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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대한 우리의 태도 (딤후 3:15-17)

by 【고동엽】 2022. 10. 3.

성경에 대한 우리의 태도 (딤후 3:15-17)

지금까지 성경에 대하여 두 차례 말씀을 드렸다. 첫 시간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중
에 대한 현대 지성의 비판을 세 가지로 대답했다. 둘째 시간에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는 증거 일곱 가지를 역설하였다. 서문의 가족들은 이쯤은 다 외우고 있어야 할 것이다. 내
가 읽은 글 중에서 성경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간증을 소개하겠다. 아브라함 링컨, 그라트
스톤, 죠지 와싱톤, 나폴레옹, 다니엘 웹스트, 토마스 카라일, 죤 라스킨, 테니슨, 칸트, 윌리
암 헷셀, 뉴튼, 괴테 등 이쯤하자. 위의 모든 사람은 성경에서 영향을 받은 사람임을 스스로
간증하였다. 그들이 우리보다 무식해서, 편협해서, 무시해서, 모자라서, 그렇게 간증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할까?

Ⅰ. 첫째, 성경 앞에 인간의 이치나 능력으로 따지지 말라.
1)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나 진리는 인간의 논리나, 이치나, 능력의 표준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요3:4,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 학자, 국회의원, 스승, 존경받는 니고
데모도 중생의 진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개미의 이치로 사람을 알 수 없다. 설명할 수 없
다. 멸치의 머리로 태평양의 이해할 수 없다. 장미, 백합의 생명으로 태양을 설명 할 수 없
다. 붕어의 법칙으로 비둘기의 세계를 이해, 설명 할 수 없다. (고구마 농사짓는 아버지와
아들의 지혜) 2) 인간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지지 말자.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의 어
떤 지혜로도 인정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다. 행1:8, 예수님의 제자들도 성령없이는 하나님
의 능력을 증명할 수 없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의 약속이다. 복음, 구원, 사회, 구원, 중
생은 하나님의 권능의 약속이다. 인간의 어떤 학문, 사상, 철학, 과학으로도 증명 할 수 없다
(지렁이와 개미의 사투와 사람의 도움 - 기적의 의미)

Ⅱ. 그래서 성경은 알라고 주신 책이 아니다. 믿으라고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1) 요6:68∼69, 위대한 베드로의 간증이다. 말씀을 믿을 때, 하나님의 세계를 알아진다. 천주
교 천지 근 천년은 암흑세계였다. 그 이유는 성경이 일반에게 금서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종교 개혁이나, 미국의 청교도 교회의 시작은 전혀 성경으로의 복귀운동이었다. 거기에 능력
이 나타났다 1907년 한국교회 대부흥도 꼭 같은 운동이었다. 감리교, 장로교, 선교사가 동시
에 인천에 상륙하였다. 장로교와 감리교의 교세의 차이는 그 교파가 성경에 충실한 선교였
나 아니였나의 차이다. 2) 그래서 알려고 하기보다 믿어야 한다. 믿기 위하여 좀 읽어라. 공
부해라 행17:10∼12, 베뢰아 교회 같이, 믿기 위해 좀 기억해라, 기억에 좀 담아 두자. 주일
후 믿음의 가정에 심방 가서 예배드리고 주인 장로, 권사께 기도인도 시켜보면 지난주일 설
교, 냄새도 안 난다. 전혀 무관심의 결과다. 이래가지고야 어떻게 신자가 될 수 있나? 안 돼
지 안 돼. 또 믿기 위해 좀 새김질 하자. 시1:1∼2, 주야로 묵상하자는 말이다. 소는 새김질
함으로 건강하게 일한다. 기억에 담아 두고 베뢰아 신자같이 되새기고 되새기는 중에 영이
살찌고 생기가 넘칠 수 있다. 그래서 수1:8! 에 중대한 임무 앞에 여호수아에게 그렇게 하나
님은 부탁하셨다.

Ⅲ. 성경에서 우리가 받은 효능은 실제로 무엇이어야 할까?
딤후3:14∼17, 구원에 이르는 지혜,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가는데 필요한 책망, 교훈, 바르게
함 , 의의 교육, 생활의 능력 등은 성경에서 힘입어야 한다. 또 히4:12∼13, 변화도 받아야
한다.

<맺는 말> 엡6:10∼17, 하나님 자녀의 승리 생활을 위한 공경무기는 오직 하나 17절에 성령
의 검, 우리의 말씀 뿐이다.


출처/이성현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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