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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프리즘 ■/예화

【고통 】 예화모음 56편

by 고동엽. 2022. 6. 9.
[처음 목차 돌아가기]
 
 
1.고통과 시련 중에서


연주를 듣다가 왕이 벌떡 일어났다는 그 유명한 ‘할렐루야’를 작곡한 헨델은 건강이 매우 나빴다고 한다. 그는 병을 고치기 위해 재산을 모두 탕진했고, 그러고도 모자라서 남의 돈을 빌려 썼다. 그러나 건강도 찾지 못했고 돈도 갚지 못했다. 결국 반신불수의 비참한 상태로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그때 그는 불행했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그가 남긴 불후의 음악인 할렐루야를 작곡한 곳은 바로 이 감옥이다. 소설가 O.헨리도 마찬가지다. 그는 은행원으로 근무할 때 부정 대출에 관련되어 감옥에 들어가야만 했다. 거기에서 그는 무료함과 고독을 견디는 방편으로 글을 썼다. 그것이 저 유명한 「마지막 잎새」다. 미국에서 네 번이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은 루즈벨트뿐이다. 그 역시 소아마비로 지체가 부자유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세계 초강대국의 영도자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헨델도, 헨리도, 루즈벨트도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감사했던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기에 그들은 고통의 심연 속에서도 위대한 음악, 위대한 글, 위대한 업적을 건져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고통과 시련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가만히 귀기울일 일이다. 나직하나 분명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하나님의 소리를 귀담아 들을 일이다. 당신을 사랑하기에,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은 결코 주시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2.고통 속의 감사


고난을 당해 보았기 때문에 드디어 감사할 줄 아는 귀한 형제 자매들을 봅니다. 너무나 돈이 궁색해서 나중에는 불과 단돈 몇 천원을 들고도 눈물로 감사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된 모습을 저는 봅니다. 하늘처럼 보이던 남편이 졸지에 몰락하여 낭떠러지 아래로 처참하게 떨어진 모습을 보자마자 비로소 남편에 대한 진한 애정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을 하는 부인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실패를 모르고 승승장구하던 형제가 난관에 부딪쳐 좌초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인정하는 겸손한 사람으로 바뀌는 모습을 봅니다. 이 세상의 것보다 더 영원한 것을 관심있게 생각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변모된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 제 생각이 무저진 그 폐허에 당신의 집을 잘 세우심을 찬양합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에서 마이너스란 절대로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지나온 삶에서 눈물을 흘리며 좌절을 맛보며 깊은 탄식도 자주 했지만 그것이 다 마이너스가 아닙니다. 그 모두가 부정적으로 보아야 할 실패작이 아닙니다. 당신이 울고 있는 그 자리에다 하나님이 자기 생각대로 지어놓은 멋진 맨션을 보십시오. 당신이 지으려던 집보다 훨씬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왜 절망을 해야 합니까? “나의 생각은 끝없이 어리석었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지혜로웠습니다. 주님의 생각대로 된 것을 감사합니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은 것을 감사합니다.”어려운 고통 속에서라도 이렇게 감사하며 주님 앞에 회개의 눈물을 흘릴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크신 축복을 우리 모두에게 안겨주실 것입니다.


3. 고통은 '보물의 창고'


떠돌이 땜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빈민 농촌에서 자란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열심히 책을 읽으며 꿈을 키워 존 밀턴과 함께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라는 칭송을 받게 되었다. 그가 바로 〈천로역정〉의 작가 존 버니언(1628-1688)이다. 그는 인생이 꽃필 33세 때 종교재판에 의해 투옥돼 12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그러나 가장 고통스러운 기간에 가장 빛나는 문학의 업적을 이루었다. 〈천로역정〉은 이때 쓰여진 것이다.
그는 말한다. "그렇게 찾아다녔던 보물을 고통의 감옥 안에서 찾을 수 있었다."



4.고통을 보상하는 회개


1939년 평양 술실전문학교 강당에서 마펫(1864-1939) 목사 선교4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한국교회 초기선교에 있어 등불이었던 마펫 목사는 감회어린 표정으로 이런 답사를 했다.
"제 턱엔 깊은 상처가 있습니다. 어느날 저녁 예배인도차 교회에 가는데 돌멩이가 마구 날라와 제 턱을 쳐 큰 상처를 낸 것입니다. 평양 깡패들의 소행이었는데 바로 그 깡패 중엔 지금 저쪽에 앉아 있는 이기풍 목사도 있었습니다. 그가 회개하고 목사까지 되었으니 나는 상처가 났어도 기쁩니다." 장내는 박수소리로 떠나갈 듯했다.



5.고통을 아는 영혼


환란은 성장의 법칙이요 우리의 신앙은 이 세계의 폭풍우와 긴장 속에서 만들어진다.
뷔엔나의 어떤 유명한 음악 교사가 자기 문하에서 사사하는 제자 한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그 여자는 참으로 훌륭한 가수이다. 그러나 그 여자의 노래에는 무엇인지 모르게 한 가지 부족한 느낌이 있다. 인생은 지금까지 그 여자에게 너무 친절하였던 것 같다. 즉, 그녀의 노래에는 고통을 아는 영혼이 없다. 그러나 어느 날 무엇인가가 그 여자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만 하면 그 여자는 구라파에서제일 가는 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Broken heart"에서만 참다운 음악이나 예술이 창조된다는 뜻이다."
서양 격언에 "냇물에서 돌들을 치워 버리면 냇물은 노래를 잃어버린다는 말이 있다. 인생은 과연 마음대로 안되는 반대나 저항이나 방해물이 있어야 우리의 영혼 속에서 괴뇌를 통한 노래가 흘러 나온다.
환란이란 것은 물론 그 자체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로써 연단을 받으면 마침내 우리의 인격 안에서 미를 창조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란을 선용하여 우리의 인격 건설의 자료로 삼아야 하겠다.

6. 고통을 선택하는 자



나치에 처형된 (1945) 본회퍼는 옥중서한에서 이렇게 말했다. "명령에 따라 고통받는 것은 자의로 고통받는 것보다 쉽다. 여럿이 함께 고통받는 것은 혼자 고통받는 것보다 쉽다.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것이 정신적으로 받는 것보다 쉽다. 그런데 예수는 자의로 혼자서 육체와 정신의 고통을 받으셨다."
아서왕(King Arther)은 기사들이 일선에서 돌아오면 으레히 묻는 질문이 있었다. "그대는 희생의 흔적을 지니고 왔는가?" 전쟁에서 상처를 입고 돌아왔느냐는 질문이었다. 그 흔적이 있는 기사는 왕의 만찬에 동참했고 없으면 다시 일선으로 보냈다.

7.고통의 배후에는...



김준곤 목사님은 우리가 익히 알고 존경하는 분입니다. 그분이 당하신 고통에 비하면 저의 고통은 내놓기조차 부끄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 목사님은 어린 시절에 동생이 불꽃놀이를 하다가 심한 화상을 입고 죽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동생이 벌목하는 현장에서 쓰러지는 나무에 치여 비명에 가는 슬픔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6.25 때는 그 누구보다도 처참한 경험을 했습니다. 가족은 공산당에게 학살당하고 자신은 스물세 번이나 그들에게 끌려가 구타당한 끝에 인민재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구사일생이 아니라 백사일생으로 살아난 목숨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에는 고등학교 교감으로 일하던 동생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 후 사랑하던 딸마저 위암으로 부모의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그의 아픈 심정을 어떻게 다 형언할 수 있겠습니까? 햇살뿐만 아니라 구름과 폭우가 있어야만 자연이 풍요로워지듯이 우리의 인생도 햇살만 창창하다고 해서 풍요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고통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요, 선한 것이요, 보람된 것일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고통을 비관하지 마세요. 당신이 당하는 고통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선하신 하나님이 당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8.고통의 섭리


고통에 관한 몇 가지 명상
-고통에는 반드시 뜻이 있다.
-전에는 몰랐으나 고통을 당한 뒤 비로소 자산의 모습을 보게 된다.
-고통당할 때는 스스로를 축소 지향적으로 여기지 말라.
-고통의 상황에 절망할 것이 아니라 고통 너머의 절대자를 의지하라.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신다.
-고통의 때는 새로워질 수 있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이다.
-인간의 절망은 복된 섭리의 시작이다.
-고통의 때에 서로가 하나될 수 있다.



9.고통이 없는 곳


어떤 교인이 목사님과 상담을 나누면서 "제게는 너무 상처가 많아요. 왜 이러한 십자가를 져야 합니까? 이 어려운 시련과 문제가 전혀 없는 곳이 없겠습니까?" 하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때 목사님의 대답은 "상처도, 고통도 전혀없는 세계가 한 곳 있기는 있지요. 공동묘지로 가십시요. 상처도, 고통도 없는 곳은 바로 그곳 뿐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No cross,no Crown) 입니다.


