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호교수의 칼빈의 교회론
칼빈의 교회론
이양호
1. 서언
기독교 사상사에 있어서 교회론은 다른 교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끌어왔다. 그래서 교회론에 큰 공헌을 한 몇몇 신학자들이 교회론 연구에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키프리아누스, 아우구스티누스, 칼빈 등은 교회론에 큰 공헌을 한 인물들이며, 그 중에서도 칼빈의 공헌은 지대하다. 그래서 칼빈의 교회론을 연구한 밀너(Benjamin Charles Milner, Jr.)는 교회론이 칼빈 신학의 중심이라고까지 말하였다. 우선 밀너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의 구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이제 나는 『강요』최종판의 구상 밑에 깔려 있는 것은 ‘duplex cognitio Domini’가 아니라 성령과 말씀의 상관 관계 속에 이루어진 질서에 대한 칼빈의 개념이라고 제안하고자 한다. 그래서 제1권은 창조의 본래적 질서, 즉 하나님 및 죄와 무관한 인간에 대한 교리를 다루며, 제2권 제1장에서 제5장까지는 타락에 의해 그 질서가 붕괴된 것에 대해 다루며, 제2권 제6장에서 제4권까지는 질서의 회복, 즉 말씀(제2권)이 성령(제3권)에 의해 외적 방편들(제4권)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을 다룬다.” 이어서 밀너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이해는 . . . 칼빈의 교회론이 그의 신학 전반에 있어서 중심점이 됨을 확증해 준다. 교회는 세상에서 질서의 회복이기 때문에 제4권만이 아니라 제2권 제6장에서 제4권까지가 그것에 대한 설명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제1권(질서에 대한 개념)과 제2권 제1장에서 제5장까지(질서의 붕괴)는 그것의 전제들로 이해되어야 한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 구조를 이렇게 설명하는 것에 대해 학자들이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칼빈 신학에 있어서 교회론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에서는 동의할 것이다.
이 고찰에서는 칼빈의 교회론을 다루되, 교회의 본질, 교회의 표지, 교회의 직임, 교회의 권위 등의 순으로 다루고자 한다.
2. 교회의 본질
칼빈은 교회에 관해 어머니라는 이미지와 몸이라는 이미지를 사용하여 교회를 “신자들의 어머니” 또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였다. 이 이미지들은 칼빈의 교회론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1) 신자들의 어머니로서의 교회
칼빈은 『기독교 강요』제4권 서두에서 교회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복음에 대한 신앙에 의해 그리스도는 우리의 것이 되며 우리는 그에게서 주어지는 구원과 영원한 축복의 참여자가 된다는 것을 전 권에서 설명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무지와 나태로 인해 (여기에다 나는 본성의 약함을 첨가한다) 우리 안에 신앙이 태어나서 성장하여 그 목표에까지 진전하기 위하여 외적 도움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고려하여 그 도움들을 첨가하였다. 그리고 복음의 선포가 번창하도록 교회 안에 이 보화를 저장하였다.
삼위 일체 하나님의 구속 활동에 있어서 성부는 구원을 주도해 가고 성자는 구원을 위한 자료를 제공하고 성령은 그 질료를 개인에게 전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무지와 나태와 약함 때문에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통해 그 구속 활동을 이룬다.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의 능력에 맞춘다.” 이것은 칼빈 신학에 있어서 중요한 명제이다. 무한한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에게 직접 나타나면 인간은 그 하나님에게 접근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의 능력에 맞추어 자기 자신을 계시한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운 것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였다.
물론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교회를 세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타락 때문에 창조 질서가 파괴되고 그래서 그 파괴된 창조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이 교회를 세웠다.
그 예언자는 만일 하나님이 교회를 보호하지 않았다면 자연의 전체 질서가 전복되었을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들이 없다면 세계 창조는 아무 목적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빈은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 곧 교회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의 몇몇 자녀들과 함께 하나님에 대한 참된 예배자들이 된 것이 틀림없다. . . . 셋은 정직하고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었다고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가 자기를 닮은 아들을 낳고 올바르게 세워진 가정을 가진 후 교회의 얼굴이 분명히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후손들에게 계속되도록 세워졌다.
인간의 타락 이후 시작된 이 교회는 때로는 이 세상에서 사라진 듯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하나님은 항상 지켜 보호해 주었다.
비록 교회가 멸망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놀라운 능력에 의해 죽음으로부터 재생된 생명으로 부활시킬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이것은 교회는 외적 현상이 계속 지속되는 것처럼 항상 보존되지는 않았지만 교회가 죽은 것같이 보일 때 하나님이 기뻐할 때마다 교회는 갑자기 새롭게 창조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놀라운 구절이다.
하나님이 일찍이 무로부터 세계를 창조하였듯이 교회를 죽음의 어두움으로부터 태어나게 하는 것이 그의 본래의 역사이다. 그래서 칼빈은 확신에 차서 이렇게 말한다. “창세로부터 주님이 그의 교회를 가지지 않은 때는 없었음을 주장해야 하며, 또한 시대가 완성될 때까지 하나님이 교회를 가지지 않을 때가 없을 것이다.”
