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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명설교편◑/이정익목사 명설교(385편)

행복하고 즐거운 이야기

by 【고동엽】 2022. 10. 23.

 행복하고 즐거운 이야기

 

 

 

 

 

 

 

 

                                     24:12-16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

 

 

 

                    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저는 오늘 행복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목을 행복하고 즐거운 이야기라고 붙였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말씀은 아브라함의 이야기입니다. 이 아브라함은 참 훌륭한 신앙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브라함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대목을 보면 아브라함이 얼마나 신앙중심으로 그 시대를 살아가려고 힘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아브라함이 종을 통해서 복을 받는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의 독자 이삭이 장성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를 구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며느리를 구하는데 두 가지 전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순수 혈통을 유지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방인의 피가 섞이면 복잡해집니다. 이방인의 문화, 생각, 습관, 전통이 섞이면 갈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며느리를 선택하는데 순수혈통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신앙의 순결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이방신앙을 가진 며느리가 집안에 들어오면 이것도 문제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 두 가지를 이루기 위해서 며느리를 꼭 동족에게서 얻으려 했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세상을 살면서 이 중심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면서 세상의 풍습을 존중하는 것은 좋습니다. 질서도 존중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딸을 주고 며느리를 얻고 해야 합니다. 그런 삶에 누구는 안 되고 누구는 되고 하는 식의 삶의 태도는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한 가지 유념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신앙의 순결을 유지하는 일에 유념하는 일입니다. 이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문화와 사상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우리의 신앙이 유지되고 발전해 가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동족이 살고 있는 하란 땅으로 종을 보내서 며느리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며느리 간택권을 종에게 전적으로 위임해서 고향 땅으로 보냈습니다. 이 종이 주인으로부터 중책을 위임받고 하란으로 떠납니다. 그런데 이 종의 모습을 보게 되면 참 그 모습에서 행복함, 신실함, 충직함을 보게 됩니다. 보시면 여러분도 오늘 제목처럼 행복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보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몇 가지 유념해서 볼 것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당부”  

 

 

 

 

 

 

 

 

 

24:2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종을 보내면서 종으로 하여금 서약을 시킵니다. 그 서약이 아브라함의 허벅지 밑에 손을 넣고 약속하라는 것입니다.  남자의 허벅지는 생명을 잉태시키는 근원지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남자의 허벅지를 권위와 주권을 상징하는 곳으로 인식합니다. 그러니까 아주 중요한 약속으로 알고 실행하라는 뜻입니다. 거기다 손을 넣고 세 가지 조건을 약속하라고 했습니다. 너는 “이방여자를 데려오지 말라”(3). 두 번째는 “반드시 하란의 여자를 택하라”(4). 세 번째는 “이삭을 데리고 가지 말라”(6)는 조건입니다. 지금 이삭은 촌놈입니다. 만일 데리고 갔다가 가는 길목에 위치한 세속도시 메소포타미아를 지나다가 혹시 환락의 도시를 보고 유혹받고 거기서 어떤 여자를 만나 정착을 고집하면 큰일입니다. 젊은이들은 그런 위험이 있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신앙중심을 보게 됩니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돋보이는 신앙인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아브라함과 다윗입니다. 이 두 사람은 참 진정한 성자였습니다. 그 외에 엘리야, 에녹, 다니엘, 노아 같은 위인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일생에서 한 부분만 성경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이 두 사람은 생애 전체가 나옵니다. 생애 전체를 봐서 그 정도면 완벽한 성자입니다. 특히 아브라함은 오직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갑니다. 오늘 여기 나오는 이야기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려고 힘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종에게 신신당부를 합니다. “반드시 하란으로 가서 그 딸 중에서 며느리를 선택하라.

 

 

 

우리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세상을 살면서 이 중심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때로 상대의 조건도 중요합니다. 환경도 중요합니다. 외모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때로 신앙인들도 조건과 환경에 너무 치중해서 신앙의 바탕도 없는 사람들에게 딸을 보내고 아들을 보내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에서는 일말의 불안함도 있습니다. 그래서 대답하기를 안 믿는 사람이니 전도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그 말은 스스로 안위 받으려는 말입니다. 여러분, 한 가지 알 것은 세상에는 전도해서 되는 사람이 있고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입니다. 이 신앙의 문제만큼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믿음을 가지고 사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이 주셔야 가능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것을 몰라서 그 멀리에서 며느리를 구하려 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가나안 여인들을 볼 때 완전히 세속에 물들고 타락하고 방종생활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문화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의식이 다르고 풍습이 다르고 신앙이 달랐습니다. 그러니 그 딸들을 데려다가 순수한 혈통이나 순수한 신앙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반드시 하란으로 가서 며느리를 고르라고 다짐 시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신앙의 중심을 보게 됩니다.

