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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축복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5가지 축복 (눅2장 8∼14 )

by 【고동엽】 2022.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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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5가지 축복   (눅2장 8∼14 )

오늘날 사람들은 성탄절을 선물 주고받는 날, 혹은 한 해에 한 번 있는 절기나 행사쯤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 이 성탄절이 우리에게 직접적인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한 가장이 직장에서 퇴직하고 개인사업을 해 보려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또 취직을 하려고 일자리도 알아보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가족들이 그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일년이 되자 본인도 그만 지쳐버리고, 보는 사람마다 묻는 안부가 질책으로 들려 교회 나가는 것조차 기피하게 되었습니다. 집에서도 도망치듯 일찍 나가 버리고 가족들하고도 대화가 끊긴지 오래 되었습니다.
12월이 되어 날씨는 추워지고, 성탄절은 며칠 앞으로 다가왔는데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메시지가 들어와 있어서 들어보니 자기 아들의 음성이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된 아들이 아버지를 볼 수가 없으니까 핸드폰에 메시지를 남긴 것입니다.
"아버지, 왜 요즘 교회도 안나가고 힘이 없으세요? 아버지, 제가 아버지 위해서 항상 기도하고 있으니 다시 힘내세요. 그리고 요번 성탄절에는 가족들과 함께 교회가요."
핸드폰을 통해 들은 아들의 목소리는 하나님의 음성 같았습니다. 마음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렇다. 내가 아직 죽은 것도 아닌데…. 아직 나에게는 가능성이 있는데 내가 왜 이렇게 절망적인 삶을 살았는가?'
그는 용기와 힘을 얻고 성탄절에 가족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나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새로운 삶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나에게도 기적이 일어나게 하시고, 나에게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임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믿음을 얻게 되었고, 희망과 자신감을 가지고 다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조그만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 사업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점점 잘 되어 남을 도와줄 정도로 풍족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때로는 사람이 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절망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 드렸던, 아들의 작은 기도가 아버지 마음에 큰 평안을 가져다주었던 것처럼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고, 나를 위해서 성탄절의 하나님의 축복의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 있다할지라도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크리스마스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베푸신 축복의 사건이요, 사랑의 사건입니다. 그러나 성탄절이 우리에게 축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시간 성탄절이 우리에게 어떤 축복이 되는가를 말씀을 통해서 전하고자 합니다.
성경을 보면 성탄을 맞이한 여러 사람들이 나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순종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으며(마 1:24; 눅 1:38), 헤롯왕은 두려워하고 소동을 벌였습니다(마 2:1∼3).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다 알면서도 예비하지 않았습니다(마 2:4∼6). 동방박사들은 일찍이 별을 보고 찾아와 기쁨으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바쳤습니다(마 2:10∼11). 목자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라고 찬양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 소식을 전하고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눅 2:15∼17, 20). 여러분도 부모나 가족, 우리 주변 사람들, 낙심한 사람들에게 성탄절의 메시지를 전하고 도움 주시기를 바랍니다.

2. 본문 배경 설명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록한 '성탄기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멸망을 당하고 심판과 저주가운데 있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동정녀,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마리아는 호적 하러 베들레헴으로 올라갔다가 갑자기 진통을 느끼고 아기를 해산할 여관방을 구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관방조차 얻지 못하고 허름한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를 낳아 말구유에 누이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말구유에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축복이 되었습니까? 저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5가지 축복, 구원의 축복, 임마누엘의 축복, 기쁨의 축복, 평화의 축복, 부요케 하시는 축복으로 정의 하고자 합니다. 이 5가지 축복이 성탄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함께 우리에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B.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5가지 축복

1. 구원의 축복 - 죄에서 구원하신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 후로 우리 인간은 죄악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죄 가운데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부모의 죄, 조상의 죄, 인간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리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시작해서 죄악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인입니다. 어떻게 이 원죄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이 죄악에서 벗어나 의롭게 살고, 구원받으며, 축복 받으며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므로 우리는 구원의 조건을 얻게 되었고, 어떤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용서함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7절에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심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멸망에서부터 구원합니다(창 19:19). 환난에서 구원합니다(삼하 4:9). 또는 죄 가운데서, 저주 가운데서 구원합니다(마 1:21). 질병 가운데서 구원합니다(요 5:7∼9).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니다(히 2:14∼15).
