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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사랑

사랑의 섬김 (요13:1-20)

by 【고동엽】 2022.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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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섬김    (요13:1-20)

앗시시의 성 프랜시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에 매우 부유하였습니다. 무엇이든 간에 최고급이 아니면 그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귀공자 중의 귀공자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안으로 그의 영혼은 평안함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홀로 말을 달려 교외로 나갔습니다. 그가 말을 달리고 있는 길에 한 사람의 문둥병자를 만났습니다. 그 문둥병자는 온 몸이 문드러지고 있어 몸서리날 만큼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평상시 까다로운 성미의 프랜시스였던고로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리만치 일그러지고 소름끼치는 이 문둥이를 보고는 무서워서 뒤로 물러서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속에 내재하는 그 무엇이 그를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는 말에서 내려서는 거의 본능적으로 두 팔로 그 문둥병자를 껴안았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보십시오! 그가 그 문둥 병자를 껴안는 순간, 문둥이는 예수의 모습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간다고 하는 것이 사람을 멀리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누구보다 병든 사람들과 죄인들에게 가까이 가심으로 더욱 더 가까이 하나님께 가셨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되며 죄인들을 품으심으로 하나님을 품으신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에게 가까운 사람만큼 인간에게 가까이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하는 진리를 예수께서 친히 보여 주신 모습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1. 인간을 사랑하사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 이제 그 사명을 다 하시며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의 절정이 '섬김', 즉 겸손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시는 표현이 바로 '종의 형체', 겸손인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8)

겸손을 기독교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위의 말씀을 보면 인간을 사랑하사 구원하시는 방법이 결국은 겸손인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겸손은 하나의 도덕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기독교 핵심 진리이며 구속의 원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예수의 겸손이 우리의 구원이 된 것입니다. 이 겸손이 없었다면 하나님을 알 수도, 모실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은총도, 성령의 능력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겸손이란 스스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9,30)

그러므로 겸손을 기도와 신앙과 훈련의 목표물로 삼고 예수의 삶을 통해 배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겸손의 훈련을 시키기 위해서 40여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신8:2)

이같은 하나님의 겸손의 훈련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8:16)

삶의 모든 것을 겸손에 대한 훈련의 재료로 삼아 마침내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겸손은 예수의 성품이며 교만은 마귀의 성품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18:12) 예수의 겸손은 이렇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을 낮추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높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겸손한 자가 하나님께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천국에 있어서 가장 귀한 자리는 가장 겸손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은혜 중에 가장 큰 은혜는 곧 겸손인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6-28)

4. 예수의 십자가의 죽으심, 그 분의 겸손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 생활의 뿌리를 바로 이 겸손에 두어야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며 마침내 구원을 완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 구원의 사역이 예수의 겸손으로 시작하여 겸손으로 마침을 본문에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생활이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5. 겸손은 곧 십자가의 죽음, 곧 자아부정을 말합니다. 예수는 하나님만이 전부이기 위하여 그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고백합니다(요5:19). 그는 아버지께서 자기 안에 역사하시기 위하여 자기의 의사와 능력은 물론 자기 자신을 완전히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자신의 능력, 그 자신의 뜻, 그 자신의 영광, 그의 모든 역사와 가르침과 더불어 그의 모든 활동에 있어서 그는 거듭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내가 아니요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일하시기 위하여 나 자신을 아버지께 바쳤으니 나는 아무 것도 아니요, 오직 아버지만이 전부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적인 자기 부인과 절대적인 복종 및 아버지에게만 의지한 그의 생활이 온전한 평안과 기쁨의 근원임을 그리스도는 아셨던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침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것이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셨고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하셨습니다. 마침내 그를 높여 그의 우편에 앉게 하셨습니다. 겸손이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만유의 통치자가 되신다는 지식과 그의 피조물 가운데 하나인 우리 인생은 참으로 아무 것도 아니요, 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우리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하나님께만 의지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며 거기서 겸손의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6. 이러한 겸손의 생활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셔야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8)

물이 가장 낮은 골짜기를 찾아 채워지듯이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비어 있고 스스로 낮은데 처해 있는 피조물을 끊임없이 찾으십니다. 그를 찾아서 그의 영광과 그의 능력을 부어 그를 높이기도 하며 축복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큰 은혜를 갈급해 하는 사람은 자기를 낮추는 일을 유일한 삶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을 높이는 일을 항상 즐겨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가 충만한 사람은 항상 겸손한 사람입니다.

