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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열쇠(7) (마 16 : 13 - 20)

by 【고동엽】 2022.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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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열쇠(7)  (마 16 : 13 - 20)

신앙생활을 하면서 제가 나름대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 중에 하나는 신앙생활을 너무 피상적으로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라고 할 때 과연 믿음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피상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냥 보통 교회에 다니면 예수를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고 살면 믿음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고 살기 때문에 마땅히 구원을 얻었을 것이라고 안심합니다.

그러나 과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였을 때의 믿음이 그냥 교회에 다니고, 교회에서 봉사 좀하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그냥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교회에 다니고 봉사 좀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렇게 쉽고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자신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마음으로 시인하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로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은 그렇게 쉽고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욕심 많고 죄인인 가장 갖기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그냥 믿음을 쉽게 생각하여 주일날 교회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고 직분을 맡아 교회 봉사 좀 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하면 믿음의 진보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때문에 평생을 다녀도 믿음의 발전이 없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약속하신 모든 구원과 복의 증인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 저는 지난주까지의 설교를 통하여 돈은 천국의 열쇠가 될 수 없고 천국의 열쇠는 오직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고 믿음은 단순히 교회 다니고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과 세상의 주인이 되심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설교가 여기까지 이르게 되면 마땅히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질문이 하나 생겨야만 합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그 질문이 생기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심각하게 생각하셔야만 합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교회는 다니지만 정작 중요한 믿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그냥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자신과 세상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실제로 그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이라고 이야기 할 때 마땅히 여러분들이 가지셔야 할 질문은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과연 하나님을 자신과 세상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고백하며 사는 것인가?’라고 하는 질문 아니겠습니까?

저는 오늘부터 또 몇 주일에 걸쳐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주인으로 고백하며 사는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며 사는 것인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제일 먼저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끈’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이미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요즘 하고 있는 마태복음 16장 13절 이하의 말씀에 대한 설교는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가 시작 된 후 제일 먼저 제가 ‘반석 위에 세운 교회’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던 말씀입니다.

그때 한번으로 하였던 설교를 지금 일곱 번째 하고 있으며 아마 앞으로도 계속하여 열 번도 넘게 하게 될 작정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필요성이 느껴질 때마다 반복할 작정입니다. 저로서는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말씀이니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은 한번 듣고 기억하는 설교라고 가볍게 생각하지 마시고 마음에 새겨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만일 저에게 평생 한 가지만 가지고 설교를 하라고 하신다면 저는 서슴치 않고 요즘 하고 있는 이 ‘천국의 열쇠’라는 설교를 할 것입니다.

여러해 전 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온 후배 목사 한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학위를 마치고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일년 가까이 임지를 찾지 못해 힘들어하던 때였습니다. 그 후배 목사는 저에게 자신의 처지와 심경을 이야기하면서 마치 ‘끈 떨어진 연’과 같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개인적으로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유능한 목사를 어렵게 연단하시는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목사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목사님이 끊어졌다고 생각하는 끈은 본래 끈이 아닙니다. 끈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 끈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절대로 끊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 끈을 붙잡으셔야지요. 엉뚱한 것을 끈이라고 붙잡아서야 되겠습니까?’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를 어려서부터 키워주신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우리 교단의 존경받는 어른 중에 한 분이십니다. 여러모로 저를 도와주시고 저의 길을 열어 주신 분이십니다. 84년 6월 제가 자그마한 교회의 목회를 하고 있을 때 그 목사님이 영락교회에서 설교를 하시다가 혈압 때문에 강단에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는지 모릅니다. 즉시 하나님께 ‘우리 목사님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거기 까지는 좋았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저 10년은 더 봐 주셔야 되는데요....’

