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신년설교) 엡4:23~24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신년설교) 엡4:23~24
사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 말씀은, 과거 40년 전에 신년설교로 많이 들었던 말씀입니다. *42:9참조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행하실, 옛적 일과는 비교가 안 되는
새 일에 대한 묘사인데, 이 묘사가 그려내는 내용은
메말라 죽어 있는 상태에 생명의 물이 쏟아짐으로 다시 생명이 회생하는 것이죠.
본래적 뜻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 때에
광야와 사막을 완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특별한 보호와 배려를 베풀어 주실
것에 대한 약속이지만, 미래적으로는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새롭게 하시는 사역은 신약에서도 계속 됩니다.
갈6:15 ‘할례를 받고 안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후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새해에는, 모두가 ‘새로운 피조물,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내가 들어가는 곳곳이 정말, 사막이 변하여 옥토가 되고
길이 없는 곳에 길이 만들어지는..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역사에
내가 도구로 쓰임 받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주제
▲하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십니다. 또한 새롭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시104:30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창세기 1장에만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나타나는 게 아닙니다.
그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지난 인류 역사 내내 계속되어왔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꽃을 피우시고, 곡식에 열매를 맺게 하시고,
짐승들과 물고기들을 포함해서, 사람들에게 생명(아기)을 주시고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계속 되게 하시면서 창조사역을 지속하시죠.
위 시104:30절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제일 새롭게 하기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 각자입니다.
시편103: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청년(본문에 청춘)들은,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왜냐면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행2:17절에, ‘노인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습니다.
젊은이만 비전을 가지는 게 아니고, 노인들도 꿈(비전)을 꿉니다.
성령이 임하신 사람은.. 늘 그 마음이 청춘이요, 독수리인 것입니다.
시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세상에서 가장 큰 복, 내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복은
‘죄 사함의 은총’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구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받았던 것입니다.
새해에도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되는 역사가 매일 일어난다면
정말 가장 복된 한 해가 될 것입니다.
반면에, 이 세상에서 무슨 노벨상 같은 업적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내 안에 정직한 영이 <새롭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건 모래위의 집이요, 진정한 복이 되지 못하죠. 언젠가는 무너집니다!
엡4:23~24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그저 지옥갈 영혼을 구원하는 게 끝이 아니라
위 말씀처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죠!
그럼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 사람을 입어서’ 뭘 하려느냐?
그저 우리 집 잘 살고, 자녀들 다 성공하고, 내가 무병장수 하는 것이냐?
그거 하게 하시려고,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겠나요?
그건 주님이 십자가를 안 지셔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인도의 부자나, 중동의 부호들, 세계적인 갑부들을 보십시오! 안 믿어도...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신 것은 ‘주님의 새 창조에, 우리를 동역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새해에는, ‘우리 각자가 주님의 새창조에 동역하는 한 해’가 되기 원합니다.
◑주님의 새 창조 역사에 동역하는 사람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새하늘과 새땅’을 창조하시고,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나 먼 미래에 있을 일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건 ‘완성된 미래’이고,
오늘 현실에 있어서도, 2023년에 있어서도
‘새하늘과 새땅’이, 하나님의 형상인 내가 들어가는 곳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나를 통해서!
사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성도는 ‘성령의 사람’입니다.
성도 속에는 놀라운 ‘창조의 능력, 성령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들어가는 곳에는, ‘창조의 역사’가 반드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가나안 농군학교를 일꾼 김용기 장로님은,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이
고향입니다. 그 분이 예수를 믿고, 새벽기도를 드리자
당시 황무지였던 야산들이, 그 분의 눈 앞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 그림이 그려졌지요!
그 분이 무슨 자본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무슨 해외유학을 가서 보고 배운 선진 지식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가 보였던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돌밭, 야산’에 불과한 불모지 땅이었습니다.
그분은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역사로,
처음에는 삽과 곡갱이 자루만 들고.. 그 일을 시작했습니다.
정말 그 분의 ‘창조사역’은 20세기 말에, 한국에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창1:1절 같은 창조는 아니고,
계21:1절 같은 새하늘과 새땅의 창조는 아니지만,
그 모델이 되는, 그 예시가 되는, 그 샘플이 되는 창조사역은 일어났던 거죠!
성령의 사람은, 반드시 그가 가는 곳에 ‘창조의 역사, 새롭게 되는 역사’를
일으키는 돌풍의 주인공이 된다는 거죠!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하나님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먼 미래에만 새롭게 하시는 게 아니라, 오늘날에도 새롭게 하십니다.