독일의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Luther, Martin ; 1483∼1546)는 "그리스도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용서와 은총을 받지 못하며 아버지께 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나갈 수도 없고 나갈 자격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 중에서 모성애가 가장 강한 새는 펠리컨이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 말로 사다새 라고 하는 이 펠리컨은 새끼들에게 줄 먹이가 없으면 자신의 가슴살을 뜯어 피와 살을 먹인다고 합니다.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새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펠리컨을 사랑과 희생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비록 내가 죽어서 자식이 산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악가운데 있는 인간이 구원받는다면'이란 조건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죄 가운데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구원받았음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 임마누엘의 축복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고난과 슬픔을 당할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약할 때도 하나님께서 같이 계셔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편이 되셔서 죄와 마귀와 싸워서 승리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일찍이 이사야서 7장 14절 말씀에 이사야 선지자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또 마태복음 28장 20절 말씀에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세상이 종말을 고하고 끝날 때까지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우리에게 축복을 허락하여 주십니다(창 26:3). 우리의 갈 길도 인도하여 주십니다(창 48:21). 두려움과 공포가 떠나가게 만들어 주시고(민 14:9), 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신 2:7).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주시고(삼하 18:14), 어떤 경우에든 간에 우리를 형통케 하시고(왕하 18:7), 더 나아가서 우리의 영을 소생케 만들어 주십니다(사 57:15).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마음에 평강이 있습니다(살후 3:16).
독일의 사상가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 1379∼1471)는 "예수가 함께 하면 모든 일이 선하게 되고 아무 어려움도 없지만 예수가 없으면 모든 게 힘들어 진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왜 힘들고 고달픈 인생을 삽니까? 하나님 없이, 예수 없이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작은 문제나 큰 문제나 항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면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강하게 만들어 주셔서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승리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또 영국의 성공회 성직자 존 뉴턴(Newton, John ; 1725∼1807)은 "만일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그의 눈은 우리를 쳐다보고 있으며, 그의 팔은 우리를 감싸고 있다. 그리고 그의 귀는 우리의 기도를 듣는다. 그의 사랑은 만족한 것이며, 그의 약속은 불변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성지에 가면 유대인들이 머리에 '키파'라고 불리는 빵떡모자를 쓰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항상 그 빵떡모자를 쓰고 다니는데 좀처럼 벗지를 않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도 쓰고, 기도할 때도 쓰고, 걸어갈 때도 씁니다. 심지어는 잠을 잘 때도 이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키파는 '내 위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항상 나를 보고 계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언제나 그 모자를 쓰고 다닌다고 합니다. 여러분, 비록 빵떡모자는 쓰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도 항상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어느 나라에 사냥을 좋아하는 한 왕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사냥을 하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다 죽어갔습니다. 그것을 본 나무꾼이 왕자를 구해서 치료한 뒤 왕궁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임금님이 너무 고마워서 나무꾼을 불렀습니다.
"자네가 내 아들을 살려 주었는데 소원이 무엇인고?"
"임금님, 제가 무슨 소원이 있겠습니까? 그저 임금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큰 영광이니 저희 집에 오셔서 하룻밤 만 묵어가세요."
임금님은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임금님의 행차를 위해 대궐에서 사람들이 파송되어 좁을 길을 넓히고, 식사를 준비하고, 나무꾼의 부서진 집을 수리해 주었습니다. 이 나무꾼은 어떤 소원도 이야기하지 않고 다만 임금님과 하룻밤 만 함께 지내기를 원했을 뿐인데 그의 모든 생활이 달라졌습니다.
여러분, 임금님하고 하룻밤만 잔다고 해도 이렇게 달라지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계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면 우리의 생활에 엄청난 변화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변화가 없다면 마음속에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잠자고 함께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마 6:31∼33 참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만 잘 믿으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 뜻대로 잘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넘치게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하룻밤이 아니라 일주일, 한달, 1년 365일 내내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임마누엘의 신앙에는 반드시 임마누엘의 축복도 임하게 됩니다.