그 말이 튀어나온 후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때 제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은 믿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게 믿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 목사님의 끈을 끊겠다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늘 이후로는 하나님으로만 끈 삼겠다고, 하나님만 믿고 목회 하겠다고 약속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이후로 그 약속을 지키려고 나름대로 많이 노력하였습니다. 저는 저희 교단을 좋아합니다. 제가 저희 교단을 좋아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신학이 마음에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단에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방색이 좀 강하다는 것입니다.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지방끼리 모여서 패를 만들고 그것을 통하여 일종의 세를 형성하는데 그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선교회라는 이름으로 호남, 영남, 충청도, 서울 경기도 분들이 모여 있는데 선교를 아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선교를 많이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의도는 그 세를 이용하여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확보하겠다는 불신앙적인 마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92년도에 워커힐 호텔에서 이북출신 목회자들이 모였습니다. 저도 이북 출신 목회자로 분류되는 사람이기에 초청을 받아 자리에 참석했었습니다. 선배 목사님 한분이 ‘우리 삼팔 따라지들은 갈 때가 없다. 호남,영남, 충청도, 서울, 경기도 사람들이 끼리 끼리 뭉쳐서 정치를 하니 우리 이북 출신들은 교회 청빙 하나 받기가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 그러니 우리도 뭉치자’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는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거 옳지 않습니다. 제 힘을 저기에 주지도 않겠고, 그 힘을 받지도 않겠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목회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일체 그 모임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큰 교회를 섬긴다고 교만하다는 오해를 받고 조금 과장하면 왕따도 당했지만 지금까지 참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와 같은 식의 모임에는 참여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목회를 하면 하나님이 섭섭해 하시고 하나님이 섭섭해 하시면 될 일도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안교회를 사임하였을 때, 교인들 사이에는 제가 큰 물주를 잡아서 교회를 떠난다는 류머가 퍼졌습니다. 100억원을 받았다는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있었습니다. 아마 제가 숭의여자대학에서 교회를 시작하고 숭의여자대학의 이사장께서 적극 도와준다는 것이 그렇게 오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동안교회 인터넷 게시판에 제가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제목은 ‘큰 물주와 조물주’였습니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습니다. ‘제가 큰 물주를 잡아 교회를 떠났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제가 큰 물주를 잡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물주는 이번에 처음 붙잡은 물주가 아니라 본래부터 제가 붙잡고 있던 물주입니다. 그 물주 이름은 큰 물주가 아니라 조물주입니다’

제가 사람을 의지하고 교회를 시작하였다면 그 교회는 모래위에 세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교회를 시작하였다면 그 교회는 반듯이 반석위에 세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잠시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고 바람이 불수도 있지만 결국 무너지지 않는 반석 위에 세운 교회가 될 것이라고 믿어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83년도 아주 위험한 차 사고를 당하였었습니다. 1월 달에 높은 다리에서 미끌어져서 10m도 넘는 강바닥으로 추락할 뻔한 사고였습니다. 저는 그날 저녁 ‘내가 오늘 백이면 아흔 아홉 번 죽었을 뻔 하였는데 만일 오늘 내가 죽었었다면 어떠했을까?’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아직 어렸던 세 아이들이 생각났습니다. ‘나 하나 바라보고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 내가 죽으면 어떻게 사실까?’ ‘이제 30대 초반의 우리 아내 남편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아직 초등학교도 가지 못한 우리 아이들 아버지 없이 어떻게 자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생각으로 제게 말씀을 걸어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죽어야 문제지 네가 죽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자식 죽은 부모는 다 못 산다든? 그렇지 않느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그 엄청난 슬픔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니라. 남편 없는 여자는 다 못 산다든? 그것도 그렇지 않느니라. 너희 아내 나를 잘 믿는 사람이니 너 없어도, 조금 힘들고 외롭기는 하겠지만 훌륭하게 자식 잘 키우며 살 것이니라’ ‘아비 없는 아이들은 다 잘못 된다든? 그렇지 않느니라. 너희 아이들이 나 하나님만 잘 믿고 자란다면 될 수 있는 거 다 될 수 있느니라’

