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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용서10

오네시모를 용서하라 (빌레몬서 1:1~3) 오네시모를 용서하라 (빌레몬서 1:1~3) 초등학교에 다니는 사내아이가 있었습니다. 그의 누나는 중학생이었습니다. 여름방학을 맞이해서 그는 누나와 함께 시골에 계신 할머니 댁에 며칠 놀러가게 되었습니다. 삼촌은 아침에 일터로 나가면서 자기 조카가 심심할까봐 그에게 새총을 하나 만들어주었습니다. 나뭇가지에 고무줄을 끼워서 돌멩이를 당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신이 났습니다. 아침부터 들을 쏘다니며 새를 잡으려고 계속해서 새총을 쏘아댔습니다. 그러나 새들이 얼마나 영악한지 그가 새총을 쏘기도 전에 미리 알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아이는 한 마리의 새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는 어깨가 축 늘어져서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마침 집마당에 할머니가 애지중지하시면서 기르는 오리 한 마리가 뒤뚱뒤뚱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 2022. 7. 23.
용서의 길잡이 (빌레몬서 1:15~18) 용서의 길잡이 (빌레몬서 1:15~18)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했던 이탈리아의 천재적인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의 걸작품인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였습니다. 예수님이 중간에 앉아 계시고 각기 좌우편에 여섯 명씩 제자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다 빈치는 제자들의 얼굴부터 차례대로 한 사람씩 그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의 얼굴을 맨 먼저 그렸습니다. 그런 뒤 제자들을 차례대로 그려나가는 가운데 가룟 유다의 얼굴을 그릴 때가 되었습니다. 다 빈치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판 자니까 그의 얼굴을 험상궂게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그에게 한 사람의 모델이 떠올랐습니다. 다 빈치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고 늘 원수같이 지내는 한 이웃이었습니다. "옳다! 그의 얼굴을 가룟 유다의 얼굴에 집어넣.. 2022. 7. 23.
용서의 방법 (빌레몬서 1:22~25) 용서의 방법 (빌레몬서 1:22~25) 하루는 어떤 청년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대뜸 목사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목사님, 도대체 예수님과 마귀와의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목사님은 그 질문의 의도를 얼른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되물었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요?" 청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예수님이 저의 마음 속에 찾아오시는 시간은 얼마나 걸립니까? 반대로 악한 마귀가 저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는데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립니까?" 그 청년은 평소에 자기가 신앙 위에 굳게 서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어이없게도 죄의 유혹에 쉽게 빠져버리는 자기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너무나도 한심한 생각에 목사님을 찾아와서 그러한 질문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 2022. 7. 23.
그래도 또 용서하시는 하나님 (삿10:6-16) 그래도 또 용서하시는 하나님 (삿10:6-16) 오늘 본문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해진 형식의 문장입니다. 즉 새로운 사사의 출현을 예견하게 하는 이스라엘의 어두운 상황을 알리는 전형적인 서술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6절에서 보듯이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7절에서 보는 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셨다"고 합니다. 그 결과 8-9절에 기록된 대로 이스라엘은 그들의 침략을 받고 십팔 년 동안 억압을 당하였으며 심히 곤고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10절이 전하듯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문은 사사기 기록의 전형을 따르고 있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전의 기.. 2022. 7. 23.
일흔번씩 일곱 번 (마태복음 18:21-35) 일흔번씩 일곱 번 (마태복음 18:21-35) 불란서의 소설가요, 비행가인 생테 구쥐베리(Saint Exupery, 1900-1944)는 ‘인간은 관계 속에 존재한다’고 규정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인간이란 마치 거미줄 같이 얽혀져 있으며, 그물처럼 함께 엮여져 있다. 이같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relationship)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배운 사람, 무식한 사람들이 구분되고 증거됩니다. 인간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해서 인간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심지어 일반 동물과의 관계에서 그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규정합니다. 인간관계의 핵심적인 단어는 용서와 사랑입니다. 용서없이는 사랑이 없고, 사랑없이 용서가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 2022. 7. 23.
용서하는 삶 (마 18:18) 용서하는 삶 (마 18:18) 그리스도인의 삶은 용서하는 삶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의 극치가 용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했습니다. 용서는 이 땅에서 푸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풀고 살면 하늘에서도 풀리고, 이 땅에서 원수 맺고 살면 하늘에서도 용서받지 못하고 매인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을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용서하는 삶을 살다가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원수들을 용서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을 보면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2022. 7. 23.
정죄보다 용서! (요 8:1~11) 정죄보다 용서! (요 8:1~11) 사람은 언제 행복할 수 있습니까? 임마누엘 칸트는 그의 책 행복론에서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 사람은 사랑할 때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할 남편이 있고, 사랑할 아내가 있고, 사랑할 수 있는 자녀가 있고, 부모가 있으면 행복한 것입니다. ? 땀을 흘리고 일할 때가 행복합니다. 직장이 있고, 사업 터가 있고, 일거리가 있으면 행복한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빈둥거리며 노는 사람은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 하나님을 알고 섬길 때 행복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대로 지음을 받았기에 하나님을 알고 섬기며 살 때 행복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는 것 그 자체가 불행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서로를 알기 위하여 끝임 없이 노력하게 되는데 신학자 마.. 2022. 7. 23.
용서의 힘 (눅23:32~38) 용서의 힘 (눅23:32~38)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는 마지막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사형 틀’입니다. 인류 역사 상 인간을 처형하는 갖가지 사형법이 있었습니다. 참수형, 교수형, 단두대형, 총살형 등 ... 하나 같이 비참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잔인하고 처참한 것이 바로 십자가형입니다. 최대한의 고통과 수치를 다 당한 후 죽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리기 전의 고통도 그에 못지않게 큰 겁니다. 예수님은 전날 밤부터 온갖 고통과 수모를 당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는 극도의 긴장감으로 땀에 피가 섞여 나올 정도였습니다. 체포되신 후에는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불법 재판을 받으며 고통과 수모를 당하셨습니다... 2022. 7. 23.
490번의 용서 (마태복음 18:21-35) 490번의 용서 (마태복음 18:21-35) 하나님의 자녀는 여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마음이 편안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너무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늘 감사하며 삽니다. 우리는 어디에 살든지 예외 없이 속상한 일이 한도 끝도 없이 많습니다. 답답한 일이 많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중에서도 감사하고, 그중에서도 기쁨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여유가 있습니다. 미국의 상징적인 새는 독수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징적인 선민의 동물은 사자입니다. 그래서 유대나라에 가면 어디든지 사자를 만납니다. 모든 건물에는 사자 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여러분! 사자와.. 2022. 7. 23.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마태복음6:9-13)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마태복음6:9-13) 최근에 이창동감독이 만든 영화 “밀양”이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1985년 소설가 이청준선생의 단편 “벌레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이 이야기는 남편을 잃은 아내가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밀양”에 내려와서 살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피아노학원을 운영하던 아내의 삶의 기쁨이었던 아들이 어느 날 유괴되어 살해됩니다. 이 절망의 자리에서 아내는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로 안정을 찾습니다. 자신을 교회로 인도했던 집사님으로부터 아들을 살해한 범인을 용서하라는 권면을 받습니다. “죄지은 인간을 마지막으로 심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절대자뿐이며, 사람에게는 용사할 의무밖에는 주어지지 않았다.” 는 이 말을 처음.. 2022. 7.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