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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명설교편◑/이정익목사 명설교(385편)

사람을 행복하게 하라 (7)

by 【고동엽】 2023. 1. 14.

사람을 행복하게 하라 (7)

 

 

 

 

 

 

 

 

                                        3:15-17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  

 

 

 

                  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오늘 사람들이 모두 살아가기가 힘들고 피곤하다고들 말합니다. 경제도 어렵고 정신적으로도 피곤하고 사회혼란도 가중되어 삶 자체가 매우 피곤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힘든 것은 미래에 대한 소망이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대화를 들어보면 모두 피곤해 하고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불만도 하고 불평도 하고 원망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같이 마음대로 불평하고 불만하고 원망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여러 가지 면에서 차별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값이고 의무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불평을 소망으로 불만족을 희망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사회적 책임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불평을 한다고 해서 무엇 한 가지 해소되고 좋아지고 이루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생각을 많이 하며 살아가는 삶이어야 합니다. 생각 없이 살면 매일같이 불평과 불만족에 휩싸여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양, 내용, 가치, 형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내용을 보면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행복하고 기쁘고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삶을 책임 있게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나 한사람으로 끝나는 인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의 삶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내가 예수님을 알고 믿음 안에서 살기 때문에 행복하고 늘 감사하고 항상 기쁘고 즐겁고 찬양의 삶을 살면 그 건강한 삶의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파되고 확산되고 파급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삶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면 나의 삶을 보면서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무언으로 격려를 입게 됩니다. 그 삶은 결국 이 세상을 밝게 하고 건강하게 하고 치유하는 삶이 됩니다. 그렇게 사는데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15)

 

 

 

 

 

 

 

 

이 말씀은 마음을 잘 관리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행복하기로 결심하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모두 마음에서 먼저 결정됩니다. 불행이 어디서 시작되는가 하면 “나는 불행하다”하고 생각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나는 불행하다”하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행복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나는 행복하다, 참 감사하다”하고 생각하고 살면 마음 가득히 행복함이 싸여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부터 해 보십시오. “감사합니다” 하고 찬송을 불러 보십시오. 그리고 대화에, 생각에, 언어에, 마음에 나는 행복하다, 감사하다 하는 생각을 품고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그렇게 됩니다.

 

 

 

 

원래 설교는 재미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누가 잔소리를 하면 “또 설교하느냐”하고 말하지 않습니까. “재미없다”하고 행각하면 재미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설교가 시작되면 잠이 오는 것입니다. “은혜 안 된다” 생각하면 곧 바로 잡념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오늘은 듣겠다”하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설교가 은혜롭고 재미가 있어집니다. 부흥회 때나 산으로 기도회를 갔을 때 듣는 설교가 주일날 듣는 설교보다 훨씬 은혜가 되고 재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듣겠다 하고 작정하고 찾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일날 억지로 끌려 나와서 설교를 들으면 설교가 재미있을 리가 없습니다. 설교가 재미없다고 생각하면 그 설교는 지루합니다. 또 길게 느껴집니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를 너무 길게 했습니다. 그래서 설교가 시작되면 모두 졸기 시작합니다. 어느 집사님이 더 참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더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는데 목사님 설교가 15분 만에 끝났습니다. 밤새 준비한 설교원고를 주일날 아침에 강아지가 물어가는 바람에 오늘 설교가 짧게 끝난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이 집사님이 목사님에게 가서 그 강아지를 한달만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설교를 길게 하는 목사일수록 재미도 없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수요일 저녁에 그날이 남편의 생일이라 손님 접대를 하다 중간에 잠간 나와서 예배드리려고 교회에 갔습니다. 그날 예배가 빨리 끝났으면 좋았는데 그날따라 길어졌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마지막으로”라고 말했습니다. “야 이젠 끝나나 보다” 했는데 조금 있다가 “끝으로” 그럼니다. 그리고 한참을 설교하다가 이번에는 “결론으로” 그럼니다. 마침내 설교가 끝나고 주기도를 했습니다. 주기도를 마치고 일어나려고 하는데 오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셨다고 찬송 한 장을 더 부르자고 그럼니다. 그것도 가장 긴 241장 하나님아버지 주신 책은 그 찬송은 5절까지 있습니다. 예배를 이렇게 드리면 안 됩니다. 예배드리려면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길어도 듣겠습니다”하고 앉아 있어야 은혜가 되고 말씀이 귀에 들어옵니다. 무엇이나 자세가 중요합니다. 행복은 마음으로 그렇게 결정하면 주어지는 것입니다.

