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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예배] 이기는 자는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3장 11-13절)

by 【고동엽】 2022. 4. 3.

[송구영신예배] 이기는 자는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3장 11-13절)

 

언젠가 우리나라의 무슨 목사인지 신학교수인지 하는 사람이 "찬송가에서 '분투와 승리'라는 주제로 된 곡들은 다 빼 버려야 한다."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펴는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이유인즉슨 "원래 예수님은 이 세상에 화목과 평화를 주기 위해서 오신 분이신데 일부 기독교인들이 그런 따위의 찬송을 부르면서 예수님을 '싸움꾼'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저 유명한 '내 주는 강한 성이요'(384장)부터 시작해서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389장)라든지 '행군 나팔 소리로 주의 호령 났으니'(402장)에 이르기까지 우리 기독신자들이 즐겨 부르는 이 멋진 찬송들이 그 사람의 주장에 따른다면 '평화의 성인인신 예수님을 냉혈한 싸움꾼으로 둔갑시켜 버린 나쁜 찬송'들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소위 기독교인이라 하면서도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예수님마저 오해하는' 오늘의 사두개인들, 제 딴에는 온갖 거룩하고 선한 모양새는 다 내고 있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불신자보다 더 못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이 나타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조금만 성경의 상식이 있는 기독신자라 할지라도 마태복음 10장 34절부터 36절에 예수님께서 "34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고 하신 말씀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바로 그런 '값싼 평화주의자'들을 향하여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친히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착각하지 말라."고 명백히 일깨워 주셨을 뿐 아니라, 진정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내가 검을 주어 싸우게 하려고 왔다."라고 엄중히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신자와 불신자, 교회와 불신사회 사이에 당연히 '영적 불화'가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때로는 인간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자기 집안 식구라 할지라도 신자에게는 '영적 원수'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까지 분명히 밝혀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자기가 예수님보다 더 착하고 더 의로운 것처럼 교만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자들, '전투하는 지상교회'의 본연의 자세를 스스로 와해시키려는 '기독교 자체 내의 비둘기파들'이 그따위 소리로 기독신자와 교회들을 무장해제시키려는 작태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예수님은 분명히 '평강의 주님'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참된 평화라는 것은 원수를 완전히 무찌르고 이겼을 때에만 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사단의 머리를 밟는' 전투에서 이기는 대장이 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평강을 누리게 해 주셨을 뿐 아니라, 또한 당신의 뒤를 따르는 부하들에게도 꼭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독려하셨던 것입니다.

  본문이 기록된 요한계시록은 신자와 교회가 '종말'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계시해 주는 말씀입니다.
  종말이란 이 영적 전투가 더욱 극심해 가고 막바지에 이르는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반드시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하여 남아 있는 모든 힘,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 싸워야 하는 시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걸쳐서 당시 소아시아에 세워져 있던 일곱 교회들에게 각각 칭찬과 책망, 격려와 훈계들을 주시면서 제일 끝에 가서는 예외가 없이 "이기는 그에게는" 혹은 "이기는 자는"이라고 시작되는 독려의 말씀으로 맺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이 '빌라델비아 교회'는 비록 "적은 능력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면에서 오직 칭찬과 격려의 말씀만 들었던 아주 훌륭하고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하여서도 역시 '끝까지 이기는 교회가 되라'는 명령을 빼지는 않으셨습니다.
  '작은 고추가 매운' 것과 같았던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하여서도 '주마가편(走馬加鞭)'과도 같은 마지막 독려를 내려주셨던 것이었습니다.

  이제 2007년을 송구(送舊)하면서 2008년을 영신(迎新)하는 오늘 밤에 저와 여러분은 '이기는 자는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리라'는 우리 주님의 특명을 함께 받음으로써, 다가오는 새해를 비참하게 지는 인생이 아니라 영광스럽게 이기는 신자로, 불신 세상에 항복하는 패배교회가 아니라 더 큰 승전가를 힘차게 부르는 승리교회로 함께 누리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그처럼 '이기는 자'는 과연 어떤 신자와 교회입니까?

