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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강 다니엘을 부르소서(5:10-12)

by 【고동엽】 2022. 4. 13.

제51강 다니엘을 부르소서(5:10-12)

 

5:10-12
태후가 왕과 그 귀인들의 말로 인하여 잔치하는 궁에 들어왔더니 이에 말하여 가로되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왕의 생각을 번민케 말며 낯빛을 변할 것이 아니니이다 왕의 나라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있으니 곧 왕의 부친 때에 있던 자로서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있어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라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세워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의 어른을 삼으셨으니 왕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이 다니엘의 마음이 민첩하고 지식과 총명이 있어 능히 꿈을 해석하며 은밀한 말을 밝히며 의문을 파할 수 있었음이라 이제 다니엘을 부르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그 해석을 알려드리리이다

10절 말씀입니다. "태후가." 왕의 살아 있는 어머니를 태후라고 했습니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태후의 이름을 리토크리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리토크리스는 벨사살 임금의 어머니인데 그 당시 바벨론의 첫번째 치리자였던 나보니두스의 부인이고 느부갓네살 임금의 딸이었습니다.
"왕과 그 귀인들의 말로 인하여." 연회장에서 일어난 일을 아마 누군가가 태후에게 전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듣고 "잔치하는 궁에 들어왔더니"라고 했습니다. 급히 들어왔습니다.
궁에 들어와서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보십시다. "이에 말하여 가로되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물론 왕에게 격식을 갖추기 위해서 하는 말이지만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라고 사람이 말한다고 왕이 만세수를 누릴 수 있습니까? 벨사살 임금은 어떻게 됩니까? 바로 그날이 그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5:30 말씀입니다.
"그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바로 그날이 벨사살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태후가 들어와서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오래오래 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약 4:14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내일 일을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벨사살도, 태후도 알지 못했습니다.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고 살아야 합니다. 또 히 9:27에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했습니까?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누구나 언젠가는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가 자기의 마지막이 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벨사살은 그날이 마지막 날이었는데 몰랐습니다. 벨사살도 몰랐고, 태후도 몰랐고,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까? 탈무드에서 지혜자들이 말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최초의 날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라." 그만큼 성실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준비하면서 살아라." 언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지만 그후에는 누구나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그 사실 생각하면서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행여 내가 오늘 주님 앞에서 선다면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 생각하면서 마지막을 준비하면서 살아가는 자가 지혜로운 자일 것입니다.
계속해서 보십시다.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왕의 생각을 번민케 말며." 괴로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낯빛을 변할 것이 아니니이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공포에 떨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1절에서 그 이유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왕의 나라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있으니." 왕이 나라에 한 사람이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4:8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그후에 다니엘이 내 앞에 들어왔으니 그는 내 신의 이름을 좇아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자요 그의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자라."
여기서 나는 느부갓네살 임금입니다. 다니엘은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4:9을 보십시다.
"박수장 벨드사살아 네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은즉."
넘어가서 4:18을 보십시다.
"나 느부갓네살 왕이 이 꿈을 꾸었나니 너 벨드사살아 그 해석을 밝히 말하라 내 나라 모든 박사가 능히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지 못하였으나 오직 너는 능히 하리니 이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네 안에 있음이니라."
