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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사명

사명으로 삽시다 (행 20:22-28)

by 【고동엽】 2022.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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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으로 삽시다   (행 20:22-28)


타임지가 미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을 선정했는데 그중에 1위는 세상에서 가장 부자로 살고 있는 빌 게이츠도 아니고 클린턴 전(前) 대통령도 아니고 부시 현(現) 대통령도 아니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Oprah Gail Winfrey) 라는 여성 토크진행자였습니다.

그녀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시청자가 어림잡아서 천만 명이 넘습니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미국사람은 감동을 합니다. 그녀가 가난한 보육원을 방문하여서 그곳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10초만 이야기하면 다음날 수십억의 기부금이 들어옵니다. 그녀가 어느 책을 읽었다고 하는 말 한마디만 하면 다음날 그 책은 미국의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그녀의 이런 영향력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요. 그녀의 자서전 ‘이것이 사명이다’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윈프리의 네 가지 인생철학이 있습니다. 첫째는 남보다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둘째 남보다 아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픔을 겪는 사람에게 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남보다 설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네 번째 남보다 부담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강요가 아니라 사명이다.’

그녀는 혼혈아로 태어나서 가난과 아픔 속에 자랐지마는 혼자 공부하면서 성경의 모세를 통해서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내게 부유함이 있다면, 내게 아픔이 있다면, 내게 설렘이 있다면, 내게 어떤 일에 부담이 있다면 그것도 사명으로 받아들인 그녀의 인생이 오늘의 그녀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남보다 더 많이 가졌습니까? 하나님께서 남 도우라고 내게 맡겨주신 사명임을 알아야 됩니다. 몸과 마음에 아픔이 있습니까?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고통 하는 사람을 돕기 위해서 주시는 사명임을 알아야 됩니다.

어떤 설렘과 꿈이 있습니까? 그것도 나의 사명입니다. 어떤 부담감을 가지고 있습니까? 남을 도와주어야겠다, 교회에 좀 더 봉사해야겠다, 직분을 감당해야겠다, 그런 부담감이 있는 것은 피할 것이 아니고 그것이 나의 사명임을 깨달아야 됩니다.
나는 지금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윈프리와 같이 내 모든 삶의 영역(領域)을 볼 때 아, 이것이 나의 사명이구나 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아니면 되는대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 자신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대학시절인 22살 때에 그의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온 세계가 다 무너져도 내가 붙들고 놓을 수 없는 진리, 내가 그것을 위해서 살고 그것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진리를 나는 발견해야 한다. 그것이 나의 주체적인 진리요, 실존적인 진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사명(使命)이 뭡니까? 사명은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바쳐서 하라고 명령하시는 일, 그것이 사명입니다. 내가 그것을 위해서 태어났고, 그것을 위해서 살아가고, 그것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그것이 나의 사명인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생명을 바쳐서 하라고 하시는 일이 뭡니까?
내가 그것을 위해서 태어났고, 내가 그것을 위해서 살고, 그것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그것이 오늘 나에게 무엇입니까?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자식을 위해서 살아간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은 부모의 사명 중에 하나입니다. 또 직장에 가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것도 가장의 사명입니다. 사회에서, 국가적인 입장에서 해야 될 이런 저런 사명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우리의 사명은 아닙니다. 자식을 위해서 돈벌고,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투자하고, 자식을 위해서 기러기 아빠가 되고, 자식을 위해서 이민도 가고, 자식을 위해서 못할 것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물론 자식을 잘 키워야 되겠지마는 그러나 자식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너 자식 잘 키워서 하버드 대학에 보낼 만큼 잘 키웠구나. 너 자녀 잘 키워서 재벌로 키웠구나. 참 잘 했구나.’ 하고 하나님께서 칭찬하실 것 같습니까?
자식은 목적은 아닙니다. 자식 키우는 것이 사명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가장 큰 사명을 위해서 주시는 수단적인 사명입니다. 만약에 자식이 우리의 목적이 되고 사명이 되면 그 자식은 우상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참 사명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우리 모두는 사명적인 존재입니다.