우리만 새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만물이 새롭게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 역사는 오늘날에도 계속 되는 것입니다.
▲'엔트로피의 법칙' 이 있죠.
우리 말로 '열역학 제2법칙'입니다. 쉽게 말하면, 집에 사과나 귤을 사 놓으면,
결국 찌그러지고, 말라 비틀어집니다.
만물은 자연히 퇴화되고, 노화된다는 법칙이죠. 생명체는 다 퇴화됩니다.
좀 유식한 표현으로 '모든 물질은 점점 질서에서 무질서로 변해간다'는 거죠.
그런데 '생명체'는 엔트로피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신트로피' 라는 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강조하는 책입니다. *신조어
'신트로피(Syntropy)'는 무질서에서 질서 상태로 향하는 법칙을 뜻합니다.
질서에서 무질서 상태로 향하는 '엔트로피(Entropy)'와 반대되는 개념이죠.
즉 신트로피는 인간의 타락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창조 질서 속에서
영적·도덕적·윤리적으로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놀랍게도.. 우리 환경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퇴화, 퇴보, 부패가 아니라,
엔트로피의 법칙을 역행해서, 창조, 질서, 새롭게 됨, 진보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속에 성령이 역사하시는 신자는,
그 성령 하나님의 '창조 역사'의 도구가 되어, 엔트로피의 법칙이 판 치는 곳에서
'신트로피 법칙'이 더욱 강하게 작용하는 거죠. 창조 역사를 일으킨다는 뜻이죠!
서로 모르던 사람이 모여서 서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게 되고
서로 갈등했던 사람들이 모여서 화목하게 되고
깨어지고 상처입은 사람들이 회복하게 되고...
이것이 모두 신트로피의 법칙,
즉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법칙인 거죠.
이 세상에는 엔트로피의 법칙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있고
반대로 신트로피의 법칙을 따라 사는, 두 종류의 사람들로 구분됩니다.
세상에서 죄에 사로잡힌 '엔트로피의 법칙'을 따라 살아가는 거죠.
두세 사람이 함께 모이면, 하나 되는 것이 아니라
갈등하고, 서로를 미워하는... 그래서 붕괴되고 점점점 썩어가는
그러한 엔트로피의 법칙을 따라 살아가는 자연인들입니다.
그러나 정반대의 흐름이 또 있습니다. 신트로피의 법칙입니다.
요셉은 형들을 용서했고, 그들을 축복함으로
새로운 백성들의 물줄기를 탄생하게 했습니다.
다윗은 그 사울을 복수하지 않고, 의를 따름으로써, 그 모든 고난을 이기고
하나님의 나라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죠. 신트로피의 생명 창출이죠.
예수님을, 당시의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 지도자들은
엔트로피의 법칙을 따라, 예수님을 질투하고 미워하므로 그를 죽이려고 했죠.
그리고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신트로피의 법칙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죽음(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놀라운 축복을 우리 모두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도, 이 엔트로피의 법칙과 신트로피의 법칙이 늘 상존하죠.
우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이들이기에
우리는 '신트로피의 법칙'으로 살아가는 백성인 줄로 믿습니다.
질투와 미움의 원리를 따라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와 축복의 법칙을 따라 살아할 때
우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이라는 것을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사랑하셔서, 자신을 죽인 모든 사람들을 포함해서
그들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심으로 사랑하셨죠.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내놓는 사랑을 통해
세상에 신트로피의 드라마, 신트로피의 법칙을 시작해 주신 것입니다.
가나안 농군학교의 김용기 장로님도 그런 분이셨고요.
△우리나라에 겨울철 대표적 과일인 '사과', 사과가 없는 겨울을 생각하는 것은
정말 끔찍합니다. 그런데 사과가.. 옛날부터 우리나라에 있었던 게 아니랍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우리나라에는 19세기말 개화기 이전까지 중국에서 유래된 능금이,
이후에는 서양 사과가 본격 도입되어 재배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7세기 후반, 중국 능금 품종인 ‘빈과’가 청나라를 방문한 사신들을 통해 도입
되었고, 그러나 현재 재배되는 사과는 1880년대 후반 서양 선교사를 통해
서양 품종이 들어왔고, 그 후 일본 아오모리 현 등에서 신품종 사과가 속속
도입되었다. 한국인에 의한 경제적 재배는 1902년 윤병수 씨가 원산부근에서
‘국광’과 ‘홍옥’ 품종으로 시작되었다."
