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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인생

인생을 풀어가는 두 가지 열쇠 (창세기 50:15 ~ 21)

by 【고동엽】 2022.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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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풀어가는 두 가지 열쇠  (창세기 50:15 ~ 21)


누가 일을 잘 한다고 할 때에는 대략 몇 가지 특징들이 있습니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일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힘이 있다고 해서 자물쇠를 힘으로 열지 않습니다. 열쇠로 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힘으로 할 일이 있고, 지식으로 할 일이 있고, 물질로 할 일이 있고, 기도로 할 일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일의 성격과 흐름을 압니다. 당장 급한 문제를 메꾸는데 급급하지 않고 전체의 모양과 흐름을 거스르지 않습니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일의 중심이 무엇이고, 그 키를 누가 쥐고 있는지를 잘 압니다. 그래서 엉뚱한 곳에 힘을 쓰지 않습니다. 정확한 곳에 자기의 모든 것을 집중할 줄 압니다. 우리의 인생이라고 해서 우리가 중심이 되거나 우리가 키를 갔고 있다고 봐서는 안됩니다. 물론 나의 결정과 선택에 의해서 많은 변화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중심과 키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무수한 경험들을 올바로 이해하는 동시에,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있어서 감당해야 할 많은 것들을 대비할 방법이 필요합니다. 야곱의 사랑받는 아들로서 애굽에 노예로 팔렸다가 온갖 고난 끝에 총리까지 이르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룬 요셉의 생애를 통하여 이 열쇠를 찾고자 합니다.


1.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 인생의 키를 갖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여기에는 몇 가지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인생을 부분적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봐야 합니다.
이 말을 달리하면 인생의 흐름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방향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영화를 볼 때 처음에 본다면 여러 가지 사건들과 장면들, 대화들이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는지 이해를 잘 못 할 때가 있습니다. 그저 주인공에 집중하여 일이 잘 되어 가면 좋 고, 상황이 애매해지면 안타까워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같은 영화를 두 번 보고, 세 번 보면 이해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지금 왜 이 사건이 일어나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압니 다. 그리고 대사 하나 하나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감독이 이 영화의 흐름을 어 떻게 이끌어 가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볼 때는 안타까워하던 장면이 나와도 태연합니다. 주인공이 위기에서 무사히 구해질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악인들이 날 뛰 어도 그렇게 분하지 않습니다. 그 결말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들은 지금 내가 겪는 상황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여유 있게 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시간을 초월하시기에 우리의 과거도 아시고, 우리의 미래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를 갖는 사람들은 어 떤 상황이 와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이해하지 못할 지라도 하 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인생을 길게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인생을 하나하나 끊어서 보지 않 고, 그것을 연결해서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상의 방법은 참으로 안타까웠습 니다. 형들에 의해 죽을 뻔 했던 고비에서 노예로 팔리고, 노예에서 성 추행범으로 몰 리고, 감옥에서 믿었던 사람에게 잊혀지는 배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과정은 안타깝지만 그 상황이 점차로 재미있게 이어집니다. 가나안 땅에 살던 요셉이 애굽으로 옮겨집니다. 그것도 애굽의 높은 권력의 집안의 노예가 됩니다. 비록 억울한 누명을 쓰 지만, 이상하게도 시위대 감옥에 갇혀서 거기에서 많은 정치인들과 권력자들과 만나서 자연스레 정치를 배우기도 합니다. 감옥에서 도와주었던 왕의 신하들이 2년간이나 그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요셉이 총리가 되는 나이 30세를 정확히 맞춰주는 타이밍이 되 었습니다. 이것을 다시 보면 가나안 땅에 있던 17세의 평범한 소년이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장소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기묘하게 맞아들어 간다는 것입 니다. 그래서 그 사건들을 하나하나 따로 보면 너무나 어이없는 일들이지만, 길게 연결 하여 보면 필요하게 쓰이는 과정들로 하나님이 섭리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우리에게도 길게 보는 시야가 필요합니다. 내가 당했던 많은 일들을 하나씩 떼어서 보 면 상처가 더 많아집니다. 나를 괴롭게 했던 사람들이 용서가 안되기도 하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이해가 안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들을 길게 봐야 합니다. 그 상황 에서 내가 어떻게 변했습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이 었습니까? 내가 잃은 것도 있지만, 그 잃은 자리에 하나님이 대신 채워주신 것은 무엇입 니까? 그리고 그 상황들의 경험이 오늘 나에게 어떤 은혜의 흔적으로 남습니까? 혹시 그 당시에는 내가 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인생이 흘러가는 흐름 과 방향이 뭔가 그려지지는 않으십니까? 그래서 내 남은 생애에 뭔가 해야 할 일들이 무 엇이고, 내가 살아가야 할 자세와 원칙이 정리되지는 않으십니까?

