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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프리즘 ■/예화

제3권-5 한경직 목사 설교 예화 121-150

by 고동엽. 2022. 3. 2.
[처음 목차 돌아가기]
 
 

121우리 엄마는 얌체야


제가 전에 평양에 있을 때 보니 어떤 젊은 부부가 모란봉에 산보 가기 위해 아이들을 다 재워놓고 문은 밖으로 잠그고 갔습니다. 한참 있다가 아이들이 깨서는 아무도 업자 계속 웁니다. 종일 울어서 기진맥진해진 다음에야 부모가 돌아왔습니다. 그러니 그 아이들이 이 다음에 무슨 기억이 남겠습니까?
제가 들으니 어떤 애가 자기 동무에게 얘기하면서 이런 말을 하더라고 합니다. "우리 엄마는 얌체야. 얼른 갔다가 온다고 하더니 종일 안 와." 그런 어머니가 여기에는 없습니까? 그 아이의 기억에 무엇이 남겠습니까? 어머니는 나를 속인다. 그 영향이 이 어린이의 앞날에 어떻게 미치겠습니까?
여러분 어떻든지 아이들과 놀러 도 같이 가고 예배당 올 때도 같이 다니세요. 그 아이들 생각에나, 후에 남는 기억에 "참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를 귀여워했지. 참 나를 사랑했지, 내 유년시절의 생활은 참 행복했지."하는 기억이 남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유산을 남겨 주면 이 유산이 자녀들과 일생을 같이 해서 자녀들이 축복 받습니다.

 

 
 




122.좋은 습관의 유산


좋은 습관의 유산을 남겨 주라고 했습니다.
품성과 인격조성에 있어서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은 심리학자의 말을 빌릴 것 없이 우리가 다 상식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각은 심어서 행동을 거두고 행동은 심어서 습관을 거두고 습관은 심어서 품격을 거두고 품격은 심어서 일생의 운명을 거둔다. 꼭 그렇습니다. 마음에 생각하는 것이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행동을 반복하면 습관이 됩니다. 습관이 쌓여서 품격이 됩니다. 결국 품격이 그 사람 일생의 운명을 주장합니다. 그만큼 습관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습관은 어렸을 적부터 한 가지 두 가지 하는 행동이 모여서 습관이 되고 나중에 품격이 됩니다. 그러니 부모 된 사람은 어렸을 적부터 어린이아들에게 좋은 습관을 양성해 줄 수 있도록 각별히 힘을 써야 합니다.

 

 
 




123.부쉬넬의 《기독교 교양론》


미국에 부쉬넬이라고 하는 유명한 목사가 있는데 그 분이 《기독교 교양론》이라고 하는 유명한 책을 썼습니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품격 조성에 있어서 아이들이 세 살이 나면 벌써 부모는 할 수 있는 일의 절반을 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옛날부터 동양에서 내려오는 말 가운데 삼세기습이 지우팔실(三歲起習持又八十)이라 하는 말과 꼭 같은 말입니다. 벌써 세 살 나기 전부터 좋은 습관이 양성되도록 힘쓰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말로만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부모가 친히 모범을 보여줘야 합니다. 부모가 남에게 인사를 깍듯이 하고, 남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줄 아는 예의가 있고, 친절하고, 봉사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부모가 실제로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여줘야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내가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어떤 습관의 유산을 남기고 있는가? 좋은 습관의 유산을 남겨 주도록 우리가 힘써야 되겠습니다. <자녀에게 줄 유산>에서

 

 
 




124.소망의 닻
 
소망의 상징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닻입니다.
아무리 바다의 풍랑이 높다고 할지라도 닻이 튼튼히 바다 속 깊이 박혀 있으면 그 배는 풍파에 밀려가지 아니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고해와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때때로 풍파를 만납니다. 때때로 환난도 만납니다. 아무리 풍파가 높다고 하지마는 튼튼한 소망이 있으면 그 풍파에 우리의 작은 배가 밀려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125.소망의 별


