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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요약설교 모음(30편)

by 【고동엽】 2022.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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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과 독신의 문제(고전7:10-16)

 

(서론)말세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사회적 문제는, 이혼과 독신의 문제라 할 수 있다. 2005년도 통계자료에 의하면 결혼이 316,375건으로 하루 867쌍이 결혼을 했고, 이혼은 128,468건으로 하루 351쌍이 이혼을 했다. 이는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려는 이기적인 생각에서 나타나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이다. 흔들리고 있는 가정에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들의 현실 속에 깊숙이 들어와서 모든 이들의 가정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는 교회 안에 까지 들어와 교회의 거룩함을 회손 하고 성도들의 가정을 파괴하고 있다.   

 

(본론)고린도 교회는 분쟁의 문제를 넘어 음행과 고소사건까지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문제는 가정의 부부생활과 이혼, 그리고 독신의 문제로까지 번져 나갔다. 이혼과 독신의 문제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게 가르치고 있나?

 

1.이혼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

1.이혼하지 말라(10,11)

  1)결혼의 제도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으로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엡5:31)

  2)또한 하나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아무도 나누지 못할지니라(마19:6)

  3)하나님은 어떤 이유에서든 부부가 갈라지는 것은 결코 원하지 않으신다.

 2.부득이한 사정으로 갈라졌을 때(11)

  1)그냥 지내든지

  2)다시 합하라

  3)이혼숙려제도 실시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3.한 사람 중 불신자일 경우(12-16)

 1)두 사람 중 한사람이 불신자일 경우 - 한쪽이 불신자라도 함께 살기를 원하면 이혼하지 말라(12)

  2)이혼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 믿는 아내나 남편으로 거룩하게 되기 때문이다(14) -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16)

  3)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대로,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4.믿지 않는 자가 구속하고자 할 때(15)

  1)그러나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나 아내가 믿는 이를 구속하여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할 때 화평을 위해 갈라서라.

  2)이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 어떤 것으로부터 구속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이는 사단으로부터 구속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독신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

1.결혼을 하지 아니한 독신자

  1)환란의 때에는 그대로 지내는 것이 좋다(17)

  2)혼자 살면서 성적인 생각이나 유혹을 받지 않는다면 이는 독신으로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이다(20,24) - 범죄의 가능성이 없다면

  3)독신은 주를 섬기기 위한 동기로 결단해야 한다(35)

 2.결혼했다가 독신이 된 사람

  1)한국에도 현재 다양한 가족형태가 이루어져가고 있다.

  2)범죄의 가능성이 있다면 독신으로 살지 말고 재혼하라(9)

  3)재혼하려면 주 안에서 하라(39)

  4)독신의 결단은 주를 섬기기위한 동기로 하라(35)

 

(결론)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예수만 잘 믿으면 되지 하는 안일함 속에서 가정문제를 쉬쉬하며 숨겨왔다. 이제 교회는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망가져가는 가정을 지켜주기 위해 예언자적 사명과 제사장적 사명을 감당해야 된다. 가정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성경적 결혼관을 가르쳐 이혼하지 아니 하도록 예언자적 역할을 해야 하며, 이혼한 사람과 사별한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해주는 제사장적 사명을 감당해야 된다. 교회는 이혼한 사람들을 정죄하거나 사별한 사람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이런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하며 치유하는 역할을 해야 될 것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가는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사람은 배우므로 성장하게 되고, 자신의  삶을 뒤돌아봄으로 새로워지게 되는데, 하나님이 세워주신 “성남가정사랑학교”를 통하여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가는 사역을 잘 감당하도록 기도합시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권리(고전9:1-14)

 

(서론)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특성이 있다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권리신장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권리”라는 단어에 익숙해 있다. 노동자의 권리, 여성의 권리, 장애인의 권리, 재소자의 권리 등 이러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게 된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가? 이는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삶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본론)고린도전서 9장은 바울사도가 자신이 마땅히 주장할 수밖에 없었던 권리와 특권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바울이 이러한 문제를 다룬 것은 자신의 권리와 특권을 챙기고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권리와 특권을 넘어서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시간은 바울사도가 주장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하여 말씀드리려 한다.

1.바울의 신분

1.나는 자유인이다(1)

1)바울은 자신은 자유인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의 복음의 핵심으로 복음으로 거듭난 자들은 진리 안에서 자유 함을 얻는 것이다(요8:32)

  2)이제는 종이 아니다. 죄와 세상모든 것에서 해방을 얻는 자유인이다.

  3)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율법과 죄와 세상에서 자유 할 수 있어야 된다.

2.나는 복음증거자가 아니냐(1)

  1)바울은 자신은 사도라 고백하며, 하나님이 자신을 사도로 부르신 것은 복음 증거자로 삼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2)그렇다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이유 또한 복음증거자로 삼기 위함임을 고백 할 수 있어야 된다.

 

2.사도된 바울의 권리

1.먹고 마시는 권리(4)

  1)고린도전서 8장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고 마시는 문제를 다루었다. 진리를 아는 지식과 신앙이 강한 사람은 양심에 죄의식을 가지지 않는다면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죄가 안 된다.

  2)참된 자유인, 진리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 아무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먹고 마시는 자유가 있었다.

  3)바울은 그들에게 나도 우상의 제물을 먹고 마실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식물로 인해 형제들이 실족하게 된다면 영원히 먹지 않겠다(8:13)고 말했다.

2.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수 있는 권리(5)

  1)바울이 바나바와 베드로와 함께 전도여행을 다닐 때 베드로는 아내와 또는 자매를 데리고 다녔다.

  2)바울은 당시 혼자 살았지만 자신이 원한다면 결혼해서 아내와 복음을 전하러 다닐 권한이 없겠느냐는 것이다.

  3)당연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러나 바울이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경제적 부담이 오기 때문임을 고백하였고, 복음전하는 자가 선교여행을 할 때 자매를 통해 후원을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임을 말하고 있다.

3.일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6)

1)바나바와 베드로는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였으나, 바울은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와 함께 천막 짓는 일을 하며 복음을 전했다.

  2)그 당시 헬라문화는 노동을 천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바울이 노동을 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 말이 많았다.

  3)이에 바울은 나에게도 일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러나 남들에게 재정적 부담을 지우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장애요소가 되었기에 일하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4)주의 종은 당연히 세상일을 하지 않고 오직 복음만을 위해서 일하는 자세가 필요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 일할 수 있는 권리도 있음을 알아야한다.

4.생활비를 받을 수 있는 권리(7,9)

  1)바울은 세 가지 비유를 들어(군인, 포도원, 목동)복음을 위해 일하는 자가 생활비를 받는 것이 마땅한 권리임을 말하고 있다.

  3)성경에서 레위인들에게는 기업을 안주었다, 오직 주의 제단을 위해 일하고 제단에서 나오는 것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허락하였다(13)

 .

(결론)사랑하는 양문비전 가족여러분! 예수의 복음을 듣고 새롭게 거듭난 사람들은 진리 안에서 자유인이며 복음증거자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또한 우상의 제물을 먹고 마실 수 있는 권리와 결혼을 하며 물질적 복음증거를 위해 물질적 후원을 받을 수 있는 권리와 복음을 전하며 세상에서 일할 수 있는 권리와 생활비를 제단에서 받을 수 있는 권리도 있습니다. 우리는“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갈6:6)

 
 
 

권리를 사용하는 하늘의 지혜고전9:12-27

(서론)저는 지난 주일에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권리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렸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음식이나 우상의 제물이라 할지라도 먹고 마실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또한 결혼할 수 있는 권리와 자비량과 봉급을 받고 일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말씀드렸다. 

(본론)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에 권리와 특권을 말하면서 권리와 특권을 포기했던 이유는 자신이 미련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였음을 밝히고 있다.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다 사용하든 안하든 죄는 아니다. 문제는 현실을 무시하고 권리만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권리를 사용하는데 있어 세속적지혜가 아닌 하늘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바울은 가르치고 있다

1.지혜의 구분
 1.세속적 지혜
  1)세상에서는 자신의 권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미련하다고 말한다. 상황이 나 현실이 어떠하든 오직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지혜롭고 똑똑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한다.
  2)이러한 생각은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공동체를 파괴하기 쉬운 사회주의적 사상에 가깝다.
  3)이러한 세속적 자세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게 되고, 결국은 돈 때문에 일하게 되어 버림받게 된다(27)
 2.하늘의 지혜
  1)자신의 권리를 포기해서라도 어떤 공동체나 이웃에게 유익을 가져다준다면 그것은 자신의 유익보다는 더 큰 유익을 추구하기 위한 희생적 삶의 자세를 말한다.
  2)바울은 자신이 세상에게 드려진 고기를 먹지 아니하고, 결혼하지 아니하고, 자비량으로 선교활동을 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기 위함이지 결코 자신이 누려야 될 권리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3)바울은 이러한 생각, 이웃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배려하는 생각을 하늘의 지혜라고 말하고 있다.
2.바울이 말하는 하늘의 지혜
 1.희생의 지혜(12)
  1)바울은 너희가 신령한 것을 뿌리고 육신의 것을 거두려고 하느냐(11)라고 질문하면서, 봉급을 받고 열심히 일하면 돈 때문에 열심히 일한다는 오해를 받기 쉽기 때문에 바울은 안 받고 열심히 일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2)복음이 복음답게 전해지고 주님의 사역이 더욱 가치 있게 결실 맺기 위해서는 나에게 주어진 권리라 할지라도 현실과 상황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
  3)제단에서 무엇을 얼마를 받느냐가 자랑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세속적인 지혜일뿐 하늘의 상급은 없다(이 땅에서 보상받았기 때문)
  4)그러나 오직 주님의 사역이 생활에 근거가 되고 있는 사람들은 제단에서 일하며 봉급을 받는 것 또한 잘못된 것이 아니다(13)
 2.성육신의 지혜(19)
  1)바울은 누구보다도 많은 지식과 능력을 가진 젊은이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얻기 위해 종이 되기로 결심했다(19)
  2)유대인에게서는 유대인과 같이, 이방인에게는 이방인과 같이, 그렇다고 술 먹는 사람을 전도하기위해서 그들과 함께 술 먹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리는 함께할 수 있어도 죄는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3)성육신이란? -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을 말하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성육신의 지혜로 세상 사람들의 문화와 삶속에 뛰어들어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지혜를 말한다.
 3.승리자의 지혜(25)
  1)바울은 손해 보는 것 같은 희생의 지혜와 고생스러움을 자처하는 성육신의 지혜를 “승리자의 지혜”라고 말하고 있다.
  2)그러면서 마지막 상을 얻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절제하고, 절제 하기위해 자신을 쳐 복종하는 훈련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27)
  3)그 이유는 자신이 주님께 쓰임 받다가 버림받게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임을 고백하였다(27)

(결론)사랑하는 양문비전가족여러분! 신앙생활에는 무엇보다 하늘의 지혜가 필요 합니다. 세속적인 지혜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바울이 염려하던 것과 같이 쓰임을 받은 후에 결국 버림받게 되는 영광의 도구가 아닌 사단의 도구로 될 것입니다. 하늘의 지혜인 성육신의 지혜로 살아갑시다.

 
 
 

 이방인의 제사(고전10:14-33)

 

(서론)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가장 크게 혼란을 겪었던 문제가 있다면“수입 소고기” 문제일 것이다. 성경에서 보면 고기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살아가면서 박식한 음식에 싫증났다며 애굽에서 먹던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했던 것처럼, 고린도교회 문제도 우상 앞에 드려진 고기문제로 시끄러웠다. 

(본론)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 8장에서 우상이 무엇이냐, 9장에서 그리스도인의 권리와 자유, 10장에서 수상숭배에 대한 경고와 정의, 삶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목적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

 

1.우상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1.우상의 실체

  1)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8:4)

  2)사람의 수공물이며 사람이 만들어 놓은 신에 불과하다(사44:6-11)

  3)우상숭배자는 반드시 수치를 당한다(사44:11)

2.우상의 발전과정

  1)고대사회에서는 눈에 보이는 우상 물을 만들어 섬겼으며,

  2)근대에서는 사람(왕, 조상)을 우상으로 섬겼고,

  3)현대는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마음속에 어떤 것들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다.

3.인간이 우상을 섬기는 이유는?

  1)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양심),

  2)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불확실함),

  3)인간은 연약하고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연약함)

2.고린도교회를 향한 바울의 가르침

1.우상에 관한 지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8:1)

  1)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 자유를 주겠다.

    그러나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로 이웃을 실족하게 한다면 먹지 말라(8장)

  2)과거의 역사를 회상하며 과거에 조상들이 우상 숭배함으로 광야에서 멸망받아 죽은 것을 기억하여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우상숭배는 이방인의 제사로 귀신을 섬기는 것이다(10장)

  3)그리스도인들은 물질이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9장)

2.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범하는 우상숭배

 1)조상우상 - 돌아가신 조상을 섬기는 것(제사, 주일날 벌초하는 것)

  2)세상우상 - 하나님의 일보다 세상을 우선적으로 하는 것,

  3)사람우상 - 사람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그릇 치는 것,

  4)물질우상 - 돈 몇 푼 때문에 신앙생활 제대로 못하는 것,

  5)자기우상 - 육신, 명예, 체면 등

3,이방인의 제사는 귀신을 섬기는 것이다.