요컨대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교회를 세웠다. 칼빈은 이 교회를 우리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하나님이 아버지인 사람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또한 어머니가 될 것이다.” 교회를 우리의 어머니로 비유한 것은 이미 키프리아누스와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나타난 바 있다. 키프리아누스는 “당신은 교회를 당신의 어머니로 가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당신의 아버지로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는 우리 주 하나님을 사랑합시다. 그의 교회를 사랑합시다. 전자를 아버지로서, 후자를 어머니로서” 라고 말한다. 칼빈은 이 어머니가 “우리를 태속에 품고 낳고 그의 가슴 속에서 우리를 기르고 마침내 우리가 가사적인 육체를 벗고 천사들처럼 될 때까지(마 22:30) 그의 지킴과 지도 아래 우리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생명으로 들어갈 다른 길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이사야 49:7을 강해하면서 “그런 위대한 복음의 참여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즉 교회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그것 밖에는 구원도 진리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기독교 강요』에서는 교회의 품을 떠나서는 “우리는 죄의 용서나 구원을 받기를 희망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칼빈이 교회 밖에 구원이 없다고 말했을 때 무엇을 뜻했는지를 고찰하려고 한다. 칼빈이 교회 밖에 구원이 없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교회가 그 자체로 구원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고 말씀과 성례를 통해 구원하는데, 이런 하나님의 구원의 방편에 참여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구원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구원하는 권능은 하나님에게 있지만, 그는 (바울이 증거한 것처럼) 복음의 선포 안에서 그것을 나타내고 드러낸다.” 칼빈이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인용하여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밀한 예정에 따라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것처럼) 많은 양들이 밖에 있으며 많은 이리들이 안에 있다”고 말했을 때, 즉 교회 안에 많은 이리들이 있다고 말했을 때 교회가 그 자체로 구원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은 하나님의 예정에 근거한 것으로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2)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칼빈은 전술한 바와 같이 교회를 신자들의 어머니로 묘사하기도 하지만, 교회를 묘사하는 데 가장 자주 사용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가톨릭적 혹은 보편적이라고 말해진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나누이지 않는다면 - 그것은 일어날 수 없다 - 둘 혹은 세 [교회가]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선택한 모든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연합하여, 한 머리에 의존한 것처럼 한 몸을 형성하며, 몸의 지체들처럼 연합되고 결합된다.
그래서 많은 신자들이 마음과 영혼이 하나가 된다고 한다.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한 성서적인 표현은 칼빈의 교회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거룩해야 하기 때문에 교회를 참된 그리스도의 몸인 불가시적 교회와 사악한 자들이 포함되어 있는 가시적 교회로 구별하게 된다. 그리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교회의 일치를 강조하고 분열을 정죄하게 된다.
칼빈은 성서에서 교회라는 말을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때때로 그들이 교회라고 말할 때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 앞에 실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즉, 입양의 은총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고 성령의 성화에 의해 그리스도의 참된 지체들이 된 자들 이외에 아무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사실상 교회는 땅 위에 살고 있는 성도들 뿐만 아니라 세계의 시작으로부터 존재해 온 모든 선택된 자들을 포함한다. 하지만 종종 교회라는 이름은 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예배한다고 고백하는 땅 위에 퍼져 있는 사람들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런데 후자의 교회 안에는 이름과 외양 이외에는 그리스도와 무관한 많은 위선자들이 섞여 있는 반면, 전자의 교회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워커(G. S. M. Walker)는 칼빈의 사상에 있어서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의 관계를 “한 교회의 두 면들이 중심이 밖에 있지만 중복되는 두 개의 원들로 구별된다”고 말한다. 물론 가시적 교회에 속한 전체 구성원들과 불가시적 교회에 속한 전체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는 중심이 다르지만 중복되어 있는 두 개의 원으로 묘사될 수 있겠지만, 가시적 교회 안에 선택된 자들로만 이루어진 불가시적 교회가 참된 교회를 형성하고 있다고 볼 때 그것은 하나의 중심을 갖는 두 개의 동심원적 관계로 묘사될 수 있는 것이다. 칼빈에게 있어서는 가시적인 교회 안에 하나님만이 아는 참된 신자들로 이루어진 불가시적 교회가 내재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칼빈에게 있어서 교회의 목회는 이 두 개의 동심원을 최대한으로 일치시키려는 노력이다. 말씀과 성례를 통해 아직 참으로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신앙을 가지도록 하여 그리스도의 구원에 참여하도록 하며, 권징을 통해 위선적인 그리스도인들을 공동체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교회 안에 참된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들어와 있는 것은 “그들이 합법적인 재판에 따라 정죄되지 않거나 엄격한 권징을 마땅히 해야 할 만큼 항상 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칼빈은 말한다.
칼빈은 이 점에서 교회 안에 사악한 자들이 많이 있다는 재세례파의 주장을 인정한다. 그리고 “사실상 교회들이 질서가 잘 잡혀 있다면 그 품안에 사악한 자들을 품고 있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 목회자들이 권징을 게을리하거나 아니면 엄격하게 권징을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드러난 악인들조차 성도들의 집단으로부터 제거되지 않고 있다. 칼빈은 “나는 이것을 잘못이라고 인정하며 가볍게 보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칼빈은 사악한 자들과의 친교를 삼가는 것이 경건한 사람들의 임무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악인들의 장막을 피하는 것과 그들을 싫어하여 교회와의 친교를 끊는 것은 별개의 것이다” 라고 말한다. 교회는 끊임없이 권징을 통해 가시적 교회 안에 있는 위선자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가시적 교회 안에 위선자들이 있다고 해서 교회를 떠나 다른 집단을 형성하는 것은 옳지 않다.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서 구속활동을 하는 두 방편은 말씀과 성례이다. 그러므로 말씀이 순수하게 전파되고 성례가 바르게 집행되면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한다. 그러나 옛날의 카타리파나 노바티아누스파나 도나투스파 그리고 칼빈 당시의 재세례파는 교회의 일치를 해치고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 25:32의 말씀처럼 양과 염소를 분리시키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유한 일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순결하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교회에서 분리해 나가는 일은 그리스도를 찢는 일이어서 용납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양떼로부터 제외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한 머리 아래 한 몸으로 모으는 것을 제외하고는 희망할 안전이 없기 때문이다. . . . 그리스도는 그의 교회로부터 찢어지지 않을 것이며 찢어질 수 없다. 그것에 그는 불가분리의 매듭으로 결합되어 있다. . . . 그래서 우리가 신자들과의 일치를 이룩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로부터 단절된 것으로 본다.”