이 세상에는 50만 종류의 식물이 존재합니다. 20만 정도의 동물이 살고 있는데 사명 없이 존재하는 동식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나름대로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잡초(雜草)라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그것이 꼭 있어야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고 사명을 주셨는데 아담과 하와는 이 사명을 감당하기 전에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노아에게는 방주를 만들어서 생명을 이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복의 근원이 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세상 여러 나라들 가운데 제사장 나라가 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사명을 주셔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명을 너무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인자의 온 것은...>하고 내가 왜 이 땅에 와서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을 힘주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고 많은 사람을 위해서 대속물(代贖物)로 내 생명을 주어서 그들의 잃어버린 영혼을 되찾기 위해서 왔다>고 하셨습니다. 영혼구원이 바로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더 풍성한 영혼이 될 수 있도록 가난한 자에게 기름을 부어서 복음을 전해서 포로 된 자를 자유케 하고 눈 먼 자를 보게 하고 억눌린 자를 해방케 해서 희년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로 살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만왕의 왕 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빌라도가 물었습니다. “네가 왕이냐?” 그러니까 예수님은 “그렇다. 내가 왕이다. 이를 위해서 내가 왔고 이를 위해서 내가 존재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 모든 성도들의 왕이 되시기 위해서, 주가 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목적을 가지고 사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삶은 한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셨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에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네가 제자가 되고 또 다른 사람을 전도하여서 그 사람을 제자 만들어서 계속 제자를 생산해 내라는 것이 교회에 주신 사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명을 발견한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 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 사명은 바울에게만 주신 사명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사명입니다. 이 귀한 사명을 다시 한번 발견하고 잘 감당하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사명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사실 사명은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사도 바울도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라고 했습니다. 사명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라고 하신 명령이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은 내가 고안해 내고, 내가 명상해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이요, 일입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결박하기 위해서 가다가 오히려 예수님을 만나고 사명을 받습니다. <너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받습니다. 바울은 이때 받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일평생동안 달려갑니다. 그것이 그의 목표였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죽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사명입니다.

김활란 박사는 미션스쿨인 이화학당에서 늘 예배를 드리며 성경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가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3일 동안 금식하면서 “하나님, 살아계시면 제게 말씀하시고 보여주시고 증거를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제가 하나님을 믿을 수 없겠습니다.”하고 식음을 전폐하고 3일 동안 매달렸습니다.
3일째 새벽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활란아, 너는 지금 한국의 울부짖는 여성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한국여성의 교육과 계몽을 위해서 너 일할 수 없느냐?”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래서 그 사명을 위해서 시집도 가지 않고, 시집갈 시간도 없이 일평생 동안 살다 간 위대한 여성교육과 계몽의 선각자 아닙니까?  

사명은 내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 마이크는 마이크 자신이 사명을 몰라요. 사람이 마이크에 대한 사명을 주기 때문에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시지 않으셨다면 자신의 사명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한번 찾아보세요. 그 사명을 발견하기 위해서 기도해 보세요. 그래서 그 사명을 붙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살고 그것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사명에 헌신하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위대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명을 깨닫고 받고 발견한 사람들입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바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목표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후회하지 아니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3. 우리의 사명

바울이 받은 사명이 뭡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증거 하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은 은혜의 복음입니다. 은혜가 뭡니까? 거저주시는 선물입니다. 은혜의 복음이란 어떤 복음인가 하면 죄로 말미암아 사탄의 종이 되어 사탄에게 끌려가다가 사탄이 가는 지옥에 들어가서 영원토록 고통을 당할 우리를 위하여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시고 내가 죽어야할 그 죽음을 대신 죽게 하심으로 내 모든 죄를 사하여 놓으시고 그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돈 주고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거저주시는 복음인데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사도 바울이 받았던 사명이었습니다. 우리 편에서는 은혜로 받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한 희생인데 우리는 거저 은혜로만 받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사명일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은혜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남녀가 결혼을 하면 각각 책임을 져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아내에 대한 남편으로서의 책임, 자식에 대한 부모로서의 책임이 있는데 결혼을 하고서도 그 책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가서 아, 내게 남편으로서의 책임이 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이 있습니다. 결혼한 순간에 이미 자기에게 그 책임이 주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늦게 깨닫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우리 모든 성도에게는 다 바울과 같은 동일한 사명, 복음을 증거 하는 사명이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면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라고 했습니다.
왜 우리를 구원해 주셨느냐하면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기 위함이라>. 곧 전도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어두운데서 불러낸 하나님의 목적이요, 우리의 사명이라는 말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5절에 보면 <저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심은>이라고 했는데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저희 자신(나)을 위해서 살지 않고 오직 저희(나)를 대신해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예수님)를 위해서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왜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죽어주신 줄 아십니까? 우리를 위해서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을 계승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부터 바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인데 이것을 그때 깨닫는 사람도 있고 지금 깨닫는 사람도 있고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제는 깨닫는 것이 문제인데 모든 성도에게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동일하게 주어진 사명임을 오늘 이 시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것이 내 사명임을 다시 한 번 깨닫고 복음증거 하여서 한 생명 한 생명을 구원할 수 있는, 그래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사명이 얼마나 귀합니까?

