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제3권-2 한경직 목사 설교 예화 31-60

by 【고동엽】 2022. 3. 2.
[처음 목차 돌아가기]
 
 

31.코리언 타임


중요한 것 한 가지만 더 얘기하겠습니다. 시간을 절약하고자 하면 시간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시간을 엄수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내 시간을 허비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시간을 안 지키면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허비하게 만듭니다. 결혼식 때 신부 한 사람 늦어짐으로 인해서 손님 수백 명이 많은 시간을 허비합니다. 흔히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의 시간을 허비합니다. 가을이라 결혼식이 점점 많아지겠는데 결혼할 양반들 분명히 들어 두시기 바랍니다. 시간은 꼭 지켜야 합니다. 무슨 집회나 그렇습니다. 시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해방 이후에 여러 가지 새 말이 생겼는데 아주 제가 불쾌하게 생각하는 말은 '코리언 타임'이라는 말입니다.
32.문명인의 척도
제가 아르헨티나에서 목사들과 앉아서 이런 얘기를 하니까 그곳의 어떤 목사 한 분이 "여보 그거 우리 나라보다 좀 낫수다. 우리 나라에서는 흔히 한 시간 후에야 모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니 아르헨티나도 후진국임에 틀림없습니다. 후진국 사람들이 그런 것입니다. 시간을 지키는 것은 문명한 사람의 표입니다. 교양의 척도입니다. 근면의 척도가 되기도 합니다. 선한 시간의 청지기가 되려고 할 것이면 시간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신앙생활과 시간>에서

 

 
 



33.김용기 장로의 막사이사이상
 
여러분, 신문지상에서 다 보신 줄 압니다. 우리 한국에서 대학 졸업한 일도 없는 단순히 예수 잘 믿는 장로 한 분이 이번에 필리핀에 가서 1966년도 막사이사이상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누구인지 다 아십니다. 가나안 농작 주인 김 용기 장로올시다. 그 장로님이 며칠 전에 우리 교회에 들려서, 갔다 온 얘기를 제가 자세히 들었습니다. 아주 국빈의 대우를 받고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그 상을 받고 영광스럽게 돌아왔습니다. 이 장로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저는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34.김용기 장로의 달란트 사용


이 장로님은 받은 달란트를 잘 사용했습니다. 방금 말한 것 같이 교육 방면으로는 달란트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좋은 머리를 받았습니다. 좋은 건강을 받았습니다. 믿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이 장로님은 꼭 농촌을 위해서 봉사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모범을 보이기 위해 불모의 땅을 사서 가족들이 들어 붙어서 개간을 했습니다. 거기다 고구마를 심고 포도를 심고 양을 치고 염소를 기르고 버섯을 기르고 친히 농사하며 삽니다. 유능하게 삽니다. 이 농사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후원이 전혀 없이 순전히 자기 혼자서 아들을 데리고 농군학교를 세웠습니다. 여러 농촌의 청년들을 두 주간 혹 세 주간 동안 에려다 함께 먹고 자면서 농사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예수 믿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기회 있는 대로 자기 아들딸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가족 전도도 하였습니다. 아들 가운데는 나팔 부는 아들도 있고 음악 하는 아들이 있어 동네를 순회하면서 전도를 하였습니다. 문자 그대로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한 손에는 호미를 들고 "우리 한국 농민의 살길은 여기 있다"고 외쳤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가 전도하는 말은 간단히 세 말이라고 합니다. 첫째는 우리는 무엇보다 부지런히 일합시다. 이것이 성경의 교훈입니다. 성경에 보니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 하였습니다. 다음에 우리는 피차에 봉사를 하자고 말합니다. 선생이 제자의 발을 씻어 준 분은 예수 님밖에 없으니 우리가 예수 님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희생하자고 합니다. 만민의 죄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한 분은 예수 님밖에 없다고 하며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바로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사용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에 예수를 믿는 장로들과 집사들과 모든 교인들이 이와 같이 받은 바 달란트를 온전히 주를 위해서 사용하면 우리 삼천만이 복음 화되는 문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고, 또한 우리 나라가 빨리 건설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받은 달란트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35.하나님의 꽃과 악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데 우리 하나 하나는 거기 속한 한 소유입니다. 소유 하나 하나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소유 하나가 그 책임을 못하면 그만큼 몸에 병이 듭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내가 내 책임을 하는가 그렇지 못한가 스스로 생각해 보세요. 교회는 백화가 만발한 봄 동산과 마찬가지인데 여러분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꽃입니다. 여러분 하나 하나가 아름다움과 향기를 뿜을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야 교회 전체가 주님께서 와서 계실 만한 아름다운 꽃동산이 됩니다.
교회는 여러 악기로 조직된 악대와 같습니다. 여러분 하나 하나가 악기입니다. 여러분이 소리를 내야 위대한 음악을 창작해서 사람과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일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 하나는 작은 촛불입니다. 이 촛불을 다 켜면 온 삼천리 강산을 비출 수 있습니다.
  누구나 기도할 수는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서 아무래도 내가 무엇을 할지 생각나지 아니하면 여러분은 누구나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세요. 기도가 구름과 같이 하늘로 많이 올라가면 소나기와 같이 은혜의 비가 온 교회와 우리 땅에 내리는 것입니다. 받은 은사를 묻어 두지 맙시다. 묻어 두는 것은 큰 죄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누구나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과 받은 달란트>에서

