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예배】예화 모음 16편

by 【고동엽】 2022. 6. 12.
[처음 목차 돌아가기]
 
 

1.예배의 가치

요셉 케이보는 체코슬로바키아가 공산주의 통치하에 있을 때 아주 유명했던 인물입니다. 아버지는 학교에서 공산주의를 가르치는 교사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어릴 때 그는 주일 아침이면 3시간동안 기차를 타고 프라하로 갑니다. 교회에 가서 2시간30분동안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마치면 공원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에 다시 2시간30분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로 다시 갑니다. 그리고 3시간 걸려서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렇게 많은 시간과 힘을 쏟아야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1주일에 예배 한번 드리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일입니다. 한번의 예배를 위해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예배를 드리러 가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를 즐겨해야 합니다. 예배하기를 기뻐해야 합니다. 예배하러 가는 것은 그 자체가 가치입니다.

2. 700주년 기념예배

전쟁의 장본인이었던 독일의 폐허는 너무나 비참했다고 합니다. 여러가족들이 한 집에서 살아야 했으며 퀀센트에서 집단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COLOGNE라고하는 도시에는 커다란 교회당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는 새고 아치는 무너지고 창문은 다 깨어지고 기둥은 기우뚱 ㅅ있었습니다.

 


전후독일 백성은 ㅇ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 방법을 잃은채 절망과 어려움에 깊이 빠져 있었섭니다. 이띠 어느 한 사람이 쓰러져가는 그 교회의 창립 700주년을 기념하는 계획을 내세우게 되었습니다. 이 소색은 퍼져 나갓습니다. 700주년을 기념하는 그날 폐허된 교회에는 30,000명의 실망한 독일인들이 모여 들었다는 것입니다. 700주년 기념예배가 시작되자 오랜 실망과 눈물속에 가슴과 믿음은 산산 조각이 났던 그들의 눈에서는 이상하게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드높아지기 시작했섭니다. 힘차게 울려 나오기사작한 찬양과 함께 오랫동안 막혔던 하나님을 향한 그등의 마음과 가숨은 감사와 찬양으로 열리기 사작했습니다.
그래도 700년동안 지켜주신 하나님! 그들이 용기만 내어도 그 교회를 다시 세우려면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을 그들은 믿기 시작하였습니다. 드디어 페허가 되었던 700년돈 교회는 다시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로 변모하게되었습니다. 그러나 얘기의 핵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교회를 복구하는 동안 절망했던 독일 사람들의 마음과 가슴은 이상스럽게도 뜨거움과 감사로 되살아났으며 그 새마음은 새독일 건설이라는 다음단계로 불붙어 갔습니다. 그 다음 그들은 집을 지었으며, 학교를 짓고, 회사를지어 갔습니다. 결국 그 도시는 위대한 기적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3. 등잔이 없는 예배

남유럽 어느 조그만 마을에 저녁이 짙어오면 하얀 집들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다만 마 을을 굽어 보며 언덕 위에 세워진 교회당만은 어둠을 지키고 있었다.
`많은 등불의 집'이라고 불리우는 이 교회당에는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400 년 전 이 교회당을 지은 공작에게는 10명의 예쁜 딸이 있었다. 공작은 어린 딸들이 정원에서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딸들이 성장한 다음에는 바느질하는 모습, 궁전을 장식하려고 꽃다발을 만드는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으 로 살았다. 그런데 딸들이 하나씩 결혼을 하게 되자 공작은 매우 슬퍼졌다. 사람들이 위로를 해 줄 때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집안에 딸들의 자리가 제각기 있는데 어느 한 구석이 비면 집안은 어둡고 쓸쓸하오."
크리스마스가 되면 시집 간 딸들이 모두 돌아와 잔치를 베풀고 공작을 기쁘게 해 주곤 했다. 그런데 어느 해 먼 나라의 왕비가 된 딸이 오지 못하여 매우 슬퍼했다. 나머지 딸들은 악사를 동원하여 아름다운 음악으로 아버지를 위로하였지만 아름다운 딸의 노랫소리를 대신 하지 못하였다. 나이가 많아지자 공작은 후세에 남길만한 무엇을 하고 싶어했다. 그는 아름다운 교회당을 하나 짓기로 결심했다. 사람들이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위로를 얻게 되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교회당이 완성되었을 때 공작은 딸들에게 보여 주었다. 건물의 아름다운 선, 성스러운 내부 장식, 조각품, 색유리, 어느 것 하나 감탄하지 않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 등불은 어디다 걸죠?" 교회당 안에는 등불이 없었다. 공작은 미소를 띄고 설명했다.