1.그리스도인의 제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기는 것

  1)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8:5-7)

  2)죄인을 구원하시러 이 땅에 눈에 보여주신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요1:18)

  3)우리마음에 하나님으로 계신 보혜사 성령님(요16:7)

    그리스도인의 제사는 만물의 창조자 되시며 주관자 되신 하나님과 모든 인류를 죄악에서 구원하러 이 땅에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과 우리 안에 계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이신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2.이방인의 제사 귀신을 섬기는 것

 1)원래 제사는 돌아가신 조상을 위함이 아니라 살아계신 왕이나 부모님을 위함이었는데, 일부 세력가들이 자신들이 잘사는 것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은덕이라 생각하고 상을 차려놓고 절을 하는 데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2)돌아가신 조상은 인격체가 아니므로 섬겨서는 안 되며, 조상들의 삶의 좋은 교훈을 받아 가르칠 필요는 있다.

  3)결국 이방인의 제사는 부모님이나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 아닌 귀신에게 드려지는 것으로 귀신을 섬기는 행위로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다(10:20).

 

(결론)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31)

  1)모든 것이 가하나 유익한 것이 아니다(23)

  2)자신의 유익보다 남의 유익을 구하라(24)   

  3)시장에서 파는 음식에 관하여 자유하라(25)

  사랑하는 양문비전 가족여러분!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우상을 제거합시다. 그리고 세상일과 먹는 일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함을 받읍시다. 그러나 모든 일에 자신의 유익보다 이웃에 유익을 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갑시다.  

 

 
 
 

종교와 제사(고전10:20-33)

 

(서론)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만남이 중요하다. 무엇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그의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만남의 축복은 가장 큰 축복으로 만남은 결코 운명이 아니며,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계획이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계획을 무시하고 자신의 뜻에 따라 만날 때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만남에는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필연적인 만남(부모와 자식)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만남(결혼대상, 종교)이 있다.

(본론)오늘은 추석명절을 맞이하여 “종교와 제사”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려고 한다.

1.원시종교와 제사

1.원시 종교

 1)세상에서 가장 낮은 하급종교로서 자연, 동물, 짐승, 태양 등을 섬기는 형태의 원시종교를 말한다.

  2)원시종교는 문맹상태의 집단에서 사용되어온 다신교와 범신론적 형태로서 한국전통적 신앙형태가 원시종교와 가깝다. 

2.원시종교의 제사

 1)인간의 마음에는 영혼이 있는데, 영혼은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모든 인간은 신을 찾고자하는 종교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2)이러한 종교심으로 신을 섬기는 형태가 주술신앙, 자연숭배, 토테미즘, 샤마니즘 등의 원시신앙형태 이다.

  3)원시신앙의 제사는 그들이 신이라고 믿는 대상에게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며 복을 비는 형태로 제사가 치러지고 있다.

2.수도종교와 제사

1.수도종교

 1)수도 종교는 원시종교에서 조금 발전된 종교로서 성인들을 본받기 위해 그들의 행위와 삶을 배우고자 가르침을 받고자 도를 닦는 종교를 말한다.

  2)수도종교에서는 선행, 공로, 공덕을 쌓고, 기도하고, 묵념하며, 종교적 열심을 내며, 율법을 준수하며, 어떤 의식을 행하며, 사람이 도를 닦는 수도 행위를 하고 있다.

2.수도종교의 제사

 1)수도종교에서의 제사는 원시종교의 제사형태를 그대로 받아들여 신이나 돌아가신 조상에게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고 있다.

  2)우리나라의 유교적 제사는 돌아가신 부모를 잘 섬기고자하는 데서부터 비롯되었지만 제사의 형태는 결국 원시종교와 수도종교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3)다만 원시종교에서는 모르는 신께 제사를 드리고, 수도종교에서는 성인이나 왕에게 제사를 드리며, 유교에서는 돌아가신 부모님께 제사를 드린다.

3.계시종교와 제사

1.계시종교란

  1)원시종교나 수도종교는 사람이 신을 찾는 데서 발생되었다면, 계시종교는 반대로 절대자 하나님이 인간에게 찾아오신 종교로서, 인간이 하나님을 찾고 만나고 교제하는 길을 하나님 자신이 제시하신 종교를 말한다.

  2)계시란 - 뚜껑을 열다, 휘장을 열다는 뜻이다. 인간은 절대자 하나님의 존재와 임재를 알 수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 자신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을 계시하신 것이다.

  3)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자신을 보여주신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죄와 사망가운데 있는 인간을 구원하기위한 하나님의 은총이며 축복이다.

  4)인간의 노력으로는 신을 만날 수 없으며, 구원받을 수도 없다. 이것이 유한한 인간의 모습이며 한계다. 

 2.계시종교의 제사

 1)수도종교에서의 제사가 돌아가신 조상이나 어떤 신에게 드려진다면, 계시종교인 기독교의 제사는 우주만물과 사람을 만드시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인간의 생명과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 “살아계신 절대자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2)수도종교에서는 조상이나 어떤 신께 비는 차원에서 제사를 드린다면, 계시종교인 기독교에서는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축복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에서 드려지는 것이다.

 3.그러므로 신앙의 모든 행위는

  1)복받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구원하시고, 은혜 베푸시며, 축복해주신 것에 대한 보답의 행위가 되어야 한다.

  2)이것이 신앙의 본질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그를 즐겁고 기쁘게”하는 최고의 제사가 되는 것이다.

  3)마치 자식이 부모를 마땅히 섬겨야 되듯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섬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결론)사랑하는 양문비전 가족 여러분! 지식과 과학이 발달되어 우주선이 달나라를 가는 시대에 아직도 원시종교와 수도종교의 관습아래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 한 일이다. 자식이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를 외면하는 것처럼 큰 죄가 없듯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영혼을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을 외면한다는 것만큼 큰 죄가 없다. 원시종교와 수도종교의 관습에서 벗어나 계시종교로서의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찾읍시다. 무엇을 받기위해 열심을 내어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해주시고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시는 나의 하나님아버지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최고의 제사를 드립시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의 삶의 자세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늘 기도하는 산제사를 드리는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제사(고전11:17-34)

 

(서론)이 땅에 주님께서 당신의 피 값으로 세워주신 주님의 교회는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므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온 세상에 널리 전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교회가 세상 것들을 받아들여 세속화되어가고 기독교신앙의 본질까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린도 도시가 급속하게 변화되어가면서 고린도도심에 있었던 고린도교회에서도 변화의 물결이 출렁이고 있었다. 저는 지난주에“예배와 문화”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면서“예배의 정신과 원리는 변할 수 없지만 예배문화는 언제든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면서, 교회가 전통만을 고집하며 시대적 문화를 외면한다면 교회에 주신 사명을 바르게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본론)본문은 고린도교회에 발생되었던 또 하나의 사건이다. 초대교회는 본래 모일 때“만찬과 애찬"을 함께 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만찬과 애찬을 통해 교우들이 기뻐하고 즐거운 자리가 되어야 됨에도 불구하고 다툼과 분쟁의 자리가 된 것이다. 바울은 이런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1.초대기독교의 애찬과 만찬(성찬)

1.애찬(17-22)

  1)애찬은“아가페 식사”라고 불렀는데, 이는 온 교우가 한 가족 됨과 서로를 사랑하기위해 함께 식사를 하였다.

  2)초대교회는 모임 후 음식을 준비해서 함께 식사를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앉아서 밥을 먹는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파당이 생기고 분쟁이 일어난 것이다(18)

  3)두 번째 문제는 교회 올 때 굶고 와서 배부르게 먹다보니 음식이 모자라게 되었고, 취하도록 포도주를 마심으로 실수를 하게 되었다(21)

2.만찬(성찬)(23-34)

  1)만찬은 주님께서 제정하시고 지킬 것을 명령하신 기독교 최고의 권위 있는 예식으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념하며 주님과 한 몸이 되었다.

2.만찬(성찬)에 참여하는 세 가지 자세

1.과거(25)

  1)과거에 있었던 십자가의 사건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에 대한 묵상이다.

  2)우리가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실 때 주님의 고통에 참여해야 한다.

  3)하나의 떡과 한 잔의 포도주는 주님과 한 몸이 되었다는 지체의식을 가지게 하므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눈 형제와 자매들로 한 가족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2.현재(28)

  1)우리가 만찬에 참여할 때 주의할 점은 현재 자신의 심령상태를 살펴보아야 한다(27) 성찬은 자기반성의 기회로서 내가 이 떡을 먹기에 합당한가?  이 잔을 받기에 합당한가를 분별하는 기회다.

  3)특히 나에게 이기심과 파당을 나누는, 그리스도의 몸을 분열시키는 사람은 아닌지 생각하며 참여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찬에 참여하려면 회개와 깨끗함으로 참여해야 한다.

 3.미래(26)

 1)우리는 성찬을 행할 때마다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26).

  2)성찬은 주님이 오시면 안 해도 된다. 그때 우리는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성찬을 행하여야 한다.

  3)그러므로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모든 성도들은 주님의 고난의 떡과 피에 참여함으로 주님을 기다려야 한다.

 

(결론)사랑하는 양문비전가족여러분! 애찬은 모든 성도들이 참여함으로 성도의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일이며, 성찬은 주님과 함께 형제와 자매됨을 확인하는 가족공동체 예식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죽으심과 살아나심을 기억하며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께 드려지는“그리스도인의 제사”입니다. 유교적 제사는 돌아가신 조상(귀신)에게 드리지만 그리스도인의 제사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살아계신 주님께 드려지는 산제사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을 섬기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명품신앙으로 천대의 복을 누리는 신앙의 명문가문을 만들어 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혼과 독신의 문제(고전7:10-16)

 

(서론)말세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사회적 문제는, 이혼과 독신의 문제라 할 수 있다. 2005년도 통계자료에 의하면 결혼이 316,375건으로 하루 867쌍이 결혼을 했고, 이혼은 128,468건으로 하루 351쌍이 이혼을 했다. 이는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려는 이기적인 생각에서 나타나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이다. 흔들리고 있는 가정에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들의 현실 속에 깊숙이 들어와서 모든 이들의 가정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는 교회 안에 까지 들어와 교회의 거룩함을 회손 하고 성도들의 가정을 파괴하고 있다.   

 

(본론)고린도 교회는 분쟁의 문제를 넘어 음행과 고소사건까지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문제는 가정의 부부생활과 이혼, 그리고 독신의 문제로까지 번져 나갔다. 이혼과 독신의 문제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게 가르치고 있나?

 

1.이혼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

1.이혼하지 말라(10,11)

  1)결혼의 제도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으로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엡5:31)

  2)또한 하나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아무도 나누지 못할지니라(마19:6)

  3)하나님은 어떤 이유에서든 부부가 갈라지는 것은 결코 원하지 않으신다.

 2.부득이한 사정으로 갈라졌을 때(11)

  1)그냥 지내든지

  2)다시 합하라

  3)이혼숙려제도 실시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3.한 사람 중 불신자일 경우(12-16)

 1)두 사람 중 한사람이 불신자일 경우 - 한쪽이 불신자라도 함께 살기를 원하면 이혼하지 말라(12)

  2)이혼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 믿는 아내나 남편으로 거룩하게 되기 때문이다(14) -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16)

  3)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대로,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4.믿지 않는 자가 구속하고자 할 때(15)

  1)그러나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나 아내가 믿는 이를 구속하여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할 때 화평을 위해 갈라서라.

  2)이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 어떤 것으로부터 구속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이는 사단으로부터 구속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독신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

1.결혼을 하지 아니한 독신자

  1)환란의 때에는 그대로 지내는 것이 좋다(17)

  2)혼자 살면서 성적인 생각이나 유혹을 받지 않는다면 이는 독신으로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이다(20,24) - 범죄의 가능성이 없다면

  3)독신은 주를 섬기기 위한 동기로 결단해야 한다(35)

 2.결혼했다가 독신이 된 사람

  1)한국에도 현재 다양한 가족형태가 이루어져가고 있다.

  2)범죄의 가능성이 있다면 독신으로 살지 말고 재혼하라(9)

  3)재혼하려면 주 안에서 하라(39)

  4)독신의 결단은 주를 섬기기위한 동기로 하라(35)

 

(결론)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예수만 잘 믿으면 되지 하는 안일함 속에서 가정문제를 쉬쉬하며 숨겨왔다. 이제 교회는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망가져가는 가정을 지켜주기 위해 예언자적 사명과 제사장적 사명을 감당해야 된다. 가정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성경적 결혼관을 가르쳐 이혼하지 아니 하도록 예언자적 역할을 해야 하며, 이혼한 사람과 사별한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해주는 제사장적 사명을 감당해야 된다. 교회는 이혼한 사람들을 정죄하거나 사별한 사람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이런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하며 치유하는 역할을 해야 될 것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가는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사람은 배우므로 성장하게 되고, 자신의  삶을 뒤돌아봄으로 새로워지게 되는데, 하나님이 세워주신 “성남가정사랑학교”를 통하여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가는 사역을 잘 감당하도록 기도합시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권리(고전9:1-14)

 

(서론)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특성이 있다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권리신장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권리”라는 단어에 익숙해 있다. 노동자의 권리, 여성의 권리, 장애인의 권리, 재소자의 권리 등 이러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게 된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가? 이는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삶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본론)고린도전서 9장은 바울사도가 자신이 마땅히 주장할 수밖에 없었던 권리와 특권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바울이 이러한 문제를 다룬 것은 자신의 권리와 특권을 챙기고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권리와 특권을 넘어서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시간은 바울사도가 주장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하여 말씀드리려 한다.

1.바울의 신분

1.나는 자유인이다(1)

1)바울은 자신은 자유인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의 복음의 핵심으로 복음으로 거듭난 자들은 진리 안에서 자유 함을 얻는 것이다(요8:32)

  2)이제는 종이 아니다. 죄와 세상모든 것에서 해방을 얻는 자유인이다.

  3)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율법과 죄와 세상에서 자유 할 수 있어야 된다.

