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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어버이 주일설교

네 부모를 공경하라(잠언 23장 22절~26절)

by 【고동엽】 2022.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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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부모를 공경하라(잠언 23장 22절~26절)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났을 때,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몇 명이 특별한 목적으로 우리 나라를 다녀간 일이 있습니다. 큰 전쟁을 치르고 나면 으레 후유증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전염병이 그 하나 입니다. 전쟁에서 죽는 사람보다 전염병으로 죽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입니다. 또 정신이상자들이 많이 생깁니다. 그리고 베이비 붐(baby boom)이 일어납니다. 전쟁 동안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고 있다가 전쟁 뒤에는 많이 낳게 됩니다. 또한 기형아가 다른 때에 비하여 많이 태어납니다. 이것은 사회학자들의 연구로 거의 상식처럼 되어 있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은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3년여에 걸친 그 무서운 전쟁을 치르고도 정신병자의 발생률과 기형아의 출생률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현저히 낮았고 전염병도 없었습니다. 그것이 이상했던 것입니다. 그 이유를 조사하기 위하여 사회학자들이 파견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조사를 하는 중에 시골에 내려가서 두 가지의 장면을 눈여겨 보았습니다. 그 하나가 어느 시골집 마루에서 할아버지와 손자가 마주 앉아서 식사를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나이많은 할아버지가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다 큰 손자의 입에다 넣어줍니다.
손자 녀석은 거리낌없이 그것을 덥석덥석 받아먹고 있습니다. 그 모습에서 그들은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에 오가는 사랑을 보았던 것입니다. 또하나는 한 여인이 발가벗은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머리에 무엇인가를 이고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한 손으로는 아이를 받치고 한 손으로는 머리에 인 보따리를 붙잡고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길을 갑니다. 아이는 어머니 등에서 고개를 젖히고 잠이 들어 있습니다.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마는, 어머니의 몸에 제 몸이 닿아 있다, 어머니의 등에 업혀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여 잠을 자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는 '조사 다 했노라' 하고 학자들은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원인을 깨달은 것입니다. 일찍이 역사가 토인비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족제도는 한국에 있다'라고 찬탄한 바 있습니다.
여러분, 온 세계가 부러워하는 가족제도를 우리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깝게도 이제는 지난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옛날에는 참 좋았다"라고 푸념하며 살아야 할 현실이 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이 명예를 회복할 길은 없는 것일까요? 요즘들어 많은 사람들이 제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양로원 합시다." 저는 단연코 말씀드립니다. "양로원 많은 나라는 그릇된 나라입니다. 복지국가니 선진국가니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습니다. 그런 나라는 길게 서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하나, 고아원을 하자고도 합니다. 그러나 고아원도 그렇습니다. 고아원이 많은 나라도 소망이 없는 나라입니다. 내 부모다 네 부모다 할것 없이 모든 노인을 다 가정에서 모셔야 합니다. 아이들도 내 자식이다 네 자식이다 가리지 말고 모두가 가정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민족 앞에 장래가 있습니다. 버려지는 노인이 있고 버려지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 사회 그 민족은 끝장나는 것입니다.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옛날의 전쟁은 대개 영토전쟁이었습니다. 땅을 차지하려는 욕심 때문에 서로간에 분쟁이 끊일 날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념전쟁이 있었습니다. 근 백여 년을 두고 동서 세계는 이념전쟁으로 지샜습니다. 그것이 끝나자 이제는 경제전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남북문제도 결국 경제문제가 아닙니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경제전쟁이 치열합니다. 그 다음으로 있을 전쟁, 이미 시작된 전쟁은 다름 아닌 인종전쟁입니다. 민족마다 독립하려고 꿈틀거립니다. 인종적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눈앞에 있는 전쟁입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보다도 더 무서운 전쟁이 있습니다. 인간성 파괴를 향한 전쟁입니다. 인간성이 상실됩니다. 도덕성을 잃어버립니다. 이것은 종말론적 전쟁입니다. 인간성의 상실과 파괴, 그로 인해서 생기는 불신과 거짓, 폭력과 절망, 사치와 낭비----참으로 걱정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모든 불행은 가정의 파괴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변질되면서 생겨나는 일입니다. 문제의 원인도 가정이요 문제의 해결도 가정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기술과 지식은 넘쳐나고 있습니다만, 어진 마음과 슬기로움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똑똑한 자식은 만들었는데 착한 자식으로 키우지는 못했습니다. 공부는 많이 시켰는데 나중에 보니 사람이 아닙니다. 못쓰게 되었습니다. 내 자식이 아니더라는 말입니다. 인간의 참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도덕성도 인간성도 바른 가정에서만 회복될 수 있습니다. 경건한 가정이 우리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흔히들 효도하면 복받는다고 말들을 합니다. 그렇게들 배워왔습니다. 본문말씀의 주제도 바로 그것입니다. 효도하면 지혜로워진다고 실제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효도를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어집니다. 듣는 겸손,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 지혜에 대한 실천의지가 있을 때에 비로소 효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효도하면서 부모로부터 지혜를 얻게 됩니다. 지혜로워지는 길, 진리를 찾는 길은 부모를 청종(聽從)하는 데에 있다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민족은 강인하고 우수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전승(傳承)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자기네 민족의 모든 역사와 성경을 비롯하여 미슈나와 탈무드를 지혜의 근본으로 삼고 그것을 내것으로 수렴하였습니다. 그 전승에 절대 신앙을 두었습니다. 거기로부터 시작하여 지혜를 축적해나왔던 것입니다.