10.영혼의 고통과 몸부림


어두운 곳에 있다가 밝은 곳으로 나오면 눈이 부셔서 똑바로 뜰 수 없습니다. 어두운 곳에 오랫동안 있었다면 수건으로 눈을 감싸고 나온 다음에 조금씩 빛에 반응하면서 수선을 벗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명하거나 눈을 다치게 됩니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산에서 내려오는데 그 얼굴에 광채가 나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냥 빛이 아니라 누구든지 그 빛을 보면 즉사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강한 빛입니다. 그 빛의 옆에 있기만 해도 빛의 영향을 받아서 다른 사람들이 눈뜨고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해집니다. 그래서 옛날 성인들의 그림을 보면 얼굴 주위에 둥그렇게 빛나는 후광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는 서서히 그 빛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해요. 그 기간은 영혼이 고통을 느끼며 내면이 깨지는 아픔을 맛보아야 하는 기간입니다. 왜냐하면 밝은 빛에 드러나는 나의 모습을 보면 그 추하고 더러움이 얼마나 심한지 고통스럽게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거든요. 그런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빛이신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최용우



11.고통받는 이웃들을 향한 태도


인생의 여정은 고통의 여정입니다. 고통에서 예외인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인생을 살아가며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해석함에는 관대하지만 이웃들의 고통을 해석함에는 너그럽지 못합니다. 나는 억울하게 이런 고통을 당하지만 내 이웃들은 그런 고통을 당함이 당연하다고 간주하는 것입니다.
잠언 기자는 가난한 자를 멸시함은 그를 지으신 창조자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어떤 예술가의 작품을 멸시함은 그 작가 자신을 멸시함인 것입니다. 성경은 창조자는 모든 인생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지으셨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바로 그분의 걸작품들인 것입니다. 가난한 이웃도 동일하게 주님의 작품인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도상에서 전혀 준비되지 못 한 채로 재앙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재앙의 결과도 실로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하게 되고, 어떤 사람은 장애인이 되기도 하도, 또 어떤 사람은 관계의 상실로 평생을 고독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재앙의 결과로 나머지 여생을 어떻게 살아가든 그들 모두는 하나님의 작품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재앙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웃들을 대하는 성도의 마땅한 태도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종종 우리 중에는 이런 이웃들을 진지한 긍휼로 대하기 보다 더 오히려 이들의 재앙을 기뻐하는 잔인함을 보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잠언은 이런 사람들이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고통 받는 이웃들을 향한 합당한 태도는 긍휼 뿐입니다. /이동원 목사



12.고통 받는 남편들


아이들 앞에서 자기를 무시하는 아내 때문에 점점 무기력해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남편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남편들은 “남자는 등뼈 대신 가슴뼈를 지니고 있다.”는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를 이끌어갈 수 있는 등뼈에서 나오는 강한 힘은 지니고 있지 못하면서 그저 마음속으로만 아내가 자신의 권위에 복종하고 존경해주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특성을 혹시 자신도 지니고 있지나 않은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남편은 먼저 남편으로서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분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남편은 가정의 지도자로써 아내와 아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면서 삶의 모범을 보이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될 때 남편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하나님이 주시는 변화를 갈구해야겠지요.
이 같은 남편의 헌신과 삶의 변화 앞에서 아내들도 남편의 외형적인 등뼈의 능력 보다는 따뜻한 가슴뼈의 역할에 감동되어 남편에게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남편이 가슴뼈로 상징되는 사랑의 삶으로 변화될 때 그 가정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넘쳐 날 것입니다. 오늘도 고통 받는 남편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같은 하나님의 원리를 당신 삶 속에 적용하면서 그 고통의 늪으로부터 빠져 나오시기를 소망합니다. 강안삼 장로



13.고통 어루만지기


이해는 깊이 바라보는 과정에서 생긴다.
내가 고통을 받는 유일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의 형제자매들도 고통을 받는다. 그들의 고통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그들을 비난하지 않게 되고 우리의 고통은 멎게 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어루만질 수 있다면
이해는 거기에서 생겨난다. - 브라이언 피어스의《동행》중에서 -
* 우리가 겪는 많은 문제는
서로의 고통을 어루만지지 못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자신의 고통은 크고 중하게 여기면서 다른 사람의 고통은
작고 가볍게 여길 때, 서로의 고통 어루만지기는 불가능합니다.
자기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우리 형제자매들'의 마음을
깊이 바라볼 때 진정한 이해도 생겨나고
소통도 가능해집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14.고통의 가치


1973년, 호주 출신 작가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패트릭 화이트’는 특별한 삶을 살았습니다. 일찌감치 영국으로 건너가 열심히 작품을 썼지만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는 못했습니다. 낙심한 그는 호주로 돌아와 나무꾼이 되었습니다. 깊은 산속에서 생활하며 『행복의 계곡』과 『인간의 나무』 등 많은 소설을 썼습니다. 마침내 사람들의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깊은 계곡에서 나무를 베며 살아가는 삶은 고되지만, 그는 그곳을 ‘행복한 계곡’이라 불렀습니다. 작품을 통해 그는 “인간은 자신이 겪은 고통의 분량만큼 진보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의 나무』라는 작품에서는 “인간은 진정으로 겸손해질 때 하나님과 가장 가깝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고통은 눈에 보이는 것 그 이상입니다. 지금 겪고 있는 그 고통으로 인해 한 걸음 더 나아가십시오.
주님! 고통의 참 가치를 알고 도리어 기대하는 마음을 주소서.
현재의 삶 속에서 겪는 고통이 도리어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을 기대합시다.<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15.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여인


14년 전에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여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고통과 근심은 불행하긴 하지만 좋은 성격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나는 경험했습니다. 물론 고통, 그 자체는 반가운 것이 못 됩니다. 그러나 외부에서 찾을 수 없는 행복을 내심에서 찾게 해 주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행복만을 잡으려고 허둥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행복은 근본적으로 내적인 상태, 내적인 성공을 말합니다. 나는 천국이 우리의 내심에 있다고 하고 싶습니다."
고통은 자신을 이해하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자신을 이해하는 정도에 따라서 우리는 이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행복은 사물을 추구하거나 소유하는 데서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행복은 나의 고통에서 그리고 이웃의 고통에 참여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장 20~21)



16.고통은 새로운 기회이다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태어난 비버리 스미스는 특수한 병을 가진 소녀이다.
머리를 다쳐 피가 흘러도, 뜨거운 물에 손이 데어서 화상을 입어도 울지를 않는다. 잘 참아서가 아니라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중추신경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데, 아직 치료방법은 없다고 한다.
이 소녀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울지 않을 뿐 아니라 위험한 것을 자각하지도 못한다. 이런 것을 보면 사람이 아픔을 느낀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혜택인지 모른다. 사람에게 아픔의 자각은 꼭 필요하다.
데이비드 브린클리라는 사람은 "신은 가끔 빵 대신 벽돌을 던져주시는데, 어떤 사람은 원망하면서 그 벽돌을 차다가 발가락 하나가 더 부러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 벽돌을 주춧돌로 삼아 기막힌 집을 짓기도 한다"는 명언을 했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인 귀족 세 가족이 가장 안전한 곳을 연구한 결과 오키나와 섬으로 결정짓고 그리로 피신을 했다. 그러나 그곳이 가장 위험한 격전지가 되고 말았다.
어둠이나 아픔이나 고통을 피해 다니기만 하려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대부분 도리어 그것에 삼킴을 당하고 만다. 서양 속담에 "고난은 맞서서 이기고 죄는 피해서 이기라"는 말이 있다.



17.큰 능력인 고통


금세기초 세계의 존경과 사랑을 받던 지휘자가 있습니다. 토스카니니하면 누구나 잘알고 있는 명성있던 지휘자입니다.
그는 원래 첼로 연주자로서 심한 근시로 인해 연주 중에는 악보를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연주 때마다 연주할 악보를 모두 외워서 연주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주회를 앞두고 그 악단의 지휘자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단원들 중에 누군가에게 지휘를 대신 부탁해야 할 입장이었습니다.
그때 악보를 모두 외우고 있던 토스카니니가 선발되어서 임시 지휘를 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세계적 대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만약 토스카니니가 그토록 시력이 나쁘지 않았다면 유럽의 한 첼로 연주자에 불과했었을 것입니다.
시력이 나빠서 악보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악보를 모두 외울 수가 있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세계적인 지휘자로 등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고통을 당한다는 것은 괴롭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고통은 더 큰 능력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토스카니니는 이런 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어려울 때 힘되신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좋은 환경이 아니라고 해서 불평하지 말자, 좋은 환경만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아담은 에덴동산과 같은 좋은 환경에서도 타락하지 아니했는가. 눈물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리자, 눈물 있는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때 더 똑똑히 바라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에게 가까이 오셔서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힘이 되어주신다.”



