫에 걸려 나무에 매달린 짐승을 잡아 먹지 못해 안달하며 나무 밑을 어슬렁 거리는 큰 짐승처럼 저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저들을 미워하지 않는 정도의 믿음은 얻었습니다. 감사하죠. 제게는 저들을 미워할 시간도 없을 뿐더러 그럴 마음이 생기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저들을 긍휼이 여기고 격려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섭니다.
그러나 더 너그럽게 더 다정하게 더 부드럽게 저들을 품어주고 격려해 주지 못하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저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것은 저들의 나를 향한 이유 없이 미워하는 마음에 감동을 안겨 저들이 미움의 줄을 스스로 풀어놓을 정도로 나의 사랑이 큰 위력을 가지지 못하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정말 큰 사랑. 아무나 아무 것이나 녹여 내릴 수 있는 농익은 사랑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 드립니다. 제가 참 마음이 괴롭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모든 성도가 항상 점검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무학교회에 갔더니 북한에 보낼 옷 신발을 한 컨테이너 분량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북한에 보내는데 인수하실 분을 만났습니다. 연변과기대 김호진 교수였습니다. 그는 중풍으로 반신이 마비된 분이었습니다. 인사를 하시는데 이것이면 북한의 한 군 전체 사람들 겨울나기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북한을 다니다 보면 정말 돕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때가 많은데 기도만 하면 안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님의 마음입니다.
에베소서에서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이제부터 사랑만 하며 살게 되었다면 진짜 은혜를 받으신 것입니다.
성찬은 사랑의 용광로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들여 하나가 되는 시간입니다.
마음이 얼음장 처럼 냉랭한 것을 고백하고 이제부터 언제나 예수님과 동행하겠습니다! 하고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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