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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마2:1~12

【고동엽】 2024. 11. 24. 07:35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마2:1~12    



마태복음 2장에는 예수님의 성탄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서로 대조되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경배 할 수 있었고 
또 마땅히 경배해야 하는 이들은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예수님의 탄생을 알 수 있는 정보도 없었고 
또 있더라도 지극히 제한적이며 
알았더라도 경배하기 어려운 여건에 있는 이들은 
예수님께 경배하러 나온 일이 있었습니다. 아이러니입니다. 

마땅히 경배해야 할 상황이 있는 이들은 경배하지 않았고 
경배할 수 없었던 상황의 사람들이 경배하러 나오는 아이러니가 나타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라고 알려진 이들은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약속'에 대하여 지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가 있어야만, 알 수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5백년 전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거기 정착한 이들의 후예라는 설도 있죠)

박사들이 메소포타미아 문명 근처에서 왔건, 
아니면 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 이라는 예물의 성격으로 봐서 
아라비아 남부 쪽에 있었던 그러한 나라들의 최고 고위층 지도자들로 구성된 사절단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의 헬라어 '마고이'는 
점성술사, 마술사, 학자를 비롯하여, 
다니엘서에 나오는 다니엘의 직위와 같은 아주 고위층까지 가리키는 
매우 폭넓은 의미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이렇게 먼 거리에서 값진 예물을 들고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연극에서 보는, 동방박사 세 사람이 예물 한 가지씩 들고 
그렇게 여행 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먼 거리를 값비싼 재물을 들고 이동하려면 
어떤 보안을 지켜주는 그러한 경호대원들도 상당수 필요했을 것이고 
식량도 많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러므로 거의 원정대 수준의 큰 사절단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왔을 때, 그 사절단을 보고 
사람들이 요동치며 반응했고, 그것이 헤롯 왕에게 까지 보고되었던 것이죠.

▲또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하러 왔을 때, 예수님이 집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양치는 목자들이 경배했을 때는 구유에 누워 계실 때였죠. 
그러니까 예수님이 출생한 바로 직후에 경배하러 온 사람들이죠. 
최초의 경배자들은 목자들입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할례 받으시러 난지 8일만에 성전에 올라가셨고, 눅2장)

그 후에, 동방 박사들이 경배로 왔을 때는, 예수님이 집에 계셨을 때니
일정한 시간이 흘렀을 때였고, 
그 이후에 헤롯이 '두 살 아래 아기를 다 죽이라'고 했으니 
최대한 두 살까지 되었을 수도 있다.. 라고 보는 거죠.

박사들의 방문 시점이, 적어도 태어난 직후는 아니라는 거죠.
돐 전후, 즉 한 살 전후로 볼 수 있는 거죠. 

그러므로 이 동방박사들이 출발할 때부터 경배하는 시점까지는 
적어도 수개월 이상이 걸린, 매우 먼 거리에서 온 사절단이었던 것입니다. 

참고로, 고대 바벨론 지역에서 이스라엘까지는 약 1천 킬로입니다. 
낮에는 더워서 이동이 많이 어렵고, 밤에만 주로 이동했다고 할 때,
1천 킬로를 이동하는 데만, 몇 달이 걸리는 거죠.

이런 사절단 행렬이 당시 헤롯과 지도자들에게는 
큰 소동이 일어날 만큼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멀리서, 전혀 뜻하지 않은 사람들이,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이동하여 경배를 드리려고 하는 그런 사건이 일어났는데, 

정작 그 주변에, 근처에서 살고 있었고, 
그리고 구약의 약속과 메시야의 예언에 대하여 익히 알고 있었던 그들은 
예수님을 경배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헤롯이 이들의 방문을 받고 '유대인의 왕이 어디서 나느냐?'라고 질문했을 때 
측근들이 미가서 5:2절을 인용하며 '베들레헴 입니다' 라고 대답했던 율법학자들, 
그들은 메시야의 탄생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은 또한 이 동방 박사들이 찾아온 이유를 알고도, 예수님을 경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율법학자들에게, 헤롯이 질문했을때 "시간을 주시면 우리가 연구해 보겠습니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즉시 대답했다는 것은,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고,

그리고 모든 유대인들에게도 율법을 연구하고, 구약을 아는 사람이라면 
미가서 5:2절이 너무나 중요한 예언의 구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메시야를 경배하기에는 여러 가지 여건이 되지 않는 이들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경배했지만 
마땅히 경배해야 되는 사람들은, 경배하지 않는 이런 아이러니한 모습이 나타난 것입니다. 

