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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사순절 설교

모세의 믿음 /히11:23-26

by 【고동엽】 2022. 8. 14.

히11:23-26

지난 몇 주간, 교회이사와 임시예배당에서의 정착, 그리고 창립기념주일을 보내면서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만 지금 우리는 ‘사순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교회역사에서 오래 전부터 지켜온 의미 있는 절기입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기 전 40일을 거슬러 올라가 주님의 생애와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보내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는 언제나 수요일에 시작하여 성금요일에 절정을 이루고 부활절 하루 전에 끝납니다. 올해의 달력으로는 2월 21일에 시작하여 4월 7일에 끝납니다. 이제 이번 주만 지나면 사순절이 절정을 향해 달려갑니다. 우리 모두 차분한 마음으로 잠시 잊고 있었던 사순절의 남은 기간동안 주님을 깊이 묵상하며 보내야 합니다.

   주님이 걸어가셨던 길이 어떤 길입니까? 그 길은 한마디로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곧 구원의 길이요, 믿음의 길입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걸어가신 길이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이 땅에서 믿음으로 가는 바르고 참된 삶을 제시한 길입니다. 그래서 이 기간동안 믿음으로 자기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지금까지 잘못한 모든 죄를 통회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앞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와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래서 사순절을 보내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더 믿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믿음에 관심을 갖고, 믿음을 더욱 키워야 하며,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다짐해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계속해서 믿음으로 살던 성경의 뛰어난 인물을 살펴보려고 있습니다. 오늘은 창세기의 족장들을 지나 출애굽의 역사를 주도한 모세입니다. 모세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그는 어떤 사람이기에 믿음의 명예의 전당에 서게 되었을까요?