이를테면 내가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다고 생각해보십시다.
부모님에게도 잘한 일이 있고 못한 일이 있습니다. 다 옳았던 게 아닙니다.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너는 나처럼 하지 말아다오"하고 뼈아픈 부탁을 하는가 하면, 잘한 일에는 "나를 따라다오"하고 경험 속에서 얻은 바대로 따를 것을 부탁합니다. 자식된 입장에서 부모의 그 부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거기에서 출발할 수만 있다면 그는 인생을 월반하여 제2학년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부모의 말씀과 부탁을 거역한다고 해봅시다. 부모가 술로 망했습니다. 제발 술을 멀리하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나도 한번 먹어봐야겠소"하고 술을 가까이합니다. 적어도 술만 먹지 않으면 그는 2학년에서 시작할 수 있었을 텐데, 먹음으로 결국은 밑바닥으로 떨어져 처음부터 시작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집안은 망한 집안입니다. 어떠한 교훈이건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그 귀한 지혜를 내것으로 수렴할 때에야 비로소 나는 지혜로운 자가 됩니다. 그 지혜를 축적해나가면서 지혜로운 사람, 능력의 사람, 권세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마땅히 부모를 공경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나를 낳아주셨습니다. 나를 위하여 헌신하셨습니다. 나를 키워주신 분이요, 내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공경해야 합니다. 둘째, 인생의 경험자입니다. 인생의 선배요 선험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그가 나보다 훨씬 지혜롭습니다. 셋째, 나를 사랑합니다. 세상의 사랑에는 시기와 질투가 있습니다만, 부모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순수한 사랑은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입니다.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에 담긴 교훈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넷째, 나에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부모를 공경할 것입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효의 여섯 가지 요건을 말해왔습니다. 효의 첫째는 건강입니다. 몸을 깨끗이 유지하여 건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쳐왔습니다. 내가 위생을 지키지 않고 아무 때나 먹고 자고 방탕하여 건강을 잃었다고 하면 천하의 불효가 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제일로 바라는 것은 건강입니다. 불효 중의 불효는 부모 앞에 앓아눕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다면 더할수없는 천하의 불효가 됩니다. 건강이 효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라 죄송스럽습니다만, 6․25가 난 1950년 그해 가을에 제 아버지께서 공산당에게 총살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인도하셨는지, 제가 그 총살당하는 모습을 멀리 산에 숨어서 보게 되었습니다. 세 사람을 끌어다가 저녁노을이 비껴드는 산기슭에서 무참히 죽인 것입니다. 총소리가 들리고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들은 그냥 내버려두고 돌아갑디다.
해가 지기를 기다려서 있는 힘을 다하여 달려가보니 두 사람은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는데 제 아버지는 이미 숨을 거두었습디다.
저는 엎드려 땅을 치며 통곡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습니다. 홀연 아버지의 음성이 제 귀에 크게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이놈아, 살아야 효자니라. 엎드려 울지 말고 얼른 자리를 피해 목숨을 보전해라." 그 현장에는 아무도 가까이하지 못합니다. 저들에게 발각되면 목숨을 잃습니다. 저는 살아야 효자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마음으로 듣고 산으로 다시 도망을 가서 몇달을 더 숨어지냈습니다. 9․28수복이 되어 산에서 내려와 아버지의 시신을 모셔다가 장례를 치렀습니다.
여러분, 살아야 효자입니다. 건강해야 효자입니다. 건강하게 생활해서 부모님께 근심을 끼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봉양해야 합니다. 이제 부모님께는 경제능력이 없기에 우리가 모시고 살며 대접해드려야 합니다.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도록 해드리는 것이 효도입니다.