예수님께서 마지막 가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가장 먼저 우리에게 물으실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너 복음 전했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너 복음 전하라고 했는데 그 사명 감당했느냐?”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 제가 사명 감당했습니다.” 그렇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복음을 전해서 영혼을 구원하라>. 이것이 우리 모든 믿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믿을 때부터 주시는 사명임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사명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이 사명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나의 사명이요, 교회의 사명임을 다시 한 번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멀리 아프리카에 가서, 중국에 가서, 인도에 가서, 러시아에 가서 선교하는 선교사는 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내 주변에서 한 영혼, 한 영혼에게 전도하여서 나를 구원해 주시고 내가 믿을 때부터 주신 이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사명이 뭐라고요?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것, 그래서 영혼을 구원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사명임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사명이 뭐라고요?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여 영혼구원 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사명임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사명에 순종하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명이 얼마나 귀합니까? 오늘 본문에는 사명이 얼마나 귀하다고 했습니까? 생명보다 귀하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명은 생명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 사명 감당하기 위해서 외치다가 그의 머리가 잘려서 쟁반 위에 올려지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은 이 사명 감당하시다가 십자가에서 그 고통을 당하지 않으셨습니까? 열 두 제자 중 열 명이 이 사명을 감당하다가 가죽을 벗기어 죽고, 기름에 튀겨져서 죽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톱에 잘려 죽고, 온갖 악행을 당하면서 죽지 않았습니까?
이 사명 감당하느라고 주기철 목사님이, 손양원 목사님이 순교하지 않았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늘 달려갔습니다. 장가도 가지 않았습니다. 이 사명을 위해서 매도 맞았습니다. 옥에도 갇혔습니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습니다. 끝내는 이 사명 감당하기 위해서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로마시민권이 있었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아니하고 사람이 앉을만한 높이의  낮은 기둥에 목을 얹어놓고 칼로 그의 목을 내리쳐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 목이 어떻게 되었는 줄 아십니까? 손가락 하나가 떨어져도 툭 떨어지지 않고 떨어져서 팔딱팔딱 뛴다고요. 그런데 떨어진 바울의 목은 세 번을 뛰었다고 합니다. 뛸 때마다 “예수! 예수! 예수!” 하고 예수를 외치다가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목 베임을 당해서 목이 떨어지는 그 순간에도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의 사명인 줄 알았기 때문에 목이 떨어진 순간에도 예수님을 외치다가 간 위대한 사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본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바울의 이 사명감을 다시 우리들 가슴속에 불일 듯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제시대 때 일제의 압박을 피해서 많은 사람들이 중국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독립운동 하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 독립군에 들어가려면 적어도 세 가지 각오가 되어 있어야만 받아 주었습니다.
첫째로 당신은 총에 맞아 죽을 각오가 되었는가?
둘째로 당신은 굶어 죽을 각오가 되었는가?
셋째로 당신은 추위에 얼어 죽을 각오가 되었는가?
한 마디로 말하면 죽을 각오가 되어야만, 조국을 위해서 언제라도 목숨을 내 놓을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명을 위해서 생명까지 바칠 수가 있어야만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될 수가 있습니다.
사명을 위해서 손해도 보고, 사명을 위해서 시간도 바치고, 사명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영락의 온 성도들 되어서 사명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국 스탠다드 석유회사에서 극동지역의 담당대리를 구하다가 가장 적격자로 선교사 한 분을 발견했습니다. 연봉을 파격적으로 준다는 제안을 하면서 우리 회사의 일을 좀 해 달라고 했습니다. 선교사는 거절을 했습니다. 회사에서는 연봉이 적어서 거절하는 줄 알고 파격적으로 올린 그 연봉의 두 배 반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연봉의 다섯 배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거절했습니다. 회사에서는 파격적인 연봉의 다섯 배를 더 주겠다고 하는데 무슨 이유로 거절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선교사의 대답은 “여러분이 지불하려는 대가는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내가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선교사의 사명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준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어떤 것도 선교사의 직(職)과 바꿀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사명입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서라면 손해 보기도 하고, 괴로움도 참고, 시간도 드리고, 심지어는 죽는 것까지도 각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명감당할 수 있습니다.
왜 복음 증거 하는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줄 아십니까? 손해 안 보려고 하니까, 생명은 고사하고 물질적인 손해나, 체면, 고통 이런 것에도 손해 보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말 생명을 내 걸면 감당하지 못할 사명이 없습니다. 나는 이 사명을 위해서 무엇을 희생할 수 있습니까? 이제부터 바울처럼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생명까지 내어 놓을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국을 위해서라도 총 맞아 죽을 각오, 굶어 죽을 각오, 얼어 죽을 각오를 해야만 되는데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천국에 까지 보내주시는 주님을 위해서 우리가 생명을 내어 놓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복음은 너무 귀한 것이기 때문에 생명을 주고서라도 감당해야 될 사명입니다. 돈보다 생명이 귀합니다. 그러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사명임을 깨닫고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들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명 감당 하려면, 복음 증거 하려면 생명을 내어 놓으면 다 됩니다. 생명의 반만 내어 놓아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복음을 위해서 생명을 내어 놓는 결단을 하여서 주님 앞에 사명 감당했노라고 대답할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사명을 감당한 자의 고백