3. 기쁨의 축복 -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0)

오늘날 슬픔, 걱정, 절망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무엇이 진정한 기쁨이 되고 좋은 소식이 되겠습니까?
시편 16편 11절에 다윗 왕은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바로 기쁨의 종교입니다. 교회에 나오면서도 기쁨이 없다면 그 사람은 잘 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도 마음에 기쁨이 없다면 뭔가 병든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말씀을 믿고 진리가운데 거하면 항상 기쁨이 우리가운데 충만하게 되고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기쁨의 샘이 용솟음치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는 큰 별을 따라서 왔습니다. 마태복음 2장 10절 말씀에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라고 했습니다. 동방박사는 아직 아기 예수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별만 보고도 기쁨이 충만했다고 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기쁘고, 듣기만 해도 기쁘고, 마음속에 감동만 받아도 기쁩니다.
여러분, 왜 기쁨을 잃었습니까? 집사, 장로, 권사,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온다고 하면서도 기쁨을 상실한 채, 빼앗긴 채 삽니다. 잃어버린 기쁨을 다시 찾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15장 11절 말씀에 예수님께서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된 자들은 이 세상을 살 때 마땅히 기뻐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물질을 드릴 때도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대상 29:9). 하나님 앞에 나갈 때마다 말씀을 듣게 되니 기쁩니다(렘 15:16). 하늘나라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된 것을 기뻐하며(눅 10:20), 진리 가운데 기뻐하고(고전 13:6), 심지어 고난을 당할 때조차도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뻐해야 합니다(벧전 4:13). 기쁘게 사는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셰익스피어(Shakespeare, William ; 1564∼1616)는 "마음이 즐거우면 하루 종일 걸을 수 있는데, 마음이 슬프면 1마일도 못 가서 피곤해 진다."고 했습니다. 왜 인생이 피곤하고 지치게 됩니다. 기쁨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학교 가는 것이 즐거운 학생은 공부 잘 하는 학생입니다. 직장에 나가는 것이 즐거운 사람은 직장에서 성공한 사람입니다. 교회 나올 때 기쁜 사람은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오늘날 기쁨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은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됩니다.
요즘 의학계에서도 기쁘게 사는 것, 웃으며 사는 것을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뉴욕의 콜롬비아 장로교병원에서는 <코미디 치료단>까지 발족했습니다. 그리고 하버드 대학에서는 환자들을 즐겁게 하는 '유머치료'를 주제로 대규모 심포지엄도 열었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말을 들어보면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우니까 슬퍼진다."고 합니다. 우리는 닭이 울고, 소가 울고, 새가 울며, 심지어는 개구리와 맹꽁이까지 '운다'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 동물들은 슬플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이 짐승 따라 웁니까? 울지 말고 웃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암세포도 웃는 순간은 팽창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웃어야 건강해지지, 늘 울면서 탄식하고 비관하면 질병을 끌어들여 암세포를 확장시키게 됩니다. 건강하게 살려면 기쁘게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머강사 박인옥 씨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언론계에 몸담고 있었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병원에 가도 병명을 알 수 없었습니다. 부인은 문득 '저러다 죽으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 공포 속에서 한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죽은 다음에 보험금 나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싶어 20개나 되는 보험을 모두 해약하고 그 보험금을 가지고 남편의 회복을 위해서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남편이 가는 날까지 편안하고 기쁘고 즐겁게 지내도록 하기 위해서 그는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그가 죽을병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원인은 아내가 그 남편을 기쁘게 해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를 치료한 약은 바로 '기쁨'이란 약이었습니다. 그 후로 아내는 기쁨이 건강의 요법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더 연구한 끝에 책을 쓰고 유명한 유머 강사가 되었습니다.
