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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믿음(5) (삼상22:1-2)

by 【고동엽】 2022. 9. 23.

다윗의 믿음(5)  (삼상22:1-2)

여러분들은 성경에서 어떤 인물을 좋아하십니까? 나름대로 좋아하고 존경하는 인물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바나바를 좋아하고, 구약에서는 다윗을 좋아합니다. 다윗은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다윗이 전혀 문제나 실패나 범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인간은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예수님을 제외한 어떤 사람도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실패로 말하면 다윗만큼 인생의 뼈저린 실패를 경험한 사람도 아마 드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좋아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다윗의 믿음 때문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믿음에서 나오는 생각과 말과 행동 때문이고, 짧은 인생이지만 바르고 참되게 살려는 진지한 삶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인물을 보면서 무엇보다도 믿음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다윗의 믿음을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그가 자녀를 대하는 믿음, 부모로서의 믿음, 그리고 가정을 향한 믿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오늘 다윗의 마지막 믿음을 본문을 중심으로 찾으려고 합니다.

본문은 다윗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다윗의 역사를 알려면 여기 말씀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만큼 다윗의 기록에서 너무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비록 짧지만 여기 이 말씀을 근거로, 또 이 말씀을 기점으로 다윗의 모든 믿음과 인격과 삶이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아둘람’이라는 곳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미 언급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믿음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이 말씀과 배경을 통해 다윗의 귀한 믿음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다윗은 어떤 믿음의 사람일까요?

   첫째, 홀로서는 믿음입니다. 본문은 “그러므로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라고 문을 열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보는 것과 같이 지금 다윗은 쫓겨다니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죽인 이후 민족적인 영웅이 되었습니다. 전쟁터에서 자식이나 남편을 보낸 여인들이 다윗을 맞으러 나왔고 승전을 축하하며 꽹과리에 맞추어 춤을 추며 오랜만에 이스라엘에는 축제가 찾아 왔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의 마음은 심히 불쾌했습니다. 자기보다도 다윗을 추켜세우는 백성의 노래 소리를 듣자 그만 심사가 뒤틀린 것입니다. 그때부터 사울은 다윗을 경쟁자로 보기 시작합니다. 사울은 위기의식을 느꼈고, 더욱이 그에게 악한 영이 극성을 부리자 더욱 미친 자의 행동을 합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힘과 권력을 이용하여 다윗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이 떠난 사울은 더 이상 왕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지도자로서 나라를 잘 다스릴까를 고민하지 못하고, 건설적인 일에 시간과 정력을 쓰지 못하고, 그는 다윗을 죽일 궁리만 하는 졸장부, 한심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위기가 오자 다윗은 예루살렘과 고향을 떠나는 도망자가 됩니다. 그때부터 인생의 험한 길에 들어섭니다. 부모와 친척은 물론 친구와 헤어지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떨어지고, 특히 그를 인정해주는 백성과도 헤어집니다. 다윗은 그가 가까이 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과 헤어졌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는 순간, 그에게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또한 그는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그가 처음 도망간 곳은 ‘놉’ 이라는 곳입니다. 그러나 거기도 안전을 느끼지 못하고, 블레셋의 진영인 ‘가드’로 갑니다. 그는 거기에서 살아 남기 위해 미친 짓까지 합니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다가 마침내 자리를 잡은 곳이 본문에 나오는 ‘아둘람’이라는 동굴입니다. 물론 이곳도 그의 안전한 처소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잠시 머물다가 다시 도망갑니다. 아둘람에서 모압 땅으로, 모압에서 그일라로, 그일라에서 십황무지로, 기브아로, 다시 블레셋으로, 벧엘로, 헤브론으로... 성경은 이곳저곳으로 도망 다니는 다윗의 참담함을 보여 줍니다.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많이 울었습니다. 힘들어서 울고, 외로움에 그는 더욱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시편을 보면 다윗은 자신을 가리켜 ‘외로운 자’라고 즐겨 불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시적인 표현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습니다. 언제나 외로웠고 혼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다윗이 이처럼 도망자가 되어야 합니까! 무슨 이유로 이처럼 외로움과 투쟁해야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홀로 서기를 위한 훈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혼자임을 심어주고, 세상에 도와줄 존재는 없다는 것을 심어주어서, 그로 하여금 오직 시선을 하나님께로만 향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믿음의 중요한 역할은 홀로 서기를 위함입니다. 혼자라고 생각될 때, 그래서 지치고 외롭고 힘들 때, 사랑하는 주님과 더불어 우뚝 서기를 위해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윗의 생애에 그에게 처음 찾아왔던 외로움, 흔들림의 순간은 사무엘이 자기 집에 와서 왕으로 기름을 붓는 때였습니다. 다윗의 아버지 이새는 당연히 왕이 되려면 장남이 되는 것으로 알고 큰아들부터 7명의 아들만 사무엘 앞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막내아들인 다윗은 들판에 남겨두어 양을 치게 했습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당시 어린 다윗의 마음에 적잖은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모두가 왕이 되겠다고 사무엘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을 때 다윗은 들판에 홀로 남았습니다. 첫 번 찾아온 외로운 때에 그는 굳건한 믿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일어선 것입니다. 이때 불렀던 다윗의 시가 시편23편입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시편에서 그가 무엇이라고 노래를 부르는가 자세히 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은 다윗의 목자이십니다. 그 어느 누구의 목자가 아니라 다윗의 목자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외롭고 곤고할 때 다윗은 홀로서는 이런 귀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굳건히 서서 어려움을 극복해 간 것입니다.

