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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 3,276편◑/부활 설교 180편

예수 다시 살아나셨느니라! (눅 24:1-10)

by 【고동엽】 2022. 4. 4.
 
부활 목차 돌아가기
 

예수 다시 살아나셨느니라! (눅 24:1-10)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요, 생명의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앙의 믿음의 기초가 없는 것입니다.
■먼저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의 발자취를 더듬어 봅시다.
목요일: 제자들의 손과 발을 씻기시는 세족식을 마치시고, 성만찬예식을 거행, 주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주며 '나를 기념하라'하시고, 그 밤에 수석 제자 세 사람을 데리고 감람산 게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땀방울이 변하여 피 방울 되도록 힘써 철야기도를 하시던 중 가롯 유다의 밀고로 예수님이 체포되십니다.
금요일: 새벽 1시경에 제사장 안나스가 그 당시 대제사장이던 가야바에게 끌고 갑니다. 그 때 시간이 새벽 2-3시경으로 봅니다. 또한 그 밤에 유대인의 산헤드린 공회원 70명을 소집, 그 때 시간을 4-5시경으로 봅니다.
마27:1절에 보면, 모든 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함께 모여 예수를 죽이기로 결의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유대나라를 지배하는 빌라도 총독에게 인도되어 재판을 요청한 것이 마27:11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눅23:6절이하에 보면 그 당시 빌라도 총독은 이 자리를 피하기 위하여 헤롯 임금에게 넘겨줍니다. 헤롯은 예수를 비웃고, 다시 빌라도에게 재판권을 양보합니다.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어떤 죄목도 찾지 못했으나 군중들의 동요가 일어 날까봐 자기 부인의 권면도 무시하고 양심의 가책을 부정하면서 재판 관습에 따라 물에 손을 닦으면서 '이 무죄한 피를 나는 갚을 수 없다. 너희가 책임져라'며 유대군중들 앞에서 예수 십자가형을 선언합니다.
그 후 로마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가서 붉은 수의를 입히고 가시면류관을 씌우고 채찍을 가하면서 십자가를 지워 끌고 골고다 길을 향하는데 그 길을 가르쳐서 고난의 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6시간 동안 고난을 당하시다가 오후 3시경 운명하시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덤을 돌로 막고 인봉하여 로마 병정들로 파수꾼을 시켜 지키게 하였습니다. 혹시 누가 시체를 훔쳐가지 않을까 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 3일째 되던 안식 후 첫 날 새벽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면서 하늘의 천사가 내려와 무덤의 돌을 굴려낼 때에 파수꾼들은 무서워 떨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파수꾼들이 지키고 있던 그 무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빈 무덤이 되었습니다.
그 때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무덤으로 갔다가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천사를 만났습니다. 천사는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셔서 무덤에 계시지 않는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들은 빈 무덤을 확인했고, 부활의 소식을 처음 들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입니다. 다른 종교에는 부활절이 없습니다. 오직 기독교에만 부활절이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보면 오히려 성탄절보다 부활절이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스위스의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는 '부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선언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인간으로서 살다가 인간으로 죽지만, 예수님은 인간의 형상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죽음으로 속죄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릅니다. 요11:25-26절에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부활'이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가 자랑하는 최대의 진리입니다. 이 진리가 너무 존귀하기 때문에 가짜 부활도 생겨났습니다. 이 땅위의 진품은 언제나 가짜가 있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이단들이 가짜 부활론을 주장하면서 우리를 미혹하고 있습니다.
'존 스미스' 라는 사람은 미국에서 악명 높은 사기꾼이고 건달입니다. 한번은 보스톤에서 워싱톤디시로 가는 기차를 탔는데 무임승차를 했습니다. 그러다 검표원에게 발각이 됐습니다. 그 때 스미스는 "나는 뉴욕 타임즈의 기자요" 하고 거짓으로 자기 신분을 둘러댔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열차에는 뉴욕 타임즈의 편집국장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검표원이 "아, 그래요. 그러면 이리 와 보시오" 하고 그 사람을 편집국장께 데려갔습니다. 가니까 그 사람이 "어, 자네가 웬일인가? 출장 가는 길인가?" 하고 반갑게 맞이합니다. 검표원이 할 말이 없어져버렸습니다. 검표원이 가고 난 다음 스미스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어째서 저에게 이렇게 호의를 베푸십니까?" 그 때 그 사람이 빙그레 웃으면서 "나도 가짜요" 라고 했답니다.
세상에는 가짜가 많지만 기독교의 부활도 가짜를 만들어 사람을 미혹하는 세상입니다. 세일교회 교주 이뢰자는 죽어도 살아난다고 유언을 하고 죽었습니다. 그를 추종하던 교인들이 부활할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교인들이 패가 갈렸습니다. 살아나지 않으니까 장례를 치르자, 아니다 기어코 살아날 것이다 라는 의견이 서로 일치하지 않고 분쟁하다 결국은 세일교가 깨어졌습니다. 아직도 그루터기는 있지만 세력이 많이 약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뢰자의 부활론은 아주 유명한 이단교파의 부활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부활 사건에도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째는 기절설입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니라 매를 맞고 기절을 하였다가 깨어나서 도망을 하였지 실제로 죽었다가 살아난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도적설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홈쳐다가 감추어 놓고 보라 빈 무덤이다 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환상설입니다. 제자들과 여인들이 예수님을 사모하다가 부활하신 주님의 환상을 본 것이다 라고 주장을 합니다.