칼빈은 삶의 순수성의 문제로 분리해 나가는 것도 잘못이지만 교리에 다소 불순성이 개입된다 하더라도 분리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더욱이 교리들에 있어서나 성례들의 집행에 있어서 어떤 잘못들이 들어올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를 교회내의 교제로부터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참된 교리의 모든 조항들이 동일한 종류에 속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것들은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것으로서 모든 사람들은 그것들을 종교의 고유한 원칙들로 확정하고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것들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 그리스도는 하나님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은 하나님의 자비에 의존해 있다는 것 등등이다.
칼빈에 의하면 교리들 가운데 중심적인 것이 있고 주변적인 것이 있다. 그런 중심적인 것이 부정되면 참된 교회일 수가 없다. 그러나 “교회들 중에는 신앙의 일치를 깨뜨리지 않는, 논쟁이 되는 다른 것들이 있다.” 즉, 주변적인 것들이 있다. 칼빈은 빌립보서 3:15을 인용하고 나서 “이것은 이런 비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불일치가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분열의 자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지적해 주지 않는가?” 라고 묻는다. 환언하면 칼빈에게는 본질적인 교리들과 비본질적인 교리들에 대한 구별이 있다. 그리고 비본질적인 교리들이 다르다고 해서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면 칼빈이 교회가 분열하는 일이 있더라고 고수해야 할 본질적 교리라고 생각한 교리들은 어떤 것들인가? 칼빈은 고린도전서 3:11에 대한 강해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반면에 전복되기를 금하는 근본적인 교리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교회의 유일한 기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맥니일(John T. McNeill)이 지적한 것처럼 칼빈은 근본적인 교리와 비근본적인 교리 사이의 선을 명확하게 긋지는 않았다. 하지만 위에서 인용된 두 구절을 볼 때 칼빈이 생각한 근본적인 교리는 기독론에 관계된 기본적인 교리로 생각할 수 있다.
칼빈은 이런 근본적인 교리들 이외에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는 의견의 차이를 인정하고 있다. 칼빈에게 있어서는 비본질적인 교리의 차이 문제보다는 교회의 일치 문제가 더 중요한 관심사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칼빈은 교직 제도의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관대했다. 파니에(Jacques Pannier)가 지적한 것처럼 칼빈은 주교 뿐만 아니라 대주교도 인정하고 있으며, 칼빈이 비판한 것은 주교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직책을 오용하는 것이었다. 칼빈은 영국 교회의 대주교인 크랜머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 교회의 일치를 논하는 자리라면 - “그것은 내게 대단히 중요하므로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 일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열 개의 바다라도 건너가기를 싫어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칼빈이 생각한 교회 일치는 루터파, 츠빙글리파, 영국 국교회 등 기존한 교회들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일종의 세계적 교회 연합체를 구성하려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3. 교회의 표지
칼빈에게 있어서 교회의 표지(notae ecclesiae)는 두 개인데, 그것은 말씀과 성례이다. 칼빈은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게 전파되고 경청되며 성례들이 그리스도의 제정에 따라 집행되는 것을 우리가 보는 곳마다, 거기에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이 의심될 수 없다.” 교회의 두 표지라는 주장은 칼빈 이전에 아우구스부르크 신앙 고백에 이미 나타났다. 거기서는 교회의 두 표지에 관해 이렇게 말하였다. "교회는 성도들의 회합 [모든 신자들의 회합]인데, 그 안에서 복음이 바르게 [순수하게] 가르쳐지고, 성례들이 [복음에 따라서] 집행된다. 그리고 교회의 참된 일치를 위해서는 복음의 교리와 성례의 집행에 대해 동의하는 것으로 족하다“ (제7조). 칼빈은 이 아우구스부르크 신앙 고백과 일치하게 교회의 두 표지를 말씀과 성례에 국한시켰다.
그런데 칼빈 자신은 교회의 표지를 말씀과 성례에 국한시켰지만 칼빈 이후에 나타난 개혁파 신앙 고백인 제1 스코틀랜드 신앙 고백(제18조)과 벨기에 신앙 고백(제29조)에서는 교회의 이 두 표지에 이어 세 번째 표지로 권징을 들고 있다. 두메르규(Emile Doumergue)는 “칼빈의 교회는 세 표지를 가지고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 성례들 . . . 그리고 권징이다” 하고 말하였지만, 그리고 사실상 칼빈이 권징을 대단히 강조하였지만, 칼빈에게 있어서 권징은 말씀과 성례와는 다른 차원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칼빈은 권징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구원적 교리가 교회의 혼인 것과 마찬가지로 권징은 신경의 역할을 한다”. 애비스(P. D. L. Avis)가 지적한 것처럼 칼빈의 입장은 기독론적 중심을 철저하게 견지한 루터의 입장과 권징에 강조점을 둔 후의 개혁파 전통 사이에 전이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스 애비스는 “권징은 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했지만 교회의 esse에 속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bene esse에 속했다” 하고 말하였다. 이것은 칼빈의 권징론에 대한 적절한 평가라고 하겠다.
