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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증오.미움】예화 모음 14편

by 【고동엽】 2022. 3. 3.
[처음 목차 돌아가기]
 
 
1. 미움과 분노

스웨덴에 사는 조지 로나는 비엔나에서 변호사였으나, 2차 대전 때 스웨덴으로 탈출했다. 그는 돈이 없었으므로 당장 취직을 해야 되었는데, 몇 나라 말을 할 수 있었으므로 무역회사 대리인 직책을 구했으나 항상 정중히 거절당했다. 어느 회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회답이 왔다.
"당신은 우리 사업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실수했고 바보입니다. 우리는 대리인이 필요 없고 혹 필요해도 당신은 문장이 서툴러서 안 되겠습니다. 당신의 편지는 틀린 글자 투성이입니다."




이것을 읽고 나서 로나는 화가 바짝 났다. 즉시 그 회사 사장을 골릴 편지를 썼다. 그러나 멈추고서 잠시 생각을 해봤다.




"잠깐, 이 사람이 나쁘다고 어떻게 내가 단정할 수 있나? 아마 내가 스웨덴 어를 배웠다고는 해도 국어가 아니니까 많이 틀렸을거야. 이 사장은 자기 본심은 아니지만 내게 호의를 베풀게 된 거야 감사의 편지를 써보자. 손해 볼 건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 편지를 찢고 다음과 같이 썼다.
"저에게 회답을 쓰시는 수고를 하신 데 대해서, 특히 대리인이 필요 없는데도 불구하고 회답하신 친절을 감사합니다. 귀사를 잘못 알았던 것을 사과 드립니다. 제가 귀하께 편지를 썼던 이유는 제가 문의한 결과 귀하께서 이 부문에서 명망 높은 지도자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편지에 문법적으로 틀린 것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대단히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앞으로 좀더 스웨덴어를 공부해서 저의 실수를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자기 향상에 노력을 하도록 귀하께서 자극을 주신데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며칠 후 나는 그 회사의 편지를 받고 취직되었다. "부드러운 대답은 분노를 걷어간다"는 것을 그는 배웠다.

2. 분노와 미움을 버리자

한 저명한 의사가 있었는데, 그는 평소에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은 나를 죽이는 사람이다”라고 말해 왔다.
그가 하루는 의학협회에 나가서 논문을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한참 발표하는 도중 한 의사가 일어나서 그의 논문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평하기 시작했다. 자신만만하게 논문을 발표하던 그는 그 말을 듣고 화가 난 나머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기를 비난한 사람을 큰 소리로 공격하다가 그만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분노와 미움을 우리의 마음속에서 깨끗이 청소해야겠다. 성경에서도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조다윗 목사

3. 분노나 미움을 촉발시키는 마음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영적 해악에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아무리 의로운 쪽에 서서 판단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우리의 마음속에 상처가 생긴다. 그리고 마음이 단단해진다. 우리의 마음에 상처가 생길 때, 죄를 짓는 것은 상처 받는 쪽이다. 마음에 생채기가 난 사람은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을 계속 마음속에 품게 되고 그것은 분노나 미움으로 발전하게 된다. 우리에게 분별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분별과 판단은 다르다. 분별은 영적인 지혜에서 오는 반면, 판단은 분노의 영과 미움의 영을 불러온다. 분별은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이다. 판단은 자기 의(義)의 기준으로 상대방을 재는 것이다. 판단의 영에 지배받게 되면 누군가에게 잘못을 전가하고 자신은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을 비난하지만 용서와 화해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판단의 영은 판단하는 사람의 영혼을 무디게 만들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깨뜨린다. 나는 선교지에 와서 이 진리를 알기 전에 누군가를 판단한 적이 있었다. 많은 선교사에게서 부족하고 변화돼야 할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로 힘들어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동안 나에게 주변 사람들을 판단했던 것들을 리스트로 만든 후에 그것을 찢으라고 하셨다. 나는 그대로 실천했고, 그때서야 하나님의 마음이 조금씩 내 안에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물질적인 손해를 보더라도 삶의 가치를 하나님께만 둡니까? 하나님만이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을 약속하셨음을 기억하십시오.
「내려놓음」/ 이용규

4. 소풍가는 날처럼

천상병이란 시인이 있습니다. 군사정권 시절에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푸르른 꿈도 펼쳐보지 못한 채 그의 삶은 시들어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음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왔음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는 그는 <귀천>이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좌절과 분노와 원망과 불평을 퍼부어대며 살 수 밖에 없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는 생각를 달리하여 하루하루를 '소풍가는 날'처럼 즐겁게 살았노라고 이 시에서 노래했습니다.




