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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명설교편◑/옥한음목사 설교66편

천국은 이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히11:13~16

by 【고동엽】 2022. 10. 10.

천국은 이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히11:13~16

   

여러분, 이 설명을 오해 없이 들으시기 바란다.

 

▲성경학자들은 <천국은 세상과 흡사할 것이다> 라고 예측한다.

무슨 말인가?

천국에도 하늘이 있고, 천국에도 땅이 있다. (새 하늘과 새 땅)

천국에도 삼라만상이 있다. (강, 나무, 열매 등)

천국에도 몸을 입고 사는 사람이 있다. (몸의 부활)

그런 면에서 이 세상과 흡사한 것이다.

 

다르다고 하면, 모든 것이 <새 것>이라는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 등 삼라만상이 새 것이다.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계21:5

우리가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만물들을, 하나님이 새롭게 하시되,

새롭게 하신다는 것은, 그 만물들이 다 사라져 없어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만물은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더 좋은, 완전해진 세상>이다.

 

에덴동산의 모습보다 더 완벽하고 완전한 모습으로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천국은 세상과 다를 바가 없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더 좋은 세상’이다. 그 환경 속에서 우리가 살게 된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을 알고 있다.

‘신령한 몸’으로 나타나셨다. 그러나 분명히 ‘유령’은 아니셨다.

뼈가 있고 살이 있었다.

예전처럼 제자들과 만나시고 교제하시고 가르치셨다.

그러나 시공의 제한을 받지는 않으셨다.

그런 몸을 우리도 천국에서 입게 될 것이다.

 

▲천국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천국은, 우리가 보고, 만지고, 듣고, 즐기며 살 수 있는

실제적인 장소요, 현실적인 곳이다.

 

1백 년 전에 개혁주의 신학자 A. A. 핫지는 이렇게 말했다.

“천국은 우리와 똑같은 몸을 가지신 그리스도와 함께 살 영원한 고향이다.

고로 그 천국의 구조와 환경과 활동은 반드시 인간적인 성격을 뛸 수밖에 없다.”

- 사람 살기에 좋은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여러 분이 지금 멍하게 앉아서 듣고 있는데 (처음 듣는 내용이라서)

여러분, 이 세상에서 과일 먹으면 맛있다... 그런데 천국에서도 과일 먹는다.

이 세상에서 냉수 마시면 시원하다... 그런데 천국에서도 생명수 마신다.

이 세상에서도 찬양 부르며 경배한다... 천국에서도 찬양 부르며 경배 드린다.

이 세상에서도 감미로운 음악을 듣는다... 천국에서도 음악과 연주가 있다.

 

물론 ‘새 노래’며, ‘새 것’이며, 지상의 것들보다 훨씬 더 좋은 것들이다.

이렇게 설명을 하는데도, 천국을 사모하지 않는다면... 그는 목석이다.

 

▲결혼은 없어도 성별 구분은 있다고 본다.

마22:30절에, 부활 때에는 시집, 장가도 안 가고, 하늘의 천사들과 같다고 했다.

이 말씀은, 천국에 결혼이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자손을 낳을 필요가 없으니까!

그러나 남성과 여성의 성별이 없어진다는 뜻은 아니라고 본다.

세상에서 남자는 천국에서도 남자며, 세상에서 여자는 천국에서도 여자일 것이다.

 

천국의 인구는 고정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들의 고정된 인구가 천국을 가득 메우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는, 남자는 여자라는 동반자가 굳이 필요치 않고

여자 또한 남자라는 동반자요 보호자가 필요치 않다.

왜냐하면 여자, 남자 모두 완전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 천국은 어떤 곳인가?

 

▲하나님께서 천국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지 않는 이유

만약 하나님이 천국을 우리 눈에 환하게 보여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아무 의심 없이 천국을 믿을 수 있고, 좋을 터인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감당을 못하기 때문이다.

 

설교자 스펄전은 이런 말을 했다.

‘글을 배우는 어린아이가 처음에 알파벳을 배우듯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에 대해 대강 (기본적인 것)만 가르쳐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 천국에 대한 참 모습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의 유한한 눈으로는... 천국의 영광을 잘 보지 못한다.

우리의 유한한 귀로서는... 천국의 감미로운 그 음악을 다 듣지 못한다.

