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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맺어야 할 열매 (몬1:7-10)
제가 오래 전에 순천 남부교회 시무할 때 어느 교인이 감나무 묘목 여러 주를 선물로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품종이 좋은 감나무라서 잘 기르면 좋은 열매를 많이 딸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했지만 목사가 그 묘목을 심을 땅도 없고, 그렇다고 아까운 묘목을 버릴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 집에 묘목을 나눠준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묘목 한주를 그 당시 학생이었던 임애란 집사님에게 주면서 집에 가져가 심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감나무가 크게 자라서 맛있는 감을 많이 열리는 것을 보았고, 종종 심방을 가면 임애란 집사님의 어머니께서 '목사님이 주신 감나무가 저렇게 자라서 우리 식구들이 감을 해마다 잘 먹는다'고 하는 말을 했습니다. 나무는 좋은 자리에 심기워 지면 이렇게 열매를 잘 맺게 되는 것입니다. 시1:3절에 보면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의 축복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내가 주님의 정원에 심기운 나무가 틀림없다면 나에게서 열매가 맺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나에게서 바른 열매가 맺혀지고 있는지 오늘 본문의 말씀 속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선 빌레몬서라는 이 서신은 바울 사도가 빌레몬이라는 초대 교회 일꾼에게 쓴 편지입니다.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의 감독이었고, 네로 황제 박해 때 순교한 일꾼입니다. 편지를 쓴 이유는 오네시모라고 하는 한 노예 때문입니다. 바울이 감옥 속에서 만난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가 받아들여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바울의 사역을 곁에서 힘껏 도왔습니다. 그런데 그 오네시모라는 노예의 주인이 누구냐 하면 바로 빌레몬입니다. 오네시모는 그 집의 노예로 살다가 주인의 물건을 훔쳐서 달아난 죄인입니다. 오네시모의 생사여탈권은 아직도 빌레몬의 손에 있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이제 주님 안에서 자유인이 된 오네시모를 육신 적으로도 자유케 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아울러 자신도 남의 노예를 주인의 허락도 없이 빼앗아 쓰는 불명예로 책망 받을 이유가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주안에서 한 형제가 된 오네시모의 죄를 당신도 용서해 주지 않겠는가? 그를 노예가 아니라 한 형제로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하는 바울의 의도를 전달하는 것이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이것이 개인에게 보낸 서신 같지만 성경 안에 들어와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다른 사람들을 이렇게 용서하고 용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으로 인해 평생을 갚아도 갚을 수 없는 가장 큰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를 용서하고 안하고 그 자격조차 우리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내가 용서받은 것처럼 무조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뿐입니다. 이게 바로 빌레몬서가 우리에게 주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이런 전체적인 윤곽 속에서 오늘 본문을 보다 더 세밀하게 바라보며 성도로서의 삶의 열매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바울과 빌레몬의 모습 속에 성도인 내가 이루어야 할 열매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⑴,평안함의 열매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성도들에게 평안함을 안겨다 주고 있습니까? 7절에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빌레몬이라는 일꾼은 성도들의 마음속에 평안함을 안겨 주는 일꾼이었습니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서 교인들이 평안을 느끼고 누리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꾼입니까? 오늘같이 불안한 세상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갖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면서도 마음의 안정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빌레몬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기에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평안을 나눠주고 있었을까요?
그는 주님으로부터 날마다 위로를 받고 있었습니다. 주님께 위로를 받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주님께 위로 받고 사는 일꾼들은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맛보며 사는 성도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 평안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먼저는 내 믿음이 불안하지 않아야 합니다. 내가 불안한데 어떻게 남을 위로할 수 있고, 남에게 소망을 줄 수 있습니까?
