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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편견.선입견】예화 모음 22편

by 【고동엽】 2022.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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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이컨의 우상

베이컨은 사람들이 빠지는 편견을 네 가지 우상으로 설명하였다.
첫째는 종족의 우상이다. 이것은 세계의 모든 현상을 인간의 관점에서만 보려는 것을 말한다. "저 새는 나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구슬프게 운다."와 같은 것이 그 예이다.
장자의 제물론에 나오는 글이다. 사람은 습기가 많은 곳에 살면 허리병이 생기지만, 미꾸라지는 그렇지 않다. 나무 위에서 사람은 불안해하지만, 원숭이는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여희를 미인이라고 하지만, 물고기는 그녀를 보면 물 속 깊이 숨고, 새는 높이 날아오르며, 순록은 기운껏 달아난다. 사람은 우상숭배가 대수롭게 생각지 않으나 하나님은 무서운 큰 죄로 보신다. 인본주의 생각이 옳은 것만은 아니다.
둘째는 동굴의 우상이다. 이것은 동굴에 갇혀 있는 사람처럼, 개인적 경험이나 성격적인 편견으로 인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우물 안 개구리'가 여기에 해당된다. 천사와 하늘 나라가 존재하나 사람들 중에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셋째는 시장의 우상이다. 이것은 말 때문에 생기는 편견을 말하는 것으로, 베이컨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에서 잘못된 말과 소문이 많다고 생각하였다. '용', '봉황', '모순'과 같은 것들이 이런 예에 속한다. 같은 말이라도 사람마다 가지는 편견이 있다. 예를 들면 '예수님' 하면 나의 경우에는 나의 구세주, 나의 사랑, 나의 기쁨, 나의 소망이지만, 믿음이 없는 자에겐 예수는 4대 성인 중에 한 사람에 불과하거나 심지어 재수 없게 생각한다.
마지막 넷째는 극장의 우상이다. 베이컨은 무대를 보고 환호하는 관객들처럼, 전통이나 권위에 의지하여 나타나는 지식이나 학문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가리켜 극장의 우상이라고 하였다. 그는 과거에 나온 이론들을 권위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추종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예를 들면 다윈의 진화론을 그대로 믿는 것도 이에 속한다.

2. 편견을 버리자

오랫동안 편견과 오해로 형성된 사람으로 막달라 마리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는 성적 추문에 대한 세상의 야릇한 관심이 빚어낸 편견일 뿐입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인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막달라 마리아는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극중 대표적인 아리아에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또 다른 한 남자로 여긴다”는 애절한 노랫말이 나옵니다. 이는 마리아가 창녀였다는 편견에 따른 것입니다. 최근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도 비슷합니다. 모니카 벨루치의 막달라 마리아를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한 여인과 동일시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 천주교회의 전통 즉,인간적인 전설을 따른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막달라 마리아가 돌아온 창녀라거나 간음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세상의 관심에 따라 성경을 해석한 결과일 뿐입니다. 놀랍게도 성경이 말하는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은 선임 사도 정도의 위치입니다. 요한복음은 막달라 마리아를 그리스도 부활의 첫 증인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는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에게 그리스도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 소리쳤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이미 십자가 사건을 보고 줄행랑을 친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좇아다녔지만 십자가 곁까지 동참한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 행렬은 물론이고 주님 처형 이후로도 가장 오랫동안 십자가 아래서 머물렀습니다. 그랬던 막달라 마리아가 이제 부활의 첫 목격자로서 “내가 주를 보았다”고 외쳤습니다. 남성 중심사회인 당시 막달라 마리아는 당당히 첫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갈릴리에서부터 따랐고 십자가 사건과 장례식,그리고 부활을 목격한 사람은 주님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야말로 이 모든 요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고향 갈릴리에서부터 주님을 만나 따라다녔습니다. 막달라란 갈릴리 호숫가의 고을이름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흔들림 없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 점에서 중세초 교회가 그에게 붙여준 애칭은 새겨들을 만합니다. ‘아포스톨라 아포스톨로룸’(사도들 중의 사도).
고대교회는 막달라 마리아처럼 적지 않은 여자 지도자들이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브리스길라 루디아 뵈뵈 등. 점차 교회가 제도화되고 로마의 정치적 구조 영향을 받아가는 동안 남성 중심의 지도력을 확보하려고 여성을 깎아내리려는 모종의 음모가 있었습니다. 이는 ‘교회제도의 로마화’입니다. 이에 따라 막달라 마리아는 회개한 창녀라는 초상화 속에 갇혀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많은 제도와 의식이 역할상의 차이를 넘어 성적 차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편견은 강화되고 새롭게 생성되기까지 합니다. 교회는 남녀 누구나 그리스도 부활의 증인으로 당당히 살도록 도전해야 합니다.
/박삼영 목사(송파새길교회)