소망의 다른 한 가지 상징은 별입니다. 옛날 나침반이 없을 때에 바다를 향해하는 사람들은 오직 별을 보고 방향을 정한 것입니다. 혹은 밤에 사하라 사막 같은 사막 길을 가는 사람도 본래 사막에는 길이 없는 고로 오직 별을 보고 방향을 바로 찾아갔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생 행로를 걸어갈 때 어떤 때에는 밤을 당하게도 됩니다. 환난의 밤, 질병의 밤, 혹은 슬픔의 밤, 고독의 밤을 지나갈 수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소망이 있으면 아무리 캄캄한 밤이라도 인생의 갈 길을 바로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126.소망의 날개

또 한 가지 소망의 상징은 날개로 생각했습니다. 어떤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나뭇가지가 혹 썩어서 꺾어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새는 어떻게 합니까? 날개를 펴서 공중으로 날아갑니다. 더 튼튼한 나무 위에 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과 비슷하게 인간의 생활 가운데도 내가 의지하고 믿었던 그 나뭇가지가 꺾어질 때가 있습니다.
건강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건강이 없어질 때가 있습니다. 돈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사업의 실패로 돈이 없어질 때가 있는 것입니다. 부모를 의지하고 살았는데 부모가 먼저 세상을 떠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소망이 있으면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떨어져 나가지 아니하고 소망의 날개로 어려운 역경을 이겨 나갈 수가 있다고 하는 의미일 것입니다. 인간생활에 있어서 소망은 필요합니다. 흔히 우리가 이 소망을 생각할 때에 한 가지 더 깨달을 것이 있습니다.

 

 
 




127.프레드릭 왓츠의 소망


영국 런던에 있는 케이 미술관에 가보면 프레드릭 왓츠라는 분이 그린 '소망'이란 제목의 그림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그 복사 본을 보신 분들이 많은 줄 압니다. 그 그림을 보면 둥그런 지구 위에 어떤 약하게 보이는 한 여자가 앉아 있습니다. 그 얼굴을 자세히 보면 눈에 수건을 싸매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합니다. 그 여자의 손에는 조그마한 비파가 하나 있습니다. 그 비파의 줄은 본래 일곱 줄이었으나 여섯 줄은 다 끊어지고 한 줄만 남았습니다. 캄캄해서 앞은 보지 못하고 여섯 줄은 끊어지고 한 줄만 남았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믿던 모든 줄이 끊어진다고 할지라도 소망의 줄만 끊어지지 아니하면 우리 인간은 계속해서 모든 것을 이기고 나갈 수 있다고 하는 뜻입니다. 끝까지 끊어지지 아니하는 소망의 줄이 어떤 줄입니까?
영원하신 하나님께 둔 소망의 줄입니다. 우리가 이 소망의 줄을 다 붙잡았습니까? 이 소망의 줄을 붙잡은 이에게는 어떤 환경이 쳐하든지 절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병이 중해도 낙심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새벽 별이올시다. 소망의 별이올시다. 언제나 소망의 빛을 비추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요단강을 건너갈 때에도 영원한 생명의 빛을 우리에게 비추어 주는 것입니다. 이 소망의 줄을 든든히 붙잡았습니까? 이 소망은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그 믿음, 인간의 생명은 죽음이 최후가 아니고 영원히 살아 있는 영생이라는 것을 믿는 그 믿음에서 이 불멸의 소망은 오는 것입니다. <소망의 능력>에서

 

 
 




128.서인도 제도 발베이도스 섬
 
몇 해 전에 서인도 제도의 한 작은 섬 발베이도스 라고 하는 곳에 집회가 있어 갔더니 인구 약 25만에 불과한 작은 섬인데 놀란 것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그 섬에 사는 대부분의 인구가 다 흑인종들이었습니다. 둘째는 그들이 다 영어를 잘 합니다. 오랫동안 영국의 통치 아래 있었던 까닭입니다. 셋째는 그들 대부분이 다 좋은 그리스천입니다. 제가 그 때에 여관에 유하면서 지정한 택시로 예배당에 늘 왔다갔다하는데 그 택시 운전사도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번은 예배당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택시에서 내려 여관으로 들어오려는데 그 운전사가 "목사님!"하고 저를 부르기에 돌아다보니 "목사님 여기에 검을 놓고 가셨습니다. 이 검은 잊어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무엇을 잊고 내렸습니까? 검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성경입니다. 에베소 6장 17절을 기억하십니까?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검이올시다.

