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강》 성령을 증거 하는 베드로! (행 2:14-21)
오순절 날 성령을 사모하며 기도하던 120문 도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하늘로부터 급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났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들이 사람들 머리 위에 임하는 것을 그들이 보게 된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신 것을 그들이 귀로 들었고 눈으로 보았습니다. 성령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만져 주셨습니다. 접촉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그들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운행하셨고 통치하셨습니다. 그들의 인격 속에 육체 속에 그들의 생각 속에 정신 속에 그들의 삶 속에 이 성령은 충만하게 채워졌습니다. /할/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오순절 성령강림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1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성령강림은 오순절에 이루어졌습니다. 오순절은 유월절 이후 제50일째 되는 날입니다. 유월절이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의 잔을 의미한다면 오순절은 성령강림으로 교회의 시대가 열리게 된 날입니다.
오순절 날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후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부활하시고 40일 만에 승천하시고 10일 후 50일이 되는 날 성령강림이 이루어졌습니다.
왜 오순절에 성령님이 임하셨습니까? 그 날은 하나님의 구속, 경륜의 뜻 가운데서 계획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르매'라는 표현은 계획적인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미 구약 요엘2:25-32에서 이날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주셨을까요?
▶성령께서 강림하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①주님과 항상 함께 하시기 위함입니다. 요14:16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여기서 '보혜사'란 말은 '대언자' 또는 '변호사'란 의미로 '곁에 + 부르심'의 합성어로서 주의 영이 우리를 도와주시고 함께 하심을 의미합니다.
마28:20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약속의 성취가 바로 성령강림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②우리를 가르치는 주의 교훈을 생각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요14: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③주님을 증거 하기 위함입니다. 요15:26절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행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④우리를 진리 가운데 인도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요16:13절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여기 '인도'는 길을 안내하는 자로 주의 성령은 우리를 예수께로 인도하는 생명의 길잡이이시며 우리의 인생행로의 인도자가 되십니다. /믿/
당시 오순절의 역사가 나타날 때, 예루살렘에는 무려 15나라에서 몰려든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 '디아스포라'들입니다. 이 15나라는 당시 지중해 근처에 있는 나라들로서 전 세계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당시 군중들의 몇 가지 특징은?
①많은 유대인들 중에는 경건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외국에서 나그네로 살아도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신앙과 관습을 지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습니다.
②천박한 유대인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방언을 듣고 조롱하면서 술주정뱅이로 야유했습니다.
③오만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보잘 것 없고, 교양 없는 갈릴리 사람들의 입에서 뭐 신통한 것이 있겠느냐고 무시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천박한 유대인들과 교만한 유대인들을 향하여 베드로가 설교를 하는 장면입니다. ◀제목소개!▶
베드로의 설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⑴제자들의 방언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님을 말했고, ⑵16-21절은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이루어진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욜2:28-32절의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오순절마다 읽는 성경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성구인 욜2:28:32절을 본문으로 성령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14절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베드로가 하는 얘기는 간단합니다. 그것을 의역하자면 "여러분이 우리를 보고 술에 취했다고 하지만 우리는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이 몇 시입니까? 겨우 3시(우리 시간으로 오전 9시) 밖에 안되었는데 우리가 어떻게 술에 취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제가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하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무식한 어부 출신입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가 주의 제자가 되어 예수를 열심히 따랐으나 주님이 잡히시던 날에 어린 계집종 앞에서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성령이 임하니까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큰 소리로 아주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베드로의 설교는 힘차게 터져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설교는 성령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베드로의 설교는 정치나 경제, 문학이나 어떤 철학을 말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요즘 많은 설교가 세상 이야기로 가득 합니다. 베드로는 그 날 성령을 받은 사실을 담대히 전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유대인들은 팔레스틴에 사는 유대인과 디아스포라 유대인 그리고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을 포함해서 부른 칭호입니다. 베드로가 이 표현을 덧붙인 것은 자기의 설교 대상이 유대인들임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이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할 것이니" 이 일이란 제자들이 성령을 받아 방언을 한 사건을 말합니다.
▶사도들이 방언으로 설교했을 때, 모인 회 중의 반응이 몇 가지로 나타납니다. 6절에 '소동하고', 7절에 '놀라고', '기이히 여기고', 8절에 '어찜이뇨?'라고 탄복했고, 12절에서는 '당황하며 이 어찌된 일이냐?'고 했고, 13절에 '조롱하며 가로되' 한마디로 유대인들은 사도들의 방언을 듣고 놀라고 당황하며 조롱의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11사도와 함께 일어나 큰 소리로 외칩니다. ①"이 일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②"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당당하게 외쳤습니다.
