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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명설교편◑/옥한음목사 설교66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마5:6

by 【고동엽】 2023. 1. 13.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마5:6                      

 

 

▲배부름이 없는 세상, 애간장만 타는 세상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돈을 손에 넣기 위해서 안달하는 사람,

쾌락을 찾아서 밤낮없이 헤매는 사람들,

명예와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서 혈안이 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모두가 세상 영광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설혹 조금 손에 넣었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만족하고 기뻐하고

영원토록 보람을 느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희랍신화에 탄타루스 왕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독교와 전혀 관계가 없는 신화입니다만, 한두 가지의 값진 진리는 담고 있습니다.

 

탄타루스 왕이 먹으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고 하는

제우스 신의 음식을 훔쳐 먹었습니다.

그 죄로 그는 평생 배고프고 평생 목말라야하는 고통의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이 마시고 싶어서 앞에 있는 물 잔을 잡으려고 손을 내밀면

물 잔이 뒤로 쓱 물러나는 것입니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앞에 있는 나무에 열린 과실을 따 먹으려고 손을 내밀면

그 나무 과실이 하늘로 휙 올라가 버리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마시고 싶고 먹고 싶은 것을 하나도 입에 넣을 수가 없는 고통을

평생토록 겪어야 했습니다.

이 탄타루스 왕의 신화에서 영어 단어가 하나 생겼습니다.

'텐터라이징(Tantalizing)'이라는 단어입니다.

'감질 나는, 애간장을 태우는'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마시지 못하고 먹지 못합니다.

배는 고프고 목은 마르는데 얼마나 안달이 나겠습니까? 얼마나 감질이 나겠습니까?

사람들이 쉬지 않고 추구하고 있는 이 세상의 영광은 다 이런 것입니다.

 

내가 손에 넣을 만 하면 손에서 빠져나갑니다.

조금 얻었다 싶으면 그것은 실제로는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설령 내 입으로 물었다고 생각하고 삼켰다고 생각해도

그것으로 인해서 갈증은 더 생기고, 배는 더 고프게 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미친 사람처럼 날뛰는 것입니다.

 

▲만족한 인생을 사는 길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특별히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진정 배고파해야 하고

목말라 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그것은 ‘의’라고 말씀하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요,

저희가 해갈을 받을 것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만족, 영원한 평안,

영원한 충족감을 맛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어도 배고프고, 마셔도 목마르기만 한 것들에 매달리지 말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되라. 이것이 진정한 행복의 길이요,

이것이 하나님처럼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서

이 세상을 사는 지혜로운 길이다.' 라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

그러나 솔직하게 이야기합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요.

그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실감나게 와 닿습니까?

아마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몇 분 안 되실 것입니다.

 

틀림없이 모두 남의 이야기처럼 들릴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성경을 날마다 손에 들고 읽는 우리까지도

그 말씀이 참 진리인 것으로 생각되면서도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별로 없는 것처럼 느낍니다.

 

▲사생결단의 목마름, 배고픔

더욱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 '주리다' 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페이논테스(페이나오)'인데,

약간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이 없나?' 하고

냉장고의 문을 열어 먹을 것을 찾을 때 느끼는 시장기가 아닙니다.

이 단어는 먹을 것을 찾아서 생명을 걸고 두만강을 헤엄쳐 건너는

북한 사람들이 체험하는 배고픔입니다.

 

'목마른'은 '딥손테스(딥사오)'인데

'무엇을 좀 마셨으면 좋겠는데, 차 한 잔 주십시오.'라고 할 때 느끼는

약간의 목마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때 광야에서 사흘 길을 헤매며

그 때까지 물 한 방울 마시지 못했을 때, 백성들이 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모세 앞에서 난동을 부렸습니다.

이런 목마름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딥손테스'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우리 자신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사실 우리가 그 정도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라고 말하기에는

양심이 허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이 본문을 보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께서 겸손한 마음에 오셔서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1.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구원받기를 간절히 사모> 합니다.

 

▲예수님의 의로 옷 입어야

인간은 의가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의’ 그 자체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써 예수님의 ‘의’를 옷 입듯 입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롬13:14

이 때 예수님의 의가 우리에게 옷처럼, 덧입혀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의와 거룩함’이 되셨습니다.  고전1:30

그러므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먼저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를 우리가 전가 받아야 됩니다.

 

▲구원을 갈증 내는 목마름과 배고픔이 있으시기를!

이 일을 위하여 전 세계에 수백만 개의 교회를 세우시고

오늘도 복음을 증거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가운데서 구원을 받아야겠다는 마음의 갈증이 있어서

교회 나오신 분이 계시다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정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자리에 나와 앉아 계시는 것입니다.

 

수천 명이 지금 함께 예배를 드리지만, 이 가운데 적어도 10% 이상은

아직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아니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중생 받지 못한 분일지도 모릅니다.

겉으로는 예수 믿는 사람 같지만, 예수님과 별로 관계가 없는,

마음의 문을 닫아 놓고 계시는 분일지 모릅니다.

 

이런 분들은 내가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갈증을 가져야 됩니다.

사도 바울 앞에 무릎을 꿇고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고 절규했던 빌립보 감옥의 간수처럼

여러분들은 구원받기를 사모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주님을 간절히 사모> 합니다.