3. 편견을 버리십시오

전남 광주에서 전경으로 군대생활을 했던 어느 목사님 고백입니다. 훈련소 생활을 끝내고 자대가 있는 광주에 도착하던 날, 그분은 그날 아침의 착잡한 기분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서울에서만 자란 그분은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도의 난동으로 알고 광주 사람은 다 사기꾼이고 귀신인 줄 알고 군대생활을 했습니다. 군대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해서 MT(멤버 단합회)를 갔습니다. 그때 경북 영주 근처에서 텐트를 치고 잤는데, 깨어보니 텐트는 없어지고 돗자리에서만 자고 있었습니다. 그날부터 한 동안 경상도 사람은 다 깡패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광주 사람이나 경상도 사람이나 대부분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왜 편견이 생깁니까? 과거의 나쁜 기억을 잊지 못해 생기는 초기 정신병적 질환이 바로 편견입니다. 사람의 영혼에 가장 나쁜 것은 과거의 나쁜 기억이 현재의 나를 지배하도록 방치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불행을 쉽게 잊을 줄 아는 거룩한 건망증은 행복의 제일 요소입니다. 과거의 불행을 잊을 때 현재의 행복이 있습니다. 편견은 비겁한 사람의 무기입니다. 겉만 보고 편견을 가진 사람에게 있는 특징 한 가지는 상대방이 외적으로 그럴듯하면 그 앞에서는 맥을 못 추는 것입니다. 강자에게는 한없이 비굴하고, 약자에게는 한없는 높아지는 마음이 편벽한 사람의 마음입니다. 편벽한 사람은 남을 무시도 잘하지만 남 앞에서 기도 잘 죽습니다. 편견의 뿌리는 교만입니다. 남보다 높아지고 싶은데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 성별, 인종, 직업, 출신지 등을 언급하며 남을 낮추고 나를 낫게 보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편견이고, 자기 인격이 더 못됐으면서 남의 인격을 못됐다고 하는 것이 편견입니다. 편견은 한 부분만 보고 판단하기에 진리를 가장 왜곡할 수 있습니다. 편견은 가장 가벼운 죄처럼 보이는 가장 무거운 죄이고, 인간영혼이 제거해야 할 제일 대상입니다. 편견의 벽을 무너뜨릴 때 불행의 벽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도 예수님을 향해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고 직업에 대한 편견을 가졌고,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출신지에 대한 편견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이 지역적으로, 그리고 직업적으로 편견의 대상이 되는 출신으로 사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 그 못 박힌 손 그대로 부활하심으로 영원히 장애인이 되신 것은 “편견을 버리라!”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참된 믿음은 잘못된 편견을 깨뜨릴 줄 알 때 주어집니다. ‘나 중심’의 사고체계는 차이를 차별로 떨어뜨리지만, ‘우리 중심’의 사고체계는 차이를 개성으로 승화시킵니다. 졸장부는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생각하고 금방 편견을 가지지만 대장부는 ‘틀린 것’을 보고도 ‘틀린 사람’이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이한규

4. 선입견을 버리세요

오늘도 나는 학교를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 때 어떤 아저씨 한분이 탔다. 그 아저씨는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차내에 계신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희 딸이....
백혈병에 걸려서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그래서.....”
순간 지하철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딸을 팔아 먹냐, 돈이 그렇게 궁하냐” 등등...
한동안....아저씨는 상기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서 계셨다. 그리고는....
“오늘 제 딸이 수술을 받는데 제발 단 1초만이라도 기도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순간 열차 안은 숨소리도 안 들릴 만큼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나 역시도 무슨 생각을 했는지...