느부갓네살 임금은 다니엘을 칭할 때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라고 칭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의 딸인 태후도 다니엘을 그렇게 소개했습니다.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태후도 자기 아버지 느부갓네살 임금 때 다니엘이 주었던 그 강한 인상을 지금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이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본문을 계속해서 보십시다. "곧 왕의 부친 때에 있던 자로서." 왕의 부친 때 있던 자라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지금은 공직에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암시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때 다니엘의 나이가 얼마라고 했습니까? 81세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원년에 나이 15세에 끌려갔고 느부갓네살 임금이 43년 동안 통치했습니다. 합치면 58이 됩니다. 그 다음에 느부갓네살 임금이 죽고 난 뒤에 23년이 지난 후 벨사살 임금이 죽고 바벨론이 멸망당했습니다. 15+43+23=81입니다. 다니엘의 나이 81세였습니다. 나이가 많았습니다. 은퇴할 나이였습니다. 그것보다도 왕이 바뀌면 보통 신하들도 다 바뀝니다. 대통령이 바뀌면 각료가 다 바뀌지 않습니까? 총리도 바뀌고, 장관도 바뀝니다. 마찬가지로 왕이 바뀔 때 그 각료들도 다 바뀌는 것입니다. 다닐엘은 왕의 부친 때의 자로서 지금은 공직에서 은퇴해서 조용히 기도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루하루의 삶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보세요.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있어." 지극한 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니엘에게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있었던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그의 마음속에 거룩한 신들의 영들이 있기 때문에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태후가 다니엘의 능력을 무엇에 비유했습니까?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라"라고 했습니다. 신들의 지혜에 비유했습니다. 그래서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 임금은 다니엘을 높이 사서 그를 어떻게 했습니까? "그를 세워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의 어른을 삼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바벨론의 모든 박사의 어른으로, 박수장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왕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이 다니엘의." 벨드사살은 바벨론 식 이름이었고 다니엘은 히브리 식 이름이었습니다. 실제로 다니엘에게 바벨론 식으로 벨드사살이라는 이름을 준 사람은 느부갓네살 임금이 아니라 누구였습니까? 1장에 보면 환관장이 바벨론 식 이름을 이 이름을 주었습니다.
"이 다니엘"이라고 하면서 태후는 또다시 다니엘의 능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민첩하고 지식과 총명이 있어." 마음이 민첩하다고 했습니다. 빠릿빠릿하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느리고 더딘 사람이 아니라 민첩하고 지식이 있어서 모든 유익한 정보를 다 가지고 있고, 또 총명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그 결과로 다니엘의 능력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첫째로, "능히 꿈을 해석하며." 느부갓네살 임금의 두 가지 꿈을 해석을 해 주었습니다. 둘째로, "은밀한 말을 밝히며." 원문대로 해석하면 수수께끼를 잘 푼다는 뜻입니다. 은밀한 말, 남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잘 밝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의문을 파할 수 있었음이라." 어려운 문제를 능히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능력이 실제적으로 세 가지 면에서 나타난 것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태후가 벨사살 임금에게 무엇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까? "이제 다니엘을 부르소서." 다니엘이 지금 연회장에 있습니까? 다니엘은 거기에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도성의 틀림없는 귀인이었습니다. 박수장이었습니다. 총리대신이었습니다. 그만큼 높았던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벨사살 임금도 큰 잔치를 베풀고 귀인들을 초청할 때 다니엘에게 초청장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왜입니까? 그 자리가 어떤 자리입니까? 술잔치를 베풀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짓밟고 우상들을 찬양하는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 다니엘이 참석할 수 있겠습니까? 벨사살 임금보다도 훨씬 더 권세 있고 두려웠던 느부갓네살 임금이 주는 포도주와 진미도 감히 거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벨사살 임금이 초청한다고 그 자리에 가겠습니까? 다니엘은 그 초청을 거절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다니엘처럼 일편단심의 신앙, 주님을 향한 일사각오의 신앙이 있어야겠습니다. 가서는 안될 자리는 가지 말고, 보아서는 안될 것도 보지 말고, 사귀어서는 안될 친구는 사귀지 않는 돈독한 신앙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에 보세요. "그리하시면 그가 그 해석을 알려드리리이다." 지금 태후가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꿈을 해석만 하면 그 꿈이 주는 불길한 내용을 다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벽에 있는 이상한 은밀한 글들을 해석만 하면 그 글들이 주는 불길한 내용들을 다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석한다고 그것이 해결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벨사살 임금을 심판하고자 하시는 것인데 사람이 해석한다고 그것이 해결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긍휼을 받아야 그 모든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인데, 태후는 아직도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셔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아침에도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사랑하셔서 불러주셨는데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크신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가 깨끗하게 해결되고 주님 안에서 평강을 누리며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이 하루를 복되게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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