우리는 어떤 일들을 자세히도 봐야 하지만, 길게 보는 훈련도 해야 합니다. 부분적으로 정확히도 봐야 하지만, 전체를 보지 못하면 일을 그르치는 경우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나 자신도 건강, 물질, 영성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봐야 합니다. 우리 교회도 종합적으로 봐야 합니다. 어느 한 부서, 기관에 얽매이면 안됩니다. 부분도 보지만, 전체를 먼저 봐 야 합니다. 현재도 보지만 미래를 봐야 합니다. 한국을 보는 동시에 세계를 봐야 합니다. 온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며, 모든 시간을 영원히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분별하고 순종하는 자들은 이와 같이 길게, 넓게 연결하여 보는 지혜가 무엇보다 필요한 것입니 다.

둘째로, 모든 상황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해야 합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을 때에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 셉은 ‘내가 하나님께 죄를 범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그를 떠나지 아니하심을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기7:19에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나의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하 였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 순간도 우리를 놓치지 않으십니다. 선지자 요나는 물고기 뱃 속에 들어갔을 때 거기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매 맞고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거기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할 때에 옥문이 열리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살아있는 영성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기에 아무렇게나 살 수 없습니다. 말 한 마디도 신중하고 정확히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기에 결코 두려울 수 없습니다. 어떤 상황보다 도 하나님의 능력은 더 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기에 나를 자랑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끼리 비교할 때에는 그래도 나를 괜찮게 여겼지만, 하나님 앞에 설 때 나는 아무 것도 아니요, 내 부족함과 거룩치 못함이 나를 깊이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어 역사하십니다.
창50:20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보통 나쁜 일이 아니었습니 다. 그저 돈 몇 푼 손해를 입히거나 잠시 오해를 받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당 할 수 있는 모든 극도의 경험을 다 당합니다. 어릴 때는 일찍 어머님을 잃었습니다. 형 제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죽지는 않았 지만, 죽음의 공포는 이미 경험한 것입니다. 그리고 노예로 팔려가는 인신매매의 견딜 수 없는 모욕과 수치를 당합니다. 상황이 좀 나아지나 했는데, 주인의 아내로부터 유혹 을 받고, 믿음으로 거절했더니 보상이 아니라 오히려 무서운 감옥에 들어갑니다. 그동안 쌓았던 공든 탑이 무너지는 듯한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아무 죄도 없이 죄인의 신세 가 되는 억울함도 큽니다. 감옥에서도 왕의 신하의 꿈을 풀이해주고는 곧 의리 있는 선 처를 바랐지만, 그 신하들은 잊어버리고 있었기에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도 들었습 니다.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최고의 감정을 다 당하며, 계속 꼬여만 가는 상황의 연 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결말에 보니 다 필요한 과정들로 사용되었습니다. 형들이 팔아주었기에 애굽으로 가게 되었고, 보디발의 아내가 자신을 모함하여 마침 왕 의 시위대 감옥에 넣어주어서 거기에서 정치와 식견을 배우게 되었고, 왕의 신하들이 까 마득히 잊고 있었기에 나중에 요셉이 총리가 되는 나이까지 연결되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 2년 동안의 잊혀짐이 아니었으면 요셉은 감옥에서는 일찍 나왔을지라도 총리가 되는 일에 차질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30세의 나이가 되어야 공직에 이를 수 있 는데, 그 때가 나이 30세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형들이 팔지 않았으면 요셉의 아버 지 야곱이 자비로 애굽으로 유학을 보내줬을까요? 보디발의 아내가 모함을 하지 않았으 면 무슨 죄목으로 왕의 시위대 감옥에 갔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시키셨다고 보지는 않지만, 그 일들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잠언16:9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 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라고 하였고, 로마서8:28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 라.’고 하였습니다.