5. 베토벤을 죽이지 말라

미국에 있는 UCLA라고 하는 대학의 의과대학 교수가 이제 머지않아 의학 공부를 마치고 바로 현지 병원에 나가서 환자들을 진찰하고 치료하게 될 학생들을 놓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가르치는 중에 한 사례를 들어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매독균에 걸려 있고 어머니는 폐결핵 환자이다. 여기서 아이 넷이 태어났는데, 첫째아이는 매독균으로 인해서 장님이 되었고, 둘째 아이는 이미 병들어 죽었고, 셋째아이는 역시 이 부모들의 병 때문에 귀머거리가 되었고, 넷째 아이는 결핵 환자가 되었다. 이런 때에 어머니가 또 임신을 했다. 이런 경우에 그대들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학생들은 입을 모아 대답합니다. "유산시켜야 합니다. 아버지가 매독 환자요 어머니가 폐결핵 환자이며, 이미 낳은 아이 넷도 다 그 모양이 되었는데, 이러한 악조건에서 아이를 또 낳아놓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유산시켜야 됩니다." 그러자 교수는 점잖게, 아주 정중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대들은 지금 베토벤을 죽였다."
우리가 아는 악성 베토벤은 바로 그런 환경 가운데서 1770년에 태어납니다. 아버지는 매독 환자요, 어머니는 폐결핵 환자요, 형제들도 다 병들어 그 모양이지마는 그 가운데서 태어나 57년 동안 작곡 활동을 했습니다. 물론 그도 나중에는 귀머거리가 되었습니다마는 그런 가운데서도 많은 불후의 명곡을 작곡하게 됩니다. 무릇 우리 인간이 판단과 사고가 얼마나 어리석고 잘못되기 쉬운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교수는 말했습니다. "그대들은 환자들을 대할 때에 이 사실을 잊지 말라. 의학적 지식이 좀 있다고 해서 이렇게 저렇게 치료하고 수술하고 없애고 할 것이 아닌 것이다. 모름지기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생각하고 겸손하게 신중하게 할 것이다."

6. 편견의 위험

편견을 가지고 상대방을 즉흥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영국의 사회파 작가 골즈워디와 연애파 작가 로렌스가 어느 날 처음으로 만나 서로의 작품세계와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들이 보기에 두 사람은 진지하고 다정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 날밤 일기에 상대방에 대한 인상을 기록했는데 그 "편견의 시각차"는 다음과 같다.
0 골즈워디 = 미치광이 같은 촌놈이었다.
0 로렌스 = 죽은 듯한 눈을 가진 속물이었다.

7. 문전박대 당한 간디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약2:9)

인도의 영원한 지도자 간디(1869-1948)가 젊었을 때 영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온갖 차별과 편견과 냉대에 시달리면서 어려운 유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성경책을 발견하고 이를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간디는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산상수훈의 말씀은 그에게 큰 감명을 더하여 주었습니다. 성경을 읽은 간디는 하나님을 위해 그의 일생을 바쳐야겠다는 결심하고는 교회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에 지나지 않는 미개한 나라이었고 인종차별이 심한 때이었기 때문에 그의 결심은 빛을 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찾아다니며 예수를 잘 믿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여러 차례 청원을 해 보았으나 교회당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쫒겨나기가 일쑤이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쫓겨 나면서 한 그의 마지막 말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는 존경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경멸한다.”
그는 결국 기독교에 대한 신앙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인도로 돌아온 그는 10억 인구의 인도를 움직이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만약 그 때 교회가 간디의 간절한 소망을 외면하지 않았다면 인도의 역사는 전혀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간디가 기독교의 영향을 인도에 끼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도 컬컷트에서 만나는 인간 이하의 삶을 사는 그 수많은 거지떼들은 인도가 아직도 어두움 속에 헤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기도: 공의로 심판하시는 주님, 제 편견을 제거해 주시고 주님의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차별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8. 「숲」을 보라