 

 
 




129.이순신의 유물


온양 온천에 가 보신 이는 그 곳 가까이 에 있는 현충사에 들려 보았을 것입니다. 이 충무공을 높이는 그 곳에는 이순신 장군이 쓰던 여러 가지 유물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뚜렷이 나타나는 유물은 이 장군이 쓰던 큰 검 두 개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그런 검을 가졌기에 왜적을 물리쳤던 것입니다.
검은 군인이 자기 몸을 보호하는데 필요할뿐더러 적을 공격하는데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 님께서도 광야에서 시험을 받을 때에 이 하나님의 말씀 곧 성령의 검으로 마귀를 물리치신 것입니다. 십자가 군병들에게는 이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여기 본문을 상고하면 세 가지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다"라고 했습니다.
전에 불란서의 문학가 볼체어라고 하는 이는 성경은 죽은 책이라고 하면서 앞으로 백 년만 지나가면 볼 사람이 없어서 박물관에나 가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백 년이 지났습니다. 그가 앉아서 그 말을 한 그 집이 바로 성서공회가 되어 성경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왜? 이 성경은 산  책입니다. 산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30.'바운티'호의 성경 한 권


여러분, 피카이란 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을 줄 압니다. 1970년에 영국 정부에서 카이키라고 하는 남태평양의 조그마한 군도에 고무나무를 재배하기 위해서 종자를 여러 사람들에게 주어 보냈습니다. 그 배의 이름은 '바운티' 호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거기서 고무나무를 심는 동안에 그 곳 여자들과 친해서 영국에 돌아올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선장은 돌아가자 거니 그들은 돌아가지 않겠다 거니 하다가 마지막에는 선원들이 선장을 꽁꽁 묶고 조그마한 배에 태워서 태평양 넓은 바다에 띄웠습니다. 그리고 자기네는 그 섬에 그대로 있기가 무서우니까 사람이 없는 가까운 섬으로 도망했습니다. 이 섬이 그후 피카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자기네들끼리 살게 되었습니다. 여자들을 많이 데리고 가서는 음란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마음대로 멋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이 어떤 풀  뿌리를 물에 오래 담가 두니 술이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리하여 술 빚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술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술 먹고 음란하고 방탕하고 자기네들끼리 싸움하기 시작하여 서로 죽였습니다. 2, 3년 후에는 다들 서로 죽이고 마지막에는 백인 한 사람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장이 마침 죽지 않고 어떤 배의 구조를 받아 영국에 돌아와 보고를 하자 영국 정부에서 해군을 보내어 전원 체포 해다 가 처벌하겠다고 했지만 때마침 나폴레옹 전쟁이 일어나서 보내지를 못했습니다.
여러 해 후 미국의 배가 그 곳을 지나가다 보니 사람이 없던 섬에서 인기척이 나므로 몇 사람이 내렸습니다. 백인도 토인도 아닌 반종 들만이 모여서 찬송을 하고 기도를 하고 예배를 봅니다. 그래서 사실을 알아보니 혼자 남은 백인이 '바운티' 호의 짐짝을 내리다가 우연히 성경책을 한 권 발견했습니다. 이 사람이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읽어보니 자기의 죄를 깨닫게 되고 자라나는 반종들을 사람되게 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가르쳐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부터 찬송, 성경, 기도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여러 해가 지나 그 사람은 백발의 노인이 되어 그 섬의 대통령이요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그 섬은 재판소도 형무소도 경찰서도 없는 평화로운 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와 같은 운동력이 있습니다. <성령의 검>에서

 

 
 




131.천당의 교제


영국에 웨인즈 게일이라고 하는 조그만 고을이 있는데 그 곳에 일찍이 존 호셋이라는 좋은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 곳은 작은 곳이라 교회도 자연히 작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큰 교회에서 이 목사를 초빙하려는 교섭이 왔습니다. 이 때 목사는 초빙을 받고 생각 중에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교인들이 목사를 찾아와서 도저히 떠날 수 없다고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일할 기회와 여러 가지를 보아서는 큰 교회로 가야겠는데 교인들이 안타깝게 진정한 사랑으로 떠나지 말라고 만류함에 호셋 목사는 떠나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목사는 일생토록 그 교회에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 때에 가지 않기로 작정하면서 노래를 하나 지었습니다. 그 노래가 우리 찬송가 463장입니다. "주 믿는 형제들 연락한 사랑이 천당의 교제 같으니 참 좋은 교제일세." 성도의 교제는 천당의 교제입니다. 거룩하고 깨끗하고 피차에 남을 생각해 주는 천당의 교제입니다.<성도의 교제>에서