18.무감각의 고통


일본의 작가 중 엔도 슈우사꾸라는 사람이 (바다와 독약)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일본의 후방 가지 병원에 있던 젊은 군의관 로다는 일본 군부의 명령을 받아 미군 포로를 잡아다가 마취시켜서 생체 실험하는 데 참가했습니다. 처음에는 미군 포로를 잡아서 진단하는 헐하다가 그 포로들에게 병이 들었으니까 수술을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미군 포로가 처음에는 의심하고 거부해 보려고 했77만 적의 의사이든 아군 의사이든 혹은 전쟁 중이든 평화시이든 의사만은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의사에 대한 절대 신뢰로 수술을 승락했습니다. 일본 의사는 미국 포로의 몸을 해부해서 왼쪽 폐 전체를 잘라 내고 오른쪽 폐의 상엽을 절단했습니다. 폐를 얼마만큼 남겨 놓았을 때 사람은 얼마 동안 살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리를 잘랐을 경우에는 얼마 동안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생체 실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73은 로다라는 의사는 그 순간에 자기의 귓가에 반복해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죽였다. 죽였다. '라는 소리가 들려왔고, 또 '나는 책임이 없다. 내가 한 것이 아니다. 누구도 안 할 수 없다. 나와는 상관없다. 나는 책임이 없다. '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이후로 의사는 거의 자아를 상실하고 망령처럼 삽니다. 자기가 잘라 낸 미군 포로의 폐를 보며 그 젊은 의사는 무엇을 생각했겠습니까? 그는 미쳐 버렸습니다. 그가 무서워하는 것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 있던 사람의 폐를 보고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죽인 인간의 일부분을 보고도 무감각하고 괴로와하지 않는 무시무시한 자기의 마음을 보고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지금 코가 원하는 것은 가책이었습니다. 가슴의 고통이었습니다. 마음을 찢는 회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생기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설혹 세상의 재판관이 비록 그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정상을 참작해 줄지라도 이대로는 끝날 수가 없는 것이다. '라는 말을 남겨 놓고 그 작품은 끝납니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엡4:19.20)



19.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미시간 주 서부에 사는 15세 소년이 암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화학 요법은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었지만 구역질이 심하게 나고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소년은 병이 가장 불확실하고 고통스러울 때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머리카락이 빠진 채 학교에 가야 했다. 그런데 학교에 간 소년은 놀라운 일을 발견했다. 소년의 많은 친구들의 머리에도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친구들은 모두 머리를 면도하고 왔다. 그들은 친구의 고통을 줄여주고 친구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 끝에, 친구와 똑같이 머리를 자르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다른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인 감정 이입은 공동체 내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복된 표식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몸의 지체들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손을 내밀어 서로를 돕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서로에게 제공하는 보살핌의 명칭은 사랑이며, 사랑은 결코 자신의 방법만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들 각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히 이해되는 것처럼, 남녀간의 사랑도 계속해서 상대방을 온전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20.이해할 수 없는 고통


핸들리 모울이 더햄 지방의 주교로 있을 때 광산 사고 사망자 170명의 가족들을 방문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는 어떻게 그들을 위로할까 고민하고 있다가 어머니가 준 작은 책갈피를 집어들었다. 그것은 뜨 개질된 천조각이었는데 그 뒷면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글자만 새겨져 있었다. 세상은 뜨개질로 만든 책갈 피마냥 이리저리 얽혀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뒤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선한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를 통해 고통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도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고통들이 있다. 메이드스톤의 주교인 가빈 레이드는 한살 때 낙상으로 척추를 다쳐 병원 출입을 했던 자기 교회 소년에 대하여 말했다. 그 소년은 “하나님은 공평하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가빈 은 이렇게 물었다. “몇 살이니?” “열일곱 살이에요.” “병원 에는 얼마 동안 다녔니?” “십삼 년 동안이요.” 가빈은 다시 물었다. “그래도 하나님은 공평하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니?” 소년은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많은 보상을 해주실 영원한 것들을 준비하고 계시거든요.” 하나님은 실로 영원한 것으로 보상해주신다.


21.위대한 고통


위대한 일을 성취하는 사람은
위대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다.
고통의 해결은 고통의 감지에서 시작되고,
위대한 고통은 그것을 해결함으로써 인간의 자부심을
드높일 수 있는 위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위대한 고통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은
축복을 받았다고...
위대한 고통이라 해서 특별한 것은 아닐 겁니다. 자기 자신의 고통보다 남의 고통, 그것도 자기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지금 무슨 일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지를 알아채고 함께 아파해 주는 데서 비롯됩니다. 오늘 아침, 가까운 누군가에게
"정말 미안하다. 그래, 그동안 얼마나 혼자서 괴로워했니"라고 말하는 순간이 바로 그 출발점입니다.



22.고통으로 맺은 열매


쾌적하고 아름다운 열대지방이 강한 불굴의 진보적인 사람들의 거주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암시적이다.
개척정신이 풍부한 진보적인 사람들은 어려운 기후와 풍토에 살고 있었다. 사치한 생활은 인내력이 강한 사람을 만들지 못한다. 사람은 고난에 의하여 단련되고 난관을 만남으로 강하게 되며 시련에 의하여 굳은 신앙이 세워지는 것이다.
안일한 환경에서 약하고 우유부단하던 사람도 고통을 맛보게 되면서 성숙되어지고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23.경험해 보지 못한 이야기


감나무에 감이 안 달리면 감나무에 개나 소를 매어 놓았단다.
개나 소를 나무에 매어 놓으면 나무의 껍질이 까지는데, 껍질이 까지라고 일부러 짐승을 매어 놓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껍질이 벗겨진 나무는 위기를 느끼게 되고, 그러면 열매를 잘 맺게 된단다.
친구 목사로부터 듣는 감나무 이야기다. 고난이 삶을 성숙시킨다는 이야기를 그는 어릴 적 듣고 본 감나무 이야기를 통해 하고 있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이야기가 재미있다.



24.고통에서 벗어 나려면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중병에 있는 안티스테네스를 문병했다. "제발 나를 이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게나." 병에 시달린 안티스테네스는 신음하듯 말했다. 그것은 의지의 철학자답지 않은 나약한 모습이었다.
디오게네다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갑자기 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을 빼어들고 친구의 가슴을 겨누었다.
뜻 밖의 사태에 놀란 안티스테네스는 "이 사람아, 벗어나고 싶은건 고통이지 목숨이 아니네."라고 소리치며 병상에서 일어섰다. 디오게네스는 말했다. "그 정신으로 살면 해방되네."



25.고통을 당할 때


수잔이 태어난 지 18개월 되었을 때였습니다. 의사가 심하게 튼 입술을 마취도 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꿰매는 동안 나는 진찰대 위에서 수잔을 붙들고 있어야 했습니다. 국소 마취약을 주사하는 것이 마취약 없이 꿰매는 것만큼이나 아플 뿐 아니라 조직이 뒤틀려 흉터가 남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 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설명해 주려고 해봤자 18개월 밖에 안된 아이가 뭘 알겠습니까? 과연 이 애가 고통과 공포 속에서 얼마나 많은 걸 이해했을까요? 내 딸이 백혈병에 걸리기 이전에 누군가 내 딸에게 방사선과 독한 화학 요법을 사용했더라면 나는 분명 화를 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날이 왔을 때 나는 그것을 기꺼이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로서 더 큰 것을 위해 그것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기까지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까닭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하는 고통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당할 때 종종 그 이유들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C.S.루이스는 그의 아내가 죽은 후에 이렇게 썼습니다. "당신의 눈이 눈물로 얼룩져 있는 한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26.고통 중에 감사


성가 작곡가인 웬델 라브레스는 64세 된 할머니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16년 동안 온 몸에 통증이 있고, 사지를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병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누구보다도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할머니는 신체의 모든 부분이 마비되었어도, 오른쪽 엄지 손가락만은 아직 쓸 수 있다는 엄청난 복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쪽 손은 완전히 굳어 움직일 수 없었지만 오른쪽 엄지 손가락으로는 막대기에 매어 놓은 끝이 두 갈래 난 포크를 사용해 안경을 쓸 수 있었고, 음식을 스스로 먹을 수 있었으며, 빨대를 사용해 차를 마실 수 있었고, 성경 책장도 넘길 수 있었습니다. 실로 엄청난 노력을 들여 이 엄지 손가락 하나만을 사용함으로써 할머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을 위로하러 온 한 방문자에게 할머니는 말했습니다. "나는 감사할 일이 너무 많아요. 나의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았으니 이제는 나의 구주 예수님의 크신 사랑 안에서 거할 수 있으며, 그 사랑을 마음껏 느낄 수가 있거든요." 그러자 그 방문자는 의아해 하면서 "때로는 낙심되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주저하지 않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주님이 저를 이 세상에서 지켜주시는 한, 이곳에 누워 만족할 뿐입니다. 또 언제든지 주께서 부르시면 이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27.고통스러운 기도


