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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잔치의 비유 (눅 14:15-24)

by 【고동엽】 2022. 9. 21.

큰 잔치의 비유  (눅 14:15-24)

오늘 이렇게 목장베스트 초청의 날에 강동교회를 찾아오신 여러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들을 초청하기 위해 기도하면서 준비하신 모든 강동가족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시간은 하나님 나라의 잔치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이 잔치를 베푸시는 분은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이 하라는대로 초청을 순종한 종에 불과합니다. 잔치의 주인이신 우리 주님은 잔치를 통하여 초대한 친구같은 모든 분들에게 귀한 선물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이 잔치의 시간 우리 주님께서 베푸신 큰 잔치의 비유를 통해서 주님의 귀한 은혜를 함께 나누기를 소원합니다.어느 안식일 날 예수님이 한 유대인 바리새인의 집에 초청을 받아 갔습니다.오늘 이렇게 초청을 받아 우리 교회에 오신 여러분들이 있는 것처럼 우리 주님도 초대받아 잔치집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오늘 말씀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비유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신 의도는 우리에게 쉽게 이해시키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잔치집에 가셔서 잔치집의 비유의 말씀을 하십니다.
보통 잔치를 벌일 때 주인은 풍성한 음식을 준비하고 사람을 초청합니다.
결혼식이나, 회갑연이나, 돌잔치나, 승진이나, 또는 집들이 같은 큰 기념될 일이 있으면 우리는 음식을 풍성하게 준비하여서 손님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잔치집에 가면 기분이 좋고 좋은 음식을 풍성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잔치를 벌이게 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을 초청합니까? 대개 우리는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초청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이것이 세상 나라의 잔치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잔치에 초대받아 가셔서 세상 나라의 잔치의 이러한 모습을 보시고 자기를 청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12절“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이웃을 청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도로 청하여 갚음이 될까하노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13절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길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이 받겠음이니라”고 합니다.

그러자 이 말을 듣던 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사람은 복되도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잔치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 몇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째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잔치와 같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땅에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는 완전히 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 완전히 임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이땅에서 이루어지는 지금의 모습이든지 장래에 완전히 임하든지 잔치집과 같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연상할 때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교회는 천국잔치집입니다. 교회는 주일마다 천국잔치를 벌이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의 잔치는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러한 잔치가 아닙니다.
우리의 육신을 즐겁게하는 푸짐한 음식과 노래와 춤이 나오는 그러한 잔치가 아닙니다. 이 잔치는 바로 신령한 잔치인 것입니다. 이 잔치는 염려와 근심과 걱정속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늘의 기쁨과 평강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맛보며 소망가운데 살아라고 우리하나님께서 베푸신 말씀과 은혜의 잔치인 것입니다. ( 롬 14:17)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
이 잔치는 먹고 마시는 잔치라기 보다는 성령안에서 구속의 은총을 누리는 진정한 축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매주일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통하여 이 잔치,축제를 벌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는 사실 잔치입니다.그래서 우리의 예배는 잔치와 같고 축제와 같은 시간입니다. 우리는 이 예배를 통하여 아버지를 만나고 아자녀가 된 것에 대한 기쁨을 몸소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잔치를 배설하고 준비한 주인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이 주인처럼 친히 잔치를 준비하시고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십니다. 옛날 유대인들의 경우에는 잔치를 배설하고 초청할 때 두 번 초청을 합니다. 한번은 잔치시간 훨씬 앞서 청하고 다음은 잔치시간에 임박하여 청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 잔치를 주인이 준비하고 16절에 “많은 사람을 청하고 ”17절에 “다시 청햇던 사람들에게 또 종을 보내어 오소서”라고 합니다. 여기 17절에 초대석상의 말씀을 보십시오.
주인은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는 것을 봅니다.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준비하고 주인이신 우리 주님이 초청할 때 어떻게 초청하십니까? 값없이 오라고 하십니다. 이사야55장 “오라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돈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돈없이 값없이 와서 주님이 예비하여 주신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십니다.
오늘 초청받으신 분들에게 우리 주님이 제공하시는 가장 중요하고 귀중한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돈도 아니고 금과 은도 아닙니다. 그러나 돈보다 금보다 은보다 귀한 생명의 선물입니다. 오늘 잔치를 베푸신 주님은 초대한 손님들에게 영생의 선물을 주시기를 소원하십니다.
누구든지 마음을 열고 우리 주인이신 주님이 주시는 영생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천국잔치를 통하여 영원한 기쁨를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모든 선물을 값없이 그냥 주십니다. 주님의 초청을 거절하지 않고 그냥 와서 먹고 마시고 즐기시면 됩니다. 주님을 통해서 주어지는 모든 귀한 선물을 받으심으로 풍성한 인생으로 드려지시기를 축원합니다.

