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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2,922편)〓/소망 설교

요일2:7-17 오직 한 길(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증거)

by 【고동엽】 2021.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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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2:7-17 오직 한 길(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증거)

 

요일2:7-17까지 말씀으로 오직 한 길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저번주 화요일 성경공부를 끝내고

어느 교장선생님 정년 퇴임식이 있어서 가게 되었습니다.

경기도 화성에 있는 장안여중에서 37년간을 근무하셨던 교장선생님이셨습니다.

옛날 수원에서 화성으로 가려면 아스팔트도 없어서 2시간을 가야 학교를 갔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좋은 길이 다 뚫려서 금방 가지만 37년 전에 학교도 건물도 제대로 없는 곳에서

오직 한길을 계속 비가오나 눈이오나 어려움이 있거나 쉽거나

어떤 환경도 다 뿌리치고 37년간 몸담고 근무했다고 합니다.

학교를 37년간 근무하고 정년퇴임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 내가 오늘 여기 왜 왔습니까?’ 퇴임식이 진행되는 상황속에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오직 한길을 걸어야 한단다’ 라고

하나님과의 교제속에서 그 말씀이 나에게 딱 오더라구요.

그 한 길을 걸어가려면 많은 힘든일이 있지만 나중은 참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다 라는

마음이 와서 ‘하나님 요걸 또 말씀으로 전하라구요’ 해서 제목이 화요일 날 나온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길을 걸어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말처럼 다 이유가 있겠지만, 뭘 조금 하다가 그만두고,

저걸 조금 하다가 그만두고 이유를 대서 그만 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이 크게 좋든 나쁘든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자기가 가는 길을 계속해서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도 그렇다고 생각하면서 내 속으로 다짐을 했습니다.

‘하나님 저도 이 길을 계속 갈께요. 금방 눈에 보이는 것 확 잡히는 것은 없어도 무엇이 된 것이 없어도, 절대로 사람의 비유를 맞춰서 좋게 만드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심령속에서 주님을 느끼고, 삶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 심정을 이해하고 말씀 듣고,

변화되는 그런 사역을 끝까지 하겠습니다‘

바로 저거다 내가 가야될 길이 바로 저거다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요한이 자기의 삶을 뒤돌아보면서 간증하고 있습니다.

요한도 자기가 정말로 하나님을 알고 있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겁니다.

요한은 예수님과 외사촌간입니다.

그러니까 사람 예수로 알았지 하나님으로 알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여기다가 참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하는 증거는

이것이 있어야 한다고 써놓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7절부터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진정 알고 있다는 증거다.

그 다음에 12절부터 14절까지는 영적으로 성숙해 지는 것이다.

그 다음에 또 15절부터 17절까지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거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증거라고 요한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으면서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쉽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안다는 말은 삶에서 만나서 이해하고 살아보고 체험해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진정으로 알고 있다는 증거가 우리안에 있어야 됩니다.

안다고 하는 것은 삶속에서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연애할 때는 남자가 여자가 조금만 추우면 웃옷을 벗어줍니다.

추워도 안 춥다고 벗어 줍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면 여자 것 벗어서 자기 덮어주라고 한다고요.

 

장미백송이를 갖다줘요? 아닙니다. 전혀 반대가 되어 버립니다. 왜요? 모르니까 그렇습니다. 안다고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삶에서 살아본 결과를 안다고 하는 건데 알지 못하니까 그런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한길을 걸어가야 되는데

오늘 본문에서 요한이 자기가 살아본 것을 뒤돌아 보며

자기가 엉터리인 것을 깨닫고 요한일서를 써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다가는 하나님과 참된 교제를 하고, 그 결과가 이웃사랑으로 나타나야 된다고 요한일서 전체에서 나타나 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하는 그 증거는

오직 그 한길을 걸어가야 된다고 요한은 간절한 마음으로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그것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어떠한 한 길을 걸어가라고 하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겠습니다.

 

첫 번째 요일2:10-11

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첫 번째로 이웃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오직 한 길을 걸어가야 됩니다.

요한은 7절부터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쓴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다. 구약에서부터 내려온 계명이다.

8절에 다시 새 계명을 쓴다. 그러니까 옛날부터 내려온 것인데,

실천할 때 그것이 곧 지금 계명이 된다 이 말입니다. 이것이 새 계명이다.

옛날부터 내려온 계명인데 실천할 때 그것이 참된 것이고 새로운 계명이 된다 라고 얘기하면서 그것이 곧 형제를 사랑하는 거다 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0절에 그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지만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있다고 하는 것은 옆으로 나타나는데서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으면 우리는 제일 먼저 다른 사람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과 왜 갈등이 생깁니까?

연애할 때 갈등생깁니까?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좋은 것만 보이니까 갈등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때는 절대로 다툼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 생각이, 조건이 드러나면서부터 다툼이 시작됩니다.