바울 사도도 옥중에 갇혀 있으면서 기쁨을 나눠주고 있었지요?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나는 감옥 안에 있지만 너무나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감옥에 있는 것만 빼고는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와 같은 기쁨을 누리십시오"
어떻게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까? 독일의 한 음악가가 길을 걷다가 대성당에서 들려 오는 아름다운 오르간 연주를 한참 동안 듣더니 오르간을 연주하는 노인에게 다가가 부탁을 했습니다. “제가 한번 연주를 해볼 수는 없을까요”노인은 시큰둥한 표정으로“당신이 누구인 줄도 모르는데 이 소중한 오르간을 연주하게 한단 말이오”이 사람은 한번만 연주를 하게 해 달라고 거듭 당부했고 노인은 마지못해 자리를 내 주었습니다. 그가 오르간 앞에 앉자마자 장엄한 선율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대성당은 환희와 감동으로 가득 찼고, 그것은 마치 천사의 노래와 같았습니다. 감동 받은 노인이 눈물을 글썽이며“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라고 묻자,“나는 멘델스존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제가 대 음악가를 몰라보았군요”노인은 그의 손을 잡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진정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마음을 완전한 연주자인 성령 하나님께 맡기기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성령 님이 자유롭게 연주하시도록 여러분의 심령 전체를 맡겨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은 감격과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여러분의 삶을 바울 사도처럼 그리고 빌레몬처럼 성령 님의 손에 완전하게 맡겨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안에 있는 평안함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전달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⑵,영혼 구원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환경에서든지 영혼 구원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환경을 뛰어 넘어 주의 일 하는 일꾼입니까? 본문 9-10절에 보면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옥중에서도 사람을 건졌습니다. 바울 사도의 모습을 보십시오 옥중에서 오네시모를 만났습니다. 그를 복음으로 정복했습니다. 그를 주님의 제자 되게 하였습니다. 묶인 몸으로는 옥속에서, 자유의 몸일 때는 회당과 저자 거리에서 그곳이 어디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바울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의 사역은 환경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환경 때문에 위축된 적이 없습니다. 환경 때문에 멈춘 적이 없습니다. 쉰 적이 없습니다. 로마 감옥 속에서는 시위대 병사들에게 복음을 증거 했고, 매일매일 자기를 지키러 오는 그들을 완전한 복음의 포로가 되게 하였습니다.
여러분! 환경 탓하지 않아야 합니다. 환경 탓하지 맙시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그곳이 어디든지 있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힘있게 자라 나갑니다.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에 따라 흔들거리는 생명체는 아직 그 생존 자체가 부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몇 주 전에 러시아에 가서 선교활동을 하던 우리 나라 젊은 선교사 한분이 러시아 사람에 의해 칼에 찔려 현장에서 순교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에 가서 선교활동을 하는 선교사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 민족의 이민사는 그 자체가 선교의 역사였다고 합니다. 우리 교민들이 러시아 땅에 가서 살 때 약소국 국민이라서 힘이 없으니 각기 뿔뿔이 흩어지고 쫓겨 다니면서 땅을 개간하여 살아왔다고 합니다. 그들은 저 넓은 만주 벌판에 그리고 러시아 땅에서 살 만한 터전을 일구어 놓으면 국가가 그것을 빼앗고 강제로 이주시켜 버렸습니다. 그곳은 황량한 벌판이었고, 냉기의 땅이었습니다. 가진 것도 없이 농기구 하나 변변한 것 없이 저들은 동토의 땅을 다시 갈아엎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피눈물을 쏟아 가며 핍박을 받으며 쫓겨가는 곳마다 빼놓지 않고 세워진 것은 교회였다는 사실입니다. 이 민족이 스치고 지나간 곳에는 반드시 교회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였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민족의 선조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는가를 보십시오. 저들이 얼마나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했는가, 얼마나 살아 있는 신앙인들 이었는가를 보십시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문제가 많은 신앙 인들인가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 없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 처럼 우리도 환경을 개의치 않고 복음으로 구원하는 열매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한 주간 동안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해 봅시다. 그 사랑 때문에 환경을 뛰어넘어 영혼들을 건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진실한 교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⑶,영혼 사랑의 열매입니다.