 

  1. 예수 신앙고백의 면류관을 절대로 빼앗기지 아니하는 신자가 '이미 이기고 있는 자'입니다.

 

  본문 11절에 기록하기를 "11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내가 속히 임하리니"라고 하신 것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으니 조금만 더 인내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이제 전투는 막바지에 이르렀고 최후 승리는 눈앞에 손에 잡힐 듯이 다가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마지막 한 고비를 넘기지 못함으로써 여태껏 애써 싸워 온 것이 다 물거품이 되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그처럼 속히 임하실 주님을 생각하면서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고 하셨는데, 이 빌라델비아 교회가 가지고 있던 것이란 바로 앞의 8절과 10절에 나온 대로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한 것과 그 말씀을 지킨 것'을 가리킵니다.
  즉 '사단의 회'가 온갖 모략중상과 핍박으로 빗발치듯 공격해 오는 중에도 이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신앙고백과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신행일치를 지금까지 저버리지 아니하고 지켜내어 왔습니다.
  바로 그것을 끝까지 '굳게 잡고'만 있으면 승리의 "면류관"을 쓰게 될 날이 머지않다고 최후의 독려를 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전투하는 병사는 무엇보다도 자기 대장을 절대로 배신해서는 아니 되며 그 명령을 끝까지 복종해야만 합니다.
  꼭 마찬가지로 기독신자는 '예수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고 '그 말씀'에서 한 걸음도 떠나지 아니하는 충성을 특히 마지막 고비의 순간에 더욱 굳게 붙잡고 지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로마제국의 기독교 박해가 막바지에 이르렀던 주후 320년 경에 일어났다는 이런 이야기가 기독교사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느 로마 군단에 40명의 기독신자 군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그 부대가 단체로 우상신 앞에 제사 드리는 자리에 전원 참석하라는 군단장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화가 난 군단장은 그 40명의 군인들을 완전히 벌거벗긴 채로 얼어붙은 호수 한 가운데 세워 놓고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기만 하면 호숫가에 피워놓은 모닥불 곁으로 나와서 몸을 녹이게 하고 살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추운 밤이 깊어가고 그 40명의 기독신자 군인들이 다들 동사(凍死)하게 될 즈음에 호숫가에 그들을 지키고 있던 보초병 중에 한 명이 하늘을 보니 천사들이 40개의 면류관들을 각각 한 개씩 손에 들고 내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 40명의 군인들 중에 한 명이 그만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신앙을 부인하면서 호숫가 모닥불 곁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러자 그 40개의 면류관을 각각 손에 들고 내려오던 천사들 중에 제일 마지막 천사가 자기 손에 있는 면류관을 씌워 줄 사람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가 슬픈 얼굴을 하면서 다시 하늘로 돌아가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본 보초병은 "그 면류관을 제게 씌워 주십시오."라고 외치면서 스스로 자신의 옷을 다 벗어 던지고 그 얼어붙은 호수 한 가운로 달려 들어가서 아직 남아 있던 39명의 신자들과 함께 섰고, 그러자 하늘로 돌아가려던 마흔 번째 천사는 다시 방향을 돌려 내려와서 그 마지막 면류관을 바로 그 보초병 군인에게 씌워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우리는 이미 우리 각자에게 약속된 "면류관"을 "아무나 빼앗지 못하게" 끝까지 지켜야만 합니다.
  주님 재림의 날을 임박했고 성도와 교회의 최후 승리는 우리 코앞 지척에 벌써 와 있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안타깝고 어리석은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니 새해에도 불신 사장이 주일성수를 방해하고 불신 남편이 십일조 못하도록 핍박해 오는 전투에서 우리는 조금만 더 견디어내어야 합니다.
  사단이 병마를 동원해서 줄기차게 괴롭혀 오고 가난을 가지고 숨통을 죄어 와도 우리는 이제 와서 항복해서는 아니 됩니다.
  천주교와 자유주의 신학이 동맹을 맺고 다른 우상종교들과 대연합 전선을 형성하여 우리 개혁주의 교회를 향하여 집중적으로 사방팔방에서 최후의 발악처럼 공격해 들어오고 있지만 '이미 우리는 이기는 전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끝까지 용기를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2008년이 되면 우리 주님의 재림은 그만큼 더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그저 우리가 지금까지 잘 지켜온 신앙고백과 순결한 삶을 이제 조금만 더 인내하면서 지켜내면 저와 여러분이 이 선한 싸움의 결승 테이프를 끊게 될 순간은 이미 예약되고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설혹 순교의 자리에 이르게 될지라도 이 마지막 고비에 끝까지 '예수 이름'과 '그 말씀'을 지킴으로써 저 의로우신 재판장께서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들을 위하여 이미 손에 들고 기다려 주고 계시는 영광의 면류관을 반드시 쓰게 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2. 주님의 교회에 요긴한 존재가 되어서 끝까지 사용되는 신자가 '계속하여 이기는 자'입니다.