2. 청함을 받은자들의 반응을 보겠습니다.(18-20)
사람이 초청에 사양하는 것은 대게 두가지 경우 입니다. 하나는 자신을 부정하는 겸손의 사양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기를 긍정하는 교만의 사양입니다. 초대한 사람을 별로 달갑지 않게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 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양은 다 후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하나님의 잔치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대게다 보면 자신의 일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초청한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첫번째 사람은 자기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보아야겠다고 사양했습니다.
이 사람은 새로 구입한 땅을 보러가는 것이 더 흥미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농부에게 있어서 밭은 대단히 소중합니다. 그는 밭을 사므로 해서 그 마음이 뿌듯하였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신령한 기쁨에 대해서는 아랑곳 없는 사람입니다.그냥 물질적인 기쁨만 추구합니다. 세상이나 사업에 더 관심있어 합니다. 돈 버는 것에 더 관심있어 합니다. 그는 영적인 가치보다 물질적인 것에 더 관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사업에 미친사람입니다. 돈 독이 많이 든 사람입니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있어서 사업이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까짓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에다 더 중요한 가치를 두느냐에 있습니다. 세상의 사업이란 인생의 목적이 아니고 인생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일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업때문에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목적과 수단을 구분못하는 잘못인 것입니다.

두번째, 핑계는 나는 소 다섯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같으면 새 자동차를 사서 시운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날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선 무슨일이 중요한가를 착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일은 우리가 죽을때 까지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게으른 자를 오히려 책망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육신의 일보다는 영적인 일입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세상일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무시하고 거부합니다.

세번째 핑계는 나는 장가들었으니 가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이것은 세상적인 쾌락 때문에 잔치에 불참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물론 결혼이란 하나님이 무미 건조한 광야 세상에서 합법적인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잔치에 참여못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결국 개인적인 욕망 때문에 천국 잔치를 거절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큰불행입니다. 세상에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는 격언도 있지만 하나님의 초청에는 그 어떤 핑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 중에서도 또 다른 변명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에게 범죄하고 났을때 변명하였습니다. 아담은 하와때문이라고 변명했습니다. 하와는 뱀때문이라고 변명했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변명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는 것보다 참여하지 못할 이유들이 다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완전히 다 알아야만 믿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혼자 성경을 읽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성경을 다 알아서 하나님을 믿고 교회에 출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 우리가 모든 것을 반드시 다 알아야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차를 몰고 다니지만 잘 모릅니다. 비록 차를 다 알지는 못하여도 차를 통하여 유익을 얻습니다. 저는 가끔 필요한 약을 먹습니다. 그러나 그 약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약사가 처방한 대로 먹습니다. 저는 아직도 어떻게 방안에 전기불이 들어오는지 어떻게 에커콘이 돌아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에어콘은 시원하게 하는 기계’이고 ‘스윗치를 올리면 전기가 들어오는 것을 알기’에 그것을 만족하게 누리면서 살아갑니다.
또 어떤 분들은 교회를 거부하는 이유가 교회에 너무 위선자가 많다고 합니다.
물론 교회에 모든 사람들이 완전한 사람은 아닙니다. 병원의 모든 의사가 완전하지 못하듯이 그래서 종종 오진이 잇을 수 있듯이 교회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진하는 의사가 한두명 있다고 병원을 불신하고 이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이용하는 자동차가 사고가 일어난다고 해서 차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의 위선자들 때문에 교회를 불신하고 그리스도를 불신할 이유는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나는 너무 죄가 많아서 주님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이씁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병이 많아서 의사에게 가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주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병든 자에게라야 의원이 쓸데있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잔치의 주인이신 우리 주님은 지금 초청에 응답하시기를 소원하십니다. 때때로 우리는 초청의 때에 지금은 아닌 나중에 그 초청에 응하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은 지금이 바로 구원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바로 은혜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내일의 시간은 나의 시간이 아닙니다. 미래의 시간은 나의 시간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잠깐 있다고 없어지는 안개요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지는 꽃과 같습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만물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때를 내가 주관하지 못합니다. “날때가 있고 죽을때가 있으며 심을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잇습니다”.
그런데 내가 죽을때가 언제이고 내가 인생을 떠날때가 언제인지 아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지금 내가 너무 바빠서 나중에 한가할 때 여유가 될 때 하나님을 믿고 교회를 나가겠다고 합니다. 지금은 내가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안되겠다고 합니다. 지금은 내가 세상재미를 보기에 시간이 없어서 안되겠다고 합니다. 사실 많은 현대인들은 너무 바쁩니다. 잠을 자기에도 바쁩니다. 밥을 먹기에도 바쁩니다. 생존을 위해서 정신없이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가장 귀중한 시간을 바치면서 바빠야 할 시간이 무엇입니까? 바로 내 영혼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여 하나님 백성으로서 살아갈 때 많은 궁금증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에 우리가 내 사고와 생각으로 너무 앞서 감으로 인해서 어려움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종종 우리가 차를 몰때 과속을 하여서 사고를 내고 오히려 어려움을 갖게 됩니다. 주님이 보여주는데까지 가야 합니다. 주님이 알여주시는데까지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잔치에 초청받았습니까? 지금 그 초청 앞에 온전한 순종으로 그 주님의 부르심에 응하여 귀한 복을 받아누리시기를 바랍니다.

