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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건강진단의 4가지 기준/고린도후서 13장 5절

by 【고동엽】 2022. 7. 14.

영적 건강진단의 4가지 기준// 20001105 주일 낮예배

2001-12-08 17:49:54 read : 562

 

고린도후서 135

 

어떤 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교회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교회에서는 그의 신앙과 성실함을 보고 그를 대학부 선생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러자 이분은 최선을 다해 그 학생들을 지도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속에서 학생들을 책망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 저들은 저렇게 변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항상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성령님께서 그분 마음속에 이런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너는 추악한 자기 의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구나! 그것부터 버려라."

그분은 그 뒤 마음을 편히 하고 자신의 변화에만 신경 쓰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러자 그에게 있던 만성피로와 가슴 답답한 증상, 그리고 만성체기가 사라졌고,

얼굴에 있던 기미도 없어지면서 피부가 깨끗해지는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또한 그가 인도하던 학생들 간에도 서로의 시선이 따뜻해지는 것을 보고,

그분은 <자기 변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항상 자기 변화를 우선하는 종교임을 잊지 마십시오.

 

어떤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개척정신이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 졸업하기 전부터 교회개척을 위해서 열심히 뛰었습니다.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교회 개척을 할 때가 아닌데도 뛰어다녔습니다.

돈도 없고, 후원자도 없고, 개척팀도 없고, 신학교 졸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교회개척, 교회개척"하면서 열심히 교회개척을 위해 뛰어 다녔습니다.

 

그래도 현실의 장벽은 컸습니다. 그러한 장벽으로 고민하던 어느 날,

신학교 기숙사 침대에서 엎드려 있는데 마음속에 이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무개야! 너무 <개척! 개척!>하지 말고 너 자신부터 먼저 개척해라."

 

그러한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그의 자부심은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는 그 동안 자신이 영적으로 충만하고, 비교적 성실하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부심이 추악한 자기 의에 대한 도취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깨달음 후에 그는 <자기 탐구, 자기 개척, 자기 준비>에 보다 신경을 써서,

더욱 준비된, 보다 성실한 목회자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남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자신의 변화를 우선하고 그것이 능력임을 믿는 종교입니다.

자신이 먼저 변화되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에서의 변화를 바라기 전에 얍복강에서 야곱이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

얍복강에서 야곱이 먼저 변하니까 바로 그때 에서도 변하는 것을 보십시오.

 

혹시 주위에 "저 사람은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때로 답답하면 그에게 가서 "이렇다, 저렇다"고 따지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는 일입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그 사람도 틀림없이 변화되는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고 가져야 하는 믿음은 바로 그러한 믿음입니다.

그러한 믿음이 있는지 우리는 항상 스스로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135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우리는 때때로 우리 자신의 믿음이 건강한지를 스스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믿음의 건강성을 스스로 체크할 수 있을까요?

이 시간에는 신앙의 건강성을 진단하는 4가지 기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기준에 의거해 자신의 신앙의 건강성을 한번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 말씀이 달게 느껴지는가"하는 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몸이 아프면 음식 맛을 잃어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침체되거나 병들면 말씀의 맛부터 잃어버리게 됩니다.

물론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말씀을 별미로 만드는 노력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실상 말씀을 받는 분의 열린 자세, 사모하는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의 넥타이 비뚤어진 것만 잘 봅니다. 산만한 분입니다.

어떤 분은 말씀에서 비판할 것만을 찾습니다. 마음이 병든 분입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이 설교를 잘 하나 판단하고 있습니다. 인색한 분입니다.

어떤 분은 성경을 봐도, 말씀을 들어도 덤덤합니다. 메마른 분입니다.

 

어떤 분이 한 부흥회에 참석해서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살겠다고 작정하고 매일 성경 20장을 읽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틀쯤 지나니까 20장이 너무 많아 10장으로 줄였습니다.

다시 이틀이 지나니까 10장 읽는 것도 부담되어서 5장으로 줄였습니다.