 

 

 

 

 

 

 

 

 

“종의 출발”

 

 

 

 

 

 

 

 

드디어 이 종이 중책을 가지고 하란으로 출발을 합니다. 아마 그 길을 가는데 상당기간 세월이 걸렸을 것입니다. 그때 하란이면 오늘의 유프라테스 강 건너에 있는 이라크 땅을 말합니다.  가나안이면 오늘의 이스라엘 땅을 말하는데 거기서 오늘의 이라크 땅까지 가는데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겠습니까. 그런데 이 종이 말없이 가고 있습니다. 가면서 고민도 많았을 것입니다. 가서 어떻게 처녀를 만나며 만났으면 그 처녀를 어떻게 설득해서 가나안까지 데리고 가는가 하고 참 고민이 많았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 고민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종은 가면서 신중하게 기도합니다. 이 종이 기도하는 모습이 아주 감동적입니다.  

 

 

 

이 종이 드디어 하란에 도착합니다. 하란 땅에 도착하자 이 종이 또 기도부터 합니다. 이 종의 기도를 들어보면 기도의 길, 기도의 방법을 배우게 되고 또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을 수 없도록 그렇게 기도합니다. 얼마나 향기로운 기도입니까. 10-12절을 보면 “이에 종이 그 주인의 낙타 중 열 필을 끌고 떠났는데 곧 그의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포타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러 그 낙타를 성밖 우물곁에 꿇렸으니 저녁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으려 나올 때였더라“.

 

 

 

이 종이 지금 어디에 멈추어 있는가 하면 동네 우물가에 쉬고 있습니다. 왜 우물가에서 지금 쉬고 있는 아십니까. 옛날 시골에서 살 때 보니까 이 우물가 여기가 밤새 일어난 모든 사건의 취재원입니다. 동네 소식과 통신이 가장 빨리 전해지는 곳이 이 우물가입니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동네처녀들, 아낙네들이 다 모여듭니다. 그곳에서 간밤에 일어난 모든 소식이 전 동네로 AP통신을 타고 퍼져나갔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그런 노래도 있지 않습니까.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라는 노래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종은 우물가에서 기다려야 동네의 처녀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종이 거기 앉아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12절을 보면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하고 기도합니다. 이 종이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우리 주인에게 복을 주시고 은혜를 입혀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신실한 종입니까.  

 

 

 

 

오늘 이 시대는 종이 주인을 향해서 이렇게 기도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종도 없고 부하도 없고 사원도 없습니다. 오늘은 모두 주인 앞에서는 충신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돌아서면 모두 주인을 욕합니다. 오늘은 배은망덕의 시대입니다. 은혜를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사람들이 복을 받지 못하고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종은 자기 주인에게 하나님이 은혜와 복을 주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신실한 종입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그가 가는 길을 아주 순조롭게 인도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 기도를 보면 “이것이 기도하는 법이구나”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의 기도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주인에 대한 사랑과 맡은 임무에 대한 충실한 모습이 배어 있습니다. 그는 13절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성중 사람의 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곁에 서 있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며느릿감인 줄 알겠습니다”하고 기도합니다. 얼마나 구체적입니까. 그 말은 “이제 기다리고 있으면 처녀들이 물을 길으러 올 것인데 그 처녀들에게 물 좀 달라할 것이니 그러면 기쁨으로 ‘마시세요.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물을 주리다’하고 낙타에게도 물을 주는 처녀가 있으면 그 처녀가 하나님이 골라주신 이삭의 신붓감으로 알겠습니다“그 말입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까 리브가라는 처녀가 물동이를 메고 물 길으러 왔습니다. 그래서 물 좀 달라 하니까 물을 주더니 당신의 약대에게도 물을 주겠다며 목이 갈한 낙타들에게 물을 주더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기도가 이렇게 딱 맞아 떨어질 수가 있습니까. 그 종은 그 순간 참 신기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기도하는 방법이 나옵니다. 기도의 지름길, 응답받는 기도의 법을 발견하게 됩니다. 때로 우리들이 기도하다가 보면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 수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여기 이 종의 기도를 들어보면 한 가지 힌트를 얻게 됩니다. 이 종의 기도는 아주 순박합니다. 그 순박한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리브가를 순전하게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순박하고 전적으로 위임하는 기도를 한번 해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루어주시는 가를 한번 깊이 눈여겨보십시오. 장래와 직결되어 있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 상대에 대해서 매력과 키와 조건만 따지는 사람들은 이런 방법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젊은이가 신붓감을 소개해 달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을 원하느냐”고 물으니까 “장단지는 가늘고”라는 말부터 시작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젊은이 입니다. 응답되는 기도는 하나님께 위임된 기도를 말합니다. 위임된 기도는 그 결과에 순종하겠다는 순종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미에 가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하고 기도합니다.  