스트레스나 불안, 두려움, 공포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바로 '기쁨'입니다. 우리는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웃어야 합니다. 더 여유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더 만족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네덜란드 자유대학의 심리치료연구소 브람 박사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슬픔과 우울증에서 벗어나는가'를 연구를 했습니다. 조사결과 그는 교회생활이 우울증을 없애는데 가장 큰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점쟁이를 찾아가거나 절에 가는 사람, 혹은 아무 신앙 없는 사람, 종교가 없는 사람보다도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그래도 제일 얼굴이 훤합니다. 교회 나오면 찬송을 부르고 위로함을 받습니다. 기도를 함으로 마음속의 호소를 하고 말씀을 통해서 용기를 얻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오늘날 현대인들의 우울증을 없애는 가장 큰 도움이 됩니다. 어떤 면에서는 병원보다도 더 큰 효과가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아 기쁘게 사시길 바랍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을 바라보고 오늘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4. 평화의 축복 -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가 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 2:14)

참된 평화란 무엇입니까? 죄악과 가난, 저주, 싸움, 분쟁, 이 혼란한 사회 속에서 마음의 평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님 앞에 선택받은 사람, 기뻐할 줄 아는 사람에게 평화가 있습니다.
이사야 9장 6절 말씀에 이사야는 말했습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예수님은 평강의 왕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아는 사람은 마음 의 평강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예수님께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그 평화를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평화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빌리 그래함(Graham, Billy ; 1918∼ )목사님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평화는 세상이 가져다 줄 수도 없는 영적인 평화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 공포에서 벗어나서 평화롭고 안정되게 사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입니다.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보고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지구상에서 벌어진 전쟁은 모두 35건이라고 합니다. 이 전쟁으로 2천만 명이 난민이 되어 조국과 고향, 가족을 잃고 헤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국지전도 국지전이지만 인류의 존재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지구를 다 멸망시키고도 남을 '원자폭탄'입니다.
한번은 미국 국회에서 최초의 원자폭탄 제조를 감독한 오펜하이머 박사를 초빙해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원자 폭탄을 막을 수 있는 무기가 있습니까?"
그러자 박사는 웃으며,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예, 있습니다. '평화'라는 무기입니다."
가정에서도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사이에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는 평화가 있어야 됩니다. 친구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사, 여당과 야당 사이에도 평화가 있어야 됩니다. 특히 국가의 평화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대한 민국에 평화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남·북한 사이에도 평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태풍이 한 번 몰아치면 바다 표면에 사는 물고기들은 안 죽으려고 발버둥치면서 이리 저리 숨고 야단이 납니다. 그러나 바다 깊이 사는 고기들은 끄떡도 없습니다. 아무런 상관이 없이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얕게 믿으면 걱정, 근심, 교만, 불순종, 죄악 가운데 빠지게 됩니다. 사랑도 얕게 하니까 의심했다가 사랑했다가 미웠다가 원망했다 변덕을 부리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도 깊게 믿어야 합니다. 깊은 믿음, 반석 같은 믿을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평화를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5. 부요케 하시는 축복 - 예수님의 가난함을 인하여 부요케 하신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부요케 하시는 하나님,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부자 되게 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했습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부자 되게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고 하면 같은 기독교인데도 불구하고 무슨 기복신앙이냐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육신의 부모도 자기 자녀가 잘 되기 원하고, 또 그렇게 되도록 교육시키고 후원을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풍족하게, 넉넉하게 만들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시편 112편 1∼3절 말씀에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부요하고 재물이 있고 넉넉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부요케 하시는 하나님, 풍족케 하시는 하나님, 나에게도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에 순종하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또 야고보서 2장 5절 말씀에도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나라를 우리에게 상속하시고, 가난한 사람을 택해서 부요케 만드시는 역사를 이루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신도가 3년 되면 집사라고 합니다. 축복 받아서 집을 사라는 '집사'입니다. 그 다음은 장로입니다. 장로는 장사해서 부자 되라는 '장로'입니다. 권사는 집사 마누라, 장로 마누라 따라다니면서 '집사고 부자 되시오.'라고 권하라는 '권사'입니다.