오래 전 브라질에서 매일 오토바이를 타고 콜롬비아로 가는 노파가 있었다 .오토바이 뒤에는 주머니가 하나 있었는데 이를 수상히 여긴 세관원이 몇번 노파를 검문, 수색했으나 혐의를 잡지 못했다. 그 주머니에는 언제나 모래만 들어 있을 뿐이었다. 한달 후 세관원이 『체포하지 않을테니 솔직하게 말해 봐요. 밀수하는게 있지요? 그게 뭡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노파는 웃으며 말했다.
『이거요. 오토바이』 어쩌면 현대인들은 「중요한 단서」를 놓치고 사는지도 모른다.

9.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라

미국인 빌과 조지가 함께 이집트 여행을 떠났다. 어느 날 쇼핑을 나간 조지는 노파 한 명이 검은 고양이상을 팔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묵직한 게 마치 쇠붙이 같아 보였는데 값은 500달러나 됐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고양이 눈알은 진짜 진주였다. 조지는 300달러에 두 눈알만 팔라고 흥정을 했고 결국 진주를 손에 넣었다. 조지는 호텔로 들어와 빌에게 자랑을 했다. 전후 사정을 들은 빌은 노파의 위치를 묻고 황급히 뛰어갔다. 그리고 200달러에 그 쇠붙이 고양이를 샀다. 빌은 쇠 고양이를 이리저리 살핀 뒤 칼로 발바닥을 긁어보았다.
그러자 검은 칠이 벗겨지고 황금빛이 반짝거렸다. 고양이를 처음 만든 주인이 분실을 우려해 검은 칠을 해 쇠고양이로 변장시켰던 것이다. 빌은 넋이 나간 조지에게 말했다.
"조지, 잘 생각해보게. 진짜 진주를 눈으로 만든 고양이상이 설마 값싼 쇠붙이였겠는가!"
소탐대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는다는 뜻이지요. 인간관계 또는 비즈니스에서 혹시 이런 우를 범하고 있진 않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10. 망고나무

페르시아에 네 아들을 둔 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은 아들들을 불러놓고 한 가지 명령을 했습니다. "지금부터 내 말을 들어라. 첫째는 겨울, 둘째는 봄, 셋째는 여름, 넷째는 가을에 정원 뒤편의 망고나무를 관찰하라. 다른 계절에 망고나무를 보아서는 안 된다."
네 아들은 왕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1년 후 왕은 네 아들을 불러놓고 물었습니다. "자, 이제부터 너희가 본 망고나무를 내게 설명해다오."




네 아들의 대답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불에 타고 남은 폐허 같습니다. 잎이 푸르고 싱그럽습니다. 꽃은 장미처럼 아름답습니다. 주렁주렁 열린 열매가 탐스럽습니다." 왕은 네 아들의 손을 잡고 교훈을 주었습니다.
"너희들의 대답은 모두 옳다. 망고나무는 계절마다 각각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한 가지 모습만 보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해선 안 된다. 이것이 너희들에게 주는 교훈이다."