 

 
 




36.이비커스의 까마귀 떼
 
옛날 헬라 때부터 내려오는 유명한 '이비커스의 까마귀 때' 라고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옛날 아덴에 이비커스라 하는 저명한 시인이 있었습니다. 또 재산도 상당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이분이 아덴에서 고린도로 가는 길에 고린도에 아주 가까운 산악 지대를 지나가는 험한 길에 들어섰습니다. 거기서 강도의 무리를 만났습니다. 재산을 다 빼앗기고 칼에 맞아서 거의 숨이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기가 막히는 사정입니다. 그 때 마침 까마귀 떼가 자기 위를 돌고 있습니다. 이 때 죽어 가는 이비커스는 죽을힘을 다해서 까마귀에게 호소를 하였다고 합니다. "너 까마귀들아 ! 내 사정을 너희들은 보지 않느냐? 너희들이라고 원수를 갚아다오." 그리고는 숨졌습니다.
그 후에 오랫동안 고린도 당국은 도둑놈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몇 달 후에 고린도 노천 극장에 큰 연극단이 와서 연극을 합니다. 그 연극을 구경하려고 사람이 수만 명 모였습니다. 바깥에서 연극을 합니다.
한창 연극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 이상하게 까마귀 떼가 와서 그 위를 빙빙 돌았다고 합니다. 아, 그러니까 어떤 술 취한 사람이 큰소리로 부르짖는 말이, "여기 이비커스의 까마귀가 왔구나" 했습니다. 그 사람을 잡아 조사해 보니 도둑놈 가운데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도둑을 다 일망타진하였다는 것입니다.

 

 
 




37.화류병과 과거


우리 한국에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 가운데 낮에 하는 말은 새가 듣고 밤에 하는 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죄가 죄 지은 사람을 반드시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 진리에 대해서는 제가 일찍이 약 40년 전에 학생 시대에 당한 경험을 통해서 분명히 배워 내 일생에 늘 경계가 되는 사실담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에 한국에 있는 어떤 친구를 미국에 데려오기 위해서 어떤 대학과 교섭하여 뜻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미국 가기가 비교적 쉽지만 그 때는 아주 어려운 때입니다. 여러 가지로 애를 써서 배를 타고 상항(桑港)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쁜 소식이 있기를 프린스턴에서 학수고대하였습니다. 그러나 내린 지 한 달이 되도록 편지가 없습니다. 얼마 후에 마음이 초조한 가운데 편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상항에서 그 친구가 부친 편지인데 뜯어보니 그 곳까지는 배로 잘 왔다고 합니다.
배에서 부두에 내리는 높은 사다리가 있는데 사다리를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서 발목을 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이민 당국의 말이 당신 발이 상했으니 여기서 며칠 치료하다 가라고 해서 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일주일이 되어도 치료가 안됩니다. 열흘이 되니 더 붓기만 합니다. 그러니까 그곳 의사가 당신의 병은 단순한 병이 아니니 혈액을 검사해야겠고. 그래서 검사를 했다고 합니다. 혈액 검사를 하니 아, 이게 웬 일입니까. 그 혈액 속에서 화류병균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민 당국은 도로 내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이 친구가 자기 사정을 나에게 솔직히 고백해 보냈습니다. "내가 이런 형편에 지금까지 형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이제는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형도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몇 해 전에 북경에 가서 일년 있다가 왔지요. 내가 그 때에 악한 동무의 유혹을 받아서 안 갈 데를 갔던 일이 꼭 한 번 있습니다. 그랬는데 그 죄의 값을 이 때 받게될 줄 미처 몰랐습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납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이것을 가리려고 합니다. 안 지은 듯이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죄는 죄인을 찾아냅니다. 형벌을 받고야 맙니다. 그러므로 죄가 무섭습니다. 그러므로 죄 짖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죄는 이렇게 현실 외부에서 찾아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속에서도 또한 찾아냈습니다.