 

  12상반절에 "12a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둥'이라는 것은 '중요함, 굳건함, 영원함'을 상징합니다.
  특별히 본문에서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라고 하는 것은 일찍이 솔로몬의 성전 현관에 세워졌던 두 개의 기둥들을 상기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세우심'이라는 뜻의 '야긴'이라는 기둥과 '하나님께서 견고히 하심'이라는 뜻의 '보아스'라는 기둥이 솔로몬 성전에 있었던 것입니다.

  기둥이 건축물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새삼 설명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특히 빌라델비아 시는 당시 잦은 지진이 일어났던 곳이었으므로 그 교인들은 이 '기둥'이란 표현에 담긴 의미를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기둥이 있음으로 해서 건물의 기본구조가 짜이게 되고 그 기둥이 튼튼히 지지해 주어야 그 건물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기는 자는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겠다."는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교회에 없어서는 아니 될 요긴한 일군으로 사용된다는 뜻이 됩니다.

  신자가 교회에서 그런 존재가 된다는 것이 바로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특권인 것입니다.
  사실 저 장망성 세상을 떠나 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된 성도는 그것만 가지고서도 벌써 '이긴 자'가 됩니다.
  우리를 죽이려 하는 사단의 줄기찬 추격을 벗어나서 이 도피성 안에서 자기 영혼의 생명을 안전히 지키게 되었으니 그 자체만 해도 벌써 대단한 승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바로 그런 승자들을 아예 이 교회의 '기둥'으로 만들어 버리십니다.
  즉 이제부터는 철저히 '교회중심'으로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 전투에 아주 중하게 쓰임을 받는 일군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통 일이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이 하나님의 집에서 필요불가결한 존재로 바뀌어 버리는 것입니다.
  기둥이 빠지면 당장 건물이 무너질 수밖에 없듯이, 우리 각자가 이 교회를 지탱하고 강력하게 유지시키는 데에 있어서 절대로 없어서는 아니 될 기둥, 각자에게 맡겨진 교회 곳곳의 하중을 바로 이 한 몸을 가지고서 떠받치고 있는 동량(棟樑)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이 경향교회의 당회에서 없어서는 아니 될 장로가 되고, 전도회에서 절대로 빠져서는 아니 될 임원이 되고, 주일학교와 찬양대와 구역이 유지되기 위해서 문자 그대로 VIP(very important person)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나 그런 기둥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이기는 자'만 그런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약골이나 패잔병을 그런 중대한 자리에 세워 놓으면 교회 전체가 무너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머리시오 우리의 대장되신 주님께서 그렇게 하실 리가 만무하지 않겠습니까?