여기 '알게 하리니'란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하게 증거 하리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베드로가 성령 충만함을 받은 증거가 나타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요16:13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가장 대표적인 증거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또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성경과 다른 말을 하거든 성령 받은 것이 아니라 악령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분명히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베드로의 설교의 강조 점은 무엇입니까?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입니다. 마땅히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특히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를 기울여야 합니다. 베드로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귀를 기울이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큰 은혜는 주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영음'이라고 합니다. 세상엔 여러 가지 소리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은 교회 안에서만이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계23장에서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을 향하여 '귀를 기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들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무려 7번이나 했습니다. (계2:7, 11, 17, 29, 3:6, 13, 22 참조)
여러분, 귀 있는 자가 누구입니까? 영음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성령이 그 심령에 거하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이 귀 있는 자들입니다.
바울은 살전2:13절에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향하여 심중하게 권면하기를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세가 바로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이 부분이 약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할/ 베드로는 힘차게 외쳤습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절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는 먼저 유대인들이 오해한 부분들을 풀어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13절에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고 한 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 '새 술에 취했다'는 말은 그들이 제자들을 조롱하여 한 말입니다. 성경은 술과 성령을 대조하여 말씀한 곳이 있습니다. 엡5:18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술에 취했다고 조롱을 받은 여러 신앙 인이 있습니다.
①삼상1:12절 이하에 보면, 한나가 기도하는 중에 새 술에 취하였다는 오해를 받았습니다. 당시 엘리 제사장이 은혜가 떨어졌습니다. 한나가 깊이 기도하는 중에 엘리 제사장이 볼 때는 술 취한 여인같이 보인 것입니다.
②렘23:9절 이하에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취해 있을 때, 그를 보고 술에 취한 사람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당시 주님의 사도들은 신령한 성령의 은사를 받고 있었는데 유대인들은 사도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했습니다. 하나님께 경건히 그리고 사모하는 일념으로 기도하고 있었는데 유대인들은 사도들을 매수하기를 술판이나 벌여놓고 쾌락 놀음이라 하고 있었다고 몰아 세웠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무지 때문에 크게 상황을 오판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세상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새 술에 취한 자들입니다.
오늘도 세상 사람들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향락의 술, 허욕의 술, 온갖 비리의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술 취한 사람은 정신을 잃고 방향을 잃어버리고 흐느적거립니다.
창9:20절 이하에 보면, 옛날 의인이라고 칭함을 받았던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고 자다가 아들들에게 염치없는 수치를 당했습니다. 술은 노아가 먹고 괜히 그 사건을 통하여 함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창9:24-25절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성도여러분! 세상 속에 취하여 인생을 잃어버리고 더러운 죄악 속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권면을 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본문에서 자신들이 세상 술에 취한 것이 아니고 성령의 취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제 3시니" 유대인들은 낮의 시간을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열둘로 나누어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여름의 시간과 겨울의 시간 구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유대인들의 시간을 현재의 우리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6을 더하면 됩니다.
그래서 3시는 우리시간으로 오전 9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아침 예배시간은 3시인데 우리가 술에 취한 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낮에는 술을 먹지 않는 관습을 들어 우리는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살전5:7절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지금은 술 마실 시간이 아니므로 이들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잇습니다. 다른 사람이 오해를 하고 있으면 그 오해한 것을 풀어 이해시켜 주어야 합니다.
1세기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안식일이나 절기 때에는 그들 사상으로 4시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는 것이 하나의 관습으로 되었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낮 12시까지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는 경우가 있다고 말합니다. 지금 그들은 절기 예배로 모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술에 취하지 않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16-17절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사도 베드로는 자신들의 엄청난 변화에 대하여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고백하기를, "여러분! 저희가 취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와 같이 저희에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충만히 임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기쁨으로 복음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삶의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물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물질로 사람이 변화될 수 있다면 부자는 다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를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교육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열심히 가르치면 어느 정도 이성적인 인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으로 사람의 근본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만일 많이 배워서 사람이 행복해진다면, 대학을 졸업한 사람보다는 대학원을 나온 사람이 더 행복해야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또한 많이 배워서 사람이 사람다워질 수 있다면, 유학을 다녀오고 석 박사가 된 사람들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고 범죄에 이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금 베드로는 욜2:28-32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오순절에 나타난 역사는 바로 예언의 성취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사건은 베드로 자신이 주장한 사건도, 제자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약성경의 요엘서 예언의 성취요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아멘!/,
요엘 선지자는 주전 870전의 선지자로서 요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는 900년 전이됩니다. 이미 900년 전에 요엘 선지가가 예언한 것이 17-21절까지 나옵니다.