 

 
 




132. 35만을 위한 영국의 기도
 
제2차 대전 때에 불란서가 두 주일만에 망하고 영국의 35만이라고 하는 군대가 던컵이라는 반도에 몰려서 그 운명이 문자 그대로 풍전등화(風前燈火)였습니다. 그 때 영국에서는 온 나라가 기도의 날을 선포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기후와 여러 가지 방면으로 도와주셔서 35만의 대군이 도고해협을 무사히 도강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도의 손이 많이 올라가야 전쟁에도 승리하는 것입니다.

 

 
 




133.성도들의 기도


전에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은 당시의 종교개혁자 존 녹스의 기도를 무서워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 악마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기도의 후원이 있어야 이 나라도 바로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 개인적으로 보더라도 쉬지 않는 기도가 없이는 내 신앙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제자들이 기도하지 아니하고 졸다가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진 이야기를 우리가 기억합니다. 끊임없는 기도를 계속하는 성도는 어떤 유혹이나 환난이나 시험도 이길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심령이 거룩해지고 깨끗해집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여집니다. 사랑과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기도 없이 신앙생활 할 수는 없습니다.

 

 
 




134.최고의 도움의 길
 
기도는 남을 사랑하고 도와주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 교역자들을 사랑하고 도와드릴 마음이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장로님들과 집사 님들을 사랑하고 도와드릴 마음이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대통령이나 국무위원들이나 국군 장병을 사랑하고 도와줄 마음이 있으면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에 영국에 유명한 휘트필드(Whitefield)라고 하는 부흥 목사가 있었는데 그 분을 따라 다니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그 목사를 위하여 언제나 간절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다리를 절룩이고 키가 작은 보잘것없는 분이었지마는 언제나 따라다니면서 휘트필드 목사를 위해 기도해 주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나 큰 능력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오래 전에 의주 동조에 가서 사경회를 인도한 일이 있는데 그 때 저를 위해 특별히 기도에 열심 있는 분이 계셨습니다. 김덕창 장로님이었습니다. 제가 설교하는 동안에 김 장로님은 계속 기도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피차에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목사가 교인을 위해서, 교인이 목사를 위해서 기도하며, 공무원이 국민을 위해서 국민이 국가를 위해서 기도하는 교회와 국가는 부흥이 되고 크게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135.부채질하는 벌


제가 어떤 책을 보니 양봉하는 이는 잘 아시겠지마는 꿀벌 가운데는 일하는 동봉이 있고 부채질하는 벌이 있는데 그 벌은 벌통 속의 나쁜 공기를 환기시키는 일을 전담한다고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교회도 그러한 줄 압니다. 일할 수 있는 분은 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 즉 나이 너무 많거나 병석에 있는 분은 부채질하는 벌들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교회가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나라, 이 세계는 옛날 요나 의 배와 방불합니다. 큰 풍랑 가운데 있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요나 처럼 잠잘 수 있습니까?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초 비상시를 당해서 기도에 힘을 써야 될 줄 압니다. 개인적 기도, 가정 기도, 교회 적으로 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새벽 기도회, 삼일 기도회를 빠짐 없이 해야겠습니다.<쉬지 말고 기도하라>에서

 

 
 




136.이 동전 한 닢을
 
제가 직접 못 보았지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전에 유명한 부흥 목사인 김익두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부흥 목사님이 어느 곳에 가서 예배를 드리다가 그 연보 주머니를 다 거두어 온 다음에 한 번 보시니 그 당시 동전을 많이 사용하던 때인데 동전만 가득했답니다.
그 때 김익두 목사님이 헌금 주머니를 들고 하시는 말씀이(그 땐 동전 한 닢을 거지에게 주던 때입니다) "여러분, 거지에게 줄 수 있는 이 동전 한 닢을 하나님께 드립니까? 그러면서 그 동전을 한 줌 쥐어 뿌려버렸습니다. 이것은 거지들에게나 주라고 하였답니다. 직접 못 보았고 또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우리가 여기서 꼭 배울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제일 낮은 돈의 단위인 십 원 짜리 가 옛날 동전 하나만 할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가 거지를 만나 돈을 주려면 아마 십 원 짜리를 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조금도 오해하지 마세요. 우리 가운데 아주 가난하여 돈 십 원도 아주 큰돈이 되는 그런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분이 그 십 원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주 큰돈입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셔요. 내가 들으니 영락교회 교인들이 그런 생활은 아니겠는데 대부분 십 원 짜리 가 많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보지는 못했습니다. 무엇에나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모신다고 할 것 같으면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존귀(尊貴)히 하여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신다고 할 것이면 왕의 명령을 절대로 순종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바로 일년에 한 번씩 지키는 전도 주일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에 우리가 얼마나 순종했습니까? 종 된 우리는 임금에게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왕 되시는 주님께 충성을 다하려고 생명을 바친 순교자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우리 주님께 대하여 충성을 다합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137.나폴레옹의 고백


