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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의 축복을 예비하는 삶//디모데전서 6장 17-19절

by 【고동엽】 2023. 1. 24.

장래의 축복을 예비하는 삶// 20010204 주일낮예배

2001-12-08 17:37:08 read : 464

 

디모데전서 617-19(신약성경 342)

 

어제 말씀을 준비하면서 톨스토이의 부활이라는 영화가 언뜻 생각났습니다.

그 영화의 여주인공 카츄사는 네플류도프 백작을 만나 그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떠난 뒤 사랑하는 연인의 무사 귀환을 간절히 하나님께 빕니다.

마침내 사랑하는 연인이 군대에서 휴가를 받고 나온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카츄사는 그가 보고 싶어서 마을 역으로 나가 그를 기다립니다.

 

마침내 연인을 실은 기차가 도착했고, 카츄사는 차창을 통해 그를 발견합니다.

그녀는 창문을 두드리면서 간절히 백작을 불렀지만

그는 옆 동료들과 술을 마시며 웃어댈 뿐 카츄사를 보지도 기억하지도 못합니다.

결국 기차는 그냥 떠나버리고, 카츄사는 철길에 쓰러져 울면서 맹세합니다.

"저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신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겠습니다."

 

때로 정의와 양심과 선의 승리를 기대했다가 그 기대가 깨지는 모습을 볼 때

많은 사람은 정의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카츄사 심리를 가지게 됩니다.

오늘날 주위를 둘러보고 인터넷을 살펴보면 카츄사와 같은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도 처음에는 성도에 기대를 걸었고 교회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보니까 교회가 기대를 져버리고 교인들이 교인답게 행동하지 못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교회를 떠나고 하나님을 떠나는 상처 입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와 교인들은 우리에게 사랑과 헌신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축복에만 신경 쓰는 네플류도프 백작의 모습으로 나타나서는 안됩니다.

이웃의 눈물을 외면한다면 어떻게 참된 믿음의 도리를 다한다 하겠습니까?

상처 잘 받는 카츄사도 문제이지만 사려 깊지 못한 네플류도프도 문제입니다.

 

무엇이 필요합니까? 기도하고 봉사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모습도 필요하지만

이웃을 위해 혀끝의 사랑이 아닌 손끝의 사랑을 베푸는 모습도 꼭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믿음이 진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이 되지 않겠습니까?

 

어느 마을에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소원을 가진 한 제화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간절한 꿈이 응답되어 꿈속에서 예수님이 내일 가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음날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최상의 음식을 차려 놓고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지 않고 한번은 거지, 한번은 청소부, 한번은 사과장수만 왔습니다.

모두 추위에 떨고 있어서 이 착한 제화공은 이들에게 준비한 음식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날 밤 이 제화공이 꿈을 꿨습니다. 그런데 꿈에 예수님이 또 나타나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 왜 오신다고 하더니 오시지 않았나요?

예수님 대접하려고 음식을 준비했다가 오시지 않아 그냥 배고픈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오늘 너의 집에 가서 세 번이나 잘 대접받았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돕는 것은 나를 대접하는 것이고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잘 믿기를 원한다면 항상 우리의 손길을 펼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내용이고, 장래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9절을 보십시오.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도대체 무엇이 장래에 자기를 위한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삶일까요?

본문 17-18절은 우리에게 장래의 축복을 예비하는 4가지 삶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1. 마음을 높이지 말아야 합니다.

 

17절 말씀 처음 부분을 보십시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예비하려면 가장 먼저 마음을 높이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높은 마음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눈물짓는 사람입니다.

 

아프리카에 의료선교를 갔던 리빙스턴의 일기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토인들은 참을성이 많다. 그들은 어른이 되면 어떤 경우에도 울지 않는다.

지금 2.5센티미터 되는 종기를 칼로 찢어 수술할 때에도 태연하다.

큰 수술을 할 때에도 아파하지 않고 옆에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한다.

그들은 어린이가 아닌 어른들은 절대 울어서는 안된다고 믿고 있었다.