또한 동방에서 부터 경배하러 온 박사들은 
예수님이 누워계신 그 집을 발견하고는 "크게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마2: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뛸듯이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앞에,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한 이들이 있었던 반면, 
예수님의 탄생을 놓고 가장 요동치며, 두려워하며, 
그리고 심지어 무고한 어린아이들을 비참하게 대학살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죠. 

동방의 박사들에게는, 성탄이 메리 크리스마스, 
우리가 인사하는 대로 '기쁨의 성탄 Merry Christimas'이었지만 

헤롯과 유대지도자들에게는 메시 크리스마스 Messy Christmas,
즉 모든 것이 요동치고 뒤엉켜버린, 엉망진창의 사건이 된 것입니다.
그들의 존재 자체를 뒤흔든 사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대조적인 반응이 일어났을까요?
동방의 박사들이 저 멀리 이박 나라로부터 최고위층이 그리고 
값비싼 예물을 가지고 와서 '유대인의 왕이 어디서 났느냐?' 
이렇게 질문한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들은 별을 따라왔지만, 단지 특이한 별을 보고, 별을 연구하기 위한 '연구'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다는'는 내용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사용한 '유대인의 왕' 이라는 명칭은 메시아를 일컫는 말이었게 때문에 
그들은 단지 별의 징조만이 아니라, 
구약의 역사를 나름대로 연구한 사람들이라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이들이 5백년 전 바벨론 포로기에, 거기 정착한 유대인의 후손임이 더욱 확실해집니다)

이렇게 특이한 별의 징조와 더불어 
구약역사에 나타난 메시아 예언을 함께 연결시킬 수 있는 계시를 받은 사람들, 
이들이 예수님을 경배한 곳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유대민족을 통해 태어났지만 
유대인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모든 민족의 메시아요, 온 세상에 구세주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로 이사야60장에 예언된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60:1~3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바로 이 예언의 말씀이,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먼 이방 나라의 최고위층이, 빛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임하신 것을 경배하기 위하여 
하늘에 빛나는 별의 징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신 것이죠. 

그리고 이들은 가장 큰 기쁨으로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마2:10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탄생을, 그저 기억해주기 위해서 온 것이 되었어는 안 됩니다.
그분은 어두운 세상 속에 빛으로 임하셨고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에 합당한 분이시기에, 

우리 개개인에게, 어둠 속에 빛이 비칠 때 그 빛을 응시하고 따라가는 이처럼, 
그리고 어두운 동굴속에서 헤어날 길이 없을 때, 빛이 비치므로 
'내가 살길이 열렸다'고 빛을 발견한 사람처럼 
가장 큰 기쁨으로 우리 주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경배하는 
그런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분노하며, 소동하며, 대학살을 자행했던 
헤롯과 또한 그 주위의 유대 지도자들의 모습을, 
우리는 잘 분석하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헤롯 대왕은, 40년 동안 유대를 통치한, 로마가 임명한 왕입니다. 
로마제국으로 부터는 인정을 받았죠. 그래서 그는 헤롯 대왕으로 칭송받았습니다. Herod the great 

그는 매우 교활하고 잔인한 정치 지도자였습니다. 
나쁜 의미로 정치적으로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40년 동안 통치를 했죠. 