화가 알베르트와 그의 친구와의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화가 지망생들이었지만 너무나 가난하여서 그림 공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알베르트와 그의 친구는 오랫동안 궁리한 끝에 한 방법을 찾았습니다. 한 사람이 먼저 그림 공부를 하고, 그동안 다른 한 사람은 돈을 벌어서 그림 공부를 하는 친구를 돕자는 것이었습니다.
알베르트가 먼저 그림 공부를 하기로 하고, 친구는 잠시 그림을 뒤로 하고 일터로 나갔습니다. 한 친구는 열심히 일을 해서 알베르트의 학비를 도왔고,알베르트는 열심히 그림 공부를 했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드디어 알베르트는 이름있는 화가로 성장했습니다. 이제 알베르트의 친구가 공부해야 할 차례입니다. "이제 자네 차례야, 그동안 고생이 많았네. 내 그림이 이제는 꽤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으니 돈 걱정은 말고 그림 공부에 전념하게."
친구는 기쁜 마음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새로운 실망과 좌절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너무나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고 일만 해왔기 때문에 손이 굳어져 세밀한 그림을 그리는 데는 이제 쓸모없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는 실망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친구도 원망하였지만, 결국 그는 신앙으로 슬픔을 이기고 하나님께 오히려 그의 친구를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알베르트는 그림 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친구의 화실에 들어가려 할 때, 화실 안에서 들려오는 친구의 기도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흐느끼면서 자신의 현실을 안타깝게 하나님께 호소하며,그러나 알베르트를 용서하고 오히려 알베르트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친구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알베르트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문 틈으로 보이던 친구의 거친 손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이 유명한 '기도하는 손'이라는 알베르트의 대표작입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이 기도하는 손의 주인공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28.인간이 겪는 4가지 고통과 해결책


본문: 시편 107편 1-32절
1. 방황과 불안과 목마름의 고통(4-5절)
사람이 방황하고, 불안해하고, 주리고, 목말라하고, 피곤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이유를 대겠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돈을 추구하는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평안하게 살려면 '돈을 추구하는 삶'이 아닌 '돈이 따라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면서 땀을 흘리면 행복이 따라오고, 곧 축복도 따라옵니다.
2. 나쁜 습관에 매인 삶의 고통(10-12절)
내가 즐겨하는 일이 내 가치관을 증명하고, 내가 즐겨 찾는 친구가 내 사람됨을 증명합니다. 자신이 즐겨하는 습관이 나쁘고, 자신이 즐겨 찾는 친구가 나쁘면 과감히 정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습관화를 조심해야 합니다. '좋은 습관을 기르는 것'과 '습관화하는 것'은 다릅니다. 나쁜 습관은 행복을 빼앗아 가지만 좋은 것을 습관적으로 하는 것도 행복을 빼앗아 갑니다.
3. 삶에 대한 의욕 상실의 고통(17-18절)
왜 사람이 의욕을 상실하게 될까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에 대한 지나친 기대' 때문입니다. 목표는 필요하지만 지나친 목표는 금물이고, 기대는 필요하지만 지나친 기대는 금물입니다. 주님께 인정받으려는 것은 기대이지만 사람에게까지 인정받으려는 것은 지나친 기대입니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욕망이 크면 주름살은 늘어나고 조만간 의욕상실에 빠지게 됩니다.
4.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고통(26-27절)
평소에는 믿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고난 중에 믿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분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사랑이 많은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의 성공을 보고 시기가 생기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 삶은 내가 나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나를 통제하게 하는 불신적인 삶입니다.
참 믿음이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사는 능력입니다.
위 4가지 고통의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각 고통을 설명한 다음 구절에 해답이 있습니다. "이제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6절)
"이제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13절)
"이제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19절)
"이제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28절)
사람마다 사는 모습이 다르고, 사는 환경과 성격이 달라도 고통이 있다는 점은 똑같고, 사람마다 겪는 고통의 모습은 달라도 해결책이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라는 점은 똑같습니다. 내게 주어지는 고통은 두려워하고 떨어지는 기회가 아니라 기도하고 올라서는 기회입니다.



29.고통이 주는 선물


도스토예스프스키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간질병과 사형수의 고통이었다.
로트레크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그를 경멸 덩어리로 만들었던 난장이라는 고통이었다.
생텍쥐페리를 위대하게 만든 것도 그를 일생 동안 대기 발령자로 살아가게 한 평가 절하의 고통이었다.
베토벤을 위대하게 만든 것도 끊임없는 여인들과의 실연과 청신경 마비라는 음악가 최대의 고통이었던 것이다.
고통은 불행이나 불운이 결코 아니다.
고통이란 도리어 행복과 은총을 위한 가장 아름다운 번제물인 것이다.
당신이 지금 지나치게 행복하다면 그것은 곧 불행이다.
당신이 지금 지나치게 불행하다면 그것은 곧 행복이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 비로소 자아를 불사를 용광로 속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되며, 용광로 속에서 신의 손에 의해 아름다운 은으로 새롭게 빚어지는 것이다.
- 강유일 <아아, 날이 새면 집 지으리라> 중에서 -
현재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포기하기 보다 행복의 밑거름으로 생각하며 고통을 극복한다면 더 아름다운 행복이 미래를 밝혀 주겠지요.
날이 쌀쌀해지면서 고통 받고 있는 이웃을 생각하게 합니다. 행복한 시간되세요.



30.인생과 고통


북미의 나이아가라 폭포나 남미의 이과수폭포는 그 위용이 거대합니다. 이들 폭포는 쏟아져내리는 물줄기의 폭과 높이가 세계적인 폭포입니다. 아마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한 해 수백만명은 될 것입니다. 만일 이렇게 물줄기의 폭이 넓지 않고 낙차가 없이 고요히 흐르기만 한다면 구경거리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물이 바위에 부딪혀 굽이치고 물줄기가 곤두박질쳐 폭포를 이루는 모습이 장관이기 때문에 보고 싶어합니다.
텔레비전이 방영하는 인생극장의 주인공들은 모두 거친 삶을 경험한 인물들입니다. 부딪치고,꺾이고, 떨어지고, 망가진 곳에서 다시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감동을 줍니다. 고통은 인간에게 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덕을 주는 것입니다. 고통은 또 다른 은혜입니다. 마이클 몰리노스는 그의 책에서 “고통은 영혼을 깨끗하게 한다. 고통을 통한 영혼의 정화는 인내를 낳는다”고 말했습니다.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고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31.고통을 이겨내는 길


무엇인가 잘 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있지만 무엇이 어떻게 잘 못되고 있는지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을 때,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고 발버둥을 쳐보지만 헤어날 수 없을 때, 그리고 고통스럽지 않은 것처럼 애써 부인하려 하지만 여전히 고통스러울 때 ‘고통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는 일’이야말로 가장 우선적으로 중요하다.
고통은 또한 우리가 그것을 다룰 때에 부드럽고 친절하게 다루어주기를 원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두려움과 미움, 염려, 그리고 분노 등은 마치 엄마가 아이를 조심스럽고 사랑스럽게 팔에 안아주듯이 따뜻하게 부둥켜안아 주어야만 할 대상들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참으로 신비스런 장치를 우리 안에 만드셨는데 그것은 우리가 고통스러울 때 아픔을 느끼게 함으로써 미리 경보장치가 작동할 수 있도록 하신 일이다. 몸의 어떤 일부가 아파하는 것은 바로 ‘나를 좀 알아주세요. 관심을 더 기울여서 돌봐주세요’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만약에 이런 경고를 무시하게 된다면 나중엔 더욱 큰 고통을 당하게 될게 뻔하다. 그러므로 그 고통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 신체적인 것에서 연루되었는지, 아니면 물질적인 것인지, 혹은 심리적인 것인지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우리의 상처, 혹은 고통은 어떻게든 그 존재가 인식되어져야만 하고 그 실체가 되도록 명백히 드러나야만 한다. 내 고통이 바로 내 영성수련의 주제이며 동시에 우리의 명상과 기도의 대상이 된다.
고통을 경험하게 되면 그것으로부터 어떻게든 도망치려 발버둥치지만 사실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는 일부터 중단해야만 한다. 용기를 가지고 가장 부드럽고 따뜻하게 고통을 대면하여 제대로 인식하며, 알아주고 그것을 드러내는 일이야말로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된다. 우리의 고통은 우울 때문인지, 병 때문인지, 인간관계로부터 오는 상처인지, 또는 두려움 때문인지 그 원인이 이해되어져야만 한다. 그런데 고통의 원인은 그것을 알고자 하는 이의 ‘의도가 얼마만큼 강한 것이냐’에 따라 알려지게 돼있다. 왜 고통스러운지 그 원인을 알 수만 있다면 치유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고통의 원인 그 자체가 곧 고통을 벗어나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32.고통을 나눈다는 것


