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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명설교편◑/옥한음목사 설교66편

이혼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마5:32

by 【고동엽】 2023. 1. 13.

이혼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바를 새겨 들으십시오     마5:32, 19:6  

◑도입  '부부는 섭리적 만남'                         ☞ ▣ 행복한 가정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저 한 70~80년 살지요. 
그 기간 동안 우리 모두가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의 수가 얼마나 될까요? 
아무도 계산해 본 일은 없습니다마는, 아마 대단히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만남이, 마치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의미 없이 그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만
어떤 만남은, 안 믿는 사람들이 흔히 표현하는 방식대로 한다면, 
숙명적인 만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숙명적'이라는 말을 잘 안 쓰죠. 
그 대신 '섭리적'인 만남, 

그렇게 나의 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단 한 번의 만남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죠. 

'섭리적'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계획하신 뜻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어떤 사람과 만나도록 한다..는 믿음에서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런 섭리적인 만남 가운데서, 대표적인 것을 하나 뽑으면 
부부가 된 남녀의 만남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막상 결혼해 놓고, 십 년 이십 년 살면서 생각하면, 
'야 그때 그 무슨 파티 자리에서 만난 게, 이렇게 내 인생을 바꿔 놓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감격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는 거죠.

◑대 원칙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결혼합니다. 
결혼하면, 부부가 된 사람에 있어서 첫 단추가 있어요. 

이것은 마19:6절에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이 짝 지어주셨다' 하는 것입니다. 

이게 첫 단추입니다. 하나님이 짝 지어 주셨어요. 
마19: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우리는 사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우리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내가 좋아서, 내 눈에 들어서 내가 선택했다' 이렇게 말하죠.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나의 자유선택 배후에는 
엄청난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고집대로, 제 멋대로 하는 결혼도 있을 겁니다. 주님의 섭리를 벗어난 결혼)

오래 전부터 하나님은 계획을 가지고 계셨어요. 
'나와 누구를 만나게 해서 짝지워야 되겠다' 하는 계획이었어요. 

그 계획대로 하나님은 우리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인도하셨습니다. 
그 수십만 명 되는 총각 중에 어느 사람 하나, 
그 수십만 명 되는 처녀 중에 어느 사람 하나, 
그렇게 서로가 만나는 것.. 그거 사람이 마음대로 하는 것 아니에요. 

하나님이 다 이리 붙이고, 저리 붙여서 만나게 하는 손길이 있었어요. 
그리고 만났다고 일이 됩니까? 
그를 쳐다보니, 남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데, 
자기 보기에는 굉장한 사람으로 눈에 들어온단 말이에요. 
이것도 참 기절초풍할 일이에요.

소위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그 말이죠.
그게 다 인연이 되게 하려고, 즉 하나님이 짝지어 주시려고 
딱 각본을 짜 놨기 때문에, 내가 그 안에서 움직이는 거예요. 
나도 모르게 마음이 열려 사랑하게 되고, 결혼하게 되고, 
이렇게 해서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하나님이 짝 지어 주셨다' 하는 것은 
부부의 알파 단계요, 첫 단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부의 오메가 단계, 마지막 단추, 끝 단추는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이라" 하는 말씀이에요. 마19:6  

부부는 사람이 나누지 못하게 됩니다. 
만나게 하시고 부부가 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니까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나눌 수가 없다..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부부가 된다는 것은 
짝 지어 주셨고, 허락 없이 나눌 수 없다..는 이 틀 속에서 
둘이서 만나가지고 한 생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이 말씀은 '절대 명령, 절대 계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외 단서, 예외 조항이 따라다닐 수가 없는 것과 같아요. 

'살인 하지 말라' 십계명에 명시된 중요한 계명입니다. 여기에는 예외 단서가 없어요. 
'누구는 죽여도 좋다. 누구는 반쯤 죽여라' 이런 예외 단서가 없어요. 
무조건 죽이지 말라는 거예요. 죽이면 그 대가를 지불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느니라' 
이것도 예외 단서가 붙을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엄숙한 명령이라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됩니다. 

