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산을 넘어 다시 세상으로 눅9:28~36
28 이 말씀을 하신 후 일 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 하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예수님이 사랑하는 세 제자를 데리고
변화산 올라가셨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신비한 체험을 했습니다.
모세 엘리야가 나와서
예수님과 대화하고
하늘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하는 음성을 듣는
그런 신비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을 보았죠.
그 황홀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세상을 봤을 때
베드로는 얘기를 해요.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고
여기서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 하면요.
그게 너무 좋아서
세상의 궁궐 보다.
세상의 어떤 부요함보다.
여기서 천막 치고 사는 것이
훨씬 더 좋겠다.. 라고 하는
깨달음을 깨달은 것이에요.
저는 이것이 우리 신앙 생활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꼭 필요한 체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아마 예수님 베드로와 요.한 제자 야고보를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신 이유가
바로 그런 체험,
그런 체험 때문에
세상의 욕심을 내어 버릴 수 있는
그런 영적인 실력을 갖추게 하기 위함이었다..
라고 생각을 해요.
예수를 믿으면서도
세상 욕심 버리지 못하고
밤낮 세상에 얽매여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자리에 연연하고 돈에 급급하고
세상 욕심 따라서 거짓말하고, 남과 싸우고
남의 마음 아프게 하고
남을 무시하고 매장하고
이렇게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왜요?
하늘을 보지 못하고
세상만 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굉장히 중요한 얘기를 해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하여
세상의 모든 욕심과 자랑을 배설물로 여겼다.’
사도 바울의 영적인 수준 이었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봤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얼마나 고상한 가를 깨달았기 때문에
가치관이 바뀌었어요.
가치관이 바뀌어서
세상의 모든 자랑
학식, 바리새인, 가말리엘의 문하
공부 많이 한 거, 로마 시민권
그런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배설물인 것처럼 여김을 받았다..
여러분 이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의
영적인 단계고 수준이에요.
아마 이와 같은 실력을 갖추게 하기위하여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변화산으로 올라가게 하신 것이아닐까 싶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날마다 기막힌 새벽식구들도
이 날기새를 통해서
변화산에 올라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직전 회에서 말씀한 것이 바로 그런 거거든요.
‘네가 천하보다 귀해!
내가 너를 사랑해!’
이 깨달음 때문에
‘천하를 다 얻어도 내가 잘 사는 것이 아니다.
유익하지 못하다.’
하는 깨달음을 깨달은 것
세상의 것들에서 부터 자유 하게 된 것
이게 제 나름대로의 영적인 변화산에
올라가서 깨달음이거든요.
여러분이 변화산 올라가지 못하면
예수 암만 믿어도
여러분 부끄러운 존재가 될 수밖에 없어요.
예수를 헛 믿을 수밖에 없어요.
▲오늘 많은 한국교회가
변화산 밑에 머물러서
변화산을 체험하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욕심 채우는 도구로
알라딘 램프의 근육맨 지니
뭐든지 소원을 들어주는
그런 존재로밖에 인식 못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잖아요.
우리는 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처럼
변화산에 올라가서
여기서 초막짓고 사는 것이
세상의 궁궐에서 사는 것보다 더 낫다!
라고 하는
그 거듭남
그런 가치관의 수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변화산 이 본문의 말씀은
거기서 한 번 더 올라가요.
이 낮은 세상에 있어서
세상을 배설물로 여길 만큼
세상 궁궐보다 더 좋은
이 변화산 위에
하늘나라에 초막 셋이 더 낫다.. 라고 하는 영적인 가치관
여기까지 올라온 건 대단한 거거든요.
그런데 예수님은 한 번 더 올라가기를 원하시는 거에요.
거기 머무르기를 원치 않으세요.
여기가 좋아서
‘여기가 좋사오니’ 하는 베드로
그거 굉장한 깨달음 인데요.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그 수준에서 더 올라가기를 원하셨어요.
더 올라 변화산 보다. 더 높은 곳이
어디었는지 아세요, 여러분?
다시 세상이었어요.
예수님은 그 베드로의 말을 듣지 않으셨어요.
예수님은 내려오셨어요.
왜 내려 올 걸 뭐 하러 올라가셨나요?
그냥 여기에 똑같은 바닥인데!
그런데 여러분, 변화산에 올라가기 전의
변화산 밑과 세상과
변화산을 올라 갔다가
다시 세상으로 내려와서
그 변화 산 밑에 있는 밑은
사람 보기는 같아 보이기도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에요.
이 변화산 밑 세상은요.
이 세상보다 하나 둘 더 높은 것이에요.
이게 기독교의 핵심이에요.
