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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제자

온전한 제자 (눅6:39-49)

by 【고동엽】 2022.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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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제자   (눅6:39-49)

   오늘 본문은 눅6:20부터 시작된 소위 예수님의 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앞선 20절에서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했듯이 이 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향하여 하신 설교였습니다.  이 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 부분은 참되고 영원한 행복이 무엇인가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면 우선 행복에 관한 생각부터 바뀌어야 함을 가르치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둘째 부분은 사랑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는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을 훨씬 뛰어넘는 사랑의 이해와 실천이 요구됨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 부분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제자로서의 책임을 바르게 감당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기성찰의 요점들을 주님께서 친히 일러주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제자로서의 책임을 바르게 감당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기성찰의 요점들을 살펴보기에 앞서 본문 속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주어진 책임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드신 것은 그저 예수님의 제자 되는 것으로 그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의 일에 쓰시기 위하여 제자들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우선 39절에서 예수님께서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물으신 것으로 보아 앞 못 보는 이들을 인도하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세상에서 영적으로 눈 먼 이들을 진리와 구원과 생명의 길로 이끄는 것입니다.

   그리고 40절의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하신 말씀을 통해서는 제자들을 만들고 그들을 선생과 같은 수준으로 성장시키는 책임을 주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다가 승천하실 때에도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하신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 42절 하반절에서 보는 대로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하신 말씀은 제자들에게 형제들이 안고 있는, 나아가서는 세상이 안고 있는 문제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해결을 도울 책임이 있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또 43-45절의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삶이 사람들에게 선하고 유익한 열매를 많이 맺으며 그 열매 맺는 삶의 본을 보여야 할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끝으로 46-49절에서의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먼저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써 튼튼한 믿음의 반석 위에 서야 하겠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할 책임을 받았음을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책임을 부여받은 제자들이 그 책임을 잘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어떤지를 스스로 점검해보기 위한 기준으로 예수님 자신이 제시해주신 것들이 무엇입니까?  다시 본문의 처음으로 돌아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이 말씀은 이 세상에서 영적으로 눈 먼 이들을 진리와 구원과 생명의 길로 인도해야 할 예수님의 제자들 자신이 먼저 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지 않는지를 살피라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제자들 자신이 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다면 자신들도 이미 구덩이에 빠져있는 것이며 이 세상 사람들을 구덩이에서 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은 구덩이에 빠지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구덩이는 발목이나 무릎 정도 빠지는 얕은 구덩이가 아닙니다.  빠지면 큰 재앙이 될 수밖에 없는 깊은 수렁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영적으로 눈 먼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생을 잘 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을 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는 선생을 닮기 때문입니다.  선생을 잘못 택하면 자기도 잘못되고 자기의 제자들까지 망치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참된 선생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다 본래 영적으로 눈 먼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고 그의 제자가 되고 그의 말씀만을 따라가는 것이 영적으로 눈을 뜨는 길이고 멸망의 구덩이에 빠지지 않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자기의 경험과 지식과 지혜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의 바른 도리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만이 온 세상을 살리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40절의 말씀은 앞선 절에서 말한, 우리가 따라야 할 참된 선생을 선택하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무슨 뜻이겠습니까?  여기서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다" 한 것은 무릇 제자란 절대로 선생보다 나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인류는 늘 퇴보를 거듭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선생보다 더 뛰어나는 제자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또 그것이 바람직한 일입니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다"는 말씀의 뜻은 선생이란 제자가 항상 하늘 같이 우러러보아야 할 존재라는 것입니다.  특히 책이 보편화되지 않았을 시절에는 배운다는 것은 선생을 만나 그를 우러러보며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을 따르고 그를 닮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요즘같이 그저 자기가 모르는 정보를 얻고 그 후에는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 도전하며 디디고 올라서기 위해서 선생을 택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가 선생을 우러러보고 그에게서 열심히 배우고 따라가다 보면 그 선생을 닮게 되고 그래서 그 선생과 같이 되는 법이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하신 말씀의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면 그저 겸손히 주님을 섬기며 그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예수님과 동등하게 되는 것은 아니나, 예수님께서 원하시고 인정하실만한 제자가 되어서 사람들을 바르게 인도하는 선생이 될 수 있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갖는 책임의 하나는 또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는 것입니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뺀다는 것은 형제들이 안고 있는 약점이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해결을 돕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려면 먼저 그 형제에게 그의 눈에 티가 있음을 깨우쳐주고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게 해주며 그것을 빼려는 뜻을 갖게 해주어야 합니다.  남의 눈에 있는 티를 그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눈에 티가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티를 빼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갖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티를 빼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눈이 밝아야 합니다.  