나폴레옹이 전쟁에 실패하고 세인트헬레나 라는 섬으로 외롭게 정배(定配)를 갔습니다. 그는 죽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나는 칼로써 세계를 정복하려 했지만 결국은 실패하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으로써 천하만민을 정복하셨구나." 예수 그리스도는 만 왕의 왕이요 만 유의 주십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에서

 

 
 




138.죄 의식의 고민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난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 폴 틸리히라고 하는 분이 “현대 사람에게는 지식이 많고 현대 사람은 고도의 문화 생활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 사람의 심령상태를 가만히 살펴보면 세 가지 회색 그림자가 항상 따라다닌다. 첫째는 공허감, 텅 빈 느낌. 둘째는 죄감, 죄로 말미암아 오는 양심의 불안, 셋째는 공포감, 두려운 마음이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뒤에는 따라 다니는 회색 그림자가 없습니까? 사실 예수그리스도를 우리가 참으로 만나기 전에는 이들을 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결국 인생은 허무합니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언제나 죄 의식에 빠져 고민 할 수박에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신앙이 없으면 불안과 공포를 이길 수 없습니다.
빌립보의 간수가 새벽에 사도 바울을 붙잡고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부르짖은 말씀을 여러분께서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런 부르짖음은 옛날 비립보 간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구주를 만나지 못한 사람의 깊은 심령 속에는 누구나 이런 부르짖음이 있습니다. 거기 대해서 사도 바울은 분명히 대답했습니다. “예수  믿는 길만이 나와 내 집의 구원 얻는 길입니다.

 

 
 




139.에티오피아 어떤 주교의 동상


제가 한 서너 주일 전에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에서 한 3, 4일 지날 때에 한 번은 차를 타고 거리를 지나가는데 거리에 로터리가 하나 있고 그 로터리 가운데 큰 동상이 하나 있었습니다. 보니까 성직 복을 입은 신부나 감독의 동상입니다. 그래서 같이 가던 매클리어 박사에게 이것은 무슨 동상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이가 하는 말이 그 동상은 에티오피아의 유명한 어떤 주교의 동상이라고 일러주면서 동상 바로 아래는 기관총이 하나 놓여 있다고 하며 설명을 하는데,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세게 2차 대전 바로 전에 이탈리아의 뭇솔리니가 에티오피아를 침략해서 에티오피아가 잠깐 동안 이탈리아의 점령 하에 있을 때에, 이탈리아 군대가 그 도시의 중요한 곳은 거이 다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그 산악지대에는 수도원이 많은데 그 수도원을 근거로 해서 성직자들과 수도사들과 애국 청년들이 모여 계속해서 게릴라전을 감행했다고 합니다.
암만 해야 이것을 해결할 길이 없으니까, 이탈리아 사령관이 그 때의 대주교를 청해서 당신이 성직자들을 다 모이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다 모이면 할 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대주교가 모든 성직자들과 수도사들과 애국청년들을 아무 날 아디스아바바에 다 모이라고 하니 모든 사람들이 다 모였다고 합니다. 수만 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다 모인 다음에 이탈리아 사령관이 이 주교에게 더 이상 저항하지 말고 이탈리아와 협력하라고 강요를 했답니다. 그 때에 주교가 단 위에 올라서서 이탈리아 사령관이 한 말과는 정반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으니 끝까지 자유를 위해서 싸우자고 외쳤답니다. 그러니까 이탈리아 사령관이 준비했던 기관총으로 주교를 쏴 죽였다고 합니다. 또한 주교 이하 거기 모였던 수 천명이 일시에 학살을 당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몇 해 후에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에티오피아 국민은 이렇게 용감한 국민이올시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끝까지 수호하려는 이 정신이야말로 귀중한 것입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아프리카 여러 국가 중에서 몇 천년을 독립국가로 내려오는 나라는 이 에티오피아 한 나라밖에 없는 줄 압니다. 그 배후에는 기독교신앙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은 특별히 자유를 수호할 위대한 사명이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의 신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느니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에서