성급한 결론은 편견을 낳습니다. 편견은 분쟁을 일으킵니다. 어느 한 면만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화합을 깨트립니다. 한 가지 잘못으로 그 사람 전체를 평가하면 안 됩니다. 예를 들면 학교공부를 못한다고 그 사람이 모자라고 실패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박찬호, 박세리 선수를 보세요. 그 사람들은 학교 다닐 때 공부는 못했지만 얼마나 성공했습니까? 노아가 홍수 후에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고 자다가 결국 아들 함의 후손들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 일 한가지로 우리가 노아를 알콜중독자라고 말해야 합니까? 다윗이 부하장군 우리아의 아내 밧새바를 범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윗을 '간음쟁이'라고 평가해야 할까요? 아브라함은 자기 목숨 살기 위해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을 '거짓말장이'라고 해야 합니까? 또 베드로는 닭 울기 전에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베드로를 '비겁쟁이'라고 말해야 할까요? 한 가지 사실만으로 그 전체를 평가하고,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이 편견입니다. 대개 사이비종교들이 성경 어떤 한 두 구절을 너무 고집하다가 이단이 되고 거짓종교가 되었습니다.(약3:14, 요일2:21) 예를 들면 구원파는 로마서의 말씀인 믿음만을 강조하여 '우리는 이미 구원 얻었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 등등의 이단 사설을 주장합니다. 안식일교는 구약의 율법 중 하나인 토요일 안식만을 주장하고 안식일을 범하는 자는 다 거짓이라고 주장합니다. 성경말씀은 모두 진리입니다. 로마서도 구약도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한 면만을 보고 그것만을 주장하면 큰일납니다. 한쪽만 치우치면 병신입니다. 머리만 크면 과분수입니다. 한쪽 다리만 커지면 걷기 힘듭니다. 가슴만 키워도 안되고 지, 정, 의 (知情意)를 고루 갖추어야합니다.
/한태완 목사(http://www.je333.com)

11. 영적 편식

요사이 복음을 좀더 쉽게 그리고 빠르게 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어떤 선택 기준을 세워놓고 간략화된 신조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단순화된 신조는 단편적이고도 세분화되지 못한 복음을 제시,영적 편식을 초래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케이크 위에 장식용으로 놓인 앵두 몇 개를 빼먹으면서 케이크를 먹었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믿는 것이며 다른 모든 것은 바른 믿음과 집중적인 신앙생활을 통해 체험할 수 있다고 하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고 미혹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단순한 특허처방은 개별적으로는 옳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복음 전체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얼마 가지 않아 영적 편식으로 인한 결핍증이 나타나 정신적인 파멸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말씀을 현미경으로도 분석해야 하지만 또 망원경으로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믿음생활과 기도, 그리고 말씀을 받을 때 수동적인 태도를 취함은 위험을 초래한다. 수동성은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토양을 형성하는 것과 같다.
/박관 목사(독일내과 병원장)

12. 고정관념

비가 오면 우산을 쓴다. 어느 국민이나 다 그렇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프랑스에 가본 사람은 안다. 비나 눈이 올 때 우산을 쓰지 않고 걸어다니는 사람이 많다. 왜 그럴까. 프랑스인들은 어렸을 때 유치원에서 그렇게 교육을 받았다. 어린이가 우산을 쓰고 걸으면 앞이 가려져 위험하다는 것이다. 손이 자유롭지 못해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우산을 안 쓰고 우비나 레인코트를 입도록 교육받는다. 고정관념은 우리들의 생각과 안목을 좁게 만든다. 고정관념을 깨뜨리면 세상이 훨씬 넓게 보인다. 생각을 바꾸면 사물이 훨씬 크게 보인다.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존재다. 그러므로 사고의 폭도 넓어야 한다.

13. 전도의 잘못된 고정관념

흔히 전도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영혼을 구원하는 것’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놀랍게도 이 고정관념 때문에 거의 모든 성도가 전도공포증 전도기피증 전도노이로제에 걸려 항상 기뻐해야 할 신앙생활을 누리지 못한 채 전도 못하는 죄책감에 짓눌려 불행하게 살고 있다. 이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전도는 믿지 아니하는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여 등록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문제는 쉽게 풀립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믿음이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진실과 사랑으로 감동을 주어 비신자의 마음을 녹여서 스스로 교회에 찾아오게 하는 전도가 구원의 첫 단계라면 예배설교 성경공부 기도훈련 등을 통하여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구원의 2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고정관념을 버리고 올바른 전도개념만 갖게 되면 어렵게 여겨졌던 전도가 쉽고 신바람나는 일로 확 변할 것입니다.
/여운학 장로(종합선교 규장 대표)

