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누가복음 7장18-30 / 세례 요한보다 큰 자들***

by 【고동엽】 2022. 11. 19.
■2022년 11월16일(수)■
 
(누가복음 7장)
 
18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니
19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20 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21 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23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24 요한이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25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26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
27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29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30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묵상/눅 7:18-30)


◆ 여자가 낳은 자 중 가장 큰 자


(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주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가리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이 에녹, 모세, 엘리야... 등 구약의 기라성같은 인물들보다 더 큰 자란 말인가? 주님께서는 낙원을 '아브라함의 품'(눅 16:22)이라고까지 표현하셨는데, 세례요한은 아브라함보다도 큰 자란 말인가?


주님께서 세례요한을 가리켜 가장 큰 자라고 하심은 그의 신분이나 위치가 가장 높은 자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주님께서 세례요한을 가리켜 가장 큰 자라고 하심은 사역 면에서 말씀하심이다. 지금까지의 선지자들은 그리스도를 멀리서 희미하게 보고 예언하며 오실 것을 증거했지만,  세례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 분을 직접 뵙고, 사람들 앞에서 직접 증거했다. 과거의 선지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광이며 큰 사명이다.


◆ 하나님 나라에서 지극히 작은 자


(28)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방금 세례요한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하시고, 다시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다고 하심은 매우 모순적으로 들린다.


이 구절은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이단, 사이비 교주들이 매우 애용하는 구절이다. 이단이나 사이비 교주들의 이론에 따르면 세례 요한의 사명이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는데, 쓸데없이 헤롯 왕의 사생활을 책망하는 바람에 감옥에 갇힘으로써 사명 완수를 못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큰 자였던 자가 가장 작은 자로 몰락했다는 것이다. 제법 그럴싸하다. 그들 주장처럼 만일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더라면 예수님의 사역은 더욱 강력해지지 않았을까?


나는 청년 시절에 왜 이들이 그렇게 세례 요한의 실패를 집요하게 주장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후에 이어지는 논리에 아연실색했다. 세례 요한이 실패함으로써 예수님도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다. 그래서 예수께서 본래 사명을 다 이루지 못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본래 사명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함이신데, 이들은 이상한 결론으로 이끈다. 그리고 그들은 주장하기를 예수님께서 본래 하고자 하시는 미완수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누군가 완성해야 하는데, 그게 누구겠는가? 라는 식으로 순진한 성도들을 미혹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요 19:30)하셨다. 그들에게 미혹되지 말라.


과연 세례요한은 사명에 실패했을까?
아니다. 그는 자기 사명을 다 완수했다. 세례 요한이 헤롯에게 간 것이나 감옥에 갇힌 것이나 목베어 죽임을 당한 것은 그의 사명을 다했기 때문이었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증거했고, 자기 제자에게 예수님을 따라가라고 했으며, 그중에 예수님을 따라간 이가 안드레와 사도 요한이다(요 1:40). 그리고 남은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언급함으로써 자기 사명을 다했다.


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않았을까?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더라면 예수님의 사역이 훨씬 더 탄력을 받고 백성들과 관리들에게 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일단 예수님은 대략 3년간의 사역 끝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야만 했다. 그것이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사명이다. 지배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 대속하는 자로 오셨다(마 10:45). 그런데 지나치게 백성들의 추앙을 받으면 그 사명을 이루시기에 곤란해진다. 그것이 오히려 사명 완수를 방해할 것이다. 그래서 병 고친 소문마저 퍼뜨리지 말라고 하셨고(마 8:4),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마 16:20).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안 되었다.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말한 그 그리스도이심을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증거해준 것으로 자기 사명을 다했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는 이 모든 것이 그대로 전해질 것이다.


또한 세례 요한은 구약의 선지자다. 그의 사명은 예수님이 오시기까지며, 구약과 신약을 이어주는 것까지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에도 살아있으면 안 되었다. 그 이전에 죽어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혀서 헤롯에게 목베임을 받은 것은 그의 사명이 딱 거기까지였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는 신약시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맡을 것이다.


◆ 십자가의 은혜


(28)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하나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도 세례 요한보다도 크다고 하신다. 여기서 언급하신 하나님 나라는 그동안 구약의 모든 인물들도 다 포함된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이제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 곧 복음 시대에 예수님으로 비롯되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주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당신과 내가 세례요한보다 훨씬 더 크다고 말씀하신다.
어떻게 세례요한 같은 분과 나 같은 자가 비교될 수 있을까? 그냥 덕담 정도로 간주하고 지나치기 쉽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점은 예수님께서 그런 빈말이나 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이다.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세례요한보다 큰 자일 수 있을까?
인격 면이나 삶을 비교해볼 때, 세례요한의 발꿈치도 못 쫓아갈 듯하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세례요한보다 큰 자라고 선언하신다.


일단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행 1:8)이라는 면에서 세례요한보다 훨씬 더 큰 사명을 맡은 자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 아들의 길을 예비하는 자였지만,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그 하나님의 아들을 직접 전하는 증인들이다. 이것은 비교 불가의 영광이다.


두 번째는 예수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고 거듭났으며, 성령을 받았다는 의미에서 세례 요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은총을 받은 자다. 내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총이 대단한 것이다. 주님, 이 은총의 크기를 알게 해주십시오.


금수저란 말이 있다. 개인적인 인격이나 능력으로 보면 한참 모자라지만, 오로지 아버지를 잘 만나서 호강을 누리게 된 사람이다. 우리가 그렇다. 시대를 잘 만나서 우리는 복음의 금수저가 된 셈이다. 구약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아무리 잘났어도 세례요한을 넘어설 수 없었을 텐데, 이제는 십자가의 은총을 받아서 지극히 못난 자도 세례 요한을 넘어섰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의 증인이 되었다.


우리는 우연히 이 시대에 태어나고 우연히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 속에서 태어난 자들이다. 나는 얼마 전까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나를 택하셨다는 말씀(엡 1:4)을 믿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초라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과장된 덕담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이제는 믿는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가를 알아가면서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충분히 나를 아신 분이시며, 내 머리털까지 모두 세신 분이심을 믿게 되었다. 내가 이런 엄청난 은총을 받은 금수저라니!


소라껍데기 속에 숨어있는 소라처럼 열등감 속에 숨어있지 말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지극히 높으신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그리면 주님의 말씀이 믿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영광스러운 은혜와 은총을 감사하자.


주님,
저를 창세 전에 택하시고,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예수님의 증인으로 세워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사명을 제대로 완수하고 이 세상을 떠나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36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