 

 
 




38 예수 님과 가룟 유다의 모델


유명한 레오나드 다빈치의 성만찬의 성화가 있는 가정이 많은 줄 압니다. 이 레오나드 다빈치가 이 성화를 그릴 때에 일생의 정력을 들여 여러 해에 걸쳐서 그렸다고 합니다. 우선 구상을 한 다음에 예수 님의 얼굴을 그려야겠는데 예수 님의 사진이 없으니 상상으로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 님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을까 해서 예수 님의 모델을 찾기 위하여 갖은 애를 썼다고 합니다. 여러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러다가 밀란교회에 가서 예배를 보면서 성가대의 노래를 듣는데 성가대원 중에 얼굴이 잘 생기고 인자하고 긍휼(矜恤)이 풍부한 사람의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예수 님 얼굴은 저 분 얼굴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고 그를 데려다 모델을 삼아 예수 님의 얼굴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 등 12제자도 다 돌아다니면서 모델을 구해서 그렸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요. 이렇게 하는 동안에 여러 해가 걸렸다고 합니다. 마지막에 가룟 유다의 얼굴 하나가 남았다고 합니다. 유다의 얼굴을 어디서 찾을까 하고는 서울로 말하면 종로 뒷거리의 사창가 같은 나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찾아다니고 또 경찰서, 유치장, 교도소 같은 곳도 찾아다니면서 애쓰다가 마침내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의 얼굴은 저 나쁜 사람과 같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가서 간청을 했답니다. 그러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하다 보니 몇 해 전에 예수 님의 얼굴 모델이 되었던 사람이었답니다. 알아보니 몇 해 전에 성전에서 거룩한 노래를 무르던 그 사람이 후에 시험에 빠지고 죄를 지어서 그 얼굴까지 변했습니다. 죄는 얼굴에서도 죄 값을 찾아냅니다.

 

 
 




39.해적 두목의 머리


옛날 로마 시대 어거스트 대제 때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그 때에 아주 포악한 해적의 두목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주 악한 일을 많이 한 나쁜 사람이올시다. 그러나 이 놈을 잡을래 야 잡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 황제는 현상을 걸었습니다. 누구든 그의 머리를 잘라 오는 사람은 많은 상을 주고 높은 벼슬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잡아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 번은 어거스트 대제가 촌으로 순시를 하는데 어떤 건장한 사람이 왕 앞에 나와서 절을 하면서 하는 말이 "제가 해적 두목의 머리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니 제게 어떤 상을 주시겠습니까?" 이 황제가 깜짝 놀라면서, "네가 과연 그의 머리를 가져왔느냐?" 물었습니다. 그는 자기 무리를 가리키며 "이 놈이올시다"라고 하면서 왕 앞에 꿇어 엎드려서 "이 몸이 많은 죄를 지었는데, 이 죄를 한번만 용서해 주시면 이제 대왕의 충성된 종이 되겠습니다."라고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그러니까 어거스트 대제는 그 죄를 용서해 주고 해군 장교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어떻게 충성을 다하는지 그 다음에 로마 제국의 해군 사령관이 되었다고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올시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입니다. 이 은사를 받는 길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내 구주로 믿고 온전히 내 생활을 바꾸는 것입니다.<죄의 수사력>에서

 

 
 


 
40.칼빈과 윌리암 화렐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존 칼빈의 전기를 읽어보면 이런 일화가 있지 않습니까. 그이가 청년 신학자로서 그이가 청년 신학자로서 스물 일곱 살에 유명한 《기독교 강요》를 저술한 후에 그 이름이 온 유럽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무슨 볼일이 있어서 이탈리아에 잠깐 갔었습니다. 갔다가 곧 돌아오려 했는데 그곳에 전쟁이 일어나서 돌아올 수가 없어서 부득이 지금 스위스 지방으로 돌아 자기 고향으로 오려고 제네바에 들려서 하룻밤 자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하던 월리암 화렐이라고 하는 유명한 종교개혁 지도자가 젊은 청년 칼빈을 여관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 지방도 종교개혁을 시작했는데 일군이 없으니 당신 같은 젊은이가 좀 도와주어야겠다고 했습니다. 칼빈은 그 말을 듣고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는 아주 고정(孤貞)한 사람이었습니다. 계획적이며 조직적 인 사람이었습니다. 칼빈은 모든 일에 계획을 다 세우고 사는 사람이므로 다른 할 일이 있는데도 여기에 있으라고 하니 허락할 이치가 만무하였습니다. "나는 있을 수 없습니다. 가야만 합니다. " 그랬으나 고 월리암 화렐은 계속 귄면합니다. 칼빈은 또 거절합니다. 마지막에는 이 화렐이 성이 났습니다. "나 보기에는 당신이 여기에 잠깐 들린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장차 이것은 당신이 여기서 일하라고 하는 것이 분명한데 당신이 만약 그냥 간다고 하면 하나님 이 당신을 저주할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칼빈은 눈이 둥그래졌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서 그 다음에는 거절을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게까지 생각하시면 제가 여기 좀 머무르면서 선생님을 돕겠습니다." 그렇게 되어 그가 제네바에 머물렀습니다. 그날 저녁에 있었던 일로 말미암아 그가 일생토록 제네바에 머물러 있게 된 것입니다. 또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을는지 미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어떤 때에는 하나님께서 내 뜻에 맞지 않은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도 공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를 맺습니다.<열매 맺는 생활의 비결>에서