기독교는 축복의 종교입니다.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1999년도, 이 20세기에는 가난과 슬픔과 절망 속에 살았다할지라도 2000년대 내년부터는 한사람도 빠짐없이 다 부자 되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없으면 아예 이름을 '김부자, 박부자, 이부자'로 바꾸세요. 하나님은 축복의 근원인 말씀을 통해서 역사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부자 되고 풍족한 삶을 삽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도와주는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계 은행의 통계를 보면 빈부의 격차가 점점 심해지고 있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전쟁은 '빈곤과의 전쟁,' '가난과의 전쟁'이 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의 싸움이 심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한국도 월 소득 23만원 이하로 사는 빈곤층이 천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80%가 빈곤층이고 부유층은 20% 밖에 안됩니다. 빈부의 차가 많이 생기면 도둑, 강도, 사기꾼이 많이 생깁니다. 사회가 혼란 속에 빠지게 됩니다. 정책적으로도 빈부의 차를 없애야 되겠지만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고 도와주는 사랑의 유대관계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축복 받으면 가난한 사람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말라기에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쌓을 곳이 없도록 풍족한 축복을 주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사업가가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이제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축복예배를 좀 드려 주십시오."
목사님이 축복예배를 드리고 나서 질문을 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십니까?"
"십일조가 뭡니까?"
"십일조를 드려야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십일조를 드리십시오."
여러분, 십일조는 축복의 씨앗이 됩니다. 기적의 씨앗입니다. 하나님은 막연하게 아무에게나 축복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 드리는 사람, 순종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미국의 한 빈민촌에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사는 조지 이스트만 이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들 모자는 그 날 벌어 그 날 먹고사는 어려운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조지의 어머니는 아들이 잠들기 전 그의 손을 꼭 잡고 기도하는 일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지금은 비록 가난하지만 조지가 훌륭히 자라 이 나라의 큰 일꾼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어머니는 눈물로 기도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조지는 깊은 밤에 일어나 다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우리 어머니 기도가 헛되지 않게 해 주세요."
그래서 아들이 잠들기 전에는 어머니가 기도하고 어머니가 잠이 들면 아들이 기도를 하고, 어머니와 아들이 번갈아 가며 기도를 했습니다.
"돈 많이 벌어 하나님 앞에 헌금도 많이 드릴 수 있도록 큰 사업가가 되게 하옵소서."
조지는 커서 사진관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열심히 기술을 배우고 조그만 가게를 열어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간편한 휴대용 카메라와 필름을 만들어서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국내는 물론 세계 여기저기서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나중에는 공장을 짓고 세계적인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이스트만 코닥(Eastman Kodak) 그룹의 회장입니다. 어머니와 아들의 눈물의 기도가 이루어져 세계적인 기업의 회장이 되었고, 자기 재산의 절반을 하나님 앞에 드리게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맨손으로 눈물로 드린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때가 되어 축복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기도하는 사람, 찬송하는 사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부요케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C.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주시는 구원의 축복, 임마누엘의 축복, 기쁨의 축복, 평화의 축복, 부요케하시는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자

오늘 참석한 성도 여러분, 이 성탄절은 막연히 왔다가 가는 그냥 절기가 아닙니다. 이 성탄절을 통해서 축복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복도 한두 가지가 아니라 5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의 축복,'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마누엘의 축복,' '기쁨의 축복,' '평화의 축복,' '부요케 하시는 축복'을 주십니다. 이 다섯 가지 축복이 오늘날도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한 아이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별탈이 없어서 일주일만에 그냥 퇴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2년 뒤, 경기를 심하게 해서 병원에 가 보니 교통사고 때 놀란 후유증으로 뇌에 물집이 잡혔으니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막대한 수술비도 문제였지만 뇌수술 잘 못했다가 어린아이가 혹시 더 잘 못되는 것은 아닌가 해서 몹시 염려스러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수술을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지요?"
기도원에 가서 금식을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충성하지 못했던 죄를 다 회개하고 나니, 믿음과 희망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수술하지 않고도 낫게 될 것을 믿습니다."
이렇게 감사기도를 드리고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내가 말로만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말고 내 믿음을 하나님 앞에 보여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장은 돈이 없지만 병원비와 수술비, 약값 등을 계산하여 매달 건축헌금으로 드렸습니다. 건축헌금이 3년 만에 채워지면서 아이도 점점 차도가 있더니 완전히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음속에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을 행동으로 보일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내 마음도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입으로 시인하며 예배드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정성껏 물질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 물질을 통해서도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참석하신 성도 여러분, 한 분도 빠짐없이 성탄절의 5가지 축복을 다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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