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에 관한 신학 살후1:11~12
결심에 관한 신학 살후1:11~12
사회자 : 어떤 그리스도인은 신년 결심 New Year’s Resolustion 을 믿고 사용하며
어떤 이는 반대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다수의 이메일을 받았는데요.
존 파이퍼 목사님,
‘크리스천에게 신년 결심이 유익한가요, 해가 되나요?
그건 십중팔구 작심삼일로 끝날 터이니 실패를 위한 결심이거나,
아니면 그저 아무짝에도 필요가 없는 건가요?’
◑존 파이퍼 목사의 답변
만약 <자기 의지력>의 힘으로 해내려는 것을 어떤 결심을 선포하는 것이라면,
신년결심은 필히 실패할 것이며
혹시 본래 의지력이 강한 사람이라서
자기 결심을 오래 지속한다 하더라도, 이건 기독교 신앙 방식의 성공은 아닙니다.
그러니 실패해도 실패고, 성공해도 실패입니다.
크리스천의 삶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크리스천의 삶은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연초든, 월초든, 주초든, 하루나 한 시간의 시작이든
자기가 말씀에 순종하려고 자기 의지력을 짜내고
강한 결심의 힘으로 뭘 하려고 결심하면서
그것을 그들은 기독교 신앙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자기 의지 will 가 신앙에 전혀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기 의지 will 가 반드시 필요하죠.
그러나 근본적으로 크리스천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또는 은혜로 이끄시는 힘, 도우시는 힘을 따라서
자기 의지가 (기차로 치면 객차로) 끌려가는 것이지,
자기 의지가 기관차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크리스천의 거룩함의 신비는
내가 아닌 다른 이의 능력으로, 즉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성령으로 행하며’
또는 다른 성경적 표현으로
‘믿음으로’, 즉 도우시는 분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행합니다.
여기에 3가지 성경적 표현이 나오는데요, 다 비슷한 말입니다.
1) 성령의 능력으로 행한다.
2) 믿음으로 행한다.
3) 은혜로 산다, 행한다.
셋 다 자기 힘으로, 자기 의지로, 자기 능력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어떤 힘(성령, 믿음, 은혜)에 이끌려서
산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의지하며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일하셔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행하게 하셔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게 하십니다.
▶‘결심’을 지지하는 구절 1.
새해, 새 달, 새로운 일주일, 새로운 하루를 위한 원칙은
벧전4:11입니다.
‘만일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라!’
풀어서 설명하면
“즉 어떤 일을 하겠다고/ 하지 않으려고 결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 안에서 그걸 결심함으로써!”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라!
‘하나님이 주시는 힘’이란
성령, 믿음, 은혜 .. 표현은 약간씩 다르지만 다 같은 뜻입니다.
따라서, 네 여러분,
매년 초에, 매달 초에, 매주 초에,
매일 아침에, 혹은 매 시간마다 결심하십시오!
단 나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그 선한 결심을 이루어나가는 것입니다.
▶결심을 지지하는 구절 2. 바울은 또 이렇게 설명하지요.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고전15:10
따라서 이렇게 말하는 바울의 삶을 상상해 보면,
그는 아침에 일어나 계획을 세웁니다.
‘빌립보에 가야 돼,
오늘 밤에 천막 세 개를 만들고, 설교 준비도 해야 돼!’
이런 일을 내가 결심하지만
그러고 나서 말하길
‘내가 하는 게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3. 바울은 롬15:18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해
나를 통해 역사하신 것 외에는
감히 말하지 않노라’
따라서 바울은 ‘스페인으로 갑시다. 나는 거기에 가기로 결심했어요.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합시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고 나서 기록하길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해 역사하신 것 외에는 말하지 않노라!’
따라서 바울의 결심은, 스페인에 가겠다고 말한 것은
주님이 자기를 통해 역사하신 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 말고는 말하지 않겠다고 그는 선언합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삶의 핵심입니다.
그냥 자기 의지로, 도덕윤리나 바른생활처럼, 결심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4. 빌2:12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여기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결심하라, 결단하고 행하라, 애쓰라!’ (인간 편)
그러면서도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편)
이것이 크리스천의 삶을 사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결심’에 대한 제 대답은 긍정입니다.
크리스천은 계획을 자주 세워야 합니다.
연초에만 결심할 게 아니라
뭔가 필요를 느끼거나 뭔가 해야 할 때
또는 반대로 뭔가 하지 말아야 할 때, 뭔가 (죄를) 끊어야 할 때
우리는 결심, 결단해야 합니다.
안 해야 할 것은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있다면, 하기로 결심하십시오.
그 결정을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하십시오.
그리고 그 결정에 순종하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따라서 이루어가십시오.
하나님은 결심이 없는 마음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건 믿음이/성령이/은혜가 그에게 역사하지 않는다는 소리지요.
신앙이 깨어있지 못하고, 잠자고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결심 resolution 을 두려워하는 크리스천들이 많습니다.
이런 신념을 갖게 된 이유는, 일부 신학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크리스천의 자유’, ‘성령이 주시는 자유’, ‘양심의 자유’
이런 자유에 너무 과도하게 극단적으로 치우치면
아무런 결심, 결단도 없이.. 평생 신앙생활 하게 되지요.
결심의 반대는, 성숙한 성도의 자유가 아닙니다.
오히려 방종, 나태, 게으름, 용기의 부족입니다.
그래서 결단을 못하는 거죠
▶결심을 지지하는 구절 5.
살후1:11~12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12.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여기에 <결심의 신학>이 담겨 있습니다.
새해나 새 주간 결심에 대해 말하는 가장 중요한 구절입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결심에 대한 신학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모든 선한 일과 믿음의 역사에 대한 <결심>을 (내 편의 일)
그의 능력으로 이루게 하사 (하나님 편의 일)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것을 결심해야 합니다.
삶에서 선한 것을 결심하십시오.
믿음으로 추구함으로 믿음의 일이 되어야 합니다.
내 의지적 결심과 실행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 결과 하나님은 그런 믿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선한 결심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것이 살후1:11~12 두 구절에 담긴
<결심에 관한 신학>입니다.
따라서 오늘 질문에 대한 제 답은
신년 결심 뿐만 아니라 항상 결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