 

 
 




41. 미련한 자
 
지혜라고 하는 말, 혹 지식이라고 하는 말은 성경 가운데 어떤 때는 같은 뜻으로 사용된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두 가지 말은 뜻이 좀 다릅니다. 지식이라고 하는 말은 아는 것의 총칭을 가리킨 말이고, 지혜라고 하는 말은 아는 지식을 바로 쓸 수 있는 지력(智力)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지식이 많다고 해서 지혜가 많은 것은 아닙니다. 지식이 많아서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라는 말을 듣는 이들 가운데도 미련한 사람들을 우리가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의사는 공부를 많이 해서 박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몇 해 후에 그는 아편 맞기를 시작하여 아편쟁이가 되었습니다. 지식은 많지마는 미련한 박사올시다. 보통 사람이 늙으면 경험이 쌓여서 지혜가 늘어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다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다 아는 대로 서양 속담 가운데 "미련한 자 가운데도 가장 절망적인 미련쟁이는 늙은 미련쟁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42.지식 팽창의 시대


옛날부터 지, 덕, 체의 세 가지 방면을 골고루 주는 것이 원만한 교육으로 생각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특별히 지육(智育)에 중점을 두어서 과학 교육에 치중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는 지식이 아주 발전된 시대요, 또한 지식의 팽창 시대라고 말하는 이도 있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 인간은 우주에 대한 지식이 아주 크게 발전되었습니다.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줄 알게 되었고, 우주 공간을 향해서 우주선을 발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우리는 달의 표면이 어떠한지 사진을 찍어다가 직접 볼 수 있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옛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흔히 달 위에 계수나무가 있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토끼가 있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보는 바와 같이 달 위에는 나무란 하나도 없습니다. 거기에는 물도 없고, 공기도 없기 때문입니다. 무중력 상태에서 사람이 공간을 걸어다니는 체험도 얻어 봅니다. 아마 오래지 않아서 달나라에 가서 금과 은을 캐다가 부자가 될 사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 자체에 대한 지식도 굉장히 팽창해져 갑니다. 오랫동안 깊은 바다 속은 인간에게 있어서 알 수 없는 신비의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바다 속에 깊이 들어가서 집을 짓고 여러 달 있으면서 바다 속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혹은 지층을 연구하고 화석을 연구해서 인간이 세상에 나기 전에 지구의 역사가 어떠했다는 것을 찾아내는 지질학이란 과학도 발전되어 온 것입니다.
또 인간의 기록에 빠진 인간의 역사를 고고학이란 학문을 통하여 더욱 탐구하게 되어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어느 때보다도 이 지구 자체에 대한 지식이 발전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 지구 위에 있는 여러 가지 생물에 대한 지식도 그러합니다. 현미경이 발명됨으로 인하여 전에는 전혀 알지도 못하던 새로운 미균(黴菌)의 세계가 사람의 눈에 분명히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의학의 발전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인간은 인간 자체에 대해서도 연구를 거듭합니다. 생리학으로 인간을 연구합니다. 인간의 육체를 연구합니다. 그러나 그 방면만 연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심리의 깊은 곳을 더듬어 내는 심리학도 점점 발전 중에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물질 자체를 분석해서 그 속을 연구해 보는, 우리가 어렸을 때는 들어보지도 못한 원자 과학이 발전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 어느 면에서 그것이 사실인 줄 압니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이와 같이 많이 획득한 지식을 인간이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20세기는 분명히 지식의 세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43.내가 문안에 있는 지 문 밖에 있는지? 


