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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의 멧세지

by 【고동엽】 2022.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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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의 멧세지

 

우리의 전도 사업에는 적어도 다음 7가지의 진리가 명확하게 강조되어야 한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이 7가지 진리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며 정죄에서 영화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신앙 경험 전반을 총망라하고 있다. 이것을 강조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위대한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1구원의 필요성 : 인간의 죄성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질로 갔거늘…”(사 53장 6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장 23절)

    

이 두 구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시다. 인간은 죄를 지었다. 아무도 예의가 없다. 모든 사람이 범죄하였다. 모든 사람이 길을 잃고 각기 제 길로 갔다.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에 절대로 구원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전에 그가 죄인이라는 것과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반드시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에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와 구원받게 된다. 우리가 물에 빠져 익사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구조해 달라고 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가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찾아달라고 원하지 않을 것이다. 병들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의사를 부른다. 구원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그의 핍절한 상태를 개달아야 한다. 길을 잃은 자요 낭패한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허물과 죄로 죽었으며 죄인이기 때문에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린다고 해서 그것을 사과나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그것이 사과나무이기 때문에 사과를 맺는 것이다. 사과가 열리지 않을 때에도 여전히 사과나무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었다고 하기보다는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구원받기를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그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혹 어떻게 느끼든지 그런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하여 죄인인 것을 인정해야 하며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멧세지가 죄의 깨달음을 주며 다른 것을 더 말하기에 앞서 이 문제로 상당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인간은 예외없이 죄인이며 반드시 구원받아야 한다.

 

2. 구원의 근거 : 그리스도의 사역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장 6절)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고전 15장 3절)

    

구도자가 죄인인 것을 스스로 깨달은 다음에는 구원의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work)이다. 다른 것이 없다. 약 2.000년 전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죄 없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얹어 놓으셨다. 그것은 예수께서 갈보리의 십자가에 달리신 때였다. 그것은 예수께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외치실 때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돌이키실 때였다. 그 순간 우리 각 사람의 죄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놓여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인간의 죄 때문이었고 그의 죽으심이 곧 하나님의 구원의 근거가 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죄 용서를 하시려면 먼저 죄의 장애물을 모두 제거하셔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을 한 번 행하신 후에는 언제나 자유롭게 사죄해 주실 수 있는 것이다. 구원이 마련되어야 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패하고 낭패한 인간을 보시고 구속하시기 위해 내려오신 것이다.

 

이렇게 하셨다고 하여 모두 구원받은 것은 아니다. 음식은 마련되었어도 먹기를 거절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생명을 구하는 밧줄을 던져도 물에 빠진 사람이 잡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다 준비해 놓으신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 구원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인간이 알아야 하고 또 갈보리 십자가 위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구속을 온전히 완성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할 것이 없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인간은 그 완성된 일에 아무 것도 더 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다 이루었다”고 크게 외치셨다.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되었고 지금까지도 효험이 있다. 따라서 구원의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다. 이 진리를 강조해야 한다.

 

3. 구원의 도리 : 그리스도를 믿음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장 17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장 31절)

    

마티 루터는 로마의 높은 계단을 오르면서 위대한 진리를 발견하였다. 그의 마음속에 섬광처럼 스치는 말이 생각났는데 곧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는 것이었다. 그 날 거기서 루터는 구원이 행위로가 아니라 믿음으로만 얻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도 그와 같았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는 질문에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하였다.

 

구원은 들음으로 얻는 것이지 절대로 행위로가 아니다. 이 위대한 진리 위에 거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선한 행위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해야 하며, 유일한 길은 믿음뿐임을 충분히 깨닫게 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지극히 간단하지만 절대 효험이 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각각 마음에 영접하는 순간, 즉 우리가 마음으로 그를 믿는 순간 우리는 구원받는다. 어떤 교리나 윤리 조항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한 인격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우리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시다. 다만 믿음은 그 연결쇠가 되는 것이다. 믿는 순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다. 이 위대한 진리는 반복해서 강조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구원의 확실한 도리를 강조할 때 동시에 소극적인 측면도 언급해야 한다. “이것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라” 그 다음에 는 선한 행위로 결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여러 성경 구절을 찾아 볼 수 있다. 유일하고도 확실한 구원의 길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사역을 믿는 믿음뿐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는 것이다.

어떤 전도 집회에서나 이 진리는 분명하게 선포되어야 한다.

 

4. 구원의 확신 : 하나님의 말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장 13일)

 

이제 대단히 중요한 문제를 다르게 되었는데 즉 구원의 확신 문제이다. 여기서 확실히 설명해야 할 것은 우리의 어떤 느낌으로는 결코 구원의 확신을 얻지 못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을 때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우리 영과 함께 증거하시게 된다. 이 하나님 말씀 위에 견고하게 서지 못하는 한 확신의 의미를 알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느낌”이 아니라 “내가…이것을 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네가 영생을 가지고 있다고 바라거나 생각해도 된다”는 식의 표현이 아니고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하고 있다. 즉 “영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구원의 확신은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는 것이다. 구원은 우리가 알 수 있는 경험이요 현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말하고 있는 바로 그것을 실제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결코 하나님에 의해 쓰임을 받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전해 줄 수 있겠는가?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선포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의 구원을 확신해야 한다. 한 죄인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그리스도인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는 것도 그 이상으로 중요한 전도이다. 하나님 말씀에 확신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견고한 기초 위에 서야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야 하는 것이다. 확신을 얻으면 평안과 축복이 오게 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자기의 구원을 확신해야 한다.