4. 교회의 직임
칼빈이 1541년 제네바 교회를 위해 작성한 교회 법규에서는 “우리 주님이 그의 교회의 통치를 위해 제정한 네 직임들이 있다. 첫째는 목사들이요, 그 다음은 교사들이요, 그 다음은 장로들이요, 넷째는 집사들이다” 라고 말한다.
칼빈은 주로 성서 두 곳, 곧 에베소서 4:11과 로마서 12:7-8에 근거하여 이 네 직임을 추론해 내고 있다. 그러나 방델(François Wendel)과 니이젤(Wilhelm Niesel)이 지적한 바와 같이 칼빈은 초대 교회를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지는 않다.
그리스도의 제정에 따라 교회의 통치를 주관하는 자들은 바울에 의해 첫째로 사도들, 다음으로 예언자들, 셋째로 복음 전도자들, 넷째로 목사들, 마지막으로 교사들이라 불리운다[엡 4:11]. 이들 가운데 마지막 둘은 교회 안에서 일상적인 직임이다. 주님은 그의 왕국의 시작에서 처음의 세 직임을 세웠으며, 때때로 시대적 요청에 따라 그들을 일으킨다.
칼빈은 여기서 영구적인 직임과 일시적인 직임을 구별한다. 목사와 교사는 영구적인 직임이나 사도와 예언자와 복음 전도자는 일시적인 직임이다. 그리고 복음 전도자와 사도는 함께 묶을 수 있는데 그 둘은 목사에 상응하며, 예언자는 교사에 상응한다고 말한다.
칼빈은 성서에서 사용되는 ‘episcopus’, ‘presbyter’, ‘pastor’, ‘minister’는 동의어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내가 교회를 다스리는 자들을 감독들, 장로들, 목사들이라고 구별 없이 부른 것은 이 용어들을 혼용한 성서적 용법을 따른 것이다.” 칼빈은 바울이 디도서 1:5에서 각 도시에 장로들을 임명하라고 명령한 후 곧 1:7에서 “감독은 . . .”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장로와 감독은 상호 교환될 수 있는 용어로 보고 있다. 그리고 빌립보서 1:1에서 한 교회에 있는 여러 감독들에게 인사하는 것을 예로 들고 있으며, 사도행전 20장에서 에베소의 장로들을 감독들이라고 부른[20:28] 예를 들고 있다.
그 다음에는 로마서 12:7-8과 고린도전서 12:28에 근거하여 교회 직임을 추론해 내고 있다. “그러나 로마서[롬 12:7]와 고린도전서[고전 12:28]에서 그는 다른 직임들로서 권세, 치료의 은사, 해석, 통치, 불쌍한 자들을 돌보는 것을 열거한다. 이것들 가운데 일시적인 것들은 나는 생략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다루느라 머무르는 것은 무가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들 중 둘은 영구적인 것들인데, 즉 통치와 불쌍한 자들을 돌보는 것이다.” 칼빈은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일시적인 직임과 영구적인 직임을 구분하여, 두 직임을 영구적인 직임으로 보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장로와 집사이다.
1) 목사
목사의 직임은 공적으로, 사적으로 가르치고 훈계하고, 권면하고, 책망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과 성례를 집례하는 것과 장로들 및 동역자들과 함께 형제로서의 교정을 하는 것이다.교회 안에서 혼란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도 부름이 없이는 이 직책을 맡을 수 없다. 부름에는 두 가지, 즉 내적 부름과 외적 부름이 있다. 내적 부름은 목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의식하는 것으로 본인 이외에 아무도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는지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참으로 두려워하며 교회를 세우려는 욕구가 있는지를 봄으로써 그의 내적 부름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외적 부름은 교회가 목사로 부르는 것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즉, 건전한 교리와 거룩한 삶을 구비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두 조건을 구비한 사람들을 목사로 뽑는 데 있어서 교인들의 동의를 받을 것을 칼빈은 강조하고 있다. 전체 교회가 뽑는 방법, 동료 목사들과 장로들이 뽑는 방법, 한 개인이 뽑는 방법 등이 있을 수 있다. 이 방법들 중 칼빈은 “적합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교인들의 동의와 찬성에 의해 선임될 때 우리는 목사의 이 부름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합법적인 것으로 간주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교회 정치에 있어서 칼빈의 민주주의적 경향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첨가하여 그는 대중의 나약함 때문에, 혹은 악한 의도 때문에, 혹은 무질서 때문에 잘못되지 않기 위해 다른 목사들이 선거를 관장할 것을 주장한다. 여기서 칼빈은 교회 정치의 민주적인 방법을 주장하면서 민주적인 방법이 선동에 의해 오도될까 하는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다.
2) 교사
교회의 직임으로 목사 다음에 교사가 있다. 그런데 “교사들의 고유한 직임은 복음의 순수성이 무지나 유해한 견해들에 의해 부패되지 않도록 건전한 교리로 신자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칼빈의 교회론에서 교사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예언자의 직임은 그들이 계시라고 하는 독특한 은사를 가지기 때문에 더욱 탁월했다. 그런데 교사들의 직임은 거의 비슷한 특징과 정확하게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칼빈은 말한다.