고통받고 있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일은 무엇보다도 ‘함께 있어 주는 일’이다.사랑한다고 수 백번 고백하는 것보다도 고통스러울 때 함께 있어 주는 것이 더욱 가치 있는 일이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은 ‘당신을 위해 제가 여기 있어요’하는 소리다.
온 마음과 정신을 집중해서 ‘마음의 소리’를 듣는 훈련을 계속하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고통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누구도 그 사람의 고통을 진정으로 알아주고 들어주지 못했다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고통의 소리를 들어주고 이해해 주기만 한다면 바로 그 순간에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고통의 무게가 푹 내려앉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사람이 간절히 듣고 싶은 말은 ‘당신이 고통 당하고 있음을 저는 알아요. 그리고 당신이 고통 당하는 것처럼 저에게 가슴 아픈 일은 없어요’라는 속삭임인 것이다.
고통받는 이를 판단, 비판하지 않고 단순히 그 사람의 고통이 덜어졌으면 하는 순수한 의도만을 갖고 말할 수 없는 사랑과 긍휼의 가슴으로 그 고통을 알아주고 들어주게 된다면 그의 고통은 반드시 치유될 것이다. 지금까지 상담을 할 때마다 계속해서 실천해오는 일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적어도 상담 약속시간 10분전에 도착하여 내담자를 기다리면서 내 가슴 위에 두 손을 얹은 채 ‘상담하게 될 내담자의 고통을 나의 심정으로 느끼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다. 내가 분명히 확신하는 것은 그 사람의 고통을 나 자신이 함께 느껴 보기 전에는 그 사람을 도울 수도 없고 진정한 치유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상담자로서 내담자를 대할 때마다 그 사람의 상처와 아픔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내담자에 대해 끊임없는 존경과 사랑과 긍휼의 마음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사랑의 영성이 상담자의 내면 깊숙이 계속 충분히 유지되도록 하려면 깊은 자아성찰과 계속적인 영성수련이 필요하다.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고통의 소리를 들어주는 일’이고 그것을 알아주는 일이다.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은 아마도 이런 말을 가장 듣고 싶어할 것이다.“내가 당신 곁에 있어요.당신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면 저는 무슨 일이든 할 것입니다. 당신은 제게 참으로 소중한 사람입니다”



33.고통은 왜 있는가?


본문: 애 3:19-39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거의가 다 이렇게들 말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면 왜 이렇게 불행과 고통이 있고, 또 그대로 보고만 계십니까? 그리고 저 공산당들은 왜 그냥 두어서 불안에 떨게 하고, 왜 홍수는 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게 합니까? 왜 고칠 수도 없는 무서운 질병 속에서 고통을 당하게 내버려 두십니까?" 하는 의문을 지닌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불행과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과 불행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아서 내버려 두시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보면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라"고 하신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고통과 환난이 있어지는 것은 우리 인생들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고통은 왜 있고, 무슨 유익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어린 아이들이 낮에 밖에 나가서 놀 때는 전혀 아빠, 엄마, 집 생각 안 하고 재미있게 놉니다. 그러나 갑자기 위험한 일을 당할 때는 엄마! 하고 집으로 뛰어 들어오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인간의 창조주가 되시고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게 되어 있는데, 배신하고 반역하며 제 멋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고통과 불행에 직면하게 되면 그제서야 절대자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게 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자기만을 의지하고 살다가 절망에 처할 때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살게 될 때, 평안할 때에는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부르짖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왕에게 고문을 당하고 고역을 받게 될 때 그제서야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편안하고 세상에 소망을 두었을 때는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절망의 벽에 부딪치게 될 때에 그제서야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 들고 옵니다"하면서 하나님 앞에 항복하고 따르게 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저 여자와 결혼만 하면 예수를 믿겠습니다" "저는 아들이 없는데 귀한 아들 하나 주시면 잘 믿겠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조건이 이루어질 때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하고 잘 믿는 사람은 보기 힘듭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편, 혹은 아내가 죽어가거나, 철석같이 믿었던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또 사랑하는 자식이 고통을 당하고 죽어가게 될 때, 그 고통으로 인해 하나님께 찾아 나오는 사람은 오히려 많이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사업의 실패와 질병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게 된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 가운데도 평안하고 아무런 시험이 없었더라면 예수를 믿지 않았을 사람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환난과 고통이 그 당시에는 쓰리고 아프지마는 이러한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고 믿게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을 향하게 되면 여러분에게는 유익이요, 무한한 은혜와 축복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4. 천국을 사모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칼빈(J. Calvin)은 "이 세상에 고통이 많은 것은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이 살기 편하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면 천국 같은 것은 있으나 없으나 찾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환난과 고통을 당하게 되므로 근심과 고통과 슬픔이 없는 영원한 하늘 나라를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편안하게 살 때에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그리워하지도 않고 , 돌아가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견딜 수 없는 압박과 고통을 당하게 될 때 그제서야 가나안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눈물과 근심과 질병과 심지어는 죽음의 고통을 통해서라도 눈물이 없고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는 영원한 천국으로 우리를 몰아 넣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의 환난과 고통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안개와 같이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세상에서는 고통을 받더라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면하고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과 복락을 누리게 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백년 미만을 사는 이 세상에서는 고난을 당해도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 휠씬 유익한 것입니다.



35.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대부분의 환난과 고통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고 내멋대로 살고 죄를 짓게 될 때 오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불순총하고 제 멋대로 살다가도 고통이 닥치면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도 많이 보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119편 67절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고백했고, 계속해서 71절에 보면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당하는 질병이나 고통은 하나님이 우리가 미워서 주시는 벌 값이라기 보다는 그것을 통하여 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생활을 하라는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으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구약의 다윗도 젊어서 고난과 역경 속에 있을 때에는 오히려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평안할 때 늦도록 낮잠을 잔 후에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서 범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 여인에게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만 그 아들이 병들어 죽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다윗은 자기의 죄를 뉘우치면서 일주일 동안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아들이 죽었음을 알고는 태연하게 슬픈 기색을 내지 아니하고 식사도 하고 나라도 보살피게 되었습니다. 그 때 궁궐의 많은 신하들은 하나같이 놀랬습니다. 아주 이상할 정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내가 이 벌을 받아 마땅한 죄인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누구를 탓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히브리서 12장 6절 말씀에 보면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12장 8절에도 보면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했고, 또 12장 11절에도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환난과 고통과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한 것이므로 우리에게는 유익이요, 바로 깨닫는 자에게는 무한한 은혜요 축복이 됨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6. 인내와 능력을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미국의 어느 잡지에 5천년 묵은 나무가 있다는 기사가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이 나무가 어떻게 오래 살았느냐 하면 땅이 좋은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산 언덕에 바람이 부딪치고 바위가 많은 토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무는 땅도 나쁘고 모든 조건이 나쁘지만 오히려 뿌리는 아주 깊이 박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나무는 다른 나무들은 다 시들어 죽어도 죽지 아니하고 5천년 이상을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대해서 평안하게 온실의 꽃과 같이 돌보시는 것만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온실에서 자란 꽃은 햇볕이 쪼이고 또 조금만 추위가 와도 금방 시들어 죽어 버리는데, 이 온실의 꽃과 같은 사람을 하나님은 원하지 않으십니다. 어떠한 환난과 시련과 역경이 오더라도 힘차게 이기고 참고 나갈 수 있는 그런 신자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 때로는 하나님 자신이 원하지 아니하시지만 시련과 환난과 고통을 당하게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어느 곳에는 강물이 얼마나 물결이 센지 그 강을 건너는 사람은 누구나 다 바윗돌을 하나씩 짊어지고 간다고 합니다. 왜 그런고 하면 바윗돌을 지고 가기는 힘들지만 빈몸으로 건너 가다가는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지고 건넌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심령도 평안하기만 하면 기도도 하지 않게 되고, 예배당에도 다니기 싫게 되고, 신앙의 자세가 나태해집니다. 그러나 한 번씩 풍랑이 일어나고 파도에 부딪치게 될 때에 하나님을 향하여 진정으로 부르짖게도 되고 믿음이 자라게 되고 그 심령은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토록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절망을 통하여 믿음과 기도로써 어떠한 환경이라도 이길 수 있는 인내와 힘을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란 광야에서까지 이르렀을 때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가나안 땅을 탐지할 정탐꾼을 12명 택해서 보내게 했습니다. 그 12명의 정탐꾼이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백성들 앞에서 보고하는데 10명은 모두가 다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들은 보고하기를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또 그 사람들은 보니 키가 큰데 우리는 그들 앞에 서면 메뚜기와 같습니다"하면서 근심하며 부정적인 보고를 했던 것입니다.
그 때에 그들 중에 여호수와와 갈렙은 백성들에게 보고하기를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그러므로 문제 없습니다. 쳐들어 갑시다"하고 긍정적이고 용감한 보고를 했던 것입니다. 이 말씀 가운데 보면 왜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까? 밥이란 잘 먹고 소화시키면 힘이 생기고 건강이 오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당하는 시험과 환난은 밥과 같아서 그것을 잘 먹고 소화하기만 하면 힘이 생긴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일찍이 위대한 종들은 절망과 실망할 수밖에 없는 고통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아직 이렇다 할 훌륭한 목사는 못되었습니다만 오늘날 이 만큼이라도 복음을 전하고 가는 곳마다 부흥회를 인도하고 많은 사람을 구원하도록 쓰임을 받기까지는 제 나이에 비해 여러 가지 고통과 절망스런 일들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평안하게 아무런 고생도 없이 자랐다면 제가 여러분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할 자격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어떠한 환난과 고통이 밀어 닥치게 될 때 어리석게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 시련과 고통이 지나간 다음에는 어떤 은혜를 주시려나이까? 감사합니다!"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어려운 시험을 당하게 될 때 믿음이 없는 사람은 "아이구! 난 예수를 잘 믿으려고 하는데 왜 이런 시험이 오나?"하면서 참지 못하고 포기해 버리는 사람도 많이 보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고 나면 오히려 더 시험이 오고 질병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힘든 시련의 고비가 지난 다음에 축복을 주어야 그 은혜가 고마운 줄 알고 그 축복을 받아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는 고통과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회개하고 돌아서는 것입니다.