14. 고정관념을 깨라

하와이는 태평양 한가운데 더운 곳에 있는 섬입니다. 그야말로 와이키키 해변을 비롯해서 얼마나 뜨거운 곳입니까? 그런데 상상을 해보세요. 그 하와이 한가운데서 누가 밍크코트 장사를 하겠다고 한다면 미쳤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어떤 사람이 엉뚱한(?) 생각을 하고 하와이 그 뜨거운 섬에서 가죽옷, 밍크코트를 내놓고 파는 가게를 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을 두고 정신나간 사람이라고 했지마는 그는 생각했습니다. 온 세계 사람이 많이 여기에 오는데, 그 중에는 추운 지방 사람들도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은 겨울에 여름옷을 준비하고, 여름에 겨울옷을 준비할 것이다. 이윽고 그 밍크코트 가게에는 점점 사람들이 몰렸고 마침내 이 사람은 많은 수입을 올려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보통사람은 생각치 못 할 일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봄으로 사업에 성공하게 된 것입니다. 고정관념을 깨야 창의력이 생기고, 새로운 세계가 보입니다.
신앙생활의 장애물들 가운데 하나는 고정관념일 것입니다. 예전부터 갖고 있던 인간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2천년전 이 땅에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도 사람들은 고정관념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동방박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학식이 풍부하고 인생의 경험도 많은 이들이 아기 예수를 만나기 위해 먼저 찾아간 곳은 헤롯왕의 궁전이었습니다.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라면 지위가 높고 권력도 강한 가문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왕궁을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으리으리한 왕궁에서 금 보자기에 싸여 태어나시지 않고 가장 허름한 마구간의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사람들의 그릇된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뜨리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소외당한 사람들도 누구나 예수님께 찾아올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한태완 목사 설교 중에서(http://www.je333.com)

15. 포스베리 엉덩방아

“포스베리 엉덩방아”란 스포츠 용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높이뛰기를 정면으로 뛰지 않고(가위뛰기:正面跳라 함) 역U자 모양으로 높이뛰어(이것을 포스베리플릅:背面跳라 함) 떨어질 때 한 바퀴 돌아서 엉덩방아를 찧는 것을 가르킵니다. 포스베리플럽은 미국의 D.포스베리가 고안해 낸 도약방법입니다. 포스벨리 당시에는 높이뛰기의 기록은 1m 98cm이었고 2m는 인간이 더 이상 뛰어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인정되고 있었습지다. 포즈베리 역시 이 벽을 뛰어 넘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다이빙의 재주넘기 장면을 보다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지금까지 하던 ‘앞으로 넘지 말고 뛰로 넘자’는 그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험해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2m의 벽을 쉽게 뛰어 넘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 방식을 이용하여 1968년 멕시코 올림픽대회 높이뛰기에서 금메달을 차지했고 그의 도약방법인 포스베리플릅은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높이뛰기 방식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3m의 높이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우리는 너무나 자주 우리를 가로막는 벽을 경험합니다. 우리의 사고를 바꾸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면으로도, 뒤로도 뛰어넘지 못하는 많은 벽들 앞에서 우리는 좌절하게 될 때면 하늘을 우러러 봅시다. 거기로부터 우리의 도움이 오기 때문입니다. “너희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16.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미국 유머 가운데 스피드광이건 굼뱅이 운전자건 모두 자기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은 미친놈이고 자기보다 느리게 달리는 사람은 멍청한 놈으로 생각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직 자신만이 옳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세태를 풍자한 유머다.
우리가 거울을 볼 때 오른손을 들고 '오른손'이라고 우겨도 거울 속에 있는 또 다른 나는 '왼손'을 들고 있는 모슺인 것처럼

17. 내가 절대 볼 수 없는 것

내가 볼 수 없는 곳이 있다. 내 뒷통수, 내 정수리, 내 뒷덜미. 나는 나를 다 알아, 라고 생각하지만 더우기 나는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서 나를 너무 많이 들여다보는 게 탈이야,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꼭 보던 곳만 수없이 본다. 내가 절대 모르는 곳 그대로 모른 채 내가 절대 알고 싶지않은 곳 내가 절대 본 적 없는 곳 그대로 덮어둔 채 나는 나이기만을 고집한다. 그래서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들 말하는 걸까. 변화하려면 그 곳을, 그 모르는 곳, 모르고 싶었던 곳, 가려운 곳, 아픈 곳, 정말 본 적 없는 곳을 보아야 한다. 뒷모습을 볼 수 있도록 앞에 다른 손거울 하나가 더 필요하다. 오직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만이 변화한다.
/백은하