그러면 목사직과 교사직의 차이는 무엇인가? 칼빈은 그 차이를 이렇게 말한다. “그들 사이에 다음의 차이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교사들은 권징, 성례의 집례, 훈계나 권면을 맡지 않고, 다만 성서 해석을 맡는다. 이는 신자들 사이에 온전하고 건전한 교리가 보존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만 목사직은 이 모든 것을 그 자체 안에 내포하고 있다.” 칼빈은 목사직과 교사직을 이렇게 구별하긴 하지만 때로는 이 두 직을 함께 묶어 교회의 네 직임 대신에 세 직임을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에베소서 4:44 강해에서는 이 문제를 비교적 자세히 다룬다. “다섯 종류의 직임들이 언급되었는데 이 점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마지막에 있는 둘은 한 직임으로 본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생략한 것은 그 견해가 나에게 그럴 듯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와 교사는 하나의 직임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구절의 다른 부분들과는 달리 그들을 구별하는 이접적 접속사가 없기 때문이다. 크리소스톰과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런 견해를 가졌다. . . . 나는 부분적으로 그들에게 동의한다. 즉, 바울은 목사들과 교사들이 마치 동일한 직임인 양 구별 없이 말한다. 또한 나는 교사라는 명칭이 어느 정도 모든 목사들에게 속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때문에 나는 이 두 직임을 혼동하지는 않는다. . . . 가르치는 것은 모든 목사들의 임무이다. 그러나 성서를 해석하는 특수한 은사가 있어서 건전한 교리가 유지될 것이며, 그리고 설교하기에 적합하지 않는 사람이 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강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칼빈의 체계에 있어서 교사는 성서를 가르치는 일을 전담하는 직임이요, 목사는 교사의 직임을 포함하여 다른 직임까지 행하는 직임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칼빈은 교사의 직임을 중시함과 함께 교회의 교육적 기능을 강조한다. 그는 제네바 교회의 교리 문답 서문에서 교회는 항상 아동들을 기독교 교리 안에서 바르게 교육하는 일을 힘써 행해 왔으나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것을 전복시켰다고 비판하고 교회 교육의 회복을 강조한다. 교리 문답 308항에서 목사가 “그리스도인은 자기 목사로부터 한 번 교육을 받는 것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평생 동안 이 과정을 받아야 하는가?” 라고 묻고 아동은 “계속하지 않는다면 시작한 것으로 별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혹은 더 낫게 말해 끝없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칼빈은 평생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 대한 칼빈의 격렬한 비판들 중 하나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들이 가르치는 직임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르치는 직임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교회의 참된 목회자가 아니다.”
한편, 킹던(Robert M. Kingdon)은 제네바의 교사직에 대해 최근에 출판된 한 저작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처음에는 박사들은 종종 목사직을 겸했다. 칼빈은 두 직임을 겸했으며, 그의 후계자인 베자(Theodore Beza)도 그러했다. 1559년 제네바가 목사들과 다른 사람들을 교육하기 위해 아카데미를 설립할 때 비로소 독립된 학자들이 박사들로 고용되었다. 그 전에 많은 사람들이 학교 교사들로 고용되었다. 목사들은 그들을 임명할 때 그 역할을 요구했지만 그들 교사들은 박사들로 여겨진 것 같지 않다. 박사들과 교사들은 시 재정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았다.”
3) 장로
교회의 세 번째 직임은 장로이다. 그런데 “그들의 직임은 모든 사람의 삶을 감독하고, 잘못되거나 무질서한 삶을 사는 자들을 보았을 때 다정하게 훈계하고 그리고 필요한 경우, 형제로서의 교정을 위해 파송될 회합에 보고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형제로서 교정을 하는 것이다.” 『기독교 강요』에서는 장로에 대해서 “치리자들은 백성들로부터 선출된 자들로서 감독들과 함께 도덕에 대한 책망과 권징의 실행을 맡은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말한다. 칼빈은 성서에 나오는 감독, 장로, 목사라는 말들을 상호 교환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칼빈에게 있어서 장로의 위치는 모호한 점이 있다. 디모데전서 5:17 강해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구절을 보아 두 종류의 장로들이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 . . 이 말들의 분명한 의미는 존경스럽게 잘 다스리지만 가르치는 직임을 가지지 않은 어떤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진지하고 잘 단련된 사람들을 선출했는데 그들은 . . . 목사들과 함께 권징을 행하고 도덕을 교정하는 검찰관으로 행동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장로직은 칼빈이 창안한 것으로 후에 그것을 보증하는 성서적 근거를 찾으려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캐스웰(R. N. Caswell)도 지적한 바 있지만 그 견해는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 칼빈은 장로직은 성서 및 고대 교회에 있었던 직임으로 믿고 있었으며, 말씀을 가르치는 교직자 장로와는 구별되는 평신도 가운데 선출된 직임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방델은 이 문제에 대해 “그러나 『기독교 강요』와 강해들에서 발견되는 산재해 있는 언급들을 보면 우리가 이미 목사들과 교사들 사이에 주목한 바 있는 모호한 점들이 나타난다. 때때로 장로들은 전문적 의미로 목사들과 장로들을 동시에 지칭하는 말이다. 반면에 칼빈은 때때로 이 말을 후자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방델의 논평과는 달리 칼빈은 목사와 장로를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칼빈이 성서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에서는 장로라는 말을 목사와 장로 둘 다 지칭하는 말로 해석하지만, 당시의 교회 조직에 대해서 말할 때는 장로라는 말을 장로에 대해서 국한시켜 사용하고, 목사에 대해서는 장로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4) 집사
교회의 네 번째 직임은 집사이다. 집사에는 두 종류가 있다. “고대 교회에는 항상 두 종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불우한 자들을 위한 물질을 받아 나누어 주고 보관했는데, 매일의 구제금 뿐만 아니라 재산, 세, 연금 등도 맡았다. 다른 하나는 병자들을 보살피고 간호하며 불우한 자들을 위한 구제품을 관리했다.” 칼빈은 로마서 12:8에서 집사의 이 직분을 추론해 낸다. 워커는 이처럼 초대 교회의 집사 제도를 부활시킨 것을 칼빈의 위대한 업적으로 보고 있는데, 그 평가는 적절하다고 하겠다. 중세기에 집사는 예배 의식을 도와주는 사람에 불과했으나 칼빈은 환자와 불우한 자를 돌보아 주는 집사의 본래의 직능을 회복시켰다.