역대하 9장 14절 말씀에 보면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환난과 고통과 재난을 당했을 때에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게 되면 그 환난과 고통을 제하시고, 치료하시고, 고쳐주시며, 축복해 주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② 십자가를 자원해서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남의 아기를 억지로 보라면 정말 귀찮습니다. 그러나 제 자식을 안아 줄 때는 팔도 아픈 줄 모르고 힘든 줄을 모르고 즐겁게 잘 보게 됩니다.
여러분! 어차피 환난과 고통 당할 바에는 내가 자원해서 믿음으로 십자가를 지는 고난을 자취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쓸 데 없는 불행과 고초는 면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고통과 고생이 있어질 바에는 믿음으로 축복받는 고생을 하자는 말입니다.


모세가 공주의 아들이 되었을 때 장차 대 애굽의 황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버리고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을 자취하게 될 때에 어리석은 것 같았으나 놀라운 축복을 받았고 영원한 기업을 받은 사실을 우리는 성서를 통해서 잘 압니다. 분명히 믿음으로 하는 수고와 고생은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갚아 주시고, 그 대신에 다른 고난과 고통은 막아 주신다는 사실을 체험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③ 믿음과 기도의 생활을 미리 잘 해야 합니다.
어려운 고통과 시험이 올 때에 "아이구! 하나님 나를 살려 주십시요"하지 말고, 시험과 고통과 재난이 오기 전에 미리 믿음 생활 잘 하고 기도 생활 잘 하라는 것입니다. 나 자신만 아니라 내 가정을 위해서도, 내 교회를 위해서도, 나아가서 우리나라 민족을 위해서 정신차려 기도를 해야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나 하나만 편히 잘 먹고 잘 살겠다고 하면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가정과 나라까지도 말할 수 없는 어려운 수난을 겪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홍수를 대비해서 방주를 지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방주는 삼층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왜 삼층으로 되어 있는지 아십니까? 홍수가 나서 파도가 부딪칠 때 일층에 내려가 옆을 내다보니 무서운 물결만 보입니다. 이층에 올라가도 망망한 물결과 시뻘건 흙탕물만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무서운 물결 속에서도 삼층에 올라가 보니까 비로소 맑은 하늘이 보이고 하나님과의 언약이 생각이 나서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일층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육신의 생각과 눈을 말합니다. 즉, 우리가 환난과 고통의 홍수를 만날 때에 육신의 생각과 눈으로 보게 되면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층은 인간의 혼를 말합니다.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삼층에 올라와서 즉 믿음의 눈, 소망의 눈을 가지고 보게 되면 국가 정세가 혼란하고 가정형편이 말할 수 없이 비참한 궁지에 몰렸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서 소망을 가질 수 있고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이 오고 고통의 홍수를 만날 때에 일층 즉 육신의 눈으로 바라보지 마십시요! 인간의 지식이나 지혜를 가지고도 해결하려 하지 마십시요! 영혼의 눈, 곧 믿음과 기도로서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④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9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근심 걱정 불안 고통의 짐을 나 혼자 지고 고생했지만 이제는 다 하나님께 내어 맡겨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십자가 앞에 나와서 근심의 짐, 죄의 짐을 다 맡겨 버리고 의지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그를 보살펴 주시고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⑤ 자기 중심의 생활을 버리십시요.
여러분! 나 중심, 내 이기주의적인 생활을 하면 오히려 더 불안해지고 고통은 심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남을 위해서 살겠다고 할 때에는 마음이 기뻐지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의 사람은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 혹은 교인을 대하게 될 때에 불안해집니다. 그러나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이나 혹은 교회를 위해서 칭찬이나 존경보다는 희생하려는 한 알의 밀알이 되려 할 때, 그는 기뻐지고 그의 생애는 더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들은 자기 중심의 생활을 하지 마십시요! 어떻게 하면 좀더 내가 남을 돕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수 있을까? 하는 거룩한 마음을 가지십시요! 마태복음 6장 33절에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 중심의 생활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겠다고 하는 그런 자에게 고통은 물러가고 진정한 평안은 오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10장 31절에 "그런 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 모든 말씀을 기억하시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축복받는 생애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37.살아 있는 사람만이 느끼는 고통


어떤 사람이 중병에 걸려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는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고통을 호소하며 고래고래 소리질렀습니다. 그때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간호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잠깐만이라도 불평과 신음을 멈춰보세요. 그러면 당신이 아직도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그제야 그 환자는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고통은 아직 나에게 생명이 있다는 증거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자신이 살아 있음을 감사했다고 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만이 고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몸이 아파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사업에 실패해 벼랑 끝에 서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마음이 아플 때 감사하십시오. 당신이 아직 살아서 이런 고통을 당하고 있음을 말입니다. <오인숙/ 교단작가 >



38.마라의 고통이 주는 유익


본문:출애굽기 15:22∼27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
홍해를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기적적으로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뛸 듯이 좋아하며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결코 편안한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물을 얻지 못해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다행히도 ‘마라’라는 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우물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그 물은 먹을 수 없는 쓴물이었습니다. 그 물을 먹은 백성들은 배를 부둥켜안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우리 인생의 광야에도 이런 마라의 고통이 있습니다. 어렵게 구한 우물이 먹지 못하는 쓴물일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한 나뭇가지를 발견했고 그 나뭇가지를 우물에 던지자 쓴물이 단물로 변해 모두가 먹고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 마라의 고통이 가져온 유익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25절). 늘 기도의 필요성을 알지만 고통의 구덩이에서 허덕일 때까지 늘 기도를 잊어버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하나님은 종종 우리에게 이 고통을 허락하십니다.
둘째로, 기적을 체험했습니다(25절). 하나님의 지시대로 나뭇가지를 쓴물에 던졌을 때 그물이 단물이 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이 기적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셋째로,엘림의 축복을 경험합니다(27절). 그들이 반나절쯤 갔을 때 물샘 열둘과 종려나무 칠십주가 있어서 거기서 음료의 공급과 휴식의 축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로버트 슐러의 글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절벽 가까이로 나를 부르셔서 다가갔습니다. 절벽 끝에 더 가까이 오라고 하셔서 더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절벽에 겨우 발을 붙이고 서있는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때까지 내가 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오늘의 고통이 내일의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 기도를 배우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날개는 활짝 펴질 것입니다.조금만 더 가보십시오. 엘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는다고 하여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그런데 갑자기 내 삶 속에서 닥쳐오는 이 환난과 고통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때로 우리는 이것이 축복인지 모르기에 “주여 왜 나에게 이 쓴물을 먹입니까?” 항의하고 원망하기도 합니다.그러나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을 허용하시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더 놀라운 축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았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고통 가운데 던져질 때 불평하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알게 하여주시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39.고통에 동참


독일의 신학자 본 회퍼 목사는 미국에서 편한 여생을 보낼 수 있었으나 조국애를 발휘,독일로 건너가 반나치 활동을 벌이다가 1945년 수용소에서 처형됐다.
그는 옥중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명령에 따라 고통받는 것은 자의로 고통받는 것보다 쉽다.
여럿이 함께 고통 받는 것은 혼자 고통받는 것보다 쉽다.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것은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것보다 쉽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의로,혼자서,육체와 정신의 고통을 모두 선택했다』



40.고통은 인격을 파괴하는가?