아픔을 참지 못하는 것은 잘 먹고 잘 입는 사람에게 더 심한 것 같다.

그 정도로 아프리카 토인들은 참을성이 많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들인데

나는 참으로 신기한 일을 목격했다. 내가 예수님의 피의 복음을 전했을 때

그들은 엉엉 소리내어 울면서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였다."

 

토인의 눈에서 나오는 눈물을 보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그때의 눈물은 하나님도 감격시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물입니다.

그때 사람은 가장 순수해지고, 가장 착해지고,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높이는 모습에는 절대 감격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복을 받는 데에 무엇보다도 겸손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받은 복을 유지하는 데에도 겸손이 필요합니다.

복 받아도 계속 겸손한 마음을 가지면 계속 복을 받는 사람이 되지만

복을 받았을 때 마음이 높아지면 그 순간에 하나님의 축복은 끝나고 맙니다.

 

그러므로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해야 합니다.

씨 에스 루이스는 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행복한 거지가 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는 자존심과 체면을 버려야 진정한 행복을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너무 자존심이 강하니까 상처도 많고 삶이 엉망이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을 보면 옛날보다 많이 높아져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모습보다는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모습이 강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말했습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말씀에 순종하고 싶다."

그처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겸손한 마음과 열린 귀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이 겸손하고 귀가 열린 것에 놀라운 힘의 원천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그 상황을 이길 수 있습니다.

주변에 어떤 소리가 방해해도 어머니는 아이의 소리를 듣는 것처럼,

하늘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은 영혼이 든든해지고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누가 자신에게 모욕을 줍니다.

그 모욕을 듣고 사람들이 웃으니까 그 사람도 같이 웃습니다.

"맞아! 맞아! 웃겨! 내가 웃기는 일을 했지!"라고 하면서 같이 웃어줍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겸손한 마음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주는지 모릅니다.

여유와 힘, 마음의 평안과 만족하는 마음, 깨끗한 정신 등 참으로 유익이 많습니다.

그리고 높을 때 겸손했던 사람은 낮아질 때에도 새로운 내일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겸손하지 못했던 사람은 수치와 부끄러움 때문에 불행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높아지면 속 상한 일도 그 높아진 만큼 많이 겪게 됩니다.

 

어떤 목사님 교회에 집사님이 목사님과 동일한 잠바를 입고 있었습니다.

얼마 주고 샀느냐고 물으니까 그 집사님이 8만원 주고 샀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12만원을 주고 사서 기분이 나빠서 그 잠바를 한동안 입지 않았습니다.

그처럼 한동안 추위에 떨다가 자기만 손해인 줄 알고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물건이지만 내 옷이 값어치가 나가는 옷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뒤로부터 편한 마음으로 그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나서 육신의 따뜻함도 찾아왔습니다.

그처럼 평등의식과 협력 정신 속에 승리가 있고, 행복도 주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일등 좋아하지 마십시오. 일등보다 나의 행복을 추구하십시오.

헝그리 정신으로 잘 알려진 영국 경제학자 촬스 핸디가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 29명을 면밀히 연구하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등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비교하지 말고, 천천히, 자유롭게, 본인의 길을 겸손하게 가시길 바랍니다.

 

2. 부정한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7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물질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 물질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에게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1965년 프랑스에서 90세 된 잔 칼망이라는 할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할머니가 살기가 어려워 나머지 여생을 편안히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데

그 소식을 듣고 할머니 집을 탐낸 이웃집에 사는 47세된 여자가 찾아왔습니다.

그 여자가 매달 2500 프랑, 현재 우리 나라 돈으로 약 50만원을 줄 테니

죽으면 자기에게 그 집을 넘겨달라는 제의를 했습니다.

만약 1년만에 죽으면 이 여자는 600만원에 그 집을 넘겨받을 수 있었습니다.

2년만에 죽으면 1200만원에 넘겨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10년 안에는 죽을 테니까 자기가 이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약을 했는데 이 할머니는 10년이 지나 100살이 되도록 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도 죽지 않고, 30년이 지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견디다 못한 이웃집 여자는 화병으로 77세가 되던 해인 1995년에 먼저 죽었습니다.