 

▲의로운 삶의 모델을 보여주신 예수님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가 무엇이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시는 것으로만 끝낸 분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을 사신 것을, 실제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걸어 다니신 모습을 보고,

그가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그가 행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죽으심을 보고, 그의 부활하심을 보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삶은 바로 저런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윤리적 의의 추구가 아니라, 주님을 사모하면 주님을 닮게 됨

우리는 ‘의’가 없고, 주님은 ‘의’의 전부가 되십니다.

주님이 곧 '의' 그 자체이십니다.

 

우리는 억지로 윤리적 의를 실천하기 이전에,

‘완전한 의’가 되신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다보면, 주님을 점점 닮게 되고,

점점 ‘주님의 의’를 추구하며, 자원해서 의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다윗은 시편 42:1~2절에서 이렇게 자신의 갈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우리에게는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 말입니다.

유대 나라는 건조한 반사막 기후입니다. 건기에는 몇 달 동안 비 한 방울 없습니다.

그런 건기에 사슴이 목이 말라 물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느라고

정신없이 헤매는 것은 사생결단하는 행동입니다.

그 사슴의 갈급함을 자신의 갈급함에 비유하는 것입니다.

 

▲자기 전에 성경 5장씩 읽는 사람

어느 사업하시는 분인데, 아무리 사업에 쫓기고 바빠도

그래서 저녁에 보통 10시, 11시에 집으로 들어오는 일이 다반사임에도 불구하고,

집에 돌아 와서 몸을 씻고 집안 식구들과 이야기를 다 나누면

잠자리 들기 전에 성경을 펴놓고 하루에 꼭 5장씩 읽는다고 합니다.

그것이 본인에게는 너무나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 시간에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음성을 들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사업에 대해서도 아이디어를 주신다고 합니다.

자기 마음에 있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도 가끔 해답을 주신다고 합니다.

 

이 은혜를 사모하기 때문에

흥미를 끄는 텔레비전 프로들이 많은데도 보지 않고

이렇게 말씀을 펴놓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분의 간증이 매우 재미있었습니다.

IMF가 터져서 모두가 어려울 때에 자기 사업도 매우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그 때 하루는 장인이 부르시더니 '자네, 인테리어 사업 좀 해봐.' 하시더랍니다.

 

처음에는 무심결에 듣고 그 제안을 잊어버렸지만,

그 날 저녁에도 씻고 성경을 펴놓고 앉아서 읽는데,

마침 그 날에 출애굽기 18장을 읽었는데

모세가 <장인의 말을 듣고서> 천부장, 백부장을 세워서

백성들을 재판했다는 내용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 참 이상하네. 하나님께서 장인의 말을 들어라고 말씀하시는가 보다.'

라는 <마음에 감동>이 생겼고,  그 다음날 어떻게 연결이 되어

부도 직전에 있는 인테리어 회사 하나를 인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 회사가 잘 나간다고 합니다.

 

▲너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주님은 굶주린 영혼에게 시시때때로 맛있는 만나를 배불리 주십니다.

그래서 '배부를 것이요.'라는 주님의 말씀은 현재분사형입니다.

이것은 수시로 우리에게 생수를 주시고

수시로 우리를 배부르게 먹여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맛있는 음식이 있는 좋은 식당이 있는데 한번 가서 먹고는 '이제 됐다.' 하면서

평생 다시 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맛있는 음식 맛을 한 번 봤다 하면 언젠가 또 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정말로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나서

다시는 안 만나겠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또 만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신 사람은 더 마시고 싶어 하고,

예수님이 주시는 영의 양식을 먹으면, 그 다음에 또 더 먹으려 합니다.

 

세상 것은 먹으면 먹을수록,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만 일으킵니다.

남는 것은 공허감 밖에 없습니다.

‘주님, 이제 주님께서 나의 빈 공간을 채워주십시오!’

 

◑3.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계명에 순종하기를 간절히 사모> 합니다.

 

‘의’란 율법, 즉 계명을 지킬 때, 의가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그 명령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  신6:25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올곧게 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결혼을 하면 자녀를 갖게 됩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는 부모가 그 아이에게 요구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부모가 다 책임집니다. 책임을 지고 어려움과 고통을 다 감수하면서

정성을 다 쏟아 한 생명을 이 세상에 내보낸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자녀가 일단 가정에 태어나 내 자식이 되면,

그리고 그 애가 자라면서 조금씩 말귀도 알아듣고, 분별력도 생기고,

나름대로 철이 들기 시작 하면 그 때부터 그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엄마 아빠 말을 들어야 해, 아빠 말 잘 들어야 사람이 된다.'

이것을 반드시 요구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 자녀로 삼으실 때

요구하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다 계획하셔서, 나 같은 것에게 믿음 주셔서,

은혜로 거듭나서 하나님 앞에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은 믿음 밖에 없습니다.

그 믿음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움직이심으로 믿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잘 나서 믿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일단 예수 믿고 중생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그 다음에는 요구하십니다.

'순종하라.' 입니다.

자기 자식이기 때문에, 천국 백성이기 때문에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요구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순종하는 삶을 과소평가하는 분이 있다면

아직도 진리를 아는데 이르지 못한, 영적으로 미성숙한 자리에 있는 분입니다.

스스로를 한번 반성해 보십시오.

‘나는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합니까?, 말씀대로 살기로 몸부림치고 있습니까?’

 

목마르고 배고픈 듯이 몸부림치는 갈증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배부른, 만족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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