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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잠 11:1-6)

by 【고동엽】 2022. 3. 16.

정직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잠 11:1-6)

 

  시19:8절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우리는 세 가지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첫째는 자기 자신에게 대해서 정직해야 하고, 둘째는 이웃에 대해서 정직해야 하고, 셋째는 하나님께 대해서 정직해야합니다.
  잠언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정신적인 양식이 되는 교훈들입니다. 본문에 보면 몇 가지 삶의 원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정직한 삶을 요구하십니다(1).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이 말은 '나는 속이는 저울을 싫어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직을 요구하십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무너지면 그 세상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믿/ 서양 격언에 '정직을 잃은 자는 더 잃을 것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는 거짓이 너무나 많습니다. 가는 곳마다 보면 거짓 투성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물건을 살 때는 의례히 '이것 진짜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물으면 뭘 합니까? 가짜를 가짜라고 말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여기 '속이는 저울'과 '공평한 추'는 장사꾼의 양심입니다. 그런데 저울의 눈을 속이고 추의 무게를 조작하면 어떻게 됩니까? 한마디로 하나님을 속이고, 이웃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는 결과가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습니다. 전7:29절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실 때 본래 성품인 정직함에 의지해서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2. 겸손한 삶을 요구하십니다(2).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사람들은 인사 잘하고, 예의 바르고, 공손하면 겸손하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겸손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겸손은 '자기를 아는 지혜'를 말합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델포이 신전 벽에 큰 글씨로 '너 자신을 알라'고 썼다고 합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모르면 교만해집니다. 롬12:3절에 보면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자신이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고 살라'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하나님 앞에서 잠잠 하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겸손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죄 중에서 가장 큰 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가장 큰 죄라 했고, 그것을 교만이라고 했습니다. 거드름이나 피우고 고개를 똑바로 쳐들고 다니는 그것이 교만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만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모두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는 피조물입니다'라는 고백입니다. 피조물이 어떻게 창조주 앞에서 고개를 똑바로 쳐들고 있을 수 있습니까? 예배라는 말이 '그 앞에 엎드린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이를테면 겸손입니다.
  우리는 지금 신앙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겸손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할/
 
  3. 의리(신의) 있는 삶을 요구하십니다(4).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의리는 죽음을 면케 하느니라" 이 말씀은 사실입니다. 재물은 심판의 날에 무익하지만 신의는 그 날이 되면 유익합니다. 세상에서도 지조 있는 신앙을 가지고 있거나 신의가 있는 사람은 위기를 맞이했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사람의 값은 신의에 있습니다. 신용이 있는 사람, 그 사람이 값이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신용을 잃은 사람들을 보십시오. 참 값이 없고, 존귀함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과는 사람들이 상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그쯤 되면 비참해 집니다. 왜? 신의가 없어져서 그렇습니다.
  '단테'는 배신을 가장 큰 죄라고 했습니다. 단테는 그의 '신곡'이라는 작품에서 배신자들을 모조리 지옥 중에서도 가장 최하층에 가두어 놓고 가장 중죄인 배신자들은 모조리 지하 9층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곳에 보면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 하며 시저를 배신한 브루투스, 카시우스를 거기다 가두어 놓았습니다.
  신앙도 일종의 신의 있는 생활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나의 창조주로, 예수님을 나의 주로 믿는다"고 고백을 했으면 신의 있게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오늘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가장 큰 약점이 있다면 이 신의가 적다는 것입니다. 모두 약고, 타산적이고, 야무지고, 사람을 이용할 줄만 알았지 믿을 만한 사람이 적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의리는 환란 때에 죽음을 면케 한다.'고 했습니다.

 

  4. 정직한 자와 불성실의 결국을 말씀하고 있습니다(6).

  "정직한 자는 그 의로 인하여 구원을 얻으려니와 사특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 이것은 사필귀정입니다. 불의는 멀리 보면 반드시 무너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불의한 자가 일시적으로는 번영을 누리고 호화로운 삶을 살아갈는지 모르지만 세월이 가면 반드시 무너집니다. 또 그래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악이 잠시 형통하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악도 잠시는 승리할 수 있고,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의인도 고난을 받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우리가 시험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멀리 보고 살아야지 지금 현재만을 보고 살면 시험받을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에 너무 개의치 말고 오늘을 살되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정직하게! 겸손하게! 의리 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살아가는 자세입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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