그런 식으로 조금씩 줄다가 보름쯤 지나서는 하루에 한 장까지 줄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루에 한 장씩 꼭 읽자!"고 결심했는데 한 달쯤 지나니까

그것도 싫증이 나 동그라미에서 동그라미까지 한 단락만 읽기로 했습니다.

아마 상당히 많은 분들이 이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한 단락 읽는 것도 귀찮아 한 구절만 읽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한 구절만 읽는데 어느 구절을 읽습니까?

창세기부터 읽을 수는 없고 해서 궁리하다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는데,

성경을 갑자기 쫙 펴서 손가락으로 짚고, 그때 손가락에 짚히는 구절을 읽고

그 말씀을 그날 주신 하나님 말씀으로 받고 출근하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성경을 펴고 손가락으로 짚었습니다. 마태복음 275절이었습니다.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그 말씀으로 어떻게 하루를 삽니까? 그래서 다시 하기로 했습니다.

다시 성경을 쫙 펴서 손가락으로 집었습니다. 누가복음 1037절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꼭 자기보고 빨리 가서 죽으라는 말 같았습니다. 그래서 한번 더 하기로 했습니다.

다시 성경을 펴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탁 짚었습니다. 이사야 149절 말씀이었습니다.

"아래의 음부가 너로 인하여 소동하여 너의 옴을 영접하리라."

 

성경을 진지하고 바르게 잘 읽자는 의미로

천국 연구의 대가인 미국의 존 졸라 박사가 각색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이 달게 느껴져서 자꾸 듣고 싶고, 자꾸 읽고 싶습니까?

그러한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우리의 신앙이 건강한 신앙입니다.

 

둘째 "교회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지금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까?

교회 일을 많이 하지 못해도 교회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없어도 교회는 문을 닫지 않고, 하나님의 일은 차질 없이 됩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생각할 때마다 저는 가끔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 제가 없어도 되는데, 저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겨주시니 감사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영적 실업자 만들지 않고 직분 주신 것에 대해서

기본적인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 일이 즐겁고 기뻐집니다.

 

우리는 가끔 우리 자신이 무슨 일을 한 것처럼 원망하고 짜증을 냅니다.

소중한 일을 앞두고 짜증나기로 한다면 누가 짜증이 나겠습니까?

주님이 뭐라 말하실까요? 주님의 답답한 심정을 먼저 생각해 보세요.

"아무개야. 너 데리고 일하려니까 정말 답답하구나!"

그렇게 답답하셔도 일하는 기쁨과 일을 통한 보람을 느끼게 하기 위해

우리를 실업자로 만들지 않고 일거리를 주시는데 감사하지 않습니까?

 

신앙의 맛과 봉사의 맛을 아는 사람에게 일거리 없는 것은 지옥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마음이 높아져 일거리를 빼앗기면

다시 새로운 일거리를 얻게 될 때까지 끝없는 영혼의 방황이 시작됩니다.

그런 사실을 생각하면 사실상 우리가 고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일을 시키시는 하나님께서 사랑의 고생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기에 교회 일을 하면서 잠시 쉴 수도 있고, 짜증도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공로의식으로 인해 생기는 짜증과 불평이 되면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수고하는 땀을 공로의식으로 발전시키지 말고

우리의 수고 속에 함께 하신 하나님의 수고를 생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겉모습을 보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래서 우리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기쁜 봉사를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열심히 일하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그 일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긍정적인 자세와 밝은 모습이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은혜가 넘치고 영혼이 건강한 사람은 긍정적이고 마음이 밝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밝으면 사물의 밝은 면에 관심을 많이 둡니다.

 

어떤 사람의 의견이나 아니면 사물이나 사람을 볼 때

반사적으로 어떤 분은 단점부터 부고, 어떤 분은 장점부터 봅니다.

똑같은 사람의 똑같은 얼굴을 보더라도 어떤 분은 좋은 점부터 봅니다.

"참 편안한 얼굴입니다. 지혜롭게 생겼군요. 귀가 복스럽게 생겼네요."