네번째는 첨가설입니다. 이 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내용을 첨가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부활하지 않았는데 부활하신 것처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 나셨다는 말을 첨가해서 부활하신 것처럼 꾸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분명히 부활하셨습니다. 구약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시16:10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섞지 않게 하실 것이라" 고전15:3-4절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였습니다. '성경대로' 란 말은 구약의 예언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아침에 먼저 활동한 사람은 여자들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부활의 아침입니다. 그런데 그 아침 그 무덤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무거운 돌이 무덤에서 옮겨져 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군병들이 그 돌문에서 무덤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옮겨져 있습니다. 천사가 그 돌을 굴려 내었다고 했습니다.
신기한 무덤을 볼 수 있습니다. 시체가 없습니다. 놀랍고도 놀라운 일입니다. 빈 무덤입니다. 빈 무덤은 기독교의 최대 신비입니다.
눅24장에 보면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뵙고 나서 발걸음을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거기 모여있던 제자들에게 외친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께서 과연 살아나셨습니다"라고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흥분을 감출 수 없어서 외치는 엄청난 선포였습니다.
그런데 오늘까지 이 말은 동방 정교회의 인사말이 되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한 쪽에서 "주께서 다시 사셨습니다"라고 하면 다른 쪽에서는 "정말로 다시 사셨습니다"라고 화답합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개혁사역이 장애에 부딪혀 어렵게 되자 크게 낙심하여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서 끙끙 앓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루터의 아내가 상복을 입고 엉엉 우는 것이었습니다. 낙심하여 누워있던 루터였지만 깜짝 놀라서 아내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여보, 누가 죽었오?" 그랬더니 그의 아내가 "예, 하나님께서 돌아 가셨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루터는 버럭 성을 내면서 "아니 하나님이 돌아가시다니 그런 망령된 말이 어디 있단 말이오?"하고 되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루터의 아내가 정색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돌아가시지 않고 살아 계신다면 어떻게 당신이 그렇게 좌절하고 절망할 수가 있단 말이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루터는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렇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 그러면서 다시 일어나 종교 개혁의 사역을 진행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죽음을 이기시고 무덤을 열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절을 지킵니다. 우리 주님을 부활시키신 하나님을 믿고 또 부활의 주님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어떤 현실, 그것이 비록 죽음과 같고 무덤과 같은 현실이라고 할지라도 루터처럼 담대하게 일어나서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주님은 왜 갈릴리로 가셨습니까?
갈릴리는 우리 주님께서 맨 처음 그 사역을 시작하신 곳입니다. 우리 주님은 왕의 도성이있는 예루살렘에서가 아니라 멸시받던 지역 갈릴리에서 그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우리 주님이 곧바로 찾아가신 곳이 또한 갈릴리였습니다.
예수께서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시는 이적을 행하신 후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했습니다. 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열열이 환영하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번도 이런 저들의 환영 때문에 그 목표가 흔들린 일이 없었습니다.
또한 갈릴리는 당시로서는 멸시받고 천대받는 땅이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고 하는 말이 바로 그것을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 사람들은 자신들이 갈릴리 출신이라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그 멸시의 땅 갈릴리를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바로 그 갈릴리가 삶의 터전이었고 사역의 현장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가신 땅이 바로 그 갈릴리였습니다.
그렇다면 부활하신 주님을 따르는 오늘 우리들도 갈릴리로 가야 합니다. 갈릴리를 사랑해야 합니다. 갈릴리에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 갈릴리가 어디입니까? 어둠이 있고, 버려짐이 있고, 소외된 것이고, 예수 밖에 있는 사림들이 다 갈릴리입니다.
"거기서 (부활하신 주님을) 뵈오리라"
마28:16절에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였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명하신 그곳에 가서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뵈올 수 있었습니다.