   그 이후에 다윗의 생애에는 크고 작은 흔들리고 외로운 때가 많이 있었지만 아마도 그에게 찾아온 결정적으로 힘든 때는 압살롬의 반역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까지 다윗이 결코 못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죄를 범하긴 했지만 다윗은 백성들과 충신들과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통일이스라엘의 번영을 위해 최선을 다해 수고했습니다. 그런데 반역이 일어납니다. 그 반역의 주역이 아들이요, 친구입니다. 다윗에게 찾아온 생애 가장 큰 위기였습니다. 아마 다윗은 이때가 가장 힘들었고, 가장 외로운 때였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지만 그는 혼자였습니다. 그의 주변에서 그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많은 음성을 들었지만, 그는 아무 것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이 참담해지고, 고통을 받으면 외로워지는 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곁에 있는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반역의 때가 그런 시기였습니다. 그가 맨발로 울면서 예루살렘을 떠날 때 그의 눈물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다윗 인생에 그야말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갈 때 나의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믿음으로 하늘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불렀던 신앙의 고백, 믿음의 노래가 있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찌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찌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다윗이 나중에 견고한 믿음의 사람으로 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고난의 때에 그가 받은 홀로 서기의 연단을 잘 받았기 때문입니다. 고독과 싸우고, 자기와 싸우면서 하나님은 도망자 다윗의 삶을 통해 홀로서는 훈련, 자립생활, 자립신앙, 독립적인 사람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가 왕으로서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고, 인정받고, 오고 오는 많은 세대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게 된 것은 고난의 때에 홀로 서기를 잘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왕의 위치는 분명 영예를 얻는 자리이지만, 참으로 힘들고 고독한 자리입니다. 옳은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고, 바른 판단을 해야 합니다. 아무도 그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왕을 바라보고 있기에 무거운 자리입니다. 다윗은 그 일을 잘 감당했습니다. 나라를 번영과 안정으로 이끌어 나갔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가 인생에서 홀로 서기의 훈련을 믿음으로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다윗처럼 홀로 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하나님이기보다 먼저 나의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의 신앙은 바로 나의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오늘 아침에도 동녘에 해를 뜨게 하셨을까요? 바로 나를 위해서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토록 아름다운 꽃을 온 천지에 피우셨을까요? 그것은 언젠가 한번이라도 그곳을 지나갈 나를 위해서입니다. 왜 하나님은 밤하늘의 그토록 무수한 별들을 빛나게 하실까요? 그것은 혹 밤길을 걷게 될지도 모를 나를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은 다 나를 위해서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바로 나를 위하여 창조하시고 예비하신 것입니다.

   그런 믿음으로, 우리는 인생에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자리에 설 때에 누구보다도 내가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누구의 믿음보다도 바로 나의 홀로서는 믿음이 정말 귀한 믿음입니다. 아무리 남편과 아내가 잘 믿어도 덤으로, 묻어서, 붙어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구원받고, 내가 영접하고, 내가 잘 믿어야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홀로서는 나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귀한 믿음입니다. 다윗과 같은 홀로서는 믿음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고, 고난과 외로운 때에 승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함께 하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내가 홀로 서기를 위한 믿음에서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앙의 목표도 아닙니다. 그런 믿음은 이기심과 욕망과 기복신앙에서 그치고 맙니다. 홀로서는 믿음이 먼저 중요하고, 그 믿음이 함께 하는 믿음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다윗의 뛰어난 믿음이요, 그가 믿음의 사람 중에 믿음의 사람으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다윗은 여기 아둘람에 오기까지 홀로서는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믿음은 홀로서는 믿음에서 이제 함께 하는 믿음으로 발전합니다. 이것이 아둘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본문에 보면, 다윗이 아둘람에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환난 당한 자와 빚진 자 그리고 마음이 원통한 자들입니다. 사울 왕의 시대는 극소수의 특권층을 제외하고 온 백성이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부정과 부패가 팽배해 있었던 것입니다. 왕부터 공적인 일에 치중하지 않으니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백성들은 당시 가진 자들의 착취 때문에 사기를 당해서 어쩔 수 없이 파산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빚지고 갚을 길이 없는 극빈자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런 어려운 시대에 어렵게 살면서 여러 가지로 상처받아 마음이 원통한 자들, 사울의 폭력정권에 불만을 품은 무리들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바로 그들이 다윗에게로 모인 것입니다. 그 수가 400명이었습니다.