미국의 설교가 랠프 사크만은 사람이 고통받는 이유를 네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개인의 죄때문에 고통을 당한다.술을 많이 마셔 건강을 잃어 고통을 당하고 혹은 윤리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둘째, 집단적인 죄악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집단이기주의로 인해 불의를 행하고 부정을 만들 때 무죄한 백성들은 고통을 당한다.
셋째, 고의적 혹은 무의식적인 실수로 인해 고통을 당한다.교통사고 같은 자신 혹은 다른 사람의 실수로 고통을 당한다.
넷째, 불가항 력적으로 고통을 당한다.자연재해 등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고통이 있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고통을 당하든지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고통의 뜻과 의미를 깨닫도록 도와주고 하나님의 형상을 되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신다.우리가 평안하고 즐겁게 생활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속삭이신다.우리가 열심히 일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통 말로 이야기하시지만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는 고함을 질러서 완전한 인격자가 되게 하신 다.고통은 우리의 잠을 깨워 새로운 뜻과 의미를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41.고통은 악이 아니다


폭풍이 오기 전에 모든 동물은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폭풍을 동반하는 낮은 기압은 가스와 냄새를 배출하기 때문에 동물들이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폭풍이 없는 지역은 낙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람이 없다는 말은 공기가 없다는 뜻이다.
바람은 배를 전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역경은 곧 바람과 같다.
파멸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도약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도약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알렉산더 벨은 청력을 잃은 아내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보청기를 연구하다 전화를 발명했다. 고통이 곧 악은 아니다.



42.고통의 결과


한 어린 소녀가 그녀의 음악 교사에게 피아노를 치면 손가락이 아프다고 말했더니 그 선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아픈줄은 나도 알지만 손가락이 튼튼해지기도 한단다."그래서 소녀는 다음처럼 대답하여 옛부터 지금까지의 교훈을 요약했습니다.
"선생님, 튼튼하게 만드는 것은 모두가 아픈 것 같군요."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의 고통을 결코 헛되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슬픔 중에서도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매우 사랑하시며 고통의 통로로 다가오는 귀중한 영혼을 강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고통당하도록 허락하시지 않는 한 당신께서 조차 우리를 위해 하실 수 없는 일들이 있으니, 당신께서도 과정이 없이 과정의 결과만을 이루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 속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합니다! 제 궤도를 운행하는 별들이 그를 위해 싸우고 부는 바람마다 그의 닻을 부풀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가치한 영혼에게 시련을 주시지 않습니다!



43.도스트예프스키의 고통


아침은 언제나 순결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지난 밤의 고통 때문에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웠던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인생이 주는 고통 때문에 아침의 순결함조차 분노를 느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러시아의 대문호인 도스트예프스키는 1821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습니다. 도스트예프스키의 부친은 전직 육군 군의관으로서 빈민 병원에서 일했고 가족들은 병원 건물에 부속된 더러운 사택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난폭한데다 알콜중독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돈을 조금 벌자 툴라라는 지방에 작은 농토를 구입했지만 농노(農奴)들을 너무 심하게 다루는 것으로 소문나 있었습니다.
도스트예프스키가 열여섯 살 나던 해 그의 부친은 결국 그가 보는 앞에서 농노들의 십장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이 무서운 충격으로 인해 생긴 간질병은 일생동안 도스트예프스키를 괴롭혔습니다.

스물여덟 살 나던 해 도스트예프스키는 잘못된 정치단체의 일원으로 체포되어 반역죄의 판결을 받고 슬픈 사형수로 전락합니다. 이 사건은 소위 '페트라셰프스키' 사건이라고 불리우는 것으로 법정에서 도스트예프스키는 총살형을 언도받게 됩니다.
유형열차는 그와 많은 사형수들을 싣고 시베리아의 옴츠크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열차가 잠시 토볼스크라는 이름의 시골역에 멈춰섰을 때 사형수들을 위로하기 위해 장교 부인들이 그들에게 음료수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도스트예프스키에게도 한 장교의 아내가 더운 차를 내밀었습니다. 그는 눈앞에 다가온 죽음의 공포 때문에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장교의 아내는 가슴 속에서 작은 책 한권을 꺼내 그의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 책은 작은 신약성경이었다고 합니다.
움츠크 감옥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그는 그 신약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음 앞에서 형 미하일에게 이렇게 편지했습니다.
"형, 난 다시 태어나 최고에 이를 것입니다."
도스트예프스키는 그의 신념대로 결국 총살형을 받기 2분 전에 황제의 사면령을 받아 기적적으로 되살아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인생 최대의 고통인 사형수의 고통을 이기고 세계 최대의 작가가 된 것입니다.
"형, 나는 다시 태어나 최고에 이를 겁니다."
시베리아 감옥소에서 형에게 보낸 도스트예프스키의 신념에 찬 편지였습니다.



44.고통의 깊이


폴 틸리히( Paul Tillich ) 는 고통의 깊이는 진실의 깊이로 향하는 유일한 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인내한 고통은 인새의 깊은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깊은 물로 이끄시는 것은 물에 빠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깨끗하게 하기 위함이다"고 말했습니다.
일본 삿포로에는 큰 교회가 하나 있는데 고바야시라는 목사님이 목회를 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반신불수로써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설교를 합니다. 그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에 그를 돌보던 간호원이 그분의 독실한 신앙심에 감동되어 그의 손발이 되어 주기로 결심하고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이 사모님이 얼마나 철저하게 희생하는지 모릅니다. 교회는 날로 부흥되어 반신불수 목사님의 설교에 수백며이 모이는 일본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 교회의 특징은 뜨거운 하나님나라의 사랑입니다. 그 교회에 들어가면 사모님의 뜨거운 희생적인 사랑을 체험하기에 사람들이 그 교회 모여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할 때 십자가의 사랑을 가진 교회가 될 것입니다.



45.고통의 자리엔


스코틀랜드의 조지 마티슨은 그의 저서에서 개인적인 절망으로 인한 연단을 고백한다. "내 영혼아, 꿇어 엎드리는 장소를 피하지 말라. 과거의 위인들에게 가장 잊지 못할 풍요의 자리가 어디였던가 물어보라. 그들의 대답은 `내가 엎드렸던 차거운 바닥'이라고 답할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물어보라. 모리아 산의 번제단을 가리키리라. 요셉에게 물어보라. 차가운 감옥을 가리키리라.
다윗에게 물어보라. 그의 노래는 밤에 지어졌다고 할 것이다. 욥에게 물어보라. 하나님의 폭풍우 가운데서 응답하셨다고 할 것이다. 베드로에게 물어보라. 그는 바다에서 순종을 배웠다고 하리라. 요한에게 물어보라. 그는 밧모섬에 승리의 면류관을 던지리라. 바울에게 물어보라. 그는 자기의 눈을 멀게 한 빛에서 영감을 보았다고 할 것이다.
나와 함께 가는 순례자들이여, 가는 길이 예상보다 고통스러운가? 만사 형통, 승승장구의 경험을 할 줄 알았는데, 춥고 황량한 땅에 앉아 외롭고, 낙심되고, 상심했는가? 길을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는가? 내 말을 믿으라.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당신 안에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당신 위에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을 감싸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당신 곁에 있다. 깨어나서 그것을 잡으라."



46.감사하는 고통


일본의 하라사끼 목사의 부인이 43세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폐암말기의 고통은 병으로 받는 고통 중에서 제일 괴로운 고통이다.
그 분 은 자기의 생명이 며칠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준비를 했다. 일기를 썼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사랑한다는 말 대신 "이루로라"라는 암호를 사용했는데, 의식이 거의 사라져 가고 입으로 말을 못하니까 손에다가 "이루로라"라고 쓰고 죽었다고 한다.
그 분의 일기장에는 고통 속에서도 감사하다는 말 뿐이었다.
어제보다 고통이 덜했던 것을 감사했고, 무엇보다도 주님을 믿고 기뻐하게 해 주신 것을 감사했다.
아이들이 신앙을 갖게 된 것을 감사했고, 더욱 신앙생활에 정진해 주기를 바랬다.
그리고 행복했다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47.고통에서 깨닫는 겸손


어느 집사님과 말씀을 나누는 중에 이런 간증을 들었다.
“제가 군에서 사관학교를 나오고 군복무를 하는 중에 모든 일이 너무 잘 되었었습니다. 진급을 할 때는 제 동기 중에서는 제 1호로 진급이 되어서 언제나 최소 연령자로 진급했고 상
관들에게 총애를 받아 제각기 저를 데려가려고 애를 썼을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 도미유학이란 게 하늘의 별따기였는데 시험을 치면 1등으로 합격해서 제일 먼저 가고 싶은 때 갔었고, 이렇게 해서 미국 유학도 군에 있으면서 두 번씩 다녀왔습니다. 제 앞은 탄탄대로였습니다.
월남에 파견된 주월 한국군 총사령관은 그 분대로 저를 데려가려고 교섭이 왔고, 이곳 육군 참모총장은 나를 그 분대에 머물러 있게 하려고 애를 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겨 구테타 음모에 몰려 1년반 동안 고생했고, 육체적 정신적 타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는 동안 하나
님을 더 가까이 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그 어려움을 당하기 전에는 세상에서 무서운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높아 보이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교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
만을 꺾기 위해서 저를 고통의 도가니로 몰아 넣으셨습니다.
거기서 저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세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던 모든 것이 얼마나 일방적이었던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이란 그런게 아닌 것을 알았어요. 하나님의 은 혜가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고마워요.”
그렇다. 겸손해져야, 낮아져야, 부드러워져야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들을 수가 있다.