칼빈은 당시 일부 재세례파의 ‘공산주의적’ 공동체 운동에 대해 매우 고심한 것 같다. 그는 그의 저서 여러 곳에서 이 운동에 대해 비판하고 사유 재산 제도를 옹호하고 있다. 칼빈은 사도행전 2:44 강해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광신주의자들 때문에 이 구절에 대한 건전한 해석이 필요하다. 그들은 재산의 κοινωνία를 주장하는데, 그것에 의해 모든 시민적 질서가 전복된다. 이 시대에 재세례파가 소요를 일으켜 왔다. 왜냐하면 그들은 각자의 재산을 한 덩어리로 모아 놓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어서 칼빈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두 가지 극단을 경계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시민적 질서라는 구실 아래 자기들이 가진 것을 숨기고 가난한 자들을 횡령하고서도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약탈하지 않는 한 갑절이나 의롭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반대의 오류에 빠져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것을 뒤섞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칼빈은 한편으로는 ‘공산주의적’ 재세례파를 비판하면서 사유 재산을 옹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유한 자들의 횡포를 비난하고 있다. 칼빈은 마태복음 3:9-10에 대한 설교에서 부유한 자들이 야수처럼 가난한 자들을 삼키고 그들의 피와 양분을 빨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다. 칼빈은 재산의 공유를 부정하는 반면, 사랑의 자선에 의해 가난한 자들이 결핍이 없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주님은 . . . 우리가 기금이 허락하는 한, 곤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서 풍부한 사람도 없고 결핍한 사람도 없도록 우리에게 명한다.” 비엘레(André Biéler)가 칼빈의 사상을 “각자로부터 그의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 그의 필요에 따라” 라는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을 때 그는 칼빈의 본문에 상당한 근거를 두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트뢸취(Ernst Troeltsch)가 칼빈주의는 “기독교 사회주의의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움직였다”고 말했을 때, 그리고 워커가 칼빈은 “사회 복지에 대한 그의 관심에 의해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의 선구자였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칼빈주의와 기독교 사회주의의 관계의 일면을 잘 말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칼빈의 사상에서 볼 때 교회의 집사직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칼빈은 재세례파의 ‘공산주의적’ 공동체 운동에 대해 반대하면서 집사들의 자선 활동을 통해 사회 내의 빈곤을 치료하려고 했다고 할 수 있다.
칼빈은 이렇게 교회에 집사 제도를 두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 헌금은 고대 교회의 관례에 따라 4등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회법들에는 교회의 수입을 네 부분으로 나누었는데, 하나는 교직자를 위해 하나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하나는 교회 및 다른 건물들의 보수를 위해, 하나는 가난한 나그네나 가난한 본토민들을 위해서였다.
다른 교회법들은 마지막 것을 감독에게 할당했는데 이것은 내가 방금 말한 구분과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그 법들이 그것을 감독 혼자 다 쓰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자에게 다 주거나 할 수 있는 감독의 사적 수입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빈은 교회 수입의 “적어도 절반”은 가난한 자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칼빈이 “적어도”라는 표현을 쓴 것은 고대 교회에서는 재난 대문에 긴급한 구제가 필요한 때는 그 절반 이외에도 교회의 기물을 팔아서 구제했기 때문이었다. 칼빈은 고대 교회의 아카키우스 감독은 기근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을 때 성직자들을 모아 놓고 “우리 하나님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기 때문에 잔이나 컵이 필요 없습니다” 하고 말하고 교회의 그릇들을 녹여 팔아서 굶주린 사람들에게 양식을 사 준 예를 들고 있으며, 또 암브로스가 교회의 거룩한 그릇들을 녹여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을 아리우스파에서 보고 비난했을 때 암브로스는 “교회가 금을 가진 것은 간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라고 대답한 것을 예로 들고 있다. 이어서 칼빈은 암브로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교회가 가진 것은 무엇이나 곤궁한 자들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라고 말했다. 제네바에서는 집사들이 구빈원 원장직을 맡았으며, 그들은 교회 헌금 외에도 사당국이 배정해 주는 예산, 벌금, 기부금, 자선을 위해 헌납된 물건을 판매한 대금 등의 수입원으로 구제 활동을 해 나갔다.
5. 교회의 권위
교회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제도가 필요하며, 제도를 질서 있게 유지하기 위해 권위가 필요하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제4권, 제8장에서 제12장까지 교회의 권위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칼빈에게 있어서 교회의 권위는 독자적인 권위가 아니라 성서에 의존한 권위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권한은 무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종속되며, 말하자면 그 안에 포함되는 것이다.” 로마 교회는 “교회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누가 그것을 부정하는가? 왜냐하면 교회가 주의 말씀으로부터 나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선포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칼빈은 말한다.