유명한 미술가 루오의 판화에 재미있는 제목의 판화가 한 점 있습니다. 그 판화의 제목은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힌다'입니다. 괴롭히고, 아픔을 주고, 상처를 주는 도끼날에도 독을 묻혀주지 않고 오히려 향을 묻혀주는 향나무. 올 한 해에도 우리가 넘어야 할 산과 건너야 할 강이 많습니다. 그것들이 우리에게 좌절을 주고 아픔을 주고 때론 분노와 절망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그때마다 '소풍가는 날처럼' 생각을 바꾸어 살고 싶습니다. 또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혀주는 향나무처럼' 일년을 달려가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그런 삶이었습니다. 비방하고 멸시하고 죽이려는 자들 앞에서 오히려 그들을 용서하고 기도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를 찍으려 달려오는 사람들 앞에서도 예수의 향을 묻혀주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5. 욕

욕은 동물들을 죽입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먹이를 주면서 쓰다듬어주고 예뻐한 쥐는 아주 튼튼하게 자라지만 먹이를 주면서 욕하고 때려준 쥐는 털이 거칠어지고 빨리 죽었다고 합니다.
나무도 욕을 먹으면 빨리 죽는다고 합니다. 영국의 어느 공원에 나무 12그루를 심었습니다. 나무에게 이름을 붙여주려고 의견을 모았는데 예수님의 열두 제자 이름을 붙이자고 하였습니다. 다른 모든 나무는 잘 자랐는데 유독 가룟 유다 나무만은 시들어져 빨리 죽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나무 앞에만 오면 발길질을 하고 못 생겼다고 욕을 해댔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어느 과학자가 쓴 ‘물로부터의 전언’이란 책의 내용도 흥미롭습니다. 두 컵의 물을 떠서 한 컵엔 ‘천사’라고 썼고 다른 한 컵엔 ‘악마’라고 썼습니다. 얼마쯤 지나자 악마라고 써붙인 컵의 물은 시커멓게 썩고 냄새가 났다고 합니다. 욕은 이렇게 모든 것을 망치게 합니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6. 미움을 쓰레기통에 집어넣다

20년 전 어느 아침에 나는 아내와 심한 말다툼을 하고서, 쓰레기통을 비운다는 핑계를 대고 밖으로 나갔다. 정확히 무슨 문제 때문이었는지는 기억 나지 않지만, 내가 도에 지나친 분노의 감정에 휩싸여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쓰레기를 내다 놓아야 하는 큰길까지 걸어 내려갈 때, 태양이 구름 사이를 뚫고 비추었다. 상쾌한 아침 바람, 반투명의 연초록 나뭇잎들. 마치 낙원에 있는 느낌이었다. 손에는 쓰레기가 들려 있었다. 나는 이 땅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향해 변명과 분노를 드러내고 상처받은 감정과 욕구로 허둥대는데, 내가 범한 죄를 근거로 나를 죽음까지 몰고 갈 수 있는 권한을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하늘의 창문을 여시고 기쁨으로 나를 덮어 주고 계셨다. 그로 인해 생겨난 결과는, 내 입장에 대한 정당화가 아니라 처절한 후회였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아내에게 찌푸려야 하는 것보다 천 배 이상 내게 눈살을 찌푸리셔야 할 이유를 갖고 계시다. 하지만 나는 여기 죄의 순간 속에서도 그분이 주시는 즐거움을 아낌없이 받고 있었다. 내가 흘린 눈물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 눈물이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능력을 주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즉시 쓰레기통을 내려놓고 아내에게 돌아가 용서를 구했다.
하나님이 그 아침에 나에게 주신 햇빛과 산들바람과 나무들, 그 안에는 소망과 인자함, 그리고 용서가 있었다. 그것은 내가 당연히 여기던 권리들을 내려놓게 했고, 내 안에 새로운 사랑을 솟아나게 했다.
- 「은혜, 구원을 딛고 삶 속으로」/ 존 파이퍼

* 기도: 형제를 미워하면서 어찌 하나님을 사랑한다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 제 안에 있는 미움을 거둬 가 주소서. 십자가 위에서 모든 사람을 용서하신 예수님을 의지하여 제가 용납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7. 미움의 문제

인간의 미움의 문제는 창세기 4장에 나오는 가인과 아벨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된다. 따지고 보면 아주 사소한 문제로 가인의 마음속에 미움이 생겼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동생인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자신의 제사는 받지 않으신 데서 비롯됐다. 동생처럼 다시 드리면 해결되는 것인데도 말이다. 히브리서 11장 4절에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문제는 가인이 드린 제사가 믿음으로 드린 제사가 아니었고 또 번제를 드린 동생과는 달리 감사의 제사인 소제(피 없는 제사)만 드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인의 마음속에 동생에 대한 시기와 미움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영적 전쟁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옳다. 사탄은 본래 틈을 잘 탄다. 기회주의자이기 때문이다.