2.나는 복음증거자가 아니냐(1)

  1)바울은 자신은 사도라 고백하며, 하나님이 자신을 사도로 부르신 것은 복음 증거자로 삼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2)그렇다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이유 또한 복음증거자로 삼기 위함임을 고백 할 수 있어야 된다.

 

2.사도된 바울의 권리

1.먹고 마시는 권리(4)

  1)고린도전서 8장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고 마시는 문제를 다루었다. 진리를 아는 지식과 신앙이 강한 사람은 양심에 죄의식을 가지지 않는다면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죄가 안 된다.

  2)참된 자유인, 진리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 아무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먹고 마시는 자유가 있었다.

  3)바울은 그들에게 나도 우상의 제물을 먹고 마실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식물로 인해 형제들이 실족하게 된다면 영원히 먹지 않겠다(8:13)고 말했다.

2.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수 있는 권리(5)

  1)바울이 바나바와 베드로와 함께 전도여행을 다닐 때 베드로는 아내와 또는 자매를 데리고 다녔다.

  2)바울은 당시 혼자 살았지만 자신이 원한다면 결혼해서 아내와 복음을 전하러 다닐 권한이 없겠느냐는 것이다.

  3)당연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러나 바울이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경제적 부담이 오기 때문임을 고백하였고, 복음전하는 자가 선교여행을 할 때 자매를 통해 후원을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임을 말하고 있다.

3.일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6)

1)바나바와 베드로는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였으나, 바울은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와 함께 천막 짓는 일을 하며 복음을 전했다.

  2)그 당시 헬라문화는 노동을 천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바울이 노동을 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 말이 많았다.

  3)이에 바울은 나에게도 일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러나 남들에게 재정적 부담을 지우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장애요소가 되었기에 일하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4)주의 종은 당연히 세상일을 하지 않고 오직 복음만을 위해서 일하는 자세가 필요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 일할 수 있는 권리도 있음을 알아야한다.

4.생활비를 받을 수 있는 권리(7,9)

  1)바울은 세 가지 비유를 들어(군인, 포도원, 목동)복음을 위해 일하는 자가 생활비를 받는 것이 마땅한 권리임을 말하고 있다.

  3)성경에서 레위인들에게는 기업을 안주었다, 오직 주의 제단을 위해 일하고 제단에서 나오는 것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허락하였다(13)

 .

(결론)사랑하는 양문비전 가족여러분! 예수의 복음을 듣고 새롭게 거듭난 사람들은 진리 안에서 자유인이며 복음증거자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또한 우상의 제물을 먹고 마실 수 있는 권리와 결혼을 하며 물질적 복음증거를 위해 물질적 후원을 받을 수 있는 권리와 복음을 전하며 세상에서 일할 수 있는 권리와 생활비를 제단에서 받을 수 있는 권리도 있습니다. 우리는“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갈6:6)

 

 

 
 
 

 이방인의 제사(고전10:14-33)

 

(서론)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가장 크게 혼란을 겪었던 문제가 있다면“수입 소고기” 문제일 것이다. 성경에서 보면 고기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살아가면서 박식한 음식에 싫증났다며 애굽에서 먹던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했던 것처럼, 고린도교회 문제도 우상 앞에 드려진 고기문제로 시끄러웠다. 

(본론)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 8장에서 우상이 무엇이냐, 9장에서 그리스도인의 권리와 자유, 10장에서 수상숭배에 대한 경고와 정의, 삶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목적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

 

1.우상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1.우상의 실체

  1)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8:4)

  2)사람의 수공물이며 사람이 만들어 놓은 신에 불과하다(사44:6-11)

  3)우상숭배자는 반드시 수치를 당한다(사44:11)

2.우상의 발전과정

  1)고대사회에서는 눈에 보이는 우상 물을 만들어 섬겼으며,

  2)근대에서는 사람(왕, 조상)을 우상으로 섬겼고,

  3)현대는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마음속에 어떤 것들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다.

3.인간이 우상을 섬기는 이유는?

  1)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양심),

  2)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불확실함),

  3)인간은 연약하고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연약함)

2.고린도교회를 향한 바울의 가르침

1.우상에 관한 지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8:1)

  1)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 자유를 주겠다.

    그러나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로 이웃을 실족하게 한다면 먹지 말라(8장)

  2)과거의 역사를 회상하며 과거에 조상들이 우상 숭배함으로 광야에서 멸망받아 죽은 것을 기억하여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우상숭배는 이방인의 제사로 귀신을 섬기는 것이다(10장)

  3)그리스도인들은 물질이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9장)

2.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범하는 우상숭배

 1)조상우상 - 돌아가신 조상을 섬기는 것(제사, 주일날 벌초하는 것)

  2)세상우상 - 하나님의 일보다 세상을 우선적으로 하는 것,

  3)사람우상 - 사람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그릇 치는 것,

  4)물질우상 - 돈 몇 푼 때문에 신앙생활 제대로 못하는 것,

  5)자기우상 - 육신, 명예, 체면 등

3,이방인의 제사는 귀신을 섬기는 것이다.

1.그리스도인의 제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기는 것

  1)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8:5-7)

  2)죄인을 구원하시러 이 땅에 눈에 보여주신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요1:18)

  3)우리마음에 하나님으로 계신 보혜사 성령님(요16:7)

    그리스도인의 제사는 만물의 창조자 되시며 주관자 되신 하나님과 모든 인류를 죄악에서 구원하러 이 땅에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과 우리 안에 계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이신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2.이방인의 제사 귀신을 섬기는 것

 1)원래 제사는 돌아가신 조상을 위함이 아니라 살아계신 왕이나 부모님을 위함이었는데, 일부 세력가들이 자신들이 잘사는 것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은덕이라 생각하고 상을 차려놓고 절을 하는 데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2)돌아가신 조상은 인격체가 아니므로 섬겨서는 안 되며, 조상들의 삶의 좋은 교훈을 받아 가르칠 필요는 있다.

  3)결국 이방인의 제사는 부모님이나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 아닌 귀신에게 드려지는 것으로 귀신을 섬기는 행위로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다(10:20).

 

(결론)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31)

  1)모든 것이 가하나 유익한 것이 아니다(23)

  2)자신의 유익보다 남의 유익을 구하라(24)   

  3)시장에서 파는 음식에 관하여 자유하라(25)

  사랑하는 양문비전 가족여러분!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우상을 제거합시다. 그리고 세상일과 먹는 일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함을 받읍시다. 그러나 모든 일에 자신의 유익보다 이웃에 유익을 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갑시다.  

 


 
 
 

시간 사용에 대한 원리(고전16:5-12)

 

(서론)우리는 지난주 헌금의 중요한 일곱 가지 원리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다. 오늘은 성공적 선교를 위한 두 번째 요소인 시간 선용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하려면 물질과 시간이 필요하다. 주의 일을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람이 있는가하면 시간이 많이 있으면서도 주의 일에 게으른 사람이 있다. 바울은“세월을 아끼라, 세월을 사라”는 말로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본론)바울은 오순절 절기를 예루살렘에 가서 지키기 위해 에베소에서 출발하여 고린도를 거처 마게도냐를 지나 다시 고린도에 들렸다가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계획이 바뀌었다. 그 이유는 지금 에베소에 복음의 역사가 크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에베소를 떠날 수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고린도에 보내면서 그는 나와 함께 주의 일에 힘쓰는 자이므로 환대해주라고 부탁하였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시간이다. 시간을 바르게 사용하는 바울의 지혜를 배우고자 한다.

 

1.시간선용에 대한 계획이 필요하다

1.시간사용에 대한 계획이 필요하다.

  1)돈을 효과 있게 쓰려면 계획을 세워 사용해야 되듯, 시간도 마찬 가지다.

  2)시간은 돈이며 생명이며 최대의 자원이다. 자기시간에 대한 분명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서는 어떤 일에도 성공할 수 없다.

  3)우리는 인생의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효과 있게 사용할 수 있나 계획을 세워야 될 것이다.

2.바울은 계획(5)과 수정(6)

 1)바울의 계획은 에베소에서 고린도로 가서 마게도냐를 들려 다시 고린도로 왔다가 예루살렘으로 가서 오순절을 지키는 것 이었다

  2)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의 계획을 허락하지 아니하셨고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붙들어 놓으셨다.

  3)이 과정에서 바울은 만약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너희들과 몇 칠을 함께 하고 싶다는 말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위로하였다.

 

2.시간이 축복이 되도록 계획하라

1.성도들과 뜻있는 교제가 필요하다(8,9)

 1)바울이 고린도교회에 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에베소에 남은 이유는 현재 에베소에는 큰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에베소 교회성도들과 뜻있는 교제를 하고자 함이었다.

  2)크리스천들의 만남은 스쳐가는 만남이 아니라 영원한 만남이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축복이 되어야 한다. 

  3)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의 통로자로 부르셨듯이, 바울을 에베소에 축복의 통로자로 사용하고 계셨다.

 

3.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시간을 계획하라

1.사람이 계획하더라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어야 한다(7)

  1)사람이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계획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2)바울은“주께서 만일 허락하시면”자신이 고린도교회에 여러 날을 머물고 싶다면서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신뢰하는 태도를 보였다.

  3)미국의 크리스천들은 주께서 원하시면 당신과 교제하면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뜻으로

"Lord's willing"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4.시간 선용의 기본은 성실이다.

1.현재에 성실하라(9)

  1)바울은 지금 고린도전서를 에베소에서 쓰고 있다. 바울은 좀 더 에베소에 머물면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 9절에서 밝히고 있다. 지금 에베소에는 광대한 복음의 문이 열려있다. 그러나 대적하는 자들도 많다.

  2)바울은 고린도교회를 거쳐 가는 것보다 현재 에베소서에서 사역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인식하였기에 현재에 충실하였다.

 

(결론)사랑하는 양문비전 가족여러분! 하루24시간은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이다. 시간자체는 생명이며, 돈이며, 비전이며, 삶 자체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자만이 반드시 행복할 수 있으며 성공할 수 있다. 많은 시간들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주님을 기쁘시게하기 위해 사용하는 축복의 통로자가 됩시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삶(창1:1-5, 31)

 

(서론)사람들은 거울 앞에선 자신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며, 타인에게 잘 보이려고 거울 앞에 선다. 그러  나 그리스도인들은 타인에 대한 의식 이외에 또 한 가지 신경 써야 할 것은“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지금의 내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보실까?”라는 것에 신경 써야 된다. 이유는 인간이 자신의 실존을 파악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기 때문이다.

(본론)하나님이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신 후 피조물을 바라보며 느끼신 소감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바라보시니 심히 좋았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성도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

 

1.하나님의 설계에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

1.하나님은 천지를 설계하신 분이다(1)

 1)천지를 창조하신 그분은 삼위일체(三位一體) 되신 하나님이시다.

  2)하나님은 히브리어로“엘로힘”이란 말인데 이것은 번역이 쉽지 않다. 엘로힘은 복수대명사인데 복수를 뜻하지 않는다. 즉 셋이면서도 하나, 하나이면서도 셋이란 뜻이 있다.

  3)태초에 엘로힘은 전능(全能)하시고 전지(全知)하신 분으로 그분의 설계는 완벽하다. 이 사실이 창조의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다.

2.창조의 시작은?

  1)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었다(1) 혼돈아란 히브리어로“토후”라는 말로 아직 틀이 없다는 뜻이며, 공허는“보후”라는 말로 채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2)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는 우주라는 틀이 없을 뿐 아니라 채울 내용 또한 아무것도 없는 “무 상태”에서 시작하셨다.

  3)첫째 날(빛) 둘째 날(공간과 바다) 셋째 날(육지와 식물) 넷째 날(해 달 별) 다섯째 날(새와 물고기) 여섯째 날(짐승과 인간)을 지으셨다.

3.인간은 하나님의 창조계획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1)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계획하고 지으셨다. 따라서 인생에서 성공은 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있다.

  2)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하였다(롬12:2)

  3)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없을 리 없다. 이것이 창세기의 선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2.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1.하나님이 가라사대

 1)창세기 1장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씀이다. 우주의 창조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시작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완성되었음을 알려주는 표현이다.

  2)히브리서 저자 또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히11:13)”라고 선언하였다.

  3)하나님은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고 계신다.

2.말씀에 순종하라.

 1)모든 사람은“자기 인생이라는 작품”을 스스로 만들어간다. 우리의 인생의 작품이 다 만들어졌을 때 하나님이 보시고 “네 인생은 정말 좋은 걸작품이었다”라고 칭찬을 받아야 성공한 인생이다.

  2)하나님의 치밀한 계획과 그 계획에 따른 말씀에 순종하여“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라고 칭찬받는 양문의 가족이 되시기 바랍니다.

 

3.하나님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1.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1)하나님은 창조의 절정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2)하나님의 형상이란 육체의 모습이 이니라 하나님의 도덕성과 인격을 말한다.

  3)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이란 신과 짐승의 중간 존재이다”라고 말했다.

2.인간이 하나님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려면?

  1)심리학자들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이유를 첫째는 자기 존재의 확인으로 자식을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기 때문이며, 둘째는 부모가 못 다 이룬 소원을 자녀를 통해 성취하려는 욕망 때문이라고 한다. 