바울은 이 사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래서 26절을 보면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에스겔서 3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파수꾼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족속들에게 나가서 악인들에게 말하기를 너 그런 악을 계속 저지르면 죽는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산다>고 그들을 깨우치라고 하셨습니다. 깨우치는 파수꾼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사람이 돌아오면 살 것이고 그러나 만약에 네가 그 말을 하지 않아서 그 악인이 죽는다고 하면 그 피 값을 네게서 찾겠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영적(靈的)인 파수꾼으로서 자기 주변의 사람들에게 복음으로 경고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죽습니다. 그렇게 하면 지옥 갑니다. 하나님 앞에 돌아오면 영생 얻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고 복음을 전하는 파수꾼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내가 전해야 할 책임, 내가 경고하는 책임, 복음을 전하는 이 책임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들이 지옥 간다고 하면 내가 전하지 않아서 그들이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않고, 또 듣고도 깨닫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책임이지 내 책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피에 대해서 깨끗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사명 다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의 피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내가 복음을 전해서 사명 감당했는데도 내 가족 중에서 지옥에 간다면 그들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내가 전하지 않아서 그들이 지옥 간다면 그들의 피 값을 내게서 찾겠다고 했습니다.
내 이웃과 내 친구와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지옥 가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내가 복음을 전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지옥 간다면 그들의 책임이지만 전하지 않아서 지옥 간다면 그 책임은 내 책임이라고 그 피 값을 나에게서 찾겠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피에 대해서 깨끗하다, 내 할 일 다 했다, 사명 감당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왜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왜 연장 시켜놓으신 것 같습니까? 내가 아직 젊었기 때문입니까? 아직도 내가 권세를 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이 땅에는 우리보다 젊은 어린아이들도 세상을 많이 떠납니다. 왜 내가 오늘 살아 있는지 아십니까?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사자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졸도를 하고 말았습니다. 죽은 줄 알았는데 깨어나 보니까 몸에 사자의 발톱자국만 몇 개 나있고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때 그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사명의 사람은 죽지 않는다!” 그렇게 외치고 나서 그는 평생을 아프리카에 바쳤습니다.  
우리가 오늘 왜 살고 있습니까? 나이가 젊어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해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사명이 있기 때문에 이 사명 감당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가진 사명이 뭡니까? 그것을 위해서 태어났고, 그것을 위해서 살고, 그것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하나님이 나에게 하라고 하신 명령, 그 일이 무엇입니까? 온 천하에 다니면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임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사명은 내가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에 주신 사명입니다. 그때 깨달은 사람도 있고 아직도 못 깨달은 사람도 있는데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내게 주신 사명이 은혜의 복음 증거 하여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사명을 생명을 바쳐서 감당할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사명 감당하여서 내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서 깨끗하다고 말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삶의 마지막 날 ‘나는 다 이루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다>. 나는 그 면류관을 기다리며 면류관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는 고백하다가 마지막 날 주님 앞에서 면류관 받아 쓸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윤성진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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