가인의 마음속에 틈이 생겼을 때 미움의 씨앗을 심어준 것이다. 사실 미움이란 순간적으로 누구에게나 생기게 마련이다. 문제는 그것이 마음에서 싹이 나고,꽃이 피고,열매를 맺는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 잡초는 빨리 뽑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도 그런 체험이 많다. 예를 들면 9년 전 모 교회에서 아무 근거 없이 모함하는 편지 한 장과 길거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전보다 작은 돌을 받은 것을 뇌물이라며 사표를 내게 했을 때 필자가 취한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하와이의 코나에 가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기도한 것이다. 이때 아무리 큰 미움도 기도 앞에서는 사라진다는 것을 체험한 것이다.
본 단원에서는 미움을 다루는 네 가지의 방법만 언급하려고 한다. 먼저 미움이 생겼을 때 그것이 잠재의식에 쌓여서 분노로 분출되지 않도록 즉시 표현해야 한다. 가인이 살인한 것도 바로 미움을 억누르다가 분출한 데서 온 결과였다.
처음부터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상대방에게 나의 메시지,예를 들면 ‘…에 대해서 저는 화가 났어요’ 혹은 ‘사실을 말하면 그때 얼마나 기분이 나빴는지 몰라요’라고 표현해야 한다. 다음은 나 자신의 부정적 반응 즉,미움을 가지게 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이미 다 알고 계시지만 우리 자신이 직접 말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끝으로 상대방을 용서하라고 했다(고후 2:6∼7?11). 그것은 사탄의 궤계에 속지 않기 위해서다. 용서(forgive)는 바로 잊어버리는 것(forget)이다.
/신성종목사 <대전 월평동산교회>

8. 진정한 승리

누구나 잘아는 라디오 해설자 한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심하게 비난하는 말을 늘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는 종말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생각, 특히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재림하신다는 것을 비웃었다. 그는 “이런 말도 되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들만 없어진다면 이 세상은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국측에서는 이 말을 듣고 분개한 청취자들을 위해 곧 사과문을 발표했으나 정작 그 해설자는 사과하기를 거부했다. 그는 믿는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로부터 증오의 편지와 저주하는 말, 심지어는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다. 그러나 그런 협박은 증오에 찬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없어져야 이 세상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그 사람의 소신을 더욱 확실하게 만들어주었다. 원수를 이기는 최상의 방법이 있다. 그것은 증오의 흉기가 아니라 사랑의 마음이다.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9. 분노와 미움의 차이

우리의 마음속에는 상처로 인해 솟아오르는 분노와 증오심이 있습니다. 이것을 그냥 놓아두면 고통당하게 됩니다.
루이스 스미스는 “분노는 우리가 생존하고 있으며 건강하다는 신호다. 그러나 미움은 우리가 병들었으므로 치유를 받아야 한다는 신호다. 건전한 분노는 사태를 개선하도록 활기를 넣어 준다. 그러나 미움은 사태를 더욱더 악화시킬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분노는 살아 있는 건강한 정신의 징조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미움으로 자리 잡으면 그 상처는 평생 자기를 괴롭히는 아픔으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에게 고의로 손해를 입히거나 명예에 상처를 입힌 사람에게 보복하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보복한다고 치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일시적인 쾌감은 얻을지 모르지만 그 응어리진 분노 속에 잠재된 증오심은 평생 그를 불행하게 만들어 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상처를 입었을 때, 용서하지 못함으로 인해 내가 입는 손해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미움이 내 상처를 악화시키면 그 미움은 악화되는 상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별세의 치유」/ 이중표



10.증오심으로 인생을 허비하지 않겠소


생후 20개월 만에 고속도로에서 연쇄충돌로 순식간에 숯덩이가 되었다가 기사회생하여,어린 몸으로 50여 차례의 수술을 받은 비운의 청년 조엘 군의 아름다운 믿음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그는 사고 후 18년 만에 열린 법정에서 가해자 운전사에게 말했습니다. “도트 씨, 당신은 저와 저의 아버지, 어머니의 행복을 다 빼앗아갔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을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는 빼앗지 못했습니다. 저는 사고 이후부터 저를 환영하지 아니하는 세상 속에서 성장해야 했습니다. 제가 사람들 눈에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저는 집이라는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날 때마다 질식할 것 같은 응시와 ‘저것 좀 봐!’ ‘이봐, 가면 좀 벗지 그래!’ ‘입맛 떨어져!’ 같은 모진 말로 공격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증오심으로 인생을 허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원망과 절망이 또 다른 고통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렇습니다. 증오하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여운학 장로(종합선교 규장대표)

* 기도: 저를 힘들게 했던 사람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사람을 제가 미워하지 않게 하시고, 제게 상처가 되었던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용서하게 하소서.