18. 울타리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그런데 그 와중에 미군 병사 한 사람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의 동료들은 시체를 전쟁터에 그냥 방치해 두고 싶 지 않았다. 그래서 기독교식 장례를 치러 주기로 했는데, 전투가 벌어지는 일선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 흰 울타리를 친 작은 공동묘지가 딸린 교회가 있던 것을 기억해 냈다. 친구의 시체를 공동묘지로 옮겨가기 위해 상사의 허락을 받은 병사들은 해가 지기 전 겨우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허리가 굽고 야윈 신부가 그들을 맞아 주었다. 깊은 주름이 팬 햇빛에 그을린 신부의 얼굴 은 지혜와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번쩍이는 두 눈이 자리잡고 있는 집처럼 보였다. 한 병사가 정중하게 말을 꺼냈다. “친구가 전쟁터에서 숨졌습니다. 우리는 그를 교회 묘지 에 묻어주고 싶습니다.” 신부는 병사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이해했지만 아주 서투른 영어로 이렇게 대답했다. “미안합니다. 우리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면 이곳에 묻어 줄 수가 없습니다. “ 수 개월에 걸친 전쟁에 지친 병사들은 서운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은 채 말없이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그러자 노 신부가 그들을 불러세웠다. “그렇지만 울타리 밖에 묻는 것은 괜 찮습니다.” 그 말에 화가 나긴 했지만 병사들은 하얀 울타리 밖에 땅을 파고 친구를 묻어 주었다. 그 일을 다 마쳤을 때는 이미 해가 떨어지고 난 다음이었다. 다음날 아침 전선(戰線)을 옮기라는 명령을 받은 병사들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그 작은 교회를 다시 찾아갔다. 그러나 친구를 묻은 자리를 찾을 수 가 없었다. 지치고 어리둥절해진 병사들은 교회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친구를 묻은 자리 를 알고 있는지를 물었다. “어젯밤 지치기도 했고 어두워서 그랬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 말에 노 신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어젯밤 댁들이 떠난 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내가 울타리를 옮겨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울타리를 옮겨 놓는 그 이상의 일을 하셨다. 아예 울타리를 없애버리셨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긴장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울타리를 만든 사람들은 자기의 울 타리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19. 장님과 코끼리

옛날 어떤 마을에 장님들만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길을 걸으면서 이 마을의 여섯 사람들이 코끼리를 타고 오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여섯 사람들은 코끼리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한 번도 가까이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코끼리를 타고 있던 사람에게 이 거대한 동물을 만져보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들은 마을에 돌아가서 어떻게 생긴 동물인지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었습니다. 코끼리를 탄 사람은 이를 허락하고 여섯 사람이 각가 다른 부분을 만지게 했습니다. 모든 장님들은 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분명히 알기까지 코끼리를 만져보기도 하고 두들겨 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큰 기대를 가지고 마을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경험을 보고하기 위해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코끼리의 옆구리를 만진 첫 번째 사람이 말했습니다.
"코끼리랑 광대하고 두꺼운 벽 같이 생겼습니다."
"말도 안돼."하고 코끼리의 이빨을 만지고 온 둘째 사람이 말했습니다. 코끼리는 짧고, 둥글고, 매끄럽지만 날카로워요. 나는 코끼리를 벽보다는 창에 비교하겠습니다."
코끼리의 귀를 만지고 온 세번째 사람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것은 벽이나 창하고는 전혀 같지 않습니다. 차라리 두꺼운 털 양탄자 같은 것으로 만든 거대한 이파리 같아요. 그것은 손만 대면 움직임니다."
"나는 찬성 못합니다." 하고 코끼리의 코를 만지고 온 네번째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커다란 뱀과 같이 생겼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섯번째 사람이 맞지 않다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는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고 온 사람입니다.
"그것은 나무처럼 둥글고 두텁게 생겼어요."
코끼리를 타본 여섯째 사람이 항의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코끼리를 사실대로 설명한 사람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코끼리는 확실히 커다란 움직이는 산처럼 생겼습니다."
오늘날도 마을 사람들은 토론을 계속하며 아무도 코끼리가 어떻게 생긴 동물인지 생각해 내지 못하고 있다 합니다.