내 생각에 맞추라고 할 때 다툼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정말로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증거는 다른 사람입장에서 나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툼이 없습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으로서 이것을 잘해야 합니다.

항상 우리는 내 식으로 상대방을 봅니다.

검정알이 껴진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까맣게 보여요.

파란안경알로 바꿔 겼다면 파랗게 보입니다. 빨간 안경알로 바꿔겼다면 빨갛게 보입니다.

그런데 앞에 환경을 변한 게 아니라 그대로 있습니다.

우리가 그래요. 앞에 있는 사람은 그대로 있는데 내 방식으로 생각하면

여러 가지로 볼 수 있어요.

까만 안경을 쓰면 까맣게 보이고, 파란 안경을 쓰면 파랗게 보이고,

하얀 안경을 쓰면 하얗게 보여요.

우리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나를 생각하는 거 이것이

정말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오직 한 길을 걸어가야 된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쩔때는 내 입장에서 보고, 어쩔때는 상대방입장에서 보고 그러면 안된다

그 말입니다. 오직 상대방 입장에서 나를 봐야 합니다.

어제 예산 갔다 오면서 우리 사모님이 옛날 목사님 잘못을 다 들춰냈어요.

그래서 내가 가만히 있었어요. 내가 정말 엉터리중에 엉터리였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어요.

전에 저는 왕중의 왕이고, 짐은 곧 법이고, 내말 한마디면 아내가 말 안들으면 큰일났었습니다. 저는 감히 고백합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사모님이 가장역할을 한 뒤부터는 제가 바꿔졌습니다.

사모님앞에 꼼짝 못하게 됐습니다. 이제는 사모님이 조금만 힘들면 제가 설거지 합니다.

왜요. 옛날에 내가 워낙 나쁜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감히 하나님앞에서 말합니다.

내 입장에서만 봤기 때문에 명령했고, 나한테 잘하라고 했습니다.

옛날 저는 술을 많이 먹고 와서 누워서 냉장고 속에 있는 찬물을 입에다 부으라고 말했습니다. 물을 입에 안 부으니까 꼬라지가 나서 냉장고 속에 있는 물을 다 이불에다 부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날 사모님이 막 울면서 말하니까 그때 알았어요.

내 입에다가 물 안 넣어 준다고 있는 물을 다 갖다 이불에다 쏟았으니

그 이불이 어떻게 됐겠습니까? 제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상대방입장은 조금도 생각지 않고 내 명령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느날 뒤집어 엎어 버리더라구요.

그때 사모님은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은 아마 살맛날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상대방 입장에서 나를 보는 사람이 되는 것,

그 길을 오직 한길을 가는 것 그 사람이 진정 하나님을 알고있다는 증거를 가진 사람입니다.

 

여호수아14:10-12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45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85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갈렙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갈렙은 유다지파입니다.

그런데 이 갈렙이 자기 입장에서 생각했다면 제일 좋은 땅을 주라고 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구세대중에 유일하게 남은 두 사람이거든요.

저 같으면 전부 신세대고 나만 구세대라면 재고 다녔을 겁니다.

내가 지나가면 찬바람이 쌩쌩나서 감히 누가 범을 못하게 했을 겁니다.

그리고는 제일 좋은 땅에 말뚝박아라 하면서 이 땅은 전부 내 것이다 했을 겁니다.

그런데 갈렙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산지를 주라고 했어요. 개간을 해야 쓸 수 있는 곳을 주라고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상대방입장을 먼저 생각하니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 사람들은 아직 어리니까 그것을 누리고 살아야 되고, 나는 할 수 있고 힘이 있으니까

내가 어려움을 감당해야지 그렇게 생각한 갈렙입니다.

갈렙은 오직 한길 45년동안을 간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렙과 같이 오직 한 길, 옆 쳐다보지 않고 가다보면 빛나는 졸업장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한 길을 가야되는데 어떤 한 길이냐 이웃입장,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오직 한 길을 가야합니다.

 

 

두 번째 요일2:12-13

12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두 번째 영적으로 더욱 더 성숙하여 오직 한 길을 걸어가야 됩니다.

지금 여기 보면 자녀들이란 말도 있고, 청년, 아비, 아이들이란 말도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 상태를 말합니다.

자녀들이란 말은 전부 다를 말하는 것이고, 아이들이란 말은 아직은 어린 것, 청년들이란 말은 힘은 있지만 경험은 부족한 것, 아비들이란 말은 성숙한 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에서 청년으로 아비로 성숙해져 가는 이 길을 오직 한길로 걸어가는 것

그것이 곳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길을 걸어가려고 할 때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을 가져버릴려고 하더라구요. 자기가 믿음 있게 자신을 만들어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믿음 있게 만들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고, 하나님의 심정을 내가 이해한 만큼 내가 영적으로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절대로 내가 노력해서 믿음이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내가 만났을 때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영성일기를 쓰라고 하는 겁니다.