영국의 유명한 과학자 가운데 화라데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어렸을 때의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에 신문 배달을 하였습니다. 어떤 부잣집에 신물을 돌리러 갔는데 큰 철망 문이 있어서 신물을 멀리 던져 넣느라고 그 살창 문으로 머리를 쑥 내밀었습니다. 그 때 언뜻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내가 머리는 문안에 있고 몸은 문 밖에 있으니 내가 문안에 있는 것인가, 문 밖에 있는 것인가"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 그 생각으로 한참 있다가 다른 것은 잊어버렸던 모양입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와서 대문을 왈칵 열었습니다. 목이 대문에 걸려 하마터면 부러질 뻔하였습니다.
  그가 후에 하는 말이 "내가 문안에 있는지 문 밖에 있는지 몰랐지만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람이란 안에 다 들어가 있든지 밖에 온전히 나와 있든지 해야지 절반은 들어가고, 절반은 안 들어가는 것은 가장 미련한 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미안한 말이지만 여러분 가운데 교회에 나오기는 하지마는 머리는 교회에 있고 몸은 다른 곳에 있는 분은 없습니까? 그런 분이 한 분이라도 있으면 그 분은 매우 불행한 사람이올시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시려면 온전히 영접하세요. 하늘 문이 열렸을 때에 온전히 들어가세요. 그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인간이 다 이 지혜를 배워서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 살게 되면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됩니다. 이 교육주일에 참 지혜를 아울러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혜와 지식>에서

 

 
 




44.자연계를 통한 위로
 
여러분, 고요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자연계 가운데도 우리 심령을 가진 인간이 위로를 받게 하시려고 많은 준비를 하셨습니다. 아름다운 아침해와 저녁 노을, 문자 그대로 천지(天地)만홍(萬紅)의 가을의 단풍, 봄 동산의 뭇 새들의 노래 소리, 가을 저녁에 요란히 들리는 뭇 벌레들의 자연의 음악, 온 땅을 은세계로 화하는 겨울 흰 눈, 높이 솟은 산악과 기암(奇巖)괴봉(怪峰)들,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들, 이 모든 것은 우리 인간의 심령을 위로하기 위해서 지으신 것입니다. 도시 사람들은 이 거칠은 도시 생활에서 집만 보고 상점만 보고 살게 되니 마음이 거칠어지고 마음이 물질만 생각하게 되고 그 이상의 것은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우리가 도회에 살수록 이따금 하늘을 보아야 하고, 달빛을 우러러보아야 하고, 캄캄한 밤의 별빛을 좀 바라볼 줄 알아야 하고 대자연과 접촉을 해야 우리의 심령이 원만히 장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한 심령이 대자연의 품에 안길 때에 알지 못하는 중에 회복되는 것입니다. 자연계를 통해서 준비하여 주신 하나님의 위로를 잊지 마십시다.

 

 
 




45.힘을 주시는 위로


하나님의 위로는 말만의 위로가 아닙니다. 힘을 주십니다.
영어에 위로라는 말을 컴포트(comfort)라 쓰는데, 이 말은 힘이 같이 한다는 뜻입니다. 실상 이것이 하나님의 위로올시다.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위로가 있는데 우리가 어찌하여 항상 근심과 걱정에 싸여서 살며 어찌해서 낙망하며 어찌해서 자포자기하는 것입니까? 이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 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어떤 근심, 어떤 염려, 어떤 무거운 짐이 있든지 주님 앞에 나오는 사람은 그 심령에 새로움을 얻고, 위로를 받고, 힘을 얻고, 그 심령이 안정과 평화와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내 백성을 위로하라>에서

 

 
 




46.폴링 목사의 기상 고백
 
작년엔 가 재작년에 세상을 떠나셨지마는 오랫동안 세계 면려회연합회 회장으로 계시던 프랜 폴링 박사는 언제나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이 말씀을 세 번 외웠다고  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내가 믿나이다. 오늘도 믿음으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 여러분도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외우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사세요. 믿음으로 이 죄 많고 험악한 세상을 걸어갑시다. 하인을 고쳐달라는 백부장의 "내가 믿나이다"하는 신앙의 고백을 우리도 다 해야겠습니다. 여러분, 다 그렇게 하십니까?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시옵소서." 방금 믿나이다 하고서는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얼른 보면 모순되는 것 같지마는 사람은 이런 때가 많은 줄 압니다. 우리도 다 믿나이다 하고 신앙을 고백하기는 하나 실상 생각하면 믿음 없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줄 압니다.

 

 
 




47.교회 안의 무신론자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신론자들은 교회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 안에도 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마는 그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 실상은 돈을 믿고 실상은 지식을 믿고 실상은 자기 재주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자들이야말로 실제적으로 무신론자들이라는 비난입니다. 사실 우리가 사도신경을 그대로 믿습니까? 그대로 믿으면 아무래도 행동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행함이 없으면 그 믿음은 어떠한 믿음이라고 하셨습니까? 죽은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죽은 믿음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48.소매치기 당한 믿음?


전에 어떤 시골 학생이 어렵게 서울에 와서 대학 시험을 치고, 자기 집에 내려가서 쌀과 곡식을 다 팔아서 등록금을 겨우 마련하여 학교로 갔습니다. 등록금을 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분명히 돈을 가지고 왔는데 없어졌습니다. 아마 버스 안이나 전차 안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모양입니다. 여러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믿음을 소매치기 당한 사람은 없습니까?