유대민족의 환심을 사려고, 성전도 큼직하게 잘 지었습니다. 
그래서 그당시 유대지도자들 하고는, 결탁이 되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사람들은 그를 싫어했습니다. 
한 번도 공개적인 처형이 진행되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격장애자였고, 편집증적인 의심증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가족까지도, 나중에 반역할 의도가 전혀 없음에도 
자기 자신이 의심이 들면 다 죽여 버리는 거죠. 

그래서 아내도 죽여버리고, 장모도, 아들도, 손주고 할 것 없이 
가족들도 다 죽여 버리는 아주 폭군 중에 폭군이었습니다. 

그러던 헤롯에게 동방박사들이 와서 '유대인의 왕이 어디서 나느냐?' 했으니,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고, 반드시 제거해야 될 사람이 태어난 것이죠. 

헤롯은 어떤 면에서 정확히 본 겁니다. 
역사에 심상치 않은 인물이 태어났다는 걸 안 것입니다. 

저 멀리 이방의 고위층 사람들이 이렇게 비싼 예물 들고 경배하러 사절단이 왔으니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거구나' 라는 걸 알았고, 
그들이 '유대인의 왕이냐 어디서 나느냐' 라고 질문했으니 
'유대 왕이 나 외에 누가 또 왕이 있느냐?'라고 하면서, 자기 광기를 발동시킨 것입니다. 

근데 그는 교활했기에 거짓말을 한 거죠. 
정확하게 공격하기 위해서 거짓말로 '나도 경배하고 싶으니 알려달라' 
그래서 베들레헴과 그 인근에서, 어린아이들을 죽이는 대학살을 실행한 것입니다. 

▲이 헤롯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을 가로막는 사람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목적을 가진 지도자의 
그 숨은 뜻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거짓과, 자신의 불의와, 자신의 악함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그분,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실 그분의 오심은 

악으로 세상을 통치하고, 이기심으로, 욕망으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지도자들에게는 
무서운 대상이 존재하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사상 악한 지도자일수록, 
복음의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핍박하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역사상 독재자일수록,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시도는, 다 헛수고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요즘 시대는 중국 정부가 교회를 핍박하고 있죠. 모이지 못 하게 하고 있죠. 

그런데 간헐적으로 세계 교회 지도자들과의 대화에서 
영상으로, 화상으로, 중국 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 보면, 
놀랍게도 모일 수도 없고, 온라인으로도 성경을 가르칠수 없는 데도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더 늘어나고 있어요. 신비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고, 그분이 진리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계속 전파되는 것입니다. 막을 수가 없습니다. 

과거에 문화혁명 시기에, *1966~76
수백명의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일시에 다 추방당하고 
중국에서 이제 더 이상 기독교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에 세계 최대의 기독교인이 있는 국가가 되었죠. 

지금도 그때 문화혁명 때를 넘어서는 정말 엄청난 핍박으로 
교회를 모일 수 없게 만들고 있죠. 왜 그럴까요?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죠. 

교회가 정치적 집단이 아닌데, 왜 위협을 느낄까요? 
자신들이 추구하는 어떤 체제를 위협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교회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역사상 어떤 핍박과, 어떤 체재의 위협에도 
교회가 무너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분이 살아 계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때문이에요. 
예수님의 출생이 그냥 BC 와 AD를 나누는 분기점이 된 것이 아닙니다. 

일면 그들은 어떤 면에서 정확하게 본 게 맞지만, 잘못 본 것입니다. 
예수님은 헤롯의 자리를 탐내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헤롯은 예수님이 오신 이유를 철저히 오해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헤롯의 왕좌에 오르시려고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헤롯과 같은 사람들마저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의 구세주가 되시고, 그의 주인이 되시고, 
그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헤롯과 같이, 성탄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자신들이 가지고, 누리고 있는 좋은 것들을, 빼앗기 위해 오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를 질문하면, 단연코 가장 많은 이유는 이런 것입니다.
'난 그냥 내 맘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예수님 믿는 것이 자유를 빼앗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 안 믿는 우리 가정에, 종교가 안 들어와야 평화롭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평화를 빼앗아간다고 생각합니다. 
내 기쁨을 빼앗아간다고 생각합니다. 내 즐거움을 뺏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다 심각한 오해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도리어 자유와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 주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선물해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진정한 성탄의 의미는 선물입니다.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선물, 
우리를 값없이 의롭다 하시며,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선물로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헤롯과,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무너트리려 했고 
그리고 심지어 십자가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의 행하신 기적을 보았고, 말씀을 들었고, 
그 분의 선함과 인자하심과 그 순수함과 그 신성을 보았지만 
왜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까?
예수님이 메시아인 줄 몰라서가 아니라, 메시아인줄 알았기 때문이에요