교회의 권한은 일부는 감독들에게 일부는 지역 교회 회의나 세계 교회 회의에 있다. 그런데 교회의 이 권한은 영적인 권한이며, 교리에 대한 권한, 사법권, 입법권 등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칼빈이 거듭 강조하는 것은 교회의 권한은 건설하기 위한 것이지 파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교직자들에게 교회의 권한이 위임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역에 주어진 것이다. 환언하면 그들에게 맡겨진 말씀에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교직자의 권위는 말씀의 권위라고 할 수 있다. 교회 회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교회 회의는 독자적인 권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성서의 척도에 따라 검토해서 성서에 부합할 때만 권위를 가지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판단의 모든 기회 밖에 두며 총회들과 교부들은 말씀의 규범에 일치할 때에 확실한 권위를 부여하고자 한다.”
교회의 권위와 성서의 권위 사이의 관계의 문제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종교 개혁자들 사이에 있었던 가장 큰 쟁점이었다. 종교 개혁자들은 성서의 권위를 교회의 권위 위에 둠으로써 성서적 근거에서 교회를 개혁하려고 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칼빈은 성서의 권위를 최우위에 두었으며 감독이나 지방 교회 회의나 세계 교회 회의의 결정은 성서에 일치할 때만 권위를 가지는 것으로 보았다. 요컨대 교회의 권위를 성서의 권위에 종속시켰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교회의 권위를 성서의 권위 위에 둔 듯한 아우구스티누스의 한 문장을 해석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를 비판하는 글에서 “나로서는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의해 움직여지지 않았을 경우 복음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칼빈은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다만 우리도 또한 사실로 고백하는 것을 가리키려고 했을 뿐이다. 즉, 아직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계명되지 않은 사람들은 교회에 대한 존경에 의해 가르침을 받을 마음을 가지게 되고 그래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계속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한 구절을 가지고 교회의 권위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는 칼빈의 견해와 다르다거나 혹은 칼빈이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바르게 해석했다고 결론을 내리거나 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 문제는 좀더 깊은 검토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포르탈리에(E. Portalié)의 견해에 의하면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는 종교 개혁자들의 견해와 상반되게 교회의 권위를 성서의 권위 위에 두었다고 한다. “그는 교회가 성서와 전통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최고의 규범이라는 의미에서 심지어 교회를 성서와 전통 위에 두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는 교회의 가르침의 무오성이 기본적인 진리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리고 세계적 총회의 결정은 무오하며 로마 감독좌는 특별히 사도적 감독좌로서 “총회들도 그 판단에 종속하며 그 승인 없이는 타당성이 없다”고 보았다 한다. 이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라고 한다면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는 칼빈의 견해와 상반되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구약성서 정경은 후의 감독들의 모든 편지들보다 절대적으로 더 탁월한 위치에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감독들의 편지들이 진리로부터 벗어났을 경우 논박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즉, 권위나 학식이 더 많은 감독들에 의해서나 총회의 권위에 의해 비판받을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총회라 하더라도 지역적 총회보다는 세계적 총회가 더 권위가 있으며, 앞의 총회는 후의 총회들에 의해 가끔 수정을 받는다고 한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는 신구약성서 정경만이 절대적 권위를 가지며 감독이나 지역 총회나 세계적 총회는 상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전술한 칼빈이 인용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은 교회의 권위를 성서의 권위 위에 둔 말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워필드(Benjamin Breckinridge Warfield)의 해석처럼, 아우구스티누스가 성서에 대한 증거를 위해 교회를 언급한 것은 교회를 성서에 대한 증인으로 본 것이지 성서에 대한 유권자로 본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1) 교리에 대한 권한
교리적인 면에 있어서 교회의 권위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즉, 교의들을 작성하는 권위와 그것들을 해석하는 권위이다. 교회가 이런 권위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새로운 교리를 주조하는 것, 즉, 주께서 그의 말씀 속에서 계시한 것 이외 다른 신탁을 가르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만이 영적 교리에 있어서 우리의 교사가 되기 위해 새 교리를 제시하는 능력을 사람에게서 박탈한다.” 칼빈은 성서를 기록한 사도들과 그들의 후계자들 사이를 이렇게 구별하고 있다. “저자는 성령의 확실하고 진정한 비서들이며 그러므로 그들의 문서들은 하나님의 신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성서에 의해 제시되고 확인된 것을 가르치는 것 이외 다른 직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제 신실한 사역자들은 새로운 교리를 주조하는 것을 허락받지 않고 있으며, 다만 하나님이 준 교리를 따르도록 되어 있다. 새로운 교리를 주조하는 것은 개인에게만 허락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교회에게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세계적 총회라 할지라도 성서의 권위에 의존해 있다. “총회들은 그것들에 합당한 위엄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성서가 더 높은 위치에서 뛰어나며 그 표준에 종속되지 않는 것은 없다.” 칼빈은 세계적 총회들 가운데 니캐아, 콘스탄티노플, 에베소, 칼케돈 총회 등은 성서에 대한 “순수하고 본래적인 해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존중한다고 말한다.
2) 입법권
교회의 두 번째 권한은 입법권이다. 모든 인간 사회에 있어서 공동의 평화를 이룩하고 화합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형태의 조직이 필요하다. 나아가서 인간의 업무들에 있어서 어떤 절차가 항상 효과적인데 그것은 공적 품위와 그리고 인간성 자체의 유익을 위해 존경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특히 교회들 안에서 지켜져야 한다. 교회들은 모든 것이 잘 조직된 제도와 함께 있을 때 가장 잘 유지되며, 화합이 없이는 절대적으로 교회가 존재할 수 없다.” 여기서도 칼빈의 대전제가 빠질 수 없다. 그것은 인간적 법규들은 하나님의 권위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 즉, 성서에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법규들은 구원에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며, 따라서 양심을 속박하는 법규들을 규정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칼빈은 입법에 있어서 사랑의 원리를 강조한다. “무엇이 해치고 무엇이 건설한다는 것을 사랑이 가장 잘 판단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사랑으로 하여금 우리의 지침으로 삼는다면 모든 것이 안전할 것이다.”