  2)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려면 위에 것을 찾아야 된다(골3:1) 위에계신 리스도야 말로 하나님을 완전하게 닮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결론)사랑하는 양문비전가족여러분! 이 땅에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창조되었고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창1:26-28, 2:7)

 

(서론)다섯 손가락이 자기를 자랑하는 우화가 있다. 첫째 손가락이“내가 엄지니까 최고야”하니까 둘째 손가락이“무엇을 가리킬 때는 내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고 자랑했다. 셋째 손가락은“그렇지만 나란히 놓고 키를 재봐 내가 제일 크다”고 으스댔고, 넷째 손가락은 “약혼이나 결혼 같은 귀중한 서약을 할 때 내 손가락이 사용되는 것을 알지”하며 잘 난체 했다. 마지막 남은 다섯째 손가락은 할 말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가 나서서 말하길“ 나 없으면 병신이다”라고 소리쳤다. 이 우화의 초점은 존재하는 모든 것마다 의미를 갖고 있다 는 사실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비극은“열등감에 빠져”나는 “아무 쓸데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본론)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올바른 답을 하기 위해서는“인간은 본래 누구인가? 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이 본래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은 창세기에 분명하게 나와 있다. 인간이 가지는 독특성이 있다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진정한 모습은 하나님의 형상에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성, 도덕성, 사회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1. 인간은 영성을 가진 존재이다(2:7).

1. 인간의 요소

  1) 인간은 물질적 요소(흙)와 비물질적 요소(영혼)로 창조되었다.

  2) 하나님의 생기인 비물질적 요소가 인간의 코에 불어넣어 질 때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하나님의 생기가 인간됨을 구성하는 영적요소다).

  3)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은 영적인 존재라는 이유 때문이다.

 2. 영적존재는 떡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1) 철학자 베이컨은“나는 배부른 돼지보다 차라리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말은 결코 육체의 만족으로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고, 행복할 수도 없다는 선언이었다.

  2) 예수께서도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고 말씀하셨다.

  3) 이는 육체가 반드시 떡을 필요로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2. 인간은 도덕성을 가진 존재다(2:7)

1. 동물과 인간의 차이점

 1) 창세기 1장21절에 보면 하나님이 만드신 동물들을 생물(生物)이라고 하셨고, 살아있는 인간을 생기(生氣)라고 하셨다.

  2) 생명이 있다는 사실은 모든 동물이나 식물이나 인간이 동일하다. 그러나 인간이 생물들과 다르다는 것은 생기가 있기 때문이다

  3) 생기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동물들과 구별하시기 위한 동시에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 나아가는 도덕적 존재임을 말한다.

 2. 하나님의 생기는 인간이 도덕적 존재임을 나타내는 증거다

  1) 하나님은 인간에게 도덕성을 주시고 에덴동산과 가정과 공동체와 사회를 책임 있게 다스리며 살아갈 것을 명령하셨다.

  2) 도덕성을 가졌다는 것은 책임지는 존재로 지음 받았음을 의미하는데, 히브리 사람들은 인간을 가장 나쁘게 표현할 때“책임 없는 인간”이라고 불렀다.

 3. 인간은 사회성을 가진 존재다(1:27)

1.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1:26)

  1) 하나님은 홀로 존재하지 않으신다. 창세전부터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하나이면서 셋이며 셋이면서 하나인 엘로힘이시다.

  2)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도 홀로가 아닌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도록 둘을 지으셨다.

  3) 그러므로 진정한 인간의 삶은 인간과의 관계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인간관계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될 때 가능한 것이다. 

 2. “나”는 “너”를 통해 발견된다.

  1) 부버는“그대 없이는 나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없소, 나는 당신이라는 거울을 통해서만 진정한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2) 나 자신에게 지나치게 몰두하면 그 인생은 별 의미가 없다.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고 싶다면 하나님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사회성을 발휘하며 살아야 한다.

(결론) 사랑하는 양문의 가족 여러분!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기에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에 따라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삶을 살아가야 됩니다. 나 자신에게 지나치게 몰두하면 삶의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할 때 비로써 삶에 참된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자신에게 세워놓으신 계획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갑시다.

 

 
 
 

에덴의 부부(창2:18-25)

 

(서론)지난주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인간의 도덕성”에 대하여 말씀드렸다. 도덕적 실패는 영혼을 죽게 하고 삶을 파괴시키는 범죄행위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자유 안에는 행위결과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도덕적 선택의 자유와 그 자유에 따른 책임을 진 존재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바르게 사용하므로 자유가 저주가 아닌 우리가 누릴 축복이 되도록 사용해야 한다.

 

(본론)본문은 마지막 창조사역으로 아담을 만드신 후 그를 돕는 배필을 만드셨다. 그리고 그들을 축복하시며, 부부가 함께해야 할 일들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인간은 함께하는 사회적 존재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1.하나님이 아담에게 맡기신 처음과제?

1.이름을 짓는 창조과제(19)

 1)창조라는 말은 히브리어로“바라”인데 이것은 창조 이외의 사건에는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 독특한 단어로서, 무에서 유를 창조할 때만 쓰였으며, 하나님만이 사용하실 수 있는 고유단어다.

  2)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로, 하나님 같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지 못해도 창조의 기능을 가지고 있기에 이름을 짓는 일을 맡기신 것이다.

 

2.이름 짓는 일은 대단한 창조력을 요구한다.

  1)가끔 성도들로부터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을 받을 때, 어찌나 어려운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2)저는 아들을 낳고 기도 중에 첫째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었으며, 둘째 아들의 이름은 민호라고 지었다.

  3)저는 두 아들을 낳고 그들의 이름을 짓는데도 힘이 들었는데, 아담은 그 많은 피조물들의 이름을 짓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2.에덴의 부부가 살아가는 방법

 1.서로를 진정으로 도울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18)

  1)돕는 배필이란 영어 성경에는 helper 라는 말로 기록되었다. 하나님은 아담을 잠들게 한 후 그를 돕는 사람으로 여자를 지으셨다.

  2)그러나 히브리어 성경에는“에젤”이라는 남성 대명사로 돕는 배필이 단순히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에게도 해당한다는 뜻으로 기록되었다. 

  3)그러므로 부부는 서로 돕는 사람이다. 가정의 비극, 부부간의 비극은 서로 돕지 못할 때 일어나는데, 돕지 못하는 원인은 이기심 때문이다.

  

2.함께하는 친구가 되어야 한다(18)

 1)부부는 진실로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이란 영어성경에서 “a helper suitable for him"이 라고 표현되어있는데, 이는 그에게 돕는 적합한 사람이란 뜻이다.

  2)함께 친구가 된다는 것은 정서와 마음과 생각이 통한다는 것으로 특별히 대화가 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3)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부부는 두려움이 없고, 꾸밈이 없고, 정직하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할 줄 아는 친구 같은 부부를 원하신다.

   

3.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 되어야 한다(24)

 1)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부부는 함께 돕고, 함께하는 친구가 될 뿐 아니라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2)부부란 부모를 떠나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영적인 일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고 육체가 하나 되는 것을 말함이다.

  3)부부가 하나 될 때 부끄럽지 않고 강한 가정을 만들 수 있다.

 

(결론)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점점 사회성이 망가져 가고 있습니다. 이는 이기심을 버리지 못한 자기중심적인 삶의 태도가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돕는 부부로, 함께할 수 있는 친구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가 되는 사회성을 실천함으로 에덴의 건강하고 행복한 부부가 됩시다.

 

 
 
 

 

사탄의 나라(엡6:10-20)

 

(서론)우리는 지금 타락하고 부패된 혼탁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 옳으며 무엇이 그릇된 일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마음과 정욕에 이끌려 분별없이 방황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는 사탄이 세상을 지배하며 사람들을 미혹시켜 죄를 짓게 하고 멸망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본론)에베소서 6장은 영적 전쟁에 관하여 기록되었다. 신령한 영적전쟁을 어떻게 무장하고 싸워야 하는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기록하였다. 이시간은 “사탄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 드리며 영적으로 무장하려고 한다.

 

1.하나님의 나라가 있으면 반드시 사탄의 나라도 있다.

1.하나님의 나라?

  1)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로서 피조물인 사탄이 침범하지 못함

  2)하나님의 나라는 무형적(불가시적) 나라로서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곳에 반드시 이루어진다(눅17:21). 

  3)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입는 것과 마시는 것을 초월한 나라며(롬14:17),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가득한 나라다(엡4:24).

  4)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예수님과 영원토록 왕노릇하며 살아갈 천국이다(계22:5).

2.사탄의 나라?

  1)세상은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내어주신 사탄의 지배 아래 다스려지는 한시적이며, 제한적인 나라다(계21:1).

  2)사탄의 나라는 오직 먹고 마시고 입는 것들로 인해 거짓과 불순종과 탐욕과 정욕과 불신으로 타락하고 부패된 나라다.

  3)사탄의 나라는 예수를 믿지 아니한 불신자들이 사탄의 종노릇하며 영원토록 고통가운데 살아갈 지옥이다(계20:14-15).    

 

2.사탄의 나라의 4가지 중요한 부분

1.정사들=통치자(12)

  1)사탄의 나라의 첫째로 강력한 세력은 “정사(통치)자”들이다.

  2)정사라는 말은 정치적인 영역에 관계된 말로서 악한 영들이 정부와 관계를 맺고 백성을 괴롭히며 전쟁을 일으키며 하나님을 대적하게 한다.

  3)지상의 모든 국가들을 악한 영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사탄은 세상의 모든 국가의 통치자들을 자기의 종으로 삼고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므로 각 나라마다 세워진 통치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딤전2:2).

 2.권세들(12)

  1)사탄나라의 두 번째 세력은“권세들”이다.

  2)권세들이란 사탄의 군대 가운데 엄청난 힘과 세력을 소유하고 있는 악한 영들을 말하는 것으로 사상적 문제를 말하고 있다.

  3)공산주의자, 이단자, 시한부 종말론자, 반정부세력들, 사탄은 사상적 공격으로 정부를 혼란시키고 파괴하려 한다. 민주화운동은 명목으로 정부를 대적하는 세력들 사탄의 조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3.어두움의 세상 주권자들(12)

  1)사탄의 세 번째 부류는 “어두움의 세상 주권자들”이다.

  2)어두움의 주권자들이란? 미신을 조장하며 기복신앙을 강조하고 온갖 거짓 교훈을 가르치는 거짓선지자들을 말한다.

  3)사탄은 문명화된 시대에서 자신들의 목적을 위하여 신비주의나 점술, 미신에 빠지게 하여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4.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12)

  1)사탄의 나라에서 네 번째 그룹은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이다.

  2)이들은 종교적 집단에서 활동하며 성령의 역사인 것처럼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통해 나타난다.

  3)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하여“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요8:44)고 책망하셨듯이, 종교인들을 통해 악한 영들은 활동하고 있다

 

(결론)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진리의 띠(전체무장을 결속시켜 주는 것), 의의 흉패(의롭게 되었다는 확신), 복음으로 예비한 신(평안), 믿음의 방패(믿음), 구원의 투구(구원), 성령의 검(말씀)으로 무장합시다.

  사탄의 나라가 이 땅위에서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 안에서 복음의 증인되어 담대하게 전하는 양문비전가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눅8:26-39)

 

(서론)사람이 고치지 못하는 질병이 있다. 그것을 장애라고 하는데 장애는 정신적 장애와 신체적 장애가 있다. 신체적 장애는 어느 정도 기구를 통해 삶에 편안함을 제공해줄 수는 있어도 완벽하게 치료는 될 수 없다. 문제는 정신적장애가 문제다. 정신적 장애는 영적질병으로 성경에서는 귀신들림이라고 한다.

 

(본론)예수께서 거라사 지방으로 내려가실 때 귀신들린 자를 만났다. 이 사람은 흉악한 귀신이 들려 옷을 입지 않고 무덤사이에 살면서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희롱하였다. 예수께서 그곳을 지나가실 때 예수를 향하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를 괴롭게 하지 마소서” 라고 소리를 지르며 예수를 희롱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귀신들린 자를 향하여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며 귀신을 향하여 나오라고 명령하자 귀신이 나가고 온전하게 되어 예수를 전하게 되었다.

 

1.신앙생활에 승리하려면 사탄을 알자.

1.사탄의 기원(겔28:

  1)사탄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찬양사역을 담당하도록 지음 받은 루시퍼천사로서(13) 무역이 풍부하며(16) 가장 아름답고, 지혜롭게(17) 지음 받았던 빛의 천사였다.

  2)그가 아름다움으로 교만하였고, 지혜로우므로 더렵혀져 불의가 드러났다(15).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19)

  3)사탄은 하나님의 성산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사역자로 지음 받았지만 교만하여 저주받고 세상에 쫓겨난 저주받은 영이다.

2.사탄의 이름들과 사역

  1)사탄(Satan)이란 말은 히브리어로“원수, 대적자”라는 뜻이며 우리나라 말로는“사단”이라고 표기한다.

  2)사탄의 일반적인 별명은 마귀, 귀신이라고도 불리는데 사역적인 면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알 수 있다.

  3)사탄(대적의 영) -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를 송사한다(슥3:1, 욥1:6-7).

    마귀(파괴의 영) - 의심(마13:39) 시험(눅4:2) 배신하게 한다(요13:2).

    귀신(침투의 영) - 병들게 하고(마4:24) 미치게 하며(눅8:35) 점을 치게 한다.

 

2.사탄을 대적하라

1.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을 허락하셨다.

  1)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방언을 말하며 병든자에게 손을 얻은즉 나음을 입으리라(막16:17)

  2)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려 오셨다(요일3:8) 사탄은 피조물이기에 창조자의 명령에 복종하게 되어 있다.

  3)주님은 예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당신이 하셨던 마귀의 일을 멸하도록 가르치신 것이다.

 2.사탄을 물리치는 방법

  1)예수의 이름 -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피하리라(약4:7).

                  사탄을 물리치라(마4:11).

                  귀신을 향해 명령하라(눅8:29).

