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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신령한 축복 (엡 1:3-14)

by 【고동엽】 2022. 9. 24.

모든 신령한 축복  (엡 1:3-14)


표준 새번역 성경 1장 3절을 다시 한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서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신령한 축복을 주셨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어느 성도님이 지나가는 말로 '우리 가정은 팔복교회에 나온 후에 벌써 몇 가지 복을 받은 듯 하다'고 간증하는 말을 들었는데 신년 벽두에 사도바울이 말하고 있는 하늘의 신령한 축복 속에서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흔히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8복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서 1장의 7복은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태복음 5장의 8복은 다분히 조건부의 복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해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
마태복음 5장의 8복은 조건이 따른다. 그러나 에베소서 1장의 축복은 조건이 따르지 않는 무조건의 축복의 약속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는 다름 아닌 성탄에 태어나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따르는 사람은 누구나 이 신령한 모든 축복을 이미 누리며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탄에 탄생한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인 동시에 나의 구세주로 믿고 따르는 사람은 이미 이 귀하고 값진 축복에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바라기는 희망찬 새해 벽두에 에베소서가 말하고 있는 7가지 신령한 축복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달아 1년 재재 이 귀한 축복 속에 사시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치고 행복하길 원치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치고 다복하게 살길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중에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축복받길 원하는 민족은 세상에 드물 것입니다. 정초가 되면 소문만복래란 글을 크게 써서 대문에 부쳐놓고 복이 굴러 들어오길 바랍니다. 그리고 새해 초의 인사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입니다. 그뿐인가 주발대접 등의 그릇에도 복 복자로 도배를 하다시피 하고 복 받기를 원합니다. 이것가지고도 직성이 안 풀리니 아예 아들을 낳으면 복동이요, 딸을 낳으면 복순이란 이름을 지어주는 것도 우리 민족이 얼마나 복(福)받기를 좋아하는 민족인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학자는 우리나라의 전래의 문화를 복(福) 문화라고까지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토록 복 받기를 원하며 살아온 우리민족은 행복했습니까? 다복했습니까?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 아니었습니까?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성경이 말하기를 만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을 외면한 채 살았기에 복된 삶을 살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신 예수님만이 모든 신령한 축복을 주시는 분이신데 구세주인 예수님을 외면한 채 살아온 까닭입니다.
그렇다면 성탄에 탄생하신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신령한 축복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여기에 대해 사도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몇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를 선택해 주신 복이라고 하였습니다.
4절에서, 하나님은 창세전에 우리를 거룩하고 흠없게 하시려고 선택해 주셨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선택한다'는 말은 골라 뽑는다는 뜻입니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잡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미 결혼한 성도들은 오늘의 배후자를 선택하느라고 무척 고심도 하고 애도 썻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청년은 아내감을 찾는데, 청년 눈에 들면 부모가 반대하고 부모가 좋아하면 청년마음에 안들고, 청년과 아버지가 좋아하면 어머니가 반대해서 결혼을 아직까지도 못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내가 아는 어떤 처녀는 지난 몇 년간 102번씩이나 선을 보고도 홀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서 배후자를 선택하는데도 힘들고 신중해야 하는데 하물며 이 세상에 티끌처럼 많은 사람들 중에 잘난 사람도 있고 똑똑한 사람도 있고 지혜로운 사람도 있고 강한 사람도 있는데 그 많은 사람들 중 내가 주님에 의해 선택되었다는 그 사실은 축복 중에 축복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에 의해 선택받은 선민이 축복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자녀들 된 복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5절에 '우리가 서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 자리의 여러분이나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되었다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중의 축복이 틀림없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20여 년 전 독일 루터교회의 초청을 받아 몇 달간 연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때 어느 교회의 초청을 받아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설교전 나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한국에서 온 김목사입니다. 그런데 나는 왕손입니다" 하니까 교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교회는 수백 년의 역사가 흘렀건만 왕손의 방문도 없었고, 더군다나 왕손이 와서 설교한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나는 나의 조상은 몇 천 년 전 한국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 왕이고 그 후손이 바로 나라고 설명했더니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재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세요? 저는 그때 "내가 왕손이라고 해서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이 자리의 여러분들은 세상나라의 왕손된 것보다 왕중왕 되신 그리스도에 의해 선택된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니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으며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라고 말을 했고 그 교회 교인들은 이 말을 듣고 설교를 못할 정도로 박수를 쳤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상의 대통령이나 제왕의 왕손이 되는 것도 대단히 부러워하는 위치요 신분인데 우리는 세상의 어느 제왕이나 대통령보다 더 높고 귀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되었다고 하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 것을 자랑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과 품위를 지키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새해를 맞아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란 품위를 갖고 세상에 나가 빛의 자녀처럼 빛나는 2002년을 사시기 바랍니다.