17절의 '말세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요엘서에서는 '그 후에'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 후란'말은 '약속하신 메시야가 오신 후에'란 말로 '말세'란 앞으로 올 미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성경은 말세를 복수로 쓸 때가 있고, 단수로 쓸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세는 복수로 쓰였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말세는 예수님의 초림 시부터 재림 시까지 복음시대를 뜻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이 말세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날도 말세입니다만 말세란 상당히 긴 기간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 다음 단수는 요1서 2:18절에 나오는 '마지막 때' 입니다. 주님의 재림의 때를 뜻하며 흔히 말세지 말이란 말로 표현됩니다.
우리가 쉽게 표현하면 밤도 초저녁이 있고, 깊은 밤중이 있고, 먼동이 트는 새벽녘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주님 재림의 때를 비교해 본다면 말세기간, 즉 먼동이 트는 새벽녘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성령강림이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하나님이 가라사대"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성을 밝히고 있습니다. 약속의 내용은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라"입니다. 여기 모든 육체는 성령을 부어주시는 범위를 말합니다. 모든 육체는 한 마디로 말해서 모든 인류를 의미합니다. 성에 구별 없이, 환경과 혈통이나 계급이나 인종에 관계없이 주신다는 말입니다.
요엘서에는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준다'고 했습니다. '만민'은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성령은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면 누구에게든 임하십니다. 아무리 영리한 개라고 해도 육체가 없기 때문에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주십니까? "부어 주리니" 세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①값없이 무상으로 줍니다. ②풍성하게 줍니다. ③끊임없이 주신다는 말입니다.
▶다음에는 요엘서의 예언의 내용입니다.
①"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예언은 ⑴미래의 사건을 예고한다는 뜻입니다. ⑵'알아맞힌다.'는 뜻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이 완성되기 이전과 이후의 예언의 범위의 성격이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이 완성된 오늘날에 와서는 새로운 계시 성을 가진 예언은 없으며 본문에서 말하는 예언은 이미 예언하신 말씀을 바로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예언한다고 해서 앞날을 말해 주는 자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모든 성경은 다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예언할 것이요'란 말은 성령 충만을 받으면 주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증거 할 능력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벧후1:20절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성경을 사사로이 풀지 말라는 말은 제 마음대로 풀지 말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조명, 인도 따라 풀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②"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였습니다. 그 중 하나가 환상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을 선견자(삼상9:9,11,18,19)로 불렀습니다. '환상'이라는 말을 영어로 번역하면 '비전'(vision)이라는 말입니다.
환상은 위대한 일을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따라서 환상이 없는 민족은 망합니다. 개인도 환상이 없이 큰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잘못된 환상 때문에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폴레옹은 전 세계를 정복해서 통치하겠다는 잘못된 환상 때문에 수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조명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때문에 항상 환상을 좇아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③"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는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꿈을 통해 역사 했습니다. 창20:3절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 아비멜렉은 꿈을 통해 사라가 아브라함의 아내인 것을 알았습니다.
또 하나님은 요셉, 바로, 다니엘 등에게 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셨습니다. 심지어 신약성경에서는 요셉이 꿈에 경고를 받았고(마2:12), 빌라도의 아내도 꿈에 예수님에 관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마27:19).
그러나 성경이 완성된 후로 하나님은 꿈이나 환상으로 어떤 계시적인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계시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꿈은 늙어지면 모든 것이 자신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육신은 후패하나 영혼은 새로워져 꿈을 가지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꿈과 환상은 다른 것인데, 꿈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앞을 본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연세가 많은 노인들이 앞을 본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바로 영원한 미래의 세계, 자신의 영원한 정착지인 천국을 바라본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노인들이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 때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때 사람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한 노인들은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18절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17절의 말씀을 더 자세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종과 여종'되는 사람에게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령이 임하시면 종도 은혜를 받고 예언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제한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이 문제이지 우리 하나님은 남종과 여종에게도 한량없는 은혜로 체워 주십니다. /믿/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려고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종이란 귀에 구멍 뚫린 종으로서 자원하여 일하고자 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출21:1-6).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종은 주인에게 속한 사람으로 주인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 모두 하나님께 속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고전7:22절 "주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성도는 모두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그러나 부자유한 종이 아니라 죄에서 놓임을 받은 자유로운 종입니다.