그러나 부정적이고 상처 많은 사람들은 나쁜 점부터 봅니다.

"눈이 사무라이처럼 생겼구나. 코가 어떻게 저렇게 눌렸지? 오천 평이네."

 

왜 그런 차이가 생기게 됩니까? 마음이 다르고, 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옛날 속담에 "개 눈에는 O밖에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 많고, 꽃이 있고, 아름다운 그 무엇이 있어도

기본적으로 눈이 잘못되면 좋은 것은 보이지 않고 나쁜 것만 보입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교회에 오면 좋은 것부터 봅니다. "참 친절하다. 밝구나."

사람을 볼 때도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을 먼저 보려고 합니다.

그처럼 긍정적이고 밝은 자세는 신앙의 건강을 보여주는 중요한 표시입니다.

 

그리고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은 현재의 모습보다는 가능성을 볼 줄 압니다.

일이 잘될 때 더욱 겸손하고, 일이 안될 때 가능성을 보는 자세!

그러한 자세를 가진 사람이 은혜를 알고, 신앙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벳새다 광야에서 주님을 따라온 수많은 사람들이 허기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저들을 먹일까?"

그러자 계산적인 빌립이 대답했습니다.

"주님, 여기는 빈들입니다. 저들을 먹일 수 없습니다. 부족합니다."

그때 안드레는 예수님에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어놓았습니다.

 

수천 명을 놓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무슨 도움이 됩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 가능성을 보는 믿음을 통해 역사를 이루십니다.

여러분! 사건과 사고에서 불가능을 보지 말고 가능성을 보려고 하십시오.

아흔 아홉 가지가 절망적이어 한가지가 희망적이면 그 한가지를 잡으십시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고백을 하며,

모든 일을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역을 계산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는 것! 그것이 은혜 받은 증거요, 신앙이 건강한 증거입니다.

그런 긍정적인 믿음으로 모든 절망과 한계를 극복하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어느 날 강둑에서 두 사람이 낚시하는데,

한 사람의 낚싯대가 갑자기 크게 휘면서 큰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부러운 듯이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고기를 잡은 낚시꾼은 싫은 표정으로 갑자기 품속에서 자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고기의 크기를 재 보더니만 그냥 고기를 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것을 보고 옆의 사람이 생각합니다. "고기를 연구하는 생태학자인가보다."

 

그리고 그 낚시꾼은 다시 낚싯대를 드리웠는데, 또 고기가 걸려들었습니다.

작은 고기였습니다. 그 낚시꾼이 또 싫어할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얼굴이 밝았습니다.

그리고 품에서 자를 꺼내서 고기를 재 보더니만 어망에 고기를 담갔습니다.

너무 이상하고 궁금해서 옆 사람이 물었습니다.

"아저씨! 왜 큰 고기는 놔주시고 이처럼 작은 고기만 잡지요?"

그분이 대답했습니다. "우리 집에 고기 구워 먹는 후라이팬이 있는데, 그게 이만하거든요."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잘라서 구워 먹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실질적으로 우리의 모습 중에 그런 모습이 많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맡기시면 "저는 그릇이 이만합니다"고 하면 그 일을 버립니다.

언제나 할 수 있는 것만 하겠다는 것은 너무 소극적인 생각입니다.

조금 벅차도 그 일을 맡아 할 때 은혜도 받고 개인적으로도 성숙해집니다.

 

이제 곧 내년 일꾼을 교회에서 임명하고, 자치회에서는 임원을 뽑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그릇이 이만하다"고 자기를 낮춰 그 직분을 거절하지 마시고,

그 맡겨진 직분을 신앙성숙과 자기발전의 기회로 삼아 보십시오.

 

무엇이든지 처음은 힘듭니다. 그러나 그 처음을 지내야 그 다음이 있습니다.

처음 기도할 때는 누구나 두렵고 떨립니다. 그러나 그래도 해야 기도가 늡니다.

저는 84년 이전까지 사람들 앞에 서기만 하면 심하게 말을 더듬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주일학교 선생님을 합니까? 인간적으로는 못합니다.