◑예외 조항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놀라운 사실이 있어요. 
하나님이 이혼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을 달아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신24:1절에 이런 말씀이 나와요.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그러면 그 여자는 나가서 또 다른 남자와 재혼할 수 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되면'
하나님은 '사람이 절대로 나누지 못한다'고 말씀하셔 놓고는 
예외 조항을 붙였는데 '수치 되는 일이 발견되면' 여자를 내보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예외 조항을 붙였는데, '수치 되는 일'이 무엇인가요? 
참 이거 애매모호한 표현이에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수치 되는 일'을  음행하는 일로 해석하셨습니다. 

마5:32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없이는 아내를 버리면 안된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는데,
그러니까 말을 바꾸면, 음행의 문제가 생기면, 
즉 성적 탈선, 부부가 정절을 지키지 아니하고 탈선을 하면 
이혼을 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정절을 어기는 것을 신24:1절의 '수치스러운 일'로 해석하셨어요. 

▲사도 바울은 고전7:15절에 또 하나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이것도 아마 수치스러운 일에 포함될 수 있죠. 왜냐하면 이혼의 조건이니까요.

고전7: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그래서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꼭 헤어지기 원하면 헤어져라 
믿지 않는 부인이 꼭 헤어지기 원하면 헤어져라..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되면, 불신자인 남편이나 아내를 가진 사람은 이혼이 가능하다.. 하는 것을 
우리가 추리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초대교회 사정을 아시죠? 

그 당시에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자기 생명 내 놓고 영생과 바꾸는 것입니다. 
핍박 받던 때요, 또 대부분의 경우 사회적으로 매우 어려운 형편에 놓인 사람들, 
즉 사회적으로 인정 받지 못하고, 여러가지 면에서 짓밟힌 사람들이 예수님을 먼저 영접했어요. 

어느 가정에 부인이 먼저 예수 믿고 거듭 나서, 완전히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이 뺏겼어요. 
불신자 남편이 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아내에게 '예수 믿지 마!'하고 처음에는 경고하다가.. 아내가 말을 안 들어요. 

그런데 아내는 생명 걸고 믿겠다고 그러는 거죠.

그래가지고 나중에는 부인하고 이제 충돌이 일어났죠. 
남자가 나중에는 폭력을 행사합니다. 막 집에서 쫓아내기도 하고... 
그러므로 이 여자가 도무지 남편과 함께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를 바울이 염두에 두고서 하신 말씀입니다. 고전7:15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면, 이혼할 수 있다는 이야기예요.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가 대 원칙이지만, 예외 조항도 성경에 나온다는 겁니다.

또 남자가 예수 믿었는데, 여자가 죽어도 안 믿겠다 그러면 
그것 때문에 가정이 날마다 다투면서 지옥처럼 변한다면
그럴 때는 나누어지라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몇 가지 사연을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저는 참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와 은혜를 다시 한 번 여기서 느낍니다. 

'사람이 절대 나눌 수 없느니라' 하고 엄하게 말씀해 놓고는, 
그 다음에 '이런 이런 경우는 나눌(이혼 할) 수 있다' 하는 예외 조항을 달아놓고 
탈출구를 만들어 주신 하나님! 

즉 우리의 연약함을, 우리의 부족함을 너무나 불쌍히 여기셔서 
하나님이 이처럼 배려를 하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다시 한번 우리가 느끼는 것이죠

여러분 보세요. 어떤 부부가 있는데 
남편이 보기에 아내가 좀 수상합니다. 증거는 없어요. 