출21:6절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
구약 성경에는 종을 삼았다고 해도 칠 년째 되는 안식년에는 반드시 자유인으로 신분 환원을 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종된 사람이 주인을 위해서 평생 종이 되겠다고 하면 재판장의 허락을 받아 송곳으로 귀를 뚫어 영원한 종이 된 것을 표시합니다.
여기서 '재판장'이라고 번역된 것은 실은 '엘로힘', 즉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평생 종이 되기를 서원한 종으로, 자원하는 종입니다. 이 사람은 평생토록 그 주인을 섬깁니다. 귀를 뚫었던 흔적이 그를 평생 종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십자가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손과 발의 못 자국, 허리의 창 자국으로 우리는 죄로부터 해방되어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죄와 죽음과 심판의 종노릇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종으로서 그 분의 흔적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갈2: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5:13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그렇습니다. 귀를 뚫은 종을 스스로 종노릇을 하는 사람입니다.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주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주의 말씀을 드러내는 자들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19절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하늘에서는 기사" 하늘은 신령한 영역을 말하며 기사는 구원의 기사를 말합니다. 신령한 세계에서는 우리를 구원하는 기사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기사입니까? 죄인들이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되고 하나님의 보좌에 앉게 될 것이 기사와 기적입니다.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땅은 신령한 세계와 대조된 불순종자들의 거처입니다. 불순종자들에게는 심판의 징조가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피와 불과 연기로다" 땅에서 베풀어지는 심판의 징조는 피와 불과 연기입니다. 피는 사망을 가리키고, 불은 환난과 고통, 연기는 흑암을 가리킵니다. 성도는 신령한 세계에서 살아야 땅의 심판을 면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3:2절에서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했습니다.
▶20절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 예수님의 재림의 날입니다.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해는 진리를 상징합니다. 말세에 진리가 가리어지고 신령한 진리에 빛이 없어지므로 세상이 어두워지게 됩니다. 환난이 심하고 악의 세력이 강하여 진리가 가리어지므로 흑암의 세상이 됩니다. 우리는 이 말세에 더욱 깨어 기도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달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달이 태양의 빛을 받아서 발사하는 것처럼 교회의 진리는 말씀을 받아서 세상을 비추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진리의 빛을 드러내지 못할 때, '피가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생명이 죽는다는 의미입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21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누가 주의 이름을 부를 수가 있습니까?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가 부릅니다. 롬8:9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롬8:15절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여기 '부르다'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으며 기도 가운데 깊은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롬10:13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행6:30-31절에 빌립보 감옥의 간수 장이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하고 부르짖을 때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구원의 도리를 전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마7: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라"고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주여'와 베드로나, 바울 사도가 전하신 '주의 이름'이 다르다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똑같은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주여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마7:21-23절에 보면 '주의 이름을 부른다고 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롬10:13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러나 이 말씀을 이어서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했습니다. 믿음을 가진 자가 들어갑니다.
▶주 예수님을 나의 구원의 주님으로 믿어야 합니다(십자가의 복음).
▶아버지의 뜻을 행해야 합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라가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면서 주여 주여 불러야지 늘 주님의 뜻을 어기고 불순종하면서 '주여'를 백 번 불러도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청지기 의식이 철저해야 합니다. 내 것은 내 것이요 주님의 것도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주여 주여'를 아무리 불러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학개2:8절 "금도 내 것이요 은도 내 것이다"고 했습니다.
▶무슨 직분을 맡았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마7:22절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여기서 '노릇'이라는 말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주여! 주여! 내가 주의 이름으로 목사 노릇하며", "내가 주의 이름으로 '장로, 권사, 집사' 노릇하며" 라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참다운 목사가 되어야지 목사 노릇을 하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노릇'이 무엇입니까? 대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일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천국에 가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능력을 받아서 병 고치는 은사가 있고, 또 기적을 많이 행하고 다녔다고 할지라도 구원 얻을 믿음이 없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내 이름으로 사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예수님의 도구로 살고 있는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 후에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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