반면에 칼망 할머니는 세계 최고령으로 살다 199784일에 122세로 사망했습니다.

이 이웃집 여자처럼 물질에 집착하다가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물질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가 욕심쟁이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물질이 있어야 자기 삶이 안심이 된다는 그런 믿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과 그 환상을 깨야 합니다. 믿을만한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얼마 전 장래가 촉망되던 어느 30대 외국계 은행 지점장이 자살했습니다.

명퇴 제의를 받고 고민하다 자살한 것인데, 그가 이런 유서를 남겼습니다.

"은행을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애들아! 미안하다! 너희들은 아빠처럼 바보같이 살지 말아라."

 

왜 그는 자기의 삶을 바보 같은 삶이라고 했을까요?

은행이 자기의 삶의 전부인 줄 알았던 것이 바보 같은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하나님인 줄 아는 것! 그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길이 막히면 하나님 도움으로 사는 줄 알다가

길이 형통해지면 어느새 자기의 힘으로 사는 줄 아는 것이 인생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께 붙잡히는 자가 복된 자가 됩니다.

 

테레사 수녀님에게 누가 말했습니다. "수녀님! 정말 훌륭한 일을 하십니다."

수녀님이 말합니다. "저는 하나님 손에 잡힌 몽당연필일 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자기를 잡고 그림을 그려 나가셨다는 말입니다.

 

그처럼 좋은 일을 성취했을 때 하나님께 붙잡혀서 한 줄 알아야 합니다.

나쁜 일을 만났을 때에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더욱 매달려야 합니다.

그런 모습이 있어야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예비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3.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8절 전반부에서 말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흔히 사람의 됨됨이를 알려고 하면 두 가지를 주어보면 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칭찬이고, 또 하나는 돈이라고 합니다.

칭찬했을 때 교만해지면 피할 사람이고, 겸손해지면 가까이 할 사람이라고 합니다.

돈을 주었을 때 나쁜 데 쓰면 피할 사람이고, 좋은 데 쓰면 가까이 할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가지고 좋은데 쓰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러한 헌신과 사랑이 있어야 현재도 행복하고 장래의 축복도 주어질 것입니다.

주님이 돌아가실 때 그곳에 있다가 억지로 십자가를 진 구레네 시몬을 보십시오.

그때에는 재수 없는 일을 만난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것이 복이었습니다.

 

나중에 보면 구레네 시몬의 가족이 다 주께로 돌아와 신실한 가정이 되어

사도 바울이 인정할 정도로 귀한 가정이 된 것을 보게 됩니다(15:21, 16:13).

그리고 역사적으로 구레네 시몬의 12대 후손이 바로

로마의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틴 대제라고 합니다. 얼마나 축복된 일입니까?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고 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열매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일이라면 그 일에 동참할 수 있는 마음이 부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러한 선한 일은 반드시 열매 맺는 역사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맨하탄에 어떤 땅 주인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한 평이라도 더 건물을 올리려고 하지만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땅의 반만 건물을 지었고,

나머지 절반의 땅에는 분수대 등 시민들이 쉴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다 미쳤다고 했습니다. 자선사업가냐고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 분수대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곳의 사무실 임대료가 2배 이상으로 뛰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선하게 마음을 먹으면 반드시 축복이 예비되는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4. 나눠주기를 좋아하고 동정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8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나눠주기를 좋아하고 동정하는 자가 되라."

 

나누는 것을 물질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눔이 그것뿐이겠습니까?

남이 잘될 때 칭찬을 나눠주는 것이 가장 훌륭한 나눔 중의 하나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강단에서 칭찬을 잘 안한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질투심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칭찬 안 하는 것이 좋을까요? 질투를 극복하는 것이 좋을까요?

 

요새 여성들의 가장 큰 질투는 다이어트를 성공한 친구를 못 봐주는 것이랍니다.

왜 과소비가 일어납니까? 그것도 질투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런 질투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결국 자신의 죽음, 자신의 파멸뿐입니다.