그런데 여자가 자기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것 같고, 
누구하고 뭔가 좀 좋아지는 것 같고, 
소문에 의하면 '여자가 바람을 피웠다'는 말도 있고... 
그런데 증거는 잡을 수가 없어요. *의처증인 경우

이 정도 되면 남자가 이제는 얼굴 표정을 바꾸지요. 
자주 막 싸움을 하고, 나중에는 폭력을 행사하고, 
집 안에서 '나 죽는다' 하는 비명 소리가 나오고... 하죠. 

그런 시점에 '너희는 이혼을 하면 안 된다. 만약 이혼을 하면 사형이다!'
하나님이 딱 이렇게 못을 박고, 절대로 탈출구가 없도록 만들어놓으면 
이혼 절대 못 해요.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결과적으로 여자가 나중에 죽어나올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는 이혼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예외 규정을 주시고, 출구를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거 얼마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편을 아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나!' 
이렇게 제가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연약함을, 완악함을 아시고 
이런 예외 단서를 붙여 놓은 것을 악용하는 거예요. 

'수치스러운 일이 있으면, 그래서 그것을 기뻐 하지 않으면 
아내에게 이혼증서를 써주고 나누어지라' 해놓으니까  신24:1 
얼씨구나 좋다 하고는 유대인들이 그 법을 남용, 악용하는 겁니다. 

'수치스러운 일'에 대한 해석이, 코에 갖다 붙이면 코걸이, 귀에 갖다 붙이면 귀걸이죠. 
그러니까 제 마음대로 이혼하는 거예요. 

예수님 당시만 해도 남자들이, 여자를 쫓아내는 것을 그저 예사로 생각했어요. 
기록을 보면, 어떤 남자는 아내가 음식을 짜게 만들었다고 쫓아 내버리고 
어떤 남자는 아내가 밥 태웠다고 쫓아내 버리고 
어떤 남편은, 남들 앞에서 아내가 남편 면박주었다고 이혼 증서 줘서 내보내고, 
어떤 랍비는, 데리고 살던 여자 보다도 더 눈에 띄는 아름다운 여자가 있으면
갈아치워도 된다... 이렇게 가르쳤단 말이에요. 

그러니 한 번 생각을 해보세요. 
근데 남자들이 이렇게 여자를 쫓아내면서 이혼증서를 써 주었어요. 
성경에 이혼증서 써 주라고 했으니까요.  신24:1 

이혼증서 하나 써주는 것을, 마치 큰 선심을 쓰는 것처럼 생각했어요. 
'이혼 증서 안 써 주고도 쫓아낼 수 있다'는 거죠. 

이혼 증서는 일종의 신분증이 됩니다. 
여자가 '나는 이제 홀몸입니다' 하는 신분증명서가 되고, 
또 어떤 남자와 재혼도 할 수 있는 거예요. 없으면 재혼이 안 되죠.

그러니까 남자들이 이거 써주는 것 가지고, 큰 선심 써주는 줄 알고 
이혼을 제 맘대로 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계실 때의 유대 상황이 그랬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금휼하심을 비웃는, 아주 잘못된 행위였습니다. 
짝지워 주시고,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그 거룩하고 엄숙한 명령에 정면도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같이 함부로 이혼하는 자는, 자기만 죄를 범하는 게 아니에요. 
내보내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간음죄를 범하게 하고 
그 여자와 또 만나는 남자로 하여금 간음죄를 범하게 하는 
아주 무서운 잘못을 범하는 책임을 지게 됩니다. 

마5: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그저 이혼증서 써주고 내보내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이렇게 하면 그 여자로 하여금 간혼하게 한다.. 성적 문란 죄를 조성한다는 말입니다.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마찬가지로 

이혼하는 남자는, 이 사람(전처) 저 사람(전처의 남편) 전부 성적으로 문란하게 만드는 
죄를 범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이혼이 여러분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책임을 져야되는 문제
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돼요. 

(*이런 견해는 이혼한 여자의 대부분이 재혼하게 된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죠. 
특별히 초대교회 당시의 팔레스틴에서는, 결혼이 여성들에게  
자신의 경제적 사회적 안정을 취할 수 있었던 가장 확실한 방편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쉽게 납득이 갑니다. 