  2)예수의 보혈 - 모든 죄에서 깨끗함을 받으라(요일1:7).

                  모든 저주에서 구원받은 상징이다(히10:14).

  3)하나님의 말씀 -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7).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라(마4:4).

 

(결론)사랑하는 양문비전 가족 여러분!  

  신앙생활이란? 양이 늑대와 함께 우리 안에서 생활하는 것과 같습니다. 양이 늑대의 먹이가 되지 아니하려면 항상 깨어 있어 주인의 보호를 받아야 되듯, 우리들도 늘 깨어 기도하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예수의 이름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사탄의 공격을 피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부활하신 주님이 부탁하신 말씀처럼 귀신을 쫓아내며, 방언을 말하며, 병든자를 고치는 기사와 표적이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의 보혈을 가슴에 바른 성도여러분!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예수의 이름으로 - 사탄을 대적하여 물리칩시다.

                    마귀를 저주합시다.

                    귀신을 명령하여 쫒아 냅시다.

  사탄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통치하에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맙시다. 담대함으로 나아가 반드시 승리하는 양문비전 가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고전3:16-17)

 

 

(서론)이 세상에서 영원히 중단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시고 예수님의 소원이시며 성령께서 이 땅에 강림하신 이유 때문이다.“영혼구원” 이 땅에는 많은 종교가 있다. 종교를 구분해보면 수도종교와 계시종교로 분류할 수 있다.

 수도종교란? 인간이 도를 닦고 덕을 세워 자신의 죄와 허물을 용서 받고자 하는 데서 발생된 인간에 의한 종교라면, 계시종교는? 신이 인간세계에 나타나 당신을 계시(보여주심)하므로 생겨진 종교를 말한다. 수도종교는 지금도 인간에 의해 끝없이 발생되고 있지만 계시종교는 오직 하나뿐이다.

 

기독교는?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생명의 구세주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영을 모신 성전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본론)지난 11월 29일 505명이 교회에 참석하셨고 그중 223명이 예수를 믿기로 결심하였으며, 2010년 지난주까지 167명이 교회에 참석하셨고 127명이 예수를 믿기로 결심하여 지금까지 669명이 참석하였으며 353명이 등록을 하였습니다.

 

1.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1.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1)과거에는 율법아래서 죄의 종으로 살았지만 우리를 율법아래서 속량하시고 아들의 명분을 주셨다(갈4:5)

  2)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다(갈4:6).

  3)우리를 양자로 입양하시고 예수를 맏아들 되게 하셨다(히1:6).

 2.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나라(천국)를 유업으로 받는다.

  1)사람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나그네와 같고 거류민과 같아 희망이 없다. 나그네와 같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희망 그 자체다(대상29:15).

  2)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곳은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영원한 하늘나라다(빌3:20).

  3)예수를 믿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고 천국을 희망삼고 살아갑시다.

 

2.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영(성령)을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다.

 1.하나님의 영은 우리 마음에 계신다.

  1)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아니 계신 곳이 없다. 특히 믿는 자들의 마음에 당신의 성전을 삼고 계신다(고전3:16).

  2)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갈3:26)

  3)이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마음에 계심으로 예수를 구주로 믿을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갈4:6).

 2.하나님의 영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자들의 삶.

  1)우리는 예수의 피 뿌림으로 거룩하게 지음을 받은 자들이다(벧전1:2).

  2)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된다(벧전1:16).

  3)거룩하게 살아가는 방법 - 예배생활에 열심을 다하라.

                             기도생활에 열심을 다하라.

                             말씀생활에 열심을 다하라.

4)하나님의 영을 기쁘시게 할 때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기쁨과 행복과 형통한 복을 주신다(잠16:17, 고후5:9).

 

3.하나님의 영을 모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1.하나님의 사람의 세 가지 특징?

  1)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는다(행8:40).

  2)빛의 자녀처럼 살아간다(엡5:8-9).

  3)열매있는 삶을 살아간다(갈5:22-23).

 

 

(결론)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해가듯 신앙생활도 성장이 필요합니다. 신앙성장에 필수적인 요건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과 말씀을 배우는 것 그리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양문비전 가족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처음으로 참석하신 새가족 여러분! 여러분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우리 모두는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하나의 영적 가족입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어 덕을 세우며,

                        기쁘고 복된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바나바가 됩시다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라 (시112:1-10)

 

(서론)저는 4년 전인 2007년도 “명품신앙으로 천대의 복을 누리자”라는 신앙의 비전을 제시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들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받을 것을 강조해왔다. 그 결과 많은 가정들이 가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어 후손에게 복을 주겠다는 결심아래 믿음의 가정을 세워가고 있다.

천대의 복을 누리며 신앙의 명문가정을 세우는 데는 몇 가지 중요한 규칙이 있다.

첫째 - 어노인팅(가정예배를 통한 성령의 기름 부으심)

둘째 - 이미지(부모를 통한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라)

셋째 - 커뮤니케이션(의견을 나누고 서로를 존중하라)

넷째 - 비전(하나님을 향한 꿈을 세워나가라)

다섯째 - 미션(복음을 전하는 가정이 되라) 이러한 규칙을 따라 생활 해왔던 가정들은 많은 변화를 했을 것이다.

 

(본론)시편 112편은 믿음이 깊은 자들을 통해 그와 그의 자손들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믿음이 깊은 어버이들이 되어 자신과 후손들에게 복을 심어주는 부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믿음이 깊은 자?

1.여호와를 경외하며((1)

1)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생활 속에 열매로 나타나는데, 아내(벧전3:1)와 남편(벧전3:7)에게서 나타나고, 형제와 이웃들을 통해 나타난다(벧전3:8).

2)그 결과 - 좋은 날을 보게 될 것이며 만족한 삶을 살게 될 것이고(벧전3:10)

하나님의 눈이 그들을 향하여 복을 주실 것이며(벧전3:11)

하나님의 귀는 그들을 향하여 들으실 것이다(벧전3:12).

3)믿음이 깊은 자들은 가족과 형제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를 바르게 맺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입니다.

2.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며(1)

1)계명을 지키는 자는 두려울 것이 없는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다.

2)시편119편은 다윗 왕의 고백으로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 된다는 사실을 노래하고 있다(시119:1-2).

2)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것이며(시119:6)

여호와께 버림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었기에 기쁨으로 지켰다(시119:7)

3)다윗은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고백하였으며

(시119:105), 내입의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119:103)라고 고백했다.

 

2.주의 말씀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1.무엇보다 하나님 사랑하라(출20:1-11)

1)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3)

2)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며 어떤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고 그곳에 절하지 말라(4)

3)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7)

4)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8)

2.하나님을 사랑할 때 이러한 열매가 나타난다(출20:12-17)

1)부모를 사랑하게 되고(12)

2)살인하지 않게 되고(13)

3)간음하지 않게 되며(14)

4)도둑질하지 않게 되고(15)

5)거짓증거하지 않게 되며(16)

6)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않게 된다(17)

사람이 살인하고, 간음하고, 도둑질하고, 거짓증거 하며, 이웃 것을 탐내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데서 부터 오는 불신앙적 자세임을 기억하라.

 

(결론)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여 지키는 자들이 받을 복이 있습니다.

후손들이 땅에서 강성하며 복되고(2)

부와 재물이 그 집에 있어(3) 빈궁한 자들에게 줄 것이며(9)

정직한 자들이 흑암 중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며(4)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대적들이 받는 보응을 볼 것이며(8)

악인이 이를 보고 한탄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되리니 악인들의 욕망이 사라지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 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가 되시어

후대가 복을 받는 신앙의 명문가정을 세워나가시기 바랍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롬12:1-2)

 

(서론)오늘 우리는 지도자를 원하고 있으나 지도자를 인정하지 않는 세대를 살아가고 있다. 지도자 공백의 세대, 이것은 이 시대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해주고 있는 혼란의 시대임을 말해주고 있다. 본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헌신된 삶을 살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본론)구약에는 두 종류의 제사가 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 드리는 “피 흘림의 제사”와 감사와 헌신을 약속하기 위한“첫 열매의 제사”이다. 이 제사의 공통된 점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온전히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있다. 바울은“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산제사로 드리라”고 당부하고 있다. 이 말씀은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가지 말고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헌신적인 삶을 살아갈 것을 강조한 것이다.

 

1.이 세대는 4無의 시대라 한다.

1.무관심의 세대(딤후3:2)

1)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이다. 사랑은 다른 말로 관심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2)이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자기 외에는 어떤 일에도 관심을 갖지않고 있다. 이는 자기만을 사랑하는 잘못된 이기주의 사상 때문이다.

3)이러한 무관심한 세대에서 벗어나 신령한 것과 하나님의 선한 사업과 이웃에 관심을 갖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2.무감각한 세대(마11:16-17)

1)감각이 없다는 것은 세포가 죽어가므로 기쁨과 슬픔과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영적 무감각한 상태를 말해주고 있다.

2)현대인들은 슬픔과 아픔과 기쁨의 감각을 잃어버리고 무정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3)이러한 무감각한 세대에서 벗어나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며 고통 받는 자와 함께 고통 받는, 정을 통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3.무의미의 세대(눅7:24)

1)한 개인이나 집단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나 목적이 있기 때문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충동적이며 단편적일뿐 아니라 무의미하게 살아가고 있다.

2)무엇 때문에 사는지 삶에 목표도 없이 허송세월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3)그러나 성경은 분명한 삶의 목적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하신 삶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삶에 의미가 되어야 한다.

4.무기력한 세대(마26:69-)

1)현대인은 힘이 없다. 힘이란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정의를 구현하려는 행동이 없다는 말이다.

2)무기력하기 보다는 넘어지기를 잘하고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마귀의 공격에 패하는 연약한 삶을 살고 있다.

3)이러한 성도의 무기력함은 신앙의 게으름과 나태함에서 오는데, 무기력한 성도는 마귀의 공격대상이 된다.

 

2.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려면?

1.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가자(롬12:1)

1)우리의 몸은 결코 정욕의 도구가 아니다. 주님을 섬기는 의의 병기가 되어 매일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자로서의 삶이 되어야 한다.

2)나의 삶을 하나님께 드릴 때 가장 아름답게 사용될 것이며, 능력 있게 사용될 것이다.

3)성도는 세상에서 살아가나 반드시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신앙의 본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세상과 타협하지 말라(마10:16)

 
 
 

1)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이 살아가야 할 원칙을 정해 놓으시고 그대로 살아갈 것을 원하고 계신다.

2)그러나 사탄은 항상 우리의 타협점을 찾아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한다.

3)그러므로 우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함이 필요하다.

 

(결론)우리는 지금 힘들고 어려운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세대를 본받지 말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갑시다.

 

 
 
 

사랑이 없으면(고전13:1-3)

 

(서론)인간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으며 사랑 없이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2차 대전당시 태평양 한가운데서 해병대 배 한척이 조난을 당했다. 가라앉는 배안에서 목숨을 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헛된 수고뿐이었다. 배의 기구들과 소지품까지 던졌으나 그들이 끝까지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가족, 애인들의 사진이었다. 이 끈질긴 사랑의 집념과 끈끈한 사랑의  집착을 바라보며 우리는 비로소 인간의 존재 이유는 사랑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론)고린도교회는 신령한 것을 사모하면서 많은 은사가 나타났고 이러한 은사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런 일로 고린도교회는 은사지향 또는 은사과잉 반응이 나타나고 있었다. 바울은 은사보다 사랑을 실천할 것을 강조했다.  

 

1.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1.방언을 한다 할지라도

  1)고린도교인들은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자랑하며 방언 못하는 자들을 은근히 무시하였다(고전14:18) 

  2)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방언을 강조하는 것이 잘못된 것을 책망(고전12:30) 방언보다 더 좋은 사랑을 구할 것을 강조(고전12:31)하였다.

  3)일 만 마디의 방언보다 남에게 유익을 끼치는 사랑의 마음이 더 소중한 것으로 사랑이 없는 방언은 아무런 유익이 없음을(고전14:19) 지적하고, 말(방언)로 깨우치는 것보다 사랑을 실천함으로 깨우침이 더 중요함을 강조했다. 

 

 2.천사의 말을 한다 할지라도

  1)아테네를 중심으로 희랍문화가 꽃피던 사회에서 무엇보다 웅변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웅변가 데모스테네스)

  2)웅변가들의  말들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움직였는데, 이때 웅변가들의 말을“천사의 말”이라고 표현했다.

  3)바울의 의도는 천사의 말이 있어 우리가 천사의 말을 사용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3.예언하는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1)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무엇보다 예언하기를 힘쓰라고 강조했다(고전14:1)

  2)성경에서 예언의 능력이란 미래적인 사건을 알리는 기능과 현대의 사회와 삶을 분석, 처방하는 기능, 예언의 80%가 미래적인 것보다 현재적인 사건을 조명, 진단, 경고하는 것에 치중하고 있다.

  3)발람은 메시야가 야곱에게서 나올 것을 예언하였다(민24:17) 그러나 백성들을 모압 여자들과 음행에 빠지게 하는 심각한 예언을 하였다(민25:1) 그래서(계2:14)에 발람이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재물을 먹게 하고 행음하게 하였다고 기록하였다.

  4)주님은 활동 이전에 동기를 보신다(마7:22). 무슨 활동을 하였느냐 보다 무슨 동기로 하였느냐가 중요하다.

 

4.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다 할지라도.

  1)신앙생활에 있어서 믿음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구원)로서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사로서의 믿음을 말한다.    

  2)믿음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세상이다. 힘으로도 아니 되고 능으로 되지 아니 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절대로 필요로 한다(슥4:6-7)   

  3)산을 옮길만한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5.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여도.