 

■빈 무덤이 주는 진리는 무엇인가?
천사가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여자들은 평소에 예수님께서 늘 이렇게 하시던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그리고 달려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였다고 증거했습니다.

 

■빈 무덤은 우리에게 몇 가지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①빈 무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만일 제자들이 숨겨 놓고 부활하였다고 거짓말하였다면 그 거짓말을 위하여 제자들이 순교하였겠습니까? 진리를 위하여 죽을 수는 있어도 거짓을 위하여 죽은 이는 없습니다. 잠시동안은 속일 수 있어도 2,000년 동안 속일 수는 없습니다. 몇 명을 속일 수는 있어도 전체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남은 속일 수가 있어도 자기는 속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은 예수님의 부활이 확실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석가모니는 인도 능수 해안에 묻혀 있습니다. 마호멧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에 묻혀 있습니다. 공자는 중국의 장평양에 묻혀 있습니다. 그들은 무덤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거기에서 썩었고 흙이 되었습니다.
중국 북경에 가면 천안문 광장 한 쪽에 모 택동 미이라는 보려고 길게 줄 서 있는 장면을 볼 수 있고, 구 쏘련 모스코바 붉은 광장 한 쪽에는 레닌의 미이라 시신을 보려고 장사진을 이루고 있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부활을 선물로 주신 우리의 생명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한 때 석가모니의 뼈가 발견되었다고 인도를 위시한 불교국에서는 한동안 떠들썩 했었습니다. 그 때 석가모니의 뼈들은 잘 진열되어 수백 만 인도사람들의 경의속에 시가행진을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뼈가 지나갈 때 땅에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이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한 선교사가 그의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만약 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뼈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었다면 기독교는 산산조작이 나고 말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의 빈 무덤을 자랑합니다. 최고의 자랑이요 당당한 자랑입니다.
②빈 무덤(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확인한 사건입니다.
롬1:4절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여기서 인정되셨다는 의미는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부활하심으로 재확인되었다는 의미입니다.