인간의 유한한 눈으로는... 천국의 그 엄위한 영광을 감히 보지도 못하며

인간의 좁은 마음으로는... 천국의 그 큰 기쁨을 도저히 담을 수 없다.

 

하나님이 이것을 너무 잘 아시므로

우리에게 너무 자세하게 천국을 설명하지 <않으신다.>

그렇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신앙의 선배들처럼

천국을 사모하며 살 수 있을 만큼만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1. 천국은 저주가 없는 곳이다.

아담이 범죄하고, 우리가 범죄해서... 온 세상이 저주를 받았다.

그래서 세상에는 악한 것들, 슬픈 일들, 고통스러운 것들, 비참한 것들 천지다.

얼마나 세상이 험악하고 슬픈지...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살 동안에, 얼마나 고통을 당하며 눈물을 쏟는가?

저주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예수 믿는 성도는, ‘영원한 저주’에서 자유했지만 already

‘육신’은 여전히 저주 아래서 고통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not yet

그러나 천국에 가면, 이 저주가 완전히 우리에게서 떠난다.   

다시는 저주가 없으며...   계22:3      

 

다시 저주가 없는 결과는 이렇다.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저주 받은 처음 세상)이 다 지나갔음이라 계21:3~4

 

▲2. 천국은 눈물과 통곡이 없는 곳이다.

세상에 살 동안, 우리는 서러워서, 억울해서 눈물 흘릴 때가 종종 있다.

겉으로 흘리지 않더라도, 너무나 힘들어 마음으로 눈물을 삼킨 적이 다들 있다.

그리고 늙고 병들어 누우면, 연약한 자신을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게 된다.

 

이 눈물을 하나님이 닦아 주신다.

우리 어린시절에 밖에서 넘어져 울고 있으면,

어머니가 달려와서 치맛자락으로 우리 눈물을 훔쳐 주셨다.

천국가면,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의 땅에서 의고생과 수고를 위로하시고,

특히 복음을 전하면서 흘린 그 모든 눈물과 탄식과 고생의 흔적들을 싸매 주시고,

치하해 주실 것이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라는 말씀이 완전히 성취된다. 시30:5

 

▲3. 천국은 전쟁이 없는 곳이다.

이 세상에는 ‘정글의 법칙’이 존재해서

서로 먹고 먹히는 피비린내 나는 혈투가 계속되지만,

천국에는 그런 혈투나 생존경쟁이 없다.

모든 인간의 폭력이 사라지는 곳이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뒹구는 곳이다. 사11:6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사11:9                                          

 

▲4. 천국은 모든 불만이 완전히 충족되는 곳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 때 불만이 많다. 100% 만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바라고 추구하는 만족은, ‘이성간 사랑’과 ‘결혼’이다.

‘만족스런 결혼 생활’은 매우 소중하고 중요한 인간의 근본 욕구다.

 

그런데 우리가 가장 완벽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그 ‘결혼생활’이

(잘못하면) 우리 인간에게 가장 불만족스럽고 실망을 주는 것이 된다.

그것은 너무 깨어지기 쉬운 불완전한 것이다.

또한 부부가 서로 정말 뜨겁게 사랑했다 하더라도, 나이가 아주 많이 들면,

젊은 시절의 뜨거운 사랑과 애정이라는 것도 점점 변해서... 친구처럼 되어버린다.

 

천국에서는 자녀를 낳지 않기 때문에 결혼은 하지 않는다. 마22:30

그러면 심심할 것이라고 염려 안 하셔도 된다.

결혼관계에서 오는 기쁨과 행복보다 (그것은 깨어지기 쉬운 불완전한 것이라고 했다.)

더 완벽하고 완전한 관계와 교제의 행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이며,

(그 교제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 신랑과 신부의 혼인관계로 설명했다.)

또한 ‘성도간의 완전한 사랑의 교제’이다.

이것은 지상의 결혼관계에서 오는 만족과 행복감과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하고 완벽한 관계와 교제>의 기쁨이요, 친밀감과 만족이 될 것이다.

 

세상에서는 두 사람만 친밀하고 따뜻한 교제를 즐겼지만,

천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서로 따뜻하고 친밀한, 완전한 교제를 즐길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 모르지만,

이 세상의 행복보다 ‘더한 행복’ 정도로만 우리는 알 뿐이다.