넷째로, 모든 일의 판단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창세기50:19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자기가 함부로 형들을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맡겼던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며 순종할 책임만 있을 뿐이며, 판단할 권리는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함부로 판단할 수 없습니까? 아직 상황이 끝난 것이 아니라, 진행 중이기 때 문입니다. 이미 1년 전에 끝난 사건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며, 언제 다시 역전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완전하지 않으므로 우리가 판단할 능 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법대를 나왔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함부로 죄를 정할 수 없습니 다. 국가로부터 부여 받은 일정한 권한이 있어야 사람을 판결할 수 있습니다. 그와 같 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고 느낄 수 있는 지혜는 주셨지만, 판단할 권한은 주시지 않았 다는 것입니다. 그 자체로 완전하시며 모든 것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만이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말 할 때에도 내 생각을 절대적으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 더 좋겠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더 맞다고 본다’라고 해야 합니 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여지를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결국에 모든 것을 판단하 신다는 사실을 전제로 해야 실수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2.원수까지도 용납하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제 인생을 풀어가는 또 한 가지 요소는 사랑입니다. 즉 원수까지도 용납하는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에도 몇 가지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사랑은 모든 것을 온전하게 매는 띠입니다.
골로새서3:13-14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 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 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 하라. 이는 온전 하게 매는 띠니라.’
아무리 많은 물건을 실었다 하더라도 단단히 묶지 않으면 움직일 때 물건이 쏟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이 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단단히 묶는 것입니다. 구슬이 서 말 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온전하게 묶어주는 끈이 필 요한데,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무엇을 하든 그 모든 영적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모든 일의 시작인 동시에 모든 일의 완성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요셉이 보여주는 형들에 대한 용서는 사랑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비록 형들은 요 셉을 미워했지만, 요셉은 형들을 사랑합니다. 이것이 요셉의 위대한 점입니다. 요셉은 지혜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또 유혹을 받아도 이길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는 어디에서나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꿰어져서 아름다 운 열매로 나타나는 비결은 그의 사랑 때문입니다. 만약 요셉이 형들을 진정 사랑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그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를 그토록 사용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역사에 반드시 사랑을 사용하십니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 다.
수술을 하려고 할 때 먼저 마취가 잘 되어야 합니다. 분명히 해로운 것을 제거하는 것 이 중요하지만, 만약 마취를 하지 않고 수술하면 그 자체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가 무엇을 바로 잡으려고 하거나 공의를 세운다고 하지만, 사랑이 없다면 그 사랑 없음 으로 또 다른 불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취 없는 수술을 고통스러워 견딜 수 없듯이 사랑 없는 정의를 사람은 견디지 못합니다. 또한 좋은 음식을 먹을지라도 마음 이 편하지 못하면 그 음식이 유익보다는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의 관계가 유지되 어야 진정 원하는 유익한 열매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사람을 주목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요셉이 형들을 기꺼이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사랑도 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 문입니다. 모든 역사의 흐름 속에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알고 있습니다. 형 들이 행한 일만 보지 않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 이 행했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주님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공중의 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렇게 하도록 조장하셨다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계시다는 것과, 모든 것이 하나님의 권능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통제하래 있을 때에 허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너무 주목하지 않아야 합니 다. 그 상황들이 잊혀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한 사실 속에서 그 사람을 보지 마시고, 그 중에서도 나를 위로하시고, 내 갈 길을 인도하시고, 내 영성을 이끌어주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악을 선으로 바꾸어주 신 사실을 바라볼 때에 사람의 허물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형제를 통해 억울할 때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 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억울한 일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고난은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죄를 위한 고난이었습니다. 십자 가의 주님은 그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셨습니다. 고난의 주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 나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것입니 다.

셋째로, 구한 것보다 더 많이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셉은 형들의 죄를 용서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의 모든 삶을 책 임지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형들이 먼저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 먼저 베푸는 것 입니다. 마치 우리가 주님께 미처 다 구하지 못한 것 까지도 미리 아셔서 채워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죄인으로서 은혜의 필요성도 알지 못하고 구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의 죄 값을 치루시고, 영원한 생명까지 주신 것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 사랑은 구하기 전에 먼저 주어야 합니다. 구 한 것보다 더 풍성히 주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마5:40-42에서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 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정작 필요한데 말하지 못한 부분까지도 먼저 챙겨주며 사랑하라는 것입 니다. 심지어 원수까지라도 그 사랑의 범위를 넓히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5:44에는 ‘나 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였고, 로마서12:20에는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 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원수에 대한 승리의 비결은 보복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더 많이 사랑하면 더 크게 이기는 것입니다. 진정 한 사랑의 열매를 이루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인생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흐름을 잡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의 원칙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삶을 깊이 돌아봐야 합니다. 너무 어렵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주님의 사랑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를 채워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미래가 무엇에 의해서 달라질 수 있는지 아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십자가의 사랑, 이 두 가지의 열쇠로 우리 인생의 문제를 풀어주시는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승리하시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신현규 목사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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