 

 
 




140.정복하는 신앙


한간에“요사이 관청에 있으면 신앙생활 못해”하는 말이 들립니다. 혹“요새 장사꾼으로서는 신앙생활이 힘들어”하는 말들이 들립니다. 여러분 가이사 집의 성도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런 거슬리는 환경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전에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고 장래에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불가능 한 것은 아닙니다.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서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경건한 생활을 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141.예수 믿는 북한 청년


체코슬로바키아에 다녀온 어떤 분의 말 가운데, 그 곳에서 북한에서 유학 온 천년 몇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이 자기를 조용히 보자고 하더니 자기 포켓에서 조그마한 책을 하나 꺼내 보이면서 “이것이 무슨 책인지 아세요? 이것은 우리 한국말로 된 신학성서입니다. 나는 예수 믿는 청년입니다.”라고 하드랍니다.
북한에 그리스도를 믿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런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북한에도 그리스도를 잘 믿는 성도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문자 그대로 가이사 집에 성도들입니다. 예수께서 신앙생활이 쉬운 것이라 말씀하신 적이 절대로 없습니다.“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142.제온기와 같은 신자
 
참된 신앙은 환경을 극복합니다. 보통 집에 들어가 보면 한난계(寒暖計)라는 것이 있지요. 그것 무엇하는 것입니까? 한난계는 방안의 온도가 더운지 찬지를 얼른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사이 현대식으로 지은 집에 가보면 한난계가 하나 더 있지요. 제온기라는 것 말입니다. 이 제온기라는 것은 온도를 내가 원하는 대로 놓으면 방안의 온도가 변해서 그 제온기의 온도만큼 됩니다. 냉난방이 자동적으로 제온기를 따라 변하게 됩니다. 여러분 압니까? 믿는 사람 가운데 두 가지 종류의 믿는 사람이 있어요. 한 사람은 한난계 비슷합니다. 자기 주위 환경의 온도에 따라서 같이 변하고 맙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제온기와 같은 신자가 있습니다. 어디 가던지 자기가 표준 한 그 표준대로 다른 사람을 따라오게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신자입니까? 제온기와 같은 신자가 되어야합니다. 오늘 여러 남녀들이 새로 학습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마는 여기 특별히 여자들 가운데 이 다음에 출가할 때에 혹 믿지 아니하는 가정으로 출가하는 여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령 어떤 여자가 믿지 아니하는 가정에 출가를 했다고 합시다. 처음에는 교회도 나오고 또 교회 봉사도 하느라고 애쓰다가 몇 해 지나면 점점 믿음이 식어져서 믿지 아니하는 가정을 따라갑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믿지 않고 맙니다. 그러나 어떤 여자는 꼭 같이 믿지 아니하는 가정에 출가를 하였는데 그 가정에 출가해서 끝까지 신앙을 지킬뿐더러 남편도 회개  시키고 시어머니도 회개시키고 또 시아버지까지 교회로 인도하고 온 가족을 다 복음화 시키는 그런 여자들도 있음을 많이 보았습니다. 참 신앙은 환경을 극복합니다.    <가이사집의 성도들>에서

 

 
 