 

그러므로 혹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세상에서 결혼의 만족과 행복을 누리지 못하신 분들은

천국을 더욱 사모하고 기대하시기 바란다.

 

C S 루이스의 말에 저는 공감한다.

‘세상에서 최고의 감동적인 아름다움을 경험했을지라도

그것은 천국을 ‘조금’ 맛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위에서 결혼을 예로 들었지만, 그 외에도 불만족이 세상에 많다.

그러나 그런 불만족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로 하여금

<천국을 사모하게 만드는 신앙>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런 불만족들을 통해서, 우리는 저 천국을 더욱 사모하며 살아야 하겠다.

 

▲5. 천국은 밤낮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곳이다.

‘어휴, 한 시간 예배도 힘든데, 밤낮 주님을 예배하면 보통 고역이 아니겠구나!’

만약 이렇게 생각하신다면 오해다.

 

여러분, 천국에서는 하나님이 가장 큰 기쁨의 존재가 되신다. 할렐루야!

기쁜 분을 계속 만나고 싶고, 기쁜 일(예배)을 계속 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아니면, 천국의 모든 것이 그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곳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자비, 거룩함, 선하심, 지혜의 광선이

온 우주 만물을 감싸고 있는 곳이 천국이다.

그러므로 예배만큼, 천국을 천국 되게 하는 것이 없다.

 

계시록에 천국의 예배 장면이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오디오는 아래 첨부화일에)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찬양하여)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계7:9~10

 

이런 찬송의 행복을 교부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다.

‘끊임없이 바라보게 되고,

싫증남이 없이 사랑하게 되고, 

지침 없이 찬양하게 될 하나님은,

우리가 바라는 목적이 될 것이다’  

 

보고 보아도... 또 보고 싶고,

사랑하고 또 사랑해도... 더 사랑하고 싶고,

찬양을 부르고 불러도... 또 부르고 싶다는 뜻이다.

이것 만큼 큰 행복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이렇게 천국에 대해 그 실상을 알았다면,

이제 우리는 천국을 사모하며 살아야 하는데...

 

 

◑천국을 사모했던 믿음의 조상들

 

▲인간의 본능 - 죽기는 싫다

현재 세계에서 제일 장수한 노인은 금년에 112세인 일본인 다나베 씨다.

신문기자들이 그에게 찾아가서 물었다. “얼마나 더 오래 살고 싶으십니까?”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끝없이 살고 싶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정상적인 크리스천 신앙을 가진 사람은 그래서는 안 된다.

‘날마다 천국을 사모하며 살아야’ 정상적인 신앙인이다.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만약 <천국 가는 것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신앙은 뭔가 아직 부족한 상태이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성도들이, 그런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들은 천국을 사모했다.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다.

의로운 제사를 드린 아벨,

하나님과 동행하다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한 에녹

온 세상이 타락해도 홀로 방주를 예비했던 노아

하나님이 세우실 도성을 바라보고 일평생 살았던 아브라함과 사라 등

 

이 사람들은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다. 그들이 가진 ‘믿음’이란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하신 본향을 바라보며, 사모하며 사는 것이었다.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히11:13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다는 것은,

이 땅에서 마치 주인인양, 영원히 살 것처럼, 이 세상에 취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들은 이 땅에 살 때, 마치 여행자처럼, 언제나 본향을 바라보고, 기다리며 살았다.

 

히브리서 11장은, 이런 위대한 선배들을 소개하면서

‘여러분도 그렇게 천국을 사모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고 환영하며’

they only saw them and welcomed them from a distance  히11:13

 

저는 어린 시절 항구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 말의 뜻을 잘 안다.

사랑하는 아빠나 아들이 여객선을 타고 지금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다.

배 도착 시간이 가까워지면, 육지의 가족들이 삼삼오오 항구로 모여든다.

 

이제 항구가 보이게 되면, 배 안에 타고 있던 승객들도 모두 갑판으로 나와

멀리 항구에 자기 가족들이 나와 있는지 고개를 빼고 두리번거리며 살피게 된다.

그러다가 서로를 발견하게 되면 ‘나 여기 있어!’ 하고 소리 지르며 손을 흔든다.

‘멀리서 바라보며 환영한다’는 말이 원어적으로 이런 의미를 갖고 있다.

 

‘천국’을 이 정도로 <뜨겁게 사모하며 사는 것>이

믿음의 조상들의 삶이었으며,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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