그러한 결혼은 이혼당한 여자의 입장에서 보든지 
그 여자와 결혼하는 남자의 입장에서 보든지 
간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음행한 연고 없이 이혼된 경우

이런 개념은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결혼을 파기할 수 있다'는 암묵적 교훈이 
들어있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예수께서는 본문을 통하여 
기독교 윤리의 한 단계 더 높은 요구를 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즉 예수께서는 '당시 인습적으로 이혼의 권한을 거의 전적으로 가지고 있던 남편들이, 
보호받아 마땅한 아내의 허물을 덮어주는 큰 사랑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남편이 한 번 이혼한 후, 전처를 다시 돌아보지 아니하고 평생 내버려두는.. 
그리하여 그 이혼당한 여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재혼(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간음죄에 해당)하게 만드는 
악의적인 유기(遺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명백한 음행한 연고하 있으면, 이혼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을 두셨지만,
예수님 당시 랍비들이나 유대인 남성들이 신24:1절을 오용, 남용해서 
이혼증서를 써 주고 함부로 여자를 내보내는 것은,
음행한 연고 없이 이혼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그 여자로 하여금 (재혼을 통해서).. 음행하게 하는 것이요,
그 버려진 여자를 취하는 남자도.. 음행 죄를 범하게 된다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결혼이 그만큼 신성하며, '하나님이 짝지워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대 원칙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이혼증서를 받고 집에서 쫓겨나는 그 당시에 여자들은, 갈 길이 세 길밖에 없어요. 
-인심 좋은 친척 집에 그저 붙어 살면서, 그 집에 하인 노릇하든지
-아니면 눈에 드는 남자 만나가지고 서로 결혼하게 돼도 
  평생 불량품으로 취급 받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창녀로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느 길로 가든지, 이 여자의 앞날을 생각하면 
쫓아낸 그 남자가, 모든 영적인/ 도덕적인 책임을 져야 돼요. (쫓아내지 말라는 거죠)
주님이 이걸 지금 경고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수치 되는 일이 있으면 이혼하라'는 그 말씀을 악용해서
막무가내로 여자들을 쫓아내니까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이런 말씀까지 하셨어요. 
말2:16 '나는 이혼하는 자를 미워 하느니라' 

◑적용

여러분, 오늘날 현실은 어떻습니까? 
우리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이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나라나 막론하고 이혼율은 계속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제 위험 수위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전통적 개념의 '가정, 부부'가 담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어느 의사는 '가족 제도를 폐지하자'고 소리 치고 나오는가 하면, 
여성 인권을 주장하는 어떤 페미니스트는 
'지금까지 여성들을 노리개 감으로 취급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기존의 결혼 방식, 또는 가정 제도를 완전히 말살시켜야 된다'고 소리 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자들이 더 간이 부어가지고, 이혼을 그저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과거에는 남자들이 여자를 쫓아냈지만, 이제는 여자들이 남자를 쫓아 내요.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요. 

피터 드러커 라는 미래학자는 <미래의 조직>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예언했어요. 
'맞벌이 부부가 자꾸 많아지잖아요.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니까 
점점 그와 함께 이혼율도 높아지고 있어서, 지금 최고 수위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추세로 계속 나가면, 미국 같은 경우에는 
결혼한 가정 중에 절반 이상이 이혼할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금년(2005?)에 들어와서 미국의 통계가, 이 사람의 예언이 적중된 것을 보여줍니다. 
이혼한 가정이, 이혼 안 한 가정보다 더 많아 졌다고 합니다. 50%가 넘었다는 거죠.
엄청난 일(가정의 해체)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도 이혼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그러니까 열 쌍 중에 서너 가정은 이혼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미국의 조사를, 근거로 한 것입니다마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의 안 믿는 사람보다도 이혼을 더 한다는 거예요. 