 

어제도 예산을 갔다 오는데 차가 많이 밀렸습니다.

그런데 우리차는 사람이 많이 타서 버스전용차로로 왔습니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12시가 넘어서 왔을 겁니다. 하나님 고마워요 하면서 운전했어요.

평소에는 전용차선이 무엇인지를 몰랐는데 전용차선을 타보니까

하나님 고마워요가 연발이 되더라구요.

평소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몰랐는데 전용차선이란 것을 몰랐는데 어제는 옆에 차선 차는 막혀서 그대로 있고, 우리 차는 잘 달리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한 겁니다.

예산까지 가는데 다른 사람은 5시간 걸렸다는데 우리는 3시간 반걸렸거든요. 너무나 기뻤습니다. 10시 반이상 되면 여기 주차장은 문을 닫거든요.

그런데 9시 30에 도착했거든요. 하나님이 너무나 고마웠어요.

바로 그겁니다. 우리가 삶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자꾸 느끼는 것 그러다 보면

나는 영적으로 성숙해져 있어요.

그러니까 영적으로 성숙해 지는 오직 한 길을 가려고 하면 우리는 일마다 때마다 문제마다 사건마다 하나님을 늘 만나야 됩니다. 하나님을 깨달아야 됩니다.

그 길을 오직 한 길로 갈 때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있다는 증거가 그 속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빌2:29-30

29 이러므로 너희가 주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30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26절 보세요.

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하나님이 에바브로디도를 살려주셨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니까 30절에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의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일을 하게 됐던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평신도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평신도 대표로 바울에게 쓸 것을 갖다주러 간 사람이 에바브로디도인데

이 에바브로디도가 로마에 있는 바울에게 왔다가 병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죽기에 이르렀는데 하나님이 살려줬습니다. 하나님을 만났죠.

그러니까 이제는 죽는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바울을 섬겨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갈 때보다 돌아와서 빌립보 교회로 올때는 에바브로디도는 훨씬 더 성숙해 있었을 겁니다. 바울의 가슴에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됐습니다.

영적으로 더욱 더 성숙하여 오직 한 길을 가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에바브로디도와 같이 삶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깨닫고 이해하여 오직 한 길을 걸어가 정말로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는 그런 증거를 드러내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 요일2:15-17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세 번째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여 오직 한 길을 걸어가야 됩니다.

15절에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않다. 입으로만 하고 있는 거다.

세상도 다 지나간다. 정욕, 욕심도 다 지나간다. 그러니 오직 영원히 있는 하나님의 뜻을 행해라.

왜 요한이 이렇게 말했을까요. 옛날 자기가 그랬으니까요. 예수님 살아생전에 요한은 좌정승 우정승 달라고 한사람이에요. 이 요한은 성질이 아주 급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이 요한이 지금 요한일서를 쓸 때는 다소곳이 변한 모습으로 쓴 것입니다.

16절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좇아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다.

그래서 금방 지나간다. 그것은 영원한 것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만 영원하다고 요한이 말하고 있듯이

 

우리도 세상에 있는 것 아무리 얻어 봤던들 그것은 잠깐 편리할 따름이지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는 그 길을 오직 한 길을 가서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증거를 드러내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히11:24-25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행동하므로 세상에 있는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받는 능욕 받는 것을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모세가 오직 그 한 길을 걸어가며 출애굽광야생활에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했던 것같이 나중에 모든 대업을 다 마치고 하나님 앞으로 다시 돌아 간 것 같이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맡겨준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저는 주보 뒤에 있는 교회 설립목적이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제일 먼저 말씀을 듣고 관점이 바꿔지는 교회 즉 말씀을 들으면 내 관점에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관점, 하나님 편에서 볼 수 있는 눈이 떠질 수 있도록 바뀌어져야 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심정이 깨달아 지는 교회, 말씀을 들을 때마다 하나님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삶 속에서 변화되게 하는 교회,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이보다 더 귀한 가치가 없습니다.

이것이 되는 비결은

첫 번째 안에 계시는 주님을 깨달으면 그것이 됩니다.

두 번째 옆에 계신 주님을 늘 의식하면 그것이 됩니다.

내가 성질을 내려고 하다가도 주님이 옆에 계신 것을 의식하면 성질을 낼 수가 없죠.

세 번째 앞에 계신 주님을 따라가다 보면 위에 세 가지가 다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오직 한 길을 걸어가는 모세와 같은

저와 여러분들이 다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되는데

우리가 오직 한 길을 걸어가야 됩니다.

첫 번째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오직 한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항상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내가 이렇게 행동했을 때

상대방이 어떻게 보겠는가 라고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라고 하는 것을 늘 생각하며 한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영적으로 더욱 더 성장해 가며 오직 한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행동하며 오직 한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뜻은 자연히 다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는 오직 한길을 날마다 걸어가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 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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