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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욜 2:28-32)

by 【고동엽】 2022. 9. 19.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욜 2:28-32)

오늘 우리는 영아부에서 은빛대학까지 모두 한 시간에 한 자리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한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예배 후에 바로 한마음 체육대회에 모두 참가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은 전에부터 한 번 이와 같이 한 자리에서 드리는 예배를 마련하기 원했는데 그것이 좋은 기회를 만나 이렇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일부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들과 이부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들이 서로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목양교회 성도인데 목양제1교회 성도, 목양제2교회 성도, 이렇게 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합동예배를 한 번 드리려고, 물류센터에 목양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있나, 근처 학교의 강당을 빌릴 수 있나 알아본 일도 있었습니다.
대치동에 있을 때에도 어느 창립기념일에 경기여고 강당을 빌어서 합동예배를 드리고 체육대회를 가진 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봉헌 뒤에 있는 성도의 교제 시간을 당겨서 이 시간에 옆에 있는 분들과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옆에 있는 분이 처음 보는 분이면 더 열심히 인사를 하세요.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예배를 드리니까 생각나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띠로 하나가 되었습니다’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띠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널리 전하세
모두 찬양하며 주의 사랑을 전하세
모두 함께 예수님의 사랑을 세상에 널리 알리세

목양교회가 이 가사 그대로  하나가 되어 예수님의 사랑을 알리는 공동체가 되기 바랍니다.

이 자리는 마치 잔치자리 같은 느낌이 듭니다.
최근에 새벽기도회에서 예배는 축제가 되어야 하고, 우리의 삶도 축제가 되어야 하고,  교회에는 축제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 일이 있습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이 자리가 성령잔치 자리가 되기 바랍니다.
한마음 체육대회도 성령 잔치가 되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되게 하는 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큰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성령강림절인 오늘, 우리는 성령에 대한 대표적인 말씀인 요엘서 2장 28절에서 32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은혜와 교훈을 얻기 원합니다.

첫째, 성령강림절인 오늘, 우리는 성령의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성경 없는 신앙생활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성경은 시작 부분인 창세기의 1장에는 2절에서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라는 말씀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끝부분인 요한계시록 22장에는 17절에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으로 시작해서 성령으로 끝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입니다.

성령이 없었으면, 성령이 역사하지 않았으면, 성경은 아예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딤전3: 16)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우리나라 국토의 등뼈 같은 역할을 하는 산들을 백두대간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성령대간(聖靈大幹)이라는 말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엘서 2장이나 사도행전 2장은 그 가운데서 우뚝한 봉우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언자 요엘은 요엘서에서 많은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모두 중요한 말씀들입니다.
메뚜기 심판을 예언했습니다, 요엘서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마음을 찢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할 것을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하게 주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민족들을 심판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복을 주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엘을 메뚜기의 예언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심판의 예언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축복의 예언자라고 부르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요엘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그렇습니다. 성령의 예언자라고 부릅니다.
요엘서에서 성령에 대한 예언은 다른 예언에 비교해 보면 그 분량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요엘을 그렇게 부릅니다.
성령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부활절, 성탄절, 이런 절기들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오늘, 성령강림절도 중요한 절기입니다.

둘째, 모든 사람이 성령을 받을 수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 후에”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라는 뜻입니다.
“내 영을” 성령을 말합니다.
성경에는 성령이 ‘하나님의 영,’ ‘진리의 영’ 그냥 ‘영,’ ‘보혜사,’ 그밖에 여러 가지 이름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만민에게”는 “모든 사람에게”라는 뜻입니다.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이 말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 때까지는 성령은 특정한 때, 특별한 사람들만 받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구약에서 성령이 직접적으로 역사한 기록들이 어디어디에 나오나 생각해 보세요.
아까 말씀드린 창세기 1장 2절,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한 일,  
민수기 11장, 하나님의 영이 모세와 칠십 인 장로에게 임한 일,
민수기 24장, 복술가인. 발람이 모압 왕 발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영이 발람에게 임해서 발람이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한 일,
사사기 13장에서 15장까지에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임해서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친 일,
역대상 12장, 성령이 아마새라는 용사에게 임한 일,
이 일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다닐 때에 베냐민과 유다 자손들이 다윗을 찾아왔는데 다윗은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도울 수도 있고 나를 속여 나의 대적에게 넘길 수도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들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다윗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때 성령이 그 우두머리인 아마새를 감싸서 아마새가 “우리가 당신과 함께 있으리니 원하건대 평안하소서”라고 말하고 다윗을 따랐습니다. 다윗은 그를 군대장관으로 삼았지요.
에스겔 11장 5절에,  에스겔이 ‘여호와의 영이 내게 임해서 이렇게 말하라고 하셨다’ 한 일,
이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제 요엘은 모든 사람이 성령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엘은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이 말을 하고, 이 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이어서 자녀들, 늙은이, 젊은이, 남종과 여종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연령의 차이, 성별의 차이, 사회적 신분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고 성령을 부어 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론으로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본문은 성령의 보편화 선언, 성령 개방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0년 전 바로 오늘, 오순절에 성령이 마가의 다락방에 강림했습니다.
베드로가 사람들 앞에 나가서 설교하는데 바로 오늘 말씀, 요엘서 2장의 말씀을 본문으로 택했습니다.
설교는 어느 본문을 택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베드로는 이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하면서 자기들은 술 취한 것이 아니고 성령을 받았는데 자기들이  성령을 받은 것은 이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3: 38~39)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따라 삼천 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가운데는 젊은이도 있을 것이고 나이가 많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독일 퀼른대성당에는 오순절 성령강림을 체험한 모습을 그린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습니다.
이 스테인드글라스라는 것이 예술의 중요한 한 분야입니다.
이 대 성전을 지을 때도 이 앞과 저 뒤에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하는 일에 많은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이 앞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생명의 양식을 상징하고 있고 3층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예수님의 생애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푸른 풀밭 맑은 시내」 이번 호에는 입당감사예배 사진들이 정말 감동적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다음호에는 교회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사진을 해설과 함께 게재하려고 합니다.
퀼른대성당의 오순절 성령강림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면 성령을 받는 사람들의 표정과  태도가 모두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바라보고 있고 어떤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얼굴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큰 놀라움과 감사함과 엄숙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 따라 여러 형태로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은 어떤 사람에게는 신비체험으로 임합니다.
성령은 어떤 사람에게는 강물 같은 기쁨으로 임합니다.
성령은 어떤 사람에게는 고요한 깨달음으로 임합니다.
성령은 어떤 사람에게는 그 발걸음을 강권적으로 인도함으로 임합니다.
성령은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도 모르는 이끌림으로 임합니다.
성령은 어떤 사람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으로 임합니다.
성령은 어떤 사람에게는 어려움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용기로 임합니다.
성령은 어떤 사람에게는 위험에서 지켜주시는 것으로 임합니다.