자기 눈에는 들보가 있어서 제대로 보지도 못하면서 남의 눈에 있는 세밀한 것을 어찌 뺄 수 있다는 말이냐는 것입니다.  그 작은 티를 빼겠다고 나서다가 오히려 남의 눈만 다치게 하거나 실명시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의 눈의 티를 빼려 한다면 자기 눈부터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공동체의 형제자매뿐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의 영적인 결함과 믿음의 연약함을 치유하고 돌보도록 책임을 맡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먼저 자신들의 영적 결함과 믿음의 부족함을 세심하게 살피고 이를 고치며 더 깊은 믿음 갖기를 항상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남의 약점과 어려움도 보다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42절 하반절에서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하신 말씀의 뜻이 그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영적으로 결함이 많고 믿음에 문제가 많으면 남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지 못할 것이며 그 해결의 능력은 더더욱 없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눈의 티와 들보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람들을 영적으로 치유하고 돌볼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자신들이 먼저 흠이 없어야 할 것을 말씀하신 주님께서는 거기서 더 나아가 제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선한 열매를 맺기를 요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라 하는 나 자신이 영적으로 눈 멀어있는 것은 아닌지, 나 자신이 더 큰 약점과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돌아보라 하신 주님은 이어서 주님의 제자라 하는 나 자신은 과연 얼마나 좋은 열매를 많이 맺고 있는지, 나 자신은 막상 영적으로 무화과 대신 가시를 내고 포도 대신 찔레를 내는 악하고 해로운 존재는 아닌지, 과연 내가 예수님의 제자라 할 수 있는지를 통렬히 반성할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43-45절입니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남에게 선한 열매를 맺으라고 가르치기 전에 자신이 먼저 그 마음 속에 선을 쌓고 입으로, 삶으로 선한 열매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무화과나 포도처럼 유익하고 고마운 존재들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앞서는 27-38절, 즉 예수님의 의 둘째 큰 부분의 주제는 사랑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에 이어지는 오늘 본문은 그 사랑을 실천하는 실제적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자기 자신을 먼저 냉철히 살피는 것은 누구에게 사랑을 베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일입니다.  내가 과연 이 사람을 바른 진리와 구원과 생명에로 인도할 수 있을 만큼 영적으로 눈을 뜬 사람인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으로 인도한다 하면서 사람을 오히려 구덩이에 빠뜨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이 많은 허물과 문제를 갖고 있으면 남의 약함과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하다가 더 나쁜 결과와 불행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먼저 의와 선을 힘쓰지 않고 말과 행실이 거칠고 악하면서 남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나서봐야 상처와 아픔을 줄 뿐입니다.  무화과를 준다며 가시를 주고 포도를 준다며 찔레를 주는 결과밖에는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정말 누구를 사랑하려면 자신이 먼저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할 것을 우리 주님께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46-49절의 말씀은 오늘 본문 전체를 결론지으며 또  전체를 결론짓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남들을 인도하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그들에게 선을 베풀며 사랑을 실천하는 책임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기 위한 확실한 방법은 무엇인가, 달리 말하면 주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기 위한 길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바로 46-49절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 요점은 예수님의 제자란 예수님께 나아와 그의 말씀을 듣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의 참 제자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잠시 제자처럼 보이지만 곧 그 정체가 드러나는 가짜 제자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으면서 제자 행세하는 자처럼 어리석은 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의 참되고 온전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또 그대로 힘껏 행하는 것보다 더 지혜로운 방법도 없다는 것입니다.  참되고 영원한 행복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의 사랑을 뛰어넘는 사랑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써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눈을 뜨는 것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위한 참 선생이 되는 것도 오직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써 가능한 일입니다.  사람들에게 무화과와 포도를 주듯이 선하고 유익한 삶의 열매를 맺는 일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써 실현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 진정 선을 쌓는 일이야말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은 우리 개개인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를 향해서 귀중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바르게 감당하는 교회로 거듭나기 위한 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이 사회를 인도한다 하면서 오히려 구덩이에 빠지게 하지 않기 위해서 영적으로 크게 눈을 떠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오직 주님의 말씀만을 듣고 전하고 가르치고 행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사회의 불의와 부조리를 제거하겠다고 나서기 전에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온갖 허물과 부끄러운 문제들을 먼저 하루 속히 척결해야 할 것입니다.  이 사회의 문제들을 보다 밝히 알기 위해서 한국교회의 영안이 먼저 맑아져야 할 것입니다.  이 사회에 만연하고 넘쳐흐르는 악의 소산들을 탓하기보다 한국교회가 선과 의의 열매들을 더 많이 쏟아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교회가 먼저 안에서부터 선과 의의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우며 가꾸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위에 확고히 섰는지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입으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외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삶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온갖 세상적인 잡소리를 반복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 시대에 대언하고 전하는 교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어떤 환경의 변화와 위기와 불안과 세속의 탁류 속에서도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는 교회로 우뚝 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주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고 이 시대를 지키는 지혜자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바르게 감당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한국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출처/이수영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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