셋째, 양지해야 합니다. 양지(諒知)란 부모님의 뜻을 헤아려서 몸소 실천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알지 않습니까? 부모님이 좋아하는 것, 기뻐하는 것,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효도입니다.
넷째, 공대하는 것입니다. 표정을 늘 부드럽게 가지며 그 인격을 높이 존경해드려야 합니다.
다섯째, 부모님께 욕이 돌아가지 않게 하여야 합니다. 시집가는 딸을 교훈하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시집가서 시부모 공경 잘하고 남편에게 잘하면 친정 부모에게 칭찬이 돌아가고 잘못하면 친정부모에게 욕이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무릇 사회생활에서도 그러합니다. 좋은 일을 하면 부모님에게 좋은 이름을 돌릴 수 있습니다만, 잘못하면 부모님에게 큰 욕이 돌아가게 됩니다.
여섯째, 입신양명해야 합니다. 사회에서 존경받아야 합니다.
귀하고 큰 일을 하여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누구 아들이 참 위대한 일을 했구나" "누구 딸이 참 훌륭하구나"---이렇게 되면 곧 부모님의 이름을 높여드리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효도입니다. 부모 앞에 건강하게 앉아만 있다고 효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지향적으로 효를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훌륭히 해냄으로써 부모님의 이름을 높여드려야 합니다. 잘못이라도 저질러 감옥에 갔다고 해봅시다. 큰 불효입니다. 좋은 이름을 가지고 살게 해드리는 것이 효도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은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25절)"---부모님께 즐거움을 드려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즐겁게 하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먼저, 부모님을 즐거워하여야 합니다. 내가 부모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부모님을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 대하기를 귀찮아해서는 안됩니다.
부모님을 만나고 말씀 듣는 것을 연인을 만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부모님을 즐겁게 하는 길입니다. 또한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물질 이전에 정성과 마음을 부모님께 드려야 합니다. 더불어 지혜와 진리를 사랑하고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본문 24절의 말씀에도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불의하게 사는 자식을 둔 아버지는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아갈 것입니다. 자식이 어리석은 짓을 하고 다니면 어머니의 마음이 아픕니다. 의롭고 지혜로운 자식이 되는 것이 효도입니다.
효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부모를 공경하는 다섯 가지의 요건을 들고 있습니다. 이른바 'five major elements'입니다.
첫째가 'meaningful touch'입니다. 우선은 자주 뵈어야 합니다. 자주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옛날에는 아침저녁으로 문안드리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일 년에 한두 번씩 그것도 무슨 때나 되면 찾아 뵙겠다니 말이나 됩니까? 자주 뵙는 것이 효도입니다. 더욱이 말 그대로 손을 잡아드려야 합니다. 손을 잡아드리고 어루만져드려야 합니다. 뉴욕대학의 돌로레스 크리저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손에는 감촉을 느낄 수 있는 기관이 오백만 개가 있다고 합니다. 또한 서로 손을 마주잡으면 혈액 속에 있는 헤모글로빈의 산소 운반작용을 크게 촉진시킨다는 것입니다. 재생명 능력, 재생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시험삼아 환자들에게 적용해보았습니다. 환자 둘이 있는데, 한 환자의 가족에게는 자주 와서 환자를 어루만지고 쓰다듬어주라고 하고, 다른 한 환자의 가족에게는 만지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겠습니까? 가족들이 사랑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어준 환자는 그렇지 못한 환자보다 배나 빨리 회복되어 퇴원을 하더랍니다. 참으로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스킨십(skinship)으로부터 사랑을 배웁니다. 우리가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은 갓났을 때의 안아주고 만져주고 한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터치가 중요합니다. 어린아이들을 가만히 보십시오. 잠결에도 손을 뻗어 어머니를 만져봅니다. 그래야 안심하고 편안하게 잠을 잡니다. 스킨십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언어요, 사랑의 고백이요, 사랑의 끈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 늙어져서 그 끈이 끊어진다고 해보십시다. 못삽니다. 내가 만질 사람도, 나를 만져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비참합니다. 손자손녀들이 귀해서 어루만지려들면 버릇 나빠진다고 못 만지게 합니다. 버릇은 고쳐졌는지 모르지만 사람은 버려놓았습니다. 인간성을 파괴시킨 것입니다. 효는 이 '미닝풀 터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효도했습니까? 멀찍이 서서 인사나 하고 절 한번 꾸뻑 하고 말았습니까? 가까이 다가가 만져드려야 합니다.