7. 겸손은 무엇보다도 으뜸되고 가장 높은 은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겸손이 없이는 가장 큰 은사인 사랑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고전13:4)

"형제들아 너희가....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5:13-15)

우리가 그리스도의 겸손을 생활을 통해 우리의 이웃에게 나타내지 못한다면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겸손은 무가치한 것이 되고 맙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그리스도의 정신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가장 작은 자라도 높히는 일, 즉 다시 말하면 피차에 종이 되는 일을 하게 합니다. 겸손한 사람에게는 시기와 질투란 있을 수 없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앞에서 다른 사람들이 섬김과 존경받을 때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른 사람은 칭찬을 받고 자기는 오히려 멸시 천대를 받고 무시를 당해도 참을 수 있습니다.

8. 겸손한 사람에게 "쉼", 즉 평안함이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

교회가 평안하고자 하면 성도들이 겸손해야 합니다. 교회에 대한 비난과 말썽거리가 생기는 원인은 겸손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역사하고 있는 성령의 능력과 은혜가 지속되지 못하는 것은 겸손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딤후3:1,2)

교만은 자신과 아울러 가정, 교회 그리고 사회에 고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교만이 유대인들과 그 사회에 고통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결국 겸손의 주가 되신 예수를 죽이기까지 한 것입니다.


9. 겸손한 사람은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이 거룩한 사람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가장 거룩한 자처럼 여겼으나 회개가 없는 가장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가장 거룩한 사람은 가장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겸손은 성결의 근원이 됩니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18:914)

겸손한 사람은 구원받은 죄인임을 자각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지극한 겸손은 일상적인 범죄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뇌리에서 떠날 수 없는 심각한 죄의식에서 생겨지는 것입니다. 그가 과거에 어떠한 죄인이었나를 보여 주는 하나님의 은혜로서의 죄의식에서 겸손이 나오는 것입니다. 나로 하여금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죄의식은 죄가 아니라 오히려 은혜인 것입니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9,10)

10. 마지막으로, 겸손은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8)

겸손은 이처럼 죽음을 택하는 것입니다. 곧 자아의 죽음을 말합니다. 자아가 완전히 죽은 사람을 겸손하다고 말합니다. 자아가 완전히 죽었다는 확실한 증표는 겸손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아가 죽지않은 겸손은 위선에 불과합니다. 자아가 완전히 죽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8-1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13:16,17)

브라질의 성자로 불리었던 미국 선교사 멜랜드(Doug Meland)내외는 깊은 산골에 들어가 선교하며 평생을 사는 중에 네 번 이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곳 주민인 풀리오 인디안들은 처음에 멜랜드 내외를 <백인>이라고만 불렀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그들을 무기로 괴롭혔던 그 허다한 <백인>을 부르던 증오에 찬 명칭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그후 멜랜드 내외는 의료봉사로써 주민들의 목숨을 구하며 병을 치료하는 헌신적인 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를 부르는 명칭이 어느새 <존경하는 백인>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멜랜드 내외는 풀리오 인디안들의 언어를 열심히 배워 10년 뒤에는 그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유창한 말을 구사하게 되었고 생활도 그들의 풍습대로 묻혀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은 멜랜드 내외를 <백인 인디안>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날 부상당한 인디안 소년의 발을 씻어 주고 있었더니 구경하던 인디안들이 "인디안의 발을 씻는 백인을 보았는가? 이 사람들은 하늘이 보내준 사람들이다."고 말했으며 그 때부터 멜랜드 부부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리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사랑의 종이 된 사람에게 붙여진 별명이었습니다. 겸손한 가정이 수준 높은 가정입니다. 겸손한 교회가 수준 높은 교회입니다. 겸손한 사회가 수준 높은 사회입니다. 서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가정, 교회 그리고 사회가 수준 높으며 깨끗하고 평안하여 살기 좋은 곳입니다. 사랑은 서로를 가까이 하는 것처럼 사랑의 섬김은 서로를 가까이 하게 할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가장 가까워지는 거룩한 생활입니다. 사랑의 섬기는 생활로써 영광과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이동휘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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