그러나 아이들 앞에서 창피 당할 각오를 하고 주일학교 선생님을 맡았습니다.

 

그렇게 맡아 놓고는 불안하니까 일주일 내내 그 일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이들 앞에서 말을 더듬지 않게 하소서!"

그런 식으로 대학부 선생이 되고, 전도사가 되고, 목사가 된 것입니다.

만약 그때 그 직분을 거절했다는 저는 지금도 심하게 말을 더듬었을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81년도에 처음으로 대표기도를 해 보았습니다.

교회 대학부에서 성경공부를 하는데 예고 없이 리더가 대표기도를 시켰습니다.

가슴이 떨렸습니다. 기도경험이 없는데 말까지 더듬으니 어떻게 기도합니까?

그때 더듬고 횡설수설하다가 사람들 앞에서 큰 망신을 당했습니다.

그 뒤로부터 리더는 저에게 1년 동안 한번도 대표기도를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기도 순서를 맡으면 더욱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겪으면서 부족한 사람들이 점차 유능한 일꾼이 됩니다.

그러므로 좋은 매, 나를 발전시키는 매는 일찍 맞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 현재 내 능력이 이만해서 이만한 일만 하겠다고 하지 마시고,

조금 벅찬 일을 맡겨져도 즐거운 마음으로 그 일을 맡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넷째, "내게 전도하고 싶은 열의가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그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알고 보면 그때가 신앙이 가장 경건할 때입니다.

 

예레미야 209절을 보면 예레미야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전도를 하지 않으면 답답함을 느끼고 왠지 미안함을 가지는 모습!

그러한 마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은혜를 아는 건강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가 닿는 대로 복음을 전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어떤 믿음 좋은 청년이 친구들과 등산을 가 절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절에서 물을 먹다가 갑자기 스님에게 전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스님한테 가서 종교에 대해 관심이 많아 예기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불교신자 하나 생기는 줄 알고 같이 응해 주었습니다.

 

한참 질문하다 이 청년이 말했습니다. "스님! 아무리 봐도 문제가 있네요.

스님은 훌륭하신 것 같은데 종교는 잘못 택하신 것 같아요. 교회 다녀 보세요."

그러니까 스님이 얼마나 화가 납니까? 그래서 고얀 놈이라고 욕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니까 이 청년이 말할 때마다 "나무 관세음보살..."만 했습니다.

 

대화가 끝나고 이 청년은 떠나면서 "스님, 꼭 예수 믿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서 일주일만에 이 청년이 그 스님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스님! 예수 믿으세요. 제가 기도할께요." 스님은 그 편지를 찢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뒤에 또 똑같은 편지가 왔습니다. 또 찢었습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몇 달 오니까 찢어버리긴 해도 편지 오는 날만 되면

"오늘 또 오나"하고 편지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영락없이 또 왔습니다.

 

그렇게 이년 동안 편지를 받던 중 이 스님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이건 장난이 아니다. 이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래서 이년만에 스님이 답장을 했습니다. "한번 만나고 싶구나!"

그래서 며칠 후에 빵집에서 만나 청년은 그날 저녁 부흥회에 한번 가자고 했습니다.

스님은 옷 때문에 사양했지만 청년은 괜찮다고 하며 스님을 모시고 부흥회에 갔습니다.

 

부흥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부흥강사가 승복을 입은 스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모른 척 하고 설교하는데 자꾸만 스님 때문에 신경이 거슬렸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말씀을 전하고 나서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지금 이 시간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길 원하면 앞으로 나오십시오."

그러자 스님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강단 앞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결국 그날 스님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중에 신학교 가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지금은 스님만 골라서 전도하는 유명한 목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귀한 열매가 맺어질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 건강을 진단하는 네 가지 기준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시고, 즐거운 마음으로 교회 봉사를 하시고,

긍정적인 자세와 밝은 태도를 가지고, 영혼 전도에 힘을 쓰심으로

여러분들의 신앙과 인격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단장해 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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