어느 설교에서 들은 기억인데, 스코틀랜드 선교사가 한국에 와서 보니,
한국 기후가 스코틀랜드 기후와 비슷해서, 사과가 잘 자랄 것으로 예상해서,
사과 묘목을 들여왔다 합니다. 과거 중국에서 들여온 것과는 품질이 달랐죠.
이것도 일종의 '창조 사역'입니다.
한국에 사과를 전래해 준, 고마운 선교사님이지요.
(그렇다고 외래종 식물을 함부로 들여오면, 국내 생태계 교란이 일어나 조심!)
▲마치 엔트로피의 법척 처럼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세상은
슬프게도 죄로 말미암아 어그러진 세상이었어요.
그래서 자연인 안에는 아쉬움도 있고, 불만도 있고,
'아~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것도 있고,
하여간 부족하고, 부패하고, 망가진 곳입니다.
그러나 창조의 세상에서는, 그 원형이 회복되면 될수록
이 모든 것이 새롭게 될 줄 믿습니다.
새해에는 이 복을 우리 공동체가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새롭게 되어야 되는 존재고, 새롭게 될 존재입니다.
지금은 비록 우리가 부족하고, 불완전하고, 아프고,
지금은 비록 우리가 죽고, 고통스럽고, 슬픔 가운데 있을지라도
우리는 천국에서 살게 될 겁니다. 아멘! 만물을 새롭게 하실 거예요.
그러나 먼 미래의 일로만, 이 성경을 해석하면 안 됩니다.
'현재 천국'이란 말이 있잖아요. 그 천국은 현재에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미래 천국의 그림자로서요!
그리고 이 소망과 기대는, 성령으로 우리 현실에서 맛볼 수 있어요.
가정천국, 직장천국, 교회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2023년도에 우리 교회에 주신 키워드가
이제 "새로움 new start"에 대한 것입니다. *펀 글
이 새롭게 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창조의 속성이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성령의 속성은 계속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다르고
그래서 계속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이 새로움은, 하나님의 창조의 세상에서는
내 주위의 모든 게 새로워질 것입니다.
가장 먼저는, 내가 매일 새롭게 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충만을 날마다 받는 것이죠.
그러면 내가 '하나님의 창조사역, 성령의 창조사역'에 동역자가 됩니다.
성경에 우리가 '주와 함께 왕노릇한다'는 구절이 곳곳에 나오죠.
롬5:17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딤후2: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계22:5 '그들이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
왕노릇은..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역자가 된다는 뜻이죠.
무슨 으흠 하고 위세 떨치는 고을 원님이 된다는 뜻이 아니에요.
사회와 환경과 공동체를 섬김으로써, 왕노릇 하는 거죠.
그 결과는 '창조 역사'를 창출해 내는 겁니다.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는 역사에, "우리가 함께 동역하게 하신다"는 거예요.
그 새 창조 사역에, 우리를 끼워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왕노릇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교회가 어떤 존재인지를, 여기서부터 깨닫게 됩니다.
교회는 만물을 새롭게 하는 일을 하는 곳이라는 거예요. 아멘?
오늘도 우리는 '만물을 새롭게 하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뭐하는 존재냐?
만물을 새롭게 하는 존재입니다.
가정을 새롭게하는 존재,
직장을 새롭게 하는 존재,
학교를 새롭게 하는 존재,
국가를 새롭게 하는 존재,
한 세대를 새롭게하는 존재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의 정체성입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는 것이, 교회의 능력이며, 영광이며, 사역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해야 될 사명들, 사역들이 있잖아요.
그 사역의 본질이 뭐냐면, 만물을 새롭게 하는 거예요.
무엇으로? 성령충만으로!
그가 하나님의 백성이고, 교회의 정체성 인줄 믿습니다.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계21:5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눈에 보이는 이 세계를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걸
믿으십니까? 아멘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창조만 해 놓고, '이제 나 몰라라' 하고 내던져 놓고 계실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매일 새창조의 역사를 계속해 나가십니다.
그 일에, 하나님은 동역자를 찾고 계십니다.
죄와 타락으로 망가진 세상을, 새롭게 회복시키고, 그 원형을 다시 회복시키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사람들을 통해서요!
과거에 우리 조상들이 쓴 한자어 가운데 일신우일신 日新又日新 이 있었죠.
매일 또 새롭게 된다는 뜻입니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매일 성령충만'입니다.
그렇게 될 때, 새해에는 내가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와 함께 왕노릇'하며, 다스리는(섬기는) 자로 초대받는 것입니다.
그런 새창조의 은혜가 나와,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 함께하시는 새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