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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믿음

아브라함의 3대 결단 (창 22:9-19)

by 【고동엽】 2022.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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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3대 결단   (창 22:9-19)

우리의 생활은 순간순간 매일매일 결단을 필코로 합니다. 여러분이 오늘 예배당에 나오신 것도 결단을 잘 내렸기 때문에 이 성전에 나오셨을 것입니다. 친구가 만나자고 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춥기 전에 낚시질 가고 싶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요, 산으로 등산가고 싶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물리치고 주의 성전으로 나와야겠다는 좋은 결단을 내렸던 까닭에 이 거룩한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며 또한 은혜도 받게 된 줄로 압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는 결단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생애를 봐도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몇 차례의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신앙 생활에는 이렇게 용단이 필요합니다. 우유부단하고 육신의 정욕과 생각에만 사로잡히게 되면 그 사람은 절대로 신앙 생활을 바로 할 수가 없고 마귀를 이기고 성령을 따르는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으나 아브라함의 생애에 있어서 세 가지 큰 결단만을 생각하여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① 고향을 떠나는 결단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척을 떠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앗수루 족속에 속한 사람으로 우상(偶像) 장사였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달을 숭배하는 우상 숭배의 지방이었기 때문에 떠나라고 했고 아버지 데라가 죽은 다음에는 하란도 떠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죄악된 상황에서 떠나라고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우상을 만들어 팔던 죄악의 장소, 죄만 짓는 사람들과 친교를 끊어버리고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고향과 친척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떠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하여 온갖 것을 다 저버릴 수 있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축복받는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19장 17절 말씀을 보면 "급히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고 롯에게 명령했습니다. 거기서 우물쭈물하던 사람은 다 불에 타 죽었고 가면서도 아까워 뒤를 돌아보던 롯의 처는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지만 인정사정 욕심 다 끊어버리고 소알성을 향한 롯은 살아났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누가복음 14장 26절에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부모님도 사랑해야 됩니다. 아내도 자식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부모형제라도 주님과 비교가 될 때에는 미워해야 되고 주님과 경쟁이 될 때에는 뒤로 물리치고 주님을 앞세우는 생활을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예를 든다면 아번 추석에도 믿지 않는 칙구 친척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사밥을 해 놓고 우상 숭배하고 마귀에게 절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직도 친척들의 눈치와 비난의 소리가 두려워서 아마 그런 죄를 범한 사람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떠한 핍박과 조롱과 모욕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계명을 어길 수는 없다고 한 분은 용감히 떨쳐 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시편 1편 1절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 했습니다. 죄를 따르지 아니하는 그 눈, 그 손, 그 발, 그 자리가 복되다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순종은 했지마는 100% 순종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친척도 데려 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조카 롯이 따라 오니까 같이 데리고 갔습니다. 마침내 육신의 생각을 따랐던 조그마한 것이 아브라함의 종들과 롯의 종들 사이에 큰 싸움을 일으켜 끝내는 헤어져 떠나가고야 말았습니다.
시편 119편 115절에 보면 "너희 행악자여 나를 떠날지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리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죄악된 상황을 인정사정 보지 말고 떠나야 할 때 떠나야 합니다. 애굽을 떠나야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으려면 돌 감람나무에서 끊어져야 됩니다. 세상을 초월해야 천국이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나면 대번에 모든 일이 잘 되는 줄로만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옛 생각을 끊어 버려야 할 사람에게는 먼저 망하는 일이 있어 죄를 청산한 다음에 새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밥을 담던 더러운 그릇에 사람이 먹는 음식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안 됩니다. 거기에 음식을 담아 준다면 바보일 것입니다. 하나님도 어리석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릇을 깨끗이 씻어야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잘 믿을 때에 손해가 오는 것은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하여 그릇을 예비하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잘 참아 넘기는 여러분이 되시길 부탁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떠나야 할 곳에서 떠나지 못하고 머뭇머뭇 하시는 분은 계시지 않습니까? 떠나야 됩니다. 용감하게 떠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용감하게 떠났습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을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믿음이란 바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그것입니다.