 


"그건 말이다. 이 늙은 아버지의 계획이란다. 등불을 거는 데가 없지? 교회당에 예배드리러오는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 등불을 들고 올거야. 마을 사람들에게 각자 하나씩 나누어 줄 놋쇠등을 준비해두었단다."
그리고 말을 잠시 끊었다가 이었다.
"정한 시간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집의 어느 한 구석 은 어둡고 쓸쓸할거야."
그로부터 400년, 그 조그만 놋쇠 등불은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이어져 내려왔다. 누구나 그것을 고이 간직했다. 이 오래된 교회에서 종소리가 아름답게 울려 퍼지면 마을 사람들은 제각기 등불을 가지고 언덕을 올라간다. 교회당은 늘 마을 사람들로 가득 메워진다. 아무도 자기 자리가 어둡고 쓸쓸한 구석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4. 가정예배

성경: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고전 3:6,7)

규장의 설립자인 여운학 장로는 서울대 재학 시절에 아르바이트로 민교사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의 성실성을 인정받게 되고 탐구당 부사장까지 오릅니다. 책과 씨름하며 살아온 지 20년 만에 여장로는 결국 과로로 인한 허리디스크로 몸져눕게 되었습니다. 허리가 끊어지고 다리가 터지는 듯한 아픔에 시달려 그는 육신의 고통 앞에서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중년의 고비에 찾아온 병마 때문에 여장로는 절망했습니다. 모든 병원을 다 찾아다녀도 차도가 없자 아내 배권사가 건네준 잠언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여장로에게 잠언은 진리와 생명으로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그가 45세이던 여름에 여장로는 그렇게 거듭났습니다. 새벽기도로 6개월 만에 허리디스크에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기적을 체험한 그는 불신자 전도에 나서기 시작해서 기독교 전문 출판업체인 규장문화사를 세웠고, 이슬비전도학교를 창립해 기독교 문서선교를 계속한 것입니다. 여장로는 그의 다섯 자녀를 목사, 의사, 박사, 사장으로 훌륭하게 키워냈습니다. 그가 자랑하는 자녀를 가장 잘 키우는 비법은 바로 ‘가정예배’입니다. 모두 흩어져 살지만 여장로 가정은 한 달에 한번은 반드시 함께 모여 가정예배를 드립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묵상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고백합니다. 성공하는 가정이 되려면 가정에서 재단을 쌓으십시오. 가정예배 속에 자란 당신의 자녀들은 결코 신앙을 버리지 못합니다.

5. 개 고양이도 예배당에

맨하탄 112가에 있는 성 요한 교회 (성공회) 는 12세기 수도사 성 프란시스를 기념하는 예배에 동물을 환영하였다. 신도들은 개, 고양이, 스컹크, 쥐, 각종 새등 동물을 데리고 왔으며, 8천 파운드의 대형 코키리도 한마리 와서 더욱 이채를 띄었다. 코끼리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겠느냐고 반문할 필요는 없다. 성 요한교회의 크기는 풋볼 경기장의 2배, 즉 2백 야드가 넘으며 건축을 시작한지 150년이 경과되었는데 아직도 완공되지 않은 거대한 성전이고 뉴욕 관광지의 하나다.
이 예배가 기념하는 성 프란시스는 흔히 앗시시의 성자프란시스라고 불리운다. 그의 사랑은 우주적이었다. 해와 달을 형제라 불렀다. 동물들에게도 섬세한 애정과 존경을 바쳤다. 마을을 괴롭히는 늑대들을 온순하게 말들고 야외설교 때 떠드는 참새들을 조용하게 만들었다는 일화는 전설이겠지만, 사나운 짐승까지도 사랑했다는 그의 정신을 뒷받침하고 있다. 짐승에 대한 사랑이 그 정도니까 인간에 대한 사랑은 극치에 이르렀다. 그는 본래 부자집 아들인데 있는 것을 몽땅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다 주고 가끔 거지와 옷을 바꾸어 입고 들어오기 때문에 결국 집에서 내쫓겼다. 나병환자를 껴안고 입을 맞추고 예수처럼 제자의 발을 씻어 주었다. 프란시스는 이런 말을 했다.

 


`자비와 지혜가 있는 곳에 두려움과 무지는 있을 수 없다. 참음과 애정이 있는 곳에 분노와 번뇌는 추방된다. 마음이 가난하고 기쁨을 가질 때 탐욕은 사라진다. 평화와 명상이 있는 곳에 걱정과 의심은 자연히 사라진다.