여러분 많은 교회들이
변화산에 머물려고 그래요.
여기가 좋사오니
교회 생활 하다보면 너무 좋거든요.
그러다보면은 세상으로 다시 내려가고 싶지 않아요.
‘괴롬과 죄만 있는 곳
나 어이 여기 살리까
빛나고 높은 저 곳을
날마다 바라봅니다’
왜요?
그게 기독교 신학에 조금 미달하기 때문에
그 만큼 좋은 것을 경험 한 후에
다시 세상으로 내려오는 게 기독교 거든요.
왜요?
그들을 품고 그들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세상을 사랑하라고
여러분 이게 예수님이 의도하신 것이에요.
변화산으로 올라가서
영적인 체험을 하시고
세상 욕심을 버리게 하신 후에
다시 세상으로 내려와
세상 사람들을 섬기게 하시는 거
여러분 전 이것이 교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유럽이나
이렇게 다니면서 성지 순례할 때
제가 가끔 얘기했지만
저는 큰 성당 관광 다니는 거 좋아하지 않아요.
성당에 들어갈 때
이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아니었는데
그들이 그 성당을 초막 짓듯이 지어서
거기에 갇혔어요.
어마어마 하지요.
스페인에는 1백년 넘게 짓는 성당
진짜 아름답더군요.
아름답긴 아름다운데
전 그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교회가 교회에 갇히는 것이에요.
거기서 우리는 신비한 거
모세도 볼 수 있고
엘리야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도 들을 수 있어요.
근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자리는 거기가 아니에요.
여기 밑에도 아니에요.
여기를 떠나서 올라가기를 원하세요.
하나님 나라를 보기를 원하셔요.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가 거기에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세요.
그 영적인 실력을 가지고
세상의 욕심 다. 버린 것을 가지고
세상을 내려와서
여러분 세상을 섬기는 것이
여러분 욕심은 없어도
여러분 세상적인 욕심은 없어도
소명감은 있어야 되잖아요.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대해서까지
욕심이 없으면 어떻하겠어요?
소명감을 잃어버리는 거에요.
오늘 날 한국교회는 세상을 잃어버렸어요.
▲사랑하는 우리 날기새 가족 여러분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하실까요, 세상을 사랑하실까요?
둘 다 사랑 하시지요.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교회를 세상을 위하여 만드셨을까요,
세상을 교회를 위하여 만드셨을까요?
그건 분명해요.
하나님이 세상을 위하여 교회를 만드셨어요.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시거든요.
여러분 교회는 건강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에요.
세상은 병든 사람과 같죠.
근데 교회는 의원과 같아요.
교회는요. 건강한 사람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병든 사람을 위해서
의원처럼
쓰임 받아야 돼요.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를 먼저 부르시고
우리를 축복하시고
변화산으로 부르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의 말씀으로
가르쳐 주시는 줄을 믿습니다.
여러분의 지금 삶의 자리는 어디세요.
교회는 다니는데
그냥 여전히 세상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세상 욕심 버리지 못하는
그 수준에 있으세요?
아니면 여러분
이쯤 올라와서
이 세상의 욕심 버리고
이게 너무 좋아서
여기다 초막 셋을 지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베드로 수준이세요?
아니면 여러분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처럼
이 영적인 실력을 가지고
다시 세상에 내려와서
세상을 섬기고 세상을 축복하고
세상을 구원하고
세상을 건강케 만드는
의원 역할을 감당하는 자리에 있으세요?
제가 은퇴 전에 목회 할 때
우리 교인들이 너무 교회만 열심히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저는 그래서 장로, 권사, 안수집사
6년만 하게 했어요.
‘세상에 나가서 왕같은 제사장을 해라
세상을 섬겨라!’
‘나는 목사로 부름을 받아서
교회 일꾼이야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직업세계의 성직자야
왕같은 제사장이야
세상으로 나가라
세상으로 나가서
세상을 좀 섬기라고
세상을 축복하라고
밤낮 교회만 와있지 말라고!’
우리 이렇게 날기새나 이렇게 은혜를 받으면요.
너무 좋아요.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여요.
세상으로 내려가고 싶지 않아요.
‘괴로움과 죄만 있는 곳’에
살고 싶지 않아요.
돈 욕심 없어요.
여기 초막 셋을 짓고 사는게 훨씬 좋아요.
그런데 그 실력을 가지고
세상으로 내려가서
세상을 끌어안고
세상을 구원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축복하는
다시 변화산 밑으로 내려오는
우리 이 세상 속에 그리스도인이 되 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명인 명설교편◑ > 김동호목사 명설교 (155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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