 

 
 




49.믿음 표


이런 얘기가 있어요. 어떤 교우가 한번은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새 예루살렘성에 가 보게 되었습니다. 높은 시온산 꼭대기는 새 예루살렘 성을 잘 지었는데 금강석과 홍보석과 녹보석과 가지각색 보석으로 장식한 성이었습니다. "내가 정말 새 예루살렘성에 가까이 왔구나." 한 걸음 두 걸은 점점 올라가 보니 큰문이 있는데 계시록에 기록한 대로 큰 진주 하나로 된 문이었습니다. "야, 내가 새 예루살렘성에 왔구나" 생각하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두드리자마자 문이 공 열리더니 베드로가 척 내다봅니다. "저는 아무 교회에서 온 아무개올시다." 그러니 베드로가 묻습니다. "이 성에 들어오려면 믿음 표가 있어야 하는데, 믿음 표 가지고 왔느냐?" 이 분이 "네, 가져왔습니다"하며 안주머니를 만져 보니 믿음 표가 없어졌단 말입니다. 옆 주머니를 보니 거기도 없단 말입니다. 아무리 뒤져도 믿음 표는 없었습니다."있는 줄 알았는데 없어졌습니다." 그러자 장사꾼이었던 이 분은 사정을 해보았습니다. "나에게는 믿음 표가 없지만 아무 교회에 십 년 이상을 다니고 했는데 좀 들어갈 수 없습니까?" 베드로가 하는 말이 "그것은 안 되네. 아무리 오래 다녀야 쓸데 있나 믿음 표가 있어야지." "그런 게 아니올시다. 사실은 제가 그 교회에서 장로 일을 십여 년이나 봤습니다. 그래도 좀 들어갈 수 없습니까?" 베드로 사도가 하는 말이 "아니, 장로 심여 년이나 믿음 없이 했으면 말썽 꾸러기였겠구먼, 그게 무슨 쓸데가 있어"하고는 문을 닫고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사도 베드로는 성질이 급한 분입니다. 문을 꽝 닫는 소리에 깨 보니 꿈이더랍니다. 그것이 꿈이었기에 다행이지 꿈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할 뻔했습니까? <내가 믿나이다>에서

 

 
 




50.성령을 근심되게 하지 말라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는 것이 쉬운 줄 압니다. 우리는 지금 남한에 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법적으로 말하면 남북한 전 한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올시다. 그러므로 남북한 전역에 대한 정치권이 우리 정부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법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유엔에서 그렇게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한국 정부의 통치권이 남한에만 국한되어 있습니다. 왜? 삼팔선이 있으니까요. 이북은 우리 남한 정부의 원수 세력이 강제로 점령하고 있습니다. 합법적인 우리 한국 정부의 통치권이 북한에까지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는 통일의 날이 속히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계십니다. 우리 믿는 마음속에 계십니다. 누구나 믿음이 있는 이는 그 마음에 성령이 계십니다. 그러나 성령이 다스리는 권세가 우리 생활 전역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왜? 우리 마음속에도 삼팔선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원수의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볼 것이면 "성령을 근심되게 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령을 근심되게 하지 말라는 뜻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 마음속에 계시는 성경은 우리 생활의 전역을 주장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일부분만 주관하고 전역을 주관할 수가 없습니다,. 내 속에 있는 욕심, 정욕, 허영심, 고집, 향락 등이 성령의 지도를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에서

 

 
 




51.건설하는 한국
 
우리 한국에서도 역시 싸움은 계속됩니다. 삼팔선에서도 계속됩니다. 또 해안선에서도 계속됩니다. 멀리 월남에 가서 싸우는 우리 장병들이 있지마는 전선은 같은 전선입니다. 이처럼 우리 역시 내적인 건설을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합니다. 아마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개발과 건설에 바쁜 모습은 우리 한국에 와야 볼 줄로 생각을 합니다.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사람들이 흔히 한국에 와서 보고 일하는 서울 사람들이라고, 건설하는 한국이라고, 이런 인상을 가지고 간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한편에는 방비, 한편에는 건설하는 중에 있습니다. 여의도 개발을 비롯해서 각 곳 공장도 건설할 수밖에 없고 고속도로도 만들 수밖에 없고 건물도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방비와 건설을 우리는 국가적으로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좀 깊이 생각하면 세상 나라뿐이 아닙니다. 크게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도 이 두 가지 권면이 있습니다. 한편에 방비가 있어야 합니다. 다른 편에 건설이 있어야 합니다. 작게는 내 개인의 건설 혹은 내 가정의 기독교 건설도 역시 이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한 편에 방비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는 건설의 면이 반드시 있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두 가지 면을 항상 힘쓰기 위한 권면을 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52.평화 봉사단의 글