143.우울한 생활을 한 죄
 
단테의 《신곡》을 보면 지옥 맨 밑바닥에 많은 사람이 잇는 광경이 나타납니다. 이 사람들은 무슨 죄를 짓고 왔느냐고 물으니까 다른 죄가 아니라 믿기 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명랑한 생활을 못하고 늘 우울한 생활을 한 죄를 지은 까닭으로 여기에 왔다고 합니다.
  명랑한 생활을 못하는 것은 죄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여야 합니다. 옳게 살 뿐더러 명랑하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왜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였습니까? 그뿐만 아니라 성경의 말씀대로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良藥)이라고 하였습니다. 명랑한 마음은 좋은 약입니다. 몸에 유익합니다. 명랑한 마음을 가지면 소화도 잘 되고 혈액 순환도 잘 된다고 합니다. 병이 저절로 났는다고 합니다. 현대 의학계의 말을 들어보면 병 가운데 6할 내지 7할의 원인은 심리적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명랑하지 못한 마음을 가진 육체 가운데 많은 병이 생깁니다.
근심과 걱정, 공포심, 의심, 증오심, 분노, 그리고 시기와 질투로 인해 명랑한 마음 가운데육체의 병이 생깁니다. 명랑한 마음을 가져야 힘을 얻어서 일을 잘 합니다. “주의 즐거움이 너희에게 능력이 되느니라”

 

 
 




144.로마 제국 영적 정복


역사를 보면 고대 로마 사회는 그 헬라의 찬란한 문화와 로마의 권세와 영광에도 불구하고 매우 침울하였습니다. 대다수의 민족은 허탈감, 좌절감, 절망감에 휩쓸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그 역경과 핍박 중에서도 기쁨과 소망이 충만한 명랑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역경으로 로마제국을 정복한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세계정세와 한국사회의 정세도 이와 비슷합니다. 과학은 발전되었다고 하지마는 인간은 침울한 상태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안에서 기쁨과 소망으로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145.깊은 데서 나는 냉수


인도에 가서 설교하던 어떤 선교사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인도에는 건조기가 있는데 어느 해 건조기에는 어떤 촌락에 있는 교인 하나가 와서, “큰일 났습니다. 우리 동래 우물의 물이 말랐습니다. 그런데 비가 오려면 아직도 서너 달이 있어야 할 텐데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선교사가 가서 보니 우물이 정말 말랐습니다. 선교사는 우물을 좀더 깊이 파봅니다. 온 동래가 힘을 모아 우물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을 파도 물이 안 나옵니다. 그 다음에는 반석이 나옵니다. 그러나 선교사는 반석을 깨뜨리고 계속해서 파게 했더니 이레 되는 날에 반석의 아래에서 생수가 솟아났습니다.
세상의 환경, 물질 혹은 사람에게서 오는 기쁨은 다 건조기와 같습니다. 마를 때가 있습니다. 주안에서 오는 기쁨은 깊은 데서 나는 생수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속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님의 약속하신 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충만히 마셔서 어떤 환경에서든지 명랑한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명랑한 생활의 비결>에서

 

 
 




146.'정중지와’


여러분 다 등산해 보신 분은 아시지만 우리가 높이 올라갈수록 우리의 시야가 넓어집니다. 낮은 곳에 있을수록 시야가 좁아집니다.
 정중지와(井中之蛙)란 말이 있지요. 우물 속의 개구리란 말입니다. 우물 속의 개구리는 그 속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하늘이 동전 닢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보며 사는 사람이 없지 않아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기껏 보아야 자기 자신만 봅니다. 가족도 심지어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겨우 본대야 자기 가족이나 봅니다. 아주 낮은 곳에서 사는 까닭입니다.
공산당들은 자기 계급만 봅니다. 그래서 계급 투쟁을 하라고 고조(鼓 )합니다. 전에 히틀러는 자기 만족만 보았습니다.

 

 
 




147.넓은 시야


높이 올라갈수록 시야가 넓어집니다. 더욱 높이 올라가면 이 세계를 한 눈에 볼 수도 잇습니다. 여러분, 우주인들이 달에 가서 찍은 지구 사진을 다 보셨지요? 그 우주인들은 지구를 한꺼번에 보았습니다. 한꺼번에 보니 우리가 사는 지구가 얼마나 커 보이겠습니까?
사실은 우리가 사는 이 지구는 한 작은 공입니다. 그 위에 35억이 넘는 사람들이 복잡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작은 공 위에서 사는 사람들이 계급이니 민족이니 국경이니 백인이니 하면서 싸우며 삽니다. 사실 우주인의 눈으로 세계를 보면 그렇게 살 세계가 아닙니다. 우주인들이 달에 남기고 오기 위해서 가지고 간 기념 판에 새긴 말이 생각납니다.“우리는 전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유성 지구에서 여기 왔노라”시야가 좁아서 싸움을 합니다.
시야가 넓은 그리스도인은 싸우면 아니 됩니다. 어디를 가나 평화의 생활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3장 28절에“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했습니다. 다 하나인데 무슨 싸움이 있겠습니까?
받으려고 하는 것보다는 주는 정신으로, 얻는 것보다는 봉사하려는 정신으로 그리스도의 높은 십자가 차원까지 우리의 심령을 끌어올려야겠습니다. <향상하는 생활>에서