더욱이 복음 적으로 산다, 뭐 근본주의적인 아주 보수적인 신앙을 가지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목에 힘주어 주장하고 떠드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렇지 못한 교인보다도 이혼율이 더 높다고 그래요. *미국 통계
심각한 문제입니다.
 
▲내가 아는 어느 믿는 집안의 경우입니다. 얼마나 부자인지 몰라요. 
수 백 억대의 자산가입니다. 
그 집에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결혼했어요. 참한 여자가 들어왔어요. 
1~2년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 여자가 자기 카드를 가지고 뭐 옷을 한 120만원어치 정도
백화점에 가서 샀나 봐요. 그것을 알게 된 시아버지가 
'이 애가 남의 집에 들어와서 재산 털어먹으려고 하나?' 
이러면서 결국은 아들하고 이혼을 시켜 버렸어요. 여러분 이런 집안도 있어요. 
예수 믿는다는 집안입니다. 이거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에요. 

물론 불가피한 사연도 없지 않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대부분이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인데,
극복 하기가 싫으니까 헤어지는 거예요. 

또 반드시 극복해야 될 문제 임에도 불구하고, 책임지기 싫으니까 헤어지는 거예요. 

가정법률 상담소 자료를 보면, 남자들이 주로 이혼하면서 
내뱉는 구실이 뭔지 알아요? '성격 차이가 너무 심해서 못 살겠다'는 거예요. 

성격 차이가 너무 심하면 못 살지요. 극단적인 경우가 있어요. 
살 수 없는 경우도 없잖아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아요. 

결혼한 부부들 한 번 대답해 보세요. 성격 차이가 없는 부부 어딨어요?
다 서로 성격이 다르니까 만나서 같이 사는 거 아니에요. 
똑같은 성격이 어딨 있나요?

또 여자들이 이혼하면서 많이 들고 나오는 명분이 뭔가 하면, '폭력'이라고 그래요. 
그건 남자가 잘못하는 거예요. 

여자들이 또 하나 들고 나오는 이유가 '가치관이 너무 형편 없어서 같이 못 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가치관이 똑같은 부부가 어디 있어요?

이거는 구실이 될 수가 없는 것인데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이것을 구실로 해가지고 갈라 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혼이 증가하면, 이혼하는 당사자들이 겪는 
정신적인, 현실적인 피해가 얼마나 대단한 가를 여러분 아세요?

대장암, 고혈압, 뇌졸증 등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여러가지 질병들이 있지요. 
이혼한 사람은, 이런 질병이 생겨서 빨리 죽을 확률이 훨씬 더 높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학적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이혼한 사람이 자기는 담배를 피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혼하면, 담배를 매일 한 갑 이상 피우는 사람만큼 
폐암 발병률이 높은 사람이 돼버려요. 

뿐만 아닙니다. 이혼하면 정신 건강이 파괴 됩니다. 
백인 사회에서는 자살하는 사람의 25%가 이혼 경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혼한 사람은, 정신 병동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될 확률이 
다른 사람보다도 10배로 높다고 합니다. 

당사자들은 그렇다고 할지라도, 자녀들이 입는 정신적인 피해, 정서적인 황폐화를 
우리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어요?

이혼해서 결손이된 결손 가정의 자녀들이 범죄 할 수 있는 확률, 
사회적으로 범죄의 뿌리가 될 수 있는 확률은 
정상적인 가정의 자녀들보다 두 배 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짝지워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 하느니라'고 하셨고 
예외 조항이 있어도, 그것은 최후 수단으로 사용해야지, 
그저 잠깐 어려운 고통을 피하는 도피처로 사용하면... 이것은 모두가 망하는 거예요. 

개인도 망하고, 자녀손도 망하고, 사회도 망하고.. 다 망하는 거예요. 

▲오늘 우리 앞에 정말 행복한 나날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 사회의 앞날이 과연 밝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참으로 노래하면서, 서로 사랑하면서 살 수 있는 사회가 올까요? 