그러므로 칭찬을 나눠주는 것은 자신을 살리는 가장 소중한 능력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나눠 줄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따뜻한 손길, 말없이 기도하는 손, 봉사하는 손 등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이웃에게 용기를 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또 얼마나 힘이 됩니까?

 

이번에 이은경 집사님이 어려운 병에 걸렸습니다.

이때 제일 고통스런 것은 욥의 세 친구와 같이 죄책감을 자극하는 사람입니다.

다행히 우리 교회에는 그런 사람이 없지만 그런 사람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고통스런 병에 걸린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설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선이란 하나님을 닮아 가는 선이고, 또한 하나님의 길 자체가 선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인간적인 축복과 눈에 보이는 성공을 선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에게 엉뚱한 말을 해 더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욥이 졸지에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친구들이 와서 "잘못한 것 회개하라!"고 합니다.

또한 지금 자식을 무덤에 묻고 왔는데 "당신 회개하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처럼 말하는 것은 자칫하면 잔인한 얘기일 수 있습니다. 그때는 침묵해야 합니다.

아들은 잃은 부모에게 아들을 잃지 않은 사람이 하는 설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런데 신앙이 있다고 자처하는 분 중에 그런 말들을 남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상처가 많아진 이 시대에 우리의 따뜻한 말과 관심과 동정이 너무 필요합니다.

얼마 전 실직이 심했을 때 한강대교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그곳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미끄러운 칠을 하고 청원경찰까지 두었습니다.

 

어느 날 한 청원경찰이 보니까 어떤 남자가 한강대교에서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을 거니까 그가 대뜸 눈물부터 흘립니다. 알고 보니 죽으러 온 것입니다.

유서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화하면서 이 남자는 자살을 포기하고 돌아섰습니다.

자기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어 죽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는데,

이러한 모습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굶주려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당신이 소중하다"는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르윈스키 스캔들로 한창 떠들썩할 때, 클린턴 대통령이 한국에 왔습니다.

그리고 영사와 영사 부인들을 초청해 만찬을 열었습니다.

만찬에 초대받았을 때 많은 영사 부인들은 스캔들을 일으키는 대통령을 욕했습니다.

마지못해 만찬에 참석하지만 자기 나라 대통령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만찬이 끝날 무렵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곳에 있었던 모든 영사 부인들이 클린턴 대통령의 팬이 된 것입니다.

지금 클린턴 대통령이 젊은 나이에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뽑힌다고 합니다.

그리고 역사상 처음으로 취임 때보다 퇴임 때에 더 인기 있는 대통령이라고 합니다.

 

어디에 그런 비결이 있을까요?

클린턴은 말과 태도에서 항상 상대방에게 "당신은 나에게 소중한 사람입니다"라는

느낌을 전달한다고 합니다. 그의 매력은 키와 잘생긴 얼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의 사랑이 넘치는 언어와 태도에 있었던 것입니다. 배워야 할 태도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생각만 고쳐먹으면 나눠줄 것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각박한 세대에서 우리는 나눠주며 살기를 힘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그 열매는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며, 동시에 우리 인생은 가치 있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서울 강남에서 큰 병원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전혀 부족한 것도 없었고, 아무 부러울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랑하는 아내와 외동딸이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졸지에 아내는 죽고 외동딸은 장애자가 되었습니다. 심리적 공황이 찾아옵니다.

장애자가 된 외동딸을 바라보면서 그는 돈과 성공이 휴지조각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제서야 형식적으로 교회에 나가던 삶이 바뀝니다.

진실하게 주님을 만나게 되었고 삶의 좌우명이 바뀝니다.

"자신에게는 인색하고 남에게는 후하자!"

그리고 사재를 털어 경기도 광릉에 상처받은 자를 위한 교회를 세웁니다.

드디어 그는 행동하는 신앙인으로 거듭났습니다. 이런 거듭남이 있으셨습니까?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가장 행복한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 주변에 아직도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사실이 행복합니다.

여러분 모두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된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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