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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그리스도 법의 적용_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

by 【고동엽】 2022. 11. 19.




(에베소서 5장)
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7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묵상)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에서 벗어났다. 이 사실이 그리스도인들을 방종으로 이끌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에서 벗어난 것은 더 강력하고 더 높은 그리스도의 법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리스도의 법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고' (1절)-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표준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거룩함과 진실함과 완전함의 표준으로서, 우리가 평생에 성장해 가야할 목표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그리고 그 길은 결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없이는 걸을 수 없는 길이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2절)
이것이 그리스도법의 실행 방식이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을 내가 깨닫고, 그리고 그 사랑의 방식을 내가 따르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없이 어떻게 그 사랑을 경험하겠는가?
그리고 그 사랑을 경험한 자는 그러한 사랑을 사람에게 행해게 된다. 또한 그런 방식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자는 결코 교만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무리 타인을 사랑해도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만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 억원을 탕감받은 자가 수 십 만원을 탕감해주고 교만할 수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므로 날마다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착한 마음으로 그를 믿고 따르자.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5절)
 
오늘 본문은 우리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음행하는 자와 마찬가지로 탐하는 자도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 음행했던 자나 탐했던 자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계속 그런 죄를 계속 지속하는 자, 책망을 듣고도 돌이키려고 하지 않는 자, 고집을 피우며 그러한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생에 걸쳐서 이러한 죄와 싸워야 한다. 
음행과 싸워야 하고, 돈, 재물, 권력, 명예에 대한 탐심과 싸워야 한다. 하나님보다 더 중하게 여기는 것은 모두 탐심이다.  
우리는 음행은 쉽게 정죄하지만, 탐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음행도 이웃 여자에 대한 탐심이다. 
탐심은 곧 우상숭배와 같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음행을 범하면 신도들이 들고 일어난다. 그러나 목회자가 탐심으로 자기 이익을 챙기면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신들도 그런 삶의 방식으로 살기 때문이다. 
능력도 안되는 자기 자식에게 큰 교회당을 물려주려고 하는 이유도 탐심에서 비롯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용납한다. 
그러나 성경은 용납하지 않으며, 탐심에 대해서 매우 단호하다. 탐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6절)
우리는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라고 말하지만, 사실(fact)은 논리(logic)에 우선한다. 
성경은 음행하는 자나 우상숭배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논리가 아닌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결론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말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에 대한 논리적 해석은 칼빈주의나 알미니안 주의가 서로 다르다. 그렇지만 믿음이 없는 자에 대해서는 칼빈주의나 알미니안 주의나 모두 구원이 없다는 데 동의한다. 따라서 오늘 본문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자면, 그런 죄를 고수하는 자들은 이미 믿음을 버린 자(배도자)다. 즉 믿음이 없는 자들이다.
 
우리는 어리석은 논리에 속으면 안된다.
구원파의 치명적 실수는 그들은 '율법에서의 자유'나 '죄사함'이란 것에는 완벽할 정도로 논리정연하지만, 그리스도의 법을 알지 못한 고로 하나님을 경외함이나 삶 속에서 본받아야 할 목표를 놓쳤다. 결국 그들에게 있어서 믿음이란 죄책감에서 해방시켜주는 도구 정도 밖에 안되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서 믿음이란 하나님의 아들을 배우고 체험함으로써 그를 본받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삶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써 가능하다. 
이렇게 복음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주 예수님,  제 입술을 지켜주셔서 희롱하는 말이나 누추한 말에서 건져주시고, 음행과 탐심에서 보호해주십시오. 믿음을 통해서 주님을 날마다 배움으로써, 주님께 받은 사랑을 사람들에게 행하게 하옵소서!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2pw/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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