 

 

 

먼저 마음에 “나는 행복하다” 하는 마음부터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행복해 지는 비결입니다. 행복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만들고 조성하고 이루어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2.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15)

 

 

 

 

 

 

 

 

이 말씀은 “행복의 방법을 연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감사하라”는 말씀은 명령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되도록이면 감사하도록 하라”가 아니고 “너희는 반드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명령형으로 말씀하십니다. 그 말은 행복의 방법을 강구하고 만들고 연구하라는 뜻입니다. 행복은 계획해야 하고 만들어야 하고 조성해야 주어집니다. 무슨 일을 하려면 먼저 계획부터 해야 성공합니다.  행복, 감사, 기쁨은 내가 만들고 연구하고 조성해야 얻어집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그 말은 “행복을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1704년 독일의 베냐민 슈몰크 목사님 내외분이 심방을 갔다 집에 와 보니 집이 모두 불타버렸습니다. 어린 형제가 집에 있었는데 불러 보았지만 대답이 없습니다. 혹시 하고 잿더미를 들추어보니 어린 두 형제가 부둥켜안은 채 죽어 있었습니다. 그 두 어린 아들의 시신을 앞에 놓고 망연자실 했습니다. 그때 별생각이 스쳐갔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럴 수가 있는가”, 순간 분노와 서운함과 의문이 몰려 왔습니다. 인간적인 오기도 서려왔습니다. 그런 생각에 휩싸여지자 온 몸에 소름이 끼쳐 왔습니다. 그 순간 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갔습니다. “여기에 무슨 뜻이 있단 말인가” 하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에 평온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영감이 넘쳐 나왔습니다. 그때 주어지는 감동의 영감을 글로 적어 놓았습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몸과 온 영혼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사 뜻대로 하소서“ 여기에 홀부르크라는 분이 곡을 붙였는데 그 것이 오늘 우리들이 즐겨 부르는 431장 찬송입니다.

 

 

 

참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신앙의 세계에는 이런 감동이 있고 기적이 있습니다. 행복이나 기쁨이나 감사함의 삶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들어야 주어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강조하여 명령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하라”

 

 

 

 

 

 

 

 

마음에 찬송과 노래와 감사가 있으면 그 마음의 상태가 밖으로 표현되게 되고 보이고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신앙의 삶이고 모습입니다. 어떤 연탄장수는 매일같이 연탄마차를 끌고 다니면서도 늘 웃는 즐거운 표정이었습니다. 매일같이 검은 얼굴에 흰 이를 내 놓고 웃고 다니는 그에게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아저씨는 무엇이 그렇게 즐거워서 웃고 다닙니까” 그러자 그 연탄장수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설명해도 모를 것입니다” 그 마음속에 있는 평안과 감사의 마음을 설명한들 누가 이해하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16)고 했습니다. 그 말은 “행복한 사람처럼 행동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은 사람으로 하여금 늘 행복하게 살도록 놔두지 않습니다. 때로 마음에 남모르는 아픔, 우울함, 쓸쓸함, 원망, 불안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모두 표현하며 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작은 아픔들은 잊고 극복하고 늘 행복한 마음으로 행복한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작은 근심들은 그냥 물러가 버립니다. 사람은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살면 내 마음속에 스스로에게 주어지는 암시를 받게 됩니다. 나는 믿는다, 나는 할 수 있다고 외치면 스스로에게 암시가 주어져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힘이 주어지는 것처럼 우리 신앙인은 스스로에게 행복한 사람처럼 행동하고 생각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마음속에 행복을 그려야 합니다. 나는 행복하다고 자주 외쳐야 합니다. 나는 불행하다 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정말 불행해집니다. 우리 집은 행복하다 하고 말하고 생각하면 행복해집니다. 나는 행복하다 하고 생각하며 살면 행복해 집니다. 우리교회는 행복한 교회다 하고 생각하면 행복한 교회가 됩니다. 나는 늘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 하고 고백하면 더 큰 은혜가 주어집니다.