48.고통의 이유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시69:21)
열일곱 살 때 수영을 하다가 목이 부러진 조니라는 소녀의 이야기가 책으로 출판된 적이 있습니다. 소녀 조니는 하루아침에 전신마비 장애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처지에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불타오르는 재활의지와 주위의 도움을 통해 입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많은 글을 쓰고 또 여러 곳에서 강연을 하곤 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쓴 『조니의 신앙』이란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그림 그리는 일과 가족, 그리고 친구들의 도움은 나를 완전히 절망에서 끌어내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휠체어의 인생으로부터 무엇보다도 먼저 감사받으셔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말씀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마비로 인한 내 모든 시련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제게 임한 것임을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고통 뒤에 이유를 두셨고, 그것을 알고 나니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여러분의 고통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이유를 가지고 계십니다.’
고통 가운데서도 기도하면서 기쁨을 찾아내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 기도: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하소서. /시편을 통한 매일 묵상집(아가페)



49.자랑할 수 없는 고통


골프 재미에 푹 빠진 목사가 있었다. 구름 한점 없이 화창하고 맑은 일요일이었다. 목사는 갈등하다 결국 교회에 몸이 아파 못 간다는 전화를 하고 골프장으로 향했다. 이를 본 천사가 하나님에게 말했다. “저 목사, 혼 좀 내줘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사는 1번 홀에서 힘차게 스윙했다. 볼은 무려 350야드를 날아가 그린 위에 떨어진 뒤 홀컵으로 들어갔다. 홀인원이 된 것이다.
목사는 흥분했다. 천사도 충격을 받았다. “하나님! 이것은 뭔가 잘못된 것 같네요. 벌을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나님은 미소를 지으며 천사에게 말했다. “목사가 이 일을 누구에게 자랑하겠니? 자랑을 하면 주일에 골프 친 것이 들통날테고, 자랑하고 싶은데 자랑할 수 없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 있겠느냐.” 오늘 당신의 자랑은 무엇인가? 오직 예수 그분만이 우리의 자랑이 되어야 한다./김은호 목사(오륜교회)



50.고통의 유익


링컨이 어느 한가한 날 시골길을 걷고 있는데 한 농부가 말을 몰아 쟁기로 밭을 갈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링컨은 농부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 때 링컨은 말 엉덩이에 파리가 붙어 있는 걸 보았습니다.
파리가 말을 귀찮게 하는 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링컨이 파리를 쫓아버리려고 손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농부가 링컨을 말리며 말했습니다.
“그만 두세요. 그 파리 때문에 이 늙은 말이 그나마 움직이고 있답니다.”
이 파리처럼 쫓아내거나 털어내고 싶은 사람,또는 일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불편과 고통이 삶을 윤택하게 합니다. 어느 정도의 고통은 인간으로 하여금 성숙하게 하는 자극제가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고통을 극복하는 지혜입니다.
이 지혜가 곧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분별력입니다. / 이성희 목사 (연동교회)



51.고통에 따른 감사


이제 잡지 기사의 질문의 뜻을 알 것 같습니다. 저들은 어떤 고통을 겪었기에 그토록 감사하지 않고 견디지 못했던가?
그들은 먼저 건강을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1620년 12월, 추운 때입니다 긴 긴 항해 중에 함께 출발한 사람이 배 안에서 병들어 죽어갔고, 그해 겨울 굶주림과 괴혈병과 각종 바이러스 병으로 48명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절반이 살아남았습니다.
살아남은 데 대한 감사. 그리고 그만큼 건강을 지킨데 대한 감사. 이것이 첫째 감사였습니다. 또한 의복과 거처가 문제였습니다. 낯선 곳에 도착했는데 아무 것도 없는 거예요.
여기서 그들은 나무를 찍어서 오두막, 통나무 집 오두막을 일곱 채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통나무집에 들어가서 저들은 불을 피워 놓고 하나님 앞에 감사했습니다.
또한 음식은 어땠습니까?
플리머스(Plymouth)라고 하는 곳에 도착했으나 낯선 땅에 아무것도 없는데 저들이 가지고 온 종자 몇 가지, 그, 중에서 보리와 밀을 심어 보았지만 토양이 달라서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오히려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도움을 받아서 그들의 덕분으로 옥수수를 얼마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 이 옥수수를 갖다 놓고 그리고 들에 뛰어다니는 칠면조를 잡아서 그걸 구워놓고 감사절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Thanksgiving)이 되면 어느 식당 어느 가정이든지 온통 칠면조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칠면조는 맛없는 조류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미국 학생들한테 “닭하고 칠면조, 어느 쪽이 맛있냐?”고 물으면 열이면 열 모두가 “아, 닭이 맛있지”하고 대답합니다.
그럼 왜 칠면조를 먹느냐.
우리 조상들이 이것을 놓고 하나님께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그 전통을 따라서 그렇게 먹으며 감사를 기억하는 거라고 합니다. /박영준 목사(김포중앙교회)



52.천로역정의 탄생 배경 (위기가 곧 기회)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가 제한되었던 때의 일입니다. 나라의 허락을 받지 않고 설교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힌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무려 12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하던 중 그의 사랑하는 아내 메리가 죽었습니다. 소경이었기 때문에 거지로 살던 아내가 죽자 세 자녀는 스스로 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고아의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런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이와 같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너무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제가 할 일이 남아 있을까요? 만약 제가 해야 할 그 일을 볼 수만 있다면 저는 절망하지 않겠습니다."
이 때 주님은 그의 마음 속에 계속해서 이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너는 글을 써라. 나는 너에게 글을 쓰는 달란트를 주었단다."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던 그에게 환상이 보였습니다. 주님의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한 사람이 보였습니다.
감옥에 갇혔던 그 사람, 존 번연은 좁은 감옥 안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는 [천료역정]을 써내려 갔습니다.



53.계산된 고통


절제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계산된 고통’이라 할 수 있다. 역량과 지구력을 키워 주는 도전 상황에 몸과 마음과 영혼을 밀어 넣는 행동이다. 자신을 절제하는 과정에서 실패의 쓴 잔도 마시고, 굴욕감도 느낄 것이다. 게다가 만족과 성취는 자꾸만 뒤로 미뤄진다. 절제를 아는 사람은 인기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절제의 시기가 모두 끝난 뒤에야 비로소 세상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박수 갈채와 찬사를 보내는 보상이 찾아온다.육상 선수, 레슬링 선수, 수영 선수들은 모두 자신에게 더 큰 장기간의 지구력과 더 빠르고 강한 체력을 요구함으로써 자기 몸을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밀어 붙인다. 피로하거나 고통스럽다고 해서 멈추지 않는다. 반드시 극복해야 할 정신적 장애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몸의 편안함보다는 의지대로 몸을 움직인다.이 원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엄청난 임무를 감당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 「영적 성장의 길」/ 고든 맥도날드



54.산고의 고통


한국의 여인들은 아기를 낳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댓돌위에 놓여진 자기의 고무신을 다시 한 번 바라보면서 눈시울을 적신다고 했다. 과연 아기를 순산하고 다시 이 고무신을 신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문지방이 흔들리고 대들보가 내려앉는 것 같은 산통을 겪어야만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고통후에 영광스런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셨다.


55.고통 가르치기


퇴근시간 인천쪽으로 가는 지하철 1호선. 신도림역을 지나면서 사람이 더 밀려 죄이기 시작했다.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부부가 아이 둘을 데리고 있었다. 한 아이는 부인이 업었고,다른 아이는 아빠 손을 잡고 있는데 초등학교에 갓들어간 정도로 보인다. 서있는 아이가 힘들다고 짜증을 냈다. 엄마가 말했다. “참아,아빠는 매일 이렇게 타고 다니셔!” 그러면서 남편을 바라보는 그 여인의 얼굴,그 미소엔 남편에 대한 사랑과 자랑,삶에 대한 건강함이 가득했다. 이런 부모의 아이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자기 어린 시절을 결코 부정적으로 기억하지 않으리라.


56.고통 속의 나눔


지금은 필리핀에 가서 선교 사업을 하고 있는 마린 베이커라고 하는 목사님이 계시는데, 이 목사님은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선교사로 있었습니다.
그가 대전에서 선교 사업을 하고 있을 때에 아기를 낳았는데, 그 아기가 선천성 심장병 때문에 18개월 동안 고생하다 가 결국은 죽었습니다. 그 때 죽은 아기를 선교사 묘지에 묻은 다음, 베이커 선교사는 고아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가장 못나고 몸의 이곳 저곳에서 진물이 나는 보잘것없는 고아를 부둥켜안고
"나는 이 아이를 내 아이 대신 양자로 삼겠소."하며 데리고 가서 진물투성이의 그 못난 아이를 잘 길러서 지금은 미국에 유학을 보냈습니다.
그 후 그는 고아원의 불쌍한 아이를 또 입양하여 잘 길러서 지금 필리핀대학에 입학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베이커 선교사는 그 아이들을 장차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의 긍휼을 베푸는 삶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이웃을 향한 선한 일을 계획하고 그들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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