③빈 무덤(부활)은 하나님의 최후 승리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군중들이 이기는 것 같았고, 로마가 승리하는 것 같았고, 가룟 유다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고, 마귀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모든 질서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군중은 놀랐습니다. 하루에 5천명씩 예수님을 믿으며 예수님에게로 돌아 왔습니다. 가룟유다는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마귀는 사망 권세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예수 이름 앞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세상 싸움은 한 편이 다른 한 편을 죽이면 죽인 편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죽은 편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십자가에 죽은 예수가 3일만에 부활하여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이기고 승리했습니다.
사단의 권세 중 가장 큰 권세는 사망의 권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어떤 인간도 사단의 이 권세를 깨뜨릴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죽음의 길로, 죽음의 권세 앞에서 다 무릎꿇고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사망의 권세를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깨뜨리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이미 창3:15에서 예언되어졌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전15:55-57절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우리 모두는 승리잡니다. 어디에서! 죽음에서 사망권세에서 이기고 승리한 자들입니다.
▶어떤 공원묘지에 한 아기의 묘비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아이야, 조금만 기다려라. 주님께서 곧 오신다"
비록 이 땅에서 몇 년 밖에 못 살다 죽은 어린 생명이지만 조그만 기다리면 예수님이 오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이라는 소망의 묘비였습니다. 일시적으로는 힘이 강한 사람이 이기는 것 같고, 돈 많은 사람이 부러운 것 같고, 권세 쥔 사람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예수 밖에 있다면 다 헛것입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질 것입니다.
바울은 고전15:20-24절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 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④빈 무덤은 보상을 의미합니다.
빈 무덤이 없다면 예수님은 부활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으셨으면 우리도 부활하지 못 합니다. 부활이 없으면 믿음도 헛것이고, 우리가 바랄 것은 이 세상뿐입니다. 부활이 없으니 이 세상만 잘 살면 끝입니다. 그러나 부활이 있기에 우리는 저 세상에서 살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저 세상에 가서 보상받을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바울은 고전15:16-20절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부활하신 주님은 40일 동안 지상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11번이나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축복하셨습니다. 그 축복하신 말씀이 여러 곳에 나옵니다.
①눅24:25절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는 축복기도입니다.
'주안에서 샬롬, 주안에서 평강이 있을 지어다'. 이 인사가 유대의 전통적인 인사입니다. 우리나라의 '안녕하십니까?' 라는 말과 샬롬의 의미는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 제일 먼저 하신 축복의 말씀이 '샬롬'입니다. 인생살이 뭐니뭐니해도 평안이 제일 축복입니다. /믿/
요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이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②책망도 하셨습니다.
막16:14절에서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꾸짖으셨다고 하셨습니다. 부활절에 이 점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부활절 예배를 드리면서 믿음이 있는 자처럼 혹시 가식을 하지는 않는가? 부활하신 주님 앞에 책망을 받는 그런 모습이 아닌가 상상해 보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그 자리는 얼마나 큰 감동의 자리이겠습니까? 얼마나 큰 환희의 자리이겠습니까? 그런 주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 중에 제자들이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③눅24:20절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해주셨다"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알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등지고 있는 제자들을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깨닫는 것이 은혜이고 복입니다.
④임마누엘 약속을 주셨습니다.
마28:20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약속이 소망의 근거입니다. 용기의 근거입니다. 이 약속을 붙잡고 성도들은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절은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하는 절기입니다.
⑤부탁의 말씀도 있습니다. 가서 제자삼으라! 전도입니다!
마28:19절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마지막 부탁으로 가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행1:8절에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을 것이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고 가서 제자를 삼아 내 증인이 되라는 것이 주님의 부탁이었습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은?
①아무렇게나 살지 않습니다. 계20장에 생명록에 기록된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며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②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③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의 세 가지 축복이 있습니다(벧전1:3-5)

