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값이 무거워 쓰러질 때, 믿음이 우리를 일으킨다! (시3:1-8)
우리가 겪는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은 감추고 싶은 죄가 사람들에게 드러나고 그 죄로 인하여 죄 값을 치른다고 느낄 때입니다.
간음한 일로 인하여 가정이 무너지고 사업이 무너지고 자녀들이 무너지는 것을 겪어야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겠다고 울먹이던 모습이 선합니다. 죄는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 시편 3편에서 다윗이 겪는 고통이 바로 이런 고통입니다. 다윗이 평생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지만, 시편 3편은 그 중에도 가장 고통스런 일을 겪었을 때 드렸던 기도입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하여 피난 가면서 쓴 기도시 입니다. 원수가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이 자기를 죽이고 왕이 되겠다고 반역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유는 다윗이 충신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죄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엄청난 사람들이 자신을 잡아 먹을 듯이 공격해 온다고 느꼈습니다.
1절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그들은 다 다윗의 신하들이었고, 다윗에게 충성하던 이들이었습니다. 다윗은 그들이 압살롬처럼 그렇게 어리석고 경솔한 자를 두목으로 선택하고 자신에 대하여 적대적이고 모욕적인 태도로 바뀌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삼하 12:9-12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사람들은 이런 일을 당하는 다윗을 보고 ‘하나님 조차 다윗을 버리셨구나!’ 생각했습니다. 2절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이 급속히 압살롬에게 기울어진 것입니다.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하고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 때 죽을 것 같이 괴롭고 억울하지만 억울한 일은 괜찮습니다. 억울하니까요! 잘못한 일이 없으니까요! 결국은 다 드러납니다. 거짓말한 사람이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최소한 하나님이 아시면 된 것 아닙니까?
정말 괴로운 것은 실제로 자신이 정말 잘못했을 때입니다. 그 때는 할 말도 없고 희망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문에서 다윗의 놀라운 고백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의 절망적인 수군거림을 들으면서도 다윗은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3절) 이 고백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합니다. 다윗은 계속 고백합니다. 4절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7-8절에 가면 다윗이 뻔뻔해 보이기 까지 합니다. 7-8절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마치 자기 죄를 모르는 사람처럼 당당합니다. 저 같으면 결코 이런 고백을 못할 것입니다.
다윗의 이런 태도를 믿음이 좋다고 해야 합니까? 뻔뻔하다고 해야 합니까? 이것이 믿음이라면 실망하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거부감이 들고 분노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죄사함이라면 오히려 죄를 조장하는 것이 아닌가?’
최근 유명한 청년 사역자의 성추행 사건으로 떠들썩 했습니다, 본인이 공개 자백을 하고 사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이 목사가 다시 목회할 수 있느냐 다시 설교해도 되느냐?’하는 논란이 있습니다. 이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공개 자백하였다면 다 용서해야 하느냐?”
예수님께서 용서와 사랑의 복음을 전하셨을 때, 사람들의 반응도 둘로 나뉘었습니다. 100마리 양을 치는 목자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으러 99마리 양을 내버려두고 산과 들판을 찾아다니는 이야기를 들을 때,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 세리와 창녀들을 받아주며 그들과 함께 먹는 것을 볼 때, 모든 사람들이 다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은 분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결코 죄를 가볍게 여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죄를 미워하시고 죄로 인하여 분노하시고 죄 때문에 고통하시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다시 회복시키셨다고 거저 죄를 용서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가 있었고, 다윗의 철저한 회개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모든 신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기가 지은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왕으로서 얼마나 수치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이라 생각하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시편 51편은 다윗의 영원한 공개 자백입니다.
시 51: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다윗이 반역하는 압살롬에게 분노하고 저주하고 싸우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정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자기 죄 때문이라고 인정한 것입니다. 그는 피난갈 때 맨 발로 머리를 숙이고 울면서 갔습니다. 피난 길에 시므이라는 노인이 모욕하고 저주를 퍼부을 때, 죽이겠다는 신하를 만류하며 말했습니다.
삼하 16:10-12 ...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제사장이 법궤를 가지고 따라오니 압살롬이 점령한 궁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왕임을 과시하려고 여호와의 법궤를 끌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살인죄, 간음죄를 지었던 다윗을 용서하시고 다시 세우셨을까?
우선은 다윗이 철저히 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정확한 이유는 다윗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회개는 회개이고 믿음은 믿음입니다, 회개가 아무리 철저해도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결코 우리를 회복시키시지 못합니다.