이런 식으로 나가면 미래는 비관적입니다. 
국가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정이 깨지는데 
거기에 무슨 행복이 있고, 서로가 믿고 사는 사회가 형성될 수 있습니까? 

짝지어 주신 하나님의 본심은 '나누어지지 (이혼하지) 말라'는 데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결혼 시켜 놓고 '야, 너 살기 싫으면 한 달 만에 그만 둬!' 하는 

부모가  어딨어요? 아무도 없잖아요. 
부모는 다 자식이 오래 오래 잘 살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죠. 
하나님의 마음도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짝 지어 주시고 나눌 수 없도록' 하신 이 부부 관계를 
우리는 소중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소중하게 지켜야 합니다. 

갈 때까지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뭐 누가 살고 싶어서 사나? 애 때문에 뭐 사는 거지..' 하는 식으로 부부 생활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결혼한 부부들, 
제가 지금 몇 가지를 들려드릴 테니까 
여러분 결혼 생활이 정상인지, 
다시 말하면 청신호인지, 적신호가 켜져 있는지 한 번 체크하시기 바랍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결혼 생활의 위험 신호들은 이런 것들이다' 하고 몇 가지 예를 들어 놓았습니다.

-당신은 이제 더 이상 둘이서 함께 웃지 않습니다. 
-당신은 속 마음을 부부가 서로 털어놓기 보다는, 친구를 더 많이 찾습니다. 
-당신은 부부 관계가 활기를 잃어버렸습니다. 
-당신은 배우자가 보기 싫어 귀가를 꺼립니다. 

-당신은 의견 충돌이 생길 때마다 꼭 부부싸움으로 번집니다. 
-당신은 배우자에게 잘 보이려고 몸 치장을 아예 포기해 버렸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관심사나 사교모임에 배우자를 끌어드리려는 것을 그만 두었습니다.  (항상 혼자 논다는 말이죠.)

-당신은 배우자에 관해 알아 두어야 할 것은 모조리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관심이 없어요)
-당신은 둘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우울해 집니다. 

자 이런 몇 가지 증세들을 놓고, 이 가운데서 한 두 가지만 있어도 
대단히 위험한 위기의 부부 관계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잘 생각하세요. 

이런 정서적인 분위기를 방치해 두면, 서로 말 문을 닫아 버리게 되고 
나중에는 비난하게 되고, 마음으로 경멸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자기 방어에 급급한, 참 너무나 살벌한 가정 분위기가 돼 버립니다. 

이런 관계가 계속 누적되면, 그 부부는 파탄에 이르고 맙니다. 
결혼한 지 7~8년 전후가 가장 위험하다고 합니다. 
또 결혼한 지 16~20년 사이가 가장 위험하다고 합니다. 

여러분 부부 관계를 잘 점검 하세요. 
조금이라도 이와 같은 적신호의 어떤 경고가 있으면
여러분은 가만히 계시면 안 돼요. 

위기 없는 결혼 생활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누구도 예외가 없어요. 
살다가 보면 심각한 위기를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이제 더 이상 못 살겠구나, 정말 이제 포기 해야지!' 
하는 마음이 생길 때가 옵니다. 

그러나 강한 부부가 누군가요? 이런 위기를 잘 극복하는 것이 강한 부부요. 
훌륭한 부부 관계란 어떤 것이냐? 
이제 끊어질 만큼 늘어나고 가늘어져서 '이제는 안 되겠다' 싶을 때에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 이게 강한 부부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요즘에 '부부 농사 제대로 짓자' 하는 표어를 걸고 
<좋은 남편 모임>이 아주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봅니다. 
상당히 좋은 현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짝 지어주신 부부입니다. 나누어질 수 없어요.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는, 나누면 자기 파멸이에요. 