   아둘람 굴에서 다윗은 이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한데로 묶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함께 사는 것은 10명도 힘들고, 아니 둘도 힘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가족도 아닌 400명이 함께 했으니 어떠했겠습니까? 또한 이들은 불만으로 가득한 사람들, 소위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들, 내적 치유가 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과 다윗이 함께 했습니다. 믿음으로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믿음을 중심으로 함께 하는 훈련, 공동체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이 훈련을 위해 우선적으로 다윗은 이들을 이해합니다. 이들의 형편과 처지를 자기입장이 아니라 그들 입장에서 보았습니다. 이들의 탄식과 아픔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들을 사랑했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히 대했습니다. 이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좋아하기보다는 사울을 피해 온 사람들이기에 다윗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불만을 가질 수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을 다윗은 하나님의 넓은 사랑으로 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섬겼습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심어주고, 전쟁을 위한 훈련도 시켰습니다. 다윗은 여기 400명 거친 사람들을 펄펄 나는 뛰어난 용사들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무술과 활쏘기와 창검술등을 훈련시켰습니다. 장차 블레셋을 비롯한 어느 나라, 어느 대적과의 싸움에서도 백전백승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용사로 키운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다윗은 상처받은 그들의 정서를 순화하기 위해 음악을 가르치고 시와 노래를 부르게 했습니다. 수금과 비파를 가르쳐 오케스트라도 구성했습니다. 다윗이 이때 이들과 함께 부르던 노래가 시편에 있습니다. 시편 52, 54, 56, 59, 142편 등은 바로 이때 지어진 노래들입니다. 다윗은 이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심고, 참된 삶의 원리를 알려주고, 인생의 바른 길을 제시하면서, 민족과 역사를 보는 안목을 키워 주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홀로서는 믿음에서 함께 하는 믿음으로 세워집니다. 이젠 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배웁니다. 그러면서 이제 너와 우리의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하나님은 다윗을 도망자로서 홀로 서게 하시더니, 이제 아둘람 굴에서 공동체훈련을 통해 더욱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 가셨습니다. 여기에서 함께 믿음의 훈련을 받은 400명은 앞으로 통일왕국시대에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용사로 거듭납니다. 결국 다윗 왕권은 이들이 중심이 되어 튼튼한 기틀을 마련하고 역사상 가장 번영한 왕조를 세운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가 후에 다윗의 충신이 되었고, 나라를 위한 중심인물들이 되었습니다. 다윗 왕국의 비서실장, 국무총리, 국방장관, 내무부장관등 중추적인 인물들은 모두가 여기 아둘람 출신들입니다. 믿음으로 훈련받아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특히 이들은 평생 다윗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으로 왕실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을 때 기회주의자들은 다윗을 떠났고 배신했습니다. 하지만 아둘람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은 다윗에게 끝까지 충성했습니다. 다윗 곁에 가까이 있으면서 위로하고, 충심으로 잘 보필했습니다. 결국 그들이 다윗 왕권을 다시 회복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결코 혼자 살수 없습니다. 믿음을 위해서는 홀로 서기를 해야 하지만 믿음에 따르는 바른 삶과 행동을 위해 함께 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사람과 공동체를 떠나 존재하지 않습니다. 혼자 수양하는 수도원의 생활이 아닙니다. 세상에 속하진 않지만 세상에 있고, 사람들을 의지하진 않지만 사람들 안에 있습니다. 함께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가족공동체, 사회공동체, 교회공동체, 모두가 함께 모인 공동체에서 내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떠날 수 없기에 우리는 사람과 더불어 사는 삶을 잘 이루어야 합니다. 부부는 함께 하는 것입니다. 부부의 신비는 함께 하는 것에 있습니다. 함께 해야 사랑이 생기고, 보기도 좋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가족도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가정이 됩니다. 가족을 보통 ‘식구’(食口)라고 부릅니다. 식구는 함께 밥을 먹는다는 뜻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식탁에 앉아 밥도 먹고, 얘기도 하고, 담소도 나누고, 눈을 마주쳐야 가족입니다.

   가족만이 아닙니다. 크리스천의 모든 삶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홀로 하는 일은 잘하는데 함께 하는 것에는 잘 안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혼자 잘해도 함께 하는 것을 못하면 잘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홀로 서기도 바로 해서 우뚝 서야 하지만 함께 하는 공동체의 삶도 신실히 해야 합니다.

   이런 공동체훈련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이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내 뜻이 귀한 것처럼 다른 사람도 귀합니다. 서로 서로를 존중해야 합니다. 함께 지어져 가야 합니다. 처진 사람을 끌리고, 앞선 사람은 약한 자를 돌봐야 합니다. 우리는 함께 불러야 합니다. 솔로가 아니라 합창이어야 합니다.

   홀로서는 믿음, 함께 하는 믿음, 이것이 다윗의 믿음입니다. 가정과 교회공동체를 깊이 생각하는 좋은 계절에,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마음에 담고 다윗과 같은 귀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서해원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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