다윗의 고백에 대하여 거부감이 드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정을 잘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아들 딸이 어떤 잘못을 하여 매를 들었을 때, 죄책감 때문에 낙심하고 ‘성공하고 오겠습니다.’ 하는 쪽지를 남기고 집을 나간다면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매를 맞아도 “나를 사랑하시니 이러시는구나, 잘못했어요, 더 때려 주세요. 징계가 큰 사랑임을 믿습니다. 이제는 용서해 주신 줄 믿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품에 안기는 자녀가 얼마나 복됩니까? 그래야 비로서 죄에서 벗어나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에서 진정 벗어나 복된 자의 길을 가려면 분명한 회개도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십자가 복음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감리교 사태, 최악의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징계라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한 일이라 고백됩니다. 하나님께서 감리교회를 버리지 않은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감리교회보다 더 악한 집단도 많지 않습니까? 그러나 다 징계를 받습니까? 그러니 징계도 감사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살 길은 철저한 회개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면 길이 열립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느낌을 의지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나 연단이 있을 때, 우리는 대개 복잡한 마음과 감정 때문에 무너지고 맙니다. “예수님 내 안에 계시다? 모르겠습니다. 주님의 음성들으라?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원수도 사랑하라?, 불가능합니다. 나는 죽었다? 말이 안됩니다.” 느낌에 의존하는 신앙은 이렇게 나약하고 위험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진리 위에 서야 합니다. 환경과 느낌은 수없이 변하여도 진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내 안에, 나는 죽었고, 예수님은 나의 생명,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것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이 진리 위에 서서 고백할 때,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편 3편의 결국을 압니다. 결국 다윗의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머리를 들어주셨고 다윗의 영광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이라는 칭호를 받으셨습니다. 엄청난 일이지 않습니까?
다윗이 그런 사람이 된 것은 철저히 회개했고, 복주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자신에 대한 좌절감, 죄책감, 열등감이 깊습니다. 자신을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께서 도저히 그 삶을 일으키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받을 조건을 따지셔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시기로 결단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그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허물이 많고, 더럽고, 죄투성이지만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사랑하신다면 우리도 그를 사랑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이 분명하다면 우리도 우리를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비로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한번은 21일 특별새벽기도회를 하면서 하루에 한가지씩 자신을 축복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많은 교우들로부터 21일 동안 기도하면서 엄청난 감격과 확신을 경험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의 마음이 바뀌는데 21일이 걸린다고 합니다. 나는 불행하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나는 복되다는 마음을 가지려면 최소한 21일 동안,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품고, 감사하고 시인하고 살아야 합니다. 어떤 어려운 일이 일어나도 21일 동안이라도 사람들이 ‘미쳤나?’ 할 정도로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품고 말하고 행동하면 다윗처럼 인생이 바뀌는 것입니다.
바른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병아리가 독수리라고 21일 동안 상상하고 생각한다고 독수리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본래 독수리인데 환경 때문에 자신이 병아리라고 생각하여 병아리처럼 살았던 독수리라면 21일 동안의 축복기도로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기도를 많이 해주시는 양어머님이 계십니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양 아버님께서 미국에서 기도원 원장으로 계실 때 찾아 뵈었었는데, 아침 산책을 하시면서 평생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 있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마음에 묻어 둔 죄를 다 털어 놓고 회개한 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하심을 믿고 전심으로 기도하면 해결해 주시지 않는 문제가 없었다. 그 말씀을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늘 귀한 교훈이 됩니다.
2개월 특별 기도 중에 있습니다. 여러분도 다윗과 같은 철저한 회개와 믿음의 축복 기도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스데반 집사를 죽었고,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저주하면서 부인하기까지 했었던 사람입니다. 자기 죄를 생각하면 평생 은둔하며 살아야 마땅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놀라운 계획을 확신하며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낙심하고 좌절하면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다윗은 울면서 시편 3편을 기도했고, 울면서 노래했으며, 울면서 믿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손가락질 하여도 다윗처럼 6절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라고 고백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고백이 언제나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자료 18,185편 ◑ > 자료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을 주님께 드린 사람! (시 19:1-14) (0) | 2022.01.27 |
---|---|
의롭게 살고 싶은 열망! (시 5:1-12) (0) | 2022.01.27 |
일어서고 망하는 것은 주님의 손에 있다! (행 5:33-42) (0) | 2022.01.27 |
십자가로 가까이 나를 이끄소서! (요 19:17-18/28-30) (0) | 2022.01.27 |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엡 4:25-32) (0) | 2022.01.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