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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우리의 가정이 바로 서야 합니다 (엡 6:1-2)

by 【고동엽】 2022.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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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가정이 바로 서야 합니다 (엡 6:1-2)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지금 모든 것이 정상이 아닙니다. 비탈에 선 나무와 같습니다. 아슬아슬 합니다. 지금 곧 무슨 일이 일어 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위기 시대입니다. 정치도 그렇습니다. 경제도 그렇습니다. 문화도 말이 아닙니다. 교육도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그럼 가정은 어떻습니까? 부모가 부모의 책임을 다 못하고 있습니다. 자녀도 그렇습니다. 오늘이 어버이 날인 것 잘 아시지요? 점점 이런 날의 색깔이 변하고 있습니다. 잘 못하면 너무 보수적이라 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 하나님은 어떻게 가르치셨는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이 시대는 너무 인간적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길을 걷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사람다워야 합니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는 다름을 잘 압니다. 사람은 영물입니다. 만물의 영장입니다. 가정은 가정다워야 합니다. 가정은 집이 아닙니다. 가정은 사랑의 요람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은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가족 관계입니다. 부모가 있습니다. 자녀가 있습니다. 이 관계가 깨어지면 그것은 이미 가정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가정다운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가정이 점점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미 가정이기를 거부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들 말세라 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을 다 이구동성으로 부르짖고 있습니다. 제일 좋은 교사는 부모입니다. 가장 좋은 학교는 바로 가정입니다. 꼭 교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른 예절, 바른 인간성, 바른 사회성, 이런 것은 바로 집에서 부모에게 배우는 것입니다.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저희들이 어렸을 때 (초등학교) 교훈이나 학급에서의 급훈은 늘 정직, 성실, 착하고 아름답게,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이 더 세련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교훈이나 급훈이 없습니다. 너무 고리타분하다고 합니다. 이런 것은 다 웃음꺼리에 불과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보세요. 어른을 보고도 인사를 하지 않습니다. 어른 앞에서 담뱃불을 빌리는 시대입니다. 아이들이 싸우다가도 어른이 보이면 싸움을 거쳤습니다. 지금을 말리는 어른을 두들겨 패는 시대입니다. 또 법도 이상하지요. 아이들이 싸우는 것을 말리다가 아이들에게 맞아도 어른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법이 이 사회를 맑고 바르게 할지가 걱정이 됩니다. 가정이 가정다워야 합니다. 가정이 바로 서면 사회가 바로 서는 것입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고 예절 바른 시민이 되자는 것을 가정에서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가 바로 가르쳐야 합니다. 작은 교통 도덕을 잘 지키지 못하면서 선진국 시민이 되겠습니까? 차를 운전하면서 침을 밖으로 뱉는 행위, 차에서 쓰레기를 슬쩍 길에 버리는 행위, 담배 꽁초를 길에 버리는 행위, 이런 것부터 바로 잡으면 사회는 아주 깨끗해집니다. 우리 기독교인도 다른 불신자 보다 더 정직하고 인사성 있고 친절하면 전도도 더 잘 됩니다. 또 우리 교인들이 어른을 잘 섬기면 자연히 전도가 잘 될 것입니다. 어려운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행복하면 사회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 맛 나면 사회도 자연히 살 맛이 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의 얼굴입니다. 우리를 보고 사회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사회를 향해서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향해서 세상의 빛이라 하신 것입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정말 가정다운 가정을 꾸며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가정을 이루시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하나님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 기초가 바로 가정인 것입니다. 이런 건강한 가정을 이루어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드러내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5월의 푸르름처럼 늘 건강하고 가정이 가정다워지기를 바랍니다.

I. 바른 가정생활을 해야 합니다

가정은 결혼 생활로부터 시작 됩니다. 결혼이 순수해야 합니다. 정상적인 결혼이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결혼은 무조건적인 약속입니다. 결혼 서약을 합니다. 건강하거나 병이 들거나 가난하거나 부요하거나 어떤 경우에도 서로 사랑하며 산다고 약속을 합니다. 얼마나 멋진 약속입니까? 이런 약속이 잘 이루어지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런 약속을 깨면 불행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이런 약속은 기독교의 전통적인 약속입니다. 그들은 저들의 목숨을 걸고 사랑한다고 합니다. 동고동락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군에서는 군인의 길이란 것을 외웁니다. 그 중에 우리는 생사고락을 같이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전우애인 것입니다. 이 보다 더한 것이 결혼 서약인 것입니다. 이제부터 둘이 아니요, 한 몸이라 고 합니다. 거기는 조건부가 아닙니다.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죽음이 갈라놓기 전에는 그들은 한 몸입니다. 모든 계약서에는 다 단서가 있습니다. 그런 결혼에는 단서가 없습니다. 어떤 조건도 없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결혼의 특징입니다. 결혼에 들어가는 한 쌍의 남녀는 그들이 신앙 양심으로 서약을 합니다. 그러니 이 약속은 잘 지켜져야 합니다. 그들은 미래가 다 밝은 것만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불확실 합니다. 미래는 다 모르는 세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약속을 합니다. 멋있지요. 그런데 이런 약속을 잘 지키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런 것은 다 이 집의 머리가 예수님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림에 “그리스도는 이 집의 주인이시요 보이지 않는 손님이시요 모든 대화에 말 없이 듣는 이”시라는 글이 적힌 것을 잘 아시지요. 집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을 다 듣고 계십니다. 우리가 행동하는 것을 다 보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속마음까지도 다 아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렇게나 행동할 수가 없지요. 우리는 어른 앞에서는 늘 조심합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주님이 계시는데 어떻게 아무렇게나 행동을 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결혼은 잘 해야 합니다. 잘 선택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의 결혼을 위해 늘 기도하시지요. 그렇습니다. 젊은이들도 자기들의 결혼을 위해서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선택은 신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선택한 데 대해서는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즈음은 결혼 조건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을 봅니다. 저는 만족한 100점 신랑과 100점 신부는 드물다고 봅니다. 다 자기 마음에 맞는 100점 짜리가 있으면 좋지만 대략 자기가 세운 조건 중에서 한 절반(50%) 정도만 맞으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예수 믿어야 한다는 것이 절대조건이지요. 그러기에 어려서부터 이런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정해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모순 덩어리입니다. 사람은 성격이 같으면 잘 싸운다지요. 서로 다른 성격의 사람이 잘 산다는 말도 합디다. 항상 우리는 하나님 편에서 생각 할 줄 알아야 합니다.