전에 신문에 보니까 미국에서 한국에 나와 일하는 젊은 사람들로 구성된 평화봉사단 피스코가 있는데, 그 봉사단원 한 사람이 경마장에 가서 경마 하는 것을 구경하고서 글을 써서 신문에 냈습니다. 내용은 이러합니다. 한국은 경마장의 경기를 즐기는 부유층 계급이 상당히 많지만 이 부유층 계급들이 아직도 빈곤 가운데 허덕이는 대중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려는 생각이 보이지 않는 것은 참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한국도 경제가 점점 발전됨에 따라 외국과 같이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고 하는 말이 들립니다.
  물론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그 일 자체가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요컨대 이만큼 특별한 부유층에 있는 이들이 굶주리고 헐벗고 심지어 집단 자살을 할 수밖에 없는 이런 동포들에 대해서 얼마나 같이 살고자 하는 동포애를 발휘합니까?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53.최대의 행복은 일


서양 속담에 "생이라고 하는 것은 만드는 가운에 있다"하는 말이 있습니다. 최대의 행복은 일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청년들은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일할 것이 많은 나라에 났으니까. 황폐한 강산이 다 일군을 부르고 있습니다. 여의도 개발을 위해서 윤중제(輪中堤)를 백일만에 준공했다는 말을 듣고 감격스레 생각했습니다. 여의도 개발뿐이 아닙니다. 한강 개발뿐이 아닙니다. 또한 낙동강 개발뿐이 아닙니다. 전 삼천리 강산이 개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군을 부릅니다. 일하는 이에게 최대 행복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일하는 이에게 성공이 있습니다. 일하는 이에게는 이 다음이 남는 것이 있습니다.

 

 
 




54.카이로의 금자탑


제가 오래 전에 애굽 카이로에 들려서 금자탑 앞에 앉아서 한두 시간 묵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천 5백 년 전에 금자탑이 이루어졌습니다. 4천 5백 년 전을 말하면 그 때는 세계 대부분 인류들이 아직도 굴속에 살던 땐데, 그런데 이들이 벌써 그렇게 웅장한 꿈을 꾸었고 꿈만 꾼 것이 아니고 일했습니다. 그래서 만고 불후의 금자탑을 지금까지 남겨 놓은 것입니다.
일해야 남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 한번 이 세상에 왔다 가는 것뿐인데 일하는 것이 남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예루살렘 성을 쌓는 이들입니다. 내 인격의 성, 내 기독교 가정의 성, 하나님 나라 성, 대한민국의 성 말입니다. 또 무엇이 필요합니까? 참 사랑이 필요합니다. 나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랑, 믿음이 필요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방비와 건설을 겸해서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방비와 건설>에서

 

 
 




55.그리스도의 열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모인 집회에 가 보면 어떤 사람은 성을 내고 큰 소리를 지르며 야단을 하고 회의를 소란케 합니다. 아직까지 그리스도의 열매가 그 성격에 맺히지 못했습니다. 성격화되지를 못했습니다.
제가 옛날 신의주 제2교회에서 처음으로 교회 일을 볼 때에 어떤 분이 나에게 여러 제직 들을 소개하면서, 은근히 나이 많은 어느 집사 님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합디다. "그 집사 님은 열심 도 많고 대단히 좋은 분인데 한 가지 조심할 것은 이따금 메어 때리는 성질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그런 성질을 아직 버리지 못한 분이 없습니까? 성격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둘째는 생활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특색은 성결, 정직, 근면, 공평, 화목, 책임감, 이런 것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야 빛이  되고 그래야 소금이 됩니다.<피택자와 그 책임>에서

 

 
 




56.팔레이의 시계 이야기
 
영국의 팔레이라는 사람의 유명한 시계에 대한 얘기를 아시지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어떤 분이 들에 산보를 나가다가 발에 부딪히는 것이 있어서 주워 보니 회중시계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것을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그 사람이 그것을 보고  하는 말이 "이걸 누가 만들었을까요?"라고 했습니다. 시계와 같이 질서와 고안이 있는 물건을 보고는 이것은 누가 만들었나 하고 만든 이가 있음을 즉각적으로 알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대우주는 하나님의 큰 시계입니다. 다 돌아갑니다. 유성이 항성을 따라 돌아갑니다. 이 큰 시계를 만든 이가 없겠습니까? 그래서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이렇게 큰 시계를 만든 이는 필연 전능하신 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57.인간 속의 종교적 본능


미국에 가 있을 때에 서커스 구경을 가끔 갔었는데 가보면, 짐승들이 여러 가지 재주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짐승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예배당 지었다는 얘기를 들어보았습니까? 아마 못 들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이란 아무리 야만인이라고 해도 아무리 미개한 아프리카의 어디나, 남양군도의 어디라고 해도 자기 있을 집만 짓지 않고 신전을 반드시 지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입니다. 왜 그런 일을 합니까? 인간이란 그 속에 영혼이 있는 까닭입니다. 이 사실은 인간의 종교적 본능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사람도 급할 때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전에 안 믿는 이와 만나서 한 번 얘기할 때 그가 하는 말,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밤에 몰래 삼팔선을 넘어 올 때 하나님을 찾았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의 속에는 종교성이 있습니다. 종교적 본능이 있습니다.

