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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예수님

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요15:1~8)

by 【고동엽】 2022.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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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요15:1~8)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부유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영원히 부유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부유를 자기 홀로 누리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모하며 하나님께 속해 있는 모든 자들에게 자기의 부유를 주시되 풍성히 나누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가지신 부유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유하시기에 전혀 아쉬움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 자기의 부유를 주고 싶은 아쉬움으로 가득 찬 분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의 입술을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공급하기를 원하십니다. 병든 자에게는 치료를, 고통당하는 자에게는 해결을, 악한 영에 매인 자에게는 자유를, 죄인에게는 속죄의 은총으로 축복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지면 살아 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죽은 것과 같이, 이미 그는 죽은 사람과도 같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 자기가 가진 재산으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착각했지만 결국 잠시 후에 자기의 죽게 될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을 아셨기에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15: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지식에 동의하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부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생명이 없이는 인간은 도무지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기에 하나님께서는 자기 품속에 있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우리에게 주셔서 그 아들의 흘리신 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죄의 담을 헐어 버리시고 영원한 생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그분의 사랑과 능력으로, 그분의 최고의 부유를 가지고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 주저 없이 자기의 아들을 내놓으셨으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셨습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그가 그 돈으로 자기의 죽을병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는 건강에 대해 가난한 자요, 그 가난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문둥이를 깨끗케 하셨습니다. 이것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수없는 불치병에서 예수로 고침 받고, 이 세상의 어떤 의학이나 문명으로도 할 수 없는 것을 예수로 해결 받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우리의 영원한 부유인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사랑을 준 만큼, 투자한 만큼, 자기 목숨을 버린 만큼 그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자식이 잘 되는 것이 곧 부모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가 사랑하신 인간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큼, 사랑하신 만큼, 투자하신 만큼 신령한 행복의 작품을 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은혜 받았노라고 말하면서 하나님 앞에 내놓을 작품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실망하시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은혜를 받았노라는 간증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능력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그분이 주시는 힘으로 살려는 노력이며, 찬양하는 것은 그분이 주신 힘으로 살았다는 감사의 표현이니, 우리는 그분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돈과 명예만 있으면, 권세만 있으면 사는 줄로 알고 그것들을 얻기에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도 돈과 명예가 다인 줄로 알고 호화로이 연락하며 부족함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것이 행복의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육신이 끝나는 순간에 그 영혼이 음부의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 처해 보고서야 비로소 그것이 행복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비록 나사로는 병든 거지의 신세였지만 그래도 끝까지 예수께 붙어 있었기에 그 영혼은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고 하셨습니다. 떡은 육체에 필요하지만 우리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갑니다. 육신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지만물로 살아가고, 우리 영혼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공로, 그가 주신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 40-41절에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깨어서 기도하지 못한 제자들은 예수의 죽음 앞에 모두들 주님을 부인하고 떠나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가 기도하라면 기도하고, 전도하라면 전도하고, 충성하라면 충성해서 항상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의지에 동의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만이 어떤 환란과 핍박이 와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 견고한 삶
신앙생활은 주님을 내 안에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힘과 능력으로 살기 위해 힘쓰는 것입니다. 오직 영원한 나의 도움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예수만이 나의 힘이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기억 속에 나를 담아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도 주님께 나를 기억시키는 것이며, 우리의 찬양과 충성도 주님의 기억 속에 나를 담아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우리가 결코 잘나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내가 잘나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법을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명예욕으로 사용해서는 더더욱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요지부동하지 않는 확실한 믿음, 승리의 믿음, 주님께 잘했다고 칭찬받을 만큼의 믿음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가르쳐준 지식 말고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지식을 제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받은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집니다. 그래서 순교도 기쁨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수많은 핍박과 환란이 와도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 옳은 것을 믿기에 그 모든 핍박과 환란을 이겨냅니다. 바로 그 말씀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가 있고, 그 말씀 속에 생명이 있으며, 그 말씀 속에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다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책임지시니 그의 영육간의 삶이 얼마나 견고하겠습니까?

주님께 나를 기억시키자
요한복음 11장 11절에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죽은 나사로를 향해 잠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죽었지만 주님은 죽은 자를 깨울 능력이 있으시기에 잠들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무덤 문을 굴린 굴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고 말씀하실 때에 죽은 송장이 베를 동인 채로 걸어 나왔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죽은 송장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오직 나사로만이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죽음에서 깨어났습니다. 바로 주님이 나사로를 기억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전능자의 사랑을 받는 관심 속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병들었을 때에도 주님께서 기억하시면 그분의 능력으로 치료를 받습니다. 우리가 고통 당할 때도 우리가 주님의 기억 속에 있다면 그 고통의 문제는 반드시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돈 있다고 장담하지 마십시오. 똑똑하다고 장담하지 마십시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사건이 벌어질 때 당신이 가진 것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어찌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주님이 알아서 다 도와주실 텐데 뭘 걱정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부르짖으라고 했겠습니까? 주님을 내 안에 모셨다면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 제자들이 주님을 깨워 구원받았듯이, 불가능을 만났을 때 그분을 깨워 나의 불가능에 일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가 그분께 붙어 있는 자라면,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자라면 그분을 일하시게 해야 합니다.
무덤과 같은 암흑 속에서 문제를 가지고 고통당하는 자여!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이 시간 불가능의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전지하시고 전능하심이 여러분에게 체험으로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윤석전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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