   첫째, 거절하는 믿음입니다. 모세에 대한 믿음의 모습은 출애굽부터 신명기까지 광범위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이런 긴 삶을 가장 짧게 요약해 놓은 말씀이 바로 히브리서 11장, 본문의 말씀입니다. 여기에 보면 성경은 믿음의 위인들을 소개하면서 모세에 대해서는 비교적 분명하고 자세하게 그의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2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이것이 모세의 생애에서 우선적으로 돋보이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애굽의 왕자자리, 아니 어쩌면 왕의 자리를 거절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당시 상황과 배경으로 보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아니면, 그의 뛰어난 믿음이 아니면 결단하기 힘든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 역사학자인 요세푸스에 의하면 바로의 공주는 무남독녀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아이가 없어서 늘 고민이 많았고, 그래서 공주는 시녀들을 데리고 나일 강으로 자주 목욕하러 갔다고 합니다. 당시 애굽 사람들은 나일 강을 신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나일강을 생산의 신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 없는 사람들이 나일 강에서 목욕을 하면 아이가 생긴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공주도 그런 마음으로 나일강을 찾았는데, 어느 날 갈대 상자에 들어 있는 모세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아마 공주는 이 아이는 나일 강 신이 자기에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자기 아들로 삼아서 훌륭한 인물로 키울 것을 다짐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모세를 아들로 받아드렸고, 애굽 궁으로 데려와 애굽의 왕자로서 최고의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어려서부터 모든 면에 있어서 탁월한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 2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가 애굽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유세푸스에 의하면 애굽과 에티오피아 사이에 전쟁이 났을 때, 모세는 왕을 대신해서 애굽의 총사령관으로 출전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탁월했던 모세는 얼마든지 당시 부귀와 권세를 다 거머쥐고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습니다. 이유는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을 신실히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에게 있었던 이 믿음은 물론 자신이 가진 것이지만 많은 것을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았습니다. 모세는 어린 시절을 어머니의 품에서 잘 자랐습니다. 바로의 공주가 나일 강에서 모세를 발견했을 때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그녀에게 자기 어머니 요게벳을 모세를 위한 유모로 소개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 품에서 신앙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본문 23절에서 모세 부모의 신앙을 이렇게 강조합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모세의 어머니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모세에게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심어 주었습니다. 결국 어려서 가진 그 믿음이 모세가 장성하여 세상의 부귀와 영화와 권세를 거절하는 큰 믿음으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우리가 거절할 것을 거절하는 힘이 있습니다. 어떤 일에 있어서 머뭇거리지 않게 하고, 주저하지 않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거절할 줄 아는 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no라고 해야 할 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성경의 뛰어난 사람들, 역사에서 귀하게 쓰임 받은 인물들은 한결같이 거절할 것을 거절한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 요셉이 그랬습니다. 그가 보디발의 집에 관리책임자가 되어 출세의 길에 접어들었을 때, 보디발의 아내가 청년 요셉을 유혹합니다. 당시 장군들의 아내는 모두 미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젊은 청년의 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거절하면 그의 자리가 무너질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주저하거나 결코 두마음을 품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보디발의 아내가 그의 옷을 잡고 늘어질 때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 앞에 득죄하리이까’ 하면서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도 그랬습니다. 금 신상 앞에서 절하라고 했을 때에 ‘아니요’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 하실 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1924년 파리올림픽에서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주었던 육상 선수 가운데 ‘에릭 리틀’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영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발탁이 되어 100미터 경주에 가장 유망한 금메달 후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100미터 경기를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경주가 있던 날이 주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날 오전에 예배를 포기하고 경기에 임할 수 없다면서 거절한 것입니다. 영국의 많은 사람들과 언론은 그를 비난했지만 그는 주일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신앙양심을 버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기자가 그에게 아쉬움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물론 아쉬움은 있습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 세계에서 가장 잘 뛰는 선수들과 겨룰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 자신의 국기가 올려지고 국가가 스타디움에 울려 퍼질 때 느낄 수 있는 기쁨을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의심은 없습니다. 내 거절이 옳았다는 데에 의심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영국정부는 워낙 이 사람이 뛰어난 선수라서 며칠 뒤에 그의 주 종목이 아닌 400미터 경주에 출전할 기회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 경기에서 사람의 예상을 깨고 금메달을 땁니다. 그가 경주하기에 앞서 준비하고 있을 때 그의 손에는 마태복음 10장 32, 33절의 말씀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여러분, 거절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yes와 no의 한계를 분명히 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손해 보지 않고 더 큰 축복으로 이끄십니다. 거절하는 믿음이 정말 귀한 신앙입니다. 이런 귀한 믿음으로 날마다 승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선택하는 믿음입니다. 모세의 믿음에 있어서 거절하는 것이 믿음의 소극적인 측면이라면, 선택하는 것은 믿음의 적극적인 측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단순히 거절하기 위해 거절한 것이 아닙니다. 버리기 위해 버린 것이 아닙니다. 더 좋은 것을 선택하기 위해 거절한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에게서 배우는 뛰어난 믿음입니다. 믿음은 거절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믿음의 절정은 거절한 뒤 더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결단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성경은 모세의 거절과 함께 그의 탁월한 선택, 더 좋은 것의 선택을 강조합니다. 이것이 그의 믿음인 것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25절과 26절을 보십시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거절한 것에서 머물지 않고 더 좋은 것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탁월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그가 선택한 더 좋은 것이 무엇일까요? 본문은 그것을 두 가지로 강조합니다. 우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는 선택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선택입니다. 이 말은 곧 사탄이 아니라 하나님, 세상이 아니라 교회, 땅에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 지옥이 아니라 천국, 심판이 아니라 영생을 선택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더 좋은 것임을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 살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삶이 이 세상에서 낙을 누리는 것보다 그 어떤 것보다도 더욱 소중함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만일 모세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으면서,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물론 잠시 동안 부귀영화를 누리며, 애굽 왕 바로가 되었을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애굽 사람들로부터 숭배를 받고, 죽고 난 후에는 피라미드에 묻혔을 것입니다. 그의 육신은 미라가 되어 보관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영혼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져 고통을 당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믿음으로 바른 선택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기를 택했습니다.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는 이 길은 고난이 따라오고 어려움도 감수하는 좁은 길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하나님의 사람과 함께 받은 고난이란 말이 나오고, 그리스도를 위한 능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고난과 능욕 때문에 이 길에 대한 선택이 더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의 고난은 앞으로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히브리서 11장을 대하고 있는 성도들의 상황이 그랬습니다.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한마디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매일 매순간을 믿는다는 이유로 죽음과 삶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이런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믿음을 잃지 않고 세상보다 교회를, 세상보다 하나님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 길에는 분명 세상에서는 줄 수 없고 사람이 알 수 없는 더 좋은 그 무엇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선택한 더 좋은 것의 다른 하나는 상 주심을 바라보는 선택이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모세가 선택한 더 좋은 것이 지금이 아니라 장래였고,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고, 잠시가 아니라 영원한 것이고, 세상이 주는 자기상이 아니라, 위에서 주는 하늘의 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의 것이 있고, 장래의 일이 있으며, 현세의 것이 있고, 내세의 것이 있습니다. 잠시 잠깐의 것이 있고, 영원한 것이 있습니다. 모세가 선택한 더 좋은 것은 바로 장래요, 보이지 않는 것이요, 영원한 것이요, 하늘의 것입니다. 모세는 바로 그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의 이런 탁월한 선택으로 그는 세상에서만 아니라 영원한 세계에서 그의 이름이 더 영예를 얻었고,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았으며, 세상보다 더 크고 놀라운 권세를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앞서서 영국의 육상 선수 ‘에릭 리틀’을 소개했습니다. 주일이라는 이유 때문에 뛰기를 거절했던 그에게 하나님은 더 큰 영예로 갚아주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에릭도 모세와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단지 거절을 위한 거절을 했다면 그것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올림픽이 끝난 뒤, 다시 탁월한 선택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는 올림픽 경기로 국가적인 영웅이 되었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든 부귀와 영예를 버리고 선교를 위해 중국으로 떠납니다. 그는 유명선수의 화려한 명성이 중국의 무지한 농부 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에 비할 것이 못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12년 간 톈진에서 교사로 봉사하며 복음을 전했고, 그 후 7년 동안 산둥반도의 농촌 지역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 몇 년 간 1,800명의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일본군 치하 웨이시엔의 수용소에 갇혔습니다. 거기에서도 그는 많은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거기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그가 죽은 뒤에 함께 수용소에 있다가 나중에 풀려나 대학교수가 된 랭던 칼키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한 평생을 살면서 성자를 만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인생에는 성자를 만나는 복을 받았습니다. 에릭 리틀은 우리 가장 가까운 곁에 있었던 성자요, 하나님의 사람이요, 전도자요, 참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여러분, 분명 우리는 매순간순간 살면서 선택과 거절의 기로에 설 때가 있습니다. 결국 거절과 선택이 인생이요, 삶이요, 믿음입니다. 이제 거절할 것을 거절하시고, 선택할 것을 선택하십시오. 아쉬움이 있더라도 의심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선택한 더 좋은 것, 나의 하나님과 영원한 세계는 분명 나를 더 큰 영예와 축복의 길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모세와 같은 이 귀한 믿음으로 한 주간도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서해원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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