6. 사이버교회 - 컴퓨터통해 예배드리고… 설교듣고…

서기 2002년의 어느 주일 아침.20대 중반의 김모씨가 혼자 생활하고 있는 도심 한복판의 오피스텔.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온 김씨지만 이날만큼은 서둘러 교회로 향하지 않는다.
간편한 옷차림으로 책상앞에 앉아 기지개를 펴고 컴퓨터의 스위치를 켠다. 오른손으로 가볍게 마우스를 클릭하면 어느 일류 오케스트라의 연주보다 뛰어난 성가곡이 흘러나오고 오피스텔은 어느새 예배실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김씨는 이름난 교회가운데 그 날의 기분에 따라 한 곳을 골라 버튼을 누른다. 곧 교회의 담임목회자가 화면에 등장하고 김씨가 듣고 싶어하는 주제별로 설교리스트가 메뉴판처럼 펼 쳐진다. 또 부르고 싶은 찬송가를 직접 고르고 장르와 악기까지 지정한 반주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리곤 그날 헌금하고 싶은 액수를 입력하고 버튼만 누르면 온라인으로 헌금이 전송된다.김 씨의 주일예배는 그것으로 끝이다. 21세기를 앞두고 예견되는 현상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 는 것은 이같은 "사이버 처치"와 "사이버 크리스천"의 등장이다.
사이버 처치란 컴퓨터를 통해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듣고 찬송을 부르며 신앙생활을 하는 가상의 교회를 말하고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사이버 크리스천이다.
이들은 거리가 먼 교회에 힘들여 찾아갈 필요도 없고 굳이 예배시간에 맞춰 움직일 필요도 없다. 그저 하고 싶은대로 컴퓨터만 작동시키면 되는 것이다.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느냐는 회의론도 있겠지만 한양대 양창삼교수는 이같은 현상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진단한다. "사이버 처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매우 회의적이지만 인터 넷이나 정보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사이버 처치는 현실로 나타나게 될 겁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비하기 위해선 컴퓨터를 통해 충족할 수 없는 "영성훈련 "과 소그룹으로 친밀하게 교제할 수 있는 "친교공동체"가 적극적으로 개발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7. 위대한 신앙인을 성장시킨 가정예배

악에 속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실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 (디모데후서 3 : 14)

7남매를 둔 가난한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먹을 것이 없어서 술지게미에 사카린과 물을 타서 자녀들을 먹였다. 빈속에 술지게미를 먹은 자녀들은 취기가 돌았다. 소년은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어린것이 술을 먹고 등교하다니............용서할 수 없다." 소년은 아무 말도 못하고 벌을 받았다. 소년의 어머니는 가난했지만 자녀들에게 항상 '정직'과 '봉사'를 강조했다. 비록 술지게미를 먹였지만 매일 자녀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자녀들과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며 이렇게 강조했다. "너희들은 모두 훌륭한 종들이 될 것이다.

 


오늘의 시련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날이 곧 올 것이다. 술지게미를 먹던 오늘의 고통을 잊지 말아라." 7남매는 어머니로부터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았다. 이 자녀들은 정성해 모두 훌륭한 목화자가 되었다. 이숙녀 전도사와 아들 김선도, 김홍도, 김국도 목사의 이야기이다. 어머니와 함께 드린 가정예배는 자녀들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8. 예배의 자세

보스톤 지역에서 A.J.골든 목사라고 하면 유명한 설교가요. 능력있는 말씀의 사도로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큰 교회 담임목사였기에 설교하는 데에만도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어느 날 그는 교회 목사 사무실에서 힘을 들여 설교를 준비하다가 피곤하여 그만 의자에 앉은 채 책상에 엎드려 깜박 잠이 들어 꿈을 꾸게 되었다. 꿈 속에서도 주일이 되어 교회는 의자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교인들 가운데 30세 정도의 낯선 사람에게 웬지 모르게 시선이 끌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예배가 끝난 다음에 그 낯선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교인들이 목사와 인사를 나누고 다 교회 밖으로 나가버렸는데 그 낯선 사람이 보이지를 않았다. 골든 목사는 안내위원들에게 그 낯선 사람을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안내위원이 하는 말이 “아. 그 사람요. 알고 말구요 그 사람은 예수라고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었다. 예수라고 하는 바람에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그 다음부터 골든 목사님은 회중 가운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앉아계신다고 믿고 설교를 했다. 교인들도 예수님을 중심에 모신 것으로 알고 생활을 했다. 교회는 능력있게 부흥했고 많은 선교사업을 하는 교회가 되었다.