 

 
 




58.인간 최고의 본능


우리 인간에게는 종교적 본능 외에도 여러 가지 본능이 있지요. 본능이 있으면 그 본능을 만족시킬 만한 대상이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는 베고프면 먹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어린애가 젖을 빨고자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젖꼭지가 있습니다. 먹을 것이 있습니다. 우리 사람은 다 사교적 본능이 있습니다. 혼자 살기를 싫어해요. 그래서 여러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친구들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점점 자라서 17. 8세가 되면 없던 본능이 나타납니다. 성적 본능이 나타납니다. 그 성적 본능도 만족시킬 만한 이성이 있는 것입니다. 남성과 여성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본능이 있으면 그 본능을 만족시킬만한 대상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에게 이 종교적 본능이 있는데 이 본능을 만족시킬 만한 대상은 없겠습니까? 그럴 리는 없습니다.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그 대상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먼저 계시니까 우리 인간에게 이런 본능이 생긴 것입니다. 햇빛이 위에 있으니 풀과 나무가  위를 향하여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므로 이런 본능이 생긴 것입니다. 인간의 심령 속에 영적 기갈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신 까닭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에서

 

 
 




59.불 신앙의 시대
 
감리교를 처음에 창립한 요한 웨슬레가 젊어서 아메리카에 전도를 갔습니다. 그러나 성공을 별로 못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대서양에 큰 풍랑이 일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그런데 같이 탄 모라비아 선교사들을 가만히 보니 그들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 같은 풍랑을 만났지만 모라비아 선교사들의 믿음은 큰 믿음이었습니다.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또 이 사회가 큰 믿음을 요구합니다. 이 시대를 과한 시대라고 합니다. 원자시대라고도 합니다. 우주 시대라고도 합니다. 분명히 아는 것은 이 시대는 신앙의 시대는 아닙니다. 불 신앙의 시대입니다. 동시에 아낙 자손 같은 의의 원수들이 많습니다. 큰 원수가 많습니다. 무신론이 팽창한 시대입니다. 유물론이 팽창한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죽었다는 사신론(死神論)이 대두하는 시대입니다. 세속주의, 허무주의의 시대요 성의 혁명 시대요, 상황윤리를 말하면서 죄를 죄가 아니라고 하는 시대입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을 방패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때에 큰 방패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악마의 모든 화근을 소멸할 수 있습니다. 방패가 커야 모든 시험을 이기고 이런 시대에서 승리 적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큰 믿음이 있어야 큰 축복도 받고 또 주님을 위하여 큰 일도 할 수가 있습니다.

 

 
 




60.큰 믿음


믿음의 그릇이 커야 생명수를 듬뿍 마십니다. 축복을 풍성히 받습니다. 히브리 11장을 읽어보면 아벨과 에녹을 비롯하여 신앙의 용사들과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한 신앙의 영웅들의 생활과 그 위대한 업적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들의 생활과 업적을 기록해 내려가다가 33-34절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 사람의 진을 쳐서 물리치기도 하며."
이들은 어떻게 이렇게 큰 일을 하였습니까? 그들의 큰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큰 믿음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누가복음 17장 5절에는 제자들이 예수 님께 나와서 "우리의 믿음을 더하소서" 하고 간절히 부탁한 이야기를 읽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도 이런 기도가 필요할 줄 압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떠하신 하나님이신가,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올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크십니다. 그 지혜도 그 능력도 크십니다. 그래서 창세기 17장 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기를 나타내실 때에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친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신경의 첫 신조 그대로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여러분, 어떠하신 하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전능하다는 것은 무엇이나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소망 없는 자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하신 예수 님께서는 계속해서 "그러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능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와 같은 탐관오리도 하나님은 구원할 수 있습니다. 세리와 같은 죄인들도 하나님은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이로서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내가 약하고, 아무리 내가 죄가 많고, 아무리 전에 실수가 많았다고 하지만 하나님 앞에 돌아와서 온전히 회개하고 내 몸을 바치면 하나님은 죄를 사해 주시고 새 사람을 만드십니다. 새로운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올시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