3. 주인의 반응입니다.
주인은 빈 자리에 대하여 화를 냅니다.
21절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라고 합니다.
주인은 빈자리가 생긴 사건을 몹시 화를 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잔치집에 빈자리가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가장 높은 분의 가장 귀한 잔치를 벌이는데 사람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저는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이 그 수를 민감하게 여기시는 분이심을 봅니다. 물론 한명두명이 모여도 거기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숫자를 배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풍성한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구약이나 신약 성경에 보면 그 수가 자세하게 기록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5개와 물고기 2마리 통하여 기적이 일어날 때 보면 남자 장정만 5천명이라고 기록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의 숫자가 3천명 5천명 그 많은 사람들의 수를 계수하여 기록하고 잇습니다.
하나님의 잔치 자리에 우리 주님은 풍성하기를 소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풍성하기를 소원하십니다. 그래서 빈자리를 채우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주인은 ( 눅 14:23)"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여기서 하나님의 집을 채우는 세가지 전략을 종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길과 산울가로 나가라!"고 합니다.
둘째, "사람을 강권하여"야 합니다.
셋째,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과정이 나옵니다
먼저 가라하십니다. 다음 강권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데려다가 강권하여 채우라고 하십니다.
오늘 이렇게 하나님의 잔치에 나올때 자원하여 오시는 분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결코 없습니다.우리가 가야 합니다. 그리고 강권해야 합니다. 그리고 데려다가 채워야 합니다.
인격적이신 주님께서 왜 이렇게 잔치에 초대하는 자리에 대하여 우리에게 강권적으로 데려다가 채우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예수 믿읍시다"로 끝나지 않고 예배당까지 인도하고 주님께로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물론 여러분 여기 강권하여 데려오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많은 정성이 필요하고 물질의 투자도 있어야 합니다.
저절로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현대인들의 가장 무서운 죄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무관심의 죄입니다. 교회는 출석하는데 아직도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여기는 분들이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죄입니다. 나와 내가족밖에 모르는 삶을 살고 잇다면 그것은 죄입니다.

결론 ) 오늘 교회는 하나님의 잔치가 벌어지는 곳입니다.그 잔치 자리에 우리가 초대를 받아서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선물 귀한 선물을 받으심으로 삶의 기쁨과 평안을 얻으시기바랍니다.무엇보다도 베스트 초청의 날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을 찾는 기쁨의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박춘수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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