20. 편견-혈액형 사건

개인적으로 나는 모 혈액형을 싫어한다. 특히 남자들은 그 혈액형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이나스 점수로 내리막길을 달린다. 또 괞찮게 생각하는 혈액형이라면 플러스 점수로 현상 유지로 시작한다. 이런 엉터리 고정관념과 편견은 보편적 기질에 근거하는 것이지만 특히 내 주위에서 많이 봐 왔기에 나름대로 단정지어진 편견의 일종이다. 몇일 전 아들녀석이 학교에서 혈액형 검사 결과를 들고 왔다. 나는 기절초풍할 뻔 했다. 아들녀석이 그 싫어하는 모 혈액형이라는 것 이었다. 평상시 내가 살펴본 아들의 성격은 싫어한는 모 혈액형의 기질과는 많이 달랐기에 나는 쇼크를 먹었다. 애써 부인하며 학교에서 재검사를 요청하라고 몇번이고 다짐을 시키고는 생각한 바가 컸다. 하나님의 허락하신 것을 애써 내 기준으로, 편견으로, 거부하는 내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창조원리와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거부하고 있는 것인지 ......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신뢰와 감사와 또 회개를 드리며 더 멋진 하나님의 아들이 되길. 내가 아는 보편적 단점을 가지지 않고 지금의 장점이 더 빛나길 기도하게 되었다. 다른 편견도 살피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기회가 되어 너무 감사하다.

21. 편견에서의 탈출

어떤 물체든 단면이 아닌 입체로 형성되어 내부와 외부가 있다. 사회 현상도 마찬가지이며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사람은 흔히 일면 밖에는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외형만을 보고서 판단하기 십상이다. 우리가 특정한 존재 또는 현상을 바라보는 안목에 있어서 어느 일면만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것을 편견이라 한다. 편견 또는 선입견에 사로잡히면 사리를 분별할 수 없으며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없다. 편견만큼 무서운 질병은 없다. 자기 자신을 파멸시킬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소외시켜 사회를 혼란상태로 몰아넣는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편견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조언과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약2:1)는 말씀에서 보듯이 모든 사람의 겉만 보지 말고 속을 통찰해야 한다. 세밀한 관찰과 주의 깊은 사려를 통해서만 편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는 또 다른 길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인생의 거울로 삼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편견이라고 판단되면 그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과감하게 시정할 수 있어야 한다. 동일한 편견을 두 번 갖지 않아야 한다. 본질을 보고 다양하게 생각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태도를 길러야만 편견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

* 기도: 경건 가운데 살고자 몸부림치는 나를 기억하시는 하나님, 나로 더욱 경건의 능력으로 충만케 하시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순종하게 하소서. 내 모든 삶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으로 인해 세상이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한태완 목사(http://www.je333.com)

22. 편견

사람들은 남을 너무 쉽게 평가한다. 사소한 것을 보고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섣불리 사람을 판단할 뿐만 아니라 편견을 갖곤 한다. 처음 가졌던 생각이 시간이 지나면서 판단의 오류로 느낄 때가 많다.
깊은 산 속에서 나무의 수를 헤아린다 해도 결코 그 수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다.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바라볼 때 나무가 몇 그루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조급한 판단으로 소중한 인연이 될 사람을 잃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우리의 교만이 편견을 부른다. 내가 무언가 잘 안다고 생각할 때, 내가 무언가 해냈다고 여길 때, 틀림없이 교만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다 잘못되었다는 편견에 사로잡힌다.




편견은 커다란 부분을 보지 못하게 하는 색안경과 같다. 편견을 버리기 위해서는 사소한 부분까지 깊이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을 길러야 한다.
/김학중 목사(새안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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