② 이스마엘을 쫓아내는 결단
창세기 21장 10절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명령하셨습니다. 고향을 떠나는 것이 죄악된 상황을 떠나는 것이라면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는 것은 죄악된 정욕의 줄을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아들을 위하여 깊이 근심이 되었으나 마침내 여종 하갈과 아들 이스마엘을 내어 쫓았습니다.
이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왜 이런 비극이 생겼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는데 백세가 되도록 주시지 않으므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조급해서 인간적인 생각과 수단으로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려 자기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의 품에 들여 보내 자식을 보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갈이 아들 이스마엘을 낳자 주모 사라를 멸시하고 또 그 아들 이스마엘이 참 아들 이삭을 희롱하고 괴롭혔습니다. 이것 때문에 그 가정에 평안이 없고 늘 불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사는 것은 결국 우리 마음과 생활에 불안과 슬픔과 근심이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 불안과 슬픔과 근심이 있다면 무엇인가 끊어버릴 것을 끊어버리지 못하고 청산해야 될 것을 청산하지 못한 것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중동전쟁이 무섭게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싸움으로 바로 이삭과 이스마엘의 싸움인 것입니다.
여기의 이스마엘은 육(肉)을 의미하고 이삭은 영(靈)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이 육을 지배하려면 육신의 정욕을 쫓아내야 합니다. 죄악된 정욕을 끊어버려야 참 평안과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심정을 생각해 보면 보통 어려운 결단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도 이런 용단이 필요합니다. 끊을 것은 끊고 내어 쫓을 것은 내어 쫓는 용단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도 마음 속에 조금이라도 죄악된 길에 들어갔다 생각되면 딱 끊고 돌이킬 수 있는 용기를 가지시기를 부탁합니다.
회개하여 죄를 끊어 버리고 돌이키는 결단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구원이냐 멸망이냐 저주냐 축복이냐를 판가름하는 것입니다. 아차 하는 순간의 잘못으로 일생을 망치고 불행 가운데 빠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경건한 생활을 해치고 죄악된 길로 떨어지게 하는 요소는 용감하게 끊고 신앙 생활로 나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③ 독자를 드리는 결단
이것은 헌신의 결단입니다. 백세가 되어 낳은 아들, 애지중지 키워서 장성한 소년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의 마음에는 이삭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이삭을 더 많이 생각하여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던 아브라함이 아들 제일주의로 타락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보다 아들을 더 의지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날 청천벽력같은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창세기 22장 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소나 양이 아니요, 서자도 아니요, 바로 독자 가장 사랑하는 이삭을 잡아 번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을 때 아브라함은 얼마나 마음이 떨렸고 번민이 많았겠습니까? 또 핑계를 댄다면 얼마든지 댔을 겁니다. 살인을 금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잡아 제사를 드리라고 하십니까? 하늘의 별과 같이 네 자식을 통해서 번성하게 하고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 무슨 말씀입니까? 이렇게 핑계를 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인간의 생각으로 모순이라고 핑계 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믿음으로 이 모순을 극복하고 바치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아브라함이 제사드리러 가면서도 아침에 일찍 나갔다고 했습니다. 일찍 나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데 지연시키지 아니하고 단호하게 결단을 내렸다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준비를 차근 차근 다 했습니다. 칼과 불과 장작을 단에 묶어 가지고 나귀에 싣고 갔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릴 때는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헌금을 준비햐고 또한 무명옷이라도 잘 빨아서 다려 입고 나오는 그러한 정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제사준비를 잘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리아 산에 가서 아들을 묶어 놓고 칼을 들어서 내려 찌르려 할 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을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가장 어려운 시험에 패스한 헌신의 결단이었습니다. 가장 귀하고 가장 사랑하는 것이라도 아끼지 않고 드리는 헌신적 결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22장 16-18절에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어럽더라도 순종하면 축복의 문이 옆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수가성의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한 것은 목이 말라서만이 아니라 성령의 생수를 주시고자 물을 달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을 달라고 하시는 것은 더 크고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희생하고 포기하는 헌신이 크면 클수록 큰 축복과 상급을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위하여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그러한 각오와 결단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아무쪼록 주의 명령에 순종하는 헌신의 결단을 가지시고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어 놀라운 기적과 축복을 체험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출처/김홍도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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