  1)성경은 구제사역의 거룩함을 강조, 초대교회의 구제는 단순히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식탁에 초대하여 사랑과 기도, 관심과 복음을 나누는 사역이었다.   

  2)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일부 교인들은 자신들의 자선행위를 알리며 선전하는 선전용 구제를 하였다.

  3)바울은 사랑이 없는 구제는 하나님 장부에 나의 구제가 기록될 수 없음을 말했다.

 

6.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1)순교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가장 값진 헌신의 결정체다.

    (계: 20장)에 보면 순교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별들이라고 기록하며,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게 될 것이며, 생명의 면류관이 약속되었다.  

  2)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위해 고난당하며 핍박을 받으며 순교 하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알았다.

  3)성경은 거창한 이름의 순교보다 내 곁에 있는 이웃을 주님의 이름으로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친절이 더 귀하게 평가하고 있다.

 

(결론)사랑하는 양문비전 가족여러분!

  방언으로 말하는 것, 천사의 말, 예언의 능력, 산을 옮길 만한 믿음, 구제, 순교 모든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 위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양문의 가족 여러분!

  은사지향적인 사람보다는 열매지향적인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의 특성(2)(고전13:4-5)

 

(서론)기독교의 브랜드가 무엇이냐고 묻는 다면 “사랑”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인간적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가페적인 사랑을 말한다. 아가페의 사랑은 섬김과 희생이다.

 

(본론)고린도 교회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참사랑을 배우지 못한데 있음을 지적하고 더 좋은 것을 구할 것을 강조했다.

  사랑이 없는 충성과 헌신은 시끄러우며, 유익이 없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참사랑을 배워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양문비전교회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4)

1.자랑은“자기 퍼레이드”를 뜻한다.

  1)고린도 교회는 겸손한 지체가 되려고 하기 보다는 자기선전과 자기 세력 확장에 열중한 결과 파쟁과 시기로 가득한 육신적 교회로 전락해 가고 있었다.

  2)예수님의 생애에서 볼 수 있는 그분의 탁월한 삶은 자기 자랑이 없으셨다는데 있다. 큰 표적이나 놀라운 사건 이후에 무리를 피하여 한적한 곳으로 숨으시며“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리셨다.

  3)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 퍼레이드를 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한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2.자기 자랑은?

  1)투기에서부터 오는데 투기의 초점이 상대방에게 있다면 자랑의 초점은 자신에게 있다.  

  2)그러므로 자기 자랑은 자기 인격을 추하게 만드는 미련함 그 자체이다.

  3)마귀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다가 영원히 저주 받았으며,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낮추심으로 구세주가 되셨다.

(결언)자신을 자랑하지 맙시다. 자랑은 마귀의 브랜드이며 자신의 인격을 추하게 만드는 미련함 그 자체입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고 바울처럼 주님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사랑의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5)

 1.교만이란?

  1)교만이란 말은“자만심으로 툭 튀어나온 부풀림”이란 뜻으로 자기 자랑이 지나치면 교만이 된다.

  2)고린도교회는 자기 자만 자존심 때문에 평안과 질서를 위협당하고 있었다.

  3)1장-지도자에 대한 자만, 2장-지혜에 대한 교만, 3장-사람에 대한 자랑,

    4장-말에 대한 자랑, 5장-성적범죄를 합리화 하려는 오만, 12장-은사에 대한 교만이 있었다.

2.성경은 교만의 죄를 경고하고 있다.

  1)하나님은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을 미워하신다(잠8:13).

  2)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3)칼 루이스는 “교만은 인간이 범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죄”라고 말했다.

(결언)교만할수록 마귀를 닮고 겸손할수록 주님을 닮아갑니다. 교만한 마귀의 영성을 극복하고 겸손한 주님의 영성으로 사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5)

1.무례하다(ackemonei)

  1)공적 상황에서 질서를 파괴하므로 아름다움이 깨어진 상태를 뜻한다.

  2)공동체 생활에서 질서를 지켜 나아가는 것이 사랑인데 고린도교회는 무례함으로 인해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었다.

  3)이것은 사랑의 부족과 이기심 때문에 겪고 있는 아픔이었다.

2.고린도교회의 무례함

  1)예배 후 나누는 애찬식을 통한 무례함(고전11:21)

  2)성만찬 석상에서의 무례함(고전11:29)

  3)교회 안에서의 여성들의 무례함(고전11:5)

  4)공적예배의 무례함(고전14:40)   

 

(결언)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하여 듣고,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참사랑의 교훈을 배우지 못해 일어났음을 지적하고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함을 가르친 것이다.

 

 
 
 

사랑의 특성(4)(고전13:6-7)

 

(서론)빛이 프리즘(Prism)을 통과할 때 무지개빛의 다양한 색깔을 나타내듯, 아가페 사랑도 여러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고린도전서 13장 4절부터 7절에는 아가페적 사랑의 특성들을 15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사랑의 특성은 예수 그리tm도의 인격과 성품을 나타내는 성령의 열매라 할 수 있다.

 

(본론)본문에는 아가페적 사랑의 특성을 6가지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 시간은 세 가지(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1.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1.불의(adikia)

  1)불의란“율법을 깨뜨린 것”이란 뜻으로 범죄의 결과를 의미한다.

  2)당시 고린도교회 안에는 가족 내에 불륜의 범죄를 저지르고도 회개할 줄 모르고 합리화 시키려는 사람들과 이를 묵인해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고전5:1-6).   

  3)바울은 진정한 사랑은 그것이 자신의 죄든, 남의 죄든 범죄의 결과를 보고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고 책망하고 있다.

2.어떻게 하면 불의를 극복할 수 있을까?

  1)모든 죄, 모든 불의는 하나님을 슬프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2)범죄 후 자신에게 초래할 형벌을 생각해라.

 

(결언)하나님의 아가페적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의를 보며 하나님이 슬퍼하실 것을 생각하게 되고, 범죄로 인해 받을 형벌을 생각하게 되므로 그를 긍휼히 여기게 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타인의 불의를 바라보며 기뻐하신 적은 없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말고 슬퍼하며 긍휼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2.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1.진리(眞理)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1)참된 사랑은 진리를 수호하고 진리 함께 기뻐한다는 의미가 있다.

  2)참된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이단적 교리를 가지고 접근하는 이들에게 단호하게 냉대함으로 그들을 물리쳐야 된다. 이단자들을 옹호하는 것은 참된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3)사도요한은 이단의 교훈을 가지고 오는 이들을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고 충고하고 있다(요한이서 10절)

 2.이 땅에 계실 때 예수님의 기쁨은 어떤 것이었나?

  1)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셨다(눅10:21).

  2)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보고 기뻐하셨다(눅15:10).

 

(결언)참 사랑은 진리를 수호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며, 진리를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합시다.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전합시다. 그리고 진리를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기도하는 아가페적 사랑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3.사랑은 모든 것을 참습니다.

1.참음(Steo)

  1)사랑은 인간관계에서 발견된 상대방의 약점이나 허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덮어주는 인내하는 교제를 뜻한다.   

  2)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누구나 남의 잘못한 것을 고발하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 그래서 남의 허물을 동정하는 대신 즐기려 한다.

  3)사랑은 남의 허물을 동정하고 가려 주는 것을 뜻한다(잠10:12, 17:9).

2.오래 참음과 참음

  1)오래 참음(makrothumia)-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견디어 내는 성품((벧후3:9). 참음(Stego)-상대방의 허물과 약점을 덮어주는 성품(사53:5)

  2)오래 참음은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그가 변화되기를 기도하며 기다리는 덕이라면, 참음은 상대방의 허물과 약점을 대신 짊어지고 참는 것을 말한다.

 

(결론)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말고, 진리와 함께 기뻐합시다. 그리고 상대방의 허물이나 약점을 내가 짊어지고 참읍시다. 이런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의 특성(5)(고전13:7)

 

(서론)빛이 프리즘을 통과할 때 여러 가지 색깔로 나타나듯이,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오래참고 /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참는 것.

  2.온유하며 / 나에게 아픈 상처를 준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

  3.시기하지 아니하며 / 남이 잘되는 것을 보며 분노하지 않는 것.

  4.자랑하지 아니하며 / 자기를 선전하여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지 않는다.

  5.교만하지 아니하며 / 자기 자랑이 지나치면 교만하게 된다.

  6.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 질서를 파괴하지 않는다.

  7.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 소유한다는 것은 이기심에서 온다.

  8.성내지 아니하며 / 자기 권리만을 주장하여 분노하지 않는다.

  9.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 남에게 입은 피해나 상처를 생각하지 않는다.

  10.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 자신의 불의에 대해 통분이 여기며, 타인의 불의에 대하여 긍휼을 베푸는 것.

  11.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 진리를 배우며, 가르치며, 전파하는 것.

  12.모든 것을 참으며 / 상대방의 약점과 허물을 대신 짊어지고 참는 것.

 

(본론)본문은 사랑의 특성 중 마지막 세 가지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양문비전교회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

1.사랑하기 때문에 믿는 것을 말한다.

  1)이웃에게 속는 줄 알면서도 그에 대한 궁극적인 신뢰의 자세를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말한다.

  2)집을 뛰쳐나가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에게 죽은 자식으로 알고 포기하라는 이웃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는 반드시 살아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어머니의 믿음,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3)불신자 남편을 두고 10여년이 넘도록 불철주야 기도하는 아내에게, 당신 남편은 예수 믿을 가망성이 없으니까 포기하라는 충고에도, 내 남편은 반드시 예수를 믿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2.사랑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믿는다.

  1)자식이 방탕하고 방황한다 할지라도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것이며,

  2)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부닥쳤다 할지라도 다시 하나가 될 것을 믿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3)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이 믿음이야 말로 복음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신앙적 자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며

 1.그리스도인의 희망은 하나님 안에서의 희망이다.

  1)세상 사람들의 희망은 단순한 소원에 근거하고 있으나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하나님에 사랑의 약속에 근거하고 있어야 한다.

  2)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는 말씀처럼 하나님 안에서 잘되는 것이다.

  3)남편이나 아내, 자식 그리고 사업을 위해 기도드릴 때, 무조건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보다 하나님 안에서 잘되게 해달라고 바라는 것이 사랑이다.

2.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혼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1)히브리서 6장 19절에 보면“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는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2)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희망은 육신이 아니라 영혼에 있는 것으로, 가족이나 이웃의 영혼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3)육신적으로 부족하다 할지라도 실망하지 말고, 영혼이 잘되기를 위해 기도하며, 영혼에 희망을 가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집시다.

 

3.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1.사랑은 참음에서 출발해서 끝까지 견디는 것이다.

  1)사랑은 오래 참음으로 출발해서,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딘다.

  2)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믿음의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은 희망의 사람들이었으며, 사랑의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공통된 점은 끝까지 견디었다는 것이다

  3)사랑은 어떤 실패나 상처, 절망, 아픔, 고통을 끝까지 견딥니다. 

 

(결론)양문비전 가족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참고 견디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시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섬기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은 영원한 것(고전13:8)

 

(서론)인간 세계에서 가장 허무한 것이 있다면 인기연예인들이 서는 무대일 것이다. 무대는 그들이 추구하는 열망의 장소이며, 그들이 경험하는 가장 고독하고 가장 불안한 삶의 자리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비추던 조명은 반짝이다 사라지며, 박수도 사라지고 청중도 사라지며, 인기도 사라져, 커튼이 닫히면 연예인만 홀로 남기 때문이다. 

  세상이 추구하는 온갖 소욕은 모두 연예인이 서는 무대와 같이 반짝이다 사라진다. 그래서 사도요한은“이 세상도 정욕도 지나간다.”(요일2:17)라고 말했다.

 

(본론)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고 변화가 심한 것이 사랑이라고 한다. 친구와의 우정인 필레오도 깨어지고, 이성간의 사랑인 에로스도 깨어지며, 가족 간의 애정인 스톨케도 깨어진다. 세상에서 말하는 인간적인 사랑은 결국 영원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영원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아가페”뿐이다. 

 

1.사랑의 영원성

1.하나님의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한다(8).

  1)떨어진다는 pepto라는 말인데 “이파리가 시들어 버린다. 또는 무대에서 배우가 사리진다”는 뜻으로 사용되어 왔다. 

  2)모든 것은 사라진다. 사도베드로는“모든 육체는 풀의 꽃과 같아서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벧전1:24)라고 말했다.

  3)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2.바울은 영적 은사의 순간성과 비교해서 말씀하고 있다.

  1)고린도 교인들은 열렬하게 은사를 추구했다. 그래서 이 교회는 예언을 사모하고 방언을 구하고 영적 지식을 얻는 일에 열중했다.

  2)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 말하였다.

  3)이 말은 영적 은사를 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은사보다 더 구할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2.일시적인 은사

 1.예언은 일시적인 은사다.

  1)바울은 예언이 중요함을 알기에 고린도교회를 향해“특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14:1)고 했다. 

  2)성경은 예언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모든 예언은 본질상 일시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예언은 성취되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3)그러므로 예언은 주님이 재림하시고 모든 교회가 천국에 올라갈 때까지 필요하지만 천국에서는 예언이나 설교가 필요 없다. 그곳에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 있기 때문입니다.

2.방언도 일시적인 은사다.

  1)바울은 방언의 중요함을 알기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반드시 통역하여 교회에 덕을 세우라”(고전14:5)명령했다.

  2)초대교회에 나타났던 방언은 끝나지 않았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방언은 사모하는 자들에게서 나타날 것이다.

  3)영적 언어인 방언은 일시적이지만, 천국의 언어인 사랑은 영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국의 언어는 방언이 아니라 사랑의 몸짓입니다”

3.지식도 일시적인 것이다.