▲있는 모습 그대로를 수용하라!
그러므로 최선을 다해 가정을 가꾸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될 것은,
특별히 오늘 제가 한 말씀드리고 싶은 거 있습니다. 
뭐냐 하면, '서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거예요

상대방이 고치지 못하는 약점을, 그대로 내가 받아들이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아무리 더 좋은 것을 원해도 
그 사람이 응해 주지 못할 때는 
응해주지 못하는 그대로.. 내가 받아들이는 게 '수용' 입니다. 수용이 중요합니다. 

세상에 완전한 배우자 라는 건 없지 않습니까. 
완전한 남편, 완전한 아내가 어딨 있어요? 아무도 없어요. 

게다가 우리는 불완전한 사람끼리 만나가지고 한 평생을 함께 사는 것입니다. 
부부가 만났다고 완전해 집니까? 아닙니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평생 팔장 끼고, 불완전한 그대로 
두 사람이 걸어가는 게 인생이에요. 

그러므로 자기가 불완전 하면서, 남에게 완전을 요구하는 것은 자기 모순이죠. 
자기도 남에게 만족을 못 주면서, 상대방에게 무조건 자기를 만족시키기 기대하는 것, 
이것은 이기주의의 극치입니다. 그럴 수가 없어요. 
서로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겁니다. 수용하는 게 중요해요. 

▲얼마 전에 교역자들하고 여름수련회를 갔을 때입니다. 
교역자들이 일 년 내내 막 스트레스 받고 일하다가, 
바닷가로 가서 낚시를 했습니다. 제가 제안했어요.

부두에 나가니까, 조그만한 배들이 5~6척이 있더라고요. 근데 생긴 게 다 비슷비슷해요. 
그 배에 5~6명이 정원이었어요.
그래서 교역자들이 7척 정도에 나누어서 타게 되었습니다.

내가 보니까 그 배들 가운데서 모양이 가장 깨끗하고 
잘 나갈 것 같이 보이는 배가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내가 그 배를 골라서 탔죠. 
이제 배를 나누어 타고 바다로 향해 나아갑니다. 

한 10분 정도 나갔는데, 내가 탄 배보다도 
늦게 출발한 배들이 막 쌩쌩 앞으로 달려가는 거에요.
그런데 내가 탄 배는 나가질 않아요. 속도가 너무 느린 거예요.
속에서 약간 부아가 났죠.

뒷배들이 그냥 우리 배를 앞질러 가는데,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더라고요.
여러분,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러 가지 대안이 있겠죠. 

-'무슨 내가 이래? 겉은 멀쩡하면서... 속도가 안 나오네.
에이 안 되겠다. 홧김에 물에 빠져 죽자' 

-혹은 '선장 목을 붙잡고, 왜 속도가 안 나간다고 미리 팻말을 붙혀 놓지 않았느냐?'
이렇게 항의하고 싸울 수도 있겠죠. 

-아니면 다른 배들이 우리 배를 앞서 달려 가니까 
그 배에 탄 교역자들이 기분이 좋아가지고 막 손을 흔들고 이러는데, 
내가 그냥 분이 나서 어쩔 수 없어 하다가, 그냥 털썩 주저 앉아서 
'아이고 내 팔자야! 내 팔자니까 어쩔 수 없다' 하며 체념하든지...

하여튼 몇 가지 선택 카드가 있어요. 
어느 것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이것들은 모두 "수용"을 안 하는 자세지요. 