①거듭나게 하시고, 산 소망이 있게 하십니다(벧전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통해서 우리가 거듭나게 되고, 그 거듭남을 통해 살아 있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소망은 소망 중의 소망이요 산 소망이 됩니다. 산 소망은 이 땅에서 승리하도록 도우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인줄 믿습니다. 우리는 이 소망 때문에 활동을 하고 능력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도 성취됩니다. 고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고, 항상 마음이 기쁘고 감사가 넘쳐나게 됩니다.
시146:5절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렘29:11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②하늘의 기업을 잇게 하십니다(벧전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기업'이란 법률적으로는 부모나 조상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을 말합니다. 신학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을 따라 순종하는 백성에게 주시는 선물이나 재산을 말합니다.
구약에서의 '기업'은 이스라엘 백성이 받았던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하늘나라가 곧 기업입니다. 즉 구원과 영생과 약속, 축복이 기업입니다.
세상의 기업은 시간이 지나면 썩습니다. 더럽혀집니다. 쇠합니다. 무너집니다. 우리는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옛 페르샤 대국 이락크가 힘없이 무너지는 것을 안방에서 TV로 보았습니다. 우리 한국에도 한때 흥왕했던 많은 재벌들, 기업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망해서 건물도 없어지고 회사 이름마저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불과 10년, 20년, 30년이면 이렇게 사라지고 없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업은 이 세상의 기업과 다릅니다. 이 땅에서 시작되고 저 하늘나라까지 계속되는 영원한 기업이요,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기업입니다. 그래서 완전하고
온전한 기업, 영생하는 기업인 것입니다.
역대상28:8절 "이제 너희는 온 이스라엘 곧 여호와의 회중의 보는 데와 우리 하나님의 들으시는 데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구하여 지키기로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이 아름다운 땅을 누리고 너희 후손에게 끼쳐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이 땅에서 누리는 기업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약2:5절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택하십니다.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부요의 축복을 주시고 더 나아가서 하늘나라까지도 상속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기업이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애쓰고 수고하여 돈을 벌어서 아름답고 큰집을 장만합니다.
그러나 돈을 벌어서 이렇게 훌륭한 저택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 집은 진정한 자기 집이 아닙니다. 그렇게 애써 지은 집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두고 가야 합니다. 이 세상 집은 영원한 내 집이 아닙니다. 나이를 먹고 언젠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다 두고 가야 합니다. 돈도, 재물도, 보석도, 집도, 땅도, 문서도 다 놓고 가야 합니다. 소유는 한순간이고,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재물을 이 땅에 쌓지 말고 하늘나라에 쌓으면, 하늘에서 보화가 넘치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천국가는 티켓을 받은 잡니다. 더 열심히 하나님께 충성하시기를 소원합니다.
■한평생 교회에서 목회를 하셨던 한 노목사님이 연세가 많이 드셔서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준비한 테이프를 내놓으시며 그 테이프를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에게 들려주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그 목사님이 세상을 떠나셔서 장례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을 생각하며 모인 많은 성도들은 그 테이프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기대하며 귀를 기울였습니다.
"김 장로님, 그 동안 참 고마웠습니다. 내가 목회를 잘 하도록 항상 옆에서 도와주셔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김 장로님, 천국에서 만납시다." 그래서 김 장로님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뒤이어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김 장로님, 설교시간에 하품 좀 하지 마세요."
"최 권사님, 그동안 고맙습니다. 나를 위해서 불철주야 기도하신 그 기도에 내가 얼마나 희망과 용기를 얻었는지 모릅니다. 권사님, 내가 먼저 가서 기다리겠으니, 권사님도 천국에서 만납시다. 그런데 권사님, 졸지 좀 마십시오."
일찍 가고 늦게 가는 것뿐이지, 우리는 다 천국에 갑니다. 이 세상이 종점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있으면, 저 세상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떠나야 할 이 세상에 미련을 가지고 욕심과 탐욕을 부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영원한 기업은 하늘나라, 천국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③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는다(벧전1: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신32:10절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건강도, 재물도, 가정도, 사업장도, 명예도, 자식들도, 믿음까지도 지켜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 눈동자처럼 지키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처럼 바로 알고, 믿고, 행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바울은 고전15장 결론부분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2004년 4월 11일 부활주일 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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