  1)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어제의 지식이 오늘의 무지로 증명되고 있다. 사실상 지식은 “지나가는 학식”에 불과하다. 

  2)옛 지식은 새 지식을 준비하는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지닐 뿐이다.

  3)성령님은 신앙의 성숙에 따라 점차 깊고 더 온전한 지식을 계시하는데 이것을 신학에서는“점진적 계시”라고 한다. 세상의 모든 지식은 일시적이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결론)사랑하는 양문비전 가족여러분! 영적 신앙생활에는 예언도 필요하고, 방언도 필요하며, 지식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일시적인 것으로 이 세상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정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 은사보다 더 소중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에서나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절대적 가치를 평가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예언자도 아니며, 방언으로 말하는 자도 아니며, 지식을 가진 자도 아닙니다. 오직 사랑을 가지고 사랑했던 사람만이 절대적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영원한 사랑, 가장 위대한 사랑의 소유자가 됩시다.

 

 
 
 

사랑은 완전한 것(고전13:9-12)

 

(서론)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학생이 졸업 여행 차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한 노신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노신사가 학생에게 수학에 대하여 어느 정도까지 공부했느냐고 묻자 학생은 “수학을 정복했다”고 말했다. 이제 학생이 노신사에게 수학을 어느 정도까지 했습니까? 라고 묻자 노신사는“나는 겨우 수학을 이해한다.”라고 말했다. 대화를 계속하는 가운데 이 노신사의 수학지식이 비범한 것에 놀란 학생은 도대체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라고 묻자 신사는 낮은 목소리로“내 이름은 Whitehead 라네”라고 대답했다. 세계적인 철학자요, 수리학자의 이 대답 앞에 학생은 할 말을 잃었다. 

 

(본론)고린도교회 교인들도 이 철없는 학생처럼 약간의 예언과 방언의 은사를 맛보고 기독교의 모든 것을 이해한 것처럼 자긍하고 있었다. 고린도교인들은 영적은사를 사모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사랑에는 무관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부분적인 은사도 필요하나 온전한 사랑을 구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1.신앙에 궁극적 목적은 사랑이다.

1.부분적인 은사들?

  1)예언은 현실과 미래에 대하여 위대한 통찰력을 제시하고, 방언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심정을 이해할 수 있으며, 영적지식의 계시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

  2)그러나 이 모든 것은 부분적인 것에 불과하며 완전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인들은 마치 예언과 방언과 영적지식이 신앙에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여 교만에 빠져 있었다. 

2.부분적인 것들은 온전한 것이 올 때 물러간다.

  1)미숙한 것은 성숙한 것이 올 때 당연히 그 자리를 양보해야 하고, 불안전한 것은 완전한 것이 올 때 그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한다.

 

2.온전한 것이 온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1.구약에서의 계시(히1:1-2)

  1)하나님은 구약에서 예언, 환상, 꿈, 목소리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계시하시다가 때가 찬 어느 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하나님의 모든 것 사랑을 우리에게 온전히 계시하셨다.

  2)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계시한 하나님의 사랑, 온전함 그 자체였다.

2.온전한 것에 대한 주경학자들의 견해(10)

  1)신약의 완성의 때, 교회가 성숙하는 때,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12)

  2)그리스도인이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성숙할 때 우리는 부분적으로 도움을 얻던 예언이나 방언, 지식 대신에 온전한 사랑을 구하게 될 것이다.

 

3.부분적인 것에서 온전한 것으로의 전환.

1.어린아이의 세계에서 벗어나야 된다(11).

  1)신앙의 성장은 사랑의 인격에서 나타난다(고전13:4-7). 어린아이가 오래 참을 수 있으며, 온유하며 절제할 수 있을까? 어린이의 행동의 특성은 이기심뿐이며, 유치할 뿐이다. 어린이의 행동에서 벗어나자. 예수 그리스도의 성숙한 사랑의 삶을 배워 어린아이와 같은 유치한 신앙생활에서 벗어납시다.

2.거울로 보는 것에서 떠나 직접 보는 것이다(12)

  1)본문 12절에 보면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과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대하여 볼 것이며, 지금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는 온전히 알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2)예언과 방언과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부분적으로 알 수 있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다. 

3.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있을까?

  1)주님과의 사랑의 관계에서 사랑의 주님을 경험할 때, 즉 주님의 아가페적 사랑이 시작될 때 하나님을 온전하게 알 수 있게 된다.

  2)사도요한은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려면 주님의 계명을 지켜 이웃을 사랑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요14:21) 

  3)성숙한 신앙으로 하나님은 온전히 알기를 원하십니까? 유치한 어린아이의 생활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십니까? 사랑하십시다. 

 

(결론)칼 맨닝거는“현대인의 모든 정신적 질병의 근본적 치유책은 사랑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참된 의미에서 사랑을 얻는 유일한 곳은 십자가 밖에 없음을 말했다. 사랑은 낭만이 아닌 실제적 행동입니다. 가족을 사랑하십시오. 믿음의 형제들을 사랑하십시오.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원수도 사랑합시다. 믿음으로 평생을 걸어왔던 하나님의 사람“찰스 킹즐리”의 무덤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우리는 사랑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양문비전 가족여러분! 사랑만이 온전한 것입니다. 사랑합시다. 

 

 

 
 
 

가장 위대한 사랑(고전13:13)

 

(서론)루이스 교수는“우리는 에로스에 의해 태어나고, 스톨케에 의해 양육되고, 필레오에 의해 성숙되며, 아가페의 사랑으로 완성 된다”라고 말하였다.   

  기독교의 모든 메시지를 요약한다면“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의 인격적 삶의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이 세 가지는 신앙생활에 삼대 요소, 삼위일체라고도 불리 우고 있다. 

 

(본론)본문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며 위로와 축복을 주는 메시지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마치 삼각형의 모서리처럼 신앙생활의 모든 내용을 함축성 있게 요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마지막 시간으로 “가장 위대한 사랑”이라는 제목을 말씀을 드리려 한다.

 

1.믿음, 소망, 사랑이 왜 중요한가?

 1.믿음의 가치를 생각해 보자.

  1)우리는 주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며(엡2:8), 우리는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요1:12),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히11:6).

  2)천국은 믿음의 나라다. 성도는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으로 죽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3)그러므로 천국은 믿음의 나라로 믿음은 천국문을 여는 열쇠와 같다.

2.소망의 가치를 생각해 보자.

  1)소망은 거듭난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로서, 삶의 이유와 의미를 부여해 준다(벧전1:3).

  2)이는 소망이 고통을 이길 수 있는 인내를 낳게 해주기 때문이다.

  3)우리는 소망으로 천국의 문을 들어가게 된다, 천국은 소망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3.사랑의 가치를 생각해 보자.

  1)사랑은 가장 큰 계명으로 율법의 완성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이며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에서 확증하셨다.

  2)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회개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 사랑의 체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 것이다.

  3)그러므로 사랑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특권이요, 신앙생활에 목표이다.

 

(결언)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신앙생활에 삼위일체로서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지녀야 될 덕목이다. 믿음은 신앙생활에 출발이며, 소망은 신앙생활을 해야 할 이유이며, 사랑은 신앙생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2.믿음, 소망, 사랑은 깨어질 수 없는 관계다.

 1.믿음과 소망의 관계

  1)요한복음 11장 25절에 주께서“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약속하셨다.

  2)이는 믿음으로 죽음 건너편에 부활의 소망을 갖게 하는 말씀으로, 믿음 없이는 소망이 있을 수 없고, 소망 없이는 믿음이 있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2.믿음과 사랑의 관계

  1)바울사도는 갈라디아 5장 6절에서“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믿음으로 우리는 사랑을 체험하게 되고 사랑함으로 우리는 주님을 더욱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2)즉 믿음이 없는 사랑은 감상이며 사랑이 없는 믿음은 병든 것이다.

3.소망과 사랑의 관계

  1)바울은 로마서 5장 5절에서“소망이 부끄럽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고 하였다.

  2)우리 안에 부어주신 사랑 때문에 천국의 소망은 지속된다. 사랑이 없는 소망은 쉽게 절망으로 변신한다.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은 끊어질 수 없다.

 

(결론)믿음, 소망, 사랑은 영원한 것이다(고전13;13). 믿음이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으로 천국에서의 믿음은 더욱 확실하고 분명한 것이며,

  천국에는 영원한 삶이 있는데, 아픔이 없는 즐거운 노동이 있으며, 공평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정치가 있으며, 모순과 갈등이 없는 교제가 있으며, 예배가 있고,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이 있는 소망이 확실한 곳이다.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은 천국에서 영원한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실현되는 곳이다.

  사랑하는 양문비전 가족여러분! 지금부터 가장 위대한 사랑을 시작하며 천국에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제사와 순종사무엘상 5장 17 - 23절

 

 (서론)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이 있다. 노인은 며칠 밤을 바다에서 새우며 고기를 잡는다. 그는 너무나 지쳐 힘이 다할 때까지 고기와 씨름하면서 그 고기를 잡았다. 잡은 고기를 배에 매달고 끌고 왔을 때 그 고기는 앙상하게 뼈만 남아 그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와 목적을 모르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결과는 아무 것도 없게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본론)하나님은 왕이 된 사울에게 출애굽시 이스라엘을 괴롭혀왔던 아말렉을 치되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죽이라고 명령하셨다. 사울은 백성을 이끌고 나가 아말렉을 쳐서 물리쳤다. 그리고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여 기념비를 세웠다. 그러나 사울은 전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버림 받고 나라를 빼앗겼다.


1.사울 왕에게 주어진 임무
1)아말렉을 쳐서 진멸하라(3)
(1)하나님은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할 것을 명령하셨다.
(2)이는 아말렉을 향한 죄의 보상을 요구하신 것이다.
2)아말렉은 누구인가?
(1)아말렉은 애굽으로 향하는 유다 남쪽 광야에 살았던 유목민들로 약탈을 일삼았던 야만민족으로 이스라엘이 출애굽당시 괴롭혀 왔었다.
(2)모세는 아말렉들로 인해 왕도의 길을 포기하고 멀고 험한 길을 돌아 시내산 앞에 올 수 있었다. 이들의 후손인 “베드윈 족” 이 그곳에 살고 있다.
3)죄의 보상을 요구하시는 하나님(3)
(1)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혀왔던 아말렉 사람들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쳐서 죄 값을 치르게 하라고 명령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2)하나님은 공의에 하나님이시다. 세월이 흘러갔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세월은 죄만 키울 뿐이다.
(3)아말렉 후손인 베드윈 족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혀 왔기 때문에 진멸을 명령하신 것이다.


2.사울왕의 불순종
1)남기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남겼다(9)
(1)사울 왕과 백성들은 아말렉 왕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끌어다가 이스라엘 진영에 감추어 두었다.
(2)이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결과였다.
2)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울(15)
(1)사울은 자신은 하나님의 명령에 다 순종하였다고 주장하였다(11) 그러면서 양과 소를 끌어 온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 쓰려한 것이라고 하였다.
(2)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아무리 옳다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가 된다.


3.불순종의 결과
1)불순종의 죄(23)
(1)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 게 절하는 것과 같다.
(2)사울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음으로 여호와께서도 사울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
2)제사도 중요하지만 순종이 앞서야 된다(22)
(1)사울은 좋은 제물로 하나님 앞에 드리기 위해 짐승을 가져왔다고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2)그러나 하나님은 제물로 만족하시는 분이 아니라 거룩하고 신령한 영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기를 원하신다.
(3)하나님의 명령에서 벗어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될 뿐임을 알아야 한다.


(결론)사랑하는 양문비전 가족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제물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제물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아무렇게나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교만에서 비롯된 태도입니다.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이란 자신의 생각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목회방침에 따르는 순종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은 모든 축복의 원인이며 결과입니다.

 
 
 

쓴 뿌리를 제거하라히브리서 12장 14 - 17절

(서론)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과 인간사이, 사람과 사람사이에 화평하기를 기대하시며 오셨고 십자가를 지셨다. 그런데 그분의 기대와는 달리 우리는 편견의 벽, 미움의 벽, 불신의 벽, 의심의 벽을 계속 쌓고 있지는 않는지 자신을 돌아보자.

(본론)그래서 본문에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으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이웃과 이웃 사이, 남편과 아내사이, 친구와 친구 사이를 깨는 중요한 요인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다. 이 시간 화평을 깨뜨리는 “쓴 뿌리”를 제거하고 모든 이들과 함께 화평을 누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기 바란다.

1.쓴 뿌리란?

1)마음에 깊은 상처를 의미한다(15).

(1)마음에 있는 깊은 상처는 타인에 의해 만들어 질수도 있고, 자기 스스로 만든 상처일수도 있다.

(2)이런 쓴 뿌리가 마음에 살아있는 한 이웃과의 화평을 기대할 수 없다.

(3)쓴 뿌리가 마음에 자리를 잡으면 자신은 물론이요 다른 사람까지도 괴롭게 만들며 심지어는 스스로 파멸에 이르게 된다.

2.쓴 뿌리를 제거해야 할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1)하나님의 은혜에 도달하기 위해서다(15)

(1)세월이 흐름에 따라 잔주름이 늘어가듯, 사람들의 마음에는 상처가 쌓이게 되고, 상처가 깊을수록 하나님과 이웃을 원망하며 살아간다.

(2)이러한 상처가 치료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

(3)인간은 묘한 존재여서 마음속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미움과 적개심, 의심하는 마음, 공격하고 싶은 마음,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을 은근히 즐긴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다.