"수용"을 하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늦게 가는 것도 좋은 점이 있어! 
바다를 감상하기 좋고, 하늘을 감상하기 좋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가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배에 같이 탄 교역자들은 
하늘도 쳐다보고, 바다도 쳐다보고 막 그러면서 
오늘 이렇게 좋은 시간 주신 거 감사했어요. 먼저 가는 배를 안 쳐다봤어요. 
나름 그 환경을 즐기는 거죠. 기쁨으로 현실을 받아들인 거죠. 이게 '수용'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좀 늦게 도착 했는데, 가서 보니 다른 배는 낚시 하느라고 야단이더라고요.
근데 참 웃기는 것은, 늦게 도착한 우리 배가 생선을 가장 많이 낚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배에 탄 교역자들이 뿔이 나가지고 
막 배를 돌려서, 이리 저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속으로 생각했죠. '정자 좋고 물 좋은 데가 없어!'  
배가 안 느리면 그 대신 고기를 많이 잡지 않느냐, 
배가 쌩쌩 빠르게 잘 나가도, 물고기를 많이 못 잡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인생은 다 공평합니다. 그렇죠. 공평해요. 
내가 처음에 보니까 '야~ 이쁘다. 정말 저 여자하고 살았으면 평생 한이 없겠다'
해서 결혼했는데, 결혼하고 나서 보니까, 매사에 속도가 느려요. 
성격도 느긋해서 느리고, 음식을 해오는데 맛도 없고... 
이거 참 곤란하죠. 여러분 그렇잖아요?

'저 남자 같으면 내가 평생 의지할 만하다'해서 결혼했는데 
막상 결혼해 놓고 보니, 삶의 습관이 나빠가지고 늘 늦잠자지요. 
뭐 직장에 가서는 적응을 못 해가지고, 자기 혼자 조퇴합니다. 
그러면 아내를 미치게 만들지요. 

자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내가 좋아서 탄 배란 말이에요. 어떻게 할 거예요?
홧김에 바다에 그냥 몸을 던져요?
아니면 누구 멱살이라도 잡고 하소연 할 거예요? 그럴 수 없잖아요. 
그냥 털썩 주저 앉아 다 체념하고 '내 팔자다!' 하고 살 겁니까?

하나님이 짝 지어 주셨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거예요. 

▲카터 대통령에게 참 좋은 부인이 있잖아요. *로잘린 카터 (1927.08.18~2023.11.19)
그런데 두 사람이 종종 싸우는 원인이 하나 있었다고 그래요. 

남편 카터는 칼날 같이 시간을 지키는 사람이래요. 
약속을 하면 항상 1분 전까지는 가야 된대요. 절대 지각하는 법이 없어요. 

그런데 이 부인은 그걸 못 따라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카터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적어도 십 분 미리 가자고 부인을 설득해 가지고 
뭐 이렇게 시간 지키려고 애를 쓰는데 

부인이 그렇게 됩니까? 화장 하느라고, 옷 갈아입느라고 하다보면
늘 남편이 자동차에서 기다리게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둘이서 또 싸움이 일어난다 말이에요. 

어느 땐가 부인 생일이었는데, 남편이 카드를 썼습니다. 
'여보, 내가 오늘까지 당신을 너무 많이 괴롭혔는데 
지금부터 당신은 시간 지키는 면에 있어서는 자유하시오. 
내가 당신 방식을 수용해 드리겠어요.' 

부인이 그걸 받고서 얼마나 좋아했는지, 자주 이런 말을 했답니다. 
당신이 나에게 준 가장 최고의 생일 선물은 '시간 지키는 데서 자유해라!' 였어요!

그게 수용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치려고 해도 못 고치는 상대방의 약점.. 어떻게 할 거예요? 
내가 받아 줘야죠. 

아무리 잘해 보려고 해도 상대방이 갖고 있는 한계점이 있잖아요. 
그거 그대로 받아주는 거예요.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부부로 짝 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우리 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행복은 하나님이 짝 지어주신 그 울타리 안에 있습니다.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지, 밖으로 눈을 돌리지 마십시오. 
밖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이혼한 사람들을 조사했더니, '이혼하고 나서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후회한다'고 답한 사람이 열 명 중에 여덟 명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뛰쳐 나오면 행복할 것 같죠? 천만에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지니라' 하신 
그 말씀이 바로 우리의 행복을 위한 절대 조건이라는 것을 인정 하시고 
이 말씀대로 신중한 우리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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