영혼 사랑에 최선의 배려를 하고 있습니까? 남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세심한 배려를 다하고 있습니까? 8-9절에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담력을 가지고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 있으나 사랑을 인하여 도리어 간구하노니....' 라고 했습니다. 작은 자 하나라도 상처를 입을까 걱정하는 바울의 세심한 배려를 보십시오. 그는 자신의 교회 적인 위치에서 볼 때 이런 정도의 일은 그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하라 안하면 안된다" 단호하게 한 마디로 명령할 수 있는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에게 명령하지 않고 사랑으로 간구한다, 간청한다" 고 했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성숙한 주의 일꾼인가를 봅니다. 주안에서 마땅한 일이었지만 행여 라도 빌레몬의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섭섭한 앙금이 없도록 배려하는 바울의 목회 자적인 모습입니다.
여러분! 본래 바울은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었습니다. 한 때는 단호하기만 한 적도 있었습니다. 2차 전도 여행 때 마가 요한을 절대로 데리고 갈 수 없다고 바나바 앞에서 주장할 때는 서릿발이 설만큼 냉정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주님 안에서 연륜이 쌓이고 나서 달라진 모습을 보십시오. 인자한 노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섬김의 사람으로 변화된 것을 보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따뜻한 배려를 보게 됩니다.
여러분! 신앙 안에서 성숙한 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밖에 모르는 자가 남을 아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이익이 우선이던 자가 남을 배려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 앞에 겸손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평안을 가져다주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분쟁들을 보면 거의가 다 아주 조그만 마음의 상함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조그만 말의 상처로부터 시작됩니다. 조그만 무시로부터 섭섭한 일이 시작됩니다. 여기에 분노의 감정이 폭발하면 그것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릅니다.
성도들에게서 타올라야 하는 불길은 분노의 감정이 아니라 선교의 열정입니다. 타올라야 하는 선교의 열정은 이렇게 타오르지 아니하고 감정의 분노가 불길처럼 타올라서야 되겠습니까? 나의 생각 없이 턱턱 내뱉는 한 마디 때문에 깊은 상처를 받고 있는 교인들이 없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교회 일을 열심히 해도 말로 문제를 일으키는 교인은 목사를 돕는 게 아닙니다. 목사에게 힘든 일감만 안겨다 주는 것입니다. 이런 교인이 한 사람만 있어도 그 교회 안의 구석구석이 돌아가면서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목사는 또 얼마나 쫓아다니면서 치료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실제로 목회와는 상관없이 말에 상처받은 교인들을 위로하고 삭이게 하는데 불필요한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출혈하고 있는지 모르시죠? 우리는 다 말의 약점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의 이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일본의 한 마을에 아주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가난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사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게 맞은 편에 또 다른 가게가 문을 열었습니다. 그 새로 생긴 가게는 목이 좋은 길모퉁이에 있었고 버스 정류장 앞이라 자리가 월등하게 좋았기 때문에 가난한 부부에게는 치명적인 경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남편은 아내에게 물건을 사들이는 것을 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유인즉 새로 생긴 가게의 집은 애들도 많고 씀씀이가 우리보다 크니 그 가게가 우리보다 더 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손님이 오면 진지한 얼굴로 남편이 말하기를 "미안하지만 그 물건은 저쪽 가게에 가서 사세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남편의 말에 그대로 순종한 아내는 결국 줄어든 손님 때문에 여유가 생긴 시간에 문학적인 달란트를 발휘하여 많은 책을 쓰게 되었는데, 이 여인이 바로 빙점의 작가인 미우라 아야꼬입니다.
여러분! 내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의 분신과 같은 종이라면 나에게서도 이런 희생적인 사랑의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해야 합니다. 환경을 개의치 않고 영혼들을 구해야 합니다. 평안의 열매를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어야 합니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주님은 순간 순간 나에게 평안을 부어 주고 계십니다. 이 평안이 나의 삶 전체를 덮고 흘러 넘쳐서 내 곁의 사람에게로 흘러가야 합니다. 여러분! 나의 마음 바탕이 바울 처럼 빌레몬 처럼 성숙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도 용서하는 성숙한 종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이석권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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