9. 예배냐 회사 일이냐

건축기사 르 투르뇌가 다음과 같은 간증을 하였다.
"우리 교회의 젊은이들은 찬양예배를 드리기 위해 정기적으로 선교단에 가곤 했습니다. 저도 그들과 함께 그곳에 가서 찬양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그 날 저는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어느 소규모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 회사는 다음날까지 어떤 기계를 만들고자 계획 중이었습니다. 저는 그 기계의 디자인을 고안해서 다음날 아침, 회사의 중역에게 전해 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저는 고민했습니다. 맡은 일을 해야 할지, 아니면 선교단 예배에 참석해야 할지 결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 마음 속에서 주님과 제가 싸우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저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다음날 아침까지 그려야 할 디자인을 어떻게 고안할지 전혀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저는 젊은이들과 함께 선교단에 갔습니다. 그 날 우리들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시계는 밤10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까지 저는 어떤 계획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화판 앞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단 5분만에 주요 도안과 계획을 짜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날 밤 제가 그렸던 단순한 그 기계 부품이 전에 제가 만들었던 모든 기계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0. 노인예배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 (누가복음 10:27-28)
많은 노인들이 요즈음 서울 시내 영진교회로 몰리고 있다고 한다. 주일 오후 2시 30분 노인예배 시간이 다가오면 영진교회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찾아 온 노인들로 꽉 찬다.

 


경기도 광주군과 성남시, 군포시, 고양시 등에 살고 있는 노인들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곳에 찾아온다. 25%가 독거노인인 이들이 처음 영진교회로 모이기 시작한 것은 예배보다는 점심, 용돈, 직장알선, 초상화 선물에 더 관심이 있었다.
교회에서 예배 참석자에게 식사와 함께 하루 3천원의 용돈을 드리고 '서울 지하철공사'와 협의, 일자리를 찾아주고 초상화까지 실비로 그려주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노인들이 신앙에 몰입, 젊은이들 이상으로 뜨거운 예배를 드리고 있다. 세례인들도 100여명으로 늘어났다. 특히 이들은 예배시작 1시간 전에 교회로 나와 박규갑 목사의 트럼펫 연주에 맞춰 손뼉치며 찬송한다. 예배에 참석한 한 노인의 말에 의하면 "주일에 친구들을 만나 얘기하고 함께 예배드리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며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 멀리서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11. 예배의 소중함을 알자

본문: 시122: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시122:1)

주일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가는 것이 늘 기쁘십니까? 이삭 목사의 간증을 들어 보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복된 것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80년대 말경 구 소련의 어느 도시에서 이삭 목사는 한 비밀 예배처를 탐방할 기회를 얻었다고 합니다. 예배처에 가보니 예배를 드리기 전부터 성경 통독을 하면서 울던 성도들은 예배가 시작되어서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낡은 풍금으로 반주를 하는 단 몇 명뿐인 성가대의 송영도 울음 때문에 제대로 나오지 않고 회중의 찬송 소리에도 울음이 섞였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나 성찬을 나눌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그렇게 울면서 예배를 드린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 그것이 이 세상에서 드리는 마지막 예배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라고 한 사람이 대답을 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어느날 갑자기 KGB에 잡혀가서 20년 혹은 30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입니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주일마다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우리는 고난 속에서 목숨을 걸고 감격적으로 예배드리는 성도들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집니까?

[기도] 핍박받는 성도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락해 주옵소서

12. 광야의 길에서 예배하라

몇 년 전에 우리 교회에 암으로 죽어 가던 여성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자신이 걸을 수 있는 한 교회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말을 지켰습니다. 나는 그녀의 삶이 거의 다해 가던 어느 날에 그녀가 여위고 허약해진 몸으로 천천히 예배당 안으로 걸어 들어오던 모습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머리카락이 거의 다 빠진 상태였고 얼굴빛은 매우 창백해 보였습니다. 남편이 산소 마스크를 들고 그녀 옆에서 함께 걷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녀를 맨 뒷자리에 조심스럽게 앉혔고, 그녀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손을 들라는 가사의 찬양을 부르는 동안 그녀는 야윈 양손을 위로 들어 올렸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그녀는 힘없이 떨리는 손이었지만 계속해 들고 있었고, 눈을 감고 약간의 미소를 띤 채 나지막하게 찬양을 불렀습니다.
그날 예배에는 두 개의 설교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내가 단상에서 전한 설교였고, 다른 하나는 맨 뒷자리에 앉았던 그녀가 한 마디 말도 없이 행한 설교였습니다. 그리고 두 설교 중에 그녀의 것이 훨씬 더 강력했습니다.
「광야를 정복한 영적 거인」/ 마크 애터베리