II. 부모에게 효도해야 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공경하라는 말씀 잘 아시지요. 성경은 부모에 대한 말씀이 대단히 많습니다. 모든 것은 뿌린 대로 거둡니다. 콩 심은 데 콩이 납니다. 팥 심은 데 팥이 납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면 자기도 그 자식에게 효도를 받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면 그 상이 다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저는 어느 교회 부목사로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가정에 심방을 갔습니다. 한옥으로 제법 큰 집이었습니다. 얼른 보아 살림살이가 넉넉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의 예상대로 그 집 주인은 어느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셨습니다. 예의도 바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문간방에 사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자기 아버지라 합니다. 그러면 올라오시라 했습니다. 그런 형편이 못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랫방으로 내려가자고 하니 깜짝 놀랍니다. 그건 더더욱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 아버지는 젊으셨을 때 바람둥이셨답니다. 부인과 자식을 돌보지 않고 늘 술과 여자로 한 평생을 사신 분이라 합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고 그 아버지도 나이가 많아 건강을 잃고 오갈 데 없어서 자식이라고 왔지만 아들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소행을 보면 문간방도 오감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겨울에 불도 피우지 않은 냉방에다 둔다는 것입니다. 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오죽했으면 이런 행동을 하겠습니까마는 그건 너무 잘못한 것입니다. 제 짧은 생각을 그에게 전하고 이러시면 절대 안 된다고 설득을 했습니다. 그는 제 말을 그래도 알아들었는지 그 다음부터는 방에 불도 넣어 드리고 했습니다. 부모가 부모 노릇 못 해도 자식은 자식 노릇하면 됩니다. 그러니 부모에게 잘 하면 복 받습니다. 부모를 멸시하면 하나님이 절대 복 주시지 않습니다. 예전부터 부모나 임금이나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아야 한다는 것 잘 아시지요. 예전에 어른들은 부모에게 불효하면 천벌을 받는다고 불신자도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교인들도 이런 말을 잘 기억하고 잘 해야 합니다. 교육 중에 어른에게 잘 하는 것도 정말 좋은 교육입니다. 이런 것을 저희 자녀들이 잘 보고 배웁니다. 교육이란 거창한 것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사람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도덕이라 합니다. 사람은 사람이 지켜야 할 길을 우리는 윤리라 합니다. 사람만이 가는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에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 했습니다. 이것은 율법입니다. 계명입니다. 만일 지키지 않으면 벌이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법 중에 부모에 관한 것을 먼저 언급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부모의 은혜를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게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어린이가 어른 위에 있습니다. 어른을 섬기지 않습니다. 어른이 집에 들어오시지 않으면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른이 오시면 반드시 일어서서 인사를 합니다. 어른의 밥상은 따로 차려드렸습니다. 이것이 예의바른 삶입니다. 저는 군에서 지키는 여러 가지 예절이 정말 좋다고 생각합니다. 장군 식당이 있습니다. 장교 식당이 있습니다. 따로 사병 식당이 있습니다. 사람이면 다 같은 사람인데 왜 차별 하느냐고 말하는 것은 아직도 사람이 더 배워야  합니다. 우리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더 인간적이고 더 신앙적인 사람이 되어 보자는 것입니다. 가정이 가정답지 못하면 그 사회는 곧 무너지고 맙니다. 자기가 갈 길이 있습니다. 저는 가정 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버릇없는 어린이가 많습니다. 오냐 오냐가 다 좋은 것만 아닙니다. 잘못된 것은 꾸짖어 주는 것이 바른 교육입니다.

맺는 말 :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지금은 가정이 위기를 맞았습니다. 건강하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가정이 가장 중요한 사회의 단위입니다. 그런데 가정이 흔들리면 모두 다 다 흔들리게 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공경하라 이것이 축복의 지름길이라 했습니다. 부모에게 내려진 복을 수 천대까지 주신다고 했습니다. 저주는 3,4대까지 내리신다고 했습니다. 부모에게 잘 하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다 부모로 말미암았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잘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부모를 내다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모를 때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모를 굶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자식을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때리고 욕하는 그런 부모도 있습니다. 얼마든지 우리 주변에서는 이런 비정상적인 사람을 흔히 볼 수가 있습니다, 복 받을 사람은 그 자세가 다릅니다. 우리는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것쯤은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주변의 어르신들, 선생님들, 이런 사람이 다 우리가 섬겨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늙어지는 그 날이 옵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 믿음의 가족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 합니다. 주 안에서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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