저는 조금도 그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아멘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제 마음에 떠오르는 말씀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로마서 1장 17절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오직 의인은 남편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직 의인은 아비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직 의인은 자식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내를 사랑합니다. 아내도 저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 아내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제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사람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믿고 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아이들도 저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 아이들 없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습니다. 제 아이들도 저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로 자식으로 사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모와 자식을 하나님처럼 의지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내를 하나님처럼 의지하고 사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부모와 자식을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사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닙니다. 남편과 아내는 하나님이 될 수 없고 부모와 자식도 서로에게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고 부모와 자식이 서로 사랑한다고 하여서 저들을 하나님처럼 믿고 살게 된다면 저들은 결국 무너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실패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 누구도 우리 인생의 끈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붙잡고 의지할 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라는 것은 사람들과 상종하지 말고 독불장군처럼 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서로 돕고 협력하며 살아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한계가 분명하여 그 의지하는 마음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같거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보다 더 강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씀 중에 시편 11편이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 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데서 쏘려 하는도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약인과 강폭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 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

다윗이 아주 어렵고 위험한 일을 당하였습니다. 다윗은 당연히 하나님께 피하였습니다. 그러나 믿음 없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음으로 다윗이 피하지 않고 그대로 원수의 화살 앞에 노출 된 줄 알았습니다. 때문에 다윗에게 왜 피하지 않고 있느냐고, 새처럼 네 산으로 도망하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이 어찜이냐 되묻습니다. 저는 이 시편을 읽으면서 하나님은 마치 방탄유리 방패와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어떤 것도 뚫을 수 없는 강력한 방탄이지만 투명하여 마치 그대로 자신이 적의 화살 앞에서 노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유리 방패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대로 있으면 그는 살 것이지만 믿지 못하여 다른 곳으로 도망하거나 피하면 그는 결국 죽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끈을 의지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방패와 같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은 보이지 않는 끈을 붙잡는 것이요, 보이지 않는 방패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끈과 방패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이 시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의 믿음을 한번 되돌아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검토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같이, 아니 하나님 보다 더 신뢰하고 의지하고 있는 것이 없는가를 생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천국의 열쇠를 욕심내신다면, 이 땅에서도 천국을 열고 닫으며, 이 땅에서부터 천국의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 외의 모든 끈을 끊으실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84년 6월 하나님으로만 끈을 삼겠다고 기도한 직후 제 마음에 떠오르는 찬송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338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였습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그 찬송을 마음으로 부르며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손을 보세요. 사람을 믿고 신뢰하던 것을 끊었습니다. 이제 제 손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 손을 보세요. 임 목사님을 붙잡았던 손을 놓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저를 받아 주시지 않으시고 박대하신다면 저는 갈 때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하나님 대신 붙잡고 있는 끈이 없으십니까? 그것을 놓으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것이 없으십니까? 힘 있고 권력이 있는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며 살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돈과 재산을 하나님 보다 더 신뢰하며 살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하나님의 법 보다는 세상의 꾀를 더 의지하며 살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학생 때 읽었던 헬만 헷세의 데미안이라는 소설에 이런 글이 있었던 생각이 납니다. ‘새는 알을 까고 나아온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고 하는 사람은 다른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바라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새로운 세계를 우리는 천국이라 부릅니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고 하는 사람은 다른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합니다. 다른 한 세계라고 하는 알을 깨지 않고는 새가 될 수 없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날 수 없습니다.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끈을 붙잡으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가 잡고 있는 끈이 아닌 끈을 놓아야만 합니다. 그것을 놓기 전에 그는 절대로 하나님의 끈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끈을 붙잡지 못하는 사람은 평생 교회를 다녀도 천국의 열쇠를 얻을 수 없습니다. 천국의 삶을 열수 없습니다. 살 수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으로 자신과 세상의 주인을 삼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신과 세상의 주인으로 삼고 산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만 끈을 삼고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 끈을 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붙잡고 있는, 그리고 지금까지 나도 붙잡고 살아왔던 끈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 끈을 스스로 끊고 하나님의 끈만을 붙잡는 믿음으로 천국의 열쇠를 얻어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 구원의 삶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출처/김동호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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