11. 용서와 증오

우리 교회 김 집사가 투병하고 있을 때 심방을 갔다.
“천국은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니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위대한 소망을 가지세요. 이 세상은 하나님을 위한 곳이니 투병까지도 하나님을 위한 사명과 영광으로 알아야 합니다.”
나는 이런 설교를 했다. 구원의 확신을 갖고 살아온 김 집사는 내 오른손을 꼬옥 잡았다. “목사님, 이 집사와 20년 전 크게 싸우고 서로 원수가 됐습니다. 이 집사에게 저를 용서해달라고 말해주십시오.” 나는 두 사람을 모두 만나 화해의 시간을 가졌다. 두 사람이 20년만에 서로 용서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먼저 용서하는 사람이 승리자다. 마음 속에 증오를 품고 화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패배자다.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을 생각해보라. 용서받지 못할 사람,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훈 목사(안산제일교회)

12. 증오에서 오는 죽음

1960년대 배경의 미국 영화 ‘리멤버 타이탄’에서 흑인 미식축구 감독은 백인들로만 구성된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먼저 인종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느날 감독은 새벽에 선수들을 기상시켜 지칠 때까지 뛰게 하고 동틀녘에 게티스버그에 이르렀습니다. 힘에 겨운 선수들은 구토를 하며 숨을 몰아쉽니다. 이때 감독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묻힌 이들은 서로가 증오했기 때문에 죽었다. 우리 팀은 서로 사랑하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만 여기 묻힌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완벽한 것을 원한다. 우리가 완벽한 인간이 될 수는 없지만 분명 우리는 완벽한 팀이 될 수는 있다.” 그 결과 그들은 한 게임도 패하지 않고 승리합니다. 죽음은 증오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도 증오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은 증오를 없애는 것입니다.
/이성희 목사 <연동교회>

13. 스스로 택한 지옥

누군가를 미워하고, 미워하다 못해 증오하고, 그를 죽여버리고 싶다못해, 그냥 저절로, 내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그 사람이 고통스러운 병에 걸려 천천히 죽어가기를 바랐던, 그러면 나는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그를 앞에 두고 두 눈 똑바로 뜨고 빙긋이 웃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리라, 이를 악물던 그런 황폐한 날들이 내게도 있었다. 증오가 사랑보다 강렬한 것을 알게 되고, 미움 앞에서 사랑은 얼마나 무력하게 사위어가는지 알게 되었던 그런 날들이 내게도 있었다. 그를 파괴하고 싶은 욕망이 결국 나 자신을 파괴하고 싶은 욕망의 다름 아니었다는 것도 모르던 그런 날들이…. 다시 신앙을 찾았을 때 나는 기도했다. “다시 돌아왔지만 그 사람을 용서하라는 말일랑은 하지 마세요. 설사 그것 때문에 지옥에 간다 해도, 물론 지옥에 가는 건 무섭지만, 그래도 지금 나는 그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 말만은 내게 하지 마세요. 하느님… 다른 건 다 돼도 그것만은 안 됩니다.” 당장 그를 용서하라는 계시를 받은 것도 아닌데 나는 성당에 앉아 안돼요, 안돼요 하며 엉엉 울었다. 사실 지옥은 누가 우리를 억지로 보내버리는 그런 곳이 아니었나 보다. 곁에 두고 그를 증오하던 마음이, 사랑이 미움 앞에서 무력하게 사라지던 걸 속수무책 바라보아야 했던 그 시절이, 내 스스로 걸어 들어간 지옥이었을 뿐.
- 공지영, 김영사, <수도원 기행>에서

14.사랑하기보다 더 어려운 일

나는 될수록 미워하지 않으려고 참는다. 나는 정말로 노력한다. 말 한 마디도 절대로 감정 내키는 대로는 하지 않는다. 내 마음의 한 길 위에도 '일단정지'의 패쪽을 세웠다. 미워해서는 아니 되지, 반성하고 반성한다.
"하나님 제발 미운 마음으로 하지 않게 해줍시사!"
기도하고 기도한다. 부끄러운 고백이다. 내 딴으로는 이제라도 바른 길에 들어섰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 함석헌의 《너 자신을 혁명하라》중에서 -

미워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은 사랑하기보다 더 실천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미워해도 가책을 느끼지 않고, 미워해도 정당화되는 감정이 이 세상에 가장 무서운 마음의 적입니다. 설령 미워는 했을지라도 용서하고 이해하는 후덕(厚德)한 마무리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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