셋째, 죄 사함 받은 축복이 있습니다.
7절에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았으니'  우리가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은혜 가운데 은혜요, 축복 가운데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속죄함을 얻었습니까? 7절에 보니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죄함을 받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피란 누구의 피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말합니다. 죄 없고 흠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은 우리의 죄 값을 대속하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죄는 어떤 죄를 말합니까? 남의 연필 한 자루를 훔쳐도 죄가 되는데 우리는 어떤 죄를 짓고 있습니까?
우리는 매 주일 죄의 고백에서 어떤 죄를 고백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짓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원하는 선은 행치 않고 원하지 않는 죄를 행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주를 사랑하지 않은 죄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않았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탄에 강생하신 우리 주님은 바로 이와 같이 우리가 알고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피 흘려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낳음을 입었노라"(사53:5)고 예언하지 않았습니까?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죄하는 방법이 바로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입니다.
주님께서 갈보리 십자가위에 달려 돌아가신 그 사건은 우리에게 은연중에 두 가지를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임을 교훈하는 동시에 그 십자가는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셨기에 그의 독생자까지 세상에 보내셨을까 하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셨으면 죽을 운명의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내가 져야할 그 십자가를 그의 독생자에게 지게 했단 말입니까? 그리고 우리는 매 주일 청찬의 떡과 잔을 받을 때마다 2000여 년 전 나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돌아가신 주님의 성체를 받는 것이요, 잔을 받을 때마다 내 죗값을 대속하기 위해 뿌리신 주님의 보혈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매 주일 주님의 그 거룩한 성체와 보혈을 받을 때마다 내 대신 돌아가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지 않는다면 이는 배은망덕이라 할 수 있고 양심에 화인 맞은 증거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고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통하여 구속받은 축복을 늘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찬송가 405장에서와 같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를 열창하면서 사는 한 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넷째, 하나님을 아는 축복이 있습니다.
9절에 보면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된 비밀이다. 흔히 비밀이란 특정한 사람 외에 누구도 모르는 것을 말합니다. 가령 관공서나 군대엘 가면 1급 비밀, 2급 비밀, 3급 비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자연계에 숨겨있는 비밀을 연구하는 시대입니다. 이것을 과학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는 이 비밀을 많이 발견한 사람이 앞서가게 마련이요, 인정받기 마련입니다. 가령 번개는 예부터 있었으나 그 속에서 전기의 원리와 비밀을 발견하여 전기를 쓰게 되었으니 얼마나 편리합니까? 물을 끓일 때 주전자의 뚜껑이 수증기에 의해 들썩거리는 것도 예부터 보아왔으나 그 수증기에서 기관차의 원리를 발견하여 우리 생활의 편리함을 제공하게 된 것은 근대의 일입니다. 원자는 태곳적부터 존재해 왔으나 그 비밀을 찾아내어 현대는 원자핵의 분열을 이용하여 원자력 발전소도 건설하고, 원자력 잠수함도 띄우고, 원자력 병원을 세워 질병까지 고치고 있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자연계와 우주계의 숨겨진 비밀을 알아내어도 굉장한 유익이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비밀을 안다고 하면 그 얼마나 축복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우주의 근원을 아는 것인데 그 전에는 막연히 이 우주에는 어떤 절대자가 있고 그 분을 하나님이라 불러 왔다. 그런데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성탄절에 사람을 몸을 입으시고 태어나심으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고 어떻게 해야 영생복락에 이르게 되는지를 깨닫게 되었으니, 하나님을 아는 이 비밀이야 말로 큰 비밀이 아닐 수 없고,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이 비밀이야 말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섯째, 통일되게 하는 축복이 있습니다.
10절에 보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조상이었던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이후 인간의 역사는 분쟁과 분열로 점철된 역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금슬이 좋았던 아담과 하와가 갈라섰고, 가인과 아벨형제가 갈라서지 않았습니까? 이때부터 개인은 내파와 네파로 갈라서게 되었고, 종족 간에도 내파와 네파로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나라 간에도 통일보다는 분열의 쓰라린 경험을 한 채 우리는 지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진정한 통일 그것은 오직 성탄에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종족과 민족, 언어와 문화, 그리고 지역과 계층간의 모든 장벽도 눈 녹듯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고백할 때 비로소 우리 모두는 형제자매가 되어 하나로 통일될 수가 있으니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의 통일 또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섯째, 주안에서 기업이 될 복이 있습니다.
11절에 보면 '우리가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나니'하였습니다. 이 말은 예수 믿는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님의 후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만물이 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따라서 그 후사가된 우리는 다 그의 기업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참으로 부요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다윗왕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한 것입니다.
부잣집 아들은 비록 그의 주머니가 비었다 해도 부족을 느끼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버지의 소유가 모두 자기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사람이 가난한 중에도 자족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주를 통하여 하나님의 기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일곱째, 성령으로 인침을 받는 복이 있습니다.
13절에 보면 '그 안에서 믿어.....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나니' 하였습니다. 본문에서 인 쳤다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세례를 통하여 한번 인 쳐놓으면 어디를 가나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43:1절 이하에 보면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가 세례를 받을 때에 성령으로 인 쳐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우리는 완전히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왕중왕 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요,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왕족"이라는 영광을 누리며 살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세상 어디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비록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지만 하나님의 소유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고로 우리에겐 두 가지 시민권이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으니 대한민국의 국민인 동시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또한 하늘나라의 시민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1년간 우리는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충성해야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된 하늘나라 시민으로서 하나님께 또한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 58장의 내용은 "마음은 하나님께 손은 이웃에게"(Heart to God, Hand to man)의 정신입니다. 이 정신으로 섬기며 살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기 위해서라도 여려분에게 하늘에 속한 신령한 7가지 축복을 내려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이미
①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해 주신 축복,
② 하나님의 자녀된 축복,
③ 죄 사함을 받은 축복,
④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축복,
⑤ 통일케 되는 축복,
⑥ 주 안에서 하나님의 기업이 되는 축복,
⑦ 성령으로 인침 받은 축복
을 받았음을 기억하시고 1년 내내 이 축복을 누리고, 감사하며 사시는 여러분 되새길 축원합니다.
                

  
출처 : 윤병상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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