(4)쓴 뿌리를 제거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

2)자기 자신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서다(15)

(1)마음에 상처와 적대감을 가지고 이웃을 향한 불편한 감정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괴롭게 하는 사람이다.

(2)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은 이웃을 살리고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오지만, 이웃을 미워하며 살아가는 것은 이웃을 괴롭게 하며 자신을 파괴하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3)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마음에 쓴 뿌리를 제거하고 이웃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자.

3)이웃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다(15)

(1)내 마음속에 있는 쓴 뿌리, 내 마음속에 있는 원망, 미움, 적개심이나 의심, 이러한 것들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까지 부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한다.

(2)마음에 상처가 많은 사람은 늘 공격적이고 파괴적이며 비판적인 행동을 서슴 없이 저지른다. 그 원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처의 원인을 다른 사람들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본문 16절에 보면 에서는 자신이 배고파 장자의 명분을 팔고 장자의 축복을 빼앗긴 후 그 원인을 야곱에게 있다고 하며 야곱을 미워하며 죽이려했다.

3.쓴 뿌리를 제거하는 방법

1)고통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으라.

(1)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아나하려고 한다. 그리고 피해의식을 가지고 문제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으려고 한다.

(2)내 마음에 깊은 상처로 인한 고통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을 때 모든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3)에서가 만일 장자권을 빼앗긴 일차적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나의 고통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겸손이 필요하다.

2)자기 자신과 이웃을 함께 용서하라.

(1)먼저 스스로를 용서하라.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학대하며 될 테면 되라지 뭐 하는 식의 삶은 자신을 스스로 학대하는 사람이다.

(2)스스로를 용서하고 이웃도 용서하라. 나와 똑같은 인간성, 연약함을 가지고 있는 이웃이 뭣 좀 잘못했다고 해서 미워하고 원망해서야 되겠는가.

(3)자기와 이웃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지옥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3)구체적으로 이웃과 화평을 도모하라.

(1)주님께서도 우리가 이웃과 화평할 수 없는 어려운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신다.

(2)1200년대 유럽에는 전쟁의 바람이 불어 있었다. 예루살렘을 점령한 모슬렘을 죽이자는 목적에서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십자군 행렬을 바라보았던 어느 젊은 수도사가 탄식하며 이런 유명한 예언을 했다

(성 프란시스의 노래).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소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하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결론)사랑하는 양문비전 가족여러분! 쓴 뿌리는 제거해야 합니다. 쓴 뿌리로 인해 망가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원인을 자신에게 먼저 찾으십시오. 그리고 이웃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쓴 뿌리가 제거 될 때 지옥 같은 삶이 천국 같은 삶으로 바꿔지게 될 것입니다. 주님!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화목하며 살게 하소서!

 

 
 
 

심지 않으면 거둘 수 없다갈라디아서 6장 6 - 10절

(서론)북유럽에서 다이너마이트 제조업으로 큰 부자가 된 “알프레드 노벨”이라 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신문을 읽다가 자신의 죽음에 관한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살상무기인 다이너마이트 제조업으로 큰 부자가 된 알프레드 노벨이 죽다” 자신은 부자가 되었지만 살상무기인 다이너마이트를 제조하다 죽은 사람이라는 오명을 남기지 않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기증해 평화 재단을 설립했는데 그것이 바로 “노벨 평화상” 을 제정하는 배경이 되었다. 노벨은자신의 인생에 미래를 생각하며 인생의 목표를 세상에 좋은 의미로 남기기 위해 결정하고 평화재단을 설립했던 것이다.

(본론)본문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매우 상식적이고도 보편적인 삶의 원리인 “심고거두는 법칙”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우리들이 풍요롭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려면 평범한 진리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1.추수의 원리를 기억하자.

1)흔히 인과(因果)의 원리라고도 한다.

(1)7절은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2)사실 이것은 성경이 강조하는 진리일 뿐만 아니라 매우 상식적이고도 실제 적인 삶의 원리다. 그러나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 보편적인 진리를 외면하며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

2)추수의 원리를 망각하면?

(1)현대인들의 불평과 불만의 대부분은 심지 않고 거두려는 잘못된 마음가짐에 서 나오는 것이다.

(2)지나칠 정도로 성공에 집착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취만을 지향 하는 삶을 살 때 비윤리와 부도덕한 행동들이 따라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3)이러한 삶을 살아간다면 결과적으로 타인을 불행하게 하고 자신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게 되는 것이다.

3)그리스도인들의 잘못된 생각?

(1)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언제든지 기적을 행하실수 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실 수도 있고 심지 않고 거둘 수도 있다.

(2)그러나 보편적인 삶의 영역에서 적용되는 하나님의 원리는 기적의 원리가 아니라 심은 대로 거둔다는 추수의 원리이다.

(3)하나님은 심는 자에게 먹을 것과 심을 씨를 주신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4)세상 사람들의 불평과 불만을 들어보자(7)

(1)사람들이 불평하고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는 자기는 많이 심었는데 열매가 적다는 것이며, 좋은 것을 심었는데 나쁜 것을 거두었다는 것이며, 자신은 정당하게 살았는데 하나님이 자신을 축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그러나 성경은 스스로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경고 하고 있다. 하나님은 누구를 속이지도 아니하시고 누구한테 속지도 아니하시며 오직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심을 말씀하고 있다.

(3)한 마디로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이야기다.

2.추수에는 두 종류가 있다.

1)육의 추수와 영의 추수가 있다(8)

(1)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육체를 위해 심는 자가 있고 성령을 위해 심는 자가 있다.

(2)육체를 위해 심는 자는 썩어질 것을 거두는 허무한 자요, 영을 위해 심는 자는 영원히 남는 것을 거두는 영광의 사람이다.

(3)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사탄의 지배를 받아 육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육체를 위하여 썩어질 것을 심으며 살아간다.

(4)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열매의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은 삶에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2)삶의 목표를 바르게 하라

(1)본문은 인생의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주님 앞에 드리기 위해 인생의 목표를 선한데 두라고 가르치고 있다(9)

(2)여러분은 인생의 마지막 날에 무엇을 거두기를 원하십니까? 삶의 목표를 바르게 합시다. 무엇보다 영혼 구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합시다.

(결론)오늘 50일 선포식을 시작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영적 전쟁이 시작된다. 영생을 할 것을 위하여 생명의 복음과 시간과 기도와 물질을 심어 좋은 결과를 기대합시다. 심지 않으면 거둘 수 없으며, 하나님은 심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으라에베소서 5장 15 - 21절

(서론)우리는 문명이 발달하고 물질이 풍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물질문화는 방탕과 방종의 삶으로 성적 타락을 가져왔고, 허황된 꿈으로 현실을 외면한 타락문화를 낳았으며, 빈부의 격차를 통해 원망과 불신의 문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이 시대를 본받지 말고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본론)에베소서 5장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 1절부터 14절까지는 어두움에서 나와 빛 가운데 살아갈 것을 권면하였고, 22절부터 32절까지는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인 가정생활에 대하여 교훈하였고, 15절부터 21절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1.그리스도를 본받으려면 “세월을 아끼라”
1)지혜 있는 자가 되라(15)
(1)지혜 있는 자는 세월을 아끼는 자다(15). 본문에서 말하는 지혜(소피아)는“하나님의 진리”를 의미한다.
(2)세월은 현재의 세계에 주어진 전 기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 진 기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본문에서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각자에게 주어 진 시간을 하나님의 진리에 맞도록 선용하라는 뜻이다.
(3)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위한 시간과 주님을 위한 시간을 구별해서 살아가는 것이 세월을 아끼는 지혜 있는 자임을 가르치고 있다.
2)세월을 아끼는 방법(롬12:11)
(1)부지런 하라 / 부지런은 삶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2)규칙적인 생활을 하라 / 규칙적인 생활은 시간을 아끼는 최대의 방법이다.
(3)시간을 지켜라 /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죄악이다.
(4)기회를 소중히 여겨라 / 옛말에 天時라는 말이 있다.
(5)시간의 십일조를 드려라 / 시간의 십일조를 드릴 때 더 좋은 기회를 주신다.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지혜롭게 살기 원한다면 자신을 위한시간과 주님을 위한 시간을 정확하게 구별해서 지혜롭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2.그리스도를 본받으려면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1)술 취하지 말라(18)
(1)성령 충만의 전제적인 조건은 술 취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은 음주에 대한 금지뿐만 아니라, 절제하지 못하는 방탕한 생활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2)술은 때때로 육신의 병이나 건강을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딤전5:23). 그러나 육신의 쾌락이나 방탕 또는 범죄에 사용되고 있다.
(3)술은 사람을 감각적으로 자극시키며, 무절제한 생활을 하게하고, 방종에 빠지게 하기 때문에 인간을 타락의 길 패망의 길로 이끌고 간다. 이러한 헛되고 방탕한 생활에서 떠날 때 성령을 충만히 받게 되는 것이다.
2)성령의 충만을 받으라(18).
(1)성령 충만이란? 하나님의 성전인 육체에 성령으로 가득 찬 상태를 말한다.
술 취하면 정신적 육체적 감각을 상실하지만, 성령 충만은 감정이나 감각을 일깨워 육체적, 정신적으로 새롭게 변화시킨다.
(2)성령 충만한 삶은 결코 무질서하거나 무절제하지 않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지혜로운 행동과 덕을 끼치는 삶을 살게 한다.
(3)성령은 우리로 지적 깨달음과 영적 감동하심과 의지적 이끌림을 받아 변화 된 삶을 살아가도록 능력을 주신다.
3)성령 충만의 결과?
(1)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19). 찬양은 기쁨의 표현이며 기쁨의 열매들이다.
(2)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게 된다(20). 성령 충만을 통한 기쁨의 삶은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열매를 맺게 한다.
(3)다른 사람을 존중히 여기며 섬기는 겸손한 삶을 살아가게 한다(21). 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지켜야 할 대인관계의 기초를 말한다.


(결론)물질의 풍요로움은 방탕함을 가져왔고, 사람들의 고급화된 지식은 자기중심의 이기주의를 나으며, 육체의 편안함은 게으름을 나았다. 세상은 점점 죄악으로 어두워 가고 있다. 성경은 어두움에서 벗어나 빛 가운데로 행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본문은 어두움에서 벗어나 빛 가운데 행하려면 술 취한 자처럼 세월을 허비하지 말고 성령 충만으로 세월을 아끼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본받읍시다. 세월을 아껴 나 자신 보다도 주님과 이웃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성령 충만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공하려면 수준을 높이라민수기 13장 17 - 33절



(서론)사람이 살면서 자기의 비전을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진하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성공에 목말라 있으며, 타인의 성공을 거울삼아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민수기 13장은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기 무엇인지, 흔히 말하는 “종이 한 장 차이” 라는 것을 사건을 통해 교훈하고 있다.


(본론)모세는 애굽에서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이 보이는 “바란 광야”에 진을 치게 된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 각 지파에서 한명씩의 대표를 뽑아 12명을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오도록 보냈다. 12명이 40일 동안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돌아와 보고하는 내용이 본문에 기록되어있다.


1.모세는 정탐할 내용을 12명에게 지시하였다.
1)성읍에 살고 있는 거민을 파악하라(18)
(1)강한 사람들인지 약한 사람들인지
(2)사람들의 숫자는 얼마나 되는지
(3)어떤 자손들인지.
2)그 땅 어떤 종류의 땅인지 파악하라(19)
(1)토지가 비옥한지 메마른지
(2)나무가 있는지 없는지
(3)그 땅의 열매를 가져오라.


2.정탐한 내용을 보고하다.
1)10명의 정탐꾼의 보고(31-33)
(1)이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땅에 대하여 악평하였다.
(2)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그 땅에 사는 거민들은 아낙 자손들이다.
(3)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애굽으로 돌아갑시다.
*열 명의 정탐꾼들의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여 이르기를 애굽으로 돌아가 차라리 노예로 사는 것이 낫겠다고 목소리를 같이 했다.
2)2명의 정탐꾼의 보고(27-30)
(1)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들을 조용히 하게하고(백성들을 잠재우라)
(2)우리가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굴이 흐리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라(27) (말로 설득하려 하지 않고 시청각적으로 보여 줬다)
(3)그러나 그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아낙자손들이 살고 있더라.
(4)우리가 올라가자 능히 우리가 그 땅을 취하리라(30)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가나안 땅에 보냄 받은 12명의 정탐꾼들은 똑 같은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돌아왔지만 그들이 보고한 내용은 서로 달랐다. 여기에 성공과 실패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3.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무엇인가?
1)실패의 원인은 “부정적인 보고”에 있다.
(1)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크다고 말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들은 그들과 비교해보면 메뚜기와 같다고까지 말했다.
(2)부정적인 보고를 한 사람들의 내용을 보면 상당부분 일리가 있는 것 같지만 자신들의 경험과 주장을 내세워 “부풀린 보고”를 했다는 것이다.
3)부정적인 사람은 하나님께서 들어 사용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가나안 땅은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땅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약속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여 결국 약속의 땅을 밟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
2)성공의 원인은 “긍정적인 보고”에 있다.
(1)그 땅의 환경을 바라보고 자신들의 처지를 보면 실망할 수밖에 없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땅이기에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성경의 약속을 저버리면 종교인이지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2)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현실의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신앙과 실력을 고루 갖춘 인물이었다.


(결론)성경은 하나님의 언약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성경의 언약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능성을 환경이나 현실에서 찾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인 성경에서 찾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숫자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 하시고 사물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성공하려면 사물과 현실을 바라는 보는 수준을 높입시다. 지도자들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만큼 국민들의 수준 또한 높아집니다.

 

 
 
 
출처 : 중국. 세계 새물결교회(연구-자료실)
글쓴이 : 주의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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