  그뿐 아니라 그처럼 일단 성전의 기둥이 되면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일반 건물의 기둥도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일단 어떤 건물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자리 잡게 되면 그 건물의 하중 때문에 그 기둥 자체도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이 교회의 직분을 맡게 되면 그 맡기신 영혼을 아끼게 되는 사명감이, 그 사명을 완수해야만 하겠다는 책임감이 오히려 우리를 더욱 교회중심으로 살도록 짓누르게 됩니다.
  즉 그 직분이 주는 중압감 때문에라도 교회를 빠져나가려야 나갈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그것은 결코 부담이나 프레셔(pressure)가 아니라 그 자체가 또한 엄청난 축복입니다.
  교회의 기둥이 됨으로써 받게 되는 그런 영적 하중이 우리로 하여금 그 신앙에서 결코 탈선하지 못하도록 꽉 눌러주고 다시는 세상 쪽으로 나갈 생각도 나지 못하도록 요지부동으로 붙잡아 주니 그것이 은혜요 축복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어린이 새소식반 방제공자이든지 주차봉사위원이든지 일단 교회의 직분자가 되어 주님의 선한 사업에 쓰임 받게 되기 시작하면 그 개인의 신앙도 더 자라고 더 강하여지고 더 뜨거워지게 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지금 이 경향교회에서 크든지 작든지 '기둥'이 되어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야긴'의 기둥입니다.
  절대로 그 위치를 떠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더 견고하게 해 주시는' '보아스' 기둥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직 '이기는 자'들만 자리 잡을 수 있게 해 주시는 '성전의 기둥'들이 됨으로써, 자신의 신앙생활은 더욱 확고부동해지며 교회는 더욱 강해지는 일석이조의 승리, 연전연승의 승리를 계속 누리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께 속한 자녀로 끝내 하늘 성전에 들어가게 되는 성도가 '영원히 이기는 자'입니다.

 

  이어지는 12하반절에 "12b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고 주님께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신자에게 베풀어 주실 최후의 영광과 상급을 약속해 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의 이름," 더 자세히 말해서 "나의 새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보통은 우리 성도들이 천당에 가면 '새 이름'을 받게 된다는 약속을 해 주시는데, 여기서는 그 반대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새 이름'과 '새 예루살렘 곧 천당의 이름'을 "그이" 곧 '이기는 성도' 위에 기록해 주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제국 사회에서는 가축이나 노예에게 낙인을 찍음으로써 그 주인의 소유인 것을 확증했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이름을 쓰셨다'는 말은 바로 그런 성도가 주님의 것이라고, 천당에 속한 존재라고 확인하심을 의미합니다.
  즉 결코 다른 데로 빼앗길 수 없는 하나님의 확실한 소유물로 절대로 지워지지 않도록 인을 쳐 놓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땅에서 신앙생활에 승리하고 교회충성에서 승리한 성도는 완전히 하나님께 속한 자녀로 확증을 받고 저 하늘의 성전에 영원히 속하게 되고야 말 것을 약속해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패배자는 비문조차 남길 수 없습니다.
  진 사람은 그냥 죽은 몸으로 썩어 없어질 뿐입니다.
  아무도 패배자들의 시체를 소중히 여기거나 돌보려 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승리를 맛보지 못하면 사실상 죽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예수 신앙고백을 지키는 각개전투에서 패배한 교인은 지옥으로 떨어질 뿐입니다.
  사단을 대적하는 전투에 과감히 뛰어들어 승리의 전과를 전혀 거두지 못하는 교회는 예수를 믿는다고 해 봤자 오히려 그 이름에 먹칠이나 하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을 따른다고 해 봤자 사실은 아무 영광도 돌리지 못하고 있는, 예수님 말씀 그대로 당신께서 재림하실 때 '나도 저를 부끄러워하리라'고 하실 대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직 승리자만이 자랑스러운 승전비를 남길 수 있습니다.
  승리한 신자는 이 세상에서도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교회의 영광을 반영하는 승전비와 같습니다.
  그리고 천당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그런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진,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 기록된, 영원히 영광스러운 주님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언터처블'(The Untouchable)이라는 영화에 보면 시카고의 마피아 두목인 알 카포네가 수사반장 엘리엇 네스가 자기를 체포하려고 애쓰는 것을 비웃으면서 "여러분, 권투에서 누가 승자인지 어떻게 알지요? 바로 마지막까지 서 있는 사람이요."라고 기자들 앞에서 호언장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엘리엇 네스는 모든 불리한 조건들을 헤치고 끝까지 싸워서 끝내 알 카포네를 법정에 세워 유죄판결을 받게 만듭니다.
  그리고 간수들에게 잡혀 들어가는 알 카포네를 향하여 "어디 더 싸울 수 있으면 싸워 보시지. 너는 이제 붙잡혔어.(You are under arrest.)"라고 의기양양하게 외침으로써 '마지막까지 서 있는 최후의 승자'는 바로 엘리엇 네스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당에 들어가서 '최후에 서 있는 승자'가 되면 그보다 더 통쾌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신자 위에 서서 괴롭히던 불신자들, 세상에서 자기 권력과 재력과 다수의 세력을 이용하여 참된 신자와 교회를 박해하던 자들이 다 재림주의 심판 앞에 꼼짝 못하고 쓰러지고 자빠지고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을 때, 저와 여러분이 영광 중에 공중에서 우리 예수님을 영접하며 저 하늘나라 혼인잔치 자리에 올라가게 될 때 그 기분이 어떠하겠습니까?
  우리가 서게 될 천당은 바로 그런 신나고 즐겁기 짝이 없는 승전 파티가 영원히 계속되는 곳인 것입니다.
  오직 끝까지 '이기는 자'만 누리게 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 끝까지 '이기는 자'를 위하여 이미 예비되어 있는 저 '하늘 성전'에 들어가는 축복, 우리 주님과 함께 세세무궁토록 왕노릇하는 이 영원한 승리의 잔치 자리에서 꼭 함께 만나게 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도 우리의 대장되신 주님께서는 "13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참된 교회와 성도들을 격려하시고 독려하고 계십니다.
  전장에서 탈주하는 배신의 행동을 '평화'라는 단어로 슬쩍 덮어버리려 하고, 적과 동침하는 배교의 죄악을 '화목'이라는 미명으로 가장하려 하는 사단의 스파이들이 바로 교회 안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이 혼란스럽고도 위태로운 시대에 더욱 정신을 차려 임전태세를 철저히 하라고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리라'는 특명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자기 부하들에게 잘 싸우라고 독려하는 것은 대장이라면 당연히 하는 일입니다.
  그런 대장의 호령을 들으면 절로 용기백배하게 되는 것은 그 대장의 충성스러운 부하된 자라면 또한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대장의 명령이 있는데도, '누가 우리 대장을 싸움꾼으로 만들어 버렸나?'하고, 그 대장이 지휘하고 출전하는 싸움을 자기가 무슨 평화의 사도가 되어 다 끝내어 버린 것처럼 생색을 내고 있다면 그게 어디 그 대장의 부하이겠습니까?
  아주 좋게 말해 주어야 '졸장부'요, 실상은 '명령 불복종자' 아니면 '적군의 스파이'일 뿐 아니겠습니까?

