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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716회] - 자살인가 순교인가?

by 【고동엽】 2022. 4. 17.
[오늘의 묵상 - 716회] - 자살인가 순교인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 14:8)
윌리엄 매켄지(W.J.McKenzie 1861-1895) 선교사는 캐나다 노바 스코티아(Nova Scotia) 출신으로 1891년 핼리팩스(Halifax)신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그는 한국을 소개하는 책자를 읽던 중 한국에 가서 선교할 뜻을 갖고 캐나다 장로교회 총회에 가서 한국에 가기를 청했지만, 총회는 한국 선교의 계획이 아직 없었습니다.
그는 직접 여러 교회를 다니면서 한국 선교를 역설하며 모금을 하였습니다. 여비와 1년간의 선교비가 마련되자, 1893년 12월, 혼자 한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그는 한국말을 속히 배우기 원했지만, 이미 들어와 있던 선교사들 틈에 살면서 영어만 사용함으로 한국어 습득이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한국인들과 함께 살면서 말도 배우고 생활양식도 배우며 전도도 하겠다는 생각으로 황해도 갯마을 소래(松村)로 내려갔습니다. 그는 시골 마을에서 초가집에, 한복을 입고, 한식을 하면서 동네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면서 한국인들과 같이 살았습니다. 매켄지는 서양 음식 맛에 대한 향수를 없애려고 크리스마스 때, 서울의 언더우드 선교사가 선물로 보내준 빵, 케익, 우유, 설탕 등 맛있는 음식을 입에 대지도 않고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는 주민들에게 폭넓은 인정과 존경을 받으며 살았으므로 동학당들이 이 지역을 휩쓸고 지나갈 때도, 주민들의 보증으로 아무런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2년 동안 성자같이 한국인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가던 그가 한여름에 일사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흐려지는 정신으로 마지막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어제 선편으로 서울에 가기를 결정하였다. 내일 누구 한 사람 오라고 전보를 쳐야겠다. 잠을 들 수가 없다....너무도 허약하다. 오늘 오후에는 전신이 추워진다....죽음이 아니기를 바란다. 한국을 위하여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한국인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다가 이렇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내가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낮에는 뜨거운 햇볕 아래 여행하고, 밤이면 공기가 추워질 때까지 앉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 앞에서 애달파 하는 그의 모습이 무척 처량합니다. 달아오르는 고열에 그만 정신착란을 일으킨 그는 엄습하는 고통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소지하고 있던 권총으로 자기 머리를 쏘아 생명을 끊고 말았습니다. 가족도 동료도 없이 외롭게 한국인들 사이에서 살다, 쓸쓸히 생을 마치고 황해도 소래 해변에 묻혀 하늘나라로 간 매켄지의 순교를 한국교회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캐나다 장로교회는 매켄지가 한국의 한 시골에서 헌신적 선교를 하는 동안 한국 선교의 가능성에 대해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매켄지의 부음(訃音)이 들렸고, 또한 그가 목회하던 소래교회 교인들이 매켄지를 이어 계속 성경을 가르쳐 줄 선교사를 보내 달라는 청원서를 보내 왔습니다. 매켄지는 자기의 유산을 한국선교에 써 달라는 유서를 남겼는데, 유산은 약 2,000달러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캐나다 장로교회는 한국 선교에 선뜻 나서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재정난이었습니다. 소래 교인들의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호소는 조금씩 반향을 일으켰고, 캐나다 장로교회 여선교회 연합회가 한국 선교사 한 사람의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자청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총회는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최종 결정하고, 몇 사람의 선교사를 한국 선교사로 임명하였습니다.
이들은 1898년 9월 한국에 도착하여 기존 선교부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자연히 선배 선교사 매켄지가 선교하던 소래 지방으로 가서 선교하려 했으나, 그 곳은 작은 시골 마을이어서 함경도로 선교지를 옮겨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함경도가 캐나다 장로교회의 선교지가 되었습니다.
매켄지 선교사의 희생은 한국에 캐나다 교회의 한국 선교를 확실하게 결실 맺게 했습니다. 매켄지 선교사는 객관적으로 보면 스스로 생명을 끊었기에 자살이라 단순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자살이란 용어를 결코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권총으로 자기 머리를 쏘았을 때, 그는 고열과 육체적 고통으로 정신 착란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에 정상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필자는 그의 죽음을 ‘순교’라 정의합니다.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매켄지 선교사의 후손들 위에 성 삼위 하나님의 은총이 언제까지나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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