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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유

자유케하시는 주님 (갈5:1,13)

by 【고동엽】 2022.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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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케하시는 주님  (갈5:1,13)

이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네 가지 자유를 말합니다. 첫째는 "기아에서의 자유" 입니다. 유엔 식량기구의 통계에 의하면 지구촌 곳곳에서 먹지 못해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이 1분에 28명이랍니다. 둘째는 "질병에서의 자유" 로 건강하게 살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전쟁과 자연재해의 공격으로부터 자유" 를 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정치적 억압에서의 자유" 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네 가지 자유보다 더 중요한 자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자유입니다. 우리에게 정치적인, 사회적인 자유가 주어진다 할지라도 영적으로 자유하지 못한다면 결코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불행하게도 영적인 자유를 빼앗긴 채 태어납니다.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의 주권을 상징하는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께 버림받아 쫓겨난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부터 아담의 후손들은 죄의 노예가 되어 살아갑니다. 돈의 노예가 되어 의리도 버리고 건강도 포기합니다. 권력의 노예가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화투만 보면 빠져드는 도박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건강에 나쁜 것을 알면서도 끊지 못하고 담배와 술과 마약의 노예가 되어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원망의 노예, 미움의 노예, 불평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무엇인가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도바울은 본문 1절에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우리로 하여금 자유로운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주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더 이상 종의 멍에에 매여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습니까?


첫째로, 자유를 주시는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앤드류는 성경을 공산 세계로 밀수하는 일을 하였던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가 젊은 시절 네덜란드 군인으로 인도네시아에 주둔 할 때 원숭이 한 마리를 길렀습니다. 원숭이에게 '기본' 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가족처럼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기본이는 목 근처에 손을 대기만 하면 기겁을 하고 도망을 칩니다.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기본이가 새끼였을 때 목을 묶었다가 풀어주지 않고 그냥 둔 철사가 목에 걸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기본이의 몸이 커지면서 철사가 살 속으로 파고들어 목을 조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앤드류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원숭이의 목에 걸려있는 철사를 간신히 제거했습니다. 기본이는 피를 흘리며 고생을 했지만 고통이 없어진 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기뻐했습니다. 앤드류는 그의 책 '하나님의 밀수꾼' 에서 "기본이와 나는 하나가 되었다. 아픔에서 풀어준 일은 그와 나를 묶는 사랑의 끈이 되었다." 고 말합니다.

우리가 가질 만큼 가지고도 이 땅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죄악의 줄이 우리 목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항상 묶여 있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옭아매고 있는 마귀의 사슬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우리 목에 걸려 있는 죄악의 줄을 제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죄의 사슬을 끊어버리기 위해 피 흘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36절은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의 복음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많은 돈도, 이성적인 사랑도, 높은 자리와 엄청난 권력도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영접할 때, 주께서 주시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만이 참된 해방자 이십니다. 부디 모든 저주와 질병, 두려움과 마귀의 권세로부터 자유를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자유케하는 말씀 안에 거해야 합니다.

폴 마이어가 쓴 '코끼리 훈련법' 이란 책의 내용입니다. 서커스단에서 코끼리를 길들인 후 여러 가지 재주를 부리게 합니다. 무거운 물건을 코로 들어 옮기기도 하고, 조그마한 기둥 위에 올라가 앞 발 들고 서서 조련사가 지시하는 대로 묘기를 부립니다. 그런데 코끼리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어릴 때부터의 훈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어린 코끼리를 말뚝에 단단한 밧줄로 묶어 놓습니다. 코끼리는 그 말뚝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단단한 밧줄에 묶여 있기 때문에 소용이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코끼리의 머리 속에 "나는 말뚝에 매인 줄로 꼼짝 못한다. 아무리 몸부림 쳐보아야 소용이 없다. 가만히 있는 것이 좋다" 라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됩니다. 그 후 시간이 지나면서 조련사는 계속해서 말뚝을 작게 하고 밧줄을 가늘게 합니다. 나중에는 성냥개비 만한 말뚝에 실오라기 같은 줄로 바꾸어 놓아도 코끼리는 그것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코끼리는 자신의 코로 1톤 이상의 무게가 나가는 물건들을 쉽게 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얌전하게 조련사의 지시에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같이 어리석은 코끼리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아 자유인이 되었음에도 여러 가지 것에 묶여서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까? 예수를 믿음으로 마귀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음에도 여전히 묶여 사는 것은 아닙니까?