자신들의 거짓과 불의와 악함이 드러나니까 
예수님을 제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셔서, 그를 지극히 높여 
살아 계신 구세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성탄 앞에서 두 가지 반응만 있을 뿐입니다. 
저 멀리 동방에서 온 박사들처럼,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는 사람들과, 

헤롯과 유대 지도자들처럼, 가장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인물인가.. 
그 둘 중 하나 밖에 없습니다.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닙니다. 그저 나는 나일 뿐입니다. 
예수님과 아무 상관 없이, 그저 나는 홀로 사는 존재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역사를 BC 와 AD 로 나누신 역사의 중심이 되시는 분일 뿐만 아니라, 
그분은 우리의 인생을 선택하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그분 앞에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분을 가장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가장 불편한 뉴스로 여기며 살 것인가? 

동방의 박사들처럼 반응 할 것인가, 
헤롯과 유대 지도자들처럼 반응할 것인가? 
둘 사이에 중립지대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절대적인 반응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유일한 길, 유일한 진리, 유일한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지 
나는 여러 선택지 중의 하나이다.. 라고 말씀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

토니는, 기숙사 경비원이었는데, 전직이 콜택시 기사였다고 합니다. 
언제가 그가 크리스마스이브에 겪은 일을 (장영희 교수에게) 이렇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날 밤 나는 시내 어떤 주소로 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콜택시 
도어벨을 누르니 한참 있다가 문이 열렸고, 
거기에는 마치 40년대 영화에서 막 걸어나온 듯한 복장에 
모자까지 단정히 쓴 아주 나이 든 할머니가 서 있었다. 
그 뒤로 보이는 방에는 가구가 다 흰색 천으로 덮여 있었다.

차에 타자 할머니는 주소를 주면서, 시내를 통과해서 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 돌아서 가는 건데요, 할머니.”

“괜찮아요. 난 시간이 아주 많아.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고 있는 중이거든. 
식구도 없고, 의사 선생님 말씀이 이젠 갈 때가 얼마 안 남았대.” 

어둠 속에서 할머니 눈에 이슬이 반짝였다. 토니는 미터기를 껐다. 
그로부터 두 시간 동안 토니와 할머니는 함께 조용한 크리스마스 새벽 거리를 드라이브했다. 

그녀가 젊은 시절 엘리베이터 걸로 일하던 빌딩, 
처음으로 댄스 파티를 갔던 무도회장, 
신혼 때 살던 동네 등을 천천히 지났다. 
때로는 어떤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그냥 오래 동안 어둠 속을 쳐다보기도 했다.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자 할머니는 “이제 피곤해. 그만 갑시다.” 라고 말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토니는 몸을 굽혀 할머니를 안아 작별인사를 했다.

“자네는 늙은이에게 마지막 행복을 줬어. 아주 행복했다우.”

나중에 토니는 이런 말을 했다. 
“난 그날 밤 한참 동안 할머니를 생각하며 돌아다녔지. 
그 때 내가 그냥 경적만 몇 번 울리고 떠났다면? 
그래서 크리스마스 날 당번이 걸려 심술 난 다른 기사가 가서 
할머니에게 불친절했더라면... 

돌이켜 보건대 나는 내 일생에 그렇게 위대한 일은 해본 적이 없어. 
내가 국회의원이었다 해도, 아마 그렇게 중요한 일은 하지 못했을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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