하나님은 북한 주민들에게도 성령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슬람권 사람들에게도 성령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이 전도대상자로 삼고 있는 그 사람에게도 성령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만민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마음 문을 여세요.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성령을 받는 그릇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셋째,  성령을 간절하게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은 만민에게 임합니다.
그러나 아무 곳에나 임하는 것이 아니라 사모하는 곳에 임했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대각성운동을 이끈 조나단 에드워즈가 강조한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백이십 명이 다락방에 모여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이들이 어떤 기도를 드렸는지 성경에는 기록이 없지만 예수님께서 마지막 설교에서 보혜사를 주셔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요14: 17)를 기억하면서  성령을 구하는 기도하는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사모할 때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님이 체험적인 신앙을 몸부림치며 갈구할 때 1738년 5월 24일, 성령 체험, 회심의 체험을 했습니다.

교회의 역사를 연구하는 한 학자가 교회의 역사에는 참된 부흥과 그렇지 않은 부흥이 있는데 참된 부흥에는 참된 회개, 삶의 개혁, 주님과 이웃과 원수에 대한 참된 사랑, 구령의 열정과 불신자들의 회심을 위한 간절한 기도가 있었다는 글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참된 부흥의 대표적인 본보기로 오순절 성령강림과 1907년 한국의 대부흥운동을 들었습니다.
참된 부흥의 공통된 요소는 갈망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기로 이미 결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요엘을 통해 이것을 공포했습니다.
이제 공은 우리에게 넘어왔습니다.
얼마나 뜨겁게 원하느냐, 간절하게 원하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요즘 우리의 자녀 세대는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다’ ‘우리는 저주 받은 세대이다’ 하면서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나가고 야단입니다.
지금 이중국적자들의 한국 국적 포기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들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첫 번째 이유는 병역 문제입니다.
그래서 많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교육문제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교육현실 안에서는 소망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서 한국 국적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요엘은 우리의 자녀들이 성령을 받아 그렇게 나오지 않고 반대로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장래에 이렇게 밝고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나는 그 안에서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연세 많은 분들은 ‘나는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되었어!’ 하기 쉽습니다.
‘그저 사는 날까지 살다가 가면 되는 거지!’ 하기가 쉽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꿈을 꾸게 됩니다. 소망을 갖게 됩니다.
여기 연세 많은 분들, 꿈을 꾸는 연세 많은 분들, 오늘 성경의 표현을 그대로 빌면 꿈을 꾸는 늙은이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삶이 참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젊은이들보다 더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우리 은빛대학 학생들, 이 성전이 가득 차는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이 잘 되는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젊은이들이 비전을 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젊은이의 미래는 그가 품은 비전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 나라의 미래는 그 나라의 젊은이들이 품고 있는 비전에 의해 결정됩니다.    

비전을 품은 젊은이들이 많을 때 인류의 미래가 밝아집니다.
영국에 윌리엄 캐리라는 구두 수선공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세계복음화의 이상을 보았습니다. 자기의 구두 수선가게에 세계지도를 붙여 놓고 그 꿈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고전 언어들을 부지런히 공부했습니다.
그 꿈이 이루어져 캐리는 1792년 인도선교사로 떠났습니다. 그가 익힌 고전언어학의 실력을 인정받아 캘커타 대학 고전언어학 교수를 하면서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이 일이 근대선교의 출발점이 되었고 캐리는 근대선교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성령이 이 땅에 임해야하겠다는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성령, 중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성령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 그 성령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풍성하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뜨겁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각 개인의 삶이 변화되고, 사회가 변화되고, 교회는 부흥되고, 아름다운 소망이 가득한 세상을 이루는 일에 앞장서는 여러분이 되고 부족한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유관지 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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