 

 
 




148.강해지는 신앙


우리는 성 프랜시스를 다 기억합니다. 그가 어떤 분인지 압니까? 그의 전기를 읽어보면 그는 본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으며, 부족한 것을 모르고 자라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그 당시의 부잣집 아들처럼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큰 병에 걸렸습니다. 이 중병을 통해서 그가 하나님을 찾게되었습니다.
약한 가운데서 주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나서 방탕 자였던 청년이 변하여 성자가 된 것입니다.
병 가운데서 죄를 회개하고 구원을 받아 큰 일을 한 사람은 수 없이 많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많이 있습니다.
주의 능력이 약한 가운데 온전히 나타나는 까닭입니다.
밀턴은 유명한 문학가이지만 특별히 그가 실명된 후에 더욱 위대한 작품,《실락원》(失樂園)을 썼다고 하는 것은 유명한 얘기입니다.
베토벤 같은 이도 본래 천재적인 음악가입니다. 그러나 그의 귀가 멀고 듣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 전보다 더 위대한 작곡을 했다는 것 또한 너무도 유명한 얘기입니다.
몇 해전에 세상을 떠난 헬렌 켈러 여사는 어렸을 적부터 소경이요 벙어리요 귀머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가장 유명한 여성 중 하나로 살았다고 하는 유명한 얘기도 우리는 잘 압니다.

 

 
 




149.고독한 중의 주의 능력


중세 시대 유명한 이태리의 문호 단테는 요한 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그는 플로렌스의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고, 처음에는 정치적 지도자로 많은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만 정당이 서로 충돌하는 중에 패배를 해서 도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타향에 유리하며 고독한 망명생활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 때에 그는 하늘과 천당과 지옥의 비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기록한 것이 오늘날도 많이 애독하고 있는《신곡》이라는 것입니다. 고독한 가운데 주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났습니다. 
  모세의 생활을 여러분이 잘 압니다. 호화로운 애굽 궁전에서 살던 청년입니다. 그러나 부득이 정치적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 가서 고독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독한 양치는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부름을 받아서 마침내 뛰어난 지도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우리가 잘 압니다. 고독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난 것을 늘 잊지 말고 기억합니다.

 

 
 




150.‘엉클 톰스 캐빈’


예전에 미국은 흑백 인종문제로 남북 전쟁이라는 큰 전쟁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흑노(黑奴)를 해방하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흑노 해방 운동을 일으킨 배후에는 유명한 책이 한 권 있습니다.
그 책이름은 영어로‘엉클 톰스 캐빈’(Uncle Tom’s Cabin) 이라 합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톰 아저씨의 오막살이》라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 소설은 스토우라는 부인이 썼는데 이 부인은 자기 아버지도 라이먼 리쳐라고 유명한 목사요, 자기 오빠는 아버지보다 더 유명한 헨리 워드 리쳐 목사입니다. 그런데 이 부인이 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말씀드리지요.
이 부인은 결혼해서 단란한 가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귀한 딸을 하나 낳았습니다. 이 부인은 딸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딸이 얼마 자라다가 그만 죽었습니다.
이 부인은 마음이 얼마나 섭섭했는지 언제나 딸 생각에 살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자기 마음이 그렇게 아픈 것을 생각하다가 이 세상에는 나와 같이 슬픔을 당하는 여자가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노예들의 형편을 보았습니다. 흑인의 어머니는 딸이 죽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 팔려 감으로써 가족끼리 사방으로 흩어져 생이별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에 스토우 부인은 나는 내 딸이 죽어서 이렇게 슬픈데 살아서 자식들과 이별해야하는 흑인 어머니들의 가슴을 얼마나 아프겠는가? 하는 것을 소설에 그대로 묘사했습니다.
그 책이 출간되어 많은 사람이 읽게 될 때에 그야말로 미국사람의 양심을 찔렀습니다.
흑노는 반드시 해방되어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약한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온전히 이루어져 인류 해방과 자유의 큰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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