 

 

 

그래서 사람은 비전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 비전이 마음에 씨로 잉태되면 10 20년 후 그 모습, 그 생각대로 됩니다.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면 생각, , 언어가 살아서 움직입니다. 그래서 먼저 나 스스로에게 나는 행복하다 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행복이 나에게 만들어지고 조성됩니다. 또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살면 나의 삶 모습을 보고 남들이 영향 받습니다. 그래서 행복의 삶은 전염되고 파급되고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나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삶이 건전하고 늘 만족함과 감사함으로 살아가게 되면 그 삶에서 사람들이 보고 도전을 받고 힘을 얻고 은혜를 받습니다. 그 삶이 그리스도인들의 멋입니다. 그렇게 살면 사람들이 그 삶을 모방하고 감동받고 영향을 받습니다. 그 모습이 진정한 전도입니다.

 

 

 

 

미국에서 호텔에 있는 동안 도적이 들어와서 다 잃어버렸습니다. 호텔관계자가 하는 말이 30여 년 동안 이런 일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호텔이 생긴지 30년 만에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서 많이 생각했습니다. “왜 30년 만에 발생한 사건이 하필이면 나에게 그런 일이 발생했을까, 왜 사람들은 내 뒤를 밟고 있다가 내가 없는 사이에 내 방에 들어와 가방뿐 아니고 옷까지 다 걷어 갔을까, 그것이 왜 나일까“를 한참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마침내 ”내가 돈이 많은 사람같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내가 돈이 많은 사람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나의 뒤를 유심히 보다가 내 방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며 왜 나를 찍었겠습니까.

 

 

 

여러분, 내가 행복한 사람처럼 보이며 사는 것은 참 중요한 모습입니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부자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고 여기며 나를 존경하고 나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삶의 태도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해지는 비결이 “행복한 사람처럼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보면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신앙인에게 이 찬송과 신령한 노래와 감사 생활하는 삶이 참 중요합니다. 그 삶 속에서 행복은 만들어지고 그 삶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그대로 비쳐져서 영향을 주고 세상을 밝게 하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4.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

 

 

 

 

 

 

 

 

 

이 말씀은 나만 행복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남들에게 이 행복을 전염시키라는 말입니다. 즉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감사하는 삶, 행복한 삶은 전염되고 파급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나만 행복하다 하고 살면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먼저 나를 행복하게 한 다음에 너를 행복하게 만들고 이웃을, 형제를, 세상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삶이 중보의 삶입니다.  먼저 내가 행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너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삶이 더 큰 행복한 삶입니다.

 

 

 

어느 여인이 차를 타고 달리는데 도중에 차가 멈추었습니다. 응급처치를 해 보았지만 시동이 걸리지 않습니다. 약속시간은 다가오고 초조했습니다. 지나가는 차를 세워 보았지만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암담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었습니다. 그때 차 한대가 다가오더니 신사 한 사람이 내렸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엔진에 문제가 생겼어요” 그 신사는 한참 엔진을 만져보더니 “이제 시동을 걸어보라”고 합니다. 시동이 잘 걸렸습니다. 너무 신기했습니다.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사례하려고 지갑을 열었더니 한사코 사양했습니다. 그럼 이름이라도 알려달라고 하니까 이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이 차를 설계한 헨리 포드입니다” 그리고는 살아져 갔습니다. 얼마나 뒷맛이 상큼하고 즐겁고 행복한 모습입니까.

 

 

 

어떤 분이 이 나라가 싫어서 이민가려고 수속을 밟고 있었습니다. 거짓과 속임과 무책임과 부정과 이기주의에 신물이 났습니다. 이 땅에서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주차해 놓은 차를 누가 긁어놓았습니다. 순간 또 속상했습니다. 그런데 차 유리에 쪽지 한 장이 붙어 있었습니다. “운전이 서툴러 차에 금을 그었어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연락방법은 없고 시간을 없어서 그냥 갑니다, 연락처를 적어 놓았으니 연락주시면 변상해 드리겠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이 분이 그 쪽지를 받아들고 그날 얼마나 마음이 흐뭇하고 반갑고 행복했던지 “차에 금을 그었을 때는 빨리 도망가는 것이 보통인데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는가, 이 나라는 아직도 희망이 있는 나라구나”하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나라가 싫어 이민 가려던 계획을 취소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은 나 혼자 사는 나라가 아닙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는 한 가지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내가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의무이고 삶이고 명령입니다. 그리고 너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그리스도인의 의무이고 삶입니다. 그렇게 살 때 병들고 오염되고 편견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을 치유하고 따뜻하게 하고 중보 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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