 

 

 

 

그때 이 종이 얼마나 신기했겠습니까. 그래서 이 종이 이렇게 말합니다. 23절을 보면 “이 종이 이르되 네가 누구의 딸이냐, 청하건대 내게 말하라, 네 아버지의 집에 유숙할 곳이 있느냐, 그 여자가 그에게 이르되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니이다, 우리 집에 짚과 사료가 족하며 유숙할 곳도 있나이다“하고 대답합니다. 26절을 보면 “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이르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하고 기도합니다. 이 종이 그때 상당히 놀랐을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이렇게 신비할 정도로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까. 참 신비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대부분 이렇게 순리적으로 길이 풀려나갑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억지로 만들고 업고설키게 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면 일이 그 방향으로 잘 풀려나가는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종의 길을 얼마나 잘 인도하셨습니까. 그러니까 이 종도 감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종이 머리 숙여 하나님께 경배했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너무 신앙이 오염되어 있습니다. 순수함이 없습니다. 나를 너무 내세웁니다. 계획을 짜 놓고 이렇게 이루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수고는 수고대로 하고 기도의 응답받는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때로 금식도 하며 기도는 하는데 사실은 헛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기 이 아브라함의 종처럼 한번 생각하면서 기도 생활했으면 합니다. 한번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참 신기하게도 이렇게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진로를 놓고 한번 기도해 보십시오. 진로문제가 얼마나 진지한 문제입니까. “나의 앞길을 인도해 주십시오, 나는 이런 재능이 있습니다. 주님이 아시지 않습니까.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겠습니다“. 또 오늘 배우자를 선택하는 경우 그 기도가 얼마나 진지합니까. 매력이나 키 큰 것만 따지지 말고 누가 하나님이 주시는 배우자인가를 먼저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순서입니다. “나에게 이런 배우자를 주십시오. 신앙이 신실하고 무엇 보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 가진 것 없어도 무방합니다. 과묵하고 신앙적 배경을 가진 사람을 보내주십시오, 키는 170cm전후. 몸무게는 70kg 전후이면 좋겠습니다“ 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자세하고 구체적입니까. 우리는 여기 아브라함의 종의 기도를 통해서 기도는 이렇게 구체적이고 확신 있게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당신 주인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이 종이 처녀를 따라서 브두엘의 집으로 갔습니다. 가서 지금까지 되어진 일을 그 부모에게 그대로 말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집에서 떠날 때부터 여기 우물가에서 되어진 일들을 그대로 말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른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51절을 보면 “리브가가 당신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를 당신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그 부모들이 두말하지 않고 쾌히 승낙해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인 것을 그들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두에게 이렇게 공감을 줍니다. 믿음을 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너도 나도 모두가 합당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모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고 믿어질 때 모두가 승복하게 됩니다. 얼마나 듣기에, 보기에, 아름답고 시원하고 행복한 이야기입니까.

 

 

 

여러분, 기도 응답 받아보신 경험이 있습니까. 기도응답을 받아보면 그 순간 내 몸 안에서 기운이 약동합니다. 성령의 감화가 일어납니다. 신앙적 힘이 순간적으로 솟아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이 종이 우물가에서 신기하게 기도가 응답되는 것을 경험할 때 얼마나 그 발걸음이 신났겠습니까. 그 맛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행복하고 즐거운 삶입니다.  이런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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