3) 사법권
교회의 세 번째 권한은 사법권이다. “어떤 도시나 어떤 지방도 치안관과 정치 조직이 없이 지속될 수 없듯이 하나님의 교회도 . . . 영적인 정치 조직을 필요로 한다.” 교회는 처음부터 법정을 두어 도덕적 문제에 대해 견책하고 악덕을 조사하고 ‘열쇠의 직임’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 권한을 사람들에게 준 것이 아니라 그의 말씀에게 주었으며, 사람들을 그의 말씀의 사역자들로 삼은 것이다.
여기서 칼빈은 교회의 사법권와 세속 정부의 사법권을 명백히 구분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두 사법권을 혼돈하여 세상 정부의 치안관들이 모두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되면 교회의 법정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그들은 잘못을 범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회의 권력과 세속의 권력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와 상위성이 있는지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치안관과는 달리 형벌하거나 투옥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교회의 최종적 무기는 파문일 뿐이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교회의 독자적인 파문권을 확보하려고 노력했으며, 마침내 목사와 장로들로 구성되는 당회를 구성함으로써 그 노력이 성취되게 되었다. 여기서 칼빈은 교회의 사법권과 국가의 사법권을 동심원적 관계로 보고 있음이 명백하다. 교회는 독자적으로 사법권을 사용해서 교회로부터 파문을 시킨다. 그런 사람들에게 형벌을 주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칼빈 이전에 제네바에서는 교회에게 독자적인 파문권이 주어져 있지 않았다. 교회와 정부는 원둘레가 동일한 한 원에 속해 있었다. 칼빈은 이런 제네바에서 시민공동체 안에 교회공동체라는 울타리를 치려고 노력했으며 교회의 독자적인 파문권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칼빈의 이런 구별을 인식하지 못한 칼빈 연구가들은 칼빈은 신정 정치를 주장한 사상가로 부당하게 해석해 왔다. 신정 정치(theocracy)라는 말이 통속적 용법에 따라 성직자 통치를 의미한다고 할 때 칼빈은 결코 신정 정치를 표방하지 않았다. 맥니일이 말한 것처럼 칼빈은 제네바에서 관리와 성직자를 구별했으며, 그와 그의 동료 목사들은 정치적 직임이나 관리의 권한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또한 신정 정치라는 말을 성서적 통치(Bibliocracy)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하더라도 칼빈은 성서적 통치를 주장하지 않았다. 칼빈은 구약의 율법을 도덕적인 율법, 의식적인 율법, 사법적인 율법 등 셋으로 구별하고 의식적인 율법은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으로 그리스도가 옴으로 폐지된 것으로 보고 사법적인 율법은 고대 유대 민족에게 준 것으로 역시 지금은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신정 정치라는 말을 그리스도 통치(Christocracy)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면 칼빈은 어떤 면에서 신정 정치를 표방했다고 할 수 있다. extra Calvinisticum에 나타난 칼빈의 사상에서는 육체 안에 있는 그리스도와 육체 밖에도 있는 그리스도가 구별된다. 육체 안에 있는 그리스도가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 순간에도 육체 밖에도 있는 그리스도는 온 세계를 다스리고 있었다. 그래서 육체 밖에도 있는 그리스도의 통치라는 의미에서 신정정치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육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통치라는 의미에서 신정 정치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부당하다. 다른 한편 신정 정치라는 말이 희랍어 의미 그대로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한다면 칼빈이 신정 정치를 표방했다는 주장은 극히 타당하다. 그러나 이 때에도 하나님의 구속 활동과 창조 활동의 구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요컨대 교회 정치는 하나님의 구속 활동에 속하고 세상 정치는 하나님의 창조 활동에 속한다. 이 두 정치는 한 하나님의 활동으로서 분리되지는 않지만, 그러나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신정 정치라는 말이 통속적으로 성직자 통치를 가리킨다고 볼 때 칼빈은 신정 정치를 표방했다고 결코 볼 수 없다.
6. 결언
칼빈은 교회론에 있어서 큰 공헌을 하였다. 루터가 거짓된 교회를 허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면 칼빈은 종교 개혁의 제2세대로서 참된 교회를 확립하려고 노력했다고 할 수 있다.
칼빈의 교회론은 지금도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보고 교회의 일치를 강조한 칼빈의 가르침은 칼빈 당시보다 현재 더 타당성이 있다. 교회 일치는 세계 교회에도 필요하지만, 특히 분열이 많고 그로 인해 지탄받는 한국 교회, 그 중에서도 장로 교회는 칼빈의 이 가르침을 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교회에서 교육의 역할을 강조하고 교사라는 직임을 둔 칼빈의 직임론도 유의해 볼 만한 것이다. 지금 이 시대는 어느 시대보다 전문화된 시대이어서 교회의 전문화된 교사가 필요한 시대이다. 그리고 집사의 직임을 새롭게 강조하고 교회의 구제 활동을 강조한 가르침은 복지에 대한 수요가 어느 때보다 강한 지금에 와서 꼭 필요한 가르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