  세상 국가 간에도 진정한 평화는 오직 전쟁억제력의 힘이 있는 나라만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상식에 불과합니다.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원수를 무찔러야만 평화가 유지되고 누려질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철칙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역사적으로 볼 때 구호로만 평화를 외치는 비둘기파들은 항상 제일 먼저 악인의 밥이 되었습니다.
  전투태세를 갖추지 않고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평화란 적군의 포로가 되든지 죽임을 당하는 것일 뿐인 것입니다.

  우리 대장 예수님은 결코 그런 약골들을 키우지 아니하십니다.
  당신의 교회가 연패의 늪에 빠져 있고 그 교인들이 자기도 모르게 늘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도록 하실 무력한 대장이 결코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승리하는 교회란 매일같이 세상에서 지고 주일에 교회에 와서 울고 짜는 기도만 하는 교인들 가지고서는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용장 밑에는 당연히 용사가 나올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신앙고백의 면류관'을 절대로 빼앗기지 않는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잘 이기는 자만이 쓰일 수 있는 '교회의 기둥'이 되어 더 많이, 더 크게 계속 이겨야만 합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오직 최후의 승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저 영원한 '하늘 성전'에 영화로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한 개선가를 함께 부르게 될 고지의 정상까지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2008년 새해를 맞이하여 가정에서, 학업에서, 직장과 기업에서 이기고 또 '이기는 자'들이 되어서 금세와 내세에 걸쳐서 영원히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는 축복을 반드시 함께 누리는 경향의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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