* 기도: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음으로 광야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13. 예배 중에 찾아오시는 하나님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 : 22-24)

멀린 캐더로스 목사가 예수님을 믿기 전의 이야기이다. 그가 어느 날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이끌려 반강제적으로 예배에 참석했을 때,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불쌍하게만 보였다. 불쌍한 사람들, 바깥 세상의 재미있는 생활을 모르는 사람들이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창고에서 밤을 허비하려고는 하지않을텐데!
찬송이 시작됐고 나는 찬송가를 부르는 시늉이라도 내어야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는 바로 내 귀에 바짝 대고서 말하는 무거운 소리를 들었다. "뭐냐?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냐? 나는 뒤를 돌아보고서 아무도 없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또 다시 들렸다. "너는 오늘밤 나를 믿기로 결심해야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때는 이미 늦을 것이다." 나는 머리를 흔들면서 자동적으로 말했다. "뭐라고?" "반드시 늦고 말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릴까? 내가 헛소리를 들은 것인가? 그러나 그 음성은 확실히 들렸다. 하나님이다 하나님! 하나님의 음성이다. 하나님은 바로 나를 알고 계시구나! 나는 섬광처럼 깨달았다. 왜 이전에는 그것을 알지 못했을까?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내가지금까지 갈구 했던 모든 것은 하나님 안에서 찾을 수 있으며 하나님은 바로 내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시다.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예, 하나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이시다. 예배 시간을 찾으셔서 사람을 변화시키고 거듭나게 하신다. 하나님을 모르고 조롱하던 생활에서 하나님의 전적인 인도하심에 복종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것이다. 새롭게 변화된 곳에서 이 사람은 신앙생활이 가져다 주는 놀라운 진리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버린 캐더로스, <감옥 생활에서 찬송생활로>,

14. 예배를 드리는 기쁨

음악가 곽상수 씨는 금년에 성가대 지휘 50주년을 맞는다. 22세부터 72세까지 교회 성가대를 지휘했다. 이런 일은 억지로 안된다. 예배드리는 기쁨을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다. 연세대 송자 총장은 박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총장이 되었으나 여전히 성가대 말석에 앉아서 봉사하고 있다. 이런 일도 예배의 기쁨을 스스로 체험하는 자가 아니면 힘든 일이다.

15. 예배의 경건

예배는 기독교인의 지고의 의무이다(레 10:1-11참조).
교회에 가서 저녁식사 때의 얘깃거리나 만들어 오는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배에 임할 때 하나님께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신령과 진정으로’(요 4:24)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예배는 신성해야 한다. 진지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입술의 말이 내면의 참되고 솔직한 표현인지 마음을 살피고 계신다. 예배시간이 지루하다면 어쩌면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경외감이 상실되고 있는 징조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배가 꼭 근엄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쁨과 감격과 갈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흐트러진 몸과 마음, 안일한 자세 등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세는 아니다.
이제, 예배시간을 맞이할 때마다, 당신은 다른 사람보다 먼저 나가 진지하게 이 날의 예배와 자신과 예배 인도자를 위해 기도드리기 시작하라. 분명히 새로운 은혜를 맛보기 시작할 것이다.

16. 예배시간 모자를 쓴 교인

미국의 어느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목사님이 어느날 예배를 인도하다 보니까 어떤 교인 하나가 굉장히 테가 큰 괴상한 모자를 쓰고 중앙에 앉아 있더랍니다. 그 사람의 모습이 에배드리는데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서 목사님은 집사님 한 분에게 그 교인에게 가서 교회당에서 에배를 드릴때는 모자를 벗는 것이 예의라고 일러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집사님이 그 교인에게 가서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성도님, 교회에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릴 때는 모자를 벗는 것이 예의입니다. 모자를 좀 벗어 주시겠습니까?`이렇게 이야기를 했더니 그 사람은 너무도 감사해 하더랍니다. 그 모습이 이상해서, 나중에 예배가 끝나고 나서 그렇게 감사했느냐고 물으니까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제가 이 교회에 출석한지 6개월쯤 되었는데, 그동안 아무도 제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당신이 처음으로 저에게 이야기를 걸어주셔서 너무도 감사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자신에게 이야기를 걸어줄 사람을 찾기 위해서 그런 식으로 관심을 끌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먼저 믿은 사람들이 교회에 처음으로 출석한 이웃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극적인 요소가 될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새로 온 교인들 편에서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능동적으로 교제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