어루만져드리는 것이 효도입니다. 흔히들 일흔두 살과 열두 살은 정신연령으로 같다고 합니다. 노인의 마음은 어린아이와 같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찾아와 진정으로 손을 잡아 만져드릴 때에 생명력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둘째가 'spoken word'입니다.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말을 하여야 합니다. 말을 못하면 살수가 없습니다.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들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자식들을 따라서 미국으로 이민간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말을 못해서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병명이 '말못한 병'입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바빠서 얼굴조차 볼 수 없습니다. 학교 갔다 돌아온 손자손녀들은
"Don't speak Korean again!"---한국말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졸지에 벙어리가 된 것입니다. 기가 막힙니다. 하루종일 입 한번 뻥긋 못하고 앉아 있다가 병이 든 것입니다. 그 할머니가 제게 말합디다. 병실 밖에 서 있는 나무하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오죽 답답하면 그러겠습니까? 부모님을 말 못하는 벙어리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큰 불효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말동무가 있어야 합니다. 말을 잘 들어드립시다. 그보다 큰 효는 없습니다.
셋째가 'expressing high value'입니다. 높은 가치를 인정해드려야 합니다. 무슨 이야기라도 하시면 "참 귀한 말씀입니다"라고 치켜드려야 합니다. 옛날이야기는 말라느니 주책이라느니 해서는 안됩니다. 귀담아 들어보면 실제로 귀한 말씀입니다. 또한 존재의 가치를 인정해드려야 합니다. 일거리를 드려야 합니다. 제가 장모님을 돌아가시기 전에 여러 해 모셔보았습니다만, 부모님께 "이것도 하지 말라" "저것도 하지 말라"하면 안됩니다. 마지막에 "나보고 죽으라는 소리냐"하고 섭섭해합니다. 적당한 일을 부탁하여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해드려야 합니다. 저도 많이 해보았습니다. 물론 나도 할 수 있고 아이들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만, 굳이 어머니께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머니께서 해주셔야 합니다." "암, 내가 해야지."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릅니다. "이 일은 어머니가 하셔야 됩니다. 어머니가 우리 집에 계셔야 됩니다" ----- 이 말을 하루에 세 번만 하면 효자입니다. 삶의 의미를 드려야 합니다. 삶의 가치를 높여드려야 합니다.
넷째가 'Picturing special future'입니다. 미래를 그릴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합니다. 손자손녀를 만나면 그들을 통하여 미래가 보입니다. 또한 예수를 믿도록 해드려야 합니다. 소망의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드려서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는 존재로 모실 때에 으뜸의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이름으로 좋은 일을 합니다. 어머니 이름으로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합니다. 어머니께서 이것을 기뻐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저 영원한 미래를 보실 수 있게 해드려야 합니다.
마지막이 'active commitment'입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은 순종케 하는 자로 하여금 생의 영역이 넓어지게 합니다. 부모님의 뜻이 자녀에게 이어지면서 내 생명이 그리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내 생명이 손자손녀에게로까지 확산되어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안됩니다. 제가 미국 갔을 때의 일입니다. 누가 찾아왔다고 해서 호텔 라운지로 나가서 만났는데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심리학박사라고 자기 소개를 한 그 사람은 우연히 제가 쓴 책을 읽게 되어 그때까지 무려 13권이나 구해서 읽었다는 것입니다. 책을 보니 빨간색 펜으로 줄을 그어가면서까지 읽었습디다.
그 책을 다 가지고 와서 사인을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한참동안 기쁘게 사인해주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나의 뜻이 여기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것이 삶의 보람이요, 건강의 비결입니다. 그런데 내가 무슨 말을 하는데 하나도 통하지 않습니다. 들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감옥입니다. 내가 하는 말을 자식이 듣고, 그 자식이 또 자식에게 전합니다.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더냐? 너도 네 자식에게 이렇게 일러주어라"---뜻을 계속하여 이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역의 확산이요 생명의 충실을 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는 것을 보는 마음처럼 기쁜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 세대가 어지러워졌습니까? 인간성에 문제가 있어서입니다. 인간성의 문제는 곧 가정의 문제입니다. 효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부모님을 기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 기쁨만 찾겠다고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나의 기쁨도 없고 부모님의 마음도 슬프게 만들고 맙니다. 부모님을 슬프게 하면서 나의 기쁨을 찾은 삶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하고 그 속에서 나의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그 기쁨이 연연히 이어질 때에 그 집안에, 그 민족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합니다."네 부모를 공경하라"---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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