예수께서 요한복음 8장 31-32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가 자유케 합니다.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니 예수께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을 때 사용하셨던 중요한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말씀의 무기입니다. 사탄이 시험을 하면 예수께서는 "기록 된 바" 라고 하시며 말씀으로 대적하셨습니다. 기도는 나를 이기는 힘이 있는 반면에 말씀은 세상을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말씀 안에 거할 때, 말씀으로 무장할 때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묵상하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할 때에 우리의 길이 평탄하게 되고 우리의 삶이 자유하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해야 합니다

링컨 대통령이 미국을 다스릴 때 흑인 노예들이 고통을 많이 당했습니다. 주인이 하라는 일을 다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흑인 노예들은 피 흘리도록 채찍에 맞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백인 교수가 매맞는 흑인 노예를 보고 몇 배의 값을 치루고 산 후 데려다가 돌보아 주었습니다. 흑인 노예가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하자 백인 교수는 말합니다. "내가 값을 치루었으니 당신은 노예가 아니고 자유인이 되었소. 이제는 돌아가 자유인으로 사시오." 그때 흑인 노예는 눈물을 흘리며 "선생님은 악한 주인의 손에서 나를 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제 자유인으로 당신을 섬기게 허락해주십시오" 라고 사정합니다. 결국 흑인은 종으로서가 아닌 자유인이 되어 사랑으로 주인을 섬기게 됩니다.

이미 자유의 몸인 된 흑인 노예가 사랑으로 섬기는 것처럼, 예수 믿고 자유를 얻은 우리도 자발적으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본문 13절에 "서로 종노릇하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서로 종노릇하라는 뜻입니다. 물론 누구의 종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섬기는 것보다 섬김 받는 것만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섬기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죽으시기 전날 밤에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당시 발을 씻어주는 일은 종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친히 종이 되어 섬김의 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종노릇하고 삽니까? 아니면 종을 부리는 주인의 행세를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종이 되라고 요구만 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스스로 종이 되어 다른 사람을 섬기고 있습니까?

미국 메사추세츠에서 열린 무디 선생의 성경수양회에 영국의 귀족들이 방문하여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영국에서는 손님이 오면 종이 밤새도록 손님의 구두를 닦아 놓는 풍습이 있었는데, 무디 선생의 제자들 사이에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결론은 '여기는 미국이니까 손님들의 구두를 닦지 말자' 입니다. 그런데 한 제자가 이 이야기를 무디에게 전하면서 그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무디는 빙그레 웃으며, "글쎄, 주님께 물어볼까?" 하더랍니다. 이튿날 아침, 영국의 귀족들이 일어났을 때 그들의 구두는 모두 깨끗하게 닦여져 있었다고 합니다. 무디 선생이 밤새도록 닦아 놓았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그의 저서 '기독교인의 자유' 에서 "기독교인은 모든 것 위에 서 있는 자유로운 군주로서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기독교인은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봉사하고 종으로서 누구에게도 예속한다" 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자유자인 동시에 종입니다. 죄와 율법과 사망에 대해서는 자유자지만 사랑과 의와 복음과 그리스도를 위해서는 종인 것입니다. 선을 위하여 내 육신의 자유를 버리며, 사랑을 위하여 내 미움을 버리며, 의를 위하여 내 생명을 버릴 줄 아는 사람이 참 자유자입니다. 진리의 종이 될 때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본문 13절 이하에 말씀하십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망하는 것은 쉽습니다. 서로 물고 찢고 먹으면 피차에 망합니다. 그러므로 피차에 망할 일을 하지말고, 부디 서로 종노릇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랑으로 종노릇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은 사람답게 말씀 안에 거하며 피차에 종노릇하여 자유케 하시는 예수를 진정으로 섬기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김광일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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