 

5. 구원의 증거 : 열매를 맺음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장 20절)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약 2장 18절)

 

구원의 증거는 구원의 확신과 다른 것이다. 확신은 한 개인에게만 한정된 문제인 반면에 증거는 그 주위 사람들과도 연관된 것이다. 즉 나 자신은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지만 내가 사귀고 있는 사람들도 그것을 알고 있는가? 그 사람들이 내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아는 유일한 방법은 나의 열매이다. 그들은 나의 생활을 주시해 본다. 내가 달라졌는지를 알고 있다. 만일 내 생활이나 태도 속에서 아무런 변화도 보지 못했다면 결국 내가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결론을 짓게 되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생활이 그것을 나타낸다. 열매가 있을 것이다. 요한복음 15장 1-5절에서 주 예수께서도 이것을 아주 분명하게 언급하셨다.

 

행위가 구원의 근거는 안 되지만 구원의 증거를 제공한다. 야고보서 전체가 그것을 말하고 있으며 특히 위에서 인용한 구절이 잘 설명한다. 새로운 은혜의 역사가 있으면 그것이 외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장 17절). 변화가 있었는가? 옛것이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는가? 차이가 있는가? 그렇다면 나의 경험이 진실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증명해 줄 것이다. 진정으로 구원받았다면 열매를 맺게 된다. 생활이 달라진다. 

  

한때 사랑하던 것들을 미워하게 되며 반대로 과거에 증오하던 것들을 사랑하게 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영광을 돌리게 된다. 찬송 부르는 것이 기쁘고,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하며 간증하고 또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면서 큰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주 예수님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욕망이 없다면 구원받은 증거를 잃는 것이다. 열매를 맺히는 것이 주위 사람들에게 증거로 나타나야 한다. 이것은 지극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강조해 주어야 한다.

 

6. 구원의 기쁨 : 믿는 자의 행위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시 51편 12절)

 

이것은 다윗의 간구였는데 그가 다시 하나님과 동행을 시작하면서부터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을 경험한 것이다. 그가 죄를 범하고 침륜에 빠져 있을 때에는 마음이 무거웠다. 슬픔에 잠긴 것이다. 그렇지만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자마자 구원의 즐거움을 다시 경험한 것이다. 이 즐거움을 행위와 관련된 것이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행할 때에만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타락한 자보다도 더 비참한 사람이 없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지 않고, 죄에 항복하고 빛 가운데 거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의 기쁨을 결코 알지 못한다. 그리스도인 삶의 만족을 원하는 사람은 죄를 이기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매순간 순간, 또 매일 매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하며 살아야 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그 구원의 기쁨을 소유하고 살 수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쁨을 모르고 살며 또한 처절하게 살기도 한다. 종교는 가지고 있지만 기쁨이 없고, 구원을 받았지만 그 즐거움을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한,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징계하시며 또 비참하게 살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돌아서서 죄를 자백하고 그의 뜻을 따르게 되자마자 다시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다윗의 말처럼 죄인들이 회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쓰임받는 즐거운 그리스도인은 이웃에게 기쁨으로 복음을 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기쁨은 믿는 자의 생활에 연결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기쁨에 찬 그리스도인이 된 것인지 아닌지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생활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

 

7. 구원의 완성 : 그리스도인의 상급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딛후 4장 7-8절)

    

그리스도인이 상급을 받을 때 우리의 구원은 종국에 이른다. 구원받아 천국가는 것으로만 만족하면 안 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여 상급받을 자격을 갖추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미 알고 있는 로 이 상금은 베마(Bema) 즉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주어질 것이다 심판대에서 어떤 사람은 소실을 보고 어떤 사람은 상금을 받게 된다. 주님께서 그의 신실한 종들을 위해 마련해 두신 상금을 내려주시는 것보다 주님을 더 기쁘시게 할 것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그 날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한다. 상급받을 것을 기대해야 한다.

 

바울은 그 자랑스런 날을 얼마나 간절히 기대하였던가. 그는 선한 싸움을 싸웠고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그 날 상금을 받을 것을 알고 있었다. 얼마나 영광스런 일인가! 앞으로 다가올 그 몇 시간도 긴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철저하게 신실했던 것이다. 그의 주님께서는 그에게 풍성하고도 많은 상을 약속하셨고, 때가 되면 그것을 받으리라 확신한 것이다. 바울은 면류관에 대하여 여러 번 언급하고 있다. 사실 성경 전체를 보면 신실한 사람들에게 줄 상금이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에는 “이기는 자”라는 말이 자주 나오고 또한 그에 따르는 상금이 설명되어 있다.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전 3장 8절).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장 10절)

 

전도하는 데 있어서 이 귀한 사실도 강조되어야 한다. 믿는 자들은 믿음 안에서 강하게 세워진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 가운데 나타난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전술한 대로 이것들은 그리스도의 신앙과 경험 전체를 총망라하는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의 모든 교훈을 선포하는 일에 더욱 신실하자. 그리하면 우리의 전도가 자랑스러워질 것이다. 

 

/구령의 열정  제 